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청아의 집안일이 생각나서 물었다. "너희 아버지는 돌아오셨어?"청아는 웃음을 살짝 거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그래도 이게 더 나을지도. 우리 엄마도 좀 조용하게 지낼 수 있잖아. 그리고 우리 오빠는 여자친구 하나 사귀었어."그녀는 이 말을 하자 또 기뻐하기 시작했다.소희는 고개를 끄덕이었다."다 잘 될 거야."소희가 친구한테 케이크를 사준다는 것을 알고 청아는 직접 그녀에게 케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소희는 표시된 가격에 따라 그녀에게 돈을 주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소희는 오히려 그녀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냥 다른 친구들과 같이 내는 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자 청아는 비로소 그녀의 돈을 받았다.하지만 청아는 여전히 매우 불안했다."네가 여기서 돈 내고 케이크 사면 나 양심 찔려서 잠잘 수 없을 거 같아."소희는 웃으며 말했다."나 혼자 먹는 거라면 너한테 돈 안 줄 거야."청아는 그제야 살짝 웃었다."시간 있으면 나 찾아와!""응!"소희는 케이크를 들고 먼저 어정으로 돌아갔다.케이크는 5호 사이즈에 오로지 변두리에 금색 장미 꽃잎만 있는 하얀 케이크였다. 그리고 중간에는 눈에 띄는 "사랑해"라는 세 글자가 쓰여있었다. 대범하면서도 간단했다!소희는 특별히 케이크 사진 한 장을 찍어 심명에게 보내며 만족하냐고 물었다.심명은 재빨리 답장했다."완벽해요!"그 후 다시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고마워요, 우리 자기!"소희는 그를 아랑곳하지 않았다.저녁 7시에 심명은 그녀에게 케이슬에서 예약한 룸 번호를 보냈고 그녀는 케이크를 들고 케이슬 안으로 걸어갔다.로비에서 소희는 케이크를 들고 들어와 프런트에 가서 심명이 보낸 룸 번호를 보여주었다.프런트 아가씨는 심명이 예약한 룸인 것을 보고 바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가지 않고 먼저 예의 있게 그녀의 이름만 묻고는 그녀더러 잠시 기다리게 했다. 그리고 룸 안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누가 케이크 배달을 시켰냐고 물었다.필경 이는 고급 VIP
웨이터는 소희를 데리고 8층으로 간 다음 문을 열고 들어가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소희 아가씨가 왔습니다!"소희는 웨이터 뒤에 서있었다. 룸 안에는 불빛이 반짝이었다. 남녀 모두 있었기에 그녀는 한동안 누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아보지 못했다.한 사람이 다가와 웨이터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을 했다.웨이터는 고개를 돌려 소희에게 웃으며 말했다."오늘의 주인공은 아가씨께서 직접 케이크를 가져다주며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소희는 문득 물었다."그 사람은 여자예요?"웨이터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네!"라고 말했다.소희는 아마 이 여자도 심명을 좋아해서 자신이 심명이 파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이런 요구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왕 여기까지 온 이상 그녀도 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끝까지 도와주자!)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웨이터는 문안의 사람들과 소통한 다음 소희에게 길을 비켜주었다."들어가시죠!"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케이크를 상자에서 꺼내 손에 들고 룸 안으로 들어갔다.룸 안은 불을 커서 칠흑같이 어두웠다. 오직 사람들의 머리가 움직이는 것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소파 가장 가운데에 앉은 사람은 야광의 생일 축하한다는 말이 있는 머리핀을 꽂고 있었다. 이것은 알아보기 쉬웠기에 소희는 케이크를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소희는 그곳에 멈춰 서서 맞은편 사람을 보았다.룸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서 마치 그들 둘만 있는 것 같았다.한참 지나 남자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왜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지 않는 거죠?"소희는 이를 악물었다."이렇게 날 갖고 노니까 재밌어요?"룸 안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자 곧 노란 등불이 켜졌고 많은 사람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심명은 머리에 머리핀을 꽂고 있었고 잘생긴 얼굴에 요염한 한 쌍의 눈으로 소희를 보며 웃었다."케이크 사줘서 고마워요!"소희는 화가 나며 차가운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케이
시원은 멈칫하다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8801 안, 심명은 문 앞에서 소희를 가로막았다."농담 가지고 왜 그래요? 정말 화났어요?"소희는 안색이 어두웠다."나는 당신한테 신세 진 거 알아요. 그래서 케이크를 원한다는 말에 사준 거고요. 그런데 굳이 이렇게 나를 갖고 장난칠 필요가 있나요!"심명은 미소를 조금씩 거두었다. 그는 소희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정말 케이크를 원한다고 생각해요?"소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케이크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그럼 단순히 나를 놀리고 싶었던 거겠죠!""미안해요!" 심명은 눈살을 찌푸리며 눈빛이 어두워졌고 말투가 무거워졌다."나는 소희 씨가 이렇게 화 날줄 몰랐어요! 사실 난 정말 소희 씨가 케이크를 사주길 원했어요. 근데 만약 내가 사실대로 말했다면 소희 씨가 전혀 나를 상대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 거짓말을 한 거예요!"소희는 코웃음쳤다."방금까지만 해도 케이크 원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심명은 눈빛이 점차 어두워지며 방안에 떠들썩하게 놀고 있는 사람들을 한 번 보더니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그래요, 나는 심가네 집안 후계자라 곁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날 에워싸고 있었어요. 평소에 그랬으니 내 생일엔 더 하겠죠.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수백만, 수천만 원의 선물을 줘도 아무도 나에게 케이크 하나를 안 사주더라고요. 그들은 영원히 모를걸요. 난 다른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단지 케이크 하나, 간단한 생일 축하 한마디만 원한다는 것을!"그는 눈빛을 반짝이며 소희를 바라보았다."나는 그저 소희 씨의 손을 빌려 자신에게 케이크를 선물하고 생일 축복을 듣고 싶었던 거예요. 만약 소희 씨 기분 나쁘게 했다면 내가 사과할게요."소희는 심명의 말에서 외로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마음속의 분노가 점차 사라지며 목소리도 좀 부드러워졌다."케이크를 누구에게 주든 어차피 나는 신세 진거 갚으러 왔어요. 케이크는 당신에게 줬으니 내가 약속한 일은 끝난 거예요!"소희는 케이크를 심명
심명은 그곳에 서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을 닫았다.그는 안색이 조금씩 담담해지더니 한참 지나서야 몸을 돌려 소파에 앉아 예쁜 눈을 떨구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석군은 그에게 다가가 웃으며 물었다."정말 그 여자가 좋은 거야?"심명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다 웃으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그럴 리가. 그녀로 임구택을 분노하게 만들 수 있었으니 재밌잖아?"석군은 눈썹을 치켜세웠다."불장난에 오줌이나 싸지마!"심명은 개의치 않고 웃었다."내가 누구냐? 그딴 여자 하나에 마음이 갈 거 같아?"석군은 존경스럽게 그를 보며 술 한잔 따라주었다."형님, 당신은 우리의 신입니다!""저리 꺼져!"심명은 웃으며 그를 욕했다. 눈빛을 돌리자 누군가가 그가 테이블 위에 놓은 케이크를 가져가려는 것을 보고 즉시 소리쳤다."케이크는 나 줘!"그 사람은 케이크를 들고 심명에게 주었다."형님!"심명은 케이크의 글자를 내려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너희들은 다른 케이크 먹으러 가. 이건 건들지 말고!"석군은 비웃었다."그래도 그녀가 싫다고 말할 거야? 케이크 남겨둬서 뭐 하게?"심명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네가 뭘 알아. 이건 나의 전리품이야. 당연히 잘 간직해 둬야지!"그는 머릿속으로 방금 소희가 케이크를 들고 그에게 생일 축하할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맑은 호수처럼 깨끗했다.그녀는 왜 그렇게 단순할까,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그녀는 다 믿다니!(정말 바보야, 그러니까 임구택한테 속아넘어갔지!)마지막에 심명은 테이블에 가득 놓인 선물 하나도 가져가지 않고 오로지 그 케이크 하나만 들고 갔다.이때 복도에서 시원은 나른하게 벽에 기대어 룸 안의 정경을 대충 보고 있었다. 구택이 소희를 데리고 나오자 그는 의외라 생각해하며 물었다."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야?"구택은 안색이 보기 흉했다. 그는 시원을 힐끗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너 먼저 들어가."소희는 그에게 손을 잡힌 채 케이슬에서 나왔다. 그
구택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그리고 생각도 하지 않고 더 심한 말을 했다."내가 화난 이유는 소희 씨가 그래도 내 여자이기 때문이에요. 이런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으니 내가 정말 창피해서요!"그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희의 얼굴이 더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보았고 눈 속의 억울함과 비분은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단지 어둠만 남은 것을 보았다.그는 거의 즉시 자신이 너무 심한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화난 이유는 아마도 자기조차 왜 이렇게 분노했는지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차 안의 불빛은 어두웠고 분위기는 싸늘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뒤돌아 보지도 않고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은 매우 연약해 보였지만 등은 꼿꼿해서 곧 어두움 속으로 사라졌다.구택은 의자에 기대어 담배를 힘껏 한 모금 빨았지만 목에 막혀 어떻게 해도 삼킬 수가 없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구택은 케이슬로 돌아왔다. 그의 안색은 음침하고 어두웠다. 룸 안의 많은 사람들은 조용해지며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시원은 여러 사람들 보고 웃으며 말했다."너희들 그냥 놀면 돼!"사람들은 더 이상 구택을 쳐다보지 못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며 계속할 거 했다.시원은 소파 옆으로 가서 구택 옆에 앉아 담담하게 웃었다."너 방금 그 여자애랑 무슨 관계야?"구택은 또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예쁜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내 어정에 있는 집에 살고 있어!""너희들 동거했어?" 시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구택은 차갑게 그를 힐끗 보았다."뭐가 그리 놀라운 거야. 너 사귀었던 여자 친구 중에 대학생 없다고 말하지 마.""그게 아니라!" 시원은 침착하려 했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다고 느꼈다."나야 어떤 여자 친구를 사귀든 모두 정상이지만 넌 아니지. 네가 말해봐, 너 그때 그 누구 좋
소희는 베란다에 이미 한 시간 동안이나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매우 짜증이 났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이 관계가 끝나서 아니면 구택이 자신을 오해해서 이토록 분개하고 억울했는지 몰랐다.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30분 전에 구택에게 보낸 문자를 보았다. 그는 줄곧 답장하지 않았다.아마도 영원히 그녀에게 답장하지 않을 것이다.소희는 화가 났고 억울했으며 실망하는 동시에 마음은 또 좀 허전해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조차도 먹고 싶지 않았다.다행히 그녀는 줄곧 침착해하며 그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지금은 헤어져도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그렇다, 그녀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화가 났다. 그녀는 구택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도 그녀가 좋아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그녀는 가슴이 답답해서 핸드폰을 들고 뒤지며 언제 이사 갈지, 자신의 집으로 이사 갈지, 아니면 진석이 어정에 있는 집으로 갈지 생각했다.나중에 여기서 구택과 마주치지 않도록 그녀는 좀 멀리 이사해야 할까?그녀는 멈칫하며 문득 심명이 올린 인스타 게시물을 보았다. 그는 두 시간 전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소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뜩이나 답답한 마음이 더욱 울분으로 가득해졌다. 어떻게 심명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어쩐지 구택이 그녀에게 심명을 사랑하냐고 묻더라니.그도 분명 심명이 올린 사진을 보았을 것이다.소희는 한순간 충동이 생기며 구택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밤의 일을 똑똑히 설명하고 싶었지만 잠시 냉정해지며 이 생각을 그만두었다.그는 그녀에게 답장하지 않았으니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묵인한 거나 다름없었다.그녀도 더 이상 무모한 짓을 할 필요가 없었다!이튿날, 소희는 자신의 옷을 정리할 때 청아의 전화를 받았다."소희야, 나 디저트 가게에서 해고되지 않았다! 그냥 강성대 부근의 지점으로 옮겼어. 앞으로 우리 자주 만날 수 있어!"소희는 담담하게 웃었다."진짜?""그래!" 청아는 매우 기뻐했다."참, 너한테 할 말 하나 있는데.
청아는 침대와 테이블이 모두 새것인 것을 보고 즉시 물었다."너 금방 산 거야?""아니야!" 소희는 그녀가 다시 돈을 줄까 봐 인차 말했다."예전에 여기에 있었는데, 아마 집주인이 샀을 거야. 쓴 적은 없어."청아는 한숨을 돌리고 침대에 앉았다."만약 또 너보고 돈 쓰게 했다면 나는 차라리 호텔에 가는 것이 더 나."그녀는 방을 둘러보았다."너 작은방 한 칸만 세냈다고 했지? 그럼 나 여기에서 지내면 집주인은 너한테 뭐라 하지 않을까?""아니, 이미 집주인한테 말했어. 그는 괜찮다고 말했고!""그럼 다행이야!"청아는 웃으며 일어섰다."저녁에 내가 밥 살게."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더 이상 거절하지 마!"소희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래, 나 밥 사줘!"두 사람은 깨끗한 중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청아는 소희가 스스로 밥해 먹는다는 것을 알고 통쾌하게 말했다."요 며칠 내가 너한테 밥해 줄게. 다른 건 그래도 요리는 자신 있어!"소희는 그녀가 디저트를 잘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또 그녀가 요리까지 할 줄 안다는 것을 듣고 인차 기뻐했다."다행이야. 우리 라면 먹지 않아도 돼서."청아는 멍해지다 인차 크게 웃기 시작했다.그 후 며칠, 두 사람이 함께 지내면서 집안은 좀 시끌벅적해졌고, 소희의 마음속의 억울함도 많이 나아졌다.청아는 매일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돌아와서 소희가 낮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저녁 무렵에 소희는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서 청아가 돌아와서 밥해주기를 기다렸다.청아는 매번 돌아올 때마다 소희에게 디저트를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먹으면서 영화를 보며 청아가 저녁밥 하기를 기다렸다.가끔 그녀도 가서 채소를 씻는 것을 도왔지만 청아는 그녀가 일하는 게 너무 느리다고 하며 그녀를 주방에서 쫓아냈다.다행하게도 2인분은 만들기 쉬워서 청아 혼자서도 빨리 만들 수 있었다.소희는 청아가 겸손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요리 솜씨가 괜찮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아주
소희는 눈을 반쯤 들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너 보름 뒤면 시험이잖아, 시험 끝나면 내가 또 뭘 하러 여기 오겠니!"유민은 은근히 한숨을 돌리며 일부러 도도하게 말했다."그럼 다시 개학하면 나도 매 주말마다 샘 봐야 하잖아!"소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확실히 이번 학기를 가르친 후 그만두려고 했다. 이번에 몇 번 임가에 왔지만 그녀는 구택을 보지 못했다.그녀는 아마도 구택이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그녀가 오는 시간을 피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기왕 이렇게 된 이상 서로 미워하게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유민은 답안지의 문제를 풀기 시작하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오늘 푼 답안지 또 둘째 삼촌한테 보여줄 거야? 가지 않는 게 좋을걸.""왜?" 소희가 물었다.유민은 답안지를 풀며 대답했다."요새 우리 둘째 삼촌 기분이 좋지 않거든. 나도 감히 그를 찾을 수 없으니까 샘도 좀 멀리 피하는 것이 좋겠어."소희는 눈빛을 반짝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 생겼어?"유민은 고개를 저었다."누가 알겠어? 요 며칠 기분이 좋지 않은걸. 자꾸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돌아왔거든. 어제 난 삼촌이 전화로 회사 사람들을 훈계하고 한바탕 화를 낸 거까지 봤어. 진짜 오랜만에 삼촌이 이렇게 큰 화를 내는 것을 봤다니깐!"소희는 대답했다."그럼 회사의 일 때문이겠지. 며칠 뒤면 해결될 거야."유민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집중해서 문제를 풀었다.저녁에 구택은 평소보다 일찍 돌아왔다. 저녁 9시도 채 안되어 그는 문에 들어섰다.하인은 앞으로 다가가서 그에게 식사를 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감히 묻지 못하여 주방으로 돌아가 차를 들고 왔다.구택은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을 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그는 전화를 받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어디야?" 시원이 물었다."집. 너희들끼리 놀아!" 구택은 불을 켜지 않았다. 목소리는 어둠 속에 더욱 낮아졌다.시원은 웃었다
강아심이 거실로 들어오자, 소희와 가볍게 포옹하며 부드럽게 웃었다.“결혼 축하해. 정말 완벽한 결혼식이었어. 모든 사람이 감동했어!”“고마워!” 소희도 따뜻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심은 한발 물러서서 소희에게 소개했다.“여기는 도도희 이모야!”소희는 눈앞의 여성을 보고 순간 멍해지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혹시 스승님의 딸, 도도희님이세요?”도도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나도 소희 씨 이름을 들어봤어. 우리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제자라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니 아쉬웠어요.”소희는 자신의 결혼식에 도도희가 찾아올 줄 몰랐기에 마음이 벅차올랐다.“스승님도 오신 걸 알고 계세요?”양재아의 일로 스승님과 도도희 사이의 일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소희는, 스승님이 딸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도도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우리는 이미 만났어요.”“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소희도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도도희는 부드럽게 물었다.“듣기로 양재아를 삼각주에서 찾아내 데려온 게 소희 씨라던데, 내 친딸이든 아니든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소희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할 것까지는 없어요. 다만, 두 분께 헛된 기대를 드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었어요.”도도희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런 일은 수없이 겪어봤거든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도도희의 담담한 태도에서 그녀가 왜 지금까지 친자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소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도도희는 처음 만난 소희에게서 놀라움을 느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고요하고 담백한 성품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투명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 면모가 아심과도 닮아 자연스레 호감을 느끼게 했다.도도희는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운성에서 산간 지역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틀 후면 일이 끝나니, 강성으로 돌아
멀리서 도경수와 강아심이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소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고, 구택과 눈이 마주쳤다.손에 들고 있던 부케를 두 손으로 잡은 소희는 가볍게 손을 들어 부케를 뒤로 던졌다.햇살이 소희를 온통 감싸고, 드레스의 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녀의 웃음은 그림처럼 찬란했다. 앞쪽에 서 있던 사람들은 부케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만 볼 수 있었다.몇몇 사람들은 점프했지만, 손끝과 부케는 20에서 30cm쯤 차이가 나 닿지 않았다. 시원은 부케가 멀리 날아갈 것을 예상하고 준비했지만, 소희의 던지기 실력을 과소평가했다.시원과 백림은 함께 점프했으나 손가락 끝이 꽃잎에 닿았을 뿐 결국 부케를 놓치고 말았다.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니, 부케는 무려 10미터 이상 날아가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들고 있는 손에 정확히 떨어졌다.아심은 꽤 멀리 서 있었고, 부케가 자신에게 떨어질 줄 몰랐는지 놀라 손에 들고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도경수는 아심이 손에 든 부케를 보며 뜻밖이라는 듯 기뻐하며 말했다.“이건 정말 하늘의 뜻인 것 같아!”아심은 말없이 웃으며 부케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곤 소희와 군중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며 현장의 분위기를 함께 즐겼다.주변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아심 쪽으로 몰려가 그녀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소희도 멀리서 아심을 향해 웃었지만, 당장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구택이 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먼저 할아버지께 가서 술을 올리자. 그 뒤에 만날 기회가 있을 거야.”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서 있는 아심을 한 번 더 바라보고 구택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소희는 웨딩드레스를 갈아입고 피로연 드레스를 입은 뒤 강재석 쪽으로 가서 술을 올렸다. 그곳에는 임씨 집안의 어른들과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가 소희를 아끼며 환대했다.가볍게 술 한 잔을 권한 뒤, 소희에게 충분히 쉴 시간을 주었다. 소희는 오후 내내 쉴 수 있었고, 연희와 몇몇 친구들이 함께 시간을
남궁민은 잠시 멍해졌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심명을 바라보았다. 그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찌릿해졌다.남궁민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확실히 당신은 나보다 서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심명은 남궁민의 말을 듣고 흘긋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당연하죠. 당신은 그게 좋아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남궁민은 반박하며 말했다.“왜 아니죠? 난 서희 말고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좋아해 본 적 없거든요.”심명은 그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햇빛을 향해 걸어가는 심명의 모습은 빛에 둘러싸여 희미하게 흐려져 보였다. 남궁민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따라가며 물었다.“설마 도망치려는 거예요?”심명의 귀에 달린 흑요석 귀걸이가 햇빛에 반사되어 매혹적인 광채를 뿜었다.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도망치긴 뭘 도망쳐요?”만약 도망칠 생각이었다면 오늘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남궁민은 심명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말했다.“오늘은 우리 둘 다 도망칠 생각 하지 말아요. 이 세상에서 너와 나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거잖아요. 술 마시고 취할 때까지 놀아보는 건 어때요?”심명은 남궁민의 손을 곁눈질하며 투덜거렸다.“손 치워요.”그러나 남궁민의 제안은 거절하지 않았다.“좋아요. 멀리서 여기까지 온 네 성의를 봐서라도, 서희 대신 내가 너를 잘 챙겨 주도록 하죠.”...결혼식의 하이라이트가 지나고, 커다란 케이크가 나왔다. 케이크 커팅식이 끝나고 결혼식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축하 파티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구택은 소희의 입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닦아내며 말했다.“와이프, 신혼 축하하고 사랑해.”수많은 꽃잎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예식장의 조명은 더욱 환하게 빛났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축복과 환희로 가득했다.소희는 구택만을 바라보았다. 소희의 맑고 투명한 눈에는 세상의 그 어떤 소란도, 부귀와 영화를 쫓는 욕망도 담겨 있지
“그때, 나는 마침내 깨달았어. 네가 평안하고 행복하기만 하면, 그 이외의 어떤 의미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임구택은 소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반지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분홍빛 다이아몬드는 그녀의 눈부신 피부 위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졌고, 빛을 받아 반짝이며 찬란한 광채를 뿜어냈다.소희도 손에 든 반지를 꺼내 들었고, 구택의 손은 매끄럽고 아름다웠다.손바닥과 손가락의 비율은 완벽했고, 마치 차가운 백옥으로 조각한 듯 뚜렷한 관절선에는 부드러운 온기와 견고함이 동시에 느껴졌다.구택은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며 조용히 미소 짓고는 물었다.“내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면서, 왜 나를 다시 데려왔어?”구택은 그녀의 길게 드리운 속눈썹을 가만히 응시하며 천천히 답했다.“왜냐하면 또 하나를 깨달았으니까.”“뭔데?”“내가 주는 행복만이 진짜 행복이라는 거야.”소희는 반지를 끝까지 밀어 넣고 고개를 들어 구택을 바라보았다. 구택의 눈빛은 따뜻하면서도 단호했다.“우리 둘이 함께 있을 때만이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어. 그러니까 넌 도망칠 수 없고, 나도 도망칠 수 없어.”“처음 우리가 만난 순간부터 오늘 이 순간이 정해져 있었어. 네가 나와 결혼하게 될 운명 말이야.”구택은 말을 마치고 몸을 숙여 강렬한 키스로 소희의 입술을 덮자, 주변에서는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임유민은 요요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던 중,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한 번 돌아보았다.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중얼거렸다.“역시 우리 삼촌은 다르지.”요요도 뒤를 보려고 하자, 유민은 손으로 요요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어린아이는 이런 거 보면 안 돼!”요요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럼 오빠는 어른이에요?”그 말에 유민이 당황하며 대답했다.“나, 나는 반쯤 어른이야!”요요는 까만 눈을 반짝이며 더 궁금해졌다.“그럼 오빠는 머리 쪽이에요, 아니면 발 쪽이에요?”유민은 요요의 진지하고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가 차분히 설명했다.“머리가
예식장 안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고, 주례자는 차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이제 신랑과 신부의 결혼 서약을 낭독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께서도 함께 느껴 보시고, 곁에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주례자의 목소리는 한층 더 엄숙해졌다.“임구택 군, 당신은 이 아름다운 소희 양을 아내로 맞이하시겠습니까?”“소희 양의 손을 맞잡고 백년해로하며, 그 어떤 간난신고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함께하겠다고 서약하시겠습니까?”구택은 깊은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단호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예, 서약합니다. 소희를 평생 소중히 여기고, 챙기고, 제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충실히 사랑하겠습니다.”주례자는 이번에는 소희를 향해 물었다.“소희 양, 당신은 임구택 님을 남편으로 맞이하시겠습니까?”“임구택 군과 함께 인생의 길을 나란히 걷고, 그 어떤 간난신고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함께하겠다고 서약하시겠습니까?”소희는 구택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서약합니다. 조건 없이 사랑하며, 영원히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다.”구택의 눈에는 감정이 빛나고 있었고, 그의 따뜻한 마음과 온기는 오직 소희를 위해 존재했다.주례자는 미소를 지으며 선언했다.“이제 임구택 군과 소희 양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두 사람을 위해 축복의 박수를 보내주세요!”예식장은 다시 한번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모든 하객은 이 감동적인 순간에 눈물을 글썽이며 박수를 보냈다. 그 박수 소리는 끝없이 이어졌고,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울려 퍼졌다.연희는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는 뜨거웠지만,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우청아 또한 눈물을 흘리며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했다.주례자는 박수 소리 속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이제 신랑과 신부께서 결혼의 영원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결혼반지를 교환하시겠습니다.”그 순간, 뒤쪽 계단에서 임유민이 요요를 안고 나타
강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소희의 손을 임구택의 손 위에 조심스럽게 얹었다. 마치 신성한 임무를 완수한 듯 그는 말했다.“행복하길 바랄게.”임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고마워요.”주변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소희는 시언을 깊이 바라보았다.그 시선에는 어린 시절 그가 자신을 가르쳐 주고 곁에서 함께해 주었던 시간, 그리고 두터운 남매의 사랑과 가족 간의 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시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소희를 응원했다. 마치 어린 시절 소희의 손을 잡고, 약하고 외롭던 소녀를 강하고 단단한 소희로 성장시켜 주었던 순간처럼.앞으로도 각자의 길을 걷더라도, 그들은 서로의 곁에 있을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들의 관계는 공기와 햇빛처럼 언제나 존재하며, 그들의 삶 속 깊이 자리할 것이었다.소희는 구택의 팔을 붙잡고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시언이 바로 뒤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발걸음은 더욱 단단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는 남자는 소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어떤 망설임도 없게 했다.레드카펫은 길었고, 앞으로 함께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도 길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란히 걷는다면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구택은 옆에서 소희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힘이 있었다.예식장의 한구석, 커다란 부조 기둥에 기대어 서 있던 심명이 소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심명의 시선은 소희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오늘 정말 아름답네.’소희의 모습, 그녀의 미소, 모든 것이 그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고 있었다.그때, 뒤에서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희, 정말 예쁘네요!”심명은 눈초리를 치켜들며 뒤를 돌아보자, 남궁민이 걸어오며 그의 옆에 섰다.햇빛이 남궁민의 짙은 갈색 눈에 반사되어 깊고 매혹적인 빛을 띠고 있었다.“왜 강성에 있는 구은서를 놔두고 여기까지 왔어요?”남궁민은 이미 자신이 심명의
음악 소리에 맞춰,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아오를 때, 신랑인 임구택이 중앙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그 순간, 거대한 아치형 정문이 열리며 정오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수천 갈래의 황금빛이 예식장 안을 가득 채운 듯했다.찬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 피어난 꽃들, 그리고 붉은 카펫은 그 빛에 의해 생명을 얻은 듯 더욱 생동감 있고 화려해졌다.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과하며 무지갯빛 광채를 만들어냈고, 이 환상적이고 웅장한 장면에 하객들은 숨을 멈추고 정문 중앙에 서 있는 한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소희는 시언의 팔을 잡고 붉은 카펫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예식장 안은 하객들로 가득 찼지만, 고요한 정적 속에 우아한 현악 연주만이 홀 안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다.소희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드레스는 가슴 위를 덮는 깔끔한 디자인에 어깨를 타고 내려가는 레이스로 이루어져 있었다.얇은 꽃잎 모양의 레이스가 어깨를 감싸며 은은하게 살결을 드러냈고, 그 아래로는 매끈한 쇄골과 길고 고운 목선이 돋보였다.허리선 아래부터는 화려한 자수 문양이 드레스 끝자락까지 펼쳐졌고, 풍성한 치마는 소희의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며 단순함과 정교함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소희의 머리에는 구택이 준비한 티아라가 얹혀 있었고, 티아라에 박힌 찬란한 다이아몬드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조금도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고운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긴 베일이 드레스 끝까지 내려와 천천히 레드 카펫 위를 스치며 움직였다. 소희는 그림 같은 미모와 함께 단아하면서도 청아한 기품을 자아내며 성스러워 보였다.시언은 깔끔한 흰 셔츠에 검정 조끼를 입고 있었고, 훤칠하고 듬직한 모습으로 소희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고 함께 걸어왔다.두 사람이 함께 입장하는 순간, 예식장의 조명이 한층 어두워진 것처럼 느껴질 만큼 두 사람의 존재감은 강렬했다.구택은 레드 카펫 끝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세상에 울려 퍼지는 모든 소리가 멀어진 듯, 구택의 눈에는 소희만
결혼식장이 웃음과 이야기로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주례가 결혼식 무대로 올라서자 점차 차분해졌다.결혼식장 가장 앞줄 귀빈석에는 임씨 가문과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각각 자리했다. 시언이 입장하며 뒤쪽 하객석을 한번 훑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단번에 맨 뒷자리 가까이 앉아 있는 강아심을 찾아냈다.아심은 도도희와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자연스럽게 풀어 어깨에 늘어뜨리고 있었다.그 모습이 아심의 부드럽고 매혹적인 옆모습을 가리고 있었다. 희미한 미소를 띤 채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며 즐거워 보였다.시언은 별다른 표정 없이 시선을 거두었다.강재석이 나타나자, 결혼식장은 잠시 숨소리마저 조용해졌다. 이내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그를 화제로 삼기 시작했다.“저분이 강씨 집안의 어르신인가 봐. 정말 카리스마 넘치시네!”“옆에 있는 젊은 사람은 강재석 어르신의 손자겠지?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왜? 마음에 들어? 꿈 깨. 강씨 집안이랑 혼인을 맺으려면 임씨 가문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다고.”“현실은 안 되더라도 꿈꾸는 건 내 자유잖아? 결혼식 끝나고 가서 연락처라도 물어볼 거야.”“좋아, 한번 해봐. 강씨 집안의 도련님이 연락처를 줄지 안 줄지 보자고. 근데 얻으면 나랑 공유하는 거 알지?”“내가 얼굴에 철판 깔고 얻은 연락처를 왜 너랑 공유해? 너도 도전해 보든가!”...아심은 바로 뒤에 앉아 있던 이들의 대화를 듣고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도도희도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봤니? 강시언이 얼마나 인기 많은지.”아심은 나른하게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그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모르는 거죠.”도도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아심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소희를 못 봤네요. 오늘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은 정말 예쁠 것 같아요!”도도희가 물었다.“소희랑 친한 사이인가?”아심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그렇게
도도희는 강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심이 왔어.”시언의 눈빛이 깊어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보였다. 강재석은 그보다 훨씬 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아심양도 왔어?”도도희는 약간 놀라며 물었다.“아저씨도 아심을 아세요?”“당연히 알지.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이인 줄 아니?”강재석은 의미심장하게 시언을 한 번 쓱 보고는 환한 미소로 말했다.“지금 어디 있나?”“아마 이미 예식장 안으로 들어갔을 거예요.”도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미리 알았다면 데리고 여기로 왔을 텐데.”강재석은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온 것만으로도 아주 좋아. 어차피 곧 볼 테니까.”도경수의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재아는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얽혀 올라왔다.‘엄마가 강아심을 알다니... 그리고 강재석과 강시언은 아심에게 훨씬 더 호의적이잖아. 그런데 엄마도 강아심과 더 가깝다니...’자시느이 엄마가 아심과 이렇게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재아는 왠지 모르게 불쾌했다.도도희는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아저씨, 예식장에 가셔야 할 시간이에요. 저는 여기서 이만 물러날게요. 아심을 찾아보려고요.”도경수는 다급한 표정을 지었지만, 강재석이 그의 마음을 눈치채고는 도도희에게 말했다.“결혼식 끝난 후에는 서두르지 말고, 우리와 시간을 좀 더 보내. 오랜만에 만났으니 제대로 얘기 나눠야지.”도도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결혼식이 끝나면 다시 찾아뵐게요.”“좋아!”강재석은 따뜻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도경수도 말했다.“내 전화번호 알지?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렴.”도도희는 알겠다고 답한 뒤, 몇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도경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강재석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그래도 드디어 도도희를 만났잖아. 그리고 직접 강씨 집안으로 돌아온다고 했으니, 좋은 소식 아닌가?”도경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우리 부녀가 어쩌다 이렇게 서먹서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