소희는 그저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감사는 무슨, 우리가 감사해야죠!" 정숙은 온화하고 우아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소희를 진심으로 좋아했다.사람들이 얘기를 나눌 때 임가네 어르신은 임가네 장남 인지언과 함께 위층에서 내려왔다. 사람들은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정숙은 그들에게 소희를 소개했고, 소희는 예의 있게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어르신은 구택이 말한 것처럼 엄숙하고 항상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한 쌍의 눈은 깊고 날카로워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보아낼 수 없게 했다.지언은 구택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생겼다. 그는 검은 테두리의 안경을 썼는데 아마 학술연구를 하는 사람이라 듬직하고 점잖아 보였으며 정숙과 마찬가지로 온화하고 예의가 있었고 친근감이 있었다.소희는 성격상 지언은 노부인을 닮았고 구택은 어르신을 닮았다고 느꼈다.지언은 소희에게 웃으며 말했다."원래 나와 내 아내가 차를 보내서 소희 선생님을 마중하러 가려고 했지만, 구택이 마침 강성대를 지나갔다고 해서 그더러 소희 선생님을 데리고 오라고 부탁했네요. 실례했다면 양해 바랄게요."소희는 텔레비전에서 지언을 본 적이 있어서 그가 학술계에서의 지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그녀보다 나이가 꽤 많았으니 그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왠지 무안했다."아닙니다, 별말씀을요!"구택은 말을 이으며 미소를 지었다."소희 씨의 말이 맞아요. 앞으로 그녀도 자주 올 거고 우리를 자주 볼 거니까 너무 공손해할 필요 없어요."사람들은 분분히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소희는 임가네 집안의 가족들의 감정이 매우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 윗사람들은 온화하고 자상했고 아랫사람들은 상냥하고 예의가 발랐으니 막장 드라마처럼 서로 다투고 싸우는 상황이 없었다.어른들이 이야기할 때 유림은 소희에게 눈짓을 하며 그녀를 끌고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어른들 말은 우리도 끼어들 수 없으니까 나는 소희 데리고 내 방에 갈게요."유민은 즉시 말했
"예쁘지? 난 이 컵을 보자마자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 유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었다."너무 마음에 들어!" 소희는 손가락으로 위의 꽃무늬를 만지며 맑은 눈빛으로 말했다."고마워!""나한테 고맙다는 무슨!"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림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소희는 무심한 척 물었다."네 둘째 삼촌은 줄곧 연애를 해 본 적 없어?""우리 둘째 삼촌?"유림은 소파에 기대어 잠시 생각해 보았다."나는 그가 전에 은서 언니와 사이가 좋았다는 것만 알고 있어. 그러나 후에 그가 소 씨네 집안 아가씨와 혼약이 생긴 다음 은서 언니는 M국에 갔고. 그리고 나중에 우리 둘째 삼촌도 소가네 아가씨와 결혼한 후 출국했어. 근데 나는 그가 은서 언니 찾아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더라고."소희가 물었다."그들은 네 둘째 삼촌과 소 씨네 집안과의 혼약 때문에 헤어진 거야?"유림은 고개를 저었다."그때 나는 고3이라 한동안 학교에서 숙소 생활해서 그들의 일에 대해서 잘 몰라."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두 사람은 화제를 돌리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림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확인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띠며 전화를 받았다."아침에 금방 전화했잖아, 무근 일이야?"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유림은 조금 수줍어했다."그럼 넌 언제 강성으로 돌아올건데?"소희는 전화한 사람이 주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유림에게 눈짓하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방문을 닫자 소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아래층에는 임가네 사람들이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 그녀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다행히 그녀는 여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2층에 공용 서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 거기엔 아무도 없을 거 같아 아예 서재에 가서 책을 좀 보려했다.서재는 동쪽 끝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의 향기가 풍겨왔다.서재는 매우 컸다. 한쪽의 긴 창문은 별장
서재가 조금씩 어두워지자 색다른 느낌은 점점 더 분명해졌다. 소희는 남자에게 허리를 잡힌 채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몸을 숙여 그녀를 서가에 대고 키스했다.방금 그녀가 그의 가족들 앞에서 매우 얌전한 것을 보고, 그는 그녀를 괴롭히고 싶었다. 분명히 전에는 그렇게 엽기적이었으면서. 그의 가슴은 지금도 은근히 아팠다.소희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온몸은 남자의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졌고 모든 감각도 모두 그에게 차지했다.그는 키스를 진하게 하다 천천히 부드러워지며 조금씩 그녀를 삼켰다.소희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마도 이런 특수한 환경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말소리 때문일 가, 그녀는 불안한 동시에 즐겁고 짜릿했다.소희는 살짝 눈을 뜨자 남자의 굳게 감긴 긴 눈과 뚜렷한 옆모습을 보았다. 그는 속눈썹이 매우 검고 콧대가 곧으며 그야말로 잘생기기 그지없었다.그녀의 주시를 감지한 듯 남자는 긴 눈을 천천히 떴다. 그는 살짝 멈추며 반쯤 뜬 검은 눈은 짙고 어두운 밤처럼 소희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은 이렇게 상대방을 바라보며 마치 서로 절벽 맞은편에 있는 것처럼 누구도 지려하지 않았다.한참 지나, 남자는 숨을 크게 쉬며 그녀의 허리를 꽉 잡고 벌주듯이 계속 그녀에게 키스했다.소희는 몸을 살짝 떨었지만 더 이상 그의 키스에 응답하지 못하고 두 손으로 그의 팽팽한 가슴을 받치며 눈을 떨구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나 이따 또 나가봐야 돼요."그녀는 화장을 하지 않아서 메이크업이 엉망될 까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만약 입술이 부으면 너무 티가 났다.구택은 그녀의 볼을 따라 아래로 가볍게 키스했고, 목소리는 낮고 매력 있었다."내 방으로 갈래요?"소희는 입을 열었다."구택 씨 가족이 내가 구택 씨를 이용해서 이 일을 얻었다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거예요?"구택은 고개를 그녀의 가슴에 묻히며 참지 못하고 낮게 웃었다."아마도 그 반대일걸요. 그들은 소희 씨가 이 일을 이용해서 나를 꼬셨다고 생각할걸요."소희는 참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둘째 삼촌?" 유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소희 봤어요?"구택의 말투는 담담했다."화원에 간 것 같던데.""아, 그럼 화원에 가서 그녀를 찾아볼게요."유림은 대답하며 인차 가버렸다.소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우리 지금 어떡해요?""내가 화원으로 데려다줄게요." 남자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어떻게요?" 소희는 흠칫 놀랐다. 설마 이 별장에 암실 같은 거 있는 건 아니겠지?곧 그녀는 자신이 또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택은 창가로 걸어가며 창문을 열고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뛰어내리면 돼요. 아래가 바로 화원이거든요.""......"별장의 1층은 매우 높았기에 2층은 거의 3층의 높이에 해당했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굳이 그의 앞에서 뛰어내려야 할까?그는 혹시 무엇을 알기라도 했던 것일까?구택은 그녀가 멍 때리는 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이리 와요."소희가 다가가자 구택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먼저 뛰어내릴게요. 이따가 내가 아래에서 소희 씨 받아줄게요. 뛸 수 있겠어요?"소희는 그를 보며 물었다. "지금 농담하는 거예요?""아니요." 구택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빛에는 약간의 기대가 있었다."뛸 수 있겠어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먼저 뛰어요!"구택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에 키스했다."무서워하지 마요, 내가 있으니까. 소희 씨 다치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엄청 재밌을걸요."소희는 멈칫하며 눈빛은 순간 그윽해졌다. 눈앞의 남자를 보면서 그녀는 문득 시간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구택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한번 보고는 뛰어내렸다.소희는 즉시 앞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남자는 날렵하게 발끝을 내밀며 일층의 살짝 나온 창문 턱에 안정적으로 떨어졌다.곧 그는 고개를 들어 두 팔을 내밀었다.그녀는 그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아가야, 얼른 내려와요
소희와 유림은 화원 밖에서 마주쳤다. 유림은 달려와 이마에 진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였다."어디 갔었어? 화원을 거의 다 찾아봤는데 너 못 봤어."소희는 아무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저쪽에 모란꽃이 있는 거 보고 좀 오래 있었지.""나는 네가 서재에 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둘째 삼촌이 나한테 네가 여기 있다고 말해준 거야." 유림은 순진하고 귀엽게 웃었다.소희는 가슴이 찔렸다."미안해, 걱정하게 해서!""아니야, 마침 여기 왔으니까 내가 우리 할머니의 화원 보여줄게." 유림은 웃으며 말했다."안에는 우리 둘째 삼촌이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특이한 꽃들이 많이 있어. 너도 본 적이 없을걸.""좋아!"두 사람은 화원에 들어가 잠시 놀다가 하인이 찾아와 그들더러 점심 식사하라고 불렀다.별장으로 돌아오자 하인은 이미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정숙은 열정적으로 소희를 불렀다."유민이가 소희 선생님이 매운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매운 요리를 몇 개 더 만들라고 했는데. 입맛에 맞는지 얼른 먹어봐요."소희는 인차 말했다."그러실 필요 없는데요. 저는 음식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어요."식탁으로 걸어가며 소희는 위층에서 내려오는 구택을 보고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남자의 예쁜 눈과 눈빛이 마주쳤다. 그녀는 얼굴이 뜨거워지며 급히 시선을 돌렸다.노부인은 소희더러 얼른 자리에 앉으라 했고 사람들도 차례대로 자리에 착석했다. 공교롭게도 소희는 구택의 맞은편에 앉았다.노부인은 하인더러 소희에게 오리탕을 떠주라고 하며 상냥하게 웃었다."편하게 먹고 싶은 거 먹고. 자기 집이라 생각하고."소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합니다!"유민이 입을 열었다."처음도 아닌데, 어색할게 뭐가 있겠어?"말하면서 그녀에게 꽃게 하나 집어줬다."많이 먹어."소희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응."임 씨네 식구들은 남을 얕보고 우아한 척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엄숙한 임가네 어르신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상냥하고 따뜻하며 항상 소희를 돌봐줬다.소희도
소희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할머님.""그래!" 노부인의 눈빛은 더욱 상냥해졌다.정숙은 유림과 함께 그녀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며 그녀가 구택의 차에 오르는 것까지 보고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구택은 운전하며 그녀를 데리고 임가를 떠나 도심으로 달렸다.소희는 차창 밖의 경치를 보다 고개를 돌려 조용히 입을 열었다."일 있으면 얼른 회사로 가봐요. 난 택시 타고 돌아가면 돼요."구택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난 확실히 회사에 가봐야 해요."소희는 눈썹을 살짝 치켜뜨며 대답했다."그래요!"구택은 백미러를 통해 소녀의 옆모습을 힐끗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차는 어정에 들어가며 지하 차고에서 멈췄다. 소희는 차에서 내린 후 남자도 함께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영문 몰라 하며 그를 보았다.(회사로 가는 거 아니었나?)구택은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가서 담담하게 웃으며 설명했다."갑자기 생각났는데, 오전에 이미 명우더러 처리하라고 했어요.""......"그는 틀림없이 일부러 이러는 것이었다.위층으로 올라간 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구택은 소희를 현관의 궤짝에 밀며 키스했다.임가네 서재에서 그녀에 의해 생긴 욕망은 다시 번지며 그는 그녀를 안고 뜨거운 키스를 하며 침실로 천천히 걸어갔다......이번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낮에 관계를 맺은 것이었다. 햇빛은 닫히지 않은 커튼을 통해 방 안을 비추었다.소희는 침대에 엎드려 햇빛에 현기증이 나며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마치 어린 시절 이웃집 언니가 불었던 거품을 본 것 같았다. 한 떨기 한 떨기, 바람에 하늘로 날아가며 무척 알록달록했다.그녀는 그 거품들이 그녀를 데리고 아름다운 동화 세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고픔도 폭력도 욕설도 없는. 그녀는 필사적으로 거품을 쫓으며 손을 내밀었지만 그 거품들이 그녀의 손끝에서 터지며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그리고 지금, 그녀는 또 그 알록달록한 거품을 쫓
소희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어떤 남자가 담배를 끊는다고 바로 끊을 수가 있을까? 이건 완전히 아이스크림을 그녀의 입으로 가져다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오늘 그녀는 쉬는 날이라 케이슬에 가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 구택과 밥 먹으러 갔다.두 사람은 또 전에 갔던 남월정에 가서 밥 먹으러 갔다. 주인아줌마는 소희가 밀크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특별히 아이스 밀크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소희가 기뻐하기도 전에 구택은 이미 뜨거운 것으로 바꾸었다.주인아줌마가 나가자 소희는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아이스크림은 그렇다 쳐도, 아이스 밀크티도 안 되는 거예요?"남자는 단번에 거절했다. "안돼요!"소희는 약간 의기소침해졌다."그럼 내 생활은 완전히 재미가 없잖아요."구택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소희 씨에게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안 되는 거예요?"그가 정색하게 말하자 소희는 한참 멍해졌다. 그녀는 가슴이 살짝 뜨거워지며 눈을 떨구며 중얼거렸다."그게 어떻게 같아요."남자는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어느 게 더 좋아요?"소희는 목이 메어 맑은 한 쌍의 눈동자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얼굴이 빨개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그녀는 인차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그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그에게 빠질 것이다.창문 아래에는 옛날식 등불이 켜져 있었다. 남자는 등불 아래의 소녀의 귓가가 빨개진 것을 똑똑히 보며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창밖에는 해당화가 있었는데 소희는 몸을 내밀어 해당화를 만졌다. 정원에 마침 20대의 남학생이 지나가며 소희의 모습을 보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참지 못하고 다가와 해당화 한 송이를 꺾어 소희에게 건네주었다."여기요!"소희는 받지 않았다. "아니에요, 그래도 고마워요.""아가씨 자주 여기에 오나요? 번호 좀 알려주면 안 될까요?" 남자는 여자들과 말을 거의 걸어보지 못했지만 이때 용기를 내서 말했다. 불빛 아래의 깨끗한 얼굴은 새빨개졌다.소희는 거절하려
민수는 원망했다."둘째 삼촌이 오셨는데 엄마는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요?"주인아줌마는 부드럽게 웃었다."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네 그림자도 보지 못했는데, 나보고 어떻게 너한테 말해주라는 거야?"민수가 말했다."나도 방금 돌아와서 주방에 가서 도와주려고 하던 참이었어요!""그럼 빨리 와!"주인아줌마는 부드럽게 말했다."네 둘째 삼촌과 삼촌 친구 식사하는 거 방해하지 말고."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소희에게 물었다."소희 씨, 번호 좀 교환해도 될까요?"구택의 친구인 이상 소희도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냈다."그래요!"주인아줌마는 구택을 한번 보더니 민수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빨리 나와. 손님들 기다리잖어."민수는 구택과 소희에게 손을 흔들었다."좀 있다가 다시 올게요."모자 두 사람이 나가고 문이 다시 닫히자 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하얀 얼굴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구택은 의자에 기대며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웃어요? 내가 일반 남자라서 웃는 거예요, 아니면 소희 씨가 풋풋한 여자애라서 웃는 거예요?"소희는 얼굴이 빨개졌다."그냥 민수 씨가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요."구택은 몸을 기울여 유유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젊은 남자는 다 귀엽죠?"소희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천천히 말했다."귀여운 사람은 많지만 잘생긴 둘째 삼촌은 하나밖에 없어요. 근데......"소희는 그를 향해 웃었다."둘째 삼촌이 나에게 아이스 밀크티 한 잔 마시는 것을 허락한다면 더 좋죠!"구택도 웃었다."소희 씨도 예쁘게 생겼어요, 아주 단순하게!"......결국 소희는 아이스 밀크티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어정으로 돌아간 후 구택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며 소희 보고 혼자 영화 보러 가라고 했다.소희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영화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이스크림 먹을 권리가 박탈되었으니 그녀는 카펫에 앉아 찝찝해
부신명은 고영해의 표정을 보며 더 화가 치밀었다.“그럼 당신,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고영해는 급히 해명했다.“그렇게 일찍 안 건 아니에요. 최근 이틀 사이에야 겨우 소식을 들었고, 오늘도 최이석한테 전화했는데, 그 사람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어요.”“인정할 리가 있나?”부신명은 분노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인정하면 지금까지 받아 챙긴 돈 다 토해내야 하니까.”그는 냉랭한 눈빛으로 고영해를 쏘아봤다.“회사가 최이석한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는지 알아요? 당신은 자신만만하게 꼭 이 프로젝트 따내겠다고 장담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게 뭐죠?”부신명은 탁자 위를 세게 내리쳤다.“내일 당장 짐 싸서 나가요!”고영해는 면박을 당해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입술을 깨물었고, 속으로는 온통 최이석에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이 지경까지 만든 게 다 최이석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같이 망하자.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다음 날구씨그룹 인사부와 이사회 일부 고문들의 이메일에는 한 통의 실명 고발장이 도착했다.유지그룹 영업팀 본부장 고영해가 보낸 것으로, 그는 최이석이 먼저 뇌물을 요구하며 협상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고발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거액의 이체 기록과 녹취 증거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이에 모두가 이 고발장을 받고 충격에 빠졌다.구은정은 증거의 진위를 조사하게 했고, 확인을 마친 뒤 회의석상에서 서성 앞으로 서류를 던지듯 내밀며 차갑게 말했다.“조사해 보니 더 충격이네요. 유지그룹 건만이 아니에요. 최이석이 맡은 프로젝트는 전부 사익을 취했어요.”“이 사람, 당신이 데리고 온 인물이죠? 어떻게 처리하실 건가요?”서성은 눈앞에 놓인 자료들을 보며 얼굴이 일그러졌다.“정말 최이석이 이렇게 대담할 줄은 몰랐어요!”그는 고개를 들고 은정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회사는 최이석을 해고해야 해요. 저는 절대 감싸거나 묵인하지 않을 거예요!”“해고요?”은정은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이미 법무팀에 고소 진
앞에 서 있던 남자는 임유진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고, 유진이 멀어지자 그제야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구씨그룹과의 계약은 여전히 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최이석은 최근 구은정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으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며, 여러 단계를 더 거쳐서 확실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었다.사실 잘 알고 있었다. 최이석이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속셈이라는 걸.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양보를 한 상태였다.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양쪽은 암묵적으로 팽팽하게 대치 중이었고 이석의 약점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이석이 몰래 여씨그룹과 접촉해 유지그룹과 여씨그룹 사이를 오가며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가 더 많은 돈을 주느냐에 따라 결국 그쪽과 손을 잡을 셈이었다.고영해는 분노로 치를 떨었다. 자신이 최이석에게 준 돈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충동적으로 나설 수 없었다.눈동자를 굴리던 그는 일부러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 4층 버튼이 눌린 걸 확인했다.그 순간, 예약해둔 고객의 전화가 울렸다.“왜 아직 안 오셨어요?”[곧 가요.]고영해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임유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도착했지만 내리지 않고 다시 1층 버튼을 눌렀다. 자리에 돌아온 그녀는 미안한 표정으로 구은정에게 말했다.“사람이 많아서 조금 기다렸어요.”음식은 이미 하나둘씩 나오고 있었고, 은정은 그녀에게 음식을 덜어주며 말했다.“일단 식사부터 하자.”요리는 꽤 괜찮았다. 재료는 신선했고, 요리사의 솜씨도 뛰어났지만 유진은 많이 먹지 않았다.레스토랑 내부는 품격 있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천장에는 중식 스타일의 조각된 펜던트 조명이 달려 있어 분위기를 한층 살려주었고, 그 아래에서 구은정의 이목구비는 더욱 짙어 보였다.은정은 유진을
유진이 요즘 운동을 안 해서 걷고 싶다고 하자, 구은정은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임유진이 중식을 먹고 싶다고 말했고, 마침 한 블록 건너편에 중식 전문점이 있어 두 사람은 걸어서 향했다.하늘은 이미 어둑해졌고, 저녁 시간대라 거리는 번화했다. 네온사인은 반짝이고, 도로 위는 차량과 인파로 북적였다.식당이 거의 다 왔을 무렵, 유진은 길 건너편에서 이벤트 중인 디저트 가게를 발견했다.가게 앞에는 커다란 케이크 조명 간판이 환히 밝혀져 있었고, 예쁘고 유혹적인 분위기였다.유진은 발걸음을 멈추고 맞은편을 바라보며 물었다.“전에 삼촌이 주문해 줬던 타로 크림 롤, 여기 거예요? 맛 괜찮았어요.”은정은 곧장 눈치를 채며 말했다.“내가 다녀올게.”이에 유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고마워요, 삼촌!”은정은 말없이 길을 건너 디저트 가게로 향했고, 유진은 그 자리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5, 6분쯤 지났을까? 은정은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여러 명의 사람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중이었다.키 크고 잘생긴 그는, 냉철한 분위기와 독특한 존재감으로 복잡한 인파 속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이 은정을 향해 자연스레 쏠렸다.번화하고 소란스러운 거리, 은정이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나와, 손에 디저트를 들고 자신에게 곧장 다가오는 모습은 어딘지 낯익고 익숙했다.유진은 잠깐,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느꼈다. 유진의 앞으로 다가온 은정은 타로 롤케이크를 그녀에게 곧바로 건네지 않았다.“식당 가서 먹자.”그 말에 유진은 기분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좋아요!”식당에 도착해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고, 유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여기 새로 생긴 식당인가 봐요.”“마음에 들면 자주 오자.”은정의 말에 유진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나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할머니께 한 달만 따로 살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 시간이 거의 다 됐고요.”은정은 순간 멍해졌고, 낮은 목소리로
정현준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가끔은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구씨그룹 나름대로 고려가 있겠죠.”그의 말은 겉도는 이야기뿐, 전혀 실질적인 조언은 없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현준의 말에서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계속 의견을 나눴고, 두 사람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꽤 길게 대화를 이어갔다.곽시양의 책상은 유진의 사무실 맞은편에 있어, 현준이 유진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다.현준은 나올 때, 어딘지 모르게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시양은 직감했다. 현준은 틀림없이 유진에게 소혜를 추천하고 나왔을 것이다.소혜는 부서 신입 중에서도 능력과 학력이 가장 두드러졌고, 현준의 밀어주기가 더해진다면 부팀장 자리는 거의 따놓은 당상일 수 있었다.시양은 생각에 잠긴 듯 눈빛을 번득이며 조용히 자료를 정리했다.유진은 평소처럼 정시에 퇴근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익명의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팀장님, 보고드릴 게 하나 있어요. 구씨 그룹이 우리와 협력하지 않기로 한 건, 담당자인 최이석 부장이 유지그룹 쪽과 친분이 있어서예요.][이미 프로젝트는 유지그룹에 넘기기로 결정됐어요. 진소혜 씨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팀장님께 알리지 않았고요.][팀장님이 실패하게 만들고, 직원들 앞에서 망신 주기 위해서요.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는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팀장님에게 떠넘긴 거예요.][자기는 책임 피하고, 팀장님을 함정에 빠지게 했죠. 이 모든 게 그 사람의 계략이에요.]유진은 메시지를 다 읽고 나서 눈을 반짝이며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은 쪽은 장난기 어린 여자 목소리였다.“삼촌,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전화를 끊은 유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옷을 갈아입고는 옆집으로 향했다. 문은 닫히지 않고 반쯤 열려 있었고, 유진은 별다른 예고 없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구은정은 서재에서 전화를 받는 듯했고, 유진은 소파에 앉아 애옹이를 쓰다듬으며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몇 분 후, 유진의 휴대폰에
정현준이 어색하게 분위기를 풀며 말했다.“소혜 씨는 원래 목표를 정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자세는 우리가 본받을 만하죠.”그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팀장님,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팀장님도 부담스럽다면, 우리 영업팀 쪽이랑 다시 얘기해 볼까요? 그쪽도 이제 이 프로젝트 포기하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요.”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자료를 보고 있었다. 소혜의 도발 섞인 말투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감정 기복 없이 차분했다. 속마음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오히려 상대가 당황할 정도였다.자료를 대략 훑고 나서야, 유진은 마음을 정리한 듯 고개를 들었다.“굳이 물어볼 필요 없어요. 소혜 씨의 기획서 봤는데 문제없더라고요. 이 프로젝트, 제가 직접 구씨그룹과 협의하죠.”소혜의 입가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 소혜는 구씨 그룹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부서와 이미 친분을 쌓아두었고, 사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내부적으로 다른 회사와 협력하기로 내정된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결코 우리 쪽으로 넘어올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유진이 이 프로젝트를 맡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그래야 결국 성과를 못 내고 망신을 당하게 되니까.계획이 잘 흘러가자, 소혜는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역시 팀장님답네요.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이번 프로젝트 꼭 함께 성공시켜요.”유진은 차분히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래요, 잘 부탁해요.”이후 이틀 동안, 유진은 구씨그룹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전화를 수차례 걸었다. 하지만 매번 비서가 전화를 받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면담은 번번이 거절당했다.유진 측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자, 소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조만간 유진이 자진해서 포기할 거라고 믿었고, 그렇게 되면 팀 내에서의 리더십도 자연히 무너지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소혜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유진은 능력으로 올라온 게 아니라, 인맥으로 자리를 꿰찼다는 걸 모두에게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 그리고 유진을 꼭
“아니에요, 그냥 오해일 수도 있어요.”유진이 말했다.“만약 방연하가 아직 나를 좋아한다면, 내가 다시 한번 만나서 말할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라고 직접 말할 거야.”구은정의 말에, 유진은 순간 멍해졌다. 눈가가 살짝 붉어졌고, 부드러운 얼굴은 더더욱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누가 말하래요?”그날 서로 솔직하게 얘기한 이후, 며칠 동안 두 사람의 분위기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그런데 은정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니, 오히려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몰랐다.은정은 말했다.“솔직히 말해도 안 되는 거야?”유진은 표정을 다잡고, 진지하게 말했다.“나랑은 상관없어요. 연하 안 좋아하면 분명하게 말해요. 괜히 질질 끌지 말고요.”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그런 사람이야?”유진은 고개를 숙였다. 효성은 분명 오해하고 있었다. 이 일은 셋이 제대로 마주 앉아 솔직하게 풀어야 할 것 같았다.그때 은정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집에도 안 들르고, 옷도 안 갈아입고 그냥 온 거야? 이거 물어보려고?”“그럼 뭐겠어요?”유진이 코웃음을 치자, 은정은 검은 눈동자를 고정시키며,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난 네가 날 보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유진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마치 연하처럼 화난 척하며 외쳤다.“아니, 삼촌 진짜 안 끝낼 거예요? 계속 이러면, 나 진짜 다시는 안 올 거예요!”은정은 입가를 살짝 풀며, 한발 물러나는 어조로 말했다.“알겠어. 최대한 자제할게.”유진은 그의 웃음소리에 더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애옹이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말했다.“나 갈래요!”“수업은 안 해?”은정이 묻자, 유진은 어딘가 토라진 말투로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안 해요!”은정은 유진을 배웅하며 문 앞까지 나갔다. 하지만 유진은 등을 돌린 채 문을 닫아버렸고,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려보지 않았다.은정은 무의식적으로 혀끝으로 어금니
연하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유진아, 너랑 효성이랑 둘이 쇼핑하러 가. 난 회사에 잠깐 다녀와야 해.”유진은 당황한 듯 물었다.“무슨 일 있어?”“상사가 방금 전화해서 오라고 하셨어.”연하가 말하자, 임유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그럼 얼른 다녀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우리한테 연락해.”연하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그때 갑자기 장효성이 말을 받았다.“정말 가식적이야.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나오네! 유진아, 그렇게 마음 쓰지 마. 쟤는 애초에 네 도움 필요 없어. 괜히 네 손으로 호랑이 새끼 키우지 마.”연하는 끝까지 참다가, 결국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효성을 노려보았다.“장효성, 너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오히려 효성은 침착하게 받아쳤다. “내가 틀린 말 했어? 난 네가 전화 받는 소리 못 들었거든.”연하의 얼굴빛이 굳어졌다. 애초에 임유진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효성이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예의 하나 없이 공격해 온 것이다.유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조용히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둘 다 왜 이래?”그때 옆자리 손님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을 본 연하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여기서 싸울 자리는 아니잖아. 나중에 어디 조용한 데서 얘기하자.”“난 딱히 할 말 없어. 그냥 갈래.”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었고 떠나기 전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진아, 남의 남자 훔치는 거에 익숙해진 사람은, 친구 남자친구도 똑같이 건드려. 너도 조심해.”그 말을 끝으로 효성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유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이내 연하를 바라보며 물었다.“효성이, 무슨 말이야?”유진은 효성이 말한 그 사람이 혹시 구은정을 말하는 게 아닐지 생각했다. 그러나 연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효성이가 괜히 오해한 거야. 난 네게 부끄러운 행동한 적 없어.유진아, 나 믿어?”유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믿지.”“
두 사람이 막 자리에 앉았을 무렵, 연하가 도착했다. 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길, 자신은 주차할 곳을 찾는 중이니 먼저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장효성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아, 연하까지 부른 거야? 미리 말 좀 해주지.”유진은 웃으며 말했다.“단톡방에 말했는데? 못 봤어?”사실 그날 일 이후, 효성은 연하를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마음먹었고, 셋이 있는 단체 채팅방 알림도 꺼둔 상태였다. 예전에 유진이 왜 채팅방에서 말을 안 하느냐고 물었을 때도, 그냥 일이 바쁘다고 둘러댔을 뿐이었다.이에 효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못 봤네, 정신이 없어서.”곧 연하가 들어왔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유진아, 효성아!”효성은 메뉴판을 보는 척하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연하가 다가오는 순간, 옆자리에 자기 가방을 일부러 내려놓았다.연하는 그 행동을 눈치채고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유진의 옆자리에 앉았다.유진은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길 막혔어?”“아니, 우리 대학 때 자주 가던 케이크 가게 들렀거든. 거기서 디저트 몇 개 샀어.”연하는 말하며 가방에서 디저트 상자를 꺼내 효성의 쪽으로 내밀었다.“효성이, 네가 제일 좋아하던 두리안 파이야.”연하의 화해 제스처는 분명했다. 하지만 효성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괜찮아. 요즘은 그런 냄새 나는 거 싫어해서.”연하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유진은 아직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서 그저 웃으며 물었다.“예전엔 냄새나도 잘만 먹더니, 입맛 바뀐 거야?”효성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임유진을 보며 말했다.“그러게. 예전엔 냄새나는 것도 참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보기만 해도 역겨워.”탁. 연하는 파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입을 열면서는 또다시 화를 억누르고 부드럽게 말했다.“예전에 좋아했다는 건, 그만큼 취향이 맞았다는 뜻이지. 왜 그렇게까지 싫은 티를 내?”효성의 얼굴이
컵 안에는 짙은 갈색의 한약이 담겨 있었고, 향이 진하게 퍼졌다.연하는 소파 위에서 다리를 접고 앉아, 약을 작은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진구는 옆에서 얇은 담요를 가져와 연하의 다리 위에 덮어주며 말했다.“아까 약 달이는 동안 검색해 봤는데, 여자들은 생리 중에 몸이 차가워지면 안 되고, 술 마시는 건 더더욱 안 된대. 너, 진짜 목숨 걸었구나?”연하는 창백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약을 마신 덕분인지 한결 나아졌고, 정신도 조금 돌아온 연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선배, 의외로 따뜻한 남자였네요? 사실 유진이가 선배랑 사귀었어도 꽤 행복했을 것 같아.”진구는 코웃음을 쳤다.“이제야 알아봤어? 지금이라도 후회돼서 도와주고 싶은 거 아냐?”연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사람 마음이라는 게, 내가 유진이랑 아무리 친해도 대신 선택해 줄 순 없어요.”“알아.”진구는 소파에 앉으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서, 나 이번에 유진이한테 고백할 생각이야.”그 말에 연하는 조금 놀랐다.“결심했어?”사실 진구는 그동안 줄곧 망설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진이가 서인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입도 못 뗐고, 나중에 서인을 잊은 후에는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유진이가 자신을 다시 좋아해 주길 바랐다.요즘 유진이와 구은정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는 다시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고백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연하는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약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물었다.“결과는 생각해 봤어요?”진구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유진이가 받아준다면야 좋겠지만, 거절당한다면 아마 친구 사이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특히나 유진이가 지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자신이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 부담스러워서 사표라도 내는 건 아닐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