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은 임씨 부인이 그녀를 위로해 주러 왔는지 안다.그러나 위로의 말치고는 너무 듣기 싫다.사람마다 제명이 있다는 게 뭐지?정암은 죽어도 마땅하다는 것인가?그녀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들과 논쟁할 힘도 없어서 그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말했다.“저는 이미 진산군댁과 연을 끊었습니다. 제게 무슨 일이 있어도 진산군댁과 연관 없으니, 두 분께서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마십시오.”그녀는 말하고는 집으로 들어갔다.임학은 예상했던 데로 그녀의 뒤에서 고함쳤다.“김단! 사리 분별은 해야지! 어머님께서 평소에 집 밖으로도 안 나가는데, 네가 걱정돼서 친히 발걸음 하신 거야!”김단은 멈칫하더니 살짝 주먹을 쥐고는 임학에게 물었다.“도련님은요?”임학은 멍하더니 김단이 왜 이렇게 묻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김단은 갑자기 몸을 돌려 심사와 책문이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럼, 도련님은 왜 오셨는데요? 걱정돼서? 아니면 찔려서인가요?”그녀는 사실 여태까지 이해하지 못한 일이 있다.분명히 그날 정암이 그녀를 진산군댁에 데려다줄 때까지만 해도 공훈을 세우겠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는데, 왜 갑자기 그녀를 위해 공을 세우겠다고 한 걸까? 심지어 그녀에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급하게 밤중에 한양을 떠났는가?그녀는 무조건 누군가 정암에게 무슨 소리를 했다고 생각한다.소한과 임학 외에 그녀는 다른 사람을 떠올리지 못했다.임학의 당황한 눈빛은 그녀에게 답을 줬다.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한이 넘쳤다.“정말 너였어!”임학은 확실히 가슴이 찔렸다. 김단이 꼭 정암이랑 함께하겠다고 하니, 그날 그는 좋은 뜻으로 정암에게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니, 임학은 오히려 분노했다.“내가 그랬으면 뭐? 네가 마음먹고 아버지와 연을 끊겠다고 하니, 내가 출로를 찾아 줬을 뿐이야! 난 다 너희를 위해서인데, 내가 뭘 찔릴 게 있다고? 원망하고 싶으면 정암이 명 짧고 복이 없다는 것을 원망해!”“임학!”김단은 엄하게 소리 질렀다. 분노에 잠긴 목소리는 심
김단은 방으로 돌아갔을 때까지도 마음속의 분노와 슬픔을 가라앉히지 못했다.그녀는 자신이 전생에 임학에게 피맺힌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고서야 그녀가 생활이 좋아졌다고 느낄 때마다, 임학의 한마디로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명정대군도 그렇고 정암 역시 피할 수 없었다!그러나 만약에 그녀가 전생에 정말 임학에게 빚을 졌다면 그녀가 갚으면 되지 왜 정암까지 연루하는가?김단의 눈물은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숙희는 옆에서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뭔가 갑자기 생각나듯 탁상 위의 물건을 가리키며 말했다.“아씨, 그게 뭐죠? 봐 봐요.”숙희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보자 김단은 편지 한 통을 봤다.봉투에는 ‘소하친전’이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그녀에게 준 것이 아니다.김단은 좀 실망했다.“왜 편지 한 통 밖에 없지? 정유이는 분명히 정암이 자기에게 물건을 남겼다고 했는데!”그저 이 편지를 소하에게 전해라는 것인가?김단의 울음이 다시 터졌다. 숙희는 갑자기 뭔가 생각나서 말했다.“며칠 전에 정 낭자가 종사관이 세상 떴다는 소식을 듣고는 저를 데리고 취향각 주방에 가서 이씨 주방장님한테서 돼지대창 볶음을 배우라고 했어요!”“그리고 정 낭자는 또 저를 데리고 성동의 산림에 갔어요. 매년 시월에서 십이월 사이에 거기서 산사가 달린다고 했어요. 그리고 산사를 따고 말려서 보존하는 방법도 알려 줬어요.”“종사관님은 확실히 아씨에게 무언가를 남겼어요. 그는 이 세상에서 아씨에게 가장 잘해주는 사람을 아씨 곁에 남겨 줬잖아요!”숙희는 김단을 위로하려 했는데, 이 말을 듣자, 김단은 더 비통한 심정을 억제하지 못해 숙희와 부둥켜안고 울었다.조모도 세상 떴고, 정암도 죽었다.이후로, 이 세상에서 그녀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숙희밖에 없다!숙희는 마음이 아파 김단과 함께 울면서 계속 말했다.“아씨, 저는 영원히 아씨 곁에 있을 겁니다. 영원히 아씨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영원히 그녀 옆에 있겠다고?김단은 머리를 숙희의 목에 기대며 살짝
그러나 시간이 오래된 탓인지, 아니면 정암처럼 관에 석회를 뿌리지 않아서인지, 이 팔에서 썩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주상은 자기도 모르게 코를 막더니 불쾌해서 물었다.“뭘 보여주려는 것이오?”“주상전하께서는 이 팔에 새겨진 자청이 눈에 익으십니까?”소한의 말을 듣자, 주상은 다시 보더니, 팔에 새겨진 자청이 호랑이 머리였다!“전에 명정대군을 죽인 산적의 몸에도 똑같은 자청이 있었는데, 저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당우리에 있는 산적들을 만나 보니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 몸에는 죄다 호랑이 머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주상은 소한의 말을 듣고는 탁상에서 돌아서 내려와 쭈그려서 자세히 그 팔을 봤다.소한의 귀신처럼 으스스한 소리가 또 들려왔다.“주상전하께서도 이것이 예전의 호랑이군이라 생각하시나요?”‘호랑이군’이란 말을 듣자, 주상은 놀라서 땅에 주저앉았다.옆에 있던 내시도 놀라서 급히 다가가 주상을 부축하려 했는데, 주상이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 주상은 그 팔을 뚫어지게 보고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평양원군의 호랑이군 말이오? 자청만 봤을 때 확실히 비슷하오!”소한의 깊은 눈동자가 더 어두워졌다.“평양원군은 8년 전에 사라졌고, 당우리의 산적은 6, 7년 전에 창궐해졌습니다. 시간상으로 봤을 때 맞물립니다.”“아닐 것이오!”주상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열넷째는 절대로 그런 악행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오!”평양원군의 이름은 최지습이고 주상의 열네 번째 남동생이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유일한 남동생이기도 하다.그해, 주상이 아직 세자였을 때, 후궁이 난잡해서 많은 대군이 죽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대군은 그를 포함해서 일곱 명이다.그리고 주상이 왕위를 승계받고 나머지 여섯 명을 원군으로 책봉할 때, 그중 다섯 명이 결탁하여 주상을 끌어내려 했다. 평양원군은 혼자서 결탁한 다섯 명의 원군을 모두 주살했다.그리고 다섯 원군의 반란을 평정하고 평양원군과 그가 거느리던 호랑이군도 함께 사라졌다.호랑이군은 열 명밖에 없었
7일 후.숙희가 김단 방에 들어왔을 때, 김단은 방 안에 앉아서 바깥의 작은 마당을 보면서 넋을 놓고 있었다.벌써 연거푸 7일째다.김단은 매일 일어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넋만 놓고, 얼굴은 점점 수척해지고 있다.숙희는 큰 마님과 정암의 죽음이 회오리처럼 아씨를 가장 어두운 심연 속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지금 아씨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다.이렇게 생각하자, 숙희는 앞으로 다가가 김단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아씨, 저랑 갈 때가 있어요!”숙희는 원래 힘이 커서 김단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갔다.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멈췄다.숙희는 김단을 데리고 화원에 갔다.지금은 오월이라 여러 가지 꽃이 폈고 햇빛 아래의 화원은 생기발랄했다.하지만 이런 생기는 김단을 조금도 감동하게 하지 못했다.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숙희의 호의를 저버리기 싫었지만, 그녀는 정말로 방에만 있고 싶었다.숙희는 갑자기 한 곳으로 뛰어가더니 김단을 불렀다.“아씨, 여기 봐요. 이것이 무엇입니까?”숙희는 자기 옆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물었다.그 나무는 잎사귀 하나 없이 민숭민숭했다. 화원의 꽃과 비교하니 완전히 칙칙했다.하지만, 이 민숭민숭한 나무가 김단의 마음을 되살아나게 했다.매화나무다.김단이 알아본 것을 보자, 숙희는 또 김단에게 웃었다.“종사관님이 심은 것입니다! 겨울이 되면 이 나무에서 빨간 매화꽃이 가득 피어서 매우 고울 것 같습니다!”김단은 매화를 좋아한다. 특히 빨간 매화를 좋아한다.그러나 전에 진산군댁에서 그녀를 위해 심었던 매화나무는 결국에 모두 임원의 것으로 됐다.하지만, 이 매화나무만큼은 정암이 직접 심은 것이라 영원히 그녀의 것이다!정암이 그녀를 위해 한 일은 너무도 많다.마음 한 구석에서 따뜻함이 전해지더니 마음속의 어둠을 깨버렸다.그러나 김단의 코끝은 여전히 찡했고 눈물도 따라서 흘러내렸다.정암이 그녀에게 한 것에 비하면 그녀는 정암을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김단이 다시 울
김단은 길에서 위험한 일이 생겨 숙희를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웠다.그녀는 벌써 많은 사람을 헤쳤다.더는 숙희를 그녀 옆에 둬서는 안 된다.하지만, 숙희는 받아들일 수 없어 온 얼굴에 벌써 눈물 자국이 범벅 했다.“아씨께서 집 지킬 사람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사람을 찾을게요. 제발 저도 같이 데리고 가세요. 아씨랑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숙희가 이렇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김단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 숙희가 더는 마음 아프지 않았으면 해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돌렸다.“그럼, 이 일은 나중에 다시 하고, 너 지금 먼저 기성복 가게에 가서 남자 옷 두 벌을 사와.”밖에서 돌아다니려면 남장하는 것이 편리하다.숙희는 그제야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빨리 갔다 올게요. 아씨, 집에서 기다시고 계세요.”“알았어.”김단이 대답하자, 숙희는 눈물 닦으면서 나갔다.그녀는 그제야 방으로 들어가 간단한 짐을 싸려고 했는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편지를 봤다. 정암이 소하에게 쓴 편지다.그녀는 하마터면 이 일을 잊어버릴 뻔했다!한양을 떠나기 전에 이 편지를 소하에게 줘야 한다.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편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소하를 만난 것은 벌써 한 시간 뒤의 일이다.소하는 나무로 만든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안색이 창백했고 이마에도 땀이 얇게 한 층 맺혔다. 무슨 재난을 겪은 것처럼 허약해 보였다.김단은 걱정이 됐다.“소하 오라버니, 괜찮으세요?”소하는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담담한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들어 김단을 보더니, 수척해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 천천히 말했다.“슬퍼하지 마시오.”큰 마님을 놓고 한 말이기도 하고 정암을 가리키는 것도 있었다.김단은 마음이 씁쓸했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상황을 보자, 소하는 김단에게 물을 따라주고는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오늘 나를 찾으러 온 게 무슨 일 때문이지오?”김단은 그제야 반응하
김단은 소한의 이런 당당한 말투가 매우 싫다.그녀가 여기에 있든 말든, 나아가서 어디에 있든 간에 그랑 무슨 상관인가?그래서 바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녀가 이제 떠나려는 마당에 그랑 말다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정암이 생전에 소하 오라버니에게 편지를 남긴 게 있어 가져다주러 왔어요.”김단은 이렇게 말하고는 소한에게 인사 올렸다.“소 장군도 바쁘실 텐데,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그러고는 빨리 떠나갔다.그와 더 이상 한마디도 더 섞기 싫다는 뜻이다.소한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고, 돌아서 보니, 소하는 계속 차를 마시고 있었다.그는 방안에 들어서 소하 앞에 놓인 찻잔을 한 번 보고 나서 물었다.“단이가 왜 왔어요?”소하는 소한을 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정암 대신 편지 가져다주러.”소하는 이렇게 말하고는 의아하듯 소한을 바라봤다.“김 낭자가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더냐?”소한의 표정은 여전히 침울했다.“다른 얘기는 안 했어요?”소하는 시선을 거두고 찻잔을 탁상 위에 놓았다.“했어.”이 말을 듣자, 소한이 급해서 물었다.“뭐라고 했는데요?”이번에, 소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피식 웃더니 되물었다.“넌 뭐가 그리 급한 건데?”소한은 갑자기 멍하더니 그제야 그가 조금 전에 김단을 만나고 나서부터 뭔가 모르게 급해졌다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소한은 소하 앞에서 승인하기 싫어서 그저 둘러댔다.“저는 그저 갑자기 형 마당에서 단이를 만나서 이상했을 뿐입니다.”이 말은 소하의 더 큰 웃음을 자아냈다.“전에 김 낭자를 내 침대에 보냈을 때는 나중에 내 마당에서 그녀를 볼 수 있다고 예상 안 해봤어?”소한의 말은 마치 못처럼 정확하게 그가 가장 감추고 싶어하는 곳에 박혔다. 소한의 얼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지만, 그는 여전히 집요하게 물었다.“단이가 도대체 뭘 말했는데요?”소하도 자기의 동생이라 어쩔 수 없어서, 긴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했다.“김 낭자
김단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숙희가 위험에 빠지는 것도 싫지만, 그녀가 떠난 후, 숙희가 이렇게 슬프게 우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을 굳게 먹지 못했다.김단이 대답하지 않자, 숙희는 자신도 모르게 김단을 놓고, 눈물이 가득 담긴 가련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아씨, 저를 버리실 건가요?”숙희의 이런 모습을 보자, 김단은 끝내 숙희에게 졌다.“아니.”“그럼, 제가 가서 짐 쌀게요!”숙희는 바로 김단의 품에서 뛰쳐나가더니, 눈물을 닦으면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숙희의 이런 적극적인 모습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데리고 가지 뭐! 잘 보살피면 되지.숙희는 4시간 동안 짐을 쌌다. 중간에 왕철을 찾아서 집 열쇠를 그에게 맡겼다. 두 사람이 말에 탔을 때는 벌써 오후였다.김단은 이미 남장 모습이었고 멋스러워 보였다.숙희도 머슴애로 분장하고 김단을 보고 웃었다.“아씨, 아니지, 도련님, 저희 어디로 가요?”김단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한양을 떠나 남쪽으로 가면 작은 읍이 있어, 우리가 빨리 가면 저녁 전에는 도착할 거야. 내일 어디로 갈지는 내일 다시 생각하자.”김단은 이렇게 말하고는 말을 타고 숙희랑 함께 성문 쪽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문이 그들의 눈 앞에 펼쳐졌다. 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흥분되었다.예전의 일을 잊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흥분한 마음이다!그러나, 흥분된 마음에 누군가 찬물을 뿌렸다.김단은 성문 앞에서 임학과 임원을 만났다.성문에서 막고 있는 임씨네 남매를 보고, 김단은 어쩔 수 없이 말을 세우고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봤다.“두 분, 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내가 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임학은 아주 화가 났다.“하인이 우연히 숙희가 기성복 가게에서 남자 옷을 사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으면, 난 네가 떠나는 줄도 몰랐어!”숙희는 놀라더니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움츠렸다.그녀는 그때 아씨가 그녀를 버릴까 봐 너무 걱정해서 주위에 진산군댁의
지금은 성을 나서는 사람이 몰릴 시간이다. 더군다나 임원이 조금 전에 감명 깊은 말을 해 주위에 백성들이 모여 수군거리는 사람이 많아졌다.임원은 연극을 벌리고 싶은 심정이 더욱 커졌다. 그녀는 두 줄기의 눈물을 흘리더니, 모든 사람 앞에서 김단에게 무릎을 꿇었다.“원이야!”임학은 놀라서 임원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뭐 하는 짓이야?”그러나 임원은 임학의 말림도 상관하지 않고 계속 꿇으면서 가련해 보이게 흐느끼면서 말했다.“언니, 언니가 계속 내가 언니의 물건, 부모님의 사랑, 오라버니의 총애를 뺏었다고 생각하는지 알고 있소. 그런 게 아니오.”“부모님과 오라버니는 여전히 언니를 아끼고 있소. 제발 언니 마음대로 하지 말고 우리랑 돌아가면 안 되오? 언니가 싫다고 하면 내가 집에서 나가지오. 모든 것을 언니에게 돌려 주겠소!”“언니는 여자로서 한양을 떠나면 어디로 갈 것이오? 만약에 위험에 닥치면 어떻게 하겠소? 부모님과 오라버니가 얼마나 걱정하실지 생각해 봤소?”임원이 눈물 흘리면서 하소연하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주위에서 질책하는 소리가 더 커졌다.“아이고, 땅에 꿇고 있는 사람은 몇 년 전에 진산군댁으로 돌아온 친딸이 아닌가? 친딸이 어찌 양딸에게 무릎을 꿇어!”“가출하려는 모양인데, 참으로 제멋대로구나. 사랑을 빼앗으려고 그러는 건가? 정말 나가서 뜻밖의 변고를 맞으면 진산군과 마님은 얼마나 슬프겠어?”“참나, 어쨌든 진산군댁의 부귀영화는 원래 친딸의 것인데 어찌 뺏었다고 할 수 있나?”“내가 듣기로는 양딸이 어릴 적부터 횡포했데. 지금 이러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백성들의 질책을 듣고, 숙희는 화가 치밀어올랐다.“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대지 마라! 한마디만 더 하면 입 찢어질 줄 알아!”“봐봐, 양딸 옆에 있는 시녀도 이렇게 사나운데, 쯧쯧...”숙희는 더욱 화가 났다.하지만, 그녀는 혼자서 주위의 몇십 명과 싸워서 이길 수 없어서 그저 ‘네, 네, 네’ 밖에 하지 못했다.김단은 계속 임원을 바라봤고 당연히
민태훈의 표정을 본 김단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대감께서는 제가 이 일을 공주 마마께 말씀드릴 거라 생각 못 하신 겁니까?”일을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정말 고작 몇 개의 무기로 그녀를 겁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걸까?그녀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는 여자였다.민태훈은 고개를 숙이고 끝까지 부인했다. “낭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어쨌든 떳떳한 일은 아니었기에 어사대부인 그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벌할 빌미를 줄 수 없었다.그들에게는 어떠한 증거도 없지 않은가!서원 공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감이 부인한다고 해서 내가 자네를 어찌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오?”그녀가 주상에게 말하면 증거가 없더라도 민태훈에게 호된 벌을 내릴 수 있었다!민태훈도 이를 똑똑히 알고 있기에 끝내 고개를 숙였다. “공주 마마께서는 소신이 어찌해야 용서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공주가 그를 불렀음에도 곧장 주상에게 고하지 않은 것을 보니, 공주는 아직 이 일을 주상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그러니 이 일에는 아직 반전의 여지가 남아 있었다.과연 공주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간단하오. 김씨 낭자에게 사과하시오.”이 말을 들은 민태훈은 깜짝 놀랐다.영의정의 손자인 그가, 일개 칠품 의녀에게 사과하라니?그는 죽기보다도 싫었다.하지만 서원 공주의 심술궂은 표정을 본 민태훈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김 낭자, 미안하오.”김단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서원 공주가 굳이 민태훈을 불러낸 이상 단순한 사과만으로 끝낼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서원 공주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성의가 없어서야 되겠소? 사과는 머리를 조아려야 하지 않소?”민태훈은 깜짝 놀랐다. 김단에게 머리를 조아리라고?이는 명백히 그를 모욕하려는 것이 아닌가?!순간 그의 두 눈이 놀라움과 분노로 가득 찼다.김단은 서원 공주의 뒤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서원 공주가 정말로 사람을 모욕하는 방법을
이 일 때문에 그녀는 주상과 몇 번이나 다투긴 했으나, 민씨 가문 사람들이 맹영지를 이렇게 대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그녀가 맹영지와 가깝든 그렇지 않든, 맹영지는 그녀를 이모라고 불러야 했다.민태훈이 맹영지를 학대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그녀를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중전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그녀도 더 이상 공주를 막지 않았다.이에 서원 공주가 입을 열었다. “민태훈을 불러오거라!”“예!”하인 하나가 대답을 한 뒤 물러갔고, 민태훈의 근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공주의 침소 앞으로 그를 데려갔다.하지만 서원 공주는 그를 바로 만나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민태훈은 꼬박 한 시진을 기다렸으나 끝내 인내심이 바닥나 옆에 있는 소복에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 “공주 마마께서 오늘 신을 뵐 겨를이 없으신 듯합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국사를 그르칠까 염려되오니, 다음 기회에 다시 오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예를 표하고 떠나려 했다.하지만 소복이 갑자기 호통을 쳤다. “이런 무례한! 공주 마마께서 자네를 보려 하시는데 감히 핑계를 대고 거부하다니, 마마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이오?”민태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공주 마마께서 한참을 기다려도 안 만나주시지 않습니까! 소인은 아직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남았는데, 국사를 그르친다면 대감께서 어찌 감당하실 겁니까?”하지만 소복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이 어사대부지, 매일 다른 사람 잘못을 들추거나 약점을 잡아 주상 전하께 아뢰어 이간질이나 하는 자가 무슨 중요한 일이 있단 말이오?”“대감!”민태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감히 우리 본관을 모욕하는 것입니까?!”“굳이 내 앞에서까지 관직을 내세워 거들먹거릴 필요 없소. 대감은 영의정 대감의 그늘 아래에 있었기에 조정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을 뿐이오. 하지만 아무리 대감이 영의정 대감의 친손자라 할지라도, 우리 공주 마마께서는 주상 전하의 친따님이시자 우리 대정의 유일한 공주 마마시오! 공주
그의 말이 떨어지자, 밖은 잠잠해졌다.경씨는 경계하며 사방을 둘러보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차 안을 향해 물었다. “낭자, 다치신 곳은 없소?”김단은 아직도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저는 괜찮습니다. 누구의 소행입니까?”경씨는 마차에서 암살 무기 하나를 뽑아 살피고 나서 말했다. “이 무기를 다루는 솜씨가 조잡한 것을 보니, 전문 자객의 소행은 아닌 듯 하오. 게다가 모두 마차에 박혔고, 일부러 휘장을 피한 것을 보니 낭자를 다치게 할 의도는 없었던 것 같소.”그럼, 단지 경고하러 온 것이란 말인가?김단은 누가 한 짓인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민태훈이 이렇게 성질이 급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이내 입을 열었다. “번거롭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무기들을 모두 거두어 주십시오. 내일 궁에 들어가 공주 마마께 보여 드려야 합니다.”“알겠소.”경씨는 대답을 하고 사방에 꽂힌 무기들을 모두 거둔 뒤 평양원군 저택으로 돌아갔다.다음 날, 김단은 입궁 후 가장 먼저 어젯밤의 암살 무기들을 서원 공주와 중전 앞에 바쳤다.갑자스럽게 무기를 본 서원 공주와 중전은 미간을 찌푸렸고, 이내 서원 공주가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대담하오! 암살 무기를 가지고 궁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오?”김단은 그제야 말했다. “공주 마마께 아뢰옵니다. 이것은 어젯밤 소신의 마차를 습격한 암살 무기입니다.”이 말을 들은 중전은 깜짝 놀라 물었다. “습격을 당한 것이오?”김단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습격이라기보다는, 누군가가 소신에게 경고를 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일부러 소신을 해치려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서원 공주도 어리석지 않았기에 이를 단번에 알아들었다. “낭자의 말은, 민태훈이 한 짓이라는 것이오?”“증거가 없어 감히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 민 대감 외에는 소신이 감히 악감정을 살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습니다...”김단의 말을 듣고 서원 공주는 또다시
“헤헤, 그 아씨께서 분명 마음속에 도련님을 품고 계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희 노점을 보자마자 도련님께 드릴 염주를 사려고 하셨겠습니까!”소하는 고개를 들어 그 노점상을 보며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말하는 동안 허리에서 잔돈을 꺼내 노점상에게 주며 말했다. “날도 저물었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오!”노점상은 감격하여 급히 잔돈을 받아들고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도련님, 감사합니다! 도련님, 감사합니다!”소하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떠나갔다.노점상도 기분 좋게 좌판을 정리했다.하지만 갑자기 키가 큰 그림자가 비춰오던 저녁노을을 가로막았다.노점상은 고개를 들었고, 얼굴이 험악하고 무서운 남자가 좌판 앞에 서 있었다.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돈을 빼앗으러 온 건가?하지만 노점상이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손을 들어 금강보리 염주 한 움큼을 움켜쥐었다.싸늘한 눈빛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이딴 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손에 힘을 주자 금강보리 염주가 부서져 버렸다.노점상은 깜짝 놀라 말했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무슨...”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 덩어리의 은자가 노점상 눈앞에 놓여 졌다.노점상은 순간 눈이 휘둥그래졌다.이는 무려 50냥짜리 은자였다!그는 평생 이렇게 큰 은자는 본 적이 없었다!“이것들 전부 다 사겠소.”소한이 말했다.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남은 금강보리 염주들을 움켜쥐고 뒤돌아 떠났다.표정은 서리가 내린 듯 싸늘했다.방금 전 김단과 소하가 연신 기뻐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고, 이내 그의 표정은 점점 더 험악해졌다.그는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온 것인데,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두 사람의 사이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가까워졌다!어의원에서는 거의 입을 맞출 뻔하더니, 이제는 염주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된 것이다!그가 계속 손을 놓고 있는다면 그들은 또다시 혼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이렇게 생각
사내 팔찌?소하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그는 김단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왜 갑자기 사내의 팔찌를 사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누구에게 주려고?소한인가, 아니면 최지습인가?미간을 살짝 찌푸린 소하는 무의식적으로 최지습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상인이 말했다. “사내 팔찌는 없습니다만, 염주는 있습니다. 아씨, 한번 보시겠습니까?”“좋소, 보여주시오!”김단은 흔쾌히 대답했고, 노점상은 좌판 밑에서 접시를 하나 더 꺼냈다. 접시 위에는 여러 색깔의 염주가 놓여 있었다. 노점상은 소개했다. “보시지요, 이것들은 모두 금강보리 염주입니다. 귀인들이 차는 것보다는 품질이 좀 떨어지지만, 세공이 정교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무늬를 보시지요!”“딱 보기에도 정말 괜찮군.” 김단은 그 말과 함께 소하를 향해 돌아보았다. “오라버니 생각은 어떠세요?”소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음, 괜찮소.”“그럼 이걸로 하겠네!” 김단은 염주 하나를 집어 들고 돈을 지불한 후, 돌아서서 소하의 왼손을 잡았다. “오라버니께서 늘 저를 돕고 지켜 주셨는데, 저는 오라버니께 아무것도 드린 게 없지 않습니까? 이 염주가 제 작은 성의입니다.”그와 동시에 그녀는 금강보리 염주를 소하의 손목에 채워주었다.소하는 이 염주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예상치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나에게 주는 것이오?”“그럼요!” 김단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번져 있었다. “오라버니, 너무 하찮게 여기지 말아주십시오!”소하는 가슴이 약간 떨렸고, 진정하고 난 뒤 에야 말했다. “어찌 그러겠소.”“그럼 됐습니다. 오라버니, 매일 차고 다니셔야 합니다. 제가 확인할 거예요!”김단은 괜히 어기장을 놓았다.그녀는 소하에게 그가 한빙산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지금 말해 봤자 소하를 걱정시키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이에 그녀는 소하의 중독 상황을 자주 확인할 수 있을 구실을 찾아야 했다.염주를 선물한
더욱이 그 민태훈이라는 자는 성품이 음흉하고 악독하며, 겉으로는 점잖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남을 해치고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 짓만 골라서 하니, 영의정이 눌러놓지 않았다면 구서보다 정도가 더 심했을 것이다.소하는 김단이 영의정 쪽 사람들과 민태훈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되어 급히 달려온 것이다.혹여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금군 총령인 그의 신분이 마부보다는 훨씬 쓸모가 있을 것이다.하지만 김단은 오히려 더욱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공주 마마의 지위을 빌린 겁니다!”영의정과 서원 공주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는지 김단은 알지 못했지만, 조정 대신이자 일품 벼슬아치로서 버릇없는 공주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부분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영의정이든 태부든, 혹은 그 밖의 명문가들이든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다만 서원 공주가 아직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을 뿐이다.하필 오늘 김단이 서원 공주와 영의정 가문의 첫 정면 충돌을 일으켰으니, 영의정이 참고만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영의정이 참는다 해도 민태훈은 분명 참지 못할 것이다.소하는 그제야 김단의 속셈을 깨달은 듯했다. “설마 그들을 싸우게 만들려는 것이오?”김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소하가 말했다. “하지만 결과가 낭자의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소.”어쨌든 서원 공주에게든 영의정 가문에게든 이는 사소한 일일뿐이다.이 사소한 일 하나로 한쪽을 무너뜨리려는 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김단의 두 눈은 정면을 향했다. “모래가 모여 탑이 되고,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공주 마마가 주상 전하의 마음속에 그토록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한 번의 공격으로 쓰러뜨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작은 일들이 쌓여 주상 전하께서 공주 마마에 대한 약간의 불만을 가지게 되고 그때 큰 수를 둔 다면, 단번에 끝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김단의 그 작은 ‘계략’에 소하는 놀라워하며 말했다. “내 서재에 있는 병서들을 헛되이 보
“소 오라버니.”김단도 그를 불렀고, 천천히 소하를 향해 걸어갔다.소하는 고개를 들어 영의정 저택의 높은 현판을 바라보고 나서 김단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걷겠소?”김단은 소하가 분명 자신이 맹영지의 일 때문에 온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돌려 평양원군 댁의 마부를 바라보았다.마부의 성은 경이고, 평소 김단은 그를 경씨 도령이라고 불렀다.그는 최지습이 김단을 보호하기 위해 남겨둔 사람이었다.지시를 받은 경씨도 고개를 끄덕였다.이를 본 김단은 다시 고개를 돌려 소하에게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이쪽으로 가시죠.”소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김단은 그를 따라가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맹 낭자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정신이 맑지 않고 반응도 매우 느려요. 몸에 상처가 있는 걸 보니 오랜기간 민태훈에게 학대를 당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민태훈이 제가 맹 낭자를 치료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중전 마마와 공주 마마를 움직이니 민태훈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소하의 얼굴은 매우 심각해졌다. “나는 낭자가 영의정 댁으로 시집을 갔으니 좋은 날만 보냈을 줄 알았소.”누가 알았겠는가, 지난 5년 동안 그녀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을 줄.김단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네, 제가 세답방에 있었을 때보다 더 비참했습니다.”그 말을 하며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그녀는 문득 소하를 보며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맹 낭자를 보고 싶으신겁니까? 제가 내일 영의정 댁에 갈 예정인데, 기회를 봐 두 분을 만나게 해 드릴까요?”김단은 소하와 맹 낭자의 예전 관계를 생각하니 소하가 맹영지를 매우 보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소하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어찌됐든 맹 낭자는 민태훈의 아내이니, 정으로 보나 이치로 보나 내가 만나는 것은 옳지 않소.”말을 마친 소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김단을 보며 말했다. “설마 내가
“네 이놈! 주인을 믿고 미쳐 날뛰는구나!”참으로 익숙한 말이었다.김단은 며칠 전 자신이 소복을 보며 그렇게 욕했던 것을 떠올렸다.이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저는 공주 마마를 믿고 감히 영의정 댁에서 날뛰는 것입니다! 대감께서 아무리 맹 부인을 치료하지 못하게 막으셔도, 저는 기어코 치료할 것입니다! 어디 한번 저를 쫓아내 보시지요, 공주 마마께서 잘난 당신의 목숨을 가져갈 수 있으실지 없으실지 한번 지켜보시지요! 그리고 잘난 당신의 할아버님께서도 당신의 목숨을 지켜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봅시다!”“네 이놈!”“지나가겠습니다!”김단은 민태훈을 밀치고 맹영지의 방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아침에 한 번 와봤기에 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민태훈은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가슴이 답답했다. 그는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돌아서서 가버렸다.김단은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 민태훈의 분노한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냉소했다.바로 이거다. 더 화낼수록 좋다. 민태훈이 공주와 개처럼 싸우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일 것이다. 그들이 심하게 싸울수록 그녀는 더욱 기뻤다!맹영지의 어린 하녀는 김단이 돌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김단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김단은 그녀를 위로할 시간이 없었고, 다시 맹영지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그러다 맹영지의 뒤통수에 작은 혹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건 언제 생긴 것이냐?”김단이 물었다.어린 하녀는 앞으로 나와 한번 보고는 말했다. “오래됐습니다. 아마 3년 전쯤일 거예요. 대감...께서 찻주전자로 뒤통수를 때리셨는데, 부인께서 그 자리에서 기절하셨습니다. 나중에 깨어나셨지만 뒤통수에 혹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부인께 여쭤보니 아프지 않다고 하셔서 의원을 부르지 않았습니다.”김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민태훈이 맹영지가 3, 4년 동안이나 아팠다고 말한 것과 혹이 생긴 지 3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쩌면 맹영지가 지금처럼 반응
한 시진 후, 김단은 다시 영의정 저택으로 돌아갔다.소복이 앞장서 김단을 데려갔다.궁궐에서와는 달리 소복은 영의정 댁 문을 들어서자 거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였다.영의정이 직접 나와 그들을 맞이했고, 소복은 깍듯하게 영의정에게 예를 표하면서도 꽤나 득의양양한 말투로 말했다. “대감, 평안하셨소? 실은 공주 마마께서 사촌 분을 염려하시어 나에게 낭자를 데리고 가 살펴보라고 명하셨네.”맹영지와 서원 공주는 사촌 자매였다.소복의 말이 떨어지자 영의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일이 커졌음을 직감했다.그는 곧장 옆에 있는 민태훈을 노려보았다.민태훈은 굳어진 표정으로 김단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고, 이내 앞으로 나와 소복에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대감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으십니다. 제 부인은 이미 병세가 깊어 낭자가 오늘 아침에 와서 보았음에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중전 마마와 공주 마마께서도 이미 낭자가 다녀갔다는 것을 알고 계시오!” 소복은 미소를 지으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심지어 낭자는 그 때문에 중전 마마의 맥을 짚어 드리는 일정에도 늦었소! 하지만 중전 마마께서도 조카 분을 가엾게 여기시어 꾸짖지 않으셨네.”꾸짖지는 않았지만, 민씨 가문 때문에 중전 마마의 일을 그르쳤다고 면전에 대고 말하는 격이었다.민태훈의 표정은 이미 매우 험악해져 있었다.사실 그는 시간을 계산해 두었었다. 김단이 매번 사시쯤 중전의 맥을 짚으러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침 일찍 사람을 보내 청하면 전혀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더욱이 그는 김단이 궁궐에 먼저 다녀와 일을 본 뒤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이렇게 부르자마자 냉큼 올 줄이야!아무래도 역시 영의정 가문의 병을 고치면 자신의 명성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서둘러 온 것일 것이다!그 생각에 민태훈의 음흉한 눈빛이 다시 김단을 향했다.김단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주 태연하게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소복이 영의정을 향해 말했다. “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