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인차 대답했다."여자예요." 구택의 목소리는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그럼 문제없어요. 소희 씨 맘대로 하면 돼요."소희는 가슴이 갑자기 두근거렸지만 아무 일 없는 듯이 계속 말했다."그녀가 떠나면 나도 바로 이사 갈게요."구택은 한순간 침묵하다 얇은 입술을 가볍게 열었다."이번 달 집세 다 냈으니 월말까지 있어도 돼요."소희는 눈을 떨구며 말을 하지 않았다.차가 멈추자 소희는 일어날 때 잠시 멈칫하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오늘 일, 고마웠어요."그의 태도가 어떻든 그는 확실히 그녀를 도왔다.구택은 그녀를 보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이 일은 내가 있으니 소희 씨는 아무것도 상관할 필요가 없어요."소희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을 맴돌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구택은 소희의 뒷모습을 보며 담담하게 명우에게 분부했다."강성의 모든 경찰서한테 말해 둬. 앞으로 소희 씨가 무슨 일 생겨서 경찰서에 가면 직접 나한테 전화하라고."명우는 눈빛을 반짝이며 즉시 대답했다. "예."소희가 대문에 들어서자 구택은 고개를 돌려 말했다."가지!"집에 돌아왔을 때 이미 저녁이었지만 청아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소희는 샤워를 하고 베란다 소파에 앉아 석양을 보며 잠시 멍 때리다 책을 손에 쥐었다.귓가에 또 남자의 그 말이 생각났다."내가 있으니 소희 씨는 아무것도 상관할 필요가 없어요."그녀는 초조하게 책을 번졌다. 그들은 이미 끝났는데 그는 왜 그녀를 지켜주는 것일까?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그녀는 책이 머리로 들어가지 않아 아예 핸드폰을 들고 스도쿠를 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숫자를 쳐다보며 계속 멍을 때렸다.강성에 온 이후, 그녀는 오랜만에 이렇게 마음이 들썩였다.다음날 아침, 소희는 장풍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매우 다급했다."소희 씨, 뉴스 봤어요?"소희는 멍해졌다."무슨 뉴스요?""핸드폰 켜보면 지금 모두 그 유리에 관한 소식일걸요. 어떤 사
그녀는 검색어 1위에 올라갔지만 앞으로 더는 대중 앞에 나타날 수가 없었다.전화 너머로 장풍은 격동되며 물었다."소희 씨 둘째 삼촌은 뭐 하시는 사람이에요?"소희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말이죠?"장풍은 웃으며 말했다."어제 오후에 백예 그룹으로 돌아가 우리의 물건을 찾으려고 했는데, 경비원이 나를 가로막으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거든요. 사장님이 매우 화가 나서 우리더러 모든 손실을 배상하라고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고소할 것이라고 했어요. 근데 하룻밤이 지나자 내 친구가 전화로 나보고 회사에 가보라고 했는데 글쎄 그들 사장님이 직접 회사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태도도 얼마나 좋은지. 우리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면서 또 전의 그림 그리는 보수도 정신적 보상까지 더해서 두 배로 올려줬어요."그는 신기해하며 웃었다."우리 부모님께선 이 일을 모르고 계셨으니 틀림없이 소희 씨의 둘째 삼촌이 도와주셨겠죠? 그리고 유리의 인성 논란 사건이 폭로된 것도 틀림없이 소희 씨 둘째 삼촌이 한 것일 거고요. 정말 대단하시네요!"소희는 고개를 숙이며 눈빛은 반짝였다."어떤 사람들은 너무 과분했으니 벌받을 때가 된 거죠.""어쨌든 소희 씨 둘째 삼촌의 공로가 커요. 나 대신 그에게 고맙다고 전해줘요." 장풍은 밝게 웃었다."아 맞다, 백예 그룹 사장님이 우리에게 400만 원 주셨어요. 반으로 나누기로 했으니까 이따가 내가 입금해 줄게요. 만약 괜찮다면 소희 씨한테 저녁 사주고 싶은데, 둘째 삼촌도 불러서 같이 먹어요."소희는 담담하게 웃었다."다음에 같이 먹어요. 난 오늘 친구한테 밥 사주기로 했거든요. 게다가 우리, 둘째 삼촌도 저녁에 일이 있어서요.""그럼 소희 씨와 소희 씨 친구 밥 사줄게요. 나중에 시간 되면 다시 둘째 삼촌 청하고요!" 장풍은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한마디 덧붙였다."그럼 이렇게 해요, 이따 저녁에 봐요!"그리고 그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소희가 나갔을 때 청아는 아침밥을 차리고 있었다."빨리 와서 먹어, 네가
장풍은 소희의 뒤에서 달려왔다."들어가요!"레스토랑 문 앞에서 구택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한 번 보더니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소희는 전에 장풍이 전화에서 한 말들을 떠올리며 구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그저 그가 그녀를 싸늘하게 대할까 봐 두려웠다.장풍은 이미 곁으로 다가왔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들어가요!"장풍은 미리 예약을 했기에 세 사람이 룸에 들어가자 웨이터가 들어와서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위층 룸 안, 구택은 창문 앞에 서있었다. 시원은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방금 그 여자애 옆에 있던 남자는 그녀의 동창이야, 남친이야?"그는 방금 구택의 시선을 따라 보며 먼저 청아를 본 후에야 소희를 보았다. 그녀들이 친구일 줄은 몰랐기에 그는 다소 놀랐다.그 남자가 달려왔을 때, 그는 구택의 안색이 분명 조금 가라앉은 것을 느꼈다.구택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 돌아서서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았다.서로를 잘 아는 친구들이 모였기에 그들은 구택의 입맛을 알고 이미 그를 대신해서 주문했다. 그리고 그가 앉은 것을 보고 즉시 그에게 오늘은 무슨 술을 마시느냐고 물었다.구택이 채 말을 하지 않을 때 시원이 먼저 대답했다."어느 술의 맛이 시큼하지?"다른 사람은 그가 무슨 뜻인지 모르고 진지하게 대답했다."시큼한 거? 구택 형 오늘 입맛 바꿨어?"시원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그래, 식초를 좀 넣는 게 좋겠어!"구택은 차갑게 그를 쳐다보았다."죽고 싶어?"시원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누가 너더러 들어올 때부터 인상 쓰래? 사람들 오해한다고."구택은 담배 한 대를 들고 불을 붙이며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시원은 다가와 작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그냥 갖고 논다는 사람이 왜 진지하고 난리야?"구택은 담배 한 모금 빨며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누가 진지했다는 거야?""그럼 왜 화를 내는 건데?"구택은 그를 힐끗 쳐다보며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아직 다 갖고 놀지 못했으니까?"시원은
구택은 손에 든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고 두 다리를 겹쳐 놓으며 온화하고 고귀했다."친구들과의 약속이라 거절하기 어려워서. 다음에 소희 불러서 내가 밥 살게."장풍은 인차 말했다."그건 말이 안 되죠. 이번에 우리를 이렇게 크게 도와주셨는데, 제가 사야죠!""사양할 필요 없어!" 구택은 해맑게 웃는 남자를 보고 물었다."소희와 같은 반인가?"장풍은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요, 저는 외국어과에요."구택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소희를 좋아하나?"장풍은 멈칫하더니 즉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오해를 하시는 거 같은데 소희 씨는 아주 좋은 사람이고 각 방면에서 모두 우수하지만, 저희는 단지 보통 친구입니다!""그럼 소희는?" 구택이 물었다.장풍은 웃으며 말했다."제 생각에 그녀도 나를 동창으로만 여길걸요."구택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녀의 부모님은 지금 강성에 없기 때문에 그녀를 나한테 맡긴 거야. 전부터 그녀가 대학에서 연애하는 것을 반대했기에 내가 이렇게 대신해서 물어보는 거고."장풍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안심하세요. 우리는 어떤 애매한 관계도 없어요."구택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그럼 됐어! 소희는 지금 학생과 같이 식사하고 있지? 먼저 가봐, 그녀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그럼 이만 가볼게요!" 장풍은 일어섰다."소희한테 나 봤다고 말하지 말고." 구택은 담담하게 말했다."알겠어요!" 장풍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둘째 삼촌, 안녕히 계세요!""그래!" 구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장풍이 떠나자 구택은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로 향하며 3층으로 올라갔다.장풍은 룸 안으로 돌아와 구택을 만난 일을 언급하지 않고 전의 화제를 계속하며 두 사람과 얘기를 나누었다.그들은 아주 즐겁게 식사를 했다. 장풍이 계산하러 갈 때 웨이터는 이미 다른 사람이 그들을 대신해서 계산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잠시 놀라다 곧 그 사람이 바로 구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소희
소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 미션 리스트의 독수리 날개가 검은색이었기에 그녀는 선택할 여지없이 반드시 이번 미션을 받아야만 했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미션 리스트를 열고 자세히 보았다."보스, 무슨 미션이에요?" 푸른 독수리가 물었다.하얀 독수리는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어쩜 이번에 나보다 더 궁금해하는 거예요!"푸른 독수리는 옆의 하얀 독수리를 향해 공격을 했고 하얀 독수리는 머리에서 별 몇 개가 튀어나오더니 펑 하고 쓰러졌다.하얀 독수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런! 이게 가능한 거예요? 어떻게 한 거죠?"푸른 독수리는 그저 눈을 부라렸다.소희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번 미션은 나 혼자 하면 돼요!""네?" 하얀 독수리는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스가 직접 하시겠다고요?"푸른 독수리는 곧게 서 있었다. "위에서 준 미션이에요?"소희는 응답하며 핸드폰에 있는 글과 사진을 쳐다보았다.하얀 독수리는 약간 흥분했다."나는 보스와 함께 미션을 수행할 것을 신청합니다!""지금은 그럴 필요 없어요!"소희가 담담하게 말했다."도움이 필요할 때 너희들에게 알려줄게요."하얀 독수리는 애교를 부리며 흥얼거렸다."보스, 설마 우리한테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겠죠? 두려워하지 마요, 보스는 늙고 못생겨도 영원한 나의 보스예요!"세 사람은 모두 음성을 특별히 처리했고 서로 본 적이 없었으니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신분인지도 몰랐다.하얀 독수리가 말을 마치자 소희는 미처 대답하지 못하고 푸른 독수리가 싸늘하게 말했다."보스는 네가 늙고 못생길까 봐 두려운 거예요. 그럼 앞으로 더 이상 함께 놀 수 없으니까요!"하얀 독수리는 침을 뱉으며 말했다."당신 지금 당장 나와서 우리 한 번 만나봐요!"푸른 독수리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소희의 말투는 평소와 같았다."일 있으면 내가 도움을 청할 거예요!"말을 마치며 그녀는 로그 아웃했다.소희가 방문을 열고 나가자 청아가 물었다."무슨 일
소희는 웃으며 말했다."너 성적 나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만약 네가 시험을 잘 보지 못했다면 나도 다시 올 면목이 없지."유민은 콧방귀를 뀌었다."이건 걱정할 필요가 없어. 절대로 샘 망신시키지 않을 거야!""너만 믿는다!" 소희는 자신의 백팩을 메고 계속 말했다."내가 과외하러 오지 않아도 우리 매일 게임할 수 있어."유민은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이야?"소희는 고개를 돌렸다."별 뜻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유민은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기말고사 끝나면 우리 함께 말 타러 가자."소희는 잠시 생각했다."이번 과외 마치면 나도 다른 일 찾아야 해서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어. 나중에 카카오톡으로 연락하자.""샘 정말 바쁘네!" 유민은 입을 삐죽거렸다."어쩔 수 없지, 나도 돈 벌어야 하니까!" 소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갈게, 너 시험 잘 보고!""알았어!" 유민은 살짝 짜증을 냈다.소희는 웃으며 몸을 돌아섰다.저녁에 구택이 돌아왔을 때 집사는 그에게 말했다."오늘 소희 선생님이 이번이 마지막 수업이라고 해서 과외 비용 전부 결산해 줬습니다. 한 달 치 월급으로요."구택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녀가 그만뒀다고요?"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소희 선생님은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고 여름방학 끝나면 도련님에게 수업해 드릴 시간이 없을 거 같다고 하시면서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먼저 도련님한테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고요."구택의 눈빛에는 어두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얇은 입술은 꼭 오므리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위층으로 올라가며 구택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그는 바로 물었다."그만둔다고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요?"소희는 그가 직접 전화를 걸어 질문할 줄은 몰라 잠시 멍하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집사 아저씨한테 말씀드렸는데요."구택이 물었다."누가 소희 씨를 고용했죠?"소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구택은 바깥의 어두
소희가 찾은 일은 케이슬에서 서빙하는 일이었다. 예쁘게 생겼기 때문에 그녀는 출근하자마자 8층 VIP 룸에 가서 손님들에게 술을 가져다주는 일을 맡았다.이틀 동안 트레이닝을 받은 뒤 그녀는 정식으로 출근했다.8층의 조장 진수미는 그녀가 출근하는 첫날에 그녀를 데리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알게 했다.8층에는 모두 5개의 VIP 룸이 있었기에 5명의 서빙을 배치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케이슬에서 1년 넘게 일하고서야 8층까지 왔지만 소희는 오자마자 이곳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보는 눈빛이 모두 좀 이상했다.조장 진수미는 30대에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고 정교한 메이크업에 일 처리가 깔끔했다. 그녀는 소희에게 당부했다."8층 5개 VIP 룸 중 8801과 8809는 고정된 손님이 있어. 평소에 그들이 오지 않아도 다른 손님을 들여보내선 안 돼. 다른 주의사항은 네가 트레이닝할 때 이미 배웠으니까 더는 말 안 할게. 그리고 이거 알아둬, 8층에 올 수 있는 손님들은 모두 가장 존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그들한테 미움을 사서는 안 돼."소희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소희 넌 오늘 연설화랑 8807호 룸 맡아. 모르는 게 있으면 설화한테 물어보고." 수미는 설화에게 말했다."소희는 새로 왔으니 네가 먼저 데리고 잘 가르쳐 줘!"옆에 손시월이라는 사람이 바로 불만스러워하며 말했다."8807은 줄곧 내가 책임졌던 룸인데 왜 소희로 바꾸는 거예요?"수미는 담담하게 말했다."인원 변동은 자주 있는 일 아닌가!"시월은 소희를 힐끗 쳐다보더니 어두운 얼굴로 말을 하지 않았다.수미가 나간 후, 모두들 각자의 룸을 체크하러 갔다.시월 등 몇 사람은 체크한 뒤 먼저 휴게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옷장을 열자 안에 못 보던 운동복 상의가 하나 있는것을 보고 일부러 물었다."이건 누구의 옷이야?"휴게실 안의 옷장은 다들 같이 쓰는 거라 그녀들은 소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시월은 치마를 꺼내면서 비웃었다."이거 어
그쪽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시월의 목소리는 더욱 간드러졌다."오늘 우리 여기에 신인이 왔거든요. 근데 오자마자 날 괴롭힌 거 있죠? 게다가 내가 맡은 룸까지 빼앗았어요. 도련님이 좀 도와줘요!"전화 너머의 남자는 마치 그녀를 달래는 것 같았다. 시월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아양을 떨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이따가 도련님이 그녀를 잘 훈계해 주시면 나도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요!""그래요, 이따가 내가 술 따라드릴게요, bye!"전화를 끊자 시월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파우더를 꺼내 화장을 고쳤다.소희는 설화와 먼저 술을 가지러 간 다음 8807로 갔다.문을 두드린 후 설화는 소희의 손에서 술을 받고 순간 달콤한 웃음을 지었다.인테리어가 화려한 룸 안에는 따뜻한 노란색 등이 켜져 있었는데 대략 10여 명이 있었고 그중 4명은 오락 구역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고 소파에는 대여섯 명이 앉아 있었으며 휴식 구역에도 4~5명이 앉아 있었다.설화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 무릎을 꿇고 웃으며 물었다."임경훈 도련님, 술 열어드릴까요?"임경훈이라 불리는 사람은 품에 호스티스를 껴안고 낮은 소리로 웃고 있었다. 설화의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녀 뒤에 있는 소희를 한눈에 보고는 일부러 물었다."신인 왔어?"설화는 즉시 웃으며 말했다."네, 오늘 금방 온 신인이에요.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도련님께서도 너그럽게 봐주세요."그는 소희에게 손을 흔들었다."이리 와봐, 내가 한 번 보자!"소희는 다가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뭘 도와드릴까요?"그는 소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테이블을 힐끗 쳐다보며 미적지근하게 말했다."담뱃불 좀 붙여줘!"소희는 담배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고 라이터를 들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여 불을 붙였다.그는 소희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다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고 웃는 듯 마는 듯했다."몰라도 너무 모르네. 담배에 불을 이렇게 붙이는 거야?"주위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리며 그들을 쳐다보았다.설화는 소희가
연하는 재빨리 따라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효성의 팔을 붙잡았다.“효성아, 너 오해한 거야!”하지만 효성은 연하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 보여. 너 전에 나한테 선배 가까이하지 말라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 난 그게 임유진을 위한 줄 알았는데, 결국 너 자신이 가로채려고 그런 거였네!”“연하야, 난 예전부터 네가 마음에 안들었어. 자존심도 없고, 자기 몸도 함부로 굴리고, 남자만 보면 달려드는 꼴, 진짜 더러워!”“근데 설마 유진이 좋아하던 남자까지 너랑 자게 만들 줄은 몰랐네. 정말 역겹다!”효성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차가운 눈빛으로 연하를 마지막으로 쏘아보며 말했다.“앞으로 난 너 같은 친구 없어.”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마지막 틈새에서, 효성의 혐오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연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손끝까지 시린 듯,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여진구가 다가와 인상을 깊이 찌푸렸다.“내가 효성이한테 전화해서 설명할게.”연하는 핏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필요 없으니까 이제 가요. 나도 출근해야 해요.”“이 상태로 무슨 출근이야?”진구는 걱정스럽게 말하자, 연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나를 너무 얕보지 마요. 하늘이 무너져도 난 일하러 가야 해요. 누가 뭐래도, 돈 버는 건 멈출 수 없으니까요.”진구는 연하 집 안으로 들어가 자기 재킷을 집었다.“혹시라도 얘기하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해. 그리고 정말 미안해.”“말했잖아요, 선배 잘못 아니에요. 아마 우리 사이엔 이미 오래전부터 금이 가 있었을 거예요.”연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효성이 성격 알잖아요. 입은 독하지만 마음은 여려요. 며칠만 지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올 거예요. 우리 예전에도 자주 싸웠거든요.”진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럼 난 간다.”“잘 가요.”연하는 문 앞까지 배웅한 뒤, 힘없이 거실로
앞으로 어떤 더 큰 프로젝트가 나타나든, 더 큰 유혹이 있든, 과연 계약을 따내기 위해 몸까지 내줄 수 있겠는가?그래서, 애초부터 한 발짝도 물러서선 안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기준선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진구는 연하의 맥주 캔과 자신의 것을 부딪치며 말했다.“그래야지, 그게 맞는 거야.”연하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물었다.“담배 피워도 돼요?”이에 진구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담배 피우는구나?”연하는 고개를 끄덕였다.“피곤할 때 한 대 피우는 게 습관이에요.”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연하는, 연기를 내뿜으며 당당하고도 시원한 기운을 풍겼다.“하루 종일 일 마치고, 이렇게 늦은 밤에 바람 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이 시간이 제일 편안해요.”진구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담배 너무 자주 피우지 마. 특히 여자한텐 더 안 좋아.”“그래요.”연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런 말은 수도 없이 들어온 터라, 더는 마음에 닿지도 않았고, 굳이 반박할 필요도 없었다.맥주를 다 마신 연하는 다시 일어나 술을 가져왔다. 두 사람은 이야기꽃이 피었고, 바닥엔 텅 빈 캔들이 하나둘 늘어갔다.시간은 어느덧 새벽을 넘었고, 방연하는 머리를 짚으며 일어났다.“이제 정말 못 버티겠어요. 선배가 날 구해준 건 고맙지만, 내 목숨까지 줄 수는 없어요. 난 이만 자러 갈 테니까. 나갈 땐 문 좀 잘 닫고 가요. 고마워요.”연하는 휘청이며 안방으로 향했고, 진구는 맥주 캔의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기며 말했다.“잘 자.”“잘 자요.”연하는 흐릿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안방 문을 닫아버렸다.다음 날 아침.연하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숙취로 머리가 아파 지끈지끈했고, 눈도 제대로 안 뜨인 채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거실로 나왔다.“누구야?”‘아침부터 문을 두드리다니.’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연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거의 주저앉을 뻔한 그녀는 거실 소파 위에 누워 있는 진구를 보고 소리쳤다.“선배
호텔 직원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도착했을 때 김문혁의 상처를 확인하고 증거를 채집한 뒤 병원으로 이송시켰다.“누가 때린 거죠?”경찰이 묻자, 연하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제가 때렸어요. 그 사람이 저한테 성추행하려고 해서, 저항하다가 술병으로 머리를 쳤어요.”연하는 말을 마치고, 목에 난 멍 자국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여진구가 연하의 팔을 끌어당겨 자신의 등 뒤에 감싸 안으며, 또렷한 얼굴에 냉철한 기색을 띠고 말했다.“제가 때렸어요.”연하는 진구를 말리려 했지만, 진구는 그녀의 팔을 단단히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경찰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들것에 실려 나가는 김문혁도 흘끗 본 뒤, 상황을 대략 파악하고는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일단 경찰서로 같이 가시죠. 진술이 필요해서요.”거의 자정 무렵, 진구와 연하는 함께 경찰서를 나섰다. 김문혁이 연하를 성추행하려다 폭력을 가한 사실과, 진구의 행동이 정당방위였다는 점, 룸 안의 CCTV와 다른 사람들의 진술까지 확인된 덕분에 두 사람 모두 별다른 처벌은 받지 않았다.서늘한 밤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연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진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정말 고마워요.”진구는 재킷을 어깨에 걸친 채 가볍게 웃었다.“다음에 만나면 모르는 척 말고 오빠라고 한 번 불러. 그걸로 충분해.”연하는 코웃음 쳤다.“분명히 선배가 먼저 삐진 거잖아요.”진구는 비웃었다.“너, 정말 남자 앞에서 의리도 잊는 스타일 아니야?”연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내가 만약 남자에 눈이 멀었으면, 선배랑 임유진을 맺어주고 나는 구은정을 쫓아다녔겠죠. 내가 이런 짓까지 한 건 다 유진이를 위한 거예요.”“선배도 유진이를 위한다면, 유진의 기억을 되찾게 도와주고, 구은정이랑 다시 이어주는 게 맞지 않아?”진구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넌 구은정이 예전에 유진이한테 뭘 했는지 몰라서 그래! 자기 손으로 밀어내 놓고, 지금 와서 되돌리라고? 말도 안 돼
두 달 전, 김문혁의 아내가 그가 애인을 숨겨둔 사실을 들켜, 여자를 찾아가 얼굴을 긁어버린 일이 한동안 시끄럽게 퍼졌었다.방연하는 이 일을 이용해 김문혁을 견제하려 했지만,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우리 마누라가 감히 연하 씨 얼굴을 긁기라도 하면, 바로 쫓아낼게. 오빠가 든든히 지켜줄 건데, 뭐가 무서워?”‘이게 사람이 할 말인가?’짐승보다도 못한 놈이었고, 짐승도 이 사람보단 염치가 있을 거다.연하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얼굴엔 여전히 웃음을 띠며 말했다.“사장님은 든든하시겠지만, 저는 감히 사모님을 도발할 용기가 없어요. 이렇게 하죠. 진심을 담아 석 잔 마실게요. 그 정도면 괜찮으시죠?”김문혁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가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내 소원은 러브샷 한잔하는 거예요. 연하 씨가 내 소원 들어주면, 나도 연하 씨 소원 들어줄게요.”장연구는 초조하게 상황을 정리하려다 연하에게 말했다.“연하 씨, 그렇게 까탈 부리지 마요. 김문혁 사장님이 연하 씨를 여동생처럼 아끼시는 거 몰라요?”“술 한잔한다고 뭐가 어때서요? 마시기만 하면, 바로 서명하신다잖아요.”연하는 속으로 장연구를 향해 이를 갈았다. 이익에 눈이 멀어 사람 인격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임을 직감한 방연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고 말했다.“그러면 사장님, 말한 대로 해주셔야 해요.”김문혁은 흥분한 얼굴로 몸을 기울였고, 한 팔을 연하의 뒤통수 너머로 뻗으며 억지로 그녀를 끌어안으려 했다.진구는 옆 사람과 대화 중이었다가, 그 장면을 보고 고개를 돌려 연하와 김문혁이 러브샷을 하려는 걸 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명확한 혐오가 스쳤다.‘다른 사람들을 훈계할 땐 그토록 당당하더니, 자기 일이 되니 결국 돈 때문에 뭐든 하는구나.’연하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살짝 돌리며 김문혁에게서 멀어지려 했지만, 아무리 피해도 상대가 악의를 품으면 피해 갈 수 없었다.술을 마시는 순간, 김문혁은 고개를 기울이며 연하
연하는 더욱 부드럽고 정중한 미소를 지었다.“사장님, 농담도 참 잘하시네요.”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욕이 나왔다.‘진짜 속 좁아! 그때 그냥 진실 좀 말했다고 아직도 이러는 거야? 유치하게.’하지만 오늘 같은 자리에서는 얌전히 얼굴 세워주기로 했다. 여진구가 아니라, 자리를 위해 참는 거였다.김문혁이 연하를 불렀다.“연하 씨, 여기 옆자리 비워놨어요. 이리 와요.”마침 김문혁 사장 옆자리가 비어 있었고, 마치 일부러 그녀를 위해 비워둔 것 같았다. 연하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가가 느긋하게 앉았다.김문혁은 연하의 쇄골이 드러난 드레스를 힐끔 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연하 씨 오늘 정말 예쁘게 입었네요. 평소엔 늘 정장만 입어서 그 아름다움이 다 가려졌던 것 같아요.”연하는 살짝 웃었다.“오늘 김문혁 사장님 뵌다고 해서 특별히 옷 갈아입었죠.”진구는 그연하 얼굴에 떠오른 영업용 미소를 힐끔 보고, 저 미소가 왜 그리 위선적으로 느껴지는지 불쾌했다.김문혁 사장은 계속해서 말했다.“주말에 불러내서 미안하긴 한데, 연하 씨는 괜찮죠?”연하는 웃으며 대답했다.“주말에 사장님을 뵐 수 있다니, 오히려 더 기뻐요.”김문혁은 더욱 흐뭇하게 웃었다.“연하 씨, 정말 기분 좋게 말씀하시네요. 이 한 잔, 연하 씨께 드릴게요.”연하는 깔끔하게 한 잔을 들이켰다. 그녀가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마시는 걸 본 김문혁은, 연하가 체면을 세워준 걸 느끼며 만족해했고 더 이상 부담을 주지 않았다.술자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연하는 대강 상황을 파악했다. 김문혁은 진구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고, 장연구가 진구와 가까운 부사장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 그를 통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장연구는 김문혁을 도와주는 명분으로, 이번 협업 건의 다음 기획 계약을 따내려 했고, 그래서 연하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연하가 이 프로젝트를 계속 맡아왔고, 장연구도 그녀를 꽤 신뢰하고 아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즉, 이 자리에 모
유민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누나를 바라보며 말했다.“나 찾으러 왔다고? 근데 왜 하늘만 보고 있었어?”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야경 좀 보면 안 돼?”그러고는 손을 들어 그의 어깨에 툭 얹었다.“가자, 밥 먹으러!”유민은 유진보다 머리 반쯤은 더 컸고, 키도 크고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총명한 소년이었다.“누나,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야? 또 누굴 좋아하게 된 거야?”“또?”유진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자, 유민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연애 한 번 했었잖아. 그러니까 또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유민이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유진은 거의 주민이라는 사람을 잊고 있었다.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연애는 무슨 괜한 상상하지 마.”일요일 저녁.연하는 거울 앞에서 화장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주말에까지 불러내서 접대라니, 이건 너무하잖아.’화장을 마치고 차를 몰고 나설 때쯤, 해는 이미 지고 거리엔 불빛이 하나둘 들어오고 있었다. 저녁노을과 번화한 불빛, 차량 행렬이 교차하는 거리였다.연하는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길이 막혀서 늦을 것 같다고 알렸다. 사장은 일요일에 그녀를 불러낸 게 미안했는지, 별다른 말 없이 조심히 운전하라고 했다.전화를 끊은 연하는 운전석에 기대어 긴 차량 행렬을 바라보며, 오히려 마음이 느긋해졌다.호텔에 도착한 건 이미 8시를 넘긴 뒤였다. 그녀는 곧장 들어가지 않고 흡연 구역으로 향해 담배 한 대를 꺼내 피웠다.담배를 물고 벽에 기댄 그녀는, 연기를 내뿜는 자세조차 당당하고 시크했다. 희미한 연기가 그녀의 정교한 메이크업을 감싸 안으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근처에 있던 남자가 한참을 바라보더니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번호 좀 줄 수 있어요?”이에 연하는 완벽하게 웃으며 말했다.“저 피처폰 써요.”그 말에 눈치 있게 물러났다. 담배를 다 피울 즈음,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 룸 쪽으로 향했다.문 앞에 도착하자, 연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얼굴에 어색하지
서선영도 유진을 바라보며 얼어붙은 듯 멍해졌다.“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유진은 급히 티슈를 꺼내 서선영의 얼굴을 닦기 시작했고, 그 손길은 꽤 거칠었다.“전 정말 여사님인 줄 몰랐어요.”“방금 어떤 사람이 은정 삼촌을 험담하는 걸 듣고, 또 어떤 못된 입방정 떠는 여자라고 생각해서 그랬지, 이모님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서선영은 얼굴에 뜨거운 차를 맞은 데다, 유진이 얼굴을 세게 문질러 닦여서, 화장이 완전히 번져버렸다.얼굴은 그야말로 염색공장을 연 것처럼 오색빛깔이었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에 서선영은 당황해서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괜찮아! 안 닦아도 돼!”유진은 손을 거두며, 복숭아빛 피부에 앙증맞은 얼굴로 얌전하게 웃었다.“여사님, 저 기억하시죠?”“그럼, 유진아!”서선영은 난처한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지었지만 유진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서서히 가셨다.“근데 이상하네요. 여사님은 분명 은정 삼촌의 어머니신데, 왜 뒤에서 은정 삼촌을 그렇게 험담하시죠?”“저번에 저랑 할아버지랑 댁으로 인사 갔을 때, 누가 은정 삼촌을 험담한다고 화내셨잖아요? 근데 그 말들, 다 여사님이 퍼뜨린 거였네요?”“그건.”유진은 또박또박,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까지 악의적이고 혐오스러울 수 있나요?”다른 부인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이쪽저쪽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모든 상황을 파악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서선영은 그동안 자애로운 계모 이미지를 만들어왔고, 은정을 이야기할 때마다 다들 그 아이가 속 썩인다는 식으로 받아들였지만, 이제야 진실을 알아버린 것이다.다정한 어머니 이미지는 전부 가짜였고, 뒤에서 험담한 것이 진짜였다. 정말 너무 악의적이었다.서선영의 얼굴은 핏기가 사라졌고, 급하게 해명했다.“나, 나도 들은 얘기일 뿐이야. 괜히 정태영 여사 조카한테 피해 줄까 봐.”“여사님 말씀 들었을 땐 그렇게 확신에 차 계시길래, 직접 본 줄 알았죠. 알고 보니, 들은 얘기였네요?”유진은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호텔 옥상에서 누군가 드론을 날리고 있었다. 이에 유민은 흥미가 생겨 그쪽으로 다가갔다.식사는 하나둘씩 차려지기 시작했지만, 유민은 돌아오지 않았고 핸드폰도 가지고 나가지 않았다.임유진은 결국 그를 찾으러 밖으로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그날따라 손님이 많아 유진은 맨 뒤에 서 있었다.3층에 도착하자 진주 장식으로 치장한 부유한 중년 여성 둘이 올라탔다. 그중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식사 끝나고 우리 한 판 칠까요? 오늘은 늦게 가요.”다른 여성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안 해요. 요즘 너무 재수가 없어서요.”그 말을 듣고, 유진은 고개를 들어 여성을 바라보았는데, 역시, 예상대로 서선영이었다.서선영은 연한 하늘빛 고급 맞춤 롱드레스를 입고, 다이아몬드 세트를 풀 착장한 모습이었다. 품위 있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지나치게 과시적인 느낌이 들었다.먼저 말한 여자가 계속 설득했다.“오늘은 또 다를 수도 있잖아요. 운이 트일 수도 있고.”“어제도 그렇게 말했잖아요.”“그랬어요?”여자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오늘도 지시면, 제가 책임질게요.”“그러면 저도 사양 안 할게요.”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10층에서 내렸고, 10층엔 야외 티 라운지가 있었다.유진은 눈을 굴리더니 조용히 그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오늘 외출하면서 그러데이션 렌즈의 안경을 쓰고, 후드티에 모자까지 뒤집어썼기에 웬만큼 가까이 오지 않는 이상 알아보기 어려웠다.유진은 서선영을 따라 티 라운지로 들어갔고, 서선영 뒤편 테이블에 조용히 앉았다. 서선영과 함께 온 사람은 모두 네 명, 다들 사모님 풍의 차림이었다.서로 마주 앉자마자 상투적인 칭찬을 주고받더니, 이내 서선영의 새로 산 한정판 가방이 화제가 되었고, 곧장 명품과 패션 이야기로 대화가 넘어갔다.유진은 점점 지루해졌고, 일어나려던 찰나, 함께 온 정태영이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사모님, 구은정은 여자친구 없어요? 제 조카가 막 유학 끝내고 박사까지 마치
임씨 저택에 도착한 유진은 동생 유민에게 사온 피규어를 건넸다. 유민은 책상 앞에 앉아 숙제하던 중이었고, 피규어를 받아 디테일을 살펴보다가 맑게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유진은 유민의 책상 위에 놓인 갓 채점된 시험지를 보고 다가가서 들춰보았다.“요즘 성적은 어때?”“별로 안 늘었어.”유민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유진이 본 것은 수학 시험지였다. 만점에 추가 점수 10점까지 있는 문제였고, 그 10점은 마지막의 경시 문제였다.확실히, 지난번에도 만점이었고 이번에도 만점이었다. 성적이 늘었다고 보긴 어려웠다.유진은 시험지를 보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구은정에게 마지막으로 수업해준 날, 자신이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었다.“이렇게 오래 가르쳤으면 시험 한 번 봐야 하지 않을까?”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넘겼지만, 그게 두 사람의 마지막 수업이 될 줄은 몰랐다.유민은 유진이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장난스럽게 물었다.“시험지에 거울이라도 있어?”유진은 시험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너 공부 열심히 해. 소희 곧 돌아올 거야. 나 거실에서 기다릴게.”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아빠도 오늘 점심쯤 도착하신대.”유진도 알고 있었다. 어제 우정숙에게서 직접 전화가 왔으니까. 우정숙과 임지언은 2주간의 출장 후 집으로 돌아왔고, 소희와 임구택도 함께 돌아왔다.저녁엔 온 가족이 함께 외식하러 나갔다. 장소는 명우가 예약한 호텔. 분위기 있고 조용한 환경이 가족 모임에 안성맞춤이었다.약 30평 정도 되는 룸은 휴게 공간과 식사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고, 모든 시설이 구비되어 고급스럽고 편안했다.넓고 높게 트인 유리창 너머로는 형형색색의 야경이 펼쳐졌고,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룸에 딸린 정원이 이어졌다.정원에는 해당화 향기가 은은히 퍼지고 있었고, 작은 물줄기가 구불구불 흐르며 부드러운 밤바람과 어우러져, 흔들의자에 앉아 야경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우정숙은 정원의 라탄 의자에 앉아 소희와 함께 담소를 나누었다. 유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