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허홍연이 갑자기 다가와 하온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내가 요요를 보고 있을 테니까, 두 사람 편히 이야기 나눠요.”허홍연의 눈빛이 너무나도 수상하여 청아는 허홍연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더욱 난처해져 고개를 숙였다.“괜찮습니다, 제가 요요랑 놀고 있을 게요.” 하온이 바삐 앞으로 나서며 요요를 안으려고 팔을 뻗었고, 허홍연이 유난히 열적정으로 손을 흔들었다.“아니에요, 젊은이들끼리 이야기해요. 요요야, 외할머니 방에 가서 놀까?”허홍연의 물음에 요요가 자애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 허홍연을 한번 쳐다보고, 또 다시 고개를 돌려 청아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러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잠시 침묵을 지킨 후 고분고분 허홍연을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그러나 정씨네 가족들이 아직 돌아가지 않은 이상 허홍연은 당연히 요요랑 계속 방에서 놀아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분만 설렁설렁 놀아주다가 청아의 휴대폰을 꺼내 요요에게 건네주었다.“요요야, 외할머니는 손님 접대하러 다시 나가야 하니까 혼자서도 조용하게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지? 그리고 엄마 지금 하온 아저씨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절대 방해하지 말고.”“엄마랑 하온 아저씨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두 분이 지금 맞선 보고 있어. 요요 맞선이 뭔지 알아?”요요의 나이에 맞선이 무엇인지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요요는 말똥말똥한 두 눈으로 허홍연을 바라보며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요요는 엄마랑 하온 아저씨가 맞선 보는 게 싫어요.”허홍연이 듣더니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요요는 아직 어려서 몰라. 나중에 하온 아저씨가 엄마랑 잘 되어서 요요의 새 아빠가 되어주는 게 얼마나 좋아?”“안 좋아요!”요요가 고집이 섞인 말투로 고개를 저었고, 허홍연이 보더니 바로 화 난 척 두 눈을 부릅뜨고 요요를 훈계했다.“요요야, 좋다고 해야지! 그리고 하온 아저씨도 좋다고 해야 해, 그래야만 네 엄마가 행복해질 거니까.”“
“네!”요요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휴대폰을 들고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문 쪽으로 뛰어갔다.하지만 문 손잡이의 위치는 꽤나 높았고, 아직 1미터도 안 되는 요요는 까치발을 들어가면서까지 힘들게 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다 여러 번의 시도만에 겨우 문을 열었고, 사람들로 가득 찬 거실을 한번 훑어보고 나서 즉시 청아한테로 달려갔다.한참 하온에게 물을 따라주고 있던 청아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요요를 발견하고 즉시 웃으며 물었다.“너 어디 갔었어, 요요야?”요요가 자기 손보다 훨씬 더 큰 휴대폰을 청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엄마, 아저씨가 엄마를 찾으세요!”“아저씨? 어느 아저씨?”요요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고개 숙여 들여다본 청아는 수신 번호를 확인한 순간 멍해졌고, 그 바람에 찻주전자 속의 물이 흘러나와 하마터면 청아의 손을 데일 뻔했다.이에 하온이 즉시 다가와 찻주전자를 받아 한쪽에 내려놓고 긴장해하며 물었다.“왜 그래요? 화상 입은 거 아니에요?”“괜찮아요.”“괜찮기는! 어디 봐 봐요.”“아니요, 진짜 괜찮습니다.”“가만히 있어봐요, 그러다 흉이라도 지면 어떻게 하려고요?”[…….]휴대폰 맞은편에서 두 사람의 ‘애정’ 대화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똑똑히 듣고 있던 장시원은 더는 참지 못하고 노호하며 청아를 불렀다.[우청아!]분명 스피커폰을 켜지도 않았는데 장시원의 목소리는 여전히 휴대폰을 뚫고 나와 온 거실에 퍼졌고, 순간 웃으며 떠들고 있던 사람들이 입을 다 물고 요요 손에 들린 휴대폰을 바라보았다.그 모습에 난감하여 얼굴색까지 붉어진 청아는 바삐 휴대폰을 건네받고 주위 사람들을 향해 해석했다.“저희 대표님이세요, 급한 일이 있으신 모양인데, 저 잠시 전화 받고 올게요.”그러면서 휴대 폰을 들고 황급히 허홍연의 침실로 들어갔고, 허홍연이 급히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청아가 아무래도 세계 명문대를 나왔으니 회사 대표님이 청아를 엄청 중시하나 봐요. 이번에도 틀림없이 중요한 일이 있어 청아를 저렇게 급히 찾고 있
청아도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전 대표님을 속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건 제 개인적인 일이고 업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건데, 대표님께서 왜 이렇게 화를 내시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맞는 말이긴 했다.그래서 장시원은 깊이 숨을 한번 들이마셔 평정심을 되찾은 후 차가운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당장 회사로 와.]“오늘 토요일인데요?”[주말 야근, 몰라?]“압니다. 귀하신 대표님께서 내려준 명인데, 곧 도착하겠습니다.”[요요도 함께 데려와.]“요요는 왜요?”[우청아, 내 말에 의문을 품지 말고, 토도 달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해.]여전히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한 후 장시원은 청아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렇게 무정하게 꺼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청아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갑갑해졌다. 가뜩이나 허홍연이 강박적으로 그녀와 하온을 함께 엮은 일 때문에 화가 나 죽을 지경인데 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장시원에게 욕을 먹었으니.‘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다들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데?’‘왜 모든 일을 다 내가 책임져야 하냐고!’불과 반나절만에 쌓인 억울함은 밀물 마냥 거세게 밀려왔고, 청아는 순간 눈물을 흘릴 뻔했다. 하지만 여긴 우강남의 집이고, 밖에는 아직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청아는 결국 그 억울함을 짓누르며 평정심을 되찾은 후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 마냥 문을 열고 나갔다.그리고 청아를 보자마자 허홍연이 궁금해서 물었다.“대표님이 왜 널 찾으신대?”청아는 허홍연과 우강남에게 단지 국내에서 괜찮은 회사를 찾아 당분간 치카고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고 알렸을 뿐, 그 회사가 장씨 그룹이라는 건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니 허홍연과 우강남은 당연히 금방 전화가 걸려온 게 장시원이라는 건 모르고 있었고.“아, 그,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 지금 바로 회사로 오라시네요?”“뭐? 지금?”허홍연이 의아해하며 묻자 옆에 있던 우강남이 덩달아 입을 열었다.“이렇게 급하게 가는
“그럼 요요가 나중에 아저씨한테 가서 해석할 게요, 외할머니가 요요를 보고 싶어해서 엄마가 지각한 거라고.”어른 마냥 눈썹을 찌푸리고 청아를 위해 생각해 주고 있는 요요의 모습에 청아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요요를 품에 안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요요는 어쩜 이렇게 철이 들었을까?”“요요는 엄마가 매일 기뻐했으면 좋겠어요. 만약 엄마가 외할머니 집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다시는 가지 마요.”청아는 순간 목이 메었다.‘요요가 다 알고 있었어.’……토요일이라 회사에 야근하러 온 사람은 엄청 적었다.청아는 요요를 데리고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라 타 바로 39층으로 향했고, 39층에 도착한 후 청아는 요요를 자신의 자리로 데리고 가서 의자에 앉혔다.“엄마 지금 아저씨에게 업무 보고하러 가야 하니까, 요요는 조용하게 여기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 절대 함부로 뛰어다니지 말고.”“네, 알았어요. 엄마도 빨리 가 봐요, 아저씨가 또 화를 내기 전에.”“그래, 요요 제일 착하지.”청아가 요요의 이마에 뽀뽀를 한번 하고는 일어나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마침 장시원이 사무실에서 나와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고, 그걸 본 청아는 놀라서 얼굴색마저 변했다.장시원은 그러는 청아를 차갑게 한번 흘겨보았다. 하지만 요요가 보는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라 결국 참았고, 심지어 고개를 돌려 요요를 바라본 순간 얼굴에 바로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요요야.”너무 순간적으로 변해버린 장시원의 표정에 청아는 속으로 엄지를 내밀었다.그리고 장시원의 부름에 요요가 두 팔을 벌렸다. 장시원이 자신을 안아 올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이에 장시원이 바로 요요의 앞으로 다가가 요요를 품에 안았다.“아저씨 보고 싶었어?”“네! 엄청 보고 싶었어요.”“아저씨도 요요가 너무 보고 싶었어.”장시원은 사랑이 가득 담긴 두 눈으로 요요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러자 요요가 순간 억울하고 불쌍한 표정을 드러내며 장시원을 향해 물었다.“
장난감을 쌓고 있던 장시원의 손은 요요의 대답에 순간 멈추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장시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외할머니의 말이 틀렸어. 네 엄마는 그 아저씨와 함께 있게 되면 결코 행복해지지 않을 거야.”“왜요?”요요가 듣더니 바로 똘망똘망한 두 눈으로 장시원을 바라보며 물었다.이에 장시원이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둘이 맞지 않으니까.”너무 어른들 세계의 일이라 알아들을 수 없었던 요요는 잠깐 망연한 표정을 지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그럼 아저씨는 우리 엄마랑 어울려요?”“아니. 네 엄마가 아저씨를 좋아하지 않거든.”말투는 여전히 덤덤했지만 그 말을 하고 있는 장시원의 눈빛에는 쓸쓸함이 섞여 있었다.“엄마한테 좀 잘해 줘봐요, 그럼 엄마가 분명 아저씨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쳇, 됐거든요? 아저씨는 요요만 있으면 돼.”“걱정 마요, 아저씨. 제가 엄마 앞에서 좋은 말을 많이 해 줄게요.”요요가 어른 마냥 장시원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했고, 그러는 요요의 모습에 장시원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뭐라고 할 건데?”요요가 눈동자를 한번 돌리더니, 손에 든 우유 떡을 장시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엄마가 아저씨를 좋아하게 되면, 엄마도 아저씨가 사주는 우유 떡을 먹을 수 있다고요.”“하하하!”동글동글한 우유 떡을 고사리 같은 손에 집어 들고 진지하게 대답하는 요요의 모습이 너무 깜찍하여 장시원은 결국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똑똑똑-그런데 이때 밖에서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문을 열고 들어선 청아는 단번에 카펫에 앉아 요요가 한 말 때문에 호탕하게 웃고 있는 장시원을 발견했다.그리고 그 순간, 청아는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저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 오랜만에 봐.’하지만 청아를 본 순간, 장시원은 다시 웃음을 거두었다.“엄마! 아저씨가 그러는데, 엄마가 아저씨를 좋아하게 되면 엄마에게도 우유 떡을 사준대요!”“…….”잠깐 멍해 있던 청아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장시원이 화를 내기도
찌개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청아는 얼른 옥수수를 작은 토막으로 잘라 냄비에 넣었다. 그러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장시원을 쳐다보니 그는 아직도 그 줄기상추를 씻고 있었다, 모든 줄기 틈새까지 빠짐없이 깨끗하게.이에 청아가 바삐 입을 열어 장시원을 제지했다.“됐습니다!”장시원은 그제야 줄기상추를 꺼내 좌우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청아에게 물었다.“껍질은 뭘로 벗기는데?”청아는 껍질 벗기는 칼로 한번 시범을 보였고, 장시원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아가 배워준 대로 천천히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분명 잘 벗기고 있는데 청아는 왠지 불안 불안하여 장시원의 손만 주시하고 있었다, 자칫 했다간 손을 다치기라도 할까 봐.다행히도 장시원이 잡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도련님 치고는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동작이 점점 능숙해졌다.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청아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수시로 고개를 돌려 장시원 쪽 상황을 살폈다.“껍질 벗기는 칼이 예뻐, 아니면 내 손이 예뻐?”청아의 걱정 어린 눈빛에 손등까지 따끔해진 장시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청아를 행해 물었다.“네?”너무 뜬금없는 물음이라 청아는 순간 멍해졌다. 그러다 안절부절하게 상사의 의도를 한참 분석하다 조심스레 대답했다.“당연히 대표님의 손이 더 예쁘죠?”“그걸 물은게 아니잖아. 왜 자꾸 돌아보냐고.”청아가 듣더니 묵묵히 고개를 돌려 다시 자신의 일에 전념했다.‘관심해 줘도 이 태도야!’‘다시는 말 안 해!’얼굴에 억울함과 노여움이 너무 뚜렷하게 섞여 있어 장시원은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장시원도 청아한테 쌓인 게 많았는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런 표정을 드러낸다고 해서 오늘 일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무슨 일을요?”‘껍질 벗기는 칼과 비교했던 일?’장시원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그 의사와 맞선을 본 일.”“저희 선 안 봤어요!”“너희들 오늘 맞선을 봤는지 안봤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싶
“한번 시도해봐도 될 것 같은데?”장시원의 대답에 요요가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눈알만 팽글팽글 돌리고 있었다.한 어른과 어린아이가 나란히 의자에 앉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로 조화롭기만 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청아의 마음속은 착잡하기만 했다.‘장시원이 만약 요요가 자신의 아이라는 걸 알게 되면 아마 엄청 기뻐하겠지?’‘하지만 그 사실을 장시원에게 알려주게 되면 난 요요를 잃게 될 거야.’‘그러니 난 반드시 이 비밀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영원히 꺼내서는 안 돼.’……얼마 지나지 않아 반찬은 다 차려졌고, 세 사람은 처음으로 함께 한 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한 느낌도 없어 보이는 장시원과 요요와는 달리 청아는 아무리 해도 진정할 수가 없었다.다행히도 장시원은 밥 먹으면서 요요만 돌보느라 청아를 상대할 시간이 없었고, 점심시간은 그런대로 조용하게 끝났다.그러다 오후 3시쯤이 되어 팩스를 받은 청아는 장시원에게 가져다주려고 다시 대표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어느새 몸에 장시원의 양복 외투를 걸친 채 장시원의 품에 기대어 잠든 요요를 발견하고 청아가 놀라 급히 요요를 불렀다.“요요야.”“쉿! 자게 놔둬, 깨우지 말고.”장시원은 청아가 요요를 깨우기라도 할까 봐 손가락을 입술 쪽에 대고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주었지만 청아는 여전히 미안해하며 말했다.“오래 안고 있으면 팔이 많이 힘들 겁니다, 제가 그냥 요요를 바깥에 있는 소파에 눕힐 게요.”“괜찮아, 깨우지 마. 팩스는 여기에 내려놓고, 가서 일 봐.”“네.”장시원의 말투가 너무 단호하여 청아는 결국 아무 말을 못하고 팩스만 탁자 위에 내려놓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그러다 문어귀에 도착했을 때쯤 청아는 여전히 시름이 놓이지 않았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았다.장시원은 어느새 등을 소파에 기댄 채 왼팔로는 요요를 안고 있었고, 오른손으로는 팩스를 들고 열심이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또 가끔씩 고개를 숙
장시원이 차가운 눈빛으로 청아를 쳐다보며 덤덤하게 물었다.“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데?”“두, 두렵긴요! 저는 단지 아이를 데리고 회사로 가는 게 규칙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그런 것뿐입니다.”‘거짓말.’장시원은 차갑고 예리한 눈빛으로 청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요요랑 작별인사를 했다.“안녕, 요요야. 아저씨 생각하고.”“네! 아저씨도 요요와 엄마 생각 많이 하고요!”청아는 계속 차안에 앉아있었다간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얼른 요요를 안고 차에서 내렸다.그러고는 장시원의 차가 시선속에서 사라진 후에야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장시원이 곁에 없으니까 청아는 확실히 긴장이 많이 풀린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웃으며 요요를 향해 말했다.“요요야, 장 아저씨는 엄마의 상사야. 그러니까 아저씨 앞에서 그렇게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 돼. 아저씨를 너무 귀찮게 해서도 안 되고, 아저씨가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하지만 아저씨는 요요의 친구인걸요?”“요요야,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함부로 말 해서는 안 돼.”“네…….”갑자기 기운 없이 청아의 어깨에 엎드려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요요의 모습에 청아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저녁에 뭘 먹고 싶어? 엄마가 해줄게.”분명 맛있는 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두 눈이 반짝반짝거렸던 요요인데 오늘따라 흥미가 없어 보였다.“엄마, 요요는 아저씨가 보고 싶어요. 아저씨를 우리 집으로 불러와 같이 저녁 먹으면 안 돼요?”“아저씨는 바빠!”“네…….”그렇게 청아가 요요를 안고 집에 들어서는데 마침 허홍연의 전화가 걸려왔다.허홍연의 말투에는 기쁨이 배어 있었다.[청아야, 하 선생과는 어떻게 되었어?]“저 하 선생님과 똑똑히 말했어요,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가능성도 없을 거라고.”[청아야! 너 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거니? 하 선생의 조건이 얼마나 좋은데, 그것도 주동적으로 너를 쫓는 건데, 대체 왜 거절하는 거야? 너 그러다 앞으로 하
우청아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창밖을 가로지르는 새 한 마리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한 뒤, 차분하게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우리 집안일이 궁금하시면,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왜 제가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엄마가 힘들게 살아온 거 저도 잘 알아요.”“하지만 저는 이미 갚을 만큼 갚았고, 더는 후회할 것도 없어요. 바쁜 일정이 있어서, 외삼촌과 이모는 이만 보내드릴게요.”청아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갔다.“청아야!”허홍천이 청아를 붙잡았다.“부모가 자식에게 잘못할 수도 있는 거야. 하지만 어떤 부모도 자식을 해치려고 하진 않아!”“설령 네 엄마가 편애했거나 실수했더라도, 네가 딸이면서 어머니에게 원한을 품고 사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냐?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넌 불효자가 되는 거야!”하서형도 거들었다.“청아, 네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는구나. 네가 약혼식에 초대하지 않겠다고 하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어. 몸도 안 좋아졌고.”“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이번 기회를 계기로 가족 간의 오해를 풀면 되잖아.”“친엄마랑 무슨 그렇게 깊은 원한이 있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니?”하지만 청아는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조용히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허홍천은 집안에서 나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평소 거들먹거리던 그가 이렇게까지 몸을 낮춰 사정하는데도 청아가 들은 척도 하지 않자, 결국 분노를 터뜨렸다.“청아야, 너 정말 이렇게 매정하고 가족도 모르는 사람이 될 거야? 나중에 남들이 널 보고 배은망덕한 인간이라고 욕해도,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그 순간, 청아의 발걸음이 잠깐 멈췄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더 차가워졌다.“그렇게 말하라고 해요.”청아는 다시 걸음을 옮겨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밖에서 막 들어서려던 장시원과 마주쳤다.시원은 한 손을 들고 있었다. 마치 방금 막 문을 열려고 했던 것처럼. 청아를 본 순간, 그의
그러자 직원들은 즉시 지시를 따랐다. 우청아는 허홍연과 확실히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정소연 역시 이제는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하지만 청아는 스스로 몇몇 사람들의 바닥을 너무 높게 평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회사에서 외삼촌 허홍천과 이숙모 하서형을 보게 되면서.두 사람은 미팅룸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청아가 들어서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미소는 청아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지나치게 다정하고 온화한 것이었다.“청아야!”하서형이 다가와 친근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외숙모 좀 보자, 어릴 때부터 미인이 될 거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구나!”허홍천도 잽싸게 맞장구쳤다.“우리 청아는 예쁜 것뿐만 아니라, 머리도 비상하지!”청아는 두 사람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허씨 집안에서는 유일하게 우씨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청아가 예전에 외삼촌 집을 방문했을 때, 허홍천은 늘 우월감을 내비쳤고, 말투도 오만했다.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거들먹거리기 일쑤였다.그런데 허홍연은 오히려 그 가족을 붙들고 환심을 사려했고, 덕분에 사촌인 허연은 청아네 집안을 더욱 깔보았다.청아는 담담하게 말했다.“외삼촌, 외숙모, 앉으세요.”허홍천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을 쏟아냈다.“청아, 이게 네가 운영하는 회사야? 직접 와서 보니 믿기지 않는군. 내 조카가 이렇게 대단하다니, 남들한테 자랑할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하서형 역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역시 명문대 졸업생은 다르네! 우리 집 허연이도 청아만큼만 따라가면 좋겠는데, 그럼 더 바랄 게 없지!”“우리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그러니까, 청아가 최고야!”“네 엄마는 복이 많아. 이렇게 능력 있는 딸을 뒀으니 말이야!”두 사람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웃어 보였다. 그러나 청아는 시계를 힐끗 보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외삼촌, 외숙모, 무슨 일로 오셨어요? 곧 회의가 있어서요.”하서형은 재빨리 허홍천을 바라보
우청아는 점점 걸음을 재촉하다가 결국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란 장시원의 눈빛에 바로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청아는 시원을 꼭 끌어안으며 몸을 살짝 떨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스스로 해결했어!”청아는 웃으며 고개를 들어 시원을 바라보았다.“당신을 이용해서 위협한 거긴 하지만 말이야.”시원은 울면서 웃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청아의 표정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려왔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깊고 따뜻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잘했어.”시원은 한 손으로 청아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 청아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의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고, 다정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괜찮아. 세상 모든 부모가 다 온전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넌 나와 요요가 있잖아.”“그리고 널 기다리고 있는 시부모님도 있어. 넌 잃은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을 거야.”청아는 더욱 시원의 품을 꼭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하늘이 내게 날 너무 잘해주는 것 같아.”시원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아니, 하늘이 잘해주는 게 아니라 남편이 잘해주는 거지!”청아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청아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의 품에서 해맑게 웃었다.시원은 그녀가 조금이나마 기운을 되찾자 안심이 됐다. 이윽고 그는 청아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자, 이제 가자. 남편이 데려다줄게.”어느덧 해가 저물어 퇴근 시간도 훌쩍 넘었다. 정말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청아는 노을이 반사된 차창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차 타고 왔어!”“그럼 네가 운전해. 난 뒤에서 따라가면서 지켜줄게.”시원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그럼 내가 얼마나 운전 실력이 늘었는지 보여줄게!”“내 아내가 이렇게 똑똑한데, 안 봐도 알지. 벌써 프로 레이서 급이겠지!”그의 칭찬에 청아는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문을 닫는 청아의 동작조차도 평소보다 더 힘 있고 세련돼 보였다.두 대의 차가 차례로 출발했다.
정소연은 우청아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일단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아가씨, 어머님은 그저 아가씨 약혼식에 가고 싶을 뿐이에요. 예물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요.”하지만 청아의 태도는 변함없었다.“죄송하지만, 초대장은 이미 다 배포됐어요!”그제야 허홍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내가 친엄마인데, 딸의 약혼식에 가는 데 청첩장이 필요하다고? 그런 소린 난생처음 들어보네!”“분명히 말해 두는데, 나는 이 결혼 반대야! 그러니 약혼식 같은 건 꿈도 꾸지 마!”소연은 다급히 청아를 달래려 했다.“아가씨, 왜 어머님을 화나게 하시는 거예요? 우리 가족끼리 그렇게 깊은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난 일은 그냥 잊죠.”“어머님이 정말 반대해서 약혼식에서 소란이라도 피우면...”소연은 말하면서 슬쩍 허홍연에게 눈짓을 보내고는 살짝 비웃듯 말했다.“아가씨 약혼식이 과연 제대로 진행될까요? 알다시피 장씨 집안에서 초대한 사람들은 모두 강성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잖아요.”“근데 그 자리에서 소란이 벌어지면, 모두 난처해질 거라고요!”허홍연도 곧바로 맞장구쳤다.“청아야, 너무 고집부리지 마! 나를 끝까지 몰아붙이면, 정말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청아는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조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청아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럴 줄 알았어요. 내가 광명을 찾으면, 어떻게든 나를 어둠 속으로 끌어내리려고 할 테니까요.”청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연과 허홍연을 내려다보았다.“엄마, 만약 제 약혼식에서 소란을 피우면, 오빠는 곧바로 직장을 잃게 될 거예요. 심지어 강성에서도 버티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이내 청아의 시선이 소연을 향했다.“그리고 새언니 동생 공무원 시험을 본다면서요? 그러니 가만히 계세요. 안 그러면, 평생 공무원 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요.”“제 말 흘려듣지 마세
허홍연은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청아를 바라보니, 반년 사이에 그녀가 많이 변한 것 같았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정소연은 눈빛을 번뜩이며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며 말했다.“아가씨,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아무래도 우리 집안과 장씨 집안의 재산과 지위 차이가 크잖아요.”“그러니 예단과 혼수도 똑같을 수 없는 거고. 어머님도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네 혼수를 준비해 줄 거예요.”허홍연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맞아, 맞아!”“엄마가 준비한다고요?” 청아는 마치 우스운 농담이라도 들은 듯 가볍게 웃었다.“왜 엄마가 제 혼수를 준비해야 하죠? 애초에 양육비 책임 협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나요? 오빠가 엄마를 부양하고, 저는 아빠를 부양하기로 했잖아요.”“제가 시집가는 것도 아빠가 챙겨야죠. 다들 보셨다시피, 아빠는 지금 휠체어를 타고 계세요.”“돈이 없어서 제 혼수를 마련해 줄 수 없어요. 그러니 예물도 필요 없겠네요.”그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덧붙였다.“그리고, 새언니 출산이 임박해서 외출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래서 따로 엄마랑 새언니가 말하는 그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어요.”“초대장이 없으면 아예 들어올 수 없으니, 굳이 오지 않으셔도 돼요.”허홍연과 소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던 허홍연은 이내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청아야, 네가 결혼하는데 엄마를 부르지 않겠다고? 내가 널 20년 넘게 키웠는데, 정말 그 협의서 하나 때문에 나와 인연을 끊겠다는 거야?”청아는 냉랭하게 대꾸했다.“병원에서 아빠가 응급실에서 수술을 기다리며 보상 문제를 논의할 때, 엄마는 아주 시원스럽게 협의서에 서명했잖아요.”“그때 이미 모든 게 명확하게 정리된 거 아닌가요?”허홍연은 분노하며 소리쳤다.“그래도 난 네 엄마야! 장씨 집안에서 그렇게 성대한 약혼식을 치르는데, 신부의 부모가 안 보이면 남들이 수군거리며 뭐라고 하겠니?”화를 꾹 참으며
“아버지는 신경 쓰지 마세요. 곧 시합 있다면서요? 어서 아저씨랑 바둑 두세요.”우청아는 간병인을 향해 살짝 눈짓을 보내자, 간병인은 즉시 알아차리고, 우임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에 태워 방을 나갔다.“아저씨, 다른 분들이 아까 찾고 계셨어요. 우선 바둑 두시고, 조금 이따 모시러 올게요.”금세 방 안이 조용해졌다.청아는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과일 주스를 들이마셨다. 목이 말랐던 듯, 반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정소연이 바로 종이를 꺼내 건넸다.“천천히 마셔요. 밖에 너무 더웠어요?”이에 허홍연도 잔뜩 친절한 태도로 말했다.“다 마셨으면 내가 더 따라 줄게.”두 사람은 청아를 어떻게든 편하게 해 주려는 듯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청아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부드럽게 물었다. “오빠는 요즘 잘 지내요?”소연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늘 똑같지 뭐. 하루 종일 일만 하고, 번 돈도 많지 않고. 아가씨가 훨씬 낫죠!”허홍연이 맞장구쳤다.“그래서 내가 청아를 외국 유학 보낸 거야. 명문대 졸업한 사람이 다르긴 달라!”소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엄마도 그때 날 유학 보냈으면, 나도 지금쯤 재벌가 며느리 됐을걸요?”허홍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요즘 재벌가에서 며느리를 고를 때 집안보다는 외모랑 학력을 중요하게 보잖아.”소연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우리 시댁은 청아한테 감사해야겠네. 덕분에 좋은 유전자 받았잖아.”청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박하지도, 대꾸하지도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었다.그리고, 드디어 허홍연과 소연이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허홍연이 의도적으로 밝게 웃으며 말했다.“청아야, 너랑 장시원 사장이 약혼한다며? 이런 큰 경사가 있는데, 왜 엄마한테 말도 안 했어?”“내가 예전부터 말했잖아. 장시원 사장이 널 좋아한다고! 봐, 결국 내 말이 맞았지?”소연이 능청스럽게 맞장구쳤다.“아가씨, 우리한테 서프라이즈 해 주려고 했던 거죠?”
롤스로이스가 멀어지자, 서현진의 동료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와, 대박! 이렇게 화려한 차에, 직접 운전기사까지 동원해서 초대장을 배달하는 거예요? 현진 씨 친구, 진짜 재벌가에 시집가는 거 아니에요?”현진도 어리둥절한 채, 초대장을 열어보자 청아의 초대장이 확실했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고, 현진은 흥분한 목소리로 제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제니! 네 축의금, 내가 대신 전달 안 할 거야. 그러니 너 무조건 같이 가야 해!”...약혼식까지 10일 남았고, 청아는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웨딩드레스 피팅과 메이크업 테스트 정도만 마무리하면 됐다. 장시원은 그저 회사 업무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회사는 이미 고명기를 중심으로, 시원이 보낸 유능한 관리자들이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어느덧, 몇 년 동안 운영된 회사보다도 청아의 회사는 더 체계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이제 시간이 조금 여유로워진 그녀는, 운전 연습을 겸해 출퇴근을 직접 하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 며칠 동안은 시원이 조수석에 앉아 감독하듯 지켜보았다. 그러자 오히려 긴장감이 두 배가 되었다.청아가 강력하게 항의한 끝에, 결국 시원이 조수석에 타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혼자 운전하면서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속도를 내든, 천천히 가든, 항상 주변 차량들이 자신과 같은 페이스로 움직이고 있었다.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지만, 몇 번 반복되자 청아는 피식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이 사람, 정말 티 안 나게 감시하는 재주가 있네.’그러면서도 묘한 따뜻함이 밀려왔다.화요일 오후, 청아는 고객과 함께 공사 현장을 둘러본 뒤, 돌아오는 길에 요양원 앞을 지나게 되었다.‘아버지를 몇 주째 못 뵀네.’청아는 차를 돌려 요양원으로 향했다. 미리 연락하지는 않았는데, 그저 얼굴만 보고, 잠깐 인사만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하지만, 요양원에 도착하자마자 청아는 걸음을 멈췄다.소파 위 허홍연이 앉아 과일을 깎고 있었고, 정소연이 임신 검진 결과지를 들고 우임승에게 공
“아니.”이제니는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우린 오래전부터 연락이 끊겼어.”그러자 고윤정은 비웃으며 말했다.“나라고 해도 나도 안 갔을 거야. 몇 년 동안 연락 한번 없다가, 갑자기 약혼한다며 연락하는 거? 결국 축의금 받으려는 거 아니야?”그 말에 제니는 눈살을 찌푸렸다.“너무 속 좁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윤정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난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야.”그러다 문득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어차피 같은 동기인데, 우리도 한 번 가서 축하해 주는 게 어때?”한 사람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청아랑 몇 년 동안 연락도 안 했어. 굳이 찾아가서 돈까지 써야 할 이유는 없지.”윤정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축의금은 무슨 축의금이야? 우린 그냥 가서 얼굴만 비추는 거야. 청아가 명문대 출신이라면서? 도대체 어떤 재벌을 잡았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지?”그제야 분위기가 달라졌고, 윤정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다들 눈치챘다.그녀는 진심으로 축하하려는 게 아니라, 청아가 어떤 남자를 만났는지 보러 가겠다는 심산이었다.누군가는 애써 걱정하는 척하며 말했다.“그렇게까지 하는 건 좀 안 좋지 않을까?”그러자 제니가 단호하게 말했다.“난 그렇게 유치한 짓 안 할 거야. 그러니 너희도 그러지 마.”윤정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약혼식이지 결혼식도 아니잖아. 우리가 축의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가주기만 해도 고마워해야지.”다른 몇몇이 맞장구치며 말했다.“그러네! 그러고 보니 약혼식 어디서 한다더라?”제니는 한숨을 쉬었다. 이들은 축하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청아를 깎아내리고,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가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이들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았다.제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너희들끼리 얘기해. 난 갈 데가 있어서 먼저 가볼게.”그렇게, 제니는 더 이상 말도 섞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비록 몇 년 동안 청아와의 연락이 끊겼지만, 예전에는 친구였고, 설령 이후 친구가 못 되더라도 청
우청아는 초대 명단에 고명기 부부와 하성연, 고태형의 이름을 추가했다. 고태형이 정말 자신을 좋아한다면, 그를 약혼식에 초대하는 것이, 더는 미련을 갖지 않도록 정리하는 방법일 것이다.그리고 잠시 고민한 끝에, 대학 시절 친구였던 서현진의 이름도 적었다. 현진과 청아는 같은 학과, 같은 반이었고, 한때 무척 가깝게 지냈던 친구였다.우임승이 청아 몰래 현진에게 돈을 빌린 후, 현진을 포함한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멀어져 갔으나 현진만은 끝까지 남아 주었다.청아는 혹시 아버지가 현진에게 다시 손을 벌릴까 두려워, 알바가 너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선택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이번 약혼식에는 꼭 현진을 초대하고 싶었다.그것이 청아가 할 수 있는 조금이나마 늦은 사과이자, 다시 시작하는 계기였다.청아는 대학 시절 지도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동기 모임 단체 채팅방에 초대해 달라고 요청했다.곧 단체방에 초대된 그녀는, 현진의 연락처를 찾아 요청 메시지를 보냈다. 몇 초 후, 현진이 즉시 요청을 수락했고, 놀란 듯 메시지를 보내왔다.[청아야?]청아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현진아, 잘 지냈어?]그러자, 이번에는 바로 음성 통화가 걸려 왔고, 현진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너 대체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야? 단톡방에도 안 들어오고, 동창회도 안 나오고!다들 널 찾았어!]청아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작년에 강성으로 돌아왔어. 이제서야 연락하게 됐네.”청아는 잠시 뜸을 들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사실, 나 약혼하게 됐어. 그래서 너 초대하려고 연락했어. 시간 괜찮으면 와 줄 수 있어?”그리고 약혼 날짜를 알려주자, 현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너 약혼한다고? 와, 대박! 난 아직 남자친구도 없는데, 그때 연애 안 한다고 말하던 네가 제일 먼저 가네?]현진의 말에 청아는 웃으며 말했다.“너도 서둘러야지.”현진은 장난스럽게 물었다.[다른 동기들은 누구 초대했어? 그냥 다 같이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