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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작가: 동과
안쪽에서 한 남자가 빛을 등지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속으로 애타게 외쳤다.

“구해주세요, 현성 씨...”

곧 고현성이 다가와 나를 품에 안았다. 그는 단호한 걸음으로 나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려 했고 나는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속삭였다.

“핸드폰...”

고현성은 방으로 돌아가 내 핸드폰을 챙겨왔다. 차에 올라 조수석에 앉은 나는 간신히 힘을 내어 함승윤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주님, 제가 석씨 가문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운성에는 석씨 가문이 인수한 병원이 있었고 이런 병원은 운성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 퍼져 있었다.

“알겠어요.”

내 대답을 들은 함승윤이 물었다.

“현정우는요? 왜 가주님 곁에 없습니까?”

나는 고통을 참으며 힘겹게 대답했다.

“오늘 하루만 쉬라고 했어요.”

함승윤은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주님, 이런 결정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정우가 저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어요.”

“죄송해요. 미리 말씀드리면 반대하실 것 같아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산 아래에는 석씨 가문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잖아요. 저는 별장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으니 위험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함승윤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체념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가주님, 곁에 아무도 없는 상황은 너무 위험합니다. 지금처럼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실 겁니까? 가주님의 몸 상태를 고려하면 절대 혼자 계셔선 안 됩니다.”

그가 내 건강 상태에 대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애써 대답했다.

“알겠어요. 병원 주소를 보내주세요.”

전화를 끊은 뒤, 함승윤은 곧바로 병원 주소를 보내왔다.

나는 핸드폰을 고현성에게 건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누구세요?”

이때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수아야, 나야.”

나는 무의식중에 물었다.

“누구죠?”

“수아야, 넌 한때 나를 믿고 사랑했던 사람이야.”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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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앙이든 영광이든, 그것은 모두 그의 세계였다.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와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기도 했다.하지만 그때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그와 함께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답답한 마음으로 별장에 들어가 최욱현의 옆방에 누웠다. 휴대폰을 꺼내 연예 기사들을 뒤적였지만 전부 별거 아닌 가십거리뿐이었다.그러다 문득 석지훈이 예전에 올린 트위터를 찾아봤다. 좋아요는 이미 300만을 넘었고 댓글은 그를 동경하는 팬들로 가득했다.[201X년 11월 27일 저녁 8시, 나는 연수아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약혼을 맺었다. 201X년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는 내 생에 가장 행복한 하루였다.”나는 이 글을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글을 읽다가 나는 눈가가 붉어지며 조용히 눈을 감고 말했다.“새해 복 많이 받아요, 오빠.”이 말은 깊은 밤, 고요한 순간에만 나 혼자 속삭일 수 있었다....다음 날 아침, 최욱현이 나를 깨웠다. 그는 내 방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서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나는 피곤한 눈으로 그를 보며 험하게 말했다.“또 이러면 너 바로 돌려보내 버릴 거야.”하지만 그는 전혀 겁먹지 않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새해 복 많이 받아, 꼬마 아가씨!”최욱현은 가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년 같아서 화를 내고 싶어도 내킬 수가 없다.“너도.”그는 침대 옆에 앉아 다리를 꼬고 말했다.“오후 비행기로 미상국에 돌아갈 거야.”나는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가며 말했다.“조심해서 가.”그는 나를 따라오며 물었다.“F국으로 같이 갈래?”“거긴 내 집도 아니야. 그리고 시간 없어.”“나랑 같이 가서 어머니께 새해 인사드리자.”그건 그의 어머니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했던 한마디가 아직도 내 마음에 깊게 남아 있다.“너는 내 딸이지만 딸이라는 관계를 제외하면 우리 사이에 무슨 유대가 있는지 모르겠구나.”그녀에게는 나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었다. 내가 새해를 함께 보내든 말든 그녀에게는 아무런 차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65화

    아름답고도 외롭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석지훈을 떠올렸다.어쩌면 석지훈은 내가 본 가장 화려한 불꽃놀이였고 또 내가 경험한 가장 아프고 깊은 외로움이기도 했다.가끔은 예쁜 달빛도 쉽게 식어버리는 화려한 불꽃에 비할 바가 못 됐다.나는 한숨을 쉬며 깊어지는 슬픔을 느꼈다.옆에 있던 욱현이 갑자기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물었다.“꼬마 아가씨, 불꽃의 이명이 뭔지 알아?”‘또 꼬마 아가씨라고 부르네.’“이명이 뭔데?”“기녀. 예전에는 기생을 불꽃이라고 부르기도 했어. 예쁘긴 하지만 결국은 단명하잖아. 불꽃이 쉽게 사라지듯 기생도 비슷한 삶을 살아서 그런 이명이 붙기도 했어.”욱현은 F 국에서 자랐기에 국내의 문화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었다.그래서 나는 설명을 덧붙였다.“기녀는 불꽃이 아니야. 오히려 그녀들이 몸을 담고 있는 곳을 불꽃의 성지라고 했지.”“뭐가 달라?”“네가 지냈던 곳이 F국이라고 해서 네 이름이 F 국이야?”직설적인 내 설명에 욱현은 바로 이해했다.그는 이어폰을 빼고 눈을 감으며 말했다.“나 이제 잘게.”나는 조용히 그를 불렀지만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다시 한번 불렀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예전에는 욱현이 나를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그에게 청각장애가 있다고 확신했다.나는 일어나서 남은 봉투를 그의 베개 옆에 두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속삭인 뒤 방을 나왔다.현정우와 다른 사람들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내가 나가자 그들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나는 문 앞에서 그들의 젊은 얼굴을 보며 불편함을 느꼈다.하지만 어떤 일들은 내가 직접 마주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나는 입술을 깨물다 입을 열었다.“내일 하루는 쉬세요. 다들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과 함께 명절을 보내세요. 모레 오후 3시에 여기 모여서 아일랜드로 출발할 거예요. 위험한 임무이니 각자 마음의 준비도 잘 해주세요.”함승윤은 어제 글로벌 위치 시스템을 통해 타이탄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했다.정확히 말하면 크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64화

    욱현을 만날 때마다 그는 항상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그가 내 말을 듣지 못할 때는 이어폰을 벗은 상태였다.나는 대담하게 그에게 청각 장애가 있다고 추측했다.‘두 번이나 귀머거리라고 욕하다니!’그 생각을 하자 마음속의 죄책감은 점점 더해졌다.욱현이 언제 무시했냐고 물을 때 나는 얼버무리며 답했다.“장난은 그만 치고 이따가 현정우랑 먹을 거 좀 사러 다녀와. 나는 별장에서 기다릴게.”욱현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집에 가도 되는 거야?”나는 그를 흘겨보며 답했다.“거절해도 돼.”결국 나는 그를 완전히 밀어내지 못했다.욱현이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역시 수아는 나한테 다정해.”나는 먼저 산속의 별장으로 돌아왔고 욱현과 현정우는 장 보러 갔다.나는 두 사람에게 봉투 스물다섯 개의 추가로 사 오라고 특별히 부탁했다.별장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쯤이었다.눈도 차츰 잦아들고 있었고 나는 다른 경호원 몇 명과 함께 부엌에서 한참 동안 저녁 준비를 했다.저녁이 다 준비될 즈음 욱현과 현정우가 물건을 잔뜩 들고 돌아왔다.그들은 먼저 집안을 예쁘게 단장하고는 정원에 폭죽을 준비해 두었다.자정이 되면 불꽃놀이를 하기로 했다.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에 나는 내 경호를 맡고 있는 24명의 경호원들과 함께 설날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낯선 그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예전의 23명을 떠올렸다.그들은 생존을 위해 내 곁에 머물렀지만 나는 그들에게 평안과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그 생각이 다시 떠오르자 마음속 분노는 점점 더 깊어졌다.식사 중 나는 술잔을 쳐들고 건배사를 외쳤다.“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여러분들의 노고에 대하여 건배!”경호원들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가주님, 그건 저희 의무입니다.”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래도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요.”그들의 존재는 나에게 어느 정도 안정감을 주었다.술잔을 비운 나는 목구멍이 뜨겁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머리가 어지러워질 때쯤 옆에 있던 욱현이 바로 이상함을 눈치채고는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63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예전의 나는 참으로 비참했다.지금도 예전과 다름없이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현정우에게 말했다.“여기서 기다려 주세요.”나는 눈 내리는 거리를 밟으며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길고 긴 골목은 새하얀 눈으로 가득했다.나는 예전에 그 가로등 아래까지 걸어가며 혼잣말로 한탄했다.“요즘 왜 이렇게 슬프지?”나는 눈을 감으며 울먹였다.“석지훈, 네가 내 믿음을 산산조각 냈어.”석지훈은 내가 힘들 게 다시 쌓아 올린 사랑에 대한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거기, 아가씨. 혼자야?”깜짝 놀라서 눈을 뜬 나는 놀라울 정도로 잘생긴 얼굴을 마주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왜 여기 있어?”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너 보고 싶어서.”내가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그는 내 옆에 따라붙으며 물었다.“나 싫어해?”사실 나는 그를 조금도 싫어하지 않았다.오히려 죽어가던 나를 구해줘서 감사하고 있었지만 그와 얽히고 싶지는 않았다.석지훈이 그를 변덕이 심하고 기분도 오락가락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안 그래도 불안정한 환경 속에 있는데 이런 사람과 엮여서 더 불안정해지고 싶지는 않았다.내가 그를 밀어내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수아야, 생일 축하해.”고현성을 제외하고 생일 축하한다고 직접 말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그리고 내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첫 축복이었다.그 순간 마음속의 강인함과 자제력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뭐가 그렇게 슬픈지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슬픔이 밀려왔다.소년은 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왜 울어?”‘내가 왜 울고 있을까?’“나도 모르겠어.”그는 나에게 부드럽게 물었다.“슬퍼?”“욱현아, 이번 생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야.”그는 단호하게 답했다.“네 인생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야.”그렇다. 이제 막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62화

    “기억하지. 석씨 가문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폐물일 뿐이잖아.”당황한 크리스는 말이 꼬이며 당황해서 물었다.“폐... 폐물?”나는 가볍게 비웃으며 조롱하듯 말했다.“아니면 뭐야? 그럼 폐물이 아니라 쓰레기야?”내 눈에 크리스는 그냥 쓸모없는 쓰레기일 뿐이고 또한 나의 수치였다.그는 분노에 찬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석지훈의 여자답게 만만하지 않네.”그는 내가 가장 듣기 싫은 이름을 언급했다.나는 잠시 침묵한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평온한 생활을 잘 즐겨봐. 설만 보내고 나면...”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자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타이탄은 떠돌이 개가 될 거야.”그는 웃으며 말했다.“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용기를 준 거야?”나는 비웃으며 대꾸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한편 다른 쪽에서는 크리스가 책을 읽고 있는 석지훈을 보며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네 여자 성격이 왜 이래? 혹시 아직도 원한을 품고 있는 거 아니야?”석지훈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원래 복수는 철저히 하는 사람이야.”원한을 잊지 않는 사람이어서 그녀는 고현성을 용서하지 않았고 또한 자신도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석지훈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석지훈이 책장을 넘기자 크리스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처음부터 친절하게 대해줄 걸 그랬어.”석지훈은 고개를 들어 그를 차갑게 바라보며 물었다.“수아한테 뭘 했는데?”크리스는 못된 생각을 품었던 자신의 과거를 직접 말할 생각이 없었다.석지훈이 알게 된다면 이 자리에서 죽으리라는 것은 뻔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크리스는 재빨리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말했다.“경기장에 밀어 넣었잖아.”석지훈은 순간 멈칫했다.그날 그는 그녀를 두 번이나 발로 찼다.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몰라 심히 걱정되었지만 지금 그는 궁지에 몰린 짐승과 같았다.원태웅은 아직 그의 행방을 찾지 못했는데 이는 원태웅의 행동이 느린 것이 아니라 타이탄이 그를 숨기기 위해 백 년의 기반을 망가뜨리기까지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61화

    ‘설마 나랑 석지훈 사이를 알고 있는...’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고정재에게서 답장이 왔다.[나에게 있어 우리 꼬마 아가씨는 가족이야. 앞으로도 평생 그럴 거야. 아무도 네 생일을 함께 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위해 연주해 줄게. 연주회가 끝나면 동성시로 가서 담현아랑 같이 새해 맞이하러 갈게.]‘고정재는 내가 석지훈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있네. 내 생각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네.’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고마워요.]나는 그가 이번 생에서 내게 준 따뜻함에 감사했고 내 곁에서 빈틈없이 나를 지켜준 것에 감사했다.고정재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사랑이 아닌 애정이 담긴 소중함만이 남아 있는 관계였다.연주회는 다음 날 오후에 열렸다.나의 휴식 시간과 딱 맞는 시간이어서 잠에서 깬 나는 특별히 밤하늘처럼 파란 드레스를 골랐다.드레스의 치맛자락은 땅에 닿았는데 하이힐을 신으니 발목까지 딱 맞았다.이 드레스를 입으면 마치 광활한 별하늘을 몸에 걸친 듯이 눈부시게 빛났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운성시에서 나는 언제나 정교하고 세련된 모습을 유지했다.특히 석지훈이 없는 운성시에서는 어느 자리에서도 항상 완벽히 아름답게 꾸몄는데 피곤한 삶이었다.최희연도 이전에 한 번 내게 물었었다.“이렇게 사는 거 힘들지 않아?”‘힘든가?’하지만 이런 것도 내가 선택한 삶일 뿐이었다.흰색 코트를 걸치고 나서자 현정우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가주님, 어디 가십니까?”“연주회 들으러 가요. 오늘은 동행하지 않아도 돼요.”현정우는 걱정하며 말을 이었다.“하지만...”현정우는 내 안전을 염려했다.“그렇다면 따라오세요.”“가주님께서는 저희를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가주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라도 생기시면 핸드폰에 있는 긴급 호출 장치를 사용하시면 됩니다.”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현정우는 나를 연주회장까지 데려다주었다.나는 입구에서 잠시 서 있다가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에 들어갔다.자리에 앉자마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60화

    석지훈이 직접 쓴 글씨체는 나에게 익숙했다.아래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우리가 약혼한 날이었다.석지훈은 나를 사랑했지만 그뿐이었다.그는 자기 어머니에게 굴복했다.비록 그가 받았던 스트레스를 알고 있었지만 용서하기는 어려웠다.오히려 모르는 상황에서 자궁에 손상을 준 행동으로 인해 나는 석지훈을 원망하고 있었다.너무도 절망적이었다.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은 나는 더는 읽고 싶지 않았다.나는 아파트로 돌아와 샤워한 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많은 일을 겪으면서 나는 여전히 내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어떻게 화를 억제하고 마음속 슬픔을 다스리는지에 대해서 말이다.하지만 감정을 억누를수록 마음은 점점 더 답답하고 힘들어졌다.결국 나는 잠을 설쳤다.[이전까지 다른 사람을 사랑한 적은 없었어. 네가 처음이야. 내가 미숙해서 네가 사랑을 그저 그런 것으로 생각하게 될까 봐 두려워.]석지훈이 남긴 글은 사랑 고백인 동시에 치명적인 독 같았다.책갈피에 적힌 글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우리의 사랑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깊은 한숨을 내쉰 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함승윤이 보내준 자료를 확인했다.조직 이름은 타이탄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이었으며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크리스와의 만남은 여전히 생생히 기억났다.‘내 인생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었어. 오만방자하게 아무나 괴롭힌다는 거지? 석씨 가문이 정말 그냥 이대로 넘어갈 거로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복수해야지. 평온한 설을 보내고 나면 그 뒤에는 처절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핸드폰을 내려놓은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가벼운 뇌진탕 후유증일 거로 생각한 나는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다시 누웠다.늦은 밤에도 나는 잠들지 못한 채 눈을 뜬 채로 날이 밝는 걸 지켜보았다.하늘이 완전히 밝아졌을 때야 겨우 잠이 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땐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비와 눈이 많은 운성시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59화

    「호밀밭의 파수꾼」책은 오래된 느낌이 들었다.책을 받아 첫 페이지를 펼치자 석지훈의 유려한 필체로 적힌 서명이 보였다.아래에는 20세기 초라고 시간이 표기되어 있었다.이 책은 그가 젊은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책이었다.책 중간에는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다.나는 책을 더 넘기는 대신 현정우에게 던지며 입을 열었다.“보관해 두세요.”석만호가 왜 나에게 이 책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한 이상 시간이 나면 한번 읽어볼 생각이었다.나는 현정우와 함께 연씨 별장에 들렀다.별장에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연시혁도 와 있었는데 어머니는 연시혁이 설을 함께 보내러 집에 왔다고 했다.연시혁은 마침내 연씨 가문을 자신의 집이라고 인정한 것이다.아버지는 내가 집에 온 것을 보고 매우 놀라며 물었다.“운성시에는 갑자기 어쩐 일이야? 3일 뒤면 네 25번째 생일이면서 설 전날인데 어떻게 보낼 예정이야? 지훈이가 생일 챙겨준대?”부모님 눈에 석지훈은 이미 예비 사위였고 내 미래의 남편이었다.부모님은 내 모든 일을 그가 나서서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잔혹했던 석지훈의 모습이 떠오르자 배가 점점 꼬이는 것처럼 아파진 나는 얼른 거짓말로 둘러댔다.“네. 핀란드에서 새해를 보내려고요. 그래서 설에는 함께 하지 못할 것 같아요.”곧 명절인 상황에 굳이 부모님께 나와 석지훈 사이에 발생한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편안히 새해를 맞이했으면 했다.어머니는 기대하며 물었다.“그럼 새해가 지나면 집에 올 거니?”내가 혼자 집에 온다면 어머니는 걱정하실 것이다.석지훈과의 관계도 끝났으니 어머니께 다른 예비 사위를 보여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그러면 어머니는 더 걱정하실 것이다.나는 또다시 하얀 거짓말을 했다.“요즘 너무 바빠요. 석씨 가문 일도 많아서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찾아뵐게요.”소파에 앉아 있던 연시혁이 갑자기 물었다.“언제 결혼해? 알아야 미리 축의금도 준비하지.”연시혁이 묻자 부모님도 동시에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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