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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0화

Author: 동과
석지훈이 직접 쓴 글씨체는 나에게 익숙했다.

아래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우리가 약혼한 날이었다.

석지훈은 나를 사랑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자기 어머니에게 굴복했다.

비록 그가 받았던 스트레스를 알고 있었지만 용서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모르는 상황에서 자궁에 손상을 준 행동으로 인해 나는 석지훈을 원망하고 있었다.

너무도 절망적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은 나는 더는 읽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파트로 돌아와 샤워한 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나는 여전히 내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어떻게 화를 억제하고 마음속 슬픔을 다스리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를수록 마음은 점점 더 답답하고 힘들어졌다.

결국 나는 잠을 설쳤다.

[이전까지 다른 사람을 사랑한 적은 없었어. 네가 처음이야. 내가 미숙해서 네가 사랑을 그저 그런 것으로 생각하게 될까 봐 두려워.]

석지훈이 남긴 글은 사랑 고백인 동시에 치명적인 독 같았다.

책갈피에 적힌 글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의 사랑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

깊은 한숨을 내쉰 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함승윤이 보내준 자료를 확인했다.

조직 이름은 타이탄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이었으며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크리스와의 만남은 여전히 생생히 기억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었어. 오만방자하게 아무나 괴롭힌다는 거지? 석씨 가문이 정말 그냥 이대로 넘어갈 거로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복수해야지. 평온한 설을 보내고 나면 그 뒤에는 처절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핸드폰을 내려놓은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가벼운 뇌진탕 후유증일 거로 생각한 나는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다시 누웠다.

늦은 밤에도 나는 잠들지 못한 채 눈을 뜬 채로 날이 밝는 걸 지켜보았다.

하늘이 완전히 밝아졌을 때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비와 눈이 많은 운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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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지. 석씨 가문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폐물일 뿐이잖아.”당황한 크리스는 말이 꼬이며 당황해서 물었다.“폐... 폐물?”나는 가볍게 비웃으며 조롱하듯 말했다.“아니면 뭐야? 그럼 폐물이 아니라 쓰레기야?”내 눈에 크리스는 그냥 쓸모없는 쓰레기일 뿐이고 또한 나의 수치였다.그는 분노에 찬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석지훈의 여자답게 만만하지 않네.”그는 내가 가장 듣기 싫은 이름을 언급했다.나는 잠시 침묵한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평온한 생활을 잘 즐겨봐. 설만 보내고 나면...”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자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타이탄은 떠돌이 개가 될 거야.”그는 웃으며 말했다.“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용기를 준 거야?”나는 비웃으며 대꾸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한편 다른 쪽에서는 크리스가 책을 읽고 있는 석지훈을 보며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네 여자 성격이 왜 이래? 혹시 아직도 원한을 품고 있는 거 아니야?”석지훈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원래 복수는 철저히 하는 사람이야.”원한을 잊지 않는 사람이어서 그녀는 고현성을 용서하지 않았고 또한 자신도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석지훈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석지훈이 책장을 넘기자 크리스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처음부터 친절하게 대해줄 걸 그랬어.”석지훈은 고개를 들어 그를 차갑게 바라보며 물었다.“수아한테 뭘 했는데?”크리스는 못된 생각을 품었던 자신의 과거를 직접 말할 생각이 없었다.석지훈이 알게 된다면 이 자리에서 죽으리라는 것은 뻔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크리스는 재빨리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말했다.“경기장에 밀어 넣었잖아.”석지훈은 순간 멈칫했다.그날 그는 그녀를 두 번이나 발로 찼다.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몰라 심히 걱정되었지만 지금 그는 궁지에 몰린 짐승과 같았다.원태웅은 아직 그의 행방을 찾지 못했는데 이는 원태웅의 행동이 느린 것이 아니라 타이탄이 그를 숨기기 위해 백 년의 기반을 망가뜨리기까지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61화

    ‘설마 나랑 석지훈 사이를 알고 있는...’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고정재에게서 답장이 왔다.[나에게 있어 우리 꼬마 아가씨는 가족이야. 앞으로도 평생 그럴 거야. 아무도 네 생일을 함께 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위해 연주해 줄게. 연주회가 끝나면 동성시로 가서 담현아랑 같이 새해 맞이하러 갈게.]‘고정재는 내가 석지훈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있네. 내 생각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네.’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고마워요.]나는 그가 이번 생에서 내게 준 따뜻함에 감사했고 내 곁에서 빈틈없이 나를 지켜준 것에 감사했다.고정재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사랑이 아닌 애정이 담긴 소중함만이 남아 있는 관계였다.연주회는 다음 날 오후에 열렸다.나의 휴식 시간과 딱 맞는 시간이어서 잠에서 깬 나는 특별히 밤하늘처럼 파란 드레스를 골랐다.드레스의 치맛자락은 땅에 닿았는데 하이힐을 신으니 발목까지 딱 맞았다.이 드레스를 입으면 마치 광활한 별하늘을 몸에 걸친 듯이 눈부시게 빛났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운성시에서 나는 언제나 정교하고 세련된 모습을 유지했다.특히 석지훈이 없는 운성시에서는 어느 자리에서도 항상 완벽히 아름답게 꾸몄는데 피곤한 삶이었다.최희연도 이전에 한 번 내게 물었었다.“이렇게 사는 거 힘들지 않아?”‘힘든가?’하지만 이런 것도 내가 선택한 삶일 뿐이었다.흰색 코트를 걸치고 나서자 현정우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가주님, 어디 가십니까?”“연주회 들으러 가요. 오늘은 동행하지 않아도 돼요.”현정우는 걱정하며 말을 이었다.“하지만...”현정우는 내 안전을 염려했다.“그렇다면 따라오세요.”“가주님께서는 저희를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가주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라도 생기시면 핸드폰에 있는 긴급 호출 장치를 사용하시면 됩니다.”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현정우는 나를 연주회장까지 데려다주었다.나는 입구에서 잠시 서 있다가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에 들어갔다.자리에 앉자마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60화

    석지훈이 직접 쓴 글씨체는 나에게 익숙했다.아래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우리가 약혼한 날이었다.석지훈은 나를 사랑했지만 그뿐이었다.그는 자기 어머니에게 굴복했다.비록 그가 받았던 스트레스를 알고 있었지만 용서하기는 어려웠다.오히려 모르는 상황에서 자궁에 손상을 준 행동으로 인해 나는 석지훈을 원망하고 있었다.너무도 절망적이었다.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은 나는 더는 읽고 싶지 않았다.나는 아파트로 돌아와 샤워한 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많은 일을 겪으면서 나는 여전히 내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어떻게 화를 억제하고 마음속 슬픔을 다스리는지에 대해서 말이다.하지만 감정을 억누를수록 마음은 점점 더 답답하고 힘들어졌다.결국 나는 잠을 설쳤다.[이전까지 다른 사람을 사랑한 적은 없었어. 네가 처음이야. 내가 미숙해서 네가 사랑을 그저 그런 것으로 생각하게 될까 봐 두려워.]석지훈이 남긴 글은 사랑 고백인 동시에 치명적인 독 같았다.책갈피에 적힌 글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우리의 사랑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깊은 한숨을 내쉰 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함승윤이 보내준 자료를 확인했다.조직 이름은 타이탄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이었으며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크리스와의 만남은 여전히 생생히 기억났다.‘내 인생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었어. 오만방자하게 아무나 괴롭힌다는 거지? 석씨 가문이 정말 그냥 이대로 넘어갈 거로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복수해야지. 평온한 설을 보내고 나면 그 뒤에는 처절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핸드폰을 내려놓은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가벼운 뇌진탕 후유증일 거로 생각한 나는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다시 누웠다.늦은 밤에도 나는 잠들지 못한 채 눈을 뜬 채로 날이 밝는 걸 지켜보았다.하늘이 완전히 밝아졌을 때야 겨우 잠이 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땐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비와 눈이 많은 운성시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59화

    「호밀밭의 파수꾼」책은 오래된 느낌이 들었다.책을 받아 첫 페이지를 펼치자 석지훈의 유려한 필체로 적힌 서명이 보였다.아래에는 20세기 초라고 시간이 표기되어 있었다.이 책은 그가 젊은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책이었다.책 중간에는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다.나는 책을 더 넘기는 대신 현정우에게 던지며 입을 열었다.“보관해 두세요.”석만호가 왜 나에게 이 책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한 이상 시간이 나면 한번 읽어볼 생각이었다.나는 현정우와 함께 연씨 별장에 들렀다.별장에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연시혁도 와 있었는데 어머니는 연시혁이 설을 함께 보내러 집에 왔다고 했다.연시혁은 마침내 연씨 가문을 자신의 집이라고 인정한 것이다.아버지는 내가 집에 온 것을 보고 매우 놀라며 물었다.“운성시에는 갑자기 어쩐 일이야? 3일 뒤면 네 25번째 생일이면서 설 전날인데 어떻게 보낼 예정이야? 지훈이가 생일 챙겨준대?”부모님 눈에 석지훈은 이미 예비 사위였고 내 미래의 남편이었다.부모님은 내 모든 일을 그가 나서서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잔혹했던 석지훈의 모습이 떠오르자 배가 점점 꼬이는 것처럼 아파진 나는 얼른 거짓말로 둘러댔다.“네. 핀란드에서 새해를 보내려고요. 그래서 설에는 함께 하지 못할 것 같아요.”곧 명절인 상황에 굳이 부모님께 나와 석지훈 사이에 발생한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편안히 새해를 맞이했으면 했다.어머니는 기대하며 물었다.“그럼 새해가 지나면 집에 올 거니?”내가 혼자 집에 온다면 어머니는 걱정하실 것이다.석지훈과의 관계도 끝났으니 어머니께 다른 예비 사위를 보여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그러면 어머니는 더 걱정하실 것이다.나는 또다시 하얀 거짓말을 했다.“요즘 너무 바빠요. 석씨 가문 일도 많아서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찾아뵐게요.”소파에 앉아 있던 연시혁이 갑자기 물었다.“언제 결혼해? 알아야 미리 축의금도 준비하지.”연시혁이 묻자 부모님도 동시에 나를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58화

    운성시의 따뜻한 햇살이 그 남자에게 내려앉아 아련한 느낌을 더했다.마음도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하는 말은 너무나도 냉정하고 가슴을 찔렀다.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당신이랑은 상관없잖아요.”전화기 너머로 고현성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수아야, 우리 반년 만에 만나는 거야. 그동안 나는 미상국에서 치료받고 있었는데 이제 상태가 안정돼서 귀국할 수 있었어. 내 생각은 안 했어?”고현성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해진 건 유서정 때문이었다.나는 그가 줄곧 다른 인격과 싸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또한 다른 인격이 저지른 일을 건강한 그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고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나는 평생 그를 경계하며 살아갈 것이다.“그래요. 축하해요.”나는 성의 없이 답했다.이 자리에서 나는 고현성이 따뜻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그는 이웃집 청년처럼 전화기 너머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너 보러 가도 될까?”그의 목소리에는 신중함이 묻어 있었고 그런 그를 보니 마음 한구석이 저렸다.한때 너무나도 사랑했던 남자였고 또한 나는 그가 내 평생의 동반자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그는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무조건적인 사랑은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남부럽지 않은 것이었다.‘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된 걸까?’인생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많았다.고현성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앞이 막힌 사람이었다.그는 나를 구하려 했지만 나는 그를 떠났다.누구보다 단호하게 말이다.나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현성 씨, 저는 곧 동성시로 돌아갈 거예요.”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의 과거를 용서한다는 뜻이었고 동시에 나 자신을 놓아주는 것이기도 했다.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마무리 짓고 싶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차분하게 부르자 전화기 너머로 고현성이 낮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냈다.“수아야, 고마워.”그는 내 뜻을 이해했다.“그래요.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57화

    사별이와 사현이는 순번에 따라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차례대로라면 아이들의 이름은 서구와 서십이 되어야 했다.가정부가 웃으며 설명했다.“아이가 너무 많아서 어르신께서 서팔 이후의 아이들은 별자리로 이름을 짓자고 하셨어요. 며칠 후 전갈자리인 아이 하나가 더 이곳에 와서 같이 생활하게 될 거예요. 어르신께서 그 아이의 이름은 전유라고 지어주셨어요. 사모님께서는 어르신이 게을러서 아이 이름 짓는 것도 귀찮아하신다며 웃으셨죠. 하지만 그냥 애칭일 뿐이라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긴 하죠.”나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가정부는 드물게 친절하게 덧붙였다.“내일이면 저희는 서당시로 돌아가 설을 보낼 거예요. 설이 지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니 그때 다시 아이들을 만나러 오세요. 그땐 사모님께서 허락하실 거예요. 저는 가정부일 뿐이라서 그런 권한이 없네요.”“감사합니다.”갑자기 사별이 내 손가락을 꼭 잡더니 흐릿한 목소리로 엄마라고 불렀다.부드러운 아이의 목소리는 내 심장을 단번에 파고들었다.순간 멈칫한 나는 붉어진 눈시울로 사별이를 바라보았다.나는 얼른 물었다.“사별이가 뭐라고 했나요?”옆에 있던 가정부가 웃으며 답했다.“사별이가 방금 무의식적으로 엄마라고 불렀어요. 여섯 달 된 아기는 아직 말할 수 없지만 가끔 무의식적으로 단어를 내뱉곤 합니다. 아가씨도 나중에 직접 아이를 키워보시면 알게 되실 거예요.”‘아이가 여섯 달이라고? 사별이... 사자자리... 여섯 달짜리 쌍둥이면서 사자자리면 죽은 나의 아이와 똑같네. 사별이도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하지만 이 아이는 유씨 가문 아이인데? 유씨 가문 핏줄이야. 나랑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억누르며 물었다.“아이 부모님은 어디 있나요?”“서당시에서 일하고 있어요. 내일 아이를 데리러 올 거예요.”“아, 그렇군요.”나는 넋이 나갔다.“아가씨, 괜찮으세요?”나는 얼른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괜찮아요.”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다.내 마음을 눈치챈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56화

    폭우가 지나간 후 운성시에는 뜻밖에도 해가 떠올랐다.나는 현정우가 내게 가져다준 흔들의자에 누워 햇살을 즐기며 함승윤이 가져온 석씨 가문의 권력 분포도를 한 장씩 넘겨보았다.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석씨 가문이 전 세계적으로 어떤 권력을 지니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게 된 자료였다.차근차근 살펴보니 석씨 가문의 위세는 소름 끼칠 정도였는데 내가 보고 있는 자료는 석지훈조차 모르는 자료였다.‘이렇게 보니 나의 생부는 아들에게조차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네.’나는 권력 분포도를 보며 별장 아래 정원에서 몇몇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제일 큰 아이는 일고여덟 살 정도 되어 보였고 가장 어린아이는 세네 살쯤 되어 보였다.도시의 소음에서 멀리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은 꽤 행복해 보였다.손에 든 권력 분포도를 내려놓고 아래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임신과 출산을 겪어서 그런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나에게 유난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별장에서 고은경이 여섯 일곱 달 된 아기를 안고 나왔다.그녀의 뒤에는 두 명의 가정부가 뒤따랐는데 그들도 각각 여섯 일곱 달 된 아기를 안고 있었다.‘유씨 가문은 자손이 번성하네.’고은경은 아기를 담요를 깔아둔 화단에 내려놓고는 차를 타고 떠났다.정원에는 여러 명의 아이만 남아 놀고 있었다.내가 아이들을 너무 오래 바라보고 있었는지 옆에 있던 현정우가 제안했다.“가주님, 아이들이 좋으시면 내려가서 보시죠.”나는 그를 힐끔 보며 물었다.“얼마 전에 유서정을 상대로 한 일을 생각하면 유근수가 날 반겨줄 것 같나요?”현정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석씨 가문 사람을 거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무리 깊은 원한이 있다고 해도 돈 앞에서는 장사가 없을 테니까요.”‘모든 사람이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건 아닐 텐데.’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동의했다.“한번 가볼까요.”현정우가 내 어깨에 코트를 걸쳐 주었고 나는 그와 함께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55화

    운성에서 가장 좋고 비싼 별장 단지는 도시 외곽 산꼭대기에 있었다. 그곳은 인적이 드물어 너무나 조용했다.그리고 산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운성에 눈이나 비가 내리는 것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나는 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고현성이 나를 데리고 하룻밤 묵었었다.현정우가 차를 몰고 한 별장을 지나갈 때 나는 현관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노란 고양이를 보았다. 짧은 털이 모두 젖어서 몹시 불쌍해 보였다.별장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니 누군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설마 고현성도 여기에 있는 건가?나는 함승윤에게 지시했다.“저 집의 상황을 알아봐 줘요.”함승윤은 전화를 걸어 주소와 호수를 알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내게 말했다.“가주님, 저 집은 고현성의 소유이고 지금 유근수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나는 의아하게 물었다.“유근수라고?”함승윤이 자세하게 설명했다.“네, 얼마 전 가주님 지시대로 유서정을... 그녀가 결국 미쳐버리면서 유씨 가문은 완전히 무너졌고 고씨 가문에 흡수합병됐습니다. 사실상 고현성 손에 넘어간 셈이죠. 고현성은 이 저택을 유근수 부부에게 넘겨줬고 그들은 유씨 가문의 몇몇 어린 후배들과 함께 여기서 지내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여전히 서당에 남아있지만 유서정은 현재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고 있습니다.”얼마 전 반경우 누나의 약혼식에서 유서정을 만났는데 그녀는 그때도 정신을 못 차리고 나랑 싸우려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함승윤에게 전화해서 유서정을 처리하라고 했다.그 후로 나는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는데 그녀가 정신병원에 갇혔다니.이것도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겠지.나는 한숨을 쉬며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용히 손바닥으로 배를 쓰다듬었다.이곳은 이미 흉터가 생겨 더 이상 처음처럼 피투성이가 아니었다.그리고 그 칼은 정말 정확하게 바로 도라지 꽃 위에 꽂혔었다.곧 함승윤이 나를 위해 마련한 저택에 도착했다. 고현성의 저택 바로 위쪽에 위치해 있었다.여기에서는 고현성의 정원에서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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