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연은 그를 한 번 쳐다보고 나서 웃으며 물었다.“내가 사정하면 이자를 좀 깎아 주실 수 있어?”최근 몇 년 동안 그녀의 부모는 강지한에게서 수십억 원을 가져갔지만 병원에 있는 외할머니를 돌보지 않았고 병원비도 내지 않았다.이렇게 흉악한 부모를 그녀가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아마 심동현은 그녀를 바보로 여기는 것 같다.강지한은 입술을 감빨더니 천천히 말했다.“네가 말했으니 그럼 이자는 적게 쳐줄게.”두 사람이 맞장구를 치자 심동현은 화가 나서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심미연 이 계집애! 그를 돕지 않으면 그만이지. 감히 강지한과 함께 그를 비웃다니. 열받아 죽겠네!’“아빠, 들으셨어요? 이자를 조금 깎아 드린다잖아요. 제가 아빠에게 잘해주죠?”심미연은 얼굴의 웃음기를 거둬들이며 정색해서 말했다.“우린 이미 관계를 끊었으니 이건 마지막으로 당신을 돕는 거예요. 앞으로 알아서 잘하세요.”‘돈이 없으면 어떻게 내연녀와 사생아를 키우고 또 어떻게 심서연에게 명품을 사줄지 두고 볼 거야.’“심미연, 우리가 널 키웠으니 넌 이 은혜를 갚아야 해. 감히 나를 상관하지 않으면 소송할 거야!”심동현은 바로 일어서며 연기조차 하기 싫어 이젠 정색해서 말했다.“심미연, 너 기다려!”강지한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음산한 눈빛으로 지켜봤다.불과 몇 년 사이에 이노 하이브를 글로벌 500대 기업으로 발전시킨 그는 다양한 사람을 봤지만 심동현처럼 친딸에게 모질고 뻔뻔한 사람은 처음이다.“감히 미연에게 무슨 짓을 해봐요? 제가 갑절로 갚게 할 테니!”강지한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꺼져요!”심동현은 놀라 허둥지둥 도망쳤다.심동현이 떠나자 심미연은 강지한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고마워.”그녀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끈질기게 달라붙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방금 강지한이 입을 열지 않았다면 절대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강지한은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나에게 시집오기 전에 저 사람들이 너를 이렇게 욕
심미연은 강지한에게 임신 사실을 알릴 수 없어 핑계만 댔다.강지한은 차갑게 말했다.“억지 부리지 마!”그래도 휴대전화를 꺼내 개인 의사에게 전화를 건 후 손을 뻗어 심미연의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렸다.다리 위로 살갗이 벗겨질 듯 축 늘어져 있었고 주위에는 핏자국이 말라붙어 험상궂어 보였다.강지한은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확 타올라 휴대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했다.“심미연의 부모님을 혼내줘!”그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이런 사람이 어찌 부모가 될 자격이 있겠는가. 악마보다 더 사악했다. 어느 엄마가 딸의 다리를 물어뜯어 살갗이 벗겨지게 할 수 있겠는가.심미연은 강지한이 전화하는 것을 듣고 멍해졌다.사실 그녀는 다리 상처를 다 치료한 후에 어머니를 찾아가 결판을 내려고 생각했는데 강지한이 직접 성무진을 시켜 그들을 혼내라고 할 줄은 몰랐다.간단하고 거칠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두 사람의 결과를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전화를 끊은 강지한은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자 분노의 감정이 싹 풀리며 자신이 방금 건 전화 한 통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앞으로 그들이 감히 너를 괴롭힌다면 너도 참지 마. 어떤 난장판이든 내가 뒷수습을 도와줄게.”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기 여자도 지켜주지 못하면 남자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심미연은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알았어. 고마워.”강지한은 차에 오른 후 시동을 걸었다....룸에서 박유진은 식탁 앞에 선 후 검은 눈동자로 많은 사람의 얼굴을 훑어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생각났는데 법무법인 대명이 갓 오픈해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아요. 또 회사에서도 몇 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니 잠시 결혼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요. 저랑 심서연 씨 결혼식은 잠시 미루는 게 좋겠어요.”조은하가 심미연의 살갗을 물어 뜨다니 정말 지독하고 악랄하다.그는 오히려 심서연도 같은 사람일까 봐 걱정이 됐다. 이런 여자를 곁에 남겨두면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른다.어렵게 구
“파혼하면 안 돼! 이랬다저랬다 해서는 안 된다고!”조은하는 감정이 격해졌고 말투도 급해졌다.경성의 4대 가문 중 박씨 가문은 강씨 가문에 버금가는데 심서연이 박씨 가문에 시집가는 것은 심씨 가문에 도움이 컸다. 일단 파혼하게 되면 아무런 이득도 챙길 수 없지 않은가!심동현도 얼른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파혼하면 안 돼! 번복하다가 소문이 나면 서연이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 수 있어? 손가락질받게 돼.”결혼일까지 잡았던 멀쩡한 결혼식에 변덕이 있을 줄이야!“대외로 파혼 선언을 하세요. 제가 모든 결과를 감당할뿐더러 강지한에게 진 빚을 갚아주고,그외로 4억을 더 드릴게요. 이 돈이 있으면 절약하면 남은 생은 살 수 있어요.”박유진의 표정도 목소리도 다 차가웠다.심서연과 심씨 가문에서 심미연을 못살게 굴더라도 그는 이 파혼하려고 마음먹었다. 앞으로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심미연을 보호해줄 것이다.심동현은 눈알을 굴리며 조은하와 심서연을 보더니 말했다.“강지한에에 빚진 돈을 갚아준 후 20억을 더 주면 동의할게.”20억이 있으면 작은 가게도 차릴 수 있고 집과 차를 사서 애인과 아들을 데리고 남은 인생을 잘 보낼 수 있다.조은하는 달려들어 그의 뺨을 때렸다.“심동현! 파렴치한 놈! 네가 뭔데 나와 딸을 위해 결정을 내려? 우린 파혼 안 해! 서연이는 박씨 가문에 시집가야 해!”심동현에게 내연녀와 아들이 있다는 것을 심미연이 말했는데 그녀는 아직 진상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이젠 믿을 수 있었다.지난 몇 년 동안 심동현이 어떻게 그녀를 대했는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았다.예전에는 그가 나이가 들었고 이젠 사랑하는 사람에서 가족으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심미연의 말을 듣고 정신이 들었다.그녀와 심동현은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사랑이 없어졌을 뿐이다. 어쩐지 심동현이 항상 돈이 없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내연녀를 둔 것이다.그래도 조은하는 지금 심동현과 결판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일단 내연녀와 사생아를 찾은 후 다시
이미자는 눈살을 찌푸리고 일어섰다.“심 대표님, 사모님, 아니면 두 분 먼저 돌아가서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상의해 보세요. 내일 다시 시간을 내서 만나 일을 한꺼번에 해결해요.”그동안 박유진과 심서연이 결혼할 것을 생각하니 그녀는 늘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 박유진이 직접 파혼을 제기하는 것을 들으니 당연히 찬성했다.심씨 가문이 돈을 요구하는데 그들은 줘도 상관없었다.조금이라도 더 줘도 심서연만 떨쳐버리면 됐다.박지훈도 따라서 일어나며 말했다.“비록 유진이가 당신들에게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박씨 집안도 뒤집어쓰고 싶지 않아요. 적당히 하죠?”그런 후 박유진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간다.”수십 년 동안 이웃으로 살아온 그는 헤어져도 떳떳하기를 바랐다.그러나 방금 심동현이 한꺼번에 몇십억을 요구하자 박씨 가문을 바보로 여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했다.박유진은 한마디 대답하고는 여전히 예의 바르게 심서연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는데 이번에 그는 유난히 확고했다.심서연이 뒤쫓아와 그를 안았다.“나는 돈을 원하지 않아. 한 푼도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유진 씨랑 결혼할 거야. 박유진, 나랑 결혼해줘. 응?”박유진은 잘생기고 성격도 좋아서 그녀는 죽어도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심서연 씨, 자중하지?”박유진은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쪼개고 소원한 어투로 말했다.“박유진, 네가 정말 나와 파혼한다면 나는 곧 심미연을 찾아 함께 죽을 거야!”감정이 격해진 심서연의 목소리는 매우 높고 날카로워서 원한을 숨길 수 없었다.박유진은 천천히 몸을 돌려 심서연의 얼굴을 들어 올리고 온화하고 검은 눈동자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죽을 용기가 있다면 미연이를 찾아 함께 죽어.”그는 심서연이 감히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렇게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죽고 싶겠는가.“미연이와 함께 죽을 용기가 없으면 그럼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겨. 그렇지 않으면 언제 다시 돌아가서 예전의
심동현은는 그녀를 보고 갑자기 물었다.“왜 그렇게 심미연을 미워해?”방금 그녀가 심미연을 깨물 때 힘을 많이 썼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보았다.심미연은 그녀가 배 아프게 낳은 딸인데 왜 그녀는 그렇게 심미연을 미워하는 걸까.조은하의 표정이 조금 변했지만 곧 자연스럽게 회복되었다.“일부러 서연이를 잃어버렸어. 어린 나이에 마음이 얼마나 악랄해. 이런 딸인데 미워하지 않고 설마 좋아할 수 있겠어?”심동현는 그녀의 질문에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냥 아무렇게나 물어본 건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그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훨씬 높아졌다.“심동현, 내가 방금 너에게 물은 거에 관해 너 아직 대답하지 않고 여기서 무슨 엄살 부리는 거야!”조은하도 부드러운 여자가 아니라는 걸 심동현는 알고 있었다.이전에 그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성격이 좀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점점 조은하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가 강한 것은 단지 자신을 위해 이익을 쟁취하는 것에 불과하다.“돈을 받으면 우리 5대 5로 나눠. 됐어. 빨리 밥 먹어!”심동현은 당연히 그 화제를 계속하지 않을 것이다.어차피 그의 마음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으니 계속 말하면 틀림없이 탄로 날 것이다.“당신이 무슨 돈을 가진다고 그래!”조은하는 냉소하며 말했다.“심동현, 그건 서연이의 돈이야. 생각도 하지 마!”한마디가 심동현의 모든 기대를 무너뜨렸다. 이 순간 심동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 천한 년! 감히 한 푼도 그에게 나누어 주지 않으려 다니, 꿈 깨!’“조은하, 너 맞고 싶지? 감히 나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심동현은 조은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네가 감히 나를 때리면 너랑 목숨 걸고 싸울 거야.”조은하도 만만하지 않아 노기등등하게 심동현을 향해 말했다.심동현은 기가 막혀서 손을 들어 손바닥을 날렸다.“어디 한 번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봐!”얼굴이 화끈거리고 아팠다. 조은하는 믿기 어려운 듯 눈을 크
“다 꺼져!”그나마 자신을 가장 사랑해 주는 사람이 바로 조은하였는데 심동현이 그녀에게 손을 댄 것이다.‘절대 가만두지 않겠어!’이때, 갑자기 룸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다시 문이 닫혔다....이 시각 미르 파크.주치의가 심미연에게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었다.임신 중이라 마취제를 거부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죽을힘을 다해 참아야 했다.하지만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강지한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그녀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왜 이토록 아파하면서 마취는 또 안 맞겠다고 하지?’그렇게 겨우 치료를 끝내고 보니 심미연은 이미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상처에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하고 음식은 최대한 싱겁게, 그리고 약도 꼭 챙겨 드세요.”의사는 신신당부해 둔 뒤 자리를 떴다.심미연은 아프기도 하고 온몸에 힘이 다 빠져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었다.이때, 옆에 서 있던 강지한이 그녀에게 한마디 했다.“쌤통이다.”심미연은 고개를 홱 돌리고 못 들은 척했다.그녀도 어머니가 갑자기 온 힘을 다해 자기 다리를 물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비록 강지한이 의사를 제때 불러줘서 치료는 받게 되었지만 애초에 만약 그가 억지로 그 자리에 데려가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결국에는 이 모든 게 다 강지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그런데 뻔뻔하게도 저기에 서서 고소해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못된 인간!’강지한은 심드렁한 심미연의 태도를 보고 다시 코웃음을 치더니 허리를 굽혀 가까이 다가와서 물었다.“심미연, 이게 무슨 태도야!”심미연은 고개를 돌리고 그에게 되물었다.“그럼 어떤 태도를 원하는 거야?”‘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욕이 터져 나오는 것도 지금 그를 최대한 배려해서 억지로 참고 있는데, 설마 이 상황에도 그에게 예의를 차려야 하나 싶었다.‘꿈 깨!’“누가 딴 남자한테 정신이 팔리래? 그러니까 물리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지, 바
강지한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심미연, 자꾸 지유 씨한테 심술부리지 마.”지금 몸이 다쳐서 자기 옆에 좀 있어 달라는 걸 심술부린다고 생각하는 그가 너무 어이가 없었다.그러다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다시 그에게 되물었다.“온지유 씨가 그렇게 걱정되면 나랑 이혼하고 두 사람이 결혼하면 되잖아?”이혼만 해주면 그가 누굴 사랑하는지, 누구랑 같이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텐데 말이다.이혼은 하기 싫은데 또 온지유가 걱정되는 강지한이 눈에 몹시 거슬렸다.“박유진 씨랑 네 동생이 곧 결혼한다며. 그럼 네가 아무리 이혼해도 두 사람은 이제 끝인데 설마 일부다처, 이런 거 꿈꾸는 건 아니지?”강지한의 말은 마치 칼날처럼 심미연의 심장을 마구 찔렀다.그의 눈에는 심미연이 그토록 헤픈 사람처럼 보이나 싶었다. “심미연, 내가 여러 번 말했는데 만약 우리 두 사람이 이혼하는 날 바로 외할머니 치료에서 손을 뗄 거야. 그러니까 잘 생각하고 행동해!”강지한은 한껏 차가운 얼굴로 비아냥거렸다.그도 심미연이 이혼까지는 못 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아직 외할머니는 그의 특효약이 필요하고 또 그가 데려온 의사들의 치료가 필요했다.하여 진짜 이혼하게 되면 외할머니는 죽는 거나 마찬가지다.오랜 세월 꾸준히 외할머니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강지한을 참아 왔고 이제 희망이 보이는 상황이라 그녀로서는 더욱더 여기서 치료를 멈출 수 없었다.강지한은 이 사실을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고 심미연이 무슨 생각하는지도 다 알고 있었다.하여 남자의 말이 더욱 그녀에게는 상처로 남았다.사실 심미연도 그의 말이 맞고 일리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그녀와 이혼하는 동시에 강지한의 성격이라면 외할머니한테서 바로 손을 떼고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 후로는 거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지금까지 힘들게 기다려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미안해. 다시는 이혼하자고 안 할게.”심미연은 냉큼 그에게 사과했다.‘강지한과는 그
야릇한 분위기가 순간 깨졌고 심미연은 힘껏 그를 밀쳐내면서 소리쳤다.“빨리 내려줘!”강지한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내려줬고 심미연은 한 발로 걸어가더니 겨우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옆에 있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강지한이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성무진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강 대표님, 온지유 씨가 깨어났는데 지금 울면서 대표님만 찾습니다. 지금 오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하는데 혹시 언제쯤 올 수 있으실까요?”“지금 출발할게!”말을 마친 뒤 강지한은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있는 심미연에게 눈길을 돌렸는데 그녀는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그 모습이 오늘따라 참하고 예뻐 보였는데 순간 복잡했던 마음이 진정되면서 이렇게 평생 같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제야 남자의 뜨거운 시선을 느낀 심미연은 고개를 들어 강지한에게 물었다.“왜 아직도 안 가고 있어?”그녀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자 강지한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왜 자꾸 날 쫓아내지 못해서 안달이지? 이따 데이트라도 있나 봐?”그러자 심미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고.”말 한마디에 저런 오해를 살 바에는 앞으로 대화를 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갈게.”강지한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대로 자리를 떴다.지금으로서는 온지유가 그에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고 심미연은 그저 사모님 타이틀을 달고 있는 동거녀일 뿐이다.심미연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책을 읽었다.법률에 관한 책이라 그런지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순간 화면에 박유진의 이름이 뜬 걸 보고 심미연은 살짝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지금 만나고 싶은데 시간 돼?”박유진의 말투는 너무 다정해서 거절하기 힘들었다.“오빠, 나...”거절하려던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다시 파혼하자고 했어. 이번에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건
온지유는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그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순간 마음 한편에서 감동이 살짝 밀려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만약 그녀가 강지한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육현성이 이런 말을 한 순간 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다! 온지유의 침묵은 육현성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는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조금의 희망을 품고 있었고 어쩌면 그녀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자신과 함께 하기로 결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결국 그것은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현성 오빠, 저는...” 온지유는 육현성이 괴로워하는 것을 느꼈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말하지 않아도 돼요! 나도 알아요. 지유 씨, 자기 자신을 강요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요.” 결과를 알게 된 육현성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앞으로 자주 만날 수는 없을 거예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 당연히 그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현성 오빠, 나랑 이제 아예 연락고 안 해줄 건가요?” “지유 씨, 미안해요. 그냥 내가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요즘 육씨 가문이 엉망진창이라 육현성도 정신없이 바빴기에 온지유를 위로할 여유가 없었다. 온지유는 입술을 꽉 깨물며 갑자기 눈가가 붉어졌고 이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알겠어요!” 그녀는 육현성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육현성이 떠나자마자 강지한이 도착했다. 온지유의 붉어진 눈을 보고 또 혼자서 온갖 상상을 하며 울었다고 생각했다. “유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눈에 안 좋다고 울지 말랬잖아.” 강지한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달래야 했다. 온지유는 육현성의 다정함이 떠오르며 울음을 참지 못하고 더 크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고 강씨 가문의 저택에서. 심미연은 단정한 원피스를
‘차라리 돌아와서 직접 아는 게 낫겠어.’ “성 비서, 말해! 도대체 무슨 일이야?”강지한의 목소리가 예리해졌다. 성무진은 한숨을 내쉬며 결국 알게 된 사실을 모두 전했다. 강지한의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잠시 멈칫했다. 그날 전화로 심미연에게 온지유에게 사과하라고 했을 때 그녀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었지만 그때 그는 뭐라고 말했지? 그는 심미연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심미연은 전화하지 않았고 그는 그저 그녀가 사과하고 싶지 않아서 그를 피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토록 큰 일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아마 슬픔에 잠겨 있었겠지.’‘그래서 내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거야.’ “대표님.” 성무진은 전화기 속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자 조심스럽게 부르며 물었다. “알았어. 그럼 여기까지 하자.” 강지한은 전화를 끊고 창밖의 차들이 가득한 거리를 바라보며 심미연이 혼자서 외할머니의 영정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그는 남편이었지만 아무것도 몰랐으며 이상하게 코끝이 찡해졌다. 그때 할아버지의 전화를 다시 떠올리니 아마 할아버지도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화가 너무 나서 전화를 끊어버렸던 거다. ‘할아버지는 나한테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강지한은 창가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러다 온지유의 전화가 다시 울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또 무슨 일이야?”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한 씨, 나 무서워.”온지유는 반쯤 진심이고 반쯤 아닌 듯 말하였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강지한은 신속하게 응답했다. “지한 씨, 내가 일 방해한 건 아니야?” 온지유는 조심스럽게
생각을 정리하던 강지한은 결국 그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전화기에서 울려 퍼지는 건 차가운 신호음뿐이었다.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바쁜 신호음만이 들려왔다. 강지한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심미연이라는 여자는 진짜 단 한 번도 그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잘못한 것도 그렇게 당당할 수가 있다니. 그녀가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면 그 역시 그녀를 찾을 필요 없이 돌아가서 처리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강지한은 화면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 여자가 또 할아버지에게 고자질이라도 한 건가?’ ‘이젠 할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그를 혼내려는 걸까?’ 지난번에 매를 맞은 뒤로 최근 너무 바빠서 상처도 신경 못 썼더니 이제 염증이 나서 며칠째 고통스러웠다. 한참 후 강지한은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강지한! 너 요즘 어디에 가 있었냐? 왜 전화는 한 번도 받지 않는 거냐?”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거의 울부짖는 듯 분노가 그대로 드러났다. “저 요즘 진성에 출장 갔었어요. 핸드폰을 계속 켜놓고 있었는데 왜 안 받았겠어요?” 강지한은 늘 그렇듯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는 정말로 전화를 꺼본 적이 없었다. “그럼 그쪽에 계속 있어! 평생 돌아오지 마!” 강준형은 화가 나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출장을 갔을 뿐인데 전화가 계속 안 된다니. 그게 단순한 우연일까?강지한처럼 예리한 사람이 왜 이 정도는 생각하지 못한 걸까? 강지한은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생각하고 있을 때 온지유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자 그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무슨 일이야?” “지한 씨, 지금 어디야? 나 혼자 병실에 있으니까 너무 무서워. 와서 좀 같이 있어 줄래?” 온지유의 목소리엔 떨림이 섞여 있었고 그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알았어. 금
“그럼 어머니가 계획한 대로 하세요.” 이진영은 어머니와 대립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의 모든 결정은 이씨 가문을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한 대로 그들은 이씨 가문의 명예를 누렸으니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선택할 수 없었던 일이니까. “넌 먼저 한유나 씨와 연락하고 다시 전화해 줘. 저녁 식사는 취소할게.” “알았어요!” 이진영은 전화를 끊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웠다. 그 연기 속에는 그 여자의 눈부시고 매혹적인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담배 한 개비를 마저 피우고 나자 여자의 얼굴도 사라졌다. 그는 살짝 웃으며 비서에게 한유나의 번호를 찾게 한 후 바로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전화기에서 여자의 자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당신의 소개팅 상대 이진영이에요.” “무슨 일이죠?”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냉담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슨 태도지?’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가?’ “별일 없으면 그냥 끊을게요. 바빠요.” “소개팅 상대로 만나려면 점심에 얼굴 한 번 봐야죠. 어디죠? 데리러 갈게요.” 이진영의 말투는 여전히 평온했고 아무 감정이 없었다. “연구소로 와요.” 그녀는 빠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생각했다. ‘역시 대가문의 따님답게 감히 나를 명령하네.’ “제가 일이 있어서 그럼 이만.” 그녀는 말을 끝내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바쁜 신호음이 들려오자 이진영은 코웃음을 치며 미소를 흘렸다. ‘잘난 척은 끝내주네.’ 그때 강지한의 전화가 걸려 왔고 이진영은 잠시 응급실에 있는 심미연을 떠올리며 망설인 뒤 전화를 받았다. “구도심 사람들 다 동의했어. 지금 와서 계약서에 사인해.” 강지한은 매우 지친 목소리였다. “내일은 안 돼?”그는 오늘 일정이 꽉 찬 상태였다. “오늘 밤에는 경성으로 돌아가야 해!” 강지한은 무의식
이진영은 신하린의 얼굴이 금세 빨개지는 것을 보고 살짝 눈을 좁혔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신하린,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 여자가 혹시 자기가 여기서 뭔가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이 병원이 자기가 소유하는 곳이라 해도 그런 식으로 무모하게 행동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하는 건 비밀스러움이 주는 그 자극적인 느낌이 있어 확실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오늘 밤 당신 집에 가야 되나요? 아니면 우리 집으로 올래요?” 신하린은 이제 거짓말도 입을 열자마자 술술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사실 남자도 그녀가 진심을 말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속마음을 말하면 상처가 될 테니까. “내가 네 집 하나 샀어. 일이 끝나면 같이 가서 보여줄게.”이진영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고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가 사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신하린은 그가 주는 걸 원하지 않았고 그에게 뭔가를 받는다는 건 자존심이 상할 뿐이었다. “너 그곳 너무 좁아. 할 때 별로야.” 이진영은 손을 뻗어 신하린을 품으로 끌어안으며 그녀의 매혹적인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비서한테 큰 소파랑 넓은 침대로 바꾸라고 했으니까 오늘 밤 한 번 써보자.” 조금 조롱이 섞인 말투였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은근히 기대가 치솟았다. 신하린의 얼굴은 금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남자가 정말 끝까지! 하루 종일 그런 생각만 하는 거냐고.’ “너 밥 해줄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 거기는 부엌도 넓고 기계도 다 새것으로 준비됐어...” 마지막 말은 그녀의 귀에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이듯 말했고 신하린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었고 귀까지 붉어졌다. ‘이 남자는 정말 너무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고 신하린을 잠시나마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이진영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보며 번호를 확인
신하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박유진에게 말했다. “잠깐 다녀올게요. 먼저 여기서 미연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진영은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라 조금이라도 더 기다리게 하면 화를 낼 게 분명했다. 박유진은 그저 응답했을 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신하린은 그를 그윽하게 한 번 쳐다보고 그제야 돌아서서 떠났다. 박유진과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가능성이 없었다! 사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을 접고 있었다.안전 통로에서 이진영은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물고 있었다. 연기가 퍼져 나가면서 그의 잘생긴 얼굴이 그 속에서 아련하게 비쳤다. 신하린은 문 앞에서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참으로 잘생겼다. 그때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하며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말했다. “왜 안 와? 내가 널 잡아먹니?” 신하린은 시선을 떼고 한 발짝씩 그에게 다가갔고 마음속은 불안하고 떨렸다. 남자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랑 있는 게 그렇게 싫은 건가?’ 신하린은 그의 앞에 다가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미연이가 쓰러져서 박유진 씨와 함께 병원에 데려왔어요.” 이진영은 자연스레 그날 밤 강씨 가문에서 봤던 그 여자가 떠올랐다. 정말 독특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분위기 또한 차분하고 목소리는 매우 부드럽고 온화했다. 경성에서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다웠음에도 강지한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마 그런 남자들은 결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미연이의 외할머니가 사흘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동안 혼자서 지키며 사흘을 보냈고 오늘 아침에 외할머니 장례식을 마친 후 쓰러졌어요.” 박유진과 자신 사이에 무언가 있다고 오해받길 원치 않았기에 그녀는 스스로 설명했다. 이진영은 눈을
신하린은 깜짝 놀라 손을 급히 떼었고 다시 돌아섰을 때 남자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 최근 며칠 동안 그의 전화를 피했던 신하린은 마음속에서 불안이 밀려왔다. 여기서 이 남자가 자신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박유진도 있는데 말이다. 이진영은 신하린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속에서 폭발할 듯한 분노가 일렀다. ‘이렇게 겁을 먹은 정도로 내가 무서운 거야?’ 신하린은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곧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급히 그 앞에 다가가 애교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여긴 내 병원이야. 점검하러 왔는데 무슨 문제 있어?” 남자의 말투는 거칠었고 이미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신하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그를 끌어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녁에 제가 직접 요리할게요. 함께 와서 먹을래요?” 심미연의 임신 사실이 절대 누설되지 않도록 이진영이 이미 말해둔 상태여서 신하린은 심미연을 이곳으로 데려왔지만 여기서 이진영을 만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예상 밖이었다. “나한테는 수석 셰프가 요리해 주는데 넌 셰프 자격증은 있어? 나한테 밥 해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이진영은 차갑게 웃으며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며칠 동안 이 여자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문자도 답장하지 않았으며 영상통화는 아예 무시했었다. 그는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이제 와서 한 끼 식사로 그를 달래려고 한다니 그건 어림도 없었다. “그럼 됐어요!” 신하린은 약간 당황한 채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 남자가 살짝 꼬리를 내리면 풀릴 줄 알았지만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셰프 수준은 아니지만 요리를 꽤 잘하는 그녀였고 남자의 말은 그녀를 정말 난처하게 했다. 박유진은 이진영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와 신하린 사이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심미연은 알고 있을까?’ ‘모르고 있다면 알려야 할까?’
그는 그냥 강준형에게 더 이상 강지한의 일을 강제로 강요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었다. 강지한 같은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강준형은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미연이가 지난 3년 동안 겪은 그 모든 불공정한 대우는 다 내 잘못이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걸 인정하기가 싫어서 계속 모른 척하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는 알겠어! 그만둘 거야. 미연이가 이혼을 원한다면 그건 그 자식이 감당할 문제야.” 3일 후 양경자의 장례식이 있었다. 하늘에는 잔잔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심미연은 검은 옷을 입고 우산을 쥔 채 묘비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외할머니가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니라 잠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것처럼 말이다. 신하린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3일 동안 심미연은 잠을 2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았다. 사실 심미연이 잠을 자지 않은 것보다 이 3일 동안 한 번도 울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지나치게 조용했던 사실이 신하린을 더 두렵게 했다. 신하린은 심미연이 극단적인 생각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박유진이 다가와 신하린과 짧게 눈빛을 주고받은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연아, 외할머니는 이제 편히 잠드셨어. 집에 데려다줄게.” 이 3일 동안 그는 심미연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녀는 전혀 듣지 않았고 그녀가 하루하루 지쳐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외할머니는 편히 안장되었으니 그녀가 잘 수 있도록 집으로 데려가야 했다. 심미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오빠랑 하린이는 먼저 가. 난 할머니랑 좀 더 있다가 갈게.” “너 3일 내내 잠도 자지 않았잖아. 더 버티면 몸이 망가져!” 신하린은 목소리가 떨렸고 눈가는 이미 붉어져 있었다. 이 3일 동안 그녀는 심미연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신하린은 문 쪽을 바라보다가 은발을 휘날리며 걸어오는 강준형을 보고 급히 심미연을 불렀다. “미연아, 네 할아버지 오셨어.”심미연은 잠시 멈칫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강준형은 지팡이를 짚고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미연아, 이렇게 큰 일이 있는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니!” 강준형은 그녀의 너무 지친 모습에 마음이 몹시 아팠다. ‘정말 바보 같은 애구나.’ ‘어떻게 혼자서 이 모든 걸 짊어지려고 했을까.’ 심미연은 일어나려 했지만 무릎이 너무 아파 일어설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할아버지, 어떻게 오셨어요?”그녀는 강지한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강씨 가문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강지한에게 외할머니의 죽음을 이용해 책임을 피하려는 교활한 사람일 테니 그 이미지대로 남기로 했다.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되고 전화는 꺼져 있더라. 걱정돼서 사람을 시켜 확인해 봤더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어. 미연아, 나는 네가 강지한 그 자식에게 마음이 떠난 걸 알아. 그런데 그놈은 그놈이고 나는 나야. 이런 일을 나한테까지 숨기지 말았어야지.”강준형은 빈소를 잠시 바라보며 심미연이 혼자 바쁘게 모든 걸 처리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 ‘결국 이 모든 게 강지한 그 자식 때문이야!’ 강지한을 생각하니 강준형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심미연도 연락이 안 됐고 강지한도 연락이 안 되었다. 고의로 잠적을 한 건지 뭔 일이라도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면 반드시 그 자식에게 따지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바빳어요. 핸드폰도 꺼져버려서 잊고 있었어요.”심미연의 목소리는 피곤함에 찌든 느낌이었다. “할아버지, 기사님이 데려다주신 건가요?” 그녀는 강지한에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강준형에게 진짜 생각을 말할 리 없었다. 강준형은 심미연의 눈에 짙게 퍼져 있는 혈관과 창백한 얼굴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내가 사람을 데려왔어. 나머지 일은 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