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경섭은 차에 앉아 에어컨을 가장 낮은 온도에 맞춰 놓았지만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그는 머리가 아픈지 미간을 엄지로 힘껏 눌러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감방에 들어가는 날부터 임우정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곁에서 지켜주지 못한 채 멀리서 바라보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그녀가 구현수와 아는 사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는 두려웠다.구현수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에 절대로 그 변태가 그녀를 해치게 놓아둘 수는 없었다!누군가 그녀에게 위협이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막론하고 처리하려 했다.그래서 구현수에게 계속 찾아와 괴롭혔던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로써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그는 절대로 구현수가 아니었다!부하가 전화를 끊고 한껏 엄숙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경섭 형님, 오성 쪽에서 받은 소식인데... 구현수가 아직 살아있답니다.”“사실이야?”“네.”그가 머리를 끄덕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강서연의 남편은 누구지?아무래도 강서연은 자신과 결혼한 사람이 구현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구현수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육경섭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출구가 없는 미로를 걷듯이 그는 답을 찾지 못했다.“경섭 형님, 저 사람이 구현수가 아니라면 저희가 손떼도 되지 않겠습니까?”“그렇게 하지.”육경섭이 목소리 낮춰 말했다.“상관없는 사람들이면 이쯤에서 손떼도 되겠어, 그런데 너희들 그자가 누군지 모르는 거야?”“그게...”“됐어!”부하가 난감하게 쳐다보자 육경섭은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전화 진동소리가 났다.부하가 가져다주자 전화 화면에 뜬 ‘최지한’ 세글자가 그를 불쾌하게 만들었다.처음에는 최지한과 접촉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직 그가 강주에서는 입지가 탄탄하지 않은 터라 그 어느 쪽도 미움을 살 수가 없었다.때문에 최씨 가문이 방패막이가 되어준다면, 앞으로 오성이나 강주에서 그가
육경섭은 잠깐 머뭇거리고는 말했다.“도련님은 누구를 처리하고 싶으실까요?”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최지한이 조심스레 말했다.“최씨 가문 셋째 도련님, 최연준!”육경섭의 눈빛이 서늘해졌다.“만나서 얘기하게 시간 나면 오성으로 와!”...강서연은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임우정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자니 코끝이 시려왔다. 강서연이 그녀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임우정은 집에 돌아와서부터 여태껏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방안에 자신을 가두었다. 혼이 나간 사람처럼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우정 언니, 배 안 고파요?”강서연은 온갖 방법을 써서라도 대화를 이어가려 노력했다.“밖에 석훈 씨와 현수 씨가 있는데 뭐라도 먹을 것을 가져다 달라고 할까요?”임우정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강서연도 마음이 무거워졌다.그녀가 알고 있는 임우정이라면 바다 갈매기처럼 시원하고도 자유분방했고 그 어떤 어려움도 그녀를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그러나 지금은...한참 뒤, 임우정은 숨을 크게 내쉬고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그리고 눈물을 닦으며 억지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서연아.”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정말 미안해...”“나한테 뭐가 미안해요!”강서연은 이어 말했다.“행패를 부린 건 육경섭이잖아요! 언니가 초대한 것도 아니고!”“그렇지만 나랑도 엮인 일이잖아!”“우정 언니.”강서연이 눈을 크게 뜨고는 말했다.“그 말은 육경섭이 언니 때문에 온 거란 말이에요? 내가 볼 땐 아니에요, 그 사람은 현수 씨 때문에 온 거예요! 전에 그 사람이... 감방에 있을 때부터 현수 씨한테 앙심을 품었대요.”“아, 그래?”임우정은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서연아, 내가 전에는 네가 너무 아까워서 여러 가지로 현수 씨를 배척했는데. 돌이켜보면 내 전 남자친구도 현수 씨와 다를 게 없었어!”“우정 언니...”“경섭이가 감방에 가게 된 건 다 나 때문이야.”임우정은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녀의 모습에 강서연은
육경섭은 임우정을 지키기 위하여 고의 상해죄로 8년 징역형을 받았다.대학 시절, 임우정은 수없이 감옥에 가서 면회를 시도했지만, 기다린 그녀 앞에는 늘 교도관이 서 있었다.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라는 차가운 말과 함께 말이다.마지막 한 번은 그녀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제안을 받았을 때였다. 임우정은 육경섭과 이 기쁨을 제일 먼저 나누고 싶었고 면회하러 갔다.그녀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면회실 밖에서 기다렸고 철문이 무겁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육경섭이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났고 투명한 유리창 뒤로 그가 보이자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없이 울었다.“울지 마. 나 같은 놈 때문에 눈물 흘리지 말고.”육경섭이 감방에 들어간 뒤로 그녀에게 했던 첫마디이자 마지막 한마디였다. 말을 마친뒤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 일어서서 문 뒤로 걸어 나갔다.임우정은 그들을 가로 막은 유리창을 미친듯이 두드렸고 교도관은 그런 그녀를 막아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말을 전해 왔다. 교도관은 엄숙하게 그녀에게 말했다.“육경섭 재소자가 당신한테 더는 찾아오지 말고 밖에서 마주치더라도 모르는 척 지나쳐달라고 전합니다.”임우정은 순간 멍해졌고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그렇게 그녀가 떠난 뒤, 육경섭은 감옥에서 크게 병을 앓았고 죽을 뻔한 경험을 했다. 임우정의 따뜻한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렸고 조직 보스의 음침한 표정이 자꾸 그의 눈앞을 가로 막았다.“육경섭, 평생 지켜준다 했으니, 너가 한 말 지켜야 돼, 알았지!”“경섭아, 이번 물건 반출 성공하기만 하면 삼십 프로 떼줄게!”“육경섭, 나 오성에서 대학교 다니고 싶어. 오성에서 일자리를 찾으면 안 되나? 그러면 우리 매일 같이 있을 수 있는데!”“아, 맞다! 경섭이 너한테 여자친구가 있지? 경섭아, 이번 일 네가 못하면 다른 사람 찾아서 하면 돼. 그런데 밑에 놈들은 그냥 헛수고 시키면 안 되겠지? 네 여자친구를 찾아서 밖에 친구들이랑 같이 놀게 해야겠어. 그걸로 만족시킬 수밖에.”
신석훈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건네려 손을 올리던 최연준은 머뭇거리다 말았다....저녁에 집에 돌아간 뒤, 강서연은 최연준의 품에 기대어 있었고 둘은 편하게 침실에서 쉬고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찬란한 별빛이 창문을 통해 침실로 비춰졌다. 강서연은 잠이 오지 않았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참 오랜만에 이렇듯 조용하게 밤하늘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최연준은 그녀가 더울까 봐, 살포시 부채질해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나른하게 반대로 몸을 뒤집었고 그를 향해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최연준은 긴장한 듯 목젖이 흔들렸고 몸이 슬그머니 달궈졌다.강서연은 코끝에 땀이 맺힌 남자의 모습을 보고, 전기요금를 아낀다고 에어컨도 마음껏 쓰지 못하게 한 것 같아 못내 미안했다.“현수 씨, 더우면 에어컨을 켜요, 우리. 전기요금 얼마 안 들어요.”“응... 아니야.”최연준은 윗 입술을 여러 번 깨물었다. 그가 몸이 뜨거운 거랑 그녀가 얘기한 더운 거랑 전혀 다른 건데 말이다...최연준은 크게 호흡 한번 하였고 이내 시선이 그녀의 하얀 목 라인에 이어진 앵두같은 입술에 고정되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얌전하지 못하게 그녀의 옷 속으로 손을 넣으려고 했다.그 순간 땅 꺼질 정도로 깊은 그녀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왜 그래?”그는 하려던 동작을 멈추고 걱정스레 물었다. 보아하니 그녀의 주의력이 전혀 둘의 애정행각에 있지 않고 뭔가 걱정이 많은 것 같았다. 그는 표정 변화 없이 그녀를 탐하였다.“여보, 왜 한숨을 쉬고 그래?”“우정 언니랑 육경섭 두 사람 말이에요.”최연준이 입꼬리를 실룩거렸다.“응? 그 두 사람 이미 끝난 거 아니야? 뭘 걱정해?”‘이럴 때 그 둘보다 눈앞에 남편 생각을 더 해보는 건 어때?’최연준은 끊임없이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그냥 둘이 이대로 끝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강서연은 두 눈을 깜빡거리며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우정 언
최연준은 안색이 변하더니 조용히 대답했다.“다 지난 일이지... 그곳은 싸우는 것 빼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곳이니까.”“그 사람을 때렸어요?”“응. 그런 셈이지.”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방에 들어간 사람은 대부분 폭력적인 경향이 있어서 심리적으로도 다소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육경섭같이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구현수한테 맞았으면 앙금이 남았을 수 있겠지 싶었다.그에 반해 현수는 그런 비슷한 문제가 없다고 강서연은 느꼈다. 표정이 차갑고 말수가 적은 것 빼고는 다 괜찮았다. 강서연의 예쁜 두 눈이 미소로 가득 찼고, 조용히 남편을 쳐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이런 남편을 만난 게 로또 맞은 것 같았다.그녀는 작은 손으로 그의 굴곡이 선명한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었고 면도를 하지 않은 터라 수염이 그녀의 손바닥을 찔렀다.“뭘 그렇게 쳐다봐?”최연준은 그녀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물었고 강서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그냥. 내 남편이 애증도 확실하고, 도량까지 넓어 보여서요! 경섭 그자가 당신을 그렇게 대하는데도 무정하고 의리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하니까, 그 정도 포용력을 아무나 갖고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최연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당신 눈엔 내가 그래 보여?”“그럼요.”최연준은 그녀를 품에 꽉 안으며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강서연은 대신 불평을 쏟아냈다.“현수 씨. 그 사람 정감 있는 사람이라고 현수 씨가 그래도, 내 생각은 안 그래요. 경섭이 우정 언니한테 그렇게 대하는 건 정말 양심 없어 보여요. 언니가 이제껏 마음 졸이며 줄곧 그 사람만 기다렸는데!”“그 사람도 어쩔 수 없는 게 있나 보지.”최연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옆으로 넘겨주며 말을 이었다.“자신이 감옥도 갔다 왔고, 또 조직에 몸 담고 있으니, 서로 다른 세계 사람이란 생각에서 우정 씨한테 매정하게 한 것 같은데. 거리를 두는 건, 사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우정 씨를 지켜주는 행동일 수도
배경원은 확신에 찬 모습으로 머리를 끄덕였다.“그러니까 저번주에 계천에서 낚시를 하다가 거기서 정면으로 마주쳤는데 깜짝 놀랬잖아요. 연준 형이랑 구현수 그 사람 얼굴이 너무 닮았어요.”최연준의 안색이 점점 더 그늘져갔다. 배경원은 계속해서 말했다.“생긴 것만 빼고 보면 나머지는 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더라고요. 내가 의심스러워서 몰래 좀 조사해 봤는데 구현수가 살아있는 게 확실해요. 그 인간 감방에서 나온 뒤에 강주 쪽 조직의 몇몇 보스한테 잘못 걸려서 돈 못 갚는다고 손가락 잘리고 강주에서 내쫓겼던 거래요.”최연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유찬혁은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그래서...”생각에 잠겼던 유찬혁이 뭔가 떠오르는 듯했다.“설마 그 일, 육경섭하고 관련 있을까? 연준 형! 어쩌면 육경섭 그 사람, 형이 구현수가 아닌 걸 진작에 눈치챘을지도 몰라요.”최연준 역시도 듣자마자 그 걱정부터 들었고 그의 눈밑에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육경섭과 몇 번 만나봤지만, 말도 이상하게 하고 참 감 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어서 진작에 알아챘을 것도 같았다.배경원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우물쭈물 말했다.“육경섭... 형네 삼촌 쪽 사람은 아니겠죠?”최연준은 눈을 치켜 뜨고 말했다.“가능성이 없진 않지! 의심스러운 데가 한두 곳이 아니라서 쉽게 결론부터 지으면 안 돼.”지난번 강서연과 같이 온천 리조트에 갔을 적에 그녀가 해변에서 떠돌이 노숙자를 보고 놀라 했던 일이 떠올랐다.그 떠돌이가 구현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연준은 매서운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구현수가 살아 있으니, 일단 그 사람 우리가 먼저 찾아서 묶어둬야지. 명황산 일대에서 움직이다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잖아.”“그래요.”배경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아랫사람들한테 소문내지 말고 비밀리에 최선을 다해 찾으라고 시켰어요.”최연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두 사람이 떠난 후, 혼자 남겨진 최연준은 조용히 앉아있는데 마음이 착잡했다. 그는 구
사진의 등장인물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크게 놀랐다.‘구현수?’육경섭은 고개를 번쩍 들어 최지한을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 눈빛을 했다.“뭐야? 설마 그 사람 본 적 있어?”육경섭은 얼굴빛 하나 변함 없이 사진을 내려놓았고 최지한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맡아서 치워줘야 할 사람이야.”최지한은 육경섭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제대로 보고 작업해야 돼. 실수 없이!”“무슨 뜻이죠?”육경섭의 인내심이 바닥날 정도로 최지한은 한참 이상하게 웃어 보이다가 목소리를 내리 깔고 말했다.“빙빙 돌리지 않을게. 바로 얘기하자면, 타킷은 최연준이야. 최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사람! 할아버지가 어제 막 북미로 정계 요인들을 만나러 가셔서 집안이 비었네... 최적의 시기지. 우리가 손보기 가장 좋은.”육경섭은 미간을 찌푸렸다. 강서연의 남편이 최연준 최씨 가문 사람일 줄은 전혀 몰랐었다. 지난 몇 차례 만나본 정황상, 강서연은 최연준의 정체를 모르는 눈치였는데, 여전히 그를 엄청 아껴보였다. 최연준을 해치기라도 하면 아마 목숨 걸고 나설 위인으로 보였다. 여자가 무섭다라기 보단 하필 임우정 그녀의 절친인 게 마음에 걸렸다.육경섭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복잡해진 눈으로 최지한을 바라보았다. 한참 침묵하던 그는 거절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큰 도련님. 이번 건은 어려워요. 심사숙고해 주시는 게 좋겠네요.”최지한은 무심히 손에 든 라이터를 껐다 켰다 하더니 시가 한 대를 태우고 나서 그를 향해 차갑게 웃었다.육경섭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이게 다 도련님을 위해서입니다. 최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 영감님의 총애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중요한 인물이 갑자기 사라지는데 영감님이 설마 가만있으시겠어요. 끝까지 조사하고 그러시겠죠. 최씨 가문은 너무 막강해서 결국 저까지 찾아내겠죠... 제가 혼자 감당하긴 벅찬 일이라!”“그게 두려웠던 거네?”최지한의 얼굴에 기괴한 표정이 그려졌고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육경섭은 최지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할아버지의 의심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내가 시키는 대로 저 사람을 치워주면 돼. 나머지는 걱정말고.”최지한은 육경섭의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목소리에 담긴 음침하고 괴상한 느낌은 그로 하여금 최지한이 영감님마저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해줬다.최지한은 구현수를 물러가게 한 뒤 토지 계획도를 꺼내들었고 오성의 중심부 지역의 황금땅을 그리며 말했다.“여기 이곳이 인파도 몰리고 시중심이라 금싸라기 땅이야. 일이 성사되면 관련 부서에 얘기해서 너한테 이 땅들을 건네줄게. 할만 하지?”육경섭은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최지한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육경섭, 야망이 있는 사람 아니었나? 일처리 충분히 독하고, 모질고, 깔끔하게 잘하잖아.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부른 건데. 이번 일, 우리 모두한테 다 남는 장사일 텐데, 잘 따져봐!”육경섭은 손가락으로 펼쳐진 토지 계획도를 툭툭 치며 보았다. 땅이 크고 넓었으며 딱 봐도 앞으로 투자가치가 엄청나 보였다. 오성에서 이 땅을 금싸라기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느낌이었다.‘허허, 최연준 목숨이 꽤나 큰 값하네!'육경섭은 가겹게 웃으며 눈을 들어 최지한을 보며 물었다.“큰 도련님, 그럼 최연준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최지한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확실치 않아 하며 대답했다.“맨체스터에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런던일 수도 있고. 아무튼 저번 비행기 사고 뒤로 외가 측에서 지켜주고 있다고 했는데.”“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저 보고 어떻게 없애라는 말인지?”최지한은 웃어 보이며 말했다.“위치는 네가 정확히 조사를 해야지! 아니면 내가 널 왜 불렀겠어.”육경섭은 고개를 끄덕이고 잔을 들어 와인을 단숨에 마셔버렸다.‘이 인간, 아직 최연준이 강주에 있는 것도 모르고, 결혼한 사실도 모르네.'...육경섭은 검은색 007 가방 하나 늘어서 강주로 돌아왔다. 그 안에는 스무 개 묶음으로 된 현찰이 가지런
“정 선생님, 아직도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영미가 대체 얼마나 좋은 조건을 내걸었기에, 백인서를 모함하는 데 가담한 거죠?”정대명은 눈동자를 굴리며 머뭇거렸다. 어디까지 입을 열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당신이 인서의 양아버지라는 말은 사실입니까?”“그...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진실이야!”“그렇다면 딸을 키운 정도 있을 텐데 왜 모함하려 하신 거죠?”정대명의 몸이 떨렸고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정 선생님, 이제 영미조차도 당신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신다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될 겁니다!”그때, 바깥에서 소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소아는 정대명을 매섭게 노려본 뒤, 사람을 시켜 문을 잠그도록 지시했다.소연화는 최군형과 최지용을 데리고 들어왔다.“여보!”최군형은 강소아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권온유와 정승우, 두 아이 모두 찾았어!”“정말인가요?”“그래.”최지용도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인서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됐어.”“인서는 원래부터 결백했어요!”강소아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아이들을 찾았나요?”“아이들이 어찌나 영리하던지, 스스로 빠져나왔더군.”최군형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그날 밤, 우리가 정대명을 찾았을 때, 정대명의 머리가 다쳐 있었던 거 기억하지? 그 틈을 타 도망쳤대. 길에서 착한 운전사분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그 운전사가 집까지 데려다줬어. 차 안에서 정승우가 휴대전화를 빌렸는데 다행히도 권온유가 자기 엄마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서 덕분에 바로 연락할 수 있었어. 아마 20분 후면, 두 아이 모두 안전하게 권씨 집안에 도착할 거야.”“정말 놀랍군요...”강소아는 감탄이 담긴 눈빛으로 답했다.“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그런 상황 속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니. 역시 아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저도 이제부터 가원이에게 제 전화번호를 외우게 해야겠어요!”“그런 말 하지 마!”최군형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영미의 마음속엔 불안이 가득 찼다. 그러다 문득 시장 선거의 마지막 대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스쳤다.지금이라도 폭탄 같은 뉴스가 터진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쏠릴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그 뉴스가 백인서와 관련된 것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영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기자와의 약속을 잡았다.“조순철 씨의 외손녀가 실종된 사건, 알고 계십니까?”카페의 한구석,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였다. 영미는 얼굴을 거의 가릴 만큼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맞은편에는 기자는 커피잔을 천천히 저으며 영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이건 단순한 어린이 실종 사건이 아닙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입니다.”“영미 씨.”기자가 녹음기를 켜며 말했다.“아시는 내용을 모두 말씀해 주세요. 자료는 제가 정리해 영미 씨 말씀대로 보도하겠습니다.”“좋아요.”영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알고 있기로, 권씨 가문의 어린 딸을 데려간 사람은 바로 그 공익학교 프로젝트에 있던 한 학생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백인서의 지시를 받았죠!”녹음기를 쥔 기자의 손이 떨렸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강소아는 방문 앞을 서성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그 방에는 정대명이 갇혀있었는데 강소아가 아무리 질문해도 정대명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육경섭은 딸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희철을 시켜 예전 식으로 정대명을 다루려 했지만, 강소아가 막아섰다.현재 육씨 가문은 이미 정식 사업가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과거의 폭력적인 방식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다.강소아는 육경섭을 설득해 물러서게 한 뒤, 다음 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소연화가 급히 뛰어왔다.“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소연화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화면에는 뉴스가 떠 있었고 제목은 눈에 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조씨 공익학교에서 터진 충격적인 추문, 관리직
가끔 차가 지나갔지만, 정승우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어둠이 내려앉았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며칠 동안 육체와 마음이 지친 권온유는 이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정승우는 어쩔 수 없이 온유를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오빠...”권온유는 울먹이며 말했다.“해가 졌어요. 저... 무서워요.”“괜찮아.”정승우는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오빠가 집에 데려다줄게.”“오빠, 우리 그냥 돌아가요...”“뭐라고?”권온유의 시선이 정승우의 피로 물든 발에 닿았다.“발이 많이 아프죠?”권온유의 작은 얼굴 위로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오빠, 저 내려주세요. 그냥 돌아가요...”“온유야?”권온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 집이 낡고 춥긴 해도... 오빠 발에서 피가 나진 않잖아요!”정승우는 멍하니 잠시 굳어 있다가 그 어눌한 말 속에 담긴 다정함을 깨달았다.이 작은 아이는 납치당했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라도 정승우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정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작은 새들이 집으로 향해 줄지어 날고 있었다.정승우는 온유를 데리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했다.“바보야.”정승우는 온유를 내려놓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난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그 사람이... 우리를 때릴까요?”“그럴 거야.”정승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린 시절, 정대명에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탈출할 때 그의 뒤통수를 내려친 한 방은 그동안의 빚을 모두 갚은 셈이었다.“그런데 오빠, 그 사람은 오빠 아빠잖아요?”권온유는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하지만 오빠가 아프다고 제가 말했을 때 오빠 아빠가 들어왔었잖아요.”정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정대명이 들어온 것은 아마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함께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없어질까 봐서였었다.정대명은 단지
차 안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영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정대명에게 다가갔다. 그의 머리 아래로 어두운 핏자국이 퍼져 있었고 그 흔적은 이미 굳어 있었다. 영미는 정대명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댔다.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영미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차가운 눈빛으로 정대명을 내려다보다가 거칠게 발길을 휘둘렀다.“일어나요!”강소아와 최군형도 다가와 공장 안을 살폈지만 안은 고요히 비어 있었다.“아이들은요?”“아이고...”정대명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살려줘, 살려줘... 저 괘씸한 녀석이!”“정대명 씨!”영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어쨌든 이번 일은 영미가 자신 있게 권온유의 행방을 안다고 장담한 일이었다.영미는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함께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확신에 차 말했다.그런데 지금... 정대명은 다쳐 쓰러져 있고 두 아이는 사라졌었다.백인서를 함정에 빠뜨리려던 영미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정대명은 도움을 청하려다 영미가 눈짓을 주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영미의 눈길을 따라 보니 최군형과 강소아도 함께 와있었다.정대명은 예전에 영미가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정대명은 머리를 살짝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이 정대명인가요?”최군형이 다가가 물었다.정대명은 말끝을 흐리며 최군형의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백인서의 양아버지시고?”최군형은 다시 물었다.“당신이 당신 아들과 함께 권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게 맞나요?”“아니야, 나 아니야!”정대명은 크게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이봐, 동생, 난 억울해! 내 아들 녀석이 나를 해치려고 했어! 내 머리를 봐, 그 자식이 벽돌로 내리쳤다니까!”“그만해요!”영미는 정대명의 말이 길어질수록 상황이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정대명을 노려보며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했다.강소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들의 서툰 수법이 한심하기만
경찰서 밖에서 최지용은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젊은 경찰관이 안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최지용은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정호야!”정호라는 젊은 경찰관은 최지용을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녀석!”최지용은 정호에게 다가가 가볍게 주먹을 툭 날리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거야?”정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방금 최씨 집안에서 백인서를 데려간 사람 중에 정호도 있었다. 최지용도 놀라웠지만, 영미 역시 경찰이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떠나기 전, 정호가 살짝 눈짓을 보냈고 최지용은 그의 의도를 알아채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지용이 형.”정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께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분하고 계시니 문제없을 겁니다!”“도대체 누구 지시로 백인서를 여기로 데려온 거지?”“소아 아가씨예요!”정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소아 아가씨가 갑자기 지시한 거라 사전에 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최지용은 살짝 놀랐다. 강소아의 지시라니.“형수님께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 아이가 실종되기 전에 형수님께서 만난 적이 있거든요. 경찰이 형수님을 데려가서 조사하는 건 당연한 절차입니다.”최지용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피식 웃음을 지었다.강소아가 이런 ‘당연한 절차’를 이용해 백인서를 경찰서로 보낸 이유는 경찰서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또 누군가가 음모를 꾸며 백인서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해도 경찰서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경찰서 안에는 일을 봐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백인서가 여기서 며칠 지내는 동안 힘든 일 없이 외부의 소란도 피할 수 있는 셈이었다.최지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강소아는 정말 자매를 위한 배려가 남달랐다. 이렇게까지 배려심 깊은 방안을 생각해 내다니!“지용이 형.”정호가 계속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영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소아 언니, 저를 믿지 않으세요?”“난 오직 사실만을 믿어.”“권씨 가문의 딸이 실종된 사건에 백인서 씨의 양아버지와 남동생이 관련되었어요, 그게 바로 사실이에요!”강소아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려 했다.세상에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호텔 뒷뜰에 있는 그 CCTV가 정말 완전히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육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힘을 합쳐 그 고장 난 CCTV 하나도 못 고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최군형은 강소아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안심시키며 슬며시 휴대전화를 건넸다.강소아는 화면을 확인했다. 최군형의 부하가 보낸 메시지였다.“도련님, CCTV 데이터를 복구 중입니다. 곧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강소아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영미가 이렇게까지 백인서를 몰아세우는 걸 보니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꺼림칙한 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어차피 꼬리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었기에 그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바로 그때, 집사가 다소 당황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집사의 뒤에는 몇 명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방 안을 둘러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 백인서 씨가 계십니까?”표아정은 등을 꼿꼿이 펴고 대답했다.“경찰관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당신이 백인서 씨인가요?”“저는...”“백인서 씨가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신고를 접수했습니다!”“뭐라고요?”백인서는 얼굴이 창백해졌다.“백인서 씨,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권온유가 납치된 지 하루가 지났다.그동안 정대명은 단 한 번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것도 차갑게 식은 죽 한 그릇과 딱딱한 빵 한 조각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하게 자란 권온유에게 이런 음식은 처음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감히 울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참으며 빵을 조금씩 뜯어 먹고 있었다.정승우는 그런 온유의 모습을 보고
“아줌마,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럼, 제가 알아낸 사실을 전부 말씀드릴게요!”영미는 입가에 교만한 미소를 띠며 백인서를 차갑게 한 번 쳐다보았다.“백인서 씨의 친어머니인 백홍은 인신매매범이었다는 사실, 모두 아셨나요? 백인서 씨의 어머니는 백인서를 정대명의 집에 맡겼고... 흥! 정대명의 아내도 백홍이 납치해 왔다는 소문이 있어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잖아요. 제 생각엔... 인신매매범의 딸이라면 그런 일쯤은 익숙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권온유의 실종이 정말로 백인서 씨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나요?”“영미!”강소아가 나서며 분노를 가득 담아 소리쳤다.“허위 사실을 퍼뜨리지 마!”“소유 아가씨, 억울하네요!”영미는 강소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이렇게까지 조사한 건 다 아가씨를 위한 거예요! 딸도 있는 사람이 백인서를 곁에 두고도 마음이 놓이세요?”“그만해!”최지용이 크게 소리쳤다.백인서는 몸을 떨며 믿기지 않는 눈으로 최지용을 쳐다보았다.그러나 최지용의 얼굴에는 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최지용은 굳건한 눈빛으로 뒤에 있는 백인서를 지키고 있었다.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백인서를 아끼고 있었다.백인서는 코끝이 찡해지며 본능적으로 최지용의 손을 꼭 붙잡았다. 최지용의 따스한 손은 백인서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그 온기가 어둠의 두려움을 잊게 해주었다.최지용은 백인서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고 다시 영미를 바라볼 때는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영미야.”최지용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집안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저 넘어가는 거야. 더 이상 선을 넘지 마.”최군형도 나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백인서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모르겠어요? 영미 아가씨, 우리 최씨 가문 사람들을 바보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영미는 순간 긴장했다. 최군형의 말 속엔 어딘가 숨은 뜻이 있는 듯했다.최군형의 깊고 복잡한 눈빛을 파악하기 어려웠다.표아정은 천천히 일어나 어깨에 걸친 숄을
백인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최지용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그때 최지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표아정이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서둘러 돌아오라고 재촉했다.최지용은 결국 어머니의 말에 따라 백인서를 데리고 최씨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넓은 거실에는 최군형과 강소아도 나와 있었고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백인서가 들어서자, 표아정이 백인서를 올려다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다.강소아는 백인서와 눈을 마주치며 단호하게 미소 지었다.백인서가 의아해하던 찰나, 영미가 천천히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아줌마, 지용 오빠. 제가 권온유의 행방을 알아냈어요.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뭐라고?”최지용이 놀라서 물었다.“네가 어떻게 아는데?”영미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지용 오빠,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정보가 우리보다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최씨 가문은 만능이 아니에요, 최씨 가문도 모르는 정보가 있다고요.”표아정은 가볍게 기침하며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았다.최군형과 강소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목하고 있었다.최지용의 이마에는 점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미의 눈에는 한 줄기 교만한 빛이 번졌다.영미는 오는 길에 이미 모든 계획을 짰다. 정대명의 말이 맞았다. 누구를 훔치든 상관없었다. 인신매매범의 딸인 백인서가 아이들을 해치러 다닌다는 누명을 씌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면 백인서는 모두의 신뢰를 잃게 될 터였다.영미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강소아가 인신매매범을 곁에 둘 리 없다고 믿었고, 최지용 역시 이 사실을 알면 더는 백인서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영미는 정대명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었다.영미는 권온유를 넘기고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한패가 되어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주장할 계획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백인서는 변명의 여지도 없이 궁지에 몰릴 것이었다!“지용 오빠.”영미는 고개를 돌려 최지용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권온유는 정승
“그... 괜찮아!”정승우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권온유에게 말했다. 정승우는 이곳에서 권온유를 반드시 데리고 나가겠다고 결심했다.그런데 이때, 공장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곧바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정승우는 재빨리 권온유에게 눈짓했고 권온유도 알아채고는 즉시 땅바닥에 쓰러져 의식이 없는 척했다.정승우는 벽에 기대어 눈을 반쯤 감았다.“이 아이인가요?”영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맞아.”정대명은 영미를 흘깃 노려보며 묵묵히 대답했다.영미는 두 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희미한 빛 속에 있는 아이를 살펴보더니, 곧 얼굴빛이 확 변했다.“이 아이... 혹시 권씨 집안의 막내딸 아니에요?”정대명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애초에 아이를 훔쳐 올 때 이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리가 없었다.“정대명 씨.”영미가 차갑게 웃으며 돌아보았다.“제가 최씨 가문 집안 아이를 훔쳐 오라고 했지, 권씨 집안 아이를 훔치라고 했나요? 이러고도 저를 속이지 않았다고요?”“그게...”정대명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영미 아가씨, 어차피 목적은 백인서를 곤경에 빠뜨리는 거잖아? 그러니 누구를 훔쳐 오든 상관없지 않아? 아이를 훔치기만 하면 유괴범이 되는 거니까.”이 말은 영미에게만 충격을 준 게 아니었다. 정승우의 귀에도 또렷이 들어왔다.“좋아요.”영미는 깊은숨을 들이마신 뒤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 아이는 잘 지키고 있어요, 제가 다시 연락할 테니까.”...한편, 권씨 집안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권욱은 조순영을 탓하며 아이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했고, 조순영은 오열하며 남편을 원망했다. 조순영은 권욱이 바깥에서 여자와 부적절하게 얽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했다.“헛소리하지 마! 사람들이 나한테 어떤 소문을 퍼뜨렸는지 잘 알잖아. 결혼 생활 내내 너한테 부끄러운 일 한 적 없어.”“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정말 떳떳하게 행동했다면 왜 사람들이 당신만 가만두지 않는 건데?”며칠 전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