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보던 최연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새로 선 가게는 일반적으로 이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기 어렵다. 그렇다면 유일한 가능성은 강서연의 말대로 누군가 뒤에서 못된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이 댓글들은 댓글 알바를 찾아서 악의적으로 남긴 댓글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최연준도 육경섭을 의심해봤지만 머릿속에 잠깐 스쳐 지나갔다가 이내 부정했다. 육경섭의 성격과 지위라면 절대 이런 유치한 방법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게다가 이 방법은 여자들끼리의 다툼 같았다. 만약 육경섭이 그와 맞서고 싶다면 대놓고 선전 포고를 해도 되었다.그리고 경쟁 상대의 짓인 것 같지도 않았다. 이 근처에 커피숍이 많긴 하지만 가게마다 그 집만의 특색이 있고 고정된 고객층도 있어 서로 다툼 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하여 댓글 알바까지 구한 걸 보면 목표가 강서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최연준의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걱정 어린 아내의 표정을 본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책임을 자신에게로 돌렸다.“당신 분석이 맞아. 예전에 나한테 앙심을 품은 사람이 많거든. 그래서 누가 복수하는지도 모르겠어.”그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여보, 쓸모없는 남편이라서 미안해. 또 당신을 신경 쓰게 만들었네.”“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강서연이 그를 진지하게 쳐다보며 그의 두 볼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누군가 자기 남편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욕하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설령 그가 스스로 말한다고 해도 안 되었다.“우리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남자예요. 문제가 생기면 과거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함께 방법을 생각해서 해결해야죠. 내 말이 맞죠?”“하지만 내 과거는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될 수 있어.”“따라다니면 뭐요?”강서연이 히죽 웃었다.“그림자든 폭풍이든 난 현수 씨 아내예요. 모든 걸 현수 씨랑 함께 이겨나갈 수 있어요. 현수 씨랑 결혼한 그 날부터 바로 준비를 마쳤는걸요?”“정말이야?”최연준의 눈빛이 반짝였다.“어이구,
애간장을 태우는 강서연과 달리 최연준은 이 상황이 더 좋았다.그는 커피를 내리고 손님에게 깍듯이 대하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그녀와 단둘이 가게에 있고 싶었다.하지만 강서연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유찬혁에게 알아보라고 했다. 알아본 결과 역시 그의 예상대로였다.“형, 뉴미디어 회사 여러 군데 물어보니까 바로 데이터를 보여주더라고요. 보니까 전부 강진 그룹의 댓글 알바였어요.”“흥, 역시 강유빈의 짓이었구나?”“아무튼 댓글 알바비를 입금한 계좌는 강진 그룹의 재무 계좌였어요.”강씨 가문에 강유빈 말고 이런 생각 없는 짓을 벌일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는가?최연준이 미간을 어루만졌다.그는 강씨 가문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고 강씨 가문도 그를 이길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걱정되는 건 강서연이었다...“연준 형.”유찬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강씨 가문을 해결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사람이 했던 방법으로 그대로 하면 돼요.”최연준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가게에 여전히 손님이 없어 강서연은 그에게 혼자 가게를 볼 테니까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다들 봤죠? 이 집이 바로 제 동생네 가게예요!”강서연은 마음이 움찔했다. 날카롭고 조롱 섞인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강유빈이었다.“큰아가씨, 여기 지금 대중 평론이 엄청 안 좋아요. 제가 인터넷에서 봤어요.”“맞아요. 우리 오늘 여기서 커피를 마셔요?”“마시면 어때요?”강유빈이 피식 웃었다.“뭐라 해도 제 동생 가게인데 많이 좀 도와줘요. 과거에 감방까지 갔다 온 남편이 개과천선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우리 둘째 아가씨는 더 쉽지 않죠. 맨날 그런 남자를 감싸고 도니까요!”몇몇 동료들이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웃었다.가게 안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은 강서연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커피 머신을 씻고 남은 더러운 물을
“오늘 저 일이 있어서 일찍 문 닫으려고요.”강서연이 무표정으로 말했다.“그러니 다들 이만 돌아가세요. 여기 당신들이 원하는 게 없어요!”몇몇 동료들은 서로 멀뚱멀뚱 얼굴만 쳐다보다가 결국 강유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유빈은 팔짱을 낀 채 코웃음을 쳤다.“서연아, 벌써 문 닫게? 그리해서 가게세는 어떻게 벌어?”“가게세?”강서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가게세는 내 남편이 내고 있어. 여기 가게 일도 전부 남편이 관리하고 있거든. 우리 남편이 그랬어. 커피숍을 차린 게 날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니까 내가 문 닫고 싶을 때 문 닫으면 돼. 돈 걱정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지. 그리고 있잖아!”그녀는 카운터를 닦다가 고개를 들고 강유빈을 쳐다보았다.“여기는 커피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는 커피숍이야. 남을 욕하는 곳이 아니라!”“제대로 경영하지도 못하면서 잘난 척은.”강유빈은 동료들 앞에서조차 강서연에게 밀리는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그래, 우리가 갈 수는 있어! 하지만 인터넷에 악성 댓글이 하도 많아서 언젠가는 문을 닫을 거라는 걸 명심해!”“내가 문을 닫든 말든 언니랑 상관있어?”“나랑은 당연히 상관없지.”강유빈이 대놓고 비웃었다.“네 남편이랑은 상관있잖아. 어휴, 동생아, 커피숍은 분위기가 가장 중요해. 그런 곳에 남편을 떡하니 두었으니 스스로 망하는 길을 찾아가는 거랑 뭐가 달라?”강서연의 낯빛이 확 변하더니 들고 있던 커피잔을 꽉 움켜쥐었다.“우리 남편이 도둑질했어, 뭘 했어? 자기가 직접 일해서 돈을 버는데 그게 어떻게 스스로 망하는 길을 찾아가는 거야?”“왜냐하면 예전에...”“그건 다 지나간 일이야!”강서연이 살짝 흥분했다.“지나간 일을 자꾸 들춰서 뭐 해!”“왜? 화났어?”강서연이 흥분할수록 강유빈은 더욱 우쭐거렸다. 어릴 적부터 강서연과 다퉈서 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강서연이 그녀 대신 구현수에게 시집가면 인생이 망가져 마음대로 짓밟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구현수를 만나고 나서 점점 더
“내 한계를 건드렸다간 절대 가만 안 둬!”“너...”“당장 꺼져!”강서연이 포효하듯 소리를 질렀다. 강유빈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더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마침 가게 안으로 들어오던 임우정이 그 장면을 목격했다. 난장판이 된 현장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임우정은 혹시라도 강서연이 괴롭힘을 당했을까 봐 두말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 강유빈을 확 밀쳤다. 그 바람에 강유빈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혔다. 어찌나 아팠던지 식은땀까지 뻘뻘 흘렸다.“임우정 씨, 당신 미쳤어요?”강유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감히 날 밀쳐요?”“왜요? 당신을 밀치면 안 돼요?”임우정이 강서연을 감싸고 돌았다.“지금 한 무리 사람을 데리고 와서는 우리 서연이를 괴롭히려 했던 거 맞죠?”“괴롭히다니요. 난 매출을 올려주려 온 거라고요!”강유빈이 그녀를 째려보았다.“남의 호의도 몰라주고 참... 당신도 서연이처럼 사리 분별을 참 못하네요!”더는 그녀와 쓸데없는 얘기를 섞고 싶지 않았던 임우정은 다짜고짜 강유빈의 뺨을 후려갈겼다.사실 그녀는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강유빈이 어찌나 사람의 화를 잘 돋우는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임우정은 기고만장한 강유빈에게 험한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너무 화난 나머지 머릿속이 다 하얘졌다. 평소 언변이 좋던 그녀마저도 이런 순간에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말을 못 하겠으면 그럼 때려야지!서로 머리채를 마구 쥐어뜯는 임우정과 강유빈은 누구 하나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했다.강서연은 두 사람을 말리고 싶어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자그마한 커피숍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지나가던 행인마저도 가게 안을 기웃거렸다.육경섭은 요 며칠 최연준을 알아보려고 마당 뒤쪽의 은밀한 구석에서 자주 지켜보곤 했다. 조금 전 임우정이 들어가서 얼마 되지 않아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저도 모르게 임우정을 걱정하기 시작했다.그런데 그가 가게 마당으로 들어가 보니 임우정이 드높은 기세
강유빈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몸을 최대한 옆으로 돌린 후 머리카락을 축 내리뜨렸다.“괜찮아요.”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오늘 정말 재수 더럽게 없네!”“방금 뭐라고 했어요?”임우정이 목청을 높이자, 강유빈은 바로 겁먹었다. 그러더니 벽에 붙은 채 밖으로 걸어 나가며 욕설을 퍼부었다.“강서연, 내가 언젠가는 이 가게를 싹 다 뒤집어엎을 테니까 딱 기다려!”임우정이 또 나서려 하자 강서연이 그녀의 손을 잡고 말렸다.“그만 해요.”육경섭은 넘어진 의자를 바로 세우고 그 위에 앉더니 여유롭게 옷소매 단추를 풀며 웃을 듯 말 듯 한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개한테 물어뜯겼는데 다시 물어뜯으려고요?”“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요?”임우정은 그에게 분풀이하는 듯했다. 그녀의 고함에 육경섭은 마음이 움찔했다.저도 모르게 혈기 왕성했던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때 그의 옆에 이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자주 지르던 한 이기적인 소녀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리 억지스럽게 고집을 부려도 그는 늘 그녀에게 웃음을 잃지 않았다.감옥에 다녀온 뒤로 그렇게 웃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 그녀의 발그스름해진 얼굴과 친구를 위해 기꺼이 나서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이봐요, 아가씨.”육경섭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젊은 아가씨가 이러면 안 되죠. 여자는 상냥하고 다정해야 하는데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못되게 굴면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요? 아가씨 친구가 남편한테 어떻게 하는지 제발 좀 배워요!”임우정의 표정이 확 변하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았다.“이보세요.”그녀도 그와 똑같은 말투로 또박또박 말했다.“남아일언 중천금이라는 말 들어봤죠? 남자는 내뱉은 말은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누구처럼 이랬다저랬다 하면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요? 당신 감방 동기가 와이프한테 어떻게 하는지 제발 좀 배워요!”육경섭의 눈빛이 어두워졌
“형님.”부하가 경멸에 찬 웃음을 지어 보였다.“듣건대 그 아가씨 매번 아주 흥겹게 놀다 간대요.”“그래?”육경섭도 피식 웃었다.“어떻게 흥겹게 노는데?”“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밤에 힘들게 일하는 남자 직원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하하...”육경섭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입가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며칠 후, 강유빈은 킹 나이트의 어느 한 어두운 방에 버려졌다. 처음에는 술기운을 빌어 미친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당신들 누구야? 감히 날 납치해? 나 여기 VIP야, 다 눈이 삐었어?”“당연히 우리 VIP 고객인 걸 알지.”그때 누군가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방안이 점점 밝아졌다. 맨 가운데 앉은 남자는 무서운 분위를 내뿜었고 눈빛도 날카로웠다. 특히 미간 사이의 칼 흉터가 더욱 눈에 띄었다.강유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강유빈 씨.”육경섭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유빈 씨보다 레벨이 더 높은 VIP 고객님들도 나한테 그렇게 소리를 못 질러!”강유빈은 육경섭이 수단이 잔인하고 악랄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날 강서연의 커피숍에서도 육경섭을 알아봤었다. 하지만 육경섭과 강서연이 무슨 관계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당신... 나한테 무슨 짓 하려고 이래?”강유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난 여기 손님이야. 술을 마실 때마다 팁을 두 배로 주는데 왜 나한테 이러냐고!”육경섭이 손뼉을 치자 강유빈 앞에 CCTV 화면이 갑자기 나타났다. 전부 그녀가 킹 나이트에서 술을 마시고 제멋대로 노는 모습들이었다.사람들 앞에서는 한없이 얌전하기만 하던 재벌가 딸이 뒤에서는 가슴이 훤히 다 보이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클럽에서 남자들과 부비부비하는 모습, 그리고 수천만 원짜리 와인을 마치 콜라를 따듯 아무렇지 않게 따서 사치를 부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강유빈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고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는 바닥에
“어머, 실수로 잘못 보냈네.”육경섭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렇게 예쁜 사진은 강 회장님한테 보내야 하는데.”“육경섭!”“유빈 씨 클럽에서의 이미지가 아주 매력적이야!”입술을 꽉 깨문 강유빈의 낯빛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유빈 씨, 내가 감방에서 고생 좀 했거든. 특히 쌈박질을 많이 해서 손이 말을 잘 안 들어. 혹시라도 어느 날에 실수로 인터넷에 뭔가를 올린다면... 나야 괜찮지만 유빈 씨 체면은...”“육경섭... 경섭 오빠!”강유빈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원하는 게 있으면 얘기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할게요.”“다른 건 다 괜찮은데 지금 이렇게 악플을 지우고 좋은 평점을 주는 건 너무 성의 없지 않나?”강유빈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그럼... 그럼 더 어떻게 하면 돼요?”“댓글 알바를 구해서 좋은 평점을 주는 것만으로 일이 쉽게 해결될 것 같았으면 내가 직접 하면 되지, 유빈 씨한테 하라고 했겠어? 잘못을 저질렀으면 사과를 해야지, 안 그래? 유빈 씨?”육경섭이 싸늘하게 웃었다.“초등학생도 다 아는 도리를 유빈 씨가 모르는 건 아니지?”...이튿날 해 질 무렵, 강유빈이 커피숍 문 앞에 나타났다.늘 기고만장하던 재벌 아가씨가 오늘은 어두운 셔츠에 긴바지를 단정하게 입고 왔다. 메이크업도 아주 옅었고 캡 모자를 최대한 눌러썼다. 그날따라 커피숍 장사도 아주 잘 되어 가게에 손님이 꽤 많았다. 마당에 잔뜩 핀 아이리스꽃 덕분인지 이 근처 꼭 가봐야 하는 커피숍으로 자리 잡았다.한창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움직이던 강서연은 천천히 걸어오는 강유빈을 보자마자 또 시비를 걸려고 온 줄 알고 마음이 움찔했다. 최연준도 그녀를 발견하고는 강서연 앞에 선 채 강유빈을 싸늘하게 째려보았다.“여긴 또 무슨 일로 왔어요?”최연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차갑게 물었다. 강유빈은 최대한 초라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그게... 사과하러 왔어요.”그녀가 힘겹게 한마디 내뱉었다.“서연아,
그녀는 가까스로 화를 억누르며 계속 강서연 앞에서 가여운 척했다.“서연아, 나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돼?”“여기 언니를 반가워하는 사람이 없어.”강서연이 매정하게 그녀를 내쳤다.“그만 가.”“서연아...”“당장 꺼지라고!”강서연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입술을 꽉 깨문 채 강유빈을 노려보았다.강유빈은 어릴 적부터 쭉 강서연을 괴롭혀왔지만, 강서연이 진짜 화를 낼 때면 그래도 두려워하긴 했다. 게다가 이젠 강서연의 옆에 무서운 남자까지 있으니...강유빈이 이를 꽉 깨물었다. 강서연이 내쫓으니 오히려 더 좋았다. 어차피 사과는 이미 다 했으니까.“서연아, 난 이미 사과했어. 용서하지 못하겠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앞으로 다시는 여기 오지 않을게. 너도 날 만나기 싫어하는 만큼 나도 널 만나기 싫어!”강유빈은 비틀거리며 마당을 나서다가 그만 발을 삐끗하고 말았다.강서연은 끓어오른 화를 다스리려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최연준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고는 조심스럽게 안아주었다.“여보.”강서연이 걱정스럽게 말했다.“뭔가 이상해요. 진심으로 하는 사과가 아니라 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겠죠?”최연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사실 그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강유빈이 황급히 나가긴 했지만, 아직 멀리 가지 못했다. 최연준은 강서연에게 가게를 맡기고 몰래 강유빈을 따라갔다. 대체 어찌 된 상황인지 제대로 알아보려고 따라갔지만, 마당을 나서던 그때 대문 모퉁이에 누군가의 모습이 잠깐 비쳤다.발걸음 소리에 최연준은 바로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홱 돌아섰다. 그 순간 작은 나무숲에 숨어있던 몇몇 사람들이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최연준은 민첩한 몸놀림으로 그들을 쫓아갔다. 그때 한 익숙한 얼굴이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가 차갑게 웃으며 주먹을 날리자 육경섭의 관자놀이를 거의 가격할 뻔했다. 최연준은 육경섭이 미처 피하지 못한 틈에 그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형님!”몇몇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육경섭은 최연준과 주먹 몇 방을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