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 재원은 그녀의 친구이고, 오빠 같은 사람이다.둘째, 재원이가 이번에 온 것도 도와주러 온 것이다.그러므로 인정과 도리에 따라 부시혁은 이렇게 재원을 대해서는 안 된다.물론, 윤슬도 잘못이 있다. 윤슬은 부시혁의 소심하고 질투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재원과 함께 밥 먹는다는 것을 귀띔해 마음의 준비를 하게끔 해야 한다는 것은 몰랐다.부시혁이 재원에게 이런 말을 한 이유는 사전에 윤슬이가 재원과 밥 먹으러 나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연히 알게 된다면 질투할 수밖에.‘하아, 앞으로 조심할 수밖
그리고 육재원은 좋아하는 사람이 헤어지는 것보다 즐겁고 행복하기를 원한다.좋아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아닌 다른 남자였다.비록 그 남자를 매우 싫어하더라도, 그를 위해 아첨을 떨 수 있었다.그가 바로 이렇게 위대한 남자이다.육재원은 속으로 이런 씁쓸한 생각을 하면서도 억지로 자신을 칭찬하였다.이렇게 해야만 마음속의 괴로움과 씁쓸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윤슬은 육재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부시혁에 대한 그의 추측과 분석을 들어보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부시혁의
아무래도 지금 부탁이 있는 사람은 윤슬이었다. 그래서 은행장이 자신을 희롱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지금의 천강은 돈이 필요했다.만약 상대방이 화가 나서 대출 안 해 주겠다고 하면 윤슬은 오늘 괜히 온 셈이니까.윤슬의 눈빛을 보고 다시 이성을 찾은 육재원은 깊게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진정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충동적인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냈다.그러자 윤슬은 잡고 있던 그의 옷소매를 놓아주고 웃으며 은행장을 쳐다보았다.“확인하고 싶으신 일이 뭔지 알고 싶네요. 제가 대출받는 거랑 관계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은행장은 자기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윤슬을 보며 진정하라는 손짓을 보냈다.“흥분하지 마시고 진정하세요. 방금 제가 말한 것처럼 지금의 천강은 이 금액의 대출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부 대표님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셨다면 여기에 앉아 있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 은행뿐만 아니라 모든 은행이 윤슬 씨의 요구를 듣자마자 핑계를 대며 거절했을 거예요.”“…….”윤슬은 입술을 한번 움직였지만, 결국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확실히 그랬다. 천강은 이렇게 큰 금액의
은행장은 윤슬의 기분에 공감이 갔다.그래서 윤슬을 바라보는 은행장의 눈빛이 자상해지면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보다 상냥한 선배 같았다.“슬퍼하실 필요 없으세요.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니까요. 만약 능력 없고 인맥 없고 백도 없는 사람이라면 멀리 가지 못한다는 거, 알아뒀으면 좋겠어요.”은행장은 윤슬을 위로해 주었다.자기를 배려해서 은행장이 이런 말을 한 걸 알지만 윤슬은 속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마치 자신의 모든 노력이 웃음거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이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다른 사람 눈에 보이는 건 결국
윤슬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은행장의 말을 동의했다.“다른 사람한테 얕보이고 싶지 않고 제가 능력이 없어서 남자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윤슬은 자기의 이마를 받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제야 알았어요. 제가 늘 부시혁 씨를 의지하고 있었다는 거. 혼자서 해낸 일이 별로 없었다는 거. 정말 아이러니하네요.”“그런 말 하지 마.”윤슬의 풀이 죽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육재원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은행장은 음식을 한 입 먹고 말했다.“윤슬 씨의 고집이 너무 센 거 같네요.”“네
상업계는 너그러운 면이 있는 반면 잔인한 면도 있었다.만약 버팀목 없이 혼자서 사업을 한다면 언젠가 하이에나와 늑대들의 배를 채우는 먹잇감이 될 것이다.육재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윤슬은 입술을 깨물며 그를 쳐다보았다.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약간 확신하지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너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시혁 씨를 의지해야 한다고?”육재원은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다.“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네가 왜 거부한다는 거야. 능력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아무래도 윤강호는 죽은 지 이미 오래됐고 과거의 인맥도 거의 다 얕아졌을 것이다.예를 들면 지금, 윤슬 뒤에 부시혁이 없었다면 은행장은 윤슬을 만나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녀가 대출로 이번 고비를 넘기는 건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천강의 부도와 일자리를 잃은 몇천 명의 직원, 그리고 몇백억이 되는 빚일 것이다.‘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해.’윤슬은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어쩌면 제가 너무 쉽게 생각한 걸지도 몰라요. 제가 너무 단순했어요.”윤슬은 고개를 들고 육재원과 은행장을 쳐다보며 씁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