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가만두지 않게 할 거라고?”송영길은 마치 세상 우스운 농담을 들은 것처럼 박장대소했다.그의 반응에 류은미는 화가 나면서도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문득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그 예감이 뭔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뭘 웃어?]류은미의 귀여운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다른 한 손으로 이불을 치며 큰소리로 경고했다.[웃지 마. 웃지 마! 웃지 말라고!]송영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제멋대로 웃었다.그리고 한참 웃다가 드디어 멈춘 송영길은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류은미, 만약 전에 네가 이런 말을 했다면
[아니야. 아닐 거야.]류은미는 연신 고개를 흔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할아버지가 그 여자보다 못하다고? 절대로 그럴 리 없어. 절대로!’류은미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송영길은 이미 그녀의 반응을 예상했다.아무래도 류은미는 부시혁이 자기 할아버지를 엄청 중시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오만하게 호언장담했던 것이다.‘윤슬을 건드려도 부시혁이 그냥 넘어갈 거라고? 웃기고 있네. 너무 자신 있게 말해서, 나까지 믿었잖아.’“안 믿으면 나도 어쩔 수 없고.”송영길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어떻게 우리랑 상의하지도 않고 그냥 움직여?]전화 맞은편의 중년 남자, 즉 류은미의 아버지가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실패한 건 물론이고 네가 한 짓이란 게 다 들통나서, 지금 다들 우리 류씨 가문을 욕하고 있어.]쿵-!류은미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그럴 리가. 분명 은밀하게 움직였는데? 내가 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그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그러자 류은미의 아버지가 관자놀이를 누르던 손을 내려놓았다.[은밀? 그게 은밀한 거야? 네 개인 번호로 DS
류진영은 자기 딸이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딸이 자기가 한 말을 귀담아들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그래서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야지.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랑 먼저 상의해야 해, 알았지? 아빠랑 할아버지는 언제나 네 편이야. 그리고 누구보다 네가 시혁이랑 사귀는 걸 바라고 있어.]“알았어.”류은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입술을 깨물며 류진영에게 물었다.“근데 아빠, 이제 어떡하지? 시혁 오빠가 전화까지 안 받을 정도로 화났잖아. 나 오빠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아. 그렇게 되면 내가 오빠랑 사귈 가능성이
윤슬은 의문을 품고 그 게시글을 확인했다.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태그 한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게 되었다.류씨 미디어의 계정이었다.‘재밌네!’윤슬은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류씨 미디어가 도대체 무슨 일로 날 언급했는지, 어디 한번 볼까?’윤슬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류씨 미디어가 올린 글이 눈에 들어왔다.그리고 그 글을 읽은 윤슬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아무리 들어도 비웃음이었다.직진 구간이 길고 앞에 차가 보이지 않자, 부시혁은 빠르게 고개를 돌리고 윤슬을 한번 쳐다보았다.“왜 웃는 거야
‘설마 네티즌들이 정말 이런 가소로운 사과를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류씨 가문이라면 정말 그렇게 생각할지도 몰랐다.그들 눈에 네티즌들은 그저 재벌을 우러러보는 일반인이었다.그래서 아무리 터무니없는 사과라고 해도 재벌의 말이라면 네티즌들이 순순히 믿을 거라고 생각했다.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정상적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아무리 일반인이라고 해도 자본의 말을 무턱대고 받아들이진 않는다.아무튼 이번에 류씨 가문이 네티즌을 너무 우습게 보고 낮잡아본 게 문제였다.사실 네티즌을 다루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인터넷의 서민들이 아직도 우릴 욕하고 있다고? 말도 안 돼!’하지만 비서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류진영은 주먹을 쥐고 망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그럴 리가.”잔주름이 있는 그의 얼굴은 더욱 늙어 보였다.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사과했잖아. 그 서민들이 왜 아직 우릴 욕하고 있는 거야?’류진영의 의문을 알아챈 비서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비웃음이 담긴 눈빛을 감추었다.‘아직도 자기 잘못을 눈치채지 못한 거야? 나도 정말 그만둘 생각을 해봐야겠네. 이러다가 류씨 미디어가 망하는 것도 시간문제
집에 요리를 만들 재료가 없어서 두 사람은 시장에 들러 장을 보기로 했다.부시혁이 직접 장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물론 평소에 요리하긴 하지만 재료는 전부 윤슬이 미리 준비해 놓은 것들이었다.그래서 재료가 부족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처음이긴 하지만, 단풍이랑 오니까 새롭고 좋네.’고급 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윤슬은 카트 하나를 가져와 밀려고 했는데, 이때 부시혁이 갑자기 카트를 끌어갔다.윤슬은 허공에 굳어져 있는 두 손을 한번 보고 또 고개를 돌려 부시혁을 쳐다보았다.“왜요?”“내가 밀게.”부시혁은 얇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