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 지 못하게 숨겨야만 했다.……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요요는 무의식적으로 우청아를 찾았지만 장시원이 보였다. 엄마가 안 보여도 울지 않은 요요는 장시원에게 기어가서 물었다.“삼촌!”장시원이 눈을 뜨자 햇빛이 눈에 들어왔고 앞에 있는 요요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요요 깼어?”요요가 앉자 하얀 발이 눈에 들어왔고 헤헤 웃으며 장시원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마음이 말랑해진 장시원은 요요를 품에 안았다.“왜 그렇게 좋아해?”“엄마는?”“곧 엄마 만날 거야!”장시원이 부드럽게 웃었다.요요는 우청아와 다른 남자의 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고 그 남자가 밉긴 하지만 요요는 예뻐 죽을 것 같았다.“엄마 찾으러 갈 거야!”요요는 장시원의 몸을 돌리며 우청아를 찾으러 가자고 떼를 썼다.“요요야! 천천히!”장시원은 요요를 두 손으로 번쩍 안아 들어 올리자 깔깔 웃는데 눈이 일자로 변했다. 우청아가 노크하고 들어오자 재밌게 놀고 있는 두 사람에 잠시 놀랐다.“엄마!”요요가 신나서 그녀를 불렀다.장시원은 요요를 안고 일어났고 화이트 핑크의 잠옷에, 어깨까지 내려온 그녀의 머리카락 그리고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띠고 있는 우청아에 두근두근했다.“난 요요 세수시키러 가볼게요.”장시원은 그녀를 쳐다보며 요요를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우청아는 그들에게 길을 비켜주고는 이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우청아는 장시원이 요요와 함께 세면대 앞에서 이를 닦는 모습을 보았다. 장시원은 여전히 핑크색 가운을 입고 있었고 요요는 작은 의자에 서 있었는데 그 둘은 이를 닦으면서도 웃었다. 우청아는 그 모습을 보다가 부엌에 가서 아침을 준비했다. 장시원과 요요가 씻고 나오자 요요의 옷을 갈아입히러 갔고 장시원의 어제 입었던 옷이 아직도 빨래 바구니에 있는 것을 보자 장시원에게 물었다.“뭐 입으세요?”장시원은 거실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주성이 이따가 나한테 옷 보내주기로 했어요.”
“장시원?”임구택은 단번에 알아맞혔고 소희는 여전히 불가사의하다고 느꼈다.“우청아의 목욕가운을 입고 있었어!”구택은 키득거리며 비웃었다.“그 두 사람이 잤다는 말이야?”소희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우청아 답지 않게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느꼈다.“장시원의 수법은 보통 여자들이 당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니 정상이야.”구택이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품에 안았다.“둘 다 성인인데 걱정할 게 뭐가 있어?”“장시원 오빠는 늑대고 우청아는 토끼니까 체급이 맞지 않잖아. 장시원 오빠가 우청아를 갖고 노는 거라면 절대 가만 안 둬!”사실 소희 본인도 굉장히 모순적이었다. 한편으론 우청아가 그녀와 장시원의 아이를 혼자 데리고 있는 것이 아까워 둘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또 한편으로는 장시원이 우청아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다. 장시원의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들 가운데 3개월을 넘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내가 장담할 수 있어!”구택은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나 믿어!”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장시원 오빠가 우청아한테 미안할 짓만 안 하면 나도 끼어들지 않을 거야.”필경 이는 우청아의 문제였기에 그녀가 알아서 잘 처리할 거라고 생각했다.“응, 일단 밥부터 먹자.”“나 먼저 샤워할래.”“그럼 같이해!”구택은 그녀를 안고 욕실로 향하자 그녀는 바로 제지했다.“아니! 그러면 밥부터 먹자.”같이 목욕하면 지각할 게 뻔했는데 그럼 아침을 못 먹을 게 뻔했다. 어젯밤 구택은 만족을 했기에 더 이상 소희를 난처하게 하지 않고 의자에 앉혀 우유를 따라줬다.……아래층우청아가 나왔을 때 식탁 위에 있는 아침을 보고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소희 왔다 갔어요?”“어”“당신을 봤다고요?”“왜? 보면 안 되는 건가?”장시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보았다.우청아는 머리가 굉장히 복잡했다. 아침부터 장시원이 자기 집에 있었고 심지어 자기 목욕가운을 입고 있었기에 틀림없이 소희는 오해했을 것이었다.“그 표정 무슨
하룻밤을 지내도 신경이 엄청나게 쓰였는데 우청아 혼자서 그 긴 시간 동안 요요를 키운 고생을 가히 짐작할 수 없었다. 우청아는 장시원이 갑자기 던진 질문에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습관 돼서 괜찮아요.”“낮에는 출근하고 밤에는 요요 보는 게 시간이 지나면 힘들 거야. 도우미 아주머니를 찾아봐 비용은 내가 지불하지.”“필요 없어요.”우청아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낮에 요요를 볼 수 없으니 저녁에라도 같이 있어 줘야 해요.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요.”장시원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요요 아빠랑은 언제 헤어졌어? 왜 아빠의 책임을 하나도 지지 않는 거지?”우청아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눈을 깔았다.“그 사람 얘기 안 하면 안 되나요?”장시원도 답답해서 그 남자를 언급하고 싶지 않았으나 우청아의 이런 모습을 보면 아직도 그 남자에게 미련이 있어 보였다.‘아직도 그 남자를 사랑하나?’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두 사람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자 주성이 보낸 장시원의 옷이 도착했다.그리고 이경숙 아주머니가 왔을 땐 장시원은 옷을 갈아입고 요요랑 블록을 쌓고 있었다.즐겁게 놀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이경숙 아주머니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우청아가 주방에서 정리를 하는 틈을 타 그녀의 뒤에서 웃으며 말했다.“내가 할 테니까 출근해요.”“안 급해요.”우청아는 웃으면서 식기들을 치웠고 이경숙 아주머니는 옆에 서서 거들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우청아 씨, 장 선생이 요요를 엄청나게 좋아하네요.”“네.”“장 선생은 잘생기고 돈, 명예, 지위 그 어느 하나 부족하지도 않은 데다가 요요도 좋아하니 이는 보기 드문 인연이네요.”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하시자 우청아는 멍했다.“저희는.”“쑥스러워할 필요 없어요. 애를 데리고 시집가는 것도 요즘 세상엔 아무것도 아니고! 잘 생각해 봐요, 혼자서 아이 키우는 게 굉장히 힘들어 보여서 그러니 진심으로 좋은 남자 만났으면 해요.”우청아는 어떻게 설명해야
주성이 차를 몰고 두 사람은 함께 회사 39층에 도착했다. 우청아가 자리에 앉자 하온의 메시지가 왔다.[우청아 씨 어제는 정말 미안했어요.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앞으로 우청아 씨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저희 어머니께서 병원에 저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 걸 알고 우청아 씨 뒷조사를 하셨나 봐요. 어제도 아마 저를 미행하셔서 당신을 찾은 것 같은데 정말 우청아 씨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줘서 면목이 없네요. 미안해요.]우청아는 하온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어제 같은 불상사가 있긴 했으나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기에 우청아 또한 고심 끝에 답장을 보냈다.[괜찮습니다. 하지만 하온 씨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만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네요.]그녀는 하온을 탓하지 않았고 그저 서로서로 다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하온 또한 우청아의 뜻을 이해했고 시간이 지나서야 그녀에게 답장을 했다.[우청아 씨가 행복하길 바랄게요.][고마워요.]우청아는 한 가지 일을 해결했다는 사실에 많이 홀가분해졌고 정신을 차리고 일에 몰두했다. 점심시간 거의 될 무렵 우청아는 장시원이 보낸 메시지를 받았다.[점심에 토마토 소갈비랑 탕수육, 나머지는 우청아 씨가 먹고 싶은 걸로]우청아는 주체 못 하고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기 위해 입술을 앙다물었다.[알겠어요.]……두세 날이 지나 우청아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파트 밑에서 서영을 다시 만났다. 지난번 포스가 철철 흘러 넘쳤던거와 달리 오늘 서영의 태도는 180도로 변했다. 그녀의 손엔 선물이 들려져 있었고 우청아를 보자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다가갔다.“우청아 씨, 이제 퇴근하셨나 봐요.”우청아의 얼굴은 어두워졌다.“저랑 하온 씨는 아무 사이 아니니까 더 이상 찾아오지 마세요.”“그것 때문에 온 거 아니에요!”서영은 바삐 해명했다.“난 그저 우청아 씨에게 그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사과하러 온 것이에요. 정말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무턱대고 사람을 끌고 와서 소란을 피워
우청아는 서영을 붙잡았다.“이렇게 하실 필요 없으십니다.”“우청아 씨, 정말 방법이 없어서 염치없이 우청아 씨를 찾아왔어요. 하온의 얼굴을 봐서라도 한 번만 도와줘요.”“사장님한테 잘 말해드릴 테니까 앞으로 이성적으로 행동하셨으면 좋겠어요. 설령 하온 씨가 여자친구를 사귀었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하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알아요. 제가 한 행위가 타당하지 않다는 거.”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후회하였다.“하온의 아버지가 요 며칠 저한테 뭐라 하더니 직접 가서 사과하겠다고 하는 거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내가 온 거예요.”“사장님께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우청아 씨!”“이제 돌아가 보세요.”“이 물건들은 꼭 가져가요.”서영은 가져온 선물을 우청아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지만 단호하게 거절하였다.“도로 가져가시지 않으면 부탁은 못 들어줄 것 같네요.”그녀의 말에 서영은 하는 수없이 선물을 도로 가져왔다.“아. 이렇게 마음이 넓은 우청아 씬데 내가 너무 미안하네요.”“돌아가 보세요.”“그럼 사장님께 꼭 잘 말해줘요!”서영은 당부를 하였지만 불안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우청아는 서영이 떠나는 것을 보고 집으로 올라가는 게 아닌 장시원에게 전화를 하였고 전화를 받은 장시원의 목소리는 굉장히 다정했다.“요요가 나 보고 싶다고 합니까?”“아니요.”“그럼 우청아 씨가 나 보고 싶어서?”능글맞게 말하는 장시원에 우청아는 정색하며 말했다.“하온의 어머니가 절 찾아오셨어요.”“왜 또 찾아왔답니까? 괜찮아요?”장시원은 심각하게 물었다.“괜찮아요. 소란 피우러 온 게 아니라 나한테 사과하고 부탁하러 온 거더라고요. 내가 잘 말해주면 일이 해결될 것 같아서 그런가 봐요.”“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장시원의 물음에 우청아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그런 우청아에 장시원은 갑자기 열이 뻗쳤다.“우청아 씨, 다른 사람이 왜 자꾸 우청아 씨를 괴롭히려고 하는지 알아요? 만만해서 그
우청아는 눈을 깔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나도 용서한 건 아니에요. 하온 씨한테 짐이 되는 여자랑 결혼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가 가고요. 오해로 생긴 일이니 그냥 이 정도로 끝내는 게 좋을 거 같아요.”“그 집 아들이 뭐가 대수라고! 그 여자한테 똑똑히 보여줬어야 했는데 아쉽군. 그 집 아들이 아까운 게 아니라 우청아 씨가 훨씬 아깝다는걸. 그리고 우청아 씨도 자꾸 자기를 깎아내리지 마요. 한 번만 더 그러면 하온 씨 집을 박살을 내버릴 거니까.”우청아는 깜짝 놀랐고 장시원은 말을 이었다.“내 밀착 보조가 아니라 내 회사의 직원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해요. 이 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나한테 맡겨요. 계속 지켜보고 있을 거니까 아마 우청아 씨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그의 말에 우청아는 안심이 되었다.“장시원 씨!”우청아는 장시원의 이름을 부르곤 한숨을 쉬었다.“그만해요. 하온 씨랑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을까 여기서 끝내줘요.”그러나 장시원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이렇게 해요. 네?”장시원은 갑자기 얌전해졌는데 우청아가 다정하게 말하면 모든 나쁜 기분들이 씻기는 듯 사라졌다. 한참 지나서 장시원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알겠어요. 이번에는 우청아 씨 말 듣도록 하죠.”“고마워요!”“요요랑 놀아요!”장시원은 발코니에 서 있었는데 뭔지 모를 답답함에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녀가 머리를 숙이며 자신한테 말을 하는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더욱 복잡했다. 그가 과거에 우청아를 조금이라도 좋아한다 해도 2년 동안 미움을 많이 샀기에 대체된 지는 오래됐을 것이었다.장시원은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고 뱉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우청아를 좋아하지 않기로.……수요일 소희는 출근하여 아침에 할 일들을 미리 어레인지 해 놓은 후 마민영이 배달로 보낸 수많은 디저트들과 아이스크림, 밀크티, 주스를 내려놓았다.미나는 유난히 소희를 좋아하는 민영을 알았기에 아무렇지 않아 보였고 웃으면서 말했다.“이거 다
미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하지만 남자 친구가 좋아하지 않아요. 피임약은 부작용도 있고.”소희는 임구택이 자신에게 준 약을 떠올리며 말했다.“내가 먹는 약이 있긴 한데 부작용도 없다니까 한번 먹어볼래요?”“정말요? 어디 브랜드인데요?”미나는 감격스럽다는 듯 물었다.“나도 잘 몰라요. 집에 가서 사진 찍어서 보내 줄게요.”“좋아요.”미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부작용이 없다니, 너무 좋은데요?”스태프들이 몰려오자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소희는 임구택이 준 약통을 찾아 사진을 찍어 미나에게 보냈다. [어 저 이거 본 적 있어요! 고마워요, 소희 씨!][괜찮아요.]소희는 한 가지 일이 마음에 걸렸다. 저녁에 임구택과 밥을 먹을 때도 얘기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고 소희가 일하고 있는 도중에 미나가 달려오더니 막대사탕 하나를 소희에게 건넸다.소희는 막대사탕을 받으며 물었다.“왜 이렇게 좋아해요?”탁자 위에 엎드려 방긋 웃으며 말하는 미나였다.“생리가 왔어요.”“어머, 잘 됐네!”미나는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이렇게 임신하는 거 두려워할 바엔 평소에 피임 잘해요.”“꼭 할게요.”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사실 임신이 두려운 건 제가 아니라 남자친구예요. 그래서 계속 저한테 압력을 넣는데 그러고 보니 절 그다지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왜 그렇게 생각해요?”“만약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임신하는 걸 두려워해야 할 게 아니라 임신하기를 바라고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미나는 삐진 어투로 말을 하자 소희가 달랬다.“아마 결혼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죠.”“아무 상관없어요. 사귄 지 2년이 지났고 임신하고 결혼하기 딱 좋잖아요.”미나는 속상해하며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그 사람은 절 사랑하지 않거나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랑하지 않겠죠.”막대사탕이 입에서 사르르 녹자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참 소희 씨가 추천해 준 약 있잖아요. 제가 여러 약국 다녀보며 물었는데 없더라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하영임을 알자 소희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하영 씨.”“아직도 현장인가요?”“네.”“당신같이 글로벌한 유명 디자이너가 그런 곳에 있는 거, 재능 낭비 아닌가요? 진석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야겠네요.”“여기 끝나면 작업실로 돌아갈게요. 그리고 전 어디에 있든지 하영 씨한테 디자인 설계도 늦게 주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말고요.”“제가 왜 소희 씨한테 전화했는지 눈치챘나 봐요.”“이번 가을 디자인 다 나왔으니까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좋아요! 아 참, 강솔씨 돌아왔죠?” “네, 근데 잠깐은 작업실로 돌아가지 않겠다 하더라고요. 예능 프로그램의 예술 감독으로 발탁돼서 한동안 바쁠 겁니다.”“알겠어요. 강솔씨 돌아오면 한 번 모이시죠.”“그래요!”소희는 통화를 끝낸 후 자신이 GK에 보낼 가을 패션 디자인 설계도를 하영에게 보냈다. 오후에는 임구택이 마중을 나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소희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어디로 가는 거야?”“너 좋아하는 거 먹으러 가.”붉은 노을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눈동자는 더욱 빛이 났다. 소희는 익숙한 거리를 보이자 웃음이 절로 났고 임구택은 방고거리의 길가에 차를 멈추더니 소희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에 도착했을 때, 날이 막 어두워졌고 안에는 여전히 강성대학을 다니는 대학생으로 가득 찼다. 두 사람은 빈자리를 찾아 앉았고 사장님의 눈에 처음으로 띈 사람은 임구택이었고 반가워하며 그들에게 다가왔다.“또 왔어?”그녀는 말을 마치고서야 그녀를 등지고 있는 소희를 보았고, 더욱 놀라워했다.“둘이 함께 오니 보기 좋네.”소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임구택도 웃으며 입을 열었다.“먹던 대로 주세요.”“오케이!”사장님은 친절하게 대답하고 주방으로 갔다. 가게의 등불이 켜지자 알록달록한 장식용 등의 그림자가 소희의 얼굴에 비쳤다. 소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국수 안 좋아하지 않나?”“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아심은 말을 마치고 바로 물었다.“조하루는 어떻게 됐나요?”시야는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무사히 집에 데려다줬어요. 집이 꽤 가난해서 할아버지가 아프신데도 병원에 갈 돈이 없다고 해서 저희가 그 집에 돈을 좀 두고 왔어요.”“놀라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하루 군에게도 여러분이 무사하다는 걸 전했습니다.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했어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천만에요! 예전엔 우리가 잘 몰랐지만, 이제 앞으로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시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농담 그만하고, 빨리 떠나!” 시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시야는 아심에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기 사람들을 불러 함께 산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아심을 향해 말했다.“이 일은 진언 님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전부 제 생각이라서, 절대 진언 님을 탓하지 마세요!”아심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탓 안 해요. 장난이었다면서요?”시야는 아심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시언의 차가운 눈빛이 번쩍이자 급히 사라졌다.잠시 후, 아까까지 살기와 긴장으로 가득 찼던 오두막은 다시 조용해졌다. 원래의 고요하고 텅 빈 분위기로 돌아갔다. 방 한가운데의 불만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나뭇가지가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시언은 아심 앞에 앉아 물병을 건네며 물었다.“놀랐어?”아심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모두 무사하니 더 좋은 거 아니에요? 그렇죠?”시언은 아심을 바라보며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시야 대신 사과할게.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아심은 방금 전의 격렬한 감정이 갑자기 멈추자 머릿속이 멍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아니요, 물어볼 건 없어요. 다 알겠으니 우리 내려가요. 벌써 늦었어요. 도도희 이모가 걱정하고 계실 거예요. 방금도 전화했었어요.”시언은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지금 내려가자.”두 사람은 자리에서
굉음이 천둥같이 울려 퍼지며, 마치 지붕을 뚫을 듯했다.아심은 눈앞의 상황을 보고 멍하니 굳어버렸고, 시언은 아심을 두 팔로 꽉 끌어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이제 괜찮아. 시야가 장난친 거야.”“시야?” 아심은 멍한 얼굴로 시언이 발로 차서 바닥에 쓰러뜨린 거면 남자를 바라보았다.가면 남자가 몸을 일으켜 목소리 변조기를 벗고, 이어서 얼굴에 쓴 가면까지 벗었다. 그제야 드러난 것은 미소를 띤 잘생긴 얼굴이었다.“넘버세븐, 나 기억하지?”아심의 머릿속이 순간 멍해졌다.눈물은 여전히 그녀의 눈에 고여 있었고, 격렬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아심은 시야를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이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시언은 그녀를 풀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배고프지 않아? 뭐 좀 먹고 여기서 잠시 기다려.”시언은 아심을 의자에 앉히고 나서 시야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나와!”시야는 아심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건 내 생각이었어. 그냥 장난치려던 거야. 진언 님과는 아무 관련 없어. 혼나고 올 테니까, 이따가 와서 제대로 사과할게.”아심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너무나 강렬했던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멍한 상태였다.시언과 시야가 밖으로 나가자, 나머지 용병들은 일제히 일어나 벽 쪽으로 물러섰다. 그들은 총을 안고 긴장감 있게 서 있었다.뒤에 있던 면수건을 쓴 남자도 면수건을 벗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전 시야의 부하예요. 시야가 명령을 내린 거라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화가 나셨다면 그를 탓하세요!”그는 말이 끝나자 아심 앞에 놓인 구운 고기를 깨끗한 칼로 잘라 작은 조각들로 내밀었다....오두막 밖, 시언은 거대한 나무 아래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시야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갑자기 몸을 똑바로 세우고는 보고하듯 말했다.“진언 님, 보고드릴 일이 있어요.”나무 아래 걸린 백열등이 차갑게 빛났고, 시언의 눈빛도 차갑고 무미건조했다.“말해.
“안 돼!” 강아심은 손에 쥔 줄을 힘껏 당겼다. 가면 남자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아심은 줄을 약간 풀며 다시 외쳤다.“우릴 보내 줘! 그렇지 않으면 너도 살아남을 생각 하지 마!”갑자기 꽉 닫혀 있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불길이 휙휙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팽팽한 긴장감에 한층 더 싸늘한 기운이 더해졌다.새로 들어온 열 명이 넘는 무리가 무장한 채 총을 들고 아심과 시언을 겨누었다. 이에 시언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새로 들어온 무리의 리더는 역시 용병 차림을 하고 얼굴을 면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는 가면 남자를 향해 눈길을 주며 말했다.“네가 진언을 제압하지 못할 줄 알고 위에서 날 보냈다.”그러자 가면을 쓴 남자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여자를 과소평가했을 뿐이지!”면수건을 쓴 남자는 아심을 향해 말했다.“너에겐 한 생명밖에 없어. 목숨 하나로 하나를 바꿀 수 있어. 네가 나갈지, 진언이 나갈지 선택해.”또한 가면을 쓴 남자는 아심을 슬쩍 흘겨보며 말했다.“네가 날 죽여도 소용없어. 여기에 있는 이 많은 총과 사람들이 있어. 나를 죽이면 너희 둘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그러고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 알아둬.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야. 네가 남든, 진언 대인이 남든.”“네가 날 잡고 있으면 내 사람들은 조금은 신경 쓸지 몰라도, 그의 부하들은 내 목숨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 가면 남자는 새로 들어온 리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심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시언을 올려다보았고, 목소리는 쉰듯하지만 차분했다.“좋아, 내가 남을 테니 진언을 보내줘.”시언의 눈빛은 깊어지고, 아심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가면을 쓴 남자는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의리만 생각하지 말고, 남는 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아둬. 내가 충고하건대, 잘 생각하고 결정해.”“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심은 줄을 세게 죄며, 차가운 눈빛을 빛냈다.
아심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남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나랑 키스해줘, 제발.”시언은 고개를 숙여 아심의 부드럽지만 결연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점점 더 깊어졌다.아심은 그의 턱에 입을 맞추고 살짝 깨물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시언의 피부에 닿으며 얕은 숨결과 촉촉한 감촉이 시언을 감쌌다. 아심의 눈빛은 비에 젖은 듯 촉촉했고, 마치 갈고리처럼 그를 끌어당겼다.바깥에서 몰아치는 바람과 빗소리처럼, 남자의 분노가 서서히 진정되었다.시언은 눈꼬리를 날카롭게 치켜세우며 가면 남자를 한 번 노려본 후, 고개를 숙여 아심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맞추었다. 아심은 곧바로 그의 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였다.멀리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은 깊은 산속에 홀로 있는 듯 서로만을 바라보며 키스를 나눴다. 아심은 눈을 반쯤 감고 시언에게만 집중했다. 아심의 귀에는 오직 빗소리와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이 들렸다.아심은 시언을 더 유혹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매혹적이고 나긋나긋하게 행동했다.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낮고 부드러운 신음은 시언과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은밀한 소리였다. 마치 화려하게 피어난 꽃처럼, 그 소리는 남자의 정신을 단숨에 빼앗아 갔다.한참 후, 아심은 그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희미하게 말했다.“약속해 줘. 기회가 생기면, 곧바로 떠나요. 나 신경 쓰지 말고.”시언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아심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묶여 있던 줄이 느슨해졌다. 아심은 재빨리 손을 뽑아내고 시언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몸을 돌려 가면 남자 쪽으로 날아들다.가면을 쓴 남자와 그의 부하들은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아심이 방 가운데까지 나아갔을 때야 그들은 아심을 막으려고 했다.“쾅!”아심은 손에 쥔 줄을 휘둘러 덤벼드는 용병의 목에 감았다. 그는 줄에 맞아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아심은 발을 멈추지 않고, 한 손으로 줄을 휘두르며 방어하고, 다른 발로 다가오는 용병을 걷어차며 날려버렸다. 강렬한 눈빛이 목표를 향
강아심은 그에게 대답하고 싶지 않아 시선을 돌리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이 살짝 빛났다. 아심은 가능한 시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벽 구석에 깨진 도자기 조각이 보여. 우리가 어떻게든 가서 그걸 손에 넣어야 해.”깨진 도자기 조각은 절반이 먼지 속에 묻혀 있었고, 아마도 산에 올라온 사람들이 여기서 밥을 먹다 그릇을 깨뜨리고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놓은 것 같았다.여자의 숨결이 부드럽게 시언의 귀를 간질이며 퍼졌다. 아심의 부드러운 입술이 열렸다 닫히며 그의 귀밑 민감한 피부를 살짝 스쳤다. 시언은 몸이 순간 굳어졌다가 늦게서야 대답했다.“소용없어.”“뭐?” 아심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이 줄엔 합금 섬유가 섞여 있어. 칼로도 자를 수 없으니 도자기 조각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해.”시언이 낮게 말하자, 아심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낮게 속삭였다.“정말 당신을 특별대우해 주긴 하네요!”이번엔 시언이 이해하지 못했다.“응?”“아니, 그런 거지! 일부러 합금 줄까지 써서 묶어놨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분명 이런 대접 못 받을걸요!” 아심이 말하자, 시언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녀가 자신을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알 수 없었다.어느새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그들을 감시하던 사람들이 교대로 밖에 나갔다 돌아왔다. 마지막 교대 때는 가면을 쓴 남자가 부하들을 데리고 모두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텅 비었던 방은 순식간에 꽉 찼다. 용병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험상궂은 인상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방 안 공기를 긴장감으로 가득 채웠다.시언과 아심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어 섰다. 시언은 벽에 몸을 대고 서서 손으로 아심의 등을 감싸며 가면 남자를 주시했다.가면을 쓴 남자는 남자는 방 한쪽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른 용병들은 방 안에 나무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방금 비가 내린 터라 산속은 밤이 되면서 습기와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
강아심은 용병에게 조하루네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용병은 냉랭하게 알겠다고 대답하며 기억해두었고, 하루가 망설이자 바로 그를 들어 어깨에 둘러메고 밖으로 걸어갔다. 이에 하루는 몸부림치며 울먹이며 외쳤다.“삼촌, 누나!”점점 그 목소리는 멀어져 갔다.아심은 목이 메었지만, 하루를 떠나보내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선택임을 잘 알고 있었다.오두막 바깥에서는 시언에게 맞아 쓰러진 자들이 동료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부상이 심한 자들은 땅에 누워 쉬고, 가벼운 부상자들은 안으로 들어와 명령을 기다렸다.가면을 쓴 남자는 밖에 나가 전화를 걸고, 돌아와 자기 부하들에게 지시했다.“저들을 잘 지켜보고 있어. 윗선의 지시를 기다려.”“예!” 몇몇 용병들이 대답했다.가면 남자는 다시 밖으로 나갔고, 다른 용병들도 따라 나갔다. 오두막 안에는 두 명의 용병만이 남아 시언과 아심을 감시하고 있었다.잠시 후, 시언은 갑자기 아심을 들어 올려 돌며 옆에 있던 대나무 침대에 넘어졌다. 손발이 묶여 있어 힘 조절이 어려웠고, 그가 아심 위에 넘어지며 아심은 깜짝 놀랐다. 시언은 바로 몸을 뒤집어 아심이 자신의 위에 있도록 했다.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감시 중이던 용병들은 깜짝 놀라 총을 겨누었지만, 두 사람이 단순히 침대에 누워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자 천천히 총을 내렸다.아심은 약간 고개를 들어 아래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언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두 사람이 줄에 묶여서 뻣뻣하게 서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이렇게 누워 있는 게 그나마 나아.”아심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요?”그러자 시언은 태연하게 말했다.“이보다 더 위험한 상황도 겪어봤어. 걱정하지 마, 난 쉽게 죽지 않아.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도 절대 죽지 않을 거야.”아심은 그들을 감시하는 용병들을 한 번 흘깃 보고 나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를 바로 죽여 노도를
시언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노도를 위해 복수하러 온 건가?”가면을 쓴 남자가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변성기를 사용한 탓에 그 웃음소리는 거칠고 듣기 거북했다. 마치 산속에서 이빨을 드러낸 야수가 내는 소리 같았다.“진언이 설마 노도의 죽음을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하진 않겠지?”남자가 손짓하자, 바로 누군가가 하루를 그 앞으로 끌고 왔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하루의 목을 쓰다듬으며 냉소를 지었다.“이게 진언의 아들인가?”“아니!” 시언이 차갑게 응수했다.“보기엔 아닌 것 같지만, 진언은 무고한 아이가 본인 앞에서 죽는 걸 원하지 않겠지?”가면을 쓴 남자가 무심하게 말했다. 하루는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지고 온몸이 떨렸다. 하루는 고개를 돌려 시언을 바라보며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지만, 도움을 청하거나 가면 남자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는 않았다.이때 아심이 차갑게 말했다.“그 아이는 마을에 사는 평범한 농가의 아이야. 내가 인질이 될 테니 그를 풀어주고 집으로 돌려보내.”가면을 쓴 남자가 시언을 보며 물었다.“진언의 생각은 어때?”시언은 들고 있던 총을 내던졌다.“우리 조직에는 조직만의 규칙이 있어. 여성이나 아이를 인질로 잡는 건 가장 비열한 용병들만 하는 짓이야.”“너희들이 원하는 건 나니까 나를 마음대로 처리해. 하지만 여자와 아이는 산 아래로 보내.”아심이 시언을 보며 고개를 가볍게 젓자, 시언은 그녀를 바라보며 낮고 깊은 눈빛을 보냈다.“내 말을 들어.”아심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때, 가면을 쓴 남자가 거칠게 웃음을 터뜨렸다.“그 아이는 풀어줄 수 있어. 하지만 이 여자는 안 돼. 이름은 넘버세븐. 진언의 곁에 있었던 사람이지? 내가 틀리지 않았군!”시언은 눈을 가늘게 뜨며 가면 남자를 노려봤다. 그의 시선은 차갑게 얼어붙었다.“그럼 아이부터 풀어줘!”“서두르지 마. 그 아이가 내 손 안에 없으면, 이 사람들로는 진언을 막아낼 수 없어. 내가 그 정도는 알고
강아심이 몸을 드러내는 순간, 밖에 있던 사람들이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창문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두 개의 창문을 지키기에 역부족이었던 아심은 결국 한 사람과 몸싸움을 벌이게 되었다.아심은 자신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가능한 한 빠르고 강력하게 상대의 약점을 노려 공격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창문을 통해 밀려들었고, 하루가 숨던 곳에서 고개를 내밀자 한 고용병이 그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들어가!” 아심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발로 근처에 있던 나무 의자를 걷어차 상대의 어깨를 가격해 총을 떨어뜨렸다.“탕!” 총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방아쇠가 당겨졌고, 총알이 벽을 뚫고 나갔다.아심은 두 명을 밀어내며 하루가 숨은 대나무 침상으로 다가가 그를 보호했다. 그 순간 또 다른 고용병이 방 안으로 뛰어들어 하루가 숨은 침상 밑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아심은 몸을 날려 고용병의 총을 걷어차며 떨어뜨렸고, 다시 그 총을 잡으려는 찰나 또 다른 고용병 두 명이 그녀를 공격해 왔다.아심은 한 남자의 팔을 비틀어 탈골 시키고, 몸을 회전시켜 다른 남자의 복부를 강하게 가격했다. 아심의 힘은 이 고용병들보다 약했지만 몸놀림이 민첩하고 공격이 매끄러워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그러나 그 순간, 대나무 침상 위로 한 남자가 뛰어올라 침상을 들어 올리며 하루를 붙잡아 칼을 그의 여린 목에 들이댔다.“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이 아이를 죽일 거야!”이와 동시에 문이 거칠게 열리며 시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시언이 지나온 길에는 이미 쓰러진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시언의 등장에 방 안의 고용병들은 더욱 경계하며 총을 모두 그에게 겨누었다.가장 가까이 있던 고용병이 아심의 머리에 총을 겨누자 시언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총으로 겨누지 마.”고용병은 시언의 서늘한 시선을 받자 손이 떨렸지만,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시언은 천천히 아심 쪽으로 걸어갔다. 고용병의 눈빛은 두려움이 엿보였고, 본
조하루가 즉시 과일 주스를 시언에게 내밀며 말했다.“삼촌, 이거 드세요. 저를 그렇게 오랫동안 업어 주셨잖아요. 고마워요!”시언은 얇게 입가를 올리며 주스를 다시 돌려주었다.“난 누나와 장난친 거야.”“아...”시언은 최대한 표정을 부드럽게 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효과는 없었다. 조하루는 멍하게 대답하며 다시는 시언을 쳐다보지 못했다.아심은 입술을 꽉 다물며 웃음을 참았고, 차마 대놓고 웃을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려 빵을 베어 물었다.숲속에서 한 마리 새가 날아와 창가에 앉아 방 안을 들여다보며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쭈쭈 하고 소리를 내면서. 아직 인간에게 위협을 느껴본 적 없는 새는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아심은 빵 부스러기를 조금 떼어 창가에 놓았다. 새는 신나게 부리로 쪼아먹었지만 다 먹기도 전에 갑자기 날아가 버렸다. 시언은 창 아래에 서 있는 아심을 보며 반쪽 남은 빵을 들어 올렸다.“천천히 먹어, 난 밖에 좀 보고 올게.”아심은 시언이 문을 나가는 걸 보고 하루에게 속삭였다.“볼일 보러 가야 해? 삼촌이랑 같이 가면 돼!”하루는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어갔다. 아심은 천천히 빵을 다 먹고 물병을 집어 들고 막 마시려던 순간, 밖에서 탕! 하고 커다란 총성이 들려왔다.아심의 얼굴이 굳어졌고,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문이 갑자기 열렸다. 시언이 떨고 있는 하루를 방 안으로 밀어 넣고는, 곧바로 따라오던 한 남자를 발로 차서 밖으로 날려 보냈다.그는 고개를 돌려 매우 빠르게 말했다.“지켜, 절대 나오지 마. 창문도 다 잠가!”문이 열리는 그 순간, 아심은 이미 상황을 확인했다. 그들은 이미 포위당한 상태였다. 나무집 주위는 전부 위장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용병들로 가득했고, 적어도 스무 명이 넘었다.문이 닫히고 난 뒤, 바깥에서는 치열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아심은 조하루를 안전한 곳에 숨기고 두 개의 창문을 빠르게 닫은 뒤, 창을 야생 동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