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경섭은 최지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할아버지의 의심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내가 시키는 대로 저 사람을 치워주면 돼. 나머지는 걱정말고.”최지한은 육경섭의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목소리에 담긴 음침하고 괴상한 느낌은 그로 하여금 최지한이 영감님마저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해줬다.최지한은 구현수를 물러가게 한 뒤 토지 계획도를 꺼내들었고 오성의 중심부 지역의 황금땅을 그리며 말했다.“여기 이곳이 인파도 몰리고 시중심이라 금싸라기 땅이야. 일이 성사되면 관련 부서에 얘기해서 너한테 이 땅들을 건네줄게. 할만 하지?”육경섭은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최지한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육경섭, 야망이 있는 사람 아니었나? 일처리 충분히 독하고, 모질고, 깔끔하게 잘하잖아.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부른 건데. 이번 일, 우리 모두한테 다 남는 장사일 텐데, 잘 따져봐!”육경섭은 손가락으로 펼쳐진 토지 계획도를 툭툭 치며 보았다. 땅이 크고 넓었으며 딱 봐도 앞으로 투자가치가 엄청나 보였다. 오성에서 이 땅을 금싸라기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느낌이었다.‘허허, 최연준 목숨이 꽤나 큰 값하네!'육경섭은 가겹게 웃으며 눈을 들어 최지한을 보며 물었다.“큰 도련님, 그럼 최연준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최지한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확실치 않아 하며 대답했다.“맨체스터에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런던일 수도 있고. 아무튼 저번 비행기 사고 뒤로 외가 측에서 지켜주고 있다고 했는데.”“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저 보고 어떻게 없애라는 말인지?”최지한은 웃어 보이며 말했다.“위치는 네가 정확히 조사를 해야지! 아니면 내가 널 왜 불렀겠어.”육경섭은 고개를 끄덕이고 잔을 들어 와인을 단숨에 마셔버렸다.‘이 인간, 아직 최연준이 강주에 있는 것도 모르고, 결혼한 사실도 모르네.'...육경섭은 검은색 007 가방 하나 늘어서 강주로 돌아왔다. 그 안에는 스무 개 묶음으로 된 현찰이 가지런
그는 최연준처럼 잘난 체하는 남자도 이런 평범한 모습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대체 뭐가 잘못됐을까, 강서연이 최연준에게 진지하게 뭔가를 얘기할 때 키가 190cm 정도나 되는 최연준은 그녀 앞에서 마치 잘못을 저지른 초등학생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그 모습에 육경섭은 꽤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최연준이 강서연과 함께 있을 때는 가정적인 남편이었다. 그리고 아내를 무서워했고 돈도 벌어들이는 족족 아내에게 바치는 여느 남편과 다를 바 없이 집안에서 지위도 별로 없었다.많은 이의 존경을 받는 자리에는 관심이 없었고 아내 앞에서 굽신거리는 건 기꺼이 달갑게 받아들였다.가슴이 움찔한 육경섭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커피숍 문이 열려 있어 조금만 가까이 가도 두 부부의 대화가 정확하게 그의 귓가에 들렸다.“여보, 내 말대로 해요. 가격을 조금 더 낮춰야 한다니까요!”“우리가 재료도 얼마나 좋은 걸 쓰는데. 가격을 더 낮춰서는 안 돼.”“밑지면서 파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소 가격보다 조금 더 낮출 뿐인데요, 뭐. 박리다매하는 게 가장 나아요.”강서연이 고집을 꺾지 않았다.“이런 디저트 같은 건 당일에 채 팔지 못하면 저녁에 할인해서라도 팔아야 해요. 이튿날까지 그대로 뒀다가 팔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그녀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던 최연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어릴 적부터 최씨 가문에서 항상 보고 듣고 자란 장사 규칙인데 그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하지만 강서연이 퇴근하고 가게까지 보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데 그녀의 피와 땀으로 만든 음식을 싼값에 파는 게 마음이 아팠다.그가 전부 먹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싸게 팔고 싶지 않았다.“못 팔면 말지, 뭐.”최연준이 나지막이 말했다.“아무튼 난 쭉 가게에 있으니까 내가...”“현수 씨가 뭐요!”강서연이 펜으로 그의 머리를 톡 쳤다.“여보, 우린 장사하려고 가게를 열었어요. 현수 씨가 다 먹어버리면 장사는 어떻게 해요.”최연준이 피식 웃었다
육경섭이 가볍게 웃으며 억울한 척했다.“여기 커피숍 아니에요? 제가 커피숍에서 뭘 하겠어요?”최연준은 그의 표정 하나라도 놓칠세라 자세히 살펴보았다. 지난번처럼 기세가 맹렬하진 않았지만, 그가 선의인지 악의인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최연준은 돌아서서 강서연의 어깨를 잡으며 이곳은 그가 알아서 할 테니까 먼저 집에 가라고 했다.강서연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그의 뜻을 굽힐 수 없어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강서연이 멀리 가고 나서야 최연준은 웃을 듯 말 듯 한 얼굴로 육경섭에게 말했다.“커피 디저트 세트라고 했죠? 제가 해줄게요.”“가능하겠어요?”“제가 여기 사장인데 당연히 가능하죠.”최연준이 카운터 뒤로 걸어갔다. 비록 움직임은 능숙해 보였지만, 도구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아주 요란했다. 그 바람에 육경섭은 평소에도 이렇게 요란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소리를 내어 그를 내쫓는 건지 구별이 가질 않았다.잠시 후, 최연준이 나름 그럴듯하게 세팅하고 그의 앞에 가져다주었다.예쁜 레드벨벳 케이크와 고소한 향이 풍기는 따뜻한 라테 한잔이었고 쟁반 위에 작은 보라색 아이리스꽃으로 데코까지 했다.육경섭은 아이리스꽃을 잡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이 정도로 꼼꼼한 걸 보면 절대 당신 아이디어는 아니겠군요.”“그래요.”최연준이 손을 닦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이게 다 우리 와이프 아이디어이고 전 그저 와이프한테 배웠어요.”케이크를 한입 먹어보던 육경섭이 눈살을 찌푸렸다.“이거 설마 오늘 채 팔지 못한 나머지를 가져온 거 아니죠?”“당연히 아니죠.”최연준이 피식 웃었다.“그저께 팔다 남은 거예요.”말문이 막힌 육경섭은 그를 빤히 보다가 한참 후에야 억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사모님 솜씨 한번 맛봐야겠어요.”“아, 오해했어요.”최연준이 계속하여 무표정으로 말했다.“이것도 우리 와이프가 한 게 아니에요.”“아이참...”“그저께 어떤 손님이 레드벨벳 케이크를 주문하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서연이가 아직 배우지 못해서 제
그런데 이상한 건 구현수가 그 일대에서 증발이라도 한 듯 어디에도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방한서는 강주로 달려와 이 소식을 최연준에게 전했다.“도련님, 저희가 오성을 전부 다 뒤졌는데도 구현수를 찾지 못했습니다.”최연준의 낯빛이 싸늘해졌다.‘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왜 갑자기 사라져!’하늘로 올라갔나 땅으로 들어갔나, 생사조차 알 길이 없어 최연준은 가장 나쁜 결과까지 생각하고 있었다.“오성에서 계속 찾아봐!”그가 이를 꽉 깨물었다.“작은삼촌이 나보다 한발 먼저 구현수를 찾은 게 아닌가 싶어. 정말 그렇다면 몰래 뒤에서 손을 쓸지도 몰라.”“도련님, 그럼 어떻게...”방한서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두 눈을 크게 떴다.“이쪽은 신경 쓸 필요 없어.”최연준이 싸늘하게 분부했다.“문제는 서연이야... 믿을만한 애들을 몇몇 불러서 출퇴근길을 지켜보라고 해. 서연이한테 절대 무슨 일이 있어서는 안 돼!”“알겠습니다!”말을 마친 최연준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최진혁이든 최지한이든, 아니면 최씨 가문의 기타 꿈틀대는 세력이든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도 두려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그와 강서연은 노출된 곳에 있었고 그들은 뒤에 몰래 숨어있었다. 최연준을 건드릴 수 없다면 무조건 목표를 강서연 쪽으로 돌릴 것이다...최연준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여보!”그때 커피숍 밖에서 강서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한서는 최연준과 눈빛을 주고받은 후 모자를 꾹 눌러쓰고 재빨리 뛰쳐나갔다.그가 옆을 스쳐 지나갈 때 그의 움직임이 수상하다고 생각한 강서연이 자세히 살펴보려는데 최연준이 마침 안에서 걸어 나왔다.“퇴근했어?”“네!”강서연은 눈빛을 거두어들이고 그의 팔짱을 낀 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가게 안에는 손님이라곤 없이 텅텅 비었다. 지금 마침 퇴근 후의 여유 시간이라 가게 안에 손님들로 붐벼야 할 때다. 커피콩이 담긴 통이 진열장에 가지런히 놓여
댓글을 보던 최연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새로 선 가게는 일반적으로 이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기 어렵다. 그렇다면 유일한 가능성은 강서연의 말대로 누군가 뒤에서 못된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이 댓글들은 댓글 알바를 찾아서 악의적으로 남긴 댓글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최연준도 육경섭을 의심해봤지만 머릿속에 잠깐 스쳐 지나갔다가 이내 부정했다. 육경섭의 성격과 지위라면 절대 이런 유치한 방법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게다가 이 방법은 여자들끼리의 다툼 같았다. 만약 육경섭이 그와 맞서고 싶다면 대놓고 선전 포고를 해도 되었다.그리고 경쟁 상대의 짓인 것 같지도 않았다. 이 근처에 커피숍이 많긴 하지만 가게마다 그 집만의 특색이 있고 고정된 고객층도 있어 서로 다툼 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하여 댓글 알바까지 구한 걸 보면 목표가 강서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최연준의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걱정 어린 아내의 표정을 본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책임을 자신에게로 돌렸다.“당신 분석이 맞아. 예전에 나한테 앙심을 품은 사람이 많거든. 그래서 누가 복수하는지도 모르겠어.”그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여보, 쓸모없는 남편이라서 미안해. 또 당신을 신경 쓰게 만들었네.”“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강서연이 그를 진지하게 쳐다보며 그의 두 볼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누군가 자기 남편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욕하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설령 그가 스스로 말한다고 해도 안 되었다.“우리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남자예요. 문제가 생기면 과거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함께 방법을 생각해서 해결해야죠. 내 말이 맞죠?”“하지만 내 과거는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될 수 있어.”“따라다니면 뭐요?”강서연이 히죽 웃었다.“그림자든 폭풍이든 난 현수 씨 아내예요. 모든 걸 현수 씨랑 함께 이겨나갈 수 있어요. 현수 씨랑 결혼한 그 날부터 바로 준비를 마쳤는걸요?”“정말이야?”최연준의 눈빛이 반짝였다.“어이구,
애간장을 태우는 강서연과 달리 최연준은 이 상황이 더 좋았다.그는 커피를 내리고 손님에게 깍듯이 대하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그녀와 단둘이 가게에 있고 싶었다.하지만 강서연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유찬혁에게 알아보라고 했다. 알아본 결과 역시 그의 예상대로였다.“형, 뉴미디어 회사 여러 군데 물어보니까 바로 데이터를 보여주더라고요. 보니까 전부 강진 그룹의 댓글 알바였어요.”“흥, 역시 강유빈의 짓이었구나?”“아무튼 댓글 알바비를 입금한 계좌는 강진 그룹의 재무 계좌였어요.”강씨 가문에 강유빈 말고 이런 생각 없는 짓을 벌일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는가?최연준이 미간을 어루만졌다.그는 강씨 가문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고 강씨 가문도 그를 이길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걱정되는 건 강서연이었다...“연준 형.”유찬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강씨 가문을 해결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사람이 했던 방법으로 그대로 하면 돼요.”최연준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가게에 여전히 손님이 없어 강서연은 그에게 혼자 가게를 볼 테니까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다들 봤죠? 이 집이 바로 제 동생네 가게예요!”강서연은 마음이 움찔했다. 날카롭고 조롱 섞인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강유빈이었다.“큰아가씨, 여기 지금 대중 평론이 엄청 안 좋아요. 제가 인터넷에서 봤어요.”“맞아요. 우리 오늘 여기서 커피를 마셔요?”“마시면 어때요?”강유빈이 피식 웃었다.“뭐라 해도 제 동생 가게인데 많이 좀 도와줘요. 과거에 감방까지 갔다 온 남편이 개과천선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우리 둘째 아가씨는 더 쉽지 않죠. 맨날 그런 남자를 감싸고 도니까요!”몇몇 동료들이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웃었다.가게 안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은 강서연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커피 머신을 씻고 남은 더러운 물을
“오늘 저 일이 있어서 일찍 문 닫으려고요.”강서연이 무표정으로 말했다.“그러니 다들 이만 돌아가세요. 여기 당신들이 원하는 게 없어요!”몇몇 동료들은 서로 멀뚱멀뚱 얼굴만 쳐다보다가 결국 강유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유빈은 팔짱을 낀 채 코웃음을 쳤다.“서연아, 벌써 문 닫게? 그리해서 가게세는 어떻게 벌어?”“가게세?”강서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가게세는 내 남편이 내고 있어. 여기 가게 일도 전부 남편이 관리하고 있거든. 우리 남편이 그랬어. 커피숍을 차린 게 날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니까 내가 문 닫고 싶을 때 문 닫으면 돼. 돈 걱정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지. 그리고 있잖아!”그녀는 카운터를 닦다가 고개를 들고 강유빈을 쳐다보았다.“여기는 커피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는 커피숍이야. 남을 욕하는 곳이 아니라!”“제대로 경영하지도 못하면서 잘난 척은.”강유빈은 동료들 앞에서조차 강서연에게 밀리는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그래, 우리가 갈 수는 있어! 하지만 인터넷에 악성 댓글이 하도 많아서 언젠가는 문을 닫을 거라는 걸 명심해!”“내가 문을 닫든 말든 언니랑 상관있어?”“나랑은 당연히 상관없지.”강유빈이 대놓고 비웃었다.“네 남편이랑은 상관있잖아. 어휴, 동생아, 커피숍은 분위기가 가장 중요해. 그런 곳에 남편을 떡하니 두었으니 스스로 망하는 길을 찾아가는 거랑 뭐가 달라?”강서연의 낯빛이 확 변하더니 들고 있던 커피잔을 꽉 움켜쥐었다.“우리 남편이 도둑질했어, 뭘 했어? 자기가 직접 일해서 돈을 버는데 그게 어떻게 스스로 망하는 길을 찾아가는 거야?”“왜냐하면 예전에...”“그건 다 지나간 일이야!”강서연이 살짝 흥분했다.“지나간 일을 자꾸 들춰서 뭐 해!”“왜? 화났어?”강서연이 흥분할수록 강유빈은 더욱 우쭐거렸다. 어릴 적부터 강서연과 다퉈서 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강서연이 그녀 대신 구현수에게 시집가면 인생이 망가져 마음대로 짓밟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구현수를 만나고 나서 점점 더
“내 한계를 건드렸다간 절대 가만 안 둬!”“너...”“당장 꺼져!”강서연이 포효하듯 소리를 질렀다. 강유빈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더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마침 가게 안으로 들어오던 임우정이 그 장면을 목격했다. 난장판이 된 현장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임우정은 혹시라도 강서연이 괴롭힘을 당했을까 봐 두말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 강유빈을 확 밀쳤다. 그 바람에 강유빈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혔다. 어찌나 아팠던지 식은땀까지 뻘뻘 흘렸다.“임우정 씨, 당신 미쳤어요?”강유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감히 날 밀쳐요?”“왜요? 당신을 밀치면 안 돼요?”임우정이 강서연을 감싸고 돌았다.“지금 한 무리 사람을 데리고 와서는 우리 서연이를 괴롭히려 했던 거 맞죠?”“괴롭히다니요. 난 매출을 올려주려 온 거라고요!”강유빈이 그녀를 째려보았다.“남의 호의도 몰라주고 참... 당신도 서연이처럼 사리 분별을 참 못하네요!”더는 그녀와 쓸데없는 얘기를 섞고 싶지 않았던 임우정은 다짜고짜 강유빈의 뺨을 후려갈겼다.사실 그녀는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강유빈이 어찌나 사람의 화를 잘 돋우는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임우정은 기고만장한 강유빈에게 험한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너무 화난 나머지 머릿속이 다 하얘졌다. 평소 언변이 좋던 그녀마저도 이런 순간에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말을 못 하겠으면 그럼 때려야지!서로 머리채를 마구 쥐어뜯는 임우정과 강유빈은 누구 하나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했다.강서연은 두 사람을 말리고 싶어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자그마한 커피숍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지나가던 행인마저도 가게 안을 기웃거렸다.육경섭은 요 며칠 최연준을 알아보려고 마당 뒤쪽의 은밀한 구석에서 자주 지켜보곤 했다. 조금 전 임우정이 들어가서 얼마 되지 않아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저도 모르게 임우정을 걱정하기 시작했다.그런데 그가 가게 마당으로 들어가 보니 임우정이 드높은 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