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형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 답했다.“지한아, 너랑 미연이 관계도 오늘부로 끝났는데 난 여전히 그 애가 너무 아쉬워.”그는 강지한이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인지 살피다가 다시 어떻게 결정할지 고민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강지한은 백미러로 그를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문득 되물었다.“할아버지, 하시고 싶은 말이 뭐예요?”강준형은 당연히 심미연 편을 들겠다고 예상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지금은 알고 싶었다.“이혼을 안 하려는 거지?”강지한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네.”강지한도 굳이 숨길 마음이 없어 솔직하게 답했다.“그렇다면 난 지금 당장 법원에 전화해서 숙려기간 없이 바로 이혼 신청에 넣어달라고 말할 거야.”강준형은 핸드폰을 들고 그에게 보여줬다.“할아버지, 왜 그러세요!”강지한은 놀라기도 하고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친손주는 바로 저예요. 어떻게 다른 사람이랑 손을 잡고 저를 모함할 수 있어요?”그러자 강준형이 차갑게 웃으며 답했다.“난 이미 모든 계획을 세워놨어. 미연이가 너랑 이혼이 확정되면 난 내 생일에 바로 큰 잔치를 열 거야. 그리고 전 경성에서 괜찮다고 하는 젊은 남자들은 모두 참석하게 해서 미연이더러 혹시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골라보라고 할 예정이야.”그때 가서 미연이를 자기 손녀도 들일 생각이다.그렇게 되면 강지한과는 부부였다가 남매사이로 되기에 한방에 단념시킬 수 있을 것이다.‘그러니까 옆에 있을 때 소중하게 여겼어야지.’“할아버지, 저랑 미연이는 이혼하려면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어요. 만약 이 기간에 미연이가 마음이 바뀌면요?”강지한은 심미연이 그토록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인데 이렇게 쉽게 그와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강준형은 백미러에 비친 그의 얼굴을 보고 답했다.“다른 여자였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연이는 아니야. 그 애가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면 정말 너에 대한 모든 정이 떨어진 것이고 이혼하자고 했으면 이미 마음이 돌아섰다는
성무진은 케이스를 힐끔 바라보더니 공손하게 답했다.“이건 강 대표님께서 사모님 생일에 드리려 했던 선물입니다. 그동안 진성 쪽 일들을 처리하느라 깜빡 잊고 못 드렸다고 하셔서 오늘 마침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대표님께서 미안하다는 말도 꼭 전달해달라고 하셨습니다.”심미연은 재빨리 그 케이스만 성무진에게 돌려줬다.“합의서만 받고 이건 지한 씨한테 돌려줘요. 이제 이혼하면 남남이 되는 건데 누구에게도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전달 부탁드립니다.”“사모님, 이건...”성무진은 한껏 난감한 얼굴로 손에 든 케이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이걸 다시 강지한에게 가져가면 분명 비서라는 사람이 이런 작은 일도 처리하지 못했다고 월급 깎이는 건 고사하고 해고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것이다.“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심미연은 말을 마친 뒤 재빨리 신하린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성무진은 제자리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급히 심미연을 쫓아갔다.주차장까지 달려와 보니 심미연은 이미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하여 재빨리 그녀에게 달려가 차 창문을 두드렸고 심미연은 그의 모습에 차창을 내렸다.“할 말이 더 남았을까요?”심미연은 최대한 다정하게 물었다.“죄송한데 혹시 이 물건을 직접 강 대표님께 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가져다드리면 분명 뭐라 할 것 같아서요.”성무진은 고개를 수그린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확실히 강지한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심미연은 그의 손에서 다시 케이스를 뺏은 뒤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자, 이제 돌아가서 보고하셔도 됩니다.”“...”이혼하더니 심미연이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그러나 지금 모습이 오히려 더 편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적어도 강지한에게 끌려다니는 게 아닌 자기 주관이 있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오빠, 빨리 가자.”심미연은 차창을 다시 올리고 앞에 앉은 박유진에게 말했다.그러자 박유진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다시 한번 자기 마음을 거절당한 박유진은 속상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말했다.“그럼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꼭 대명으로 와.”박유진은 심미연과 같이 대명을 발전시키고 싶었다.하지만 그의 말에 심미연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아이를 낳으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예약해 두는 거야? 내가 그때 가서 아이를 낳고 더 이상 변호사 일이 하기 싫어질 수도 있잖아.”“기다릴게.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박유진의 말에는 사실 두 가지의 뜻이 담겨 있었다.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신하린은 순간 심미연이 부러워졌다.그녀도 주변에 이렇게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자가 있으면 바로 결혼했을 것이다.“나중의 일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심미연은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그래. 나중에 다시 얘기해.”박유진은 재빨리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사실 넌 어렸을 때부터 춤에 소질이 있어서 나중에 댄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글쎄 뜬금없이 변호사가 될 줄은 나도 몰랐거든.”“어렸을 때는 돈이 너무 없다 보니 그저 빨리 돈만 벌고 싶었어. 그리고 나중에 커서 불공평한 일을 많이 마주치다 보니까 변호사가 되어서 정의를 실현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내가 만약 변호사가 아닌 춤의 외길을 걸었다면 아마 온지유 씨 같은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겠지?”말을 마친 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순간 너무 자기중심적인 발언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온지유는 혼자 운영할 수 있는 자본이 없는데 어떻게 세계 최고의 댄서가 될 수 있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상을 받을 수 있겠어?”신하린은 한껏 그녀를 비웃었다.“자기 실력이 아닌 남자 꼬시는 방법으로 최고의 무대에 오를 수는 있겠다.”아마 온지유를 모르는 사람들만이 그녀의 실력이 훌륭하다고 생각할 것이다.사실 강지한이 뒤를 받쳐주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말이다.박유진은 심미연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진 걸 발견하고 아직 그녀가 강지한을 잊지 못했다는 걸 알아챌
강지한은 듣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졌다.대체 무얼 믿고 이리도 당당한지 알 수 없었다.“누구랑 같이 있었어?”“박유진 씨가 데리러 오셨습니다.”성무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순간 주변 공기가 몇도 차가워졌다는 걸 느끼고는 괜히 온몸이 떨렸다.“지유는 지금 어디 있어?”강지한은 계속 말했다가는 열받아 죽을 것 같아 아예 화제를 돌렸다.“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렸습니다.”성무진도 강지한의 뜻을 잘 알지 못하니 뭐라고 더는 말을 못 했다.“그래. 일단 나가 봐.”성무진은 재빨리 사무실에서 나왔다.강지한은 그가 나가자마자 액세서리 케이스를 열어보았다.안에는 이노하이브에서 올해 런칭한 신상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있는데 디자인은 심플하지만 너무 예뻐서 금세 인기 상품으로 되었다.고를 때도 심미연의 하얗고 기다란 목에 걸어주면 분명 이쁘겠다고 상상했는데 이걸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니.바로 이때, 카톡 메시지 알람 소리가 들렸다.강지한은 재빨리 감정을 추스르고 핸드폰을 확인했다.온지유가 그에게 박유진 사진과 함께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내 기억으로는 미연 씨가 똑같은 넥타이를 샀던 것 같은데?]그녀의 한마디가 잔잔한 호수에 돌덩이를 던진 것처럼 순간 거친 파도를 만들었다.강지한은 문득 예전에 심미연이 자신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했는데 여태껏 잊어버리고 있었다.결국에는 그 넥타이가 박유진의 목에 걸려있는 걸 본 순간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그러다가 곧 전화벨이 울렸는데 강지한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신 뒤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그리고 빠르게 수화기 너머에서 분노를 억누르면서도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한 씨, 나도 금방 봤는데 미연 씨가 그 넥타이를... 박유진 씨한테 선물해 줬어. 두 사람이 너무 자연스러운 게 누가 봐도... 연인 같잖아.”강지한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두 눈을 부릅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쾅’하는 소리와 함께 책상 위에 내팽개치자 빠르게 서류들이 바닥
심미연은 단 한 번도 자신에게는 저렇게 활짝 웃어 보였던 적이 없던 것 같았다.지금까지 자기만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눈앞의 남자를 더욱 사랑하는 것 같기도 했다.그리고 3년 동안이나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순간 강지한은 누군가가 자기 목을 조르기라도 하듯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고 분노가 차오르는 동시에 알 수 없는 무력감까지 느꼈다.그리고 오늘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 그의 세상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그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그러나 또다시 시야에 두 사람의 애틋한 모습이 들어온 순간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순식간에 화르르 불타오르더니 마지막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심미연!”강지한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를 불렀는데 목소리에는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과 분노가 가득했다.예전의 그 차분했던 강지한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감정에 사로잡힌 보통 남자들처럼 운명의 기로에 서서 전례 없는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심미연이 찢어질 듯한 누군가의 부름에 재빨리 고개를 돌려보니 강지한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맞은편에 서 있었다.‘저 사람이 왜 갑자기 왔지?’박유진도 강지한을 발견했지만 왜 그리도 화가 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있었다.이 시각,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공기 중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면서 세상이 멈춘 것처럼 삽시에 고요했다.이때 강지한이 성큼성큼 심미연한테로 걸어가더니 그녀가 방심한 틈에 거칠게 팔을 끌어당겨 자기 품에 안았다.심미연은 그의 가슴에 부딪히는 순간 머리가 울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강지한 씨, 이거 놔!”심미연은 애써 정신을 차리고 그를 힘껏 밀치며 소리쳤다.“이혼하자마자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시시덕거리고 있어?”강지한은 한껏 차가운 목소리로 싸늘하게 웃더니 분노에 찬 말을 내뱉었다.그의 얼굴만 보아도 지금 매우 화가 난 상태인 것 같았고 예전에 부드럽게 심미연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도 지금은 마치 올가미처럼
박유진은 금방에라도 쓰러질 듯한 심미연을 보고 순간 그녀의 몸이 걱정되었다.그리고 단번에 심미연을 자기 뒤로 끌어당기며 강지한에게 말했다.“강 대표님과 미연이는 이미 이혼한 사이인데 무슨 자격으로 이러시는 거죠?”강지한이 살벌한 얼굴로 심미연에게 저런 물음을 묻는 게 박유진이 보기에는 너무 우스웠다.그러자 강지한이 차갑게 웃으며 답했다.“내가 지겨울 때까지 놀다 버린 여자를 수거해 가는 게 박씨 집안 내력인가 봅니다?”박유진은 이 순간에도 오직 심미연이 저 말을 듣고 상처받을까 봐 걱정될 뿐이었다. 그러다가 온화했던 얼굴이 순간 비바람이 불 듯 서늘해지더니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강 대표님의 이런 인성 때문에 미연이가 기어코 이혼하겠다고 난리 쳤나 보네요.”“하, 아무리 이혼해도 심미연은 제 여자입니다. 제 허락 없이는 박유진 씨가 함부로 데려가지 못한다는 뜻이죠.”강지한은 질투심에 듣기 거북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심미연은 박유진 등 뒤에 가만히 서 있었고 귓가에는 여전히 강지한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면서 그녀의 가슴을 후벼팠다.‘난 그저 강지한이 갖고 놀다가 버린 여자였구나.’“두 사람이 이혼했으면 이제 누구랑 같이 있든 그건 미연이 자유입니다. 그런데 왜 대표님의 허락이 필요한가요?”박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강지한을 바라보며 한껏 비아냥거렸다.그리고 그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곧바로 뒤에 있던 심미연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두 사람이 같이 있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니 강지한은 심미연이 돌아오기를 바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심미연은 숨이 턱 막히면서 순간 눈이 새빨개지더니 누가 발에 쇳덩이를 달아놓은 것처럼 한 발짝 내딛기조차 힘들었다.박유진은 단번에 그녀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제야 심미연의 창백한 얼굴과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모습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다정하게 물었다.“힘들면 내가 안고 갈까?”심미연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박유진은 단번에 그녀를
박유진은 그녀의 상태가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다시 바닥에 내려줬다.“그럼 이야기 나누고 있어. 난 가서 전화 받을게.”심미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흔들었다.하지만 이런 모습마저 강지한의 눈에는 아주 애틋하게 느껴져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심미연, 감히 날 이런 취급해? 간이 부었네?’박유진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심미연은 강지한에게 다가왔다.아까까지는 너무 괴로웠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았다.그리고 강지한을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한테 주겠다고 했던 그 재산들이 아까우면 나랑 같이 살 때 당신이 온지유 씨한테 줬던 선물, 집, 차, 미용원까지 전부 다 받아와. 그리고 다시 재산 나누던지.”어차피 그녀는 앞으로도 변호사 일을 할 생각이 없었기에 별로 창피하지도 않았다.그저 강지한만 버텨내면 된다.심미연의 말을 들은 강지한은 순간 눈빛이 살벌해졌다.“변호사라 그런지 말주변 하나는 끝내주네. 나는 지금 너랑 저 떳떳하지 못한 남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온지유는 왜 갑자기 튀어나와? 그리고 가만히 있는 여자를 왜 자꾸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예전의 심미연은 항상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이어서 그녀를 다루기 참 쉽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참 악독하고 못된 사람인 것 같았다.“그러는 당신은 온지유 씨랑 붙어 먹은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 사실을 전 경성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무슨 자격으로 내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거야?”다시 살아난 심미연은 전투력이 슬슬 올라가는 것 같았다.강지한은 듣다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나랑 온지유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했지? 헛소리 그만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그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심미연은 핸드폰에 뜬 발신자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강지한은 온지유한테서 걸려 온 전화인 걸 확인하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끊자마자 또다시 전화가
심미연은 강지한의 반응이 너무 웃겼다.박유진과 심미연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 자신과 온지유 이야기만 나오면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이기적인 인간!’“미연아, 만약 미르 파크에 돌아가기 싫으면 내가 매일 제때 집에 가서 너랑 같이 저녁 먹을게. 어때? 네가 받아들인다면 그 넥타이를 박유진 씨한테 줬던 일은 내가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게.”강지한은 매우 진지한 얼굴로 심미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조금 비참해 보이고 비굴해 보여도 심미연이 자기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 상관이 없었다.“강지한 씨, 정신과 치료 좀 받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심미연은 너무 진지한 그의 모습에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뻔했다.그의 내연녀가 되면 돈도 많이 받고 직업도 자유롭다.다른 여자였으면 분명 구미가 당겨 바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텐데 아쉽게도 심미연은 이제 강지한에 대한 감정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아 더 이상 그의 곁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심미연, 내가 지금 좋게 말할 때 받아들여. 나중에 사서 고생하지 말고.”강지한은 아까보다 한껏 낮은 말투로 말했는데 누가 봐도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백번 양보해서 그 넥타이 사건은 이제 따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도리어 강지한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비꼬았다.심미연은 짜증이 섞인 얼굴로 그에게 답했다.“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두 번 다시는 지한 씨한테 돌아가지 않을 거야. 만약 온지유 씨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으면 다른 여자라도 찾아보던지. 아마 기꺼이 당신 성욕을 만족시켜 줄 테니까.”저 말도 안 되는 제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녀의 말에 강지한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아직 상황판단이 안되나 보네.”말을 마친 뒤 그는 자리를 떴다.그리고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서야 심미연은 그가 진짜 떠났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박유진이 다가와 그녀에게 물었다.“미연아, 그 사람은 갔어?”심미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응. 오빠도 그만 가봐. 나
심동현은 그때 고작 다섯 살이던 아이가 저런 악행을 저질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너무 미안해하지는 마. 당신의 마지막이 심미연보다는 더 처참할 테니까.”심서연의 말 몇 마디에 심동현은 그대로 기절해버렸고 심서연은 그런 그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았다.“나, 나는 네 아빠가 불러서 온 것뿐이야.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그때 옆에 있던 여자가 덜덜 떨며 말하자 심서연은 여자의 발을 즈려밟으며 말했다.“넌 너무 더럽잖아.”물론 심서연도 남자와 노는 걸 즐기긴 했지만 그녀는 이렇게 돈을 목적으로 남자를 탐하는 여자들을 경멸했다.그때 초인종이 울리자 다급히 발을 뗀 심서연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인터폰을 눌러보았다.역시나 성무진의 얼굴이 보이자 그녀는 칼을 들어 자신의 다리를 긋고는 절뚝이며 문을 열어주었다.“성 비서님... 저 좀 살려주세요...”눈을 감으며 죽는 척을 하는 심서연을 본 성무진은 바로 뒤따라온 사람을 향해 말했다.“이분은 차에 태워.”심서연이 그 사람에게 들려 나가자 곧바로 구급차가 도착했고 심동현과 여자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모든 일이 끝나고서야 성무진은 강지한에 연락을 했다.*그때 심미연은 임현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는데 함께 앉아있던 심태하는 자신의 앞에 가득 놓인 디저트들을 보며 숟가락을 든 채 놀라고 있었다.“엄마, 이거 다 내 거에요?”평소에는 달달한 걸 많이 못 먹게 하던 엄마가 갑자기 이러니 심태하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응, 다 네 거야. 얼른 먹어. 대신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아프니까 적당히 먹어야 해.”“네! 조금만 먹을게요 그럼!”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심태하는 한입 한입 디저트들을 베어 물기 시작했다.심미연은 미소를 짓다가도 이렇게 일찍 철이 든 아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파왔다.엄마가 힘든 게 싫어서 세 살밖에 안된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 성숙한 행동들을 하는 걸 심미연이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임현은 그저 부럽다는 듯 말했다.“태하는 진짜 너무 착한 것 같아요!”세
심서연이 사리를 분별하기 시작할 때부터 심동현은 늘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싶어 했다.그리고는 아들을 낳으라고 조은하를 달달 볶았는데 조은하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녀에게 화까지 내곤 했다.그때부터 심씨 집안의 딸은 하나여야만 한다는 걸 깨우친 심서연은 일부러 유괴범을 찾아 심미연을 팔아버리려고 했었다.이미 말까지 다 맞추고 심미연을 데려간 건데 심서연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사라져버린 심미연 때문에 심서연이 유괴범들에게 대신 끌려가게 된 것이다.그때부터 심서연의 악몽 같은 나날이 시작되었고 심미연을 향한 그녀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심서연은 심미연도 유괴범에게 자신을 넘기려고 계획을 짠 게 분명하다는 착각까지 해가며 그녀를 증오해왔었다.시골에 끌려간 뒤로 매일 맞고 욕을 먹으며 자라던 심서연은 양어머니가 아들을 낳게 된 뒤, 모든 신경이 그 아들에게 가 있는 틈을 타 빠르게 도망쳐 나왔고 그길로 기억에 남아있던 심씨 집안을 찾아갔다.그렇게 집에 돌아온 심서연은 예쁘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심미연을 보며 질투심에 불타 그녀가 가진 걸 모조리 빼앗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심서연에게 회사를 맡긴다는 건 회사를 말아먹겠다는 거랑 다름이 없었기에 부모님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그녀를 믿지는 못하고 있었다.그 와중에 심미연은 여전히 화려한 집에서 세계적인 부자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그렇게 심서연이 점점 질투심에 눈이 멀어가고 있을 때 하늘이 고맙게도 심미연을 죽여준 것이다.굶어 죽어가던 심서연이 그 틈을 타 강지한에게 연락을 했고 그 덕에 아무 상관도 없는 강지한의 보살핌으로 강씨 집안 둘째 사모님 대우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물론 그녀가 이 모든 걸 누릴 수 있게 된 건 다 문소영과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사람 덕분이었다.힘들고 가난한 시절을 겪어봤기에 더욱더 자신의 것을 잃고 싶지 않았던 심서연은 어떻게 해서든 강씨 집안에 들어가야만 했다.그리고 그동안 마음껏 누려온 심동현은 이제 그만 고생할 때도 된 것 같았다.“심서연! 걔
심서연은 자신의 말이 끝났음에도 들려오는 대답이 없자 강지한이 혹시나 자신을 외면할까 봐 불안에 떨며 물었다.“지한 씨...”심서연은 사실 이번 기회에 강지한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기회를 봐서 잠자리를 가지고 거기에서 애까지 생긴다면 그야말로 천운이겠지만 일단은 강지한을 끌어들이는 게 우선이었다.“성 비서 보낼게요.”“지한 씨가 직접 와주면 안 돼요?”자신이 대답을 했음에도 그칠 줄 모르는 심서연의 요구에 강지한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상미 열나서 지금 병원에 있어요. 귀국한 다음에 열 난 건 아닌 것 같은데, 전에 왜 애 아프다는 말 안 했어요?”순식간에 차가워진 목소리에 심서연은 당황하며 물었다.“뭐라고요? 상미가 열이 나요? 전 진짜 몰랐어요!”해외에서는 남자들을 만나느라 바빠서 상미는 시터에게 맡겨뒀었기에 심서연이 아이의 몸 상태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하지만 강지한의 말투가 심상치 않아 그녀는 다급히 한마디 더 보탰다.“이틀 전에 열이 나서 병원 데려가긴 했는데 그때는 큰 문제 아니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신경을 좀 덜 썼는데, 많이 아픈 거예요?”심서연의 말이 변명임을 아는 강지한은 더 말하기도 입 아파 그저 전화를 끊어버렸다.심서연은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붙잡고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혹시라도 강지한이 자신이 해외에서 남자를 만나고 다닌 걸 알고 자신을 내치기라도 할까 봐 무서웠지만 그렇다 한들 심서연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강지한이 결정한 일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애초에 없었으니까.한편 조은하는 어두워져 가는 딸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왜 그래 서연아?”조은하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심서연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아무 일도 아니니까 걱정 말고 누워 계세요. 먹을 것 좀 챙겨올게요.”“얼른 구급차 불러서 아빠부터 병원에 데리고 가.”심동현이 아픈 것도 보기 싫었고 또 심동현이 죽으면 하나뿐인 딸도 죽을 것 같아 조은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안 죽는다
조은하는 침대에 누워지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심미연 생각을 하고 있었다.어린아이가 자신들이 가하는 모진 매를 견뎌냈을 걸 생각하면 조은하는 자꾸만 가슴이 아파 왔다.그래서 지금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된 것도 다 하늘이 내린 벌 같았다.“엄마, 말할 수 있겠어요?”“응.”심서연이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묻자 조은하가 힘겹게 목소리를 짜내어 대답했다.“아빠한테 또 맞은 거예요?”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게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심서연은 한 번 더 물었다.“그냥 때리라지 뭐. 어차피 나 잘못한 거 많잖아.”조은하는 심동현에게 맞을 때마다 심미연에게 빚을 갚는 거라고 생각했다.물론 심미연은 이미 죽어서 자신이 이토록 참회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지만.“나 잠깐 아빠랑 얘기 좀 하고 올게요.”역시나 예상했던 답이 나오자 심서연이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나려 하는데 조은하가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됐어! 나 괜찮아.”“엄마가 이 꼴로 누워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그러고도 내가 사람이에요?”심서연은 마음 아파서 흐르는 눈물도 빠르게 닦아내며 방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그에 다급해진 조은하가 심서연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에 잡히는 건 공기뿐이었다.“서연아! 엄마한테 이제 딸이라곤 너 하나뿐인데 너까지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해! 얼른 돌아와.”자식을 앞세우는 건 한 번으로도 충분했다.만약 심서연까지 잘못된다면 조은하는 정말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기에 목이 타게 그녀를 불렀지만 심서연은 이미 문을 열고 나간 뒤였다.조은하는 조급한 마음에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는데 몸도 편치 않아서 그만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조은하가 고통에 미간을 찌푸릴 때 심서연은 이미 소파에서 입에 담지도 못할 행동을 하고있는 심동현과 여자를 노려보고 있었다.집에 있는 딸과 아내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심동현에 이성이 끊겨버린 심서연은 주방에서 칼을 들고나와 심동현의 다리 위에서 몸을 배배 꼬고 있는 여자를 향해 휘둘렀
적잖이 당황하는 심동현에 심서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설마 또 집에 다른 여자 들인 거예요?”그 나이 먹고도 여자 생각만 하는 아빠가 심서연은 이제 정말 지겨웠다.“심서연, 넌 무슨 말버릇이 그래!”딸에게 들켜서 창피한 건지 심동현은 이내 역정을 냈는데 그게 또 원래도 기분이 좋지 않던 심서연을 더 건드리는 격이 되어버려 심서연은 들고 있던 가방을 심동현에게 던지며 소리쳤다.“하반신 간수 똑바로 안 하면 병원 가서 수술시켜 버릴 거에요. 그냥 고자가 되어버리면 좀 조용하겠죠.”심동현이 여자랑 혼외자들한테 돈만 퍼주지 않았어도 심씨 집안이 망할 일은 없었기에 심서연은 이 모든 게 심동현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한편 가방에 맞은 머리에서 피까지 흐르자 심서연의 말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심동현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쥐며 뺨까지 내리쳤다.“어디서 그런 배워먹지 못한 말을 해!”얼마나 힘을 준 건지 심서연의 얼굴은 심동현의 손자국대로 빨갛게 부어올랐다.“지금 나 때렸어요?!”“그래! 때렸다 왜! 내가 너 때려죽일 수도 있어.”심동현은 발악하는 심서연을 정말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네가 이딴 년인 줄 알았으면 그때 그냥 죽게 내버려 뒀을 거야. 괜히 데려왔어 진짜!”몇 년 동안 심동현은 줄곧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만약 그때 심서연을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심미연이 유일한 딸 일 테고 그러면 3년 전 심미연이 죽었을 때 모든 재산을 다 가지게 되는 것인데, 심동현은 그러지 못한 게 아직까지도 한으로 남았다.강지한이 위자료로 200억과 함께 이노하이브의 주식과 집, 차까지 줬다던데 다른 걸 다 떠나서 200억도 여생을 평안하게 보내기엔 충분한 금액이었다.심미연이 아닌 심서연을 선택한 대가로 심동현은 다리 밑에서 굶어 죽을 뻔했었다.물론 3년 동안 심씨 집안 사람들이 먹고 쓰고 입는 건 따로 봐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손에 돈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평생을 함께하겠다던 여자는 진작에 도망가버렸고 그렇게 심동현은
아들을 낳으면 그 엄마도 귀해지는 법이다.“아이를 가지려고 계속 남자를 만났어? 그러다가 혼혈아를 낳으면 낳자마자 강지한의 아이가 아닌 게 뻔하잖아! 역시 시골에서 자란 촌뜨기는 머리가 둔해. 너 계속 이런 짓거리만 한다면 난 널 버리는 카드로 만들어 폐기할 거야. 그때 가서 울며불며 애원하지 마.”문소영은 쌀쌀하게 웃었다.“하지만 강상미에게 저를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잖아요? 제가 보이지 않으면 상미가 절 찾을 거예요.”심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조리 있게 말하지도 못했다.문소영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봤다.“강상미는 강지한의 아이야. 세 살배기인 아이지만 속셈이 깊어 넌 걔를 이길 수 없어.”“어쨌든 전 강상미 엄마 노릇을 3년이나 했어요. 내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이 이상해할 거예요. 그리고 어르신도 물을 거예요.”문소영의 버림을 받을까 봐 심서연은 다급히 말했다. 지난 3년 동안 엄청난 부귀를 누려온 심서연은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까 봐 핑계를 둘러댔다.“강상미가 어떻게 온 아이인지 너와 나는 잘 알고 있어. 강상미를 너의 방패막이로 삼을 생각하지 마!”문소영은 심미연과 닮은 이 얼굴을 보고 생각에 빠졌다.‘지난 3년 동안 내가 그렇게 많은 기회를 마련해 줬어. 네가 만약 심미연 절반만큼이라도 똑똑하다면 이 기회를 잡았을 텐데 넌 아직도 강지한과 잠자리조차 가지지 못했어. 그러고는 감히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강지한에게 덮어씌우려고 하다니.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네.’“하지만 전에 저에게 임신하기만 하면 지한 씨와 결혼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심서연은 문소영이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했다. 할 수도 없는 일을 감히 약속하다니.“심서연, 잘 들어. 지금 너에겐 강상미를 잘 키우는 길밖에 없어. 강상미가 하루를 산다면 너도 상미 곁에서 엄마라는 말을 들으며 함께 살 수 있어. 하지만 상미가 죽으면 너도 강씨 가문에서 쫓겨날 거야.”문소영이 또박또박 말했다.심서연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속의 모든 감
“그 여자는 내 얼굴을 꼬집고 내 손을 잡아당겼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소리도 질렀어요. 아무튼, 엄청 무서웠어요.”그러면서 심태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킨 후 또 손목을 흔들어 보였다.“전에 엄마에게 말했잖아요.”심미연은 그제야 공항에서 있었던 이 작은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이 사건에 대해 박유진이 조사하고 있는데 아직 결론이 없었다.‘혹시 아직 찾지 못한 건 아닐까?’“하지만 저는 방금 그 여자에게 복수했어요. 엄마, 미리 말하지만 저는 그저 앞으로 여동생을 괴롭히지 말라고 경고했을 뿐 모함하지 않았어요.”심태하가 득의만면해서 말하자 심미연은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너 무슨 짓을 했어!”“그 여자의 휴대폰에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는 경고문을 넣었어요.”심태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그의 말을 듣고 심미연은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 심태하는 비록 어리지만 사리가 밝아 함부로 괴롭히지 않는다. 그 여자가 먼저 심태하를 괴롭혔으니 반격하는 것도 틀린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이때 심서연이 문소영의 거처에 도착하자 기사가 대신 문을 열어주었다.“심서연 씨, 차에서 내리시죠.”심서연은 치맛자락을 들고 내리며 기사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곧 나올 거예요.”기사는 차 옆에 단정히 서서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태도로 차분하게 말했다.“저는 강 대표님의 지시를 따릅니다.”즉 강 대표님이 기다리라고 지시하지 않았으면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화가 나서 표정이 찌그러진 심서연은 기사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강지한에게 고자질하려고 했다.휴대폰을 열자마자 화면에 커다란 피투성이가 된 입이 보였는데 그 입에서는 저주를 퍼붓는 것처럼 끊임없이 문자가 튀어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 얼굴을 뜻밖에도 그녀의 것이었다.심미연은 깜짝놀라더니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이게 누가 한 짓이야!”‘나에게 잡히기만 한다면 가죽을 벗겨버릴 거야. 괘씸한 놈.’기사는 그녀가 화내는 모습을 보고는 즉시 운전석에 올라탄
신하린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분명히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하나를 잃었으니 지난 몇 년 동안 심미연이 어떻게 버텼는지도 모른다.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심미연은 위층으로 올라가 조용히 심태하의 방문을 열었다.방안의 카펫 위에 작은 사람이 앉아 있는데 그 앞에 놓인 컴퓨터 화면에는 온통 코드로 가득 차 있다.심미연은 발을 들여놓지 않고 오히려 손을 들어 노크했다.노크 소리에 작은 아이는 신속히 노트북을 닫은 후 고개를 돌려 심미연을 바라보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엄마, 무슨 일 있어요?”심미연은 그의 비밀을 들켜버린 것처럼 켕겨 하는 모습을 보고 묻지 않았다.“임현 이모가 맛있는 음식을 사준다고 했으니 나갈 준비를 해야 해.”그녀는 무심코 바닥에 놓인 컴퓨터를 힐끗 보았다.‘이 녀석이 방금 무엇을 하고 있었지?’심태하는 즉시 그녀를 향해 달려와 품에 안기며 고개를 들어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엄마, 너무 사랑해요!”심미연은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만지며 부드럽게 웃었다.“엄마가 말했지? 해킹 기술로 다른 사람을 모함하지 않으면 난 화내지 않아.”이 녀석은 항상 입에 발린 말을 하며 그녀를 즐겁게 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예요!”심태하는 미소를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난 가끔 나쁜 사람을 벌할 뿐이에요.”“엄마는 널 믿어. 됐어, 우리 이제 밥 먹으러 가야지.”언제든지 심미연은 아들을 무조건 믿었다.“엄마 최고예요!”심태하는 그녀의 다리를 껴안고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는데 이 친근한 동작에 심미연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려 손을 뻗어 그를 안아 올렸다.심태하는 그녀의 목을 껴안고 작은 얼굴을 내밀어 얼굴에 뽀뽀했다.“엄마, 저를 아들로 낳아주셔서 고마워요.”그의 주변에 있는 어린아이들의 엄마는 걸핏하면 때리거나 욕했는데 그의 엄마는 이렇게 대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런 엄마가 있어 행복했고 심지어 하늘이 준 행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변호사님, 방금 소송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드렸어요. 집에 도착했어요?”임현의 목소리는 경쾌했다.“이미 도착했어요. 점심 식사 함께할래요?”심미연이 물었다. 당시 그녀가 바다에 떠밀려 죽었다는 현상을 만든 후 제일 먼저 연결한 사람이 바로 임현이다.온지유의 사건은 그녀가 직접 법정에 나설 수 없어 임현에게 부탁했다.그녀와 3년 동안 함께 했고 또 임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 절대 그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임현은 이 소송으로 경성에서 이름을 떨쳤다. 그 후 심미연은 신하린과 로펌을 오픈했고 임현도 도우려고 함께 참여했다.지난 3년 동안 로펌이 신속하게 발전할 수 있는 데는 임현의 헌신적인 노력과 갈라놓을 수 없었다.현재 임현은 이미 동업자가 되어 연봉이 수억 원에 달했다.“경성에 새로운 인기 레스토랑이 열렸는데 많은 사람이 방문하러 가더라고요. 듣기론 디저트가 아주 맛있다고 하던데 태하도 좋아하잖아요? 태하데리고 이 레스토랑에 가보는게 어떨까요?”신분, 지위, 돈 등 모든 것을 얻은 임현은 심미연이 발탁해준 은혜에 항상 감사했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심미연이 돌아오자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했다.“좋아요!”심미연은 먹는 것에 대해 가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심태하는 편식했고 많은 음식을 먹지 않았지만 유독 단 음식을 좋아했다.심미연은 예전에 강지한도 단 음식을 좋아했던 것을 떠올렸다.그녀가 웃을까 봐 몰래 훔쳐먹곤 했는데 심미연은 알면서도 까밝히지 않았다.심태하는 생긴 것은 물론 먹는 것까지 강지한과 똑같았다...“그럼 제가 룸을 하나 예약할게요.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시면 되니 서두르지 마세요.”“알았어요.”심미연은 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었다.신하린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임현 씨야?”심미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하린은 그녀를 흘겨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때 나 몰래 떠나면서 오히려 개인적으로 임현 씨와 연락하더라고. 이건 내가 너의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니라는 거잖아.”사실 이 일에 대해 심미연은 설명한 적이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