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소연이 그들과 어울릴 수 있다면, 그녀의 인맥과 지위는 모두 다른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높이일 것이다.그들 두 사람은 그녀와 함께 이 영광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들은 소 씨네 집안 전체, 강성 전체에서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살수 있을 것이다.진원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격동되었다. 그녀는 심지어 소 씨네 본가와 큰집, 작은 집이 찾아와 그들에게 아부하며 소설아만이 소 씨네 집안의 가장 대단한 딸이라고 자랑하는 것이 아닌 상상까지 했다.소연도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소 씨네 집안에서 자리를 잘 잡아 본가더러 자신의 가치를 보게 해야 했다. 더 이상 그녀를 물건처럼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도록!이튿날 점심, 여정은 전화를 걸어 그들에게 토요일 오후 도 씨 어르신께 시간이 있으면 소연을 데리고 방문하러 갈수 있다고 알려주었다.정인은 이 소식을 진원과 소연에게 알려주었다. 몇 사람은 기뻐서 며칠간 잠을 잘 자지 못했고 이리저리 어르신의 취향을 알아보며 여러가지 귀중한 선물을 준비했다.토요일, 여정은 소가네를 데리고 어르신의 집에 갔다.차에서 진원은 소연 보고 이따 잘 표현해서 도 씨 어르신의 환심을 사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소연도 이번이 그녀의 인생에 중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손가락까지 모두 차가웠다. 그녀는 오늘 반드시 그녀가 배운 모든 것을 바쳐 도 씨 어르신의 호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차가 서양식 건물 밖에 멈추자 소연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짓고 대범하게 여정의 뒤를 따랐다.하인은 그들을 맞이했다. 도 씨 어르신은 그들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거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어르신을 보자 정인과 진원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고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여정은 한창 소연을 어르신께 소개하고 있었다.소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달콤하게 입을 열었다."어르신, 선생님께서 줄곧 어르신에 대해 언급하셨어요. 오늘 마
여정은 일어서서 웃으며 말했다."선배님."그는 고개를 돌려 소 씨 가족한테 소개했다."이 분은 저의 선배님인 진석이에요."소 씨네 세 사람은 즉시 일어나 눈앞의 젊고 영준한 젊은이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매우 놀랐다. 이 사람은 엄청 젊어 보였지만 뜻밖에도 여정의 선배였던 것이다.그들은 도 씨 어르신의 두 학생이 북극 디자인 작업실을 설립했다고 들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king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성이 진 씨였다. 설마 눈앞의 이 사람일까?여기까지 생각하니 몇 사람의 표정은 더욱 공손해졌다. 소연은 남자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고 긴장함에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진석은 어르신 곁에 앉았다. 그는 기질이 우아하고 담담했다."소연 씨의 그림은 약간의 경지가 부족했어요. 특히 여정 선생님의 그림과 함께 놓여 있었으니 차이가 선명했죠. 이번 그림 전시회는 강성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의 문화 교류이기도 했기에 내가 사람들더러 소연 씨의 그림을 철거하라고 했어요."정인과 진원은 눈을 마주치며 매우 난처했다.소연은 갑자기 입을 열며 맑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석 선생님의 말이 맞아요. 여정 선생님께서도 전에 제가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부족하여 그림을 그리는 경지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셨어요."진원은 완곡하게 입을 열었다."만약 도 씨 어르신께서 소연의 부족점을 좀 지적해 주셔서 그녀가 그림을 수정한다면 그 그림은 다시 전시할 수 있나요?"진석은 싸늘하게 말했다."우리가 그녀를 도와서 그림을 수정하면 그럼 이 그림은 누구의 것이 되는 거죠?"진원은 그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단번에 얼굴을 붉혔다.여정은 진석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진석이 재능이 뛰어나 줄곧 오만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도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을 이렇게 가혹하고 싸늘하게 대한 적은 거의 없었다. 오늘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왜 그는 조금도 소 씨네 가족의 체면을 봐주지 않는 것일까?여정은 인차 웃으
있어도 괜찮았다. 그녀에게 기회만 준다면 그녀는 반드시 그가 그녀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그런데 어떻게 하면 진석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날씨가 점점 더워지자 소희는 절제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마구 먹었다. 그 결과 생리가 왔을 때 그녀는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그녀는 다섯 살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서 몸이 줄곧 좋았지만, 유독 여자의 생리적 결함을 공략할 수 없었다.연희는 그녀에게 전화를 하며 그녀의 나른한 목소리를 듣고 그녀가 생리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하인더러 오골계 생강탕을 끓이라고 한 뒤 어정에 들고 왔다.그녀는 어정에 몇 번 왔었기에 매우 쉽게 소희의 집을 찾았다. 작은방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소희를 보며 연희는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다."너 죽을래, 배가 아픈데도 에어컨을 이렇게 춥게 틀어?"소희는 눈을 깜박였다."환자를 대할 때 좀 부드럽게 대할 순 없니?""그래, 내가 하겐다즈 두 박스 더 사서 한 입 한 입 먹여 줄게, 그럼 됐지?"연희는 에어컨을 끄면서 콧방귀를 뀌었다.소희는 그녀의 말을 듣고 갑자기 전에 구택이 콘돔 한 박스를 샀던 일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이불 안에 숨겨 몰래 웃었다."웃는 거 보니까 아직 덜 아프네. 일어나서 이거 마셔." 연희는 그녀의 이불을 젖혔다.소희는 방금 진통제를 먹었기에 좀 나아졌다. 그녀는 머리를 정리하며 침대에서 내려와 주방에 가서 생강탕을 마셨다.연희는 생강탕을 그릇에 부으며 소희에게 건네주었다."뜨거울 때 얼른 마셔."소희는 창백한 얼굴로 그릇을 들고 천천히 마셨다. 뜨거운 오계탕이 뱃속에 들어가자 그녀의 배는 즉시 따뜻해졌다.연희는 입을 열었다."요 며칠 너 밥하지 마. 내가 사람 시켜서 제때에 너한테 먹을 거 보내줄게."소희는 눈을 들어 물었다."너 안 귀찮아?""그럼 네가 우리 집에 오던가. 마침 우리 엄마도 요 며칠 네 걱정만 하시거든.""안 가. 난 스스로 나 자신을 돌볼 수 있어." 날씨가 워
밤 11시가 지나자 구택이 왔다.소희는 이불 속으로 내미는 그의 손을 잡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오늘은 안 돼요."구택은 그녀의 말을 듣고 얼른 손을 뺐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이상한 것 같아서 침대 머리맡에 있는 불을 켰다. 그녀의 안색은 무척 창백했다.그녀의 눈빛도 평소처럼 밝지 않아 마치 아픈 토끼 한 마리 같았다."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남자는 침대 옆에 앉아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네, 한 달에 한 번씩 아파요." 소희는 빛에 눈이 어질어질하여 곧 감았다."그럼 잘 누워있어요." 구택은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불을 끄고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소희는 마음이 쓸쓸한 데다 속이 좋지 않아 잠이 오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다시 열리며 남자가 다가와 낮은 소리로 물었다."잠들었어요?"소희는 눈을 번쩍 뜨고 어둠 속의 남자를 바라보며 그가 왜 다시 돌아왔는지 몰랐다."불 켤게요." 남자는 침대 머리맡으로 가서 불을 켰다.소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가 손에 그릇 하나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안에는 검붉은 국물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짙은 흑설탕과 생강 냄새를 맡았다.구택은 침대 옆에 앉았다. 희미한 불빛 아래 그는 무척 부드러워 보였다."의사에게 물어봤더니 흑설탕 생강물이 생리통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하네요. 좀 마셔봐요."소희는 뜻밖이라 생각하며 눈썹을 치켜 올랐다."구택 씨가 끓인 거예요?"구택은 살짝 어색해했다."맞아요, 처음 끓여 본 것이라 마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소희는 일어나서 그릇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탕은 매우 뜨겁고 매웠으며 또 무척 달콤해서 그녀는 사레가 들려 하마터면 그릇을 집어던질 뻔했다."왜 그래요?" 구택은 그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았다.소희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흑설탕과 생강을 얼마나 넣었어요?"구택은 이마를 찌푸렸다."의사가 좀 많이 넣으라고 해서 주방에 흑설탕 한 봉지가 있길래 다 넣었어요. 생강은 통째로 넣었고요. 왜요?""......"그녀는 왠
설탕물을 전부 버리고 냄비를 식기세척기에 넣은 뒤 남자는 안방에 돌아가서 샤워를 하고 나서야 소희를 보러 갔다.소희는 곧 잠이 들던 차에 남자가 옆에 누워 있는 것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그에게 기대었다. 그녀는 그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 묻고 싶었지만 너무 졸려서 곧 깊은 잠에 빠졌다.구택은 손으로 그녀의 배를 부드럽게 주무르다가 소녀가 그의 품에서 깊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를 품에 안고 자기도 눈을 감았다.소녀의 고른 숨결에 영향을 받았는지 그도 문득 졸리며 그녀를 안고 깊은 잠에 빠졌다.이튿날, 소희가 깨어났을 때 방안에는 여전히 그녀 혼자밖에 없었다. 마치 어젯밤 남자의 품 안은 그녀의 꿈인 것처럼.그녀는 문을 열고 나가자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남자를 한눈에 보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햇빛은 따뜻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만 같았다.구택은 5성급 호텔에서 주문한 오계탕을 그릇에 붓고 있었다. 그는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며 말했다."씻고 와서 오계탕 마셔요.""네!" 소희는 가볍게 응답하고는 방으로 돌아가 세수를 했다.나올 때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계탕이 놓여 있었다. 소희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흑설탕 생강물 있는 줄 알았어요."구택은 미적지근하게 대답했다."또 끓여 달라고요? 꿈 깨요!"소희는 긴 숨을 내쉬며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다행이네요!"구택은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을 살짝 떨며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자 동시에 웃었다.밥을 먹고 두 사람은 함께 외출했다. 구택은 차로 먼저 소희를 강성대에 데려다주고는 회사로 갔다.그들이 떠나자 꽃나무 뒤에 숨어 있던 한 사람이 핸드폰을 들고 슬그머니 떠났다.소율은 구택과 소희가 함께 주택 단지에서 걸어 나온 사진을 보고 믿을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은 파고드는 아픔과 서늘함으로 가득했다.결국, 그는 과외 선생님을 애인으로 선택할지언정 그녀를 한 번 더 보려 하지
남자는 그 바람에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차에 부딪혔고, 머리는 국수를 담은 그릇에 뒤덮이며 뜨거운 국물에 데어 소리를 질렀다.거의 동시에 차에서 4~5명이 내려왔다. 어떤 사람은 밧줄을 들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방망이를 들며 하나하나 악랄하고 흉악한 표정으로 소희를 향해 돌진했다.이 지역은 좀 외져서 지나가는 몇 명의 행인들은 이 상황을 보고 분분히 뒤로 숨으며 자신이 다칠까 봐 그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소희는 문신을 한 뚱보의 가슴을 발로 걷어차며 비틀거리며 쓰러진 그의 몸을 밟고 훌쩍 일어나 방망이를 든 남자의 턱을 발로 걷어찼다.그녀는 재빨리 방망이를 잡고 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밧줄을 들고 소희를 잡으려는 그 사람의 손에 내리쳤다. 순간 그는 비명을 질렀다.멀리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점점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몇 명의 남자가 한 명의 소녀를 때리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한 소녀가 건장하고 흉악해 보이는 몇 명의 남자를 괴롭히고 있었다.소녀는 몸놀림이 날렵해서 그들은 그녀의 동작을 거의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녀는 매번 급소를 찌르며 남자들은 하나하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중간에 한 남자는 도망가려고 했지만 소녀에게 머리를 잡혀 차창에 부딪히며 차창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그중 한 팔에 청룡을 문신한 남자가 소녀의 몽둥이에 맞아 비틀거리며 쓰러져 사람이 많은 곳을 향해 기어갔다.그는 온 얼굴이 피범벅이었고 입에서 피를 토하며 기어가면서 비명을 질렀다."경찰에 신고해요! 경찰 불러줘요!"사람들은 그제야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여보세요, 경찰서죠? 여기 한 소녀가 한 무리의 남자들을 패고 있어요.""맞아요, 빨리 와요! 그들 지금 너무 불쌍해요! 아무리 용서를 빌어도 소용없다고요!"전화를 끊자마자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에 신고한 그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렇게 빨리?"옆에 있던 한 여자가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내가 신고한 거예요. 그 사람들이 막 싸우기 시작할 때 내가 신고
소희는 어깨에 한 대 맞았지만 심하지 않아서 어깨를 살짝 움직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난 괜찮아요."구택은 가볍게 응하고는 계속 말했다."잠깐만 기다려요, 내가 곧 갈게요!"대략 30분 후에 이 경찰서의 부 서장이 직접 찾아왔다. 그는 온화한 표정으로 물었다."아가씨, 많이 무서웠죠? 안심해요. 아가씨를 때린 그 사람들은 우리가 반드시 엄하게 처벌할 거예요."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부서장은 직접 그녀를 밖으로 바래다주며 많은 위로의 말을 했다. 행여나 경찰서의 부하들이 심한 말을 해서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명우는 경찰서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공손하게 말했다."임 대표님은 차에서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수고 많았어요!"소희가 감격했다."별말씀을요."소희가 차에 올랐을 때 구택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잘생긴 얼굴은 어두운 밤에 감춰져 표정이 선명하지 못했지만 그의 말투는 날카로웠다."우연이 아니야. 누가 그들을 시켰는지 찾아내.""내일 날이 어두워지기 전까지. 결과를 기다리겠어."전화를 끊자,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검은 눈동자로 묵묵히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무서웠어요?"소희는 갑자기 남자의 어깨에 기대고 싶었다. 그녀도 이렇게 했다. 그녀는 이마로 그의 목에 대고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그냥 배가 좀 고프네요."구택은 가볍게 웃으며 순식간에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같이 밥 먹으러 가요.""넵."소희는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이 순간에 안정감을 찾은 것 같았다.구택은 그녀를 한 가정식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이는 한 골목에 있었는데 밖에서 보면 작은 옛날 식의 정원인 것 같았다. 하얀 벽에 회색 기와, 처마 밑에는 또 몇 개의 긴 대나무가 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들어간 후 가산을 돌다보면 정원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긴 복도는 구불구불했고 깊은 밤이라 붉은색 초롱이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옅은 술 향기와 속삭이는 웃음소리가
구택이 찻주전자를 들고 소희에게 차를 따르자 밀크티 냄새가 풍겨왔다.소희는 한 입 맛보았다. 차는 그렇게 달지는 않았지만 아주 향기롭고 진한 그녀가 종래로 마셔본 적이 없는 맛이었다. 아마도 가게에서 직접 만든 것 같았다."맛있네요." 소희가 평가했다.구택은 웃으며 그녀에게 설명했다."내가 어렸을 때 이 누님은 임 씨네 본가에서 일하셨어요. 후에 누님의 남편이 장사를 해서 돈을 벌자 그녀는 사직하고 그와 함께 가정식 레스토랑을 열게 된 거예요. 누님과 형님의 요리 솜씨는 무척 훌륭해요. 소희 씨도 좀 있다 먹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이렇게 오랫동안 가게를 열었으니 틀림없이 맛있을걸요."소희는 밀크티를 마시며 말했다.그녀는 몇 모금 만에 밀크티 한 잔을 다 마신 뒤 손을 뻗어 찻주전자를 들려 했다.구택은 그녀의 손을 막았다."한 잔만 마셔요. 많이 마시면 수면에 영향 줘서 저녁에 잘 못 잘 거예요.""누가 그래요?" 소희는 눈썹을 치켜세웠다."밤새 자지 않아도 이렇게 맛있는 밀크티를 낭비해서는 안 돼요."구택은 가볍게 웃으며 목소리를 낮췄다."좋아요, 잠이 안 오면 우리도 다른 일을 할 수 있죠."소희는 얼굴이 뜨거워지며 그를 한 번 노려보며 고개를 돌려 창밖의 꽃나무를 바라보았다.소녀의 화난 듯한 아름다운 얼굴은 구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의자에 기대어 입가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아줌마는 음식을 들고 들어와서 일일이 식탁 위에 놓았다. 불도장 두 그릇, 탕수육, 매운 꽃게찜과 조개 볶음......소희의 입맛을 배려했을 뿐만 아니라 구택이 좋아하는 음식도 있었다.주인아줌마는 음식을 올리면서 물었다."아가씨는 강성 사람이에요?"소희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운성에서 자랐어요. 몇 년 전에 강성으로 다시 돌아왔고요.""운성도 멀지 않죠." 주인아줌마는 상냥하게 웃었다."맞아요.""나도 운성 요리할 줄 알아요. 아가씨 나중에 먹고 싶으면 앞으로 자주 와도 돼요.""네, 감사합니다!"
임유진은 애옹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간단히 국수를 끓였는데, 닭고기를 넣은 건 애옹이를 위한 것이었다. 바깥의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유진은 소파에 웅크려 애옹이를 안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지만, 오늘은 마음이 산만했다. 아무리 흥미로운 줄거리도 유진의 주의를 끌지 못했고, 자꾸만 밖을 바라보게 되었다.‘이렇게 비가 심하게 내리고 어두운데, 운전하는 게 위험하지 않을까?’그때 휴대폰에서 뉴스 알림이 울렸다. [폭우로 인해 시야 확보가 어려워 어떤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이에 유진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은정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운전 중인 그를 방해할까 걱정됐다.10시가 넘자 유진은 아예 은정의 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드라마 한 회가 끝나자 임유진은 깊이 잠든 애옹이를 고양이 침대에 눕혔다. 막 일어나서 물을 가지러 가려는데,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온 집안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밖에선 천둥 번개가 치며 번쩍이는 빛이 집안을 스쳐 지나갔고, 어두운 실내가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유진은 두려움에 꼼짝 못 하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서둘러 문밖으로 나가 복도의 불도 꺼졌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급하게 문을 열자마자 바로 앞에 서 있는 검은 그림자와 마주쳤다.“꺅!” 유진이 크게 비명을 질렀다.“임유진!” 은정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렸고, 곧장 한 발짝 다가와 놀란 그녀를 품에 안고 다독였다. “무서워하지 마, 나야!”“나 돌아왔어!”“괜찮아!”유진은 은정의 품에 기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삼촌?”“응, 괜찮아. 정전일 뿐이야.” 은정이 낮게 말했다.한 시간 전, 은정은 관리실에서 보낸 메시지를 이미 받았다. 날씨로 인해 한 시간 후 아파트 내에 정전이 있을 예정이며,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유진이 무서워할까 봐 은정은 속도를 최대한 높여 정전 전에 돌아오려 했지만, 몇 분 늦고 말았다. 하필이면
애옹이는 억울하다는 듯 목을 움츠리며 야옹 했다. 구은정은 태연한 표정으로 애옹이를 한 손에 들어 소파 뒤쪽으로 던져놓고는 임유진을 향해 말했다.“늦었으니 가서 자.”유진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저 갈게요. 삼촌도 일찍 쉬세요.”그때 애옹이가 다시 소파 위로 뛰어올라, 앞발 하나로 유진이 베고 있던 쿠션을 붙잡고 고개를 기울인 채 유진이 누워있던 자리를 핥았다.애옹이는 핥고 난 뒤 고개를 들어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다시 쿠션을 꼭 껴안고 한 번 더 핥았다.유진이 은정을 바라보았다.“애옹이가 왜 이래요?”은정은 눈빛을 가늘게 뜨고, 눈동자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혀끝으로 어금니를 살짝 건드리고는 담담히 말했다.“앞으로 더는 간식을 먹기 싫다는 뜻인가 보지!”애옹이는 즉시 쿠션을 내려놓고 얌전하게 은정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야옹야옹 하고 아첨했다.‘멍청한 주인은 이해하지 못하니, 현재의 주인에게 잘 보이는 게 낫겠지!’“간식 대신 쿠션 먹고 싶은 거야?” 유진은 웃으며 허리를 숙여 애옹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내일 봐!”다음날, 점심이 지나자 날씨가 갑자기 변했다.퇴근 무렵에는 바깥이 거센 바람과 폭우로 뒤덮여 사람들은 어떻게 집에 돌아갈지 걱정하며 일할 생각도 사라졌다.유진에게 집에서 보낸 기사의 전화가 왔다.“아가씨, 사모님이 저를 보내셨는데, 길이 막혀서 조금 늦을 것 같아요.”유진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이번엔 은정이었고, 유진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은정이 말했다.[나 지금 해성인데 강성으로 돌아가려면 늦을 것 같아. 너 집으로 돌아가. 이경 아파트엔 가지 마.]“애옹이는요?” 유진이 걱정스럽게 묻자, 은정이 대답했다.[아침에 사료 충분히 줬으니까 몇 시간 정도는 괜찮아.]유진은 은정이 운전 중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비가 많이 오니까 운전 조심하고 서두르지 마세요.”그의 낮고 부드러
저녁이 되어 두 사람이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구은정은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했고, 임유진은 거실에서 애옹이와 놀고 있었다.유진은 배가 고파 주방으로 달려가 물었다.“밥 다 됐어요?”은정은 유진에게 과자 하나를 건넸다.“이거 먼저 먹어.”“이 과자 언제 샀어요?”유진은 기쁜 마음으로 포장을 뜯었는데, 작은 뼈다귀 모양의 과자가 무척 귀여웠다. 그녀는 두 개를 입에 넣었다. 별로 달지 않았고 은은한 민트 향이 나는 바삭한 맛이었다.“맛있어요!”유진은 몇 개 더 집어 입에 넣고는, 한 개를 손에 쥐고 애옹이를 놀리며 은정에게 물었다.“이 과자 고양이가 먹어도 돼요?”이에 은정은 몸을 돌려 끄덕였다.“원래 애옹이 거야!”유진은 할 말을 잃었고, 즉시 과자 포장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만화 그림의 상자 중간에 작은 검은색 글씨로 애완동물 간식, 고양이 과자라고 적혀 있었다.“삼촌!”유진은 마치 화난 작은 고양이처럼 유진을 노려보았다.‘나에게 고양이 음식을 주는 게 습관이 된 건가!’은정이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그 과자가 평소 네가 먹는 잡다한 간식보다 훨씬 건강해!”유진은 은정의 설명을 듣지도 않고 화난 얼굴로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은정이 요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유진은 소파에 앉아 과자 하나를 먹고 애옹이에게 하나를 먹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알고도, 유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더 즐겁게 먹었다.저녁을 먹고 난 뒤 두 사람은 공부를 시작했다. 거의 열 시가 다 되었을 때, 은정의 전화가 울렸고 그는 일어나서 전화를 받으러 갔다.마심호가 전화를 걸어왔는데, KN을 대신할 새 협력사에 대한 몇 가지 점검 사항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통화가 30분이나 걸렸고, 유진이 다시 거실로 나왔을 때 유진은 이미 애옹이를 안고 소파에 옆으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사람과 고양이가 같이 깊게 잠들어 있었다.은정은 조용히 걸음을 옮겨 유진에게 다가가서는 옆에 반쯤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고
구씨 그룹 회의실에서는 KN그룹과의 계약 해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팽팽하게 맞서며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었다.센터에 앉은 구은정은 표정이 느긋했고, 마치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휴대폰 화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뭐해?]은정은 이 글자들을 입력하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다시 하나씩 삭제했다.[저녁에 뭐 먹고 싶어?]보내기 전에 다시 부적절하다고 느껴 이것도 삭제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보낸 메시지는 다른 내용이었다.[몇 시에 퇴근해?]메시지를 보내고 시간이 흐르는데도, 임유진은 여전히 답이 없자, 은정은 화면을 뚫어지게 보며 점점 미간을 찌푸렸다.옆에 있던 임원들이 은정의 표정을 살피며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회의실의 논쟁 소리도 점차 작아졌다.한 부사장이 입을 열었다.“올해 들어 KN이 제시하는 조건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우리 이익을 한없이 압박하고 있어요. 굳이 그 회사와 협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요!”그때 은정의 휴대폰에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저녁 일곱 시쯤 집에 도착할 거 같아요.]이에 은정의 표정이 곧장 풀렸고, 입가에 옅은 미소까지 번졌다.[뭐 먹고 싶어?][지난번에 해준 생선 맛있었어요.][그래서 애옹이랑 생선 간식 두고 다툰 거구나. 앞으로 생선 먹고 싶으면 나한테 직접 말해.][그 일 다시는 언급하지 마요.][알았어, 말 안 할게.] 은정의 냉철한 눈매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담겼다. [저녁에 생선 쪄줄게.]임원들은 대표의 기분이 갑자기 좋아진 걸 보고, 너도나도 부사장의 의견에 동조했다.“제 의견도 같아요. 당분간 KN과의 협력을 중단하죠.”“오윤열이 감히 구 대표님을 우습게 보고 말을 바꾸고 약속을 저버렸으니, 신뢰를 잃었어요. 우리가 더 이상 봐줄 필요 없고요.”...은정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모두 의견이 일치했으니, 계약 해지 건으로 확정하시죠.”최이석과 서성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서성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했다.“KN을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은정이 갑자기 물었다.“직장을 바꿔볼 생각은 없어?”유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아니요, 지금 하는 일이 좋은데요?”이에 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여진구가 너한테 힘들게 하면 꼭 나한테 말해.”유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요, 누가 나를 힘들게 할지언정, 진구 선배는 절대 그럴 리 없으니까!”은정은 말이 막혀서 답답한 기분이 가슴에 차올랐다. 하지만 어젯밤 일을 떠올리니, 시샘하던 마음도 부드러움으로 변해버렸다.식사를 마친 후 두 사람은 출근을 준비했다. 비록 몇 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은정은 차를 몰고 가는 길에 유진을 회사까지 데려다주었다.회사 건물로 들어가는 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진구와 함께 있을 것을 생각하자 당장이라도 그녀를 끌어당기고 싶었다.어젯밤 은정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가까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고, 진구는 이미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진을 진구의 회사에서 나오게 할 정당한 이유를 무엇으로 만들 수 있을까?구씨 그룹의 오전 회의에서 모든 직원은 오늘 사장의 기분이 꽤 좋다는 것을 느꼈다.최이석은 어젯밤 일로 은정이 오늘 아침 자신을 괴롭힐 거라 예상했지만, 그의 온화한 표정을 보고는 오히려 불안감이 커졌다. 은정의 속마음을 알 수 없을수록 더욱 조심스러웠다.유진은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진구에게 불려 갔다. 방에 들어서자, 진구가 유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표정이 어두웠다.이에 유진은 놀라 물었다.“얼굴이 왜 그래요?”진구는 불편한 표정을 짓고는 잠시 후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문에 부딪혔어.”유진은 크게 웃었다.“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문에 부딪혀요?”그 말에 진구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그게 그렇게 웃기냐?”유진은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 진구의 얼굴을 살폈다.“혹시 누구랑 싸운 거 아니에요?”그러나 진구는 그녀의 입술에 남은 자국을 발견했다. 원래 입술
정신이 돌아왔을 때, 유진은 자신의 큰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살짝만 움직여도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온몸에 힘이 없었다.유진은 관자놀이를 살살 문지르며 어제의 상황을 기억하려 애썼다. 자신은 술에 취했다. 도수는 낮았지만, 방연하와 함께 마치 물을 마시 듯 병채로 마셔댔기 때문이다.나중에 구은정이 왔고, 유진을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어떻게 내가 거기에 있는 줄 알았지? 내가 직접 방 번호를 말했나?’유진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구은정이 집에 데려다준다고 말한 뒤의 상황조차 기억나지 않았다.유진은 잠시 숨을 고르고 나자, 머리의 통증이 조금 나아졌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씻었다.이를 닦다가 문득 입술에 유난히 붉게 부은 부분이 있음을 발견했다. 마치 터지기 직전 같았고 혀끝도 얼얼했다. 이상해서 손으로 살짝 만져보니 정말 아팠다.‘입 안이 헐었나?’유진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이를 닦았고, 세수를 하려던 참에 갑자기 생각났다. ‘누가 잠옷을 갈아입힌 거지?’멍하니 서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은정이 아침 식사를 가져온 걸 것이다.유진은 서둘러 얼굴을 씻고 침실로 돌아와 속옷을 입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야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 은정은 아직 덜 마른 유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졌다. 특히 유진의 붉어진 입술을 보고는 평소보다 더 쉰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일어난 거야?”유진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어젯밤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은정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섭섭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은정은 사 온 아침 식사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말했다.“어젯밤에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는데, 머리 안 아파?”유진은 의자에 앉으며, 그는 말 안 하면 괜찮았을 것을, 언급하는 바람에 더 불편하
넘버 나인.프라이빗 룸 안엔 이제 여진구와 방연하만 남아 있었다.연하는 직원에게 상처 연고와 면봉을 요청한 뒤, 소파에 앉아 있는 진구에게 다가가 그의 멍든 눈가에 조심스럽게 약을 발랐다.진구는 고개를 숙인 채 연하의 손길을 피하며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 내일이면 가라앉을 거야.”“움직이지 마요. 약 바르면 훨씬 빨리 나아요. 이래서야 회사에 어떻게 출근해요?”연하는 면봉에 약을 덜어 조심스레 붓기 위에 발랐다. 차가운 연고가 달아오른 피부에 닿자, 진구도 조금은 정신이 들었다.그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오늘은 다들 술에 취해서 좀 과했던 거지.”방금 전 진구가 쏟아낸 말들이 지금 와서는 다소 충동적이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임유진. 유진이 혹시 들었으면, 쓸데없는 오해만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연하는 조심스레 손놀림을 이어가며 물었다.“예전에, 유진이가 구은정 씨를 좋아했어요?”진구는 잠시 멈칫하다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아주 오래, 깊이.”진구는 연하가 과거에 은정을 쫓아다녔던 걸 기억하고 있었기에, 곧바로 덧붙였다.“유진이가 너한텐 일부러 숨긴 게 아니야. 그때 교통사고 이후로,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잃었거든.”연하는 깜짝 놀랐다.“진짜로 다 잊은 거예요?”“정말이야.” 진구는 단호히 말했다.“그 사고는 구은정과도 관련이 있어.”연하는 놀람과 동시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만약 자신이 끝까지 구은정을 계속 좋아했더라면, 나중에 유진이 기억을 되찾았을 때 얼마나 민망하겠는가?연하는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지금 구은정 사장님이 유진이한테 다시 다가가는 거예요?”진구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웃기지 않아? 예전엔 그렇게 냉정하게 뿌리치더니, 유진이가 자신을 잊고 나서야 다가오다니.”연하는 그제야 얼마 전 캠핑 때 진구와 은정이 나눈 대화를 떠올렸고,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혹시 죄책감 때문 아닐까요?”여진구는 음울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
구은정은 소파 앞에 무릎을 꿇듯 반쯤 앉아, 애옹이를 조심스레 밀어내고는 손을 들어 임유진의 뺨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불렀다.“임유진.”“응.”유진은 나직하게 신음을 내뱉으며 천천히 눈을 떴지만, 눈빛은 여전히 맑지 않았다. 그녀는 이마를 살짝 찡그리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켜 소파 가장자리에 엎드렸다.은정은 바로 이마를 찌푸리며 유진의 등을 토닥였다.“속이 안 좋아? 토할 거 같아?”유진은 몇 번 마른 헛구역질을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이내 힘없이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붉게 달아오른 얼굴, 살짝 깨문 입술,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유진을 더 애처롭고 순해 보이게 만들었다.“구...은정...”이름을 부르며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눕고 싶어?”은정이 낮고 부드럽게 물었지만, 유진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러고는 머리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 동작에 더 어지러워진 듯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싫어요.”“그래, 안 누워도 돼.”은정은 얼른 달래듯 맞장구쳤다.“물 마실래요.”유진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댄 채 웅얼거렸다. 은정은 부엌으로 가 꿀물을 들고 와 유진의 입술 가까이에 가져다 대며 조심스레 말했다.“천천히 마셔. 조금 뜨거워.”유진은 은정의 손에 기대어 몇 모금 마셨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를 툭 기울이며 그의 어깨에 기대고는 눈을 감은 채 나직이 말했다.“이거 말고 술 마시고 싶어. 방연하, 술 한 병만 더 줘.”은정은 순간 날카롭게 말했다.“또 술 마셔봐, 진짜 혼난다.”유진은 떨리는 속눈썹 사이로 은정을 올려다봤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왜 혼내는데요?”희고 말랑한 얼굴, 복숭앗빛 입술에 남은 술기운, 유진의 모든 향기와 숨결이 은정의 감각기관을 마비시켰다.은정은 천천히 잔을 내려놓고, 긴 손가락으로 유진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임유진.”“응?”유진이 순순히 대답했다. 은정의 눈동자는 잉크를 쏟은 듯 깊고 어두웠고
방연하도 술에 많이 취해 말이 꼬였다.“구, 구은정 씨!”놀란 듯한 표정은 짓고 있었지만, 혀는 이미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여진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구은정 씨가 왜 여기에 계시죠?”은정은 누구의 말에도 반응하지 않고, 오직 임유진만 바라보며 말했다.“일어날 수 있겠어?”유진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눈빛은 풀려 있었고, 입술에는 술 자국이 가득했다.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삼촌.”은정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집에 가자.”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멍한 얼굴로 웃었다. 유진의 그 웃음에 은정은 심장이 녹아내릴 듯한 감정을 느꼈다. 은정은 유진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고, 부드럽게 유진을 반쯤 안아 일으켰다.유진은 반쯤 그의 몸에 기대었지만, 전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그와 함께 밖으로 향했다.진구는 그 모습을 보며 속이 뒤집혔다. 급히 일어나 은정의 앞을 막아섰고,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소리쳤다.“지금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죠?”은정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비키시죠?”진구는 비웃듯 말했다.“당신 예전에 유진에게 얼마나 상처 줬는데, 이제 와서 다른 얼굴로 접근하면, 있었던 일들이 다 없게 되는 건가요?”“지금 유진이 본인을 잊었으니 괜찮다는 건가요? 만약 기억이 돌아오면, 당신을 얼마나 미워할지 몰라요?”술기운에 진구는 지금껏 참고 있었던 울분을 모두 쏟아냈다.“유진이 너를 잊었을 때를 틈타 들어오는 당신이 나는 진심으로 혐오스러워요!”유진은 진구의 격한 표정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점점 머리가 아파져 얼굴을 찡그렸다.그동안 은정은 아무 말 없이 유진의 어깨를 부드럽고 단단히 감싸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유진아, 가지 마!”진구는 유진의 팔을 붙잡았다.“다시 저 사람이랑 엮이지 마!”은정은 결국 더는 참지 않았다. 유진의 팔을 붙잡는 진구를 본 순간, 은정의 주먹이 그대로 진구의 얼굴을 강타했다.진구는 몇 걸음이나 물러나며 휘청거렸고,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