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은 즉시 정은을 바라보았고, 정은은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서준은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잡혔다.진일은 계속 반항하려 했지만, 서준은 그의 손을 잡더니 그렇게 하지 말라는 눈짓을 보냈다.진일은 이해하지 못했다.서준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제 말 들어요, 안심해요.”곧 남봉수도 잡혔다.이현은 진영매를 안은 채 구석에 웅크리며 몸을 벌벌 떨었다.민지도 손이 꺾인 채 흙벽에 눌렸다.서지강은 냉소를 하며 정은에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꺼내.”정은은 뒤로 물러섰다.“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핸드폰 꺼내라고. 말 반복하게 하지 마!”정은은 차갑게 웃었다.“방금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내가 인터넷에 올리지 않고 가만히 영상만 찍었을 것 같아요?”“미친년! 이미 인터넷에 올린 거야?!”“맞아요.”서지강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올려도 상관없어. 영상일 뿐인데, 누구를 협박할 수 있겠어?”그는 건방지게 정은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쯧, 너 남진일 동창이야? J시에서 왔어? 여자친구야?”정은은 서지강의 느끼하고 옹졸한 눈빛에 속이 울렁였다.민지는 이 말을 듣자마자 자신이 어떻게 됐든 상관하지 않았고, 행여나 정은이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미친 자식! 저리 꺼져!”“킥...” 서지강은 고개를 돌려 냉소를 지었다.“네 처지를 보고 말하지 그래? 입도 참 싸네.”“아니면... 내가 이 여자한테 반해서 질투를 하는 거야? 야, 나도 안목이 까다로워서 암퇘지 같은 널 좋아할 리 없거든.”민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마을 어귀로 통하는 길을 바라보며 초조해 죽을 지경이었다.‘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이때 정은은 이미 남자에 의해 처마 밑으로 밀려났고, 몇 걸음 더 물러나면 벽에 닿게 된다.“너도 참, 이렇게 예쁘게 생겼는데 왜 남진일 같은 빈털터리에게 반한 거니? 너에게 옷을 사주고, 가방을 사주고, 널 데리고 쇼핑하고 밥 먹을 돈이 없잖아?”“너희 여자들은 너무 단순해, 저
재석이 손을 떼자, 서지강은 종이처럼 땅에 떨어졌다.그는 앞으로 걸어가더니 쪼그리고 앉아 있는 서지준의 다리를 바라보았다.“죽을 정도는 아니네.”말을 마치자, 재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심코’ 서지준의 상처를 발로 밟았다. 칼날은 더욱 안으로 파고들어갔다.“아...”서지준이 비명을 질렀다.멈췄던 피가 다시 밖으로 솟구쳤다.서지강이 부른 사람들은 이때 이미 현빈이 데려온 경호원들에게 제압되었다.“다들 가만히 있어!”서지준이 물었다.“너희들 누구야?! 감히 용남이 형을 건드리다니? 죽고 싶은 거지?!”그러나 아무도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자유를 되찾은 민지는 방금 자신을 붙잡은 깡패 앞으로 달려가더니 뺨을 한 대 내리쳤다.“죽고 싶어? 너 정말 남자야? 왜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든 건데!”그 깡패는 말문이 막혔다.‘그럼 왜 내 얼굴을 때려!’서준은 얼른 다가와 말렸다.“됐어, 네 손만 아플 거야.”“그래! 조 교수님과 심 대표님이 제때에 도착하셔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난 거기에 서서 얼마나 많은 먼지를 먹었을지도 몰라!”서준은 생각하다 그 깡패에게 따귀를 한 대 갈겼다.민지보다 훨씬 더 힘을 주어 소리도 무척 컸다.‘응?’민지는 어리둥절해졌다.물론 그 깡패도 멍해졌다.“넌 손대지 마, 내가 도와줄게.”“쮼, 너 나에게 정말 잘해 주는 것 같아.”“그걸 이제야 알았어?”“사실 전부터 발견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멋졌던 거야!”“아.”‘꽤 안목이 있네.’서준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재석과 현빈은 서지강을 처리한 다음, 동시에 정은을 향해 걸어가면서 또 동시에 입을 열었다.“괜찮아?”“다친 데는 없어?”정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괜찮아요. 이렇게 찾아와서 다행이에요.”그렇다, 정은은 두 사람이 찾아온 것에 대해 그리 놀라지 않았다.아침에 문자를 보낸지 얼마 안 됐을 때, 정은은 재석과 현빈의 답장을 받았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이미 밤새 비행기를 타고 대동리에 도착했으며, 곧 마을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두 사람은 7시 30분에 삼륜차에 올라탔다.그러나 현빈이 뜻밖에도 토를 하기 시작했다.재석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현빈은 생수로 양치질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이거 멀미 아니에요.”“그 빵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요.”재석이 대답했다. “아.”“나 하나도 안 어지러워요.”“멀미했다고 말한 적 없는데.”‘그런데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재석은 억울했지만 또 정말 웃고 싶었다.기사는 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멀미를 하면 창문 열어서 찬바람 좀 쐬면 돼.”“멀미 아니라고요!”기사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젊은이, 이게 뭐라고 발뺌을 하는 건데. 시내 사람들이 멀미했으면 했지, 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거야?”재석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전에 다른 도시 사람들을 태우신 적 있는 거예요?”“그럼! 엊그저께 젊은이가 몇 명이 찾아왔는데, 그 남자 아이의 반응이 지금 이 젊은이와 똑같아. 멀미 때문에 어지러워 죽겠는데도, 하나도 안 어지럽다고 고집을 부리잖아, 헤헤...”현빈도 뭔가를 알아차리며 똑바로 앉았다.“여자아이 둘, 남자아이 하나, 하백 마을의 남씨 집안에 찾아간 거죠?”“어? 아는 사이구나!”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재석과 현빈은 이 기회를 틈타 그에게 남씨 집안의 상황을 알아보았고, 말하는 사이, 서씨 형제에 대해 언급했다.기사는 순간 말투가 변하더니 모르는 척하기 시작했다.현빈은 지갑을 꺼냈다. 안에 은행카드가 가득했지만, 현금은 한 장도 없었다.괴로워할 때, 5만 원짜리 지폐 한 뭉치가 눈 앞에 나타났다. 그 손을 따라 위로 바라보니, 재석은 기사에게 전해주라며 눈짓했다.현빈은 재석의 가방을 훑어보며 묵묵히 돈을 받았다.‘다음에 나도 가방을 메겠어! 챙길 수 있는 거 다 챙겨야지!’현빈은 먼저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기사에게 건네주었다.“자, 형님.”이 호칭에 재석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현빈을 바라보았다.현빈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뭘 그렇게 놀라는 거예요?”재석은 확
현빈이 말했다.“이따가 마을 입구에서 내려줘요.”“어? 남씨 집안에 안 갈 거야?”...민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체구가 우람한 두 사내를 바라보았다.“그래서, 심 대표님은 사람을 찾으러 가신 거예요?”현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조 교수님은?’민지는 눈을 깜박거리며 의혹을 느꼈다.그러나 그녀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바로 그때, 방금 따귀를 두 대 맞은 깡패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너희들 도대체 뭐야? 눈치 있다면 빨리 우리 풀어줘!”민지가 말했다.“풀어줘? 꿈을 꾸는 거야 지금? 아니면 뺨을 몇 대 더 맞고 싶어?”서준은 바로 손을 들었다.그 깡패는 놀라서 목덜미를 움츠렸다. ‘이, 이 두 사람 대체 뭐야?! 왜 툭하면 손을 쓰는 거지!’“내... 내 뒤에 사람이 있는데, 너희들 감히 나를 건드리면, 우, 우리 형님이 제대로 복수를 할 거야!”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그리고 다시 서준을 향해 눈을 깜박였다. 두 사람은 함께 앞으로 걸어가더니 동시에 손을 들었다.짝, 찰싹, 짝짝짝.깡패는 맞아서 멍해졌고, 입가에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너, 너희들...”민지는 웃으며 말했다. “그 형님이 바로 올 거라면서? 궁금해서 시험해 봤어.”“나도 궁금해서.”‘이 사람들 정말 정신 나간 거 아니야!’“우리 형님은 용남이 형이야. 너희들 이제 끝났어! 끝났다고!”민지는 놀라서 말했다.“누구? 용남이 형?”깡패는 즉시 가슴을 폈다.“맞아! 무섭지? 흥, 이미 늦었어!”민지는 고개를 돌려 서준을 보았다.“쮼, 이 사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런 것 같아.”그러다 또 한마디 덧붙였다.“그래봤자 결국 잡혀갈 텐데.”이때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 서지강도 점차 정신을 차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비틀거리며 똑바로 섰다.“용남이 형님은 너희들 가만 두지 않을 거야!”말하면서 핸드폰을 흔들더니 의기양양하게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나는 이미 형님
이 사람이 바로 서지강이 말한 ‘용남이 형님’이었다.그가 온 것을 보고, 전에 쓰러진 깡패들도 덩달아 일어서더니 마용남의 뒤로 달려갔고, 고자질을 하기 시작했다...“형님!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지강과 지준을 다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저희들까지 때렸습니다!”“이 사람들을 단단히 혼내셔야 합니다!”“맞습니다! 저희를 때렸지만, 그것은 형님의 체면을 짓밟는 것입니다... 용남이 형, 절대로 넘어가실 수 없습니다!”“이 원수를 갚지 않으면, 우리 ‘마빡이'들은 또 어떡하겠습니까?”마용남은 이 말을 듣고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서지강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치 정은 그들이 제대로 얻어맞고, 자신도 제대로 분풀이 할 수 있다고 느꼈다.그러나 다음 순간, 펑.눈을 맞은 서지강은 완전히 멍해졌다.피투성이가 된 서지준도 피하지 못했고, 서지강을 때리던 주먹은 다시 손바닥으로 변하더니 깔끔하게 그의 얼굴에 떨어졌다.“형, 형님?!”두 사람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멍청이들!” 마용남은 때리고 난 뒤, 이어서 다른 몇 명의 깡패들을 바라보더니 주먹질과 발길질을 날렸다.“멍청이들!”“자기 주제도 모르고 감히 우리 정배 형님 앞에서 건방지게 굴다니!”욕을 마치자, 마용남은 대머리를 바라보며 알랑거리며 웃었다.“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다 이 못난 것들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대머리를 한 구정배는 이 말을 듣고, 차갑게 웃었다.“우리 용남이 정말 많이 컸네. 밖에서 이렇게 많은 수하들을 거두었다니, 또 뭐? 마빡이란 조직을 세웠다고? 이제 스스로 맏이가 되려는 거야?”“좋네, 젊은이들에게 생각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야! 과감하게 싸워야 잘 될 수 있지. 모두들 앞으로 용남이게 잘 좀 배워...”마용남은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얼른 허리를 굽혀 사죄했다.“아닙니다, 형님, 오해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제 수하이고, 제 수하이면 다 형님의
“괜찮은 사람들이야.” 현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습니다.”그 경호원들은 구정배가 현빈에게 빌려준 사람이었다.서지강과 서지준은 눈을 마주쳤고, 두 형제의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두 사람이 몰래 도망가려고 할 때, 구정배의 사람들은 일찍이 알아차렸는지, 즉시 사람을 붙잡아 현빈 앞으로 데려갔다.“심 대표님은 어떻게 해결하고 싶으신 거죠?”현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네 사람이니 당연히 네 마음대로 해야지.”구정배는 두 사람을 훑어보더니 말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그럼... 두 사람 각각 팔 하나 부러뜨려.”“형님!”“살려주세요!”“저희는 이분이 형님과 아는 사이란 것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이미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저희가 멍청해서 그런 것이니 제발 저와 제 동생을 살려주세요, 제발!”두 사람은 바로 절을 했다.구정배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고 부하들에게 손짓했다.바로 이때, 재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런 일은 돌아가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사람 패고 죽이는 일은 남의 집 앞에서 하지 말아야죠.”모두들 그제야 자신이 아직 진일네 집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구정배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누군가가 서씨 형제를 끌고 갔다.서지강과 서지준은 미처 한숨도 돌리지 못했다. 이번에 끌려가면, 두 사람은 틀림없이 끝장날 것이다.서지강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잠깐만요! 저... 저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그래, 경찰에 신고해야지!’“이 사람들이 저희 형제 둘을 때렸어요. 저희 몸의 상처가 바로 증거예요! 지준아 얼른 경찰서에 전화해!”구정배는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그제야 서지강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은근히 웃으며 마용남에게 말했다.“생각이 좀 있는 아이네. 하지만 그리 똑똑한 편은 아니야.”마용남은 무척 난처해졌다.서지준은 이미 경찰에 신고했다.“맞아요, 하백 마을 남진일의 집 앞이에요.”구정배는 웃으며 현빈을 바라보았다.“심 대표님, 보시다시피, 제가 처리하고 싶지 않는
아니나 다를까.앞장선 경찰은 재석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저희는 이 두 사람을 먼저 데려가겠습니다.”“그래요. 그리고 두 사람의 소변 검사까지 해보는 게 좋을 거예요.”“안심하세요, 저희도 다 압니다.”서씨 형제는 안색이 돌변했고, 그제야 큰일났다는 것을 깨달았다.경찰차는 급하게 떠났다.현빈은 은근히 비웃었다.“경찰들이 이렇게 빨리 출동하는 거 처음인데.”재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민지는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그제야 알아차렸다.‘교수님도 도움 청하시느라 지각하셨구나.’현빈은 조폭을, 재석은 경찰을 불렀다.‘이렇게 되면, 서씨 형제들도 더 이상 방법이 없겠지.’...저녁 무렵, 진일네는 마치 설을 보내는 것처럼 떠들썩했다.남봉수는 오후부터 바삐 돌아치기 시작했다. 닭과 오리를 잡고, 물고기를 손질했다.집안의 모든 재료를 전부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모양이었다.심지어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둔 술까지 열었다.이것은 원래 이현이 결혼할 때 꺼내 마시려고 했던 술이었다.사람들은 저마다 나서서 남봉수를 말렸지만, 그는 전혀 듣지 않았다.오후부터 주방에 들어갔고, 해가 저물어갈 때에야 주방에서 나와 웃으며 사람들을 불렀다.“다들 와서 앉게, 음식 다 됐거든!”사람들은 식탁 앞에 앉았다.설을 쇨 때에야 쓸 수 있는 큰 식탁에는, 생선이며 고기들이 가득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보지 못한 요리들이 놓여 있었다.민지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그녀는 이미 주방에서 전해오는 향기를 맡았는데, 그 맵고 향기로운 냄새가 줄곧 콧구멍을 파고들었다.남봉수가 말했다.“현지의 특색 요리를 좀 만들었어. 고추를 많이 넣지 않았으니 그렇게 맵지 않을 거야. 너희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인 사람은 역시 민지였다.“맛있어요! 정말 너무 맛있어요!”민지는 음식이 아주 매울 줄 알았다.전에 매운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남봉수가 만든 음식은 입에 들어가자마
재석도 흠칫 놀란 듯 했다.눈빛이 교착된 사이, 정은은 갑자기 환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에 당황한 재석은 시선을 떼지 못했고, 원래 평온하던 마음조차 저도 모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에헴!” 현빈은 갑자기 기침을 심하게 했다.정은과 재석은 동시에 정신을 차리더니 시선을 돌렸다.‘흥! 나 몰래 시선을 교환하다니.’민지는 걱정돼서 현빈에게 물었다.“심 대표님, 왜 그러세요?”서준은 미처 민지를 막지 못했다. 식탁 아래서 그녀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좀 매워서.”“네? 이게 매워요? 난 왜 하나도 안 매운 거 같죠? 그럼 빨리 물 좀 마셔요.”“음.”‘정말 다정한 아이군!’민지가 물었다. “쮼, 너 방금 왜 내 옷을 잡은 거야? 무슨 일 있어?”서준은 말문이 막혔다.“아니야. 그럴 리가.”‘네 마음대로 해라.’...다 먹고 남봉수는 치우고 설거지하며 주방 청소하느라 바빴다.민지는 거실 의자에 앉았는데, 발 옆에 숯을 담은 대야 두 개가 있었다.그녀가 춥다는 것을 알고 이현이 특별히 민지를 위해 불을 지핀 다음 가져왔다.“민지 언니, 이거 먼저 써요, 이따가 제가 다시 숯 좀 넣을게요.”“응, 고마워 이현아, 너 너무 착하다!”이현은 부끄러워하며 침실로 달려갔다.민지는 따뜻한 숯탄 덕분에 더 이상 춥지 않았다.주방 벽에는 남봉수의 바쁘게 움직이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는 피곤하지도 않은 듯 이리저리 왔다갔다했고, 민지는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좀 멍해졌다.‘남자들도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일 수 있구나, 처음 봐. 남자들이 주방에 들어서면 안 된다는 것도 다 뻥이었어.’더욱 놀라운 것은 진영매와 진일 남매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마치 이미 이런 장면에 습관된 것 같았다.서준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민지는 턱을 짚었다.“나도 앞으로 밥 잘 하는 남편 찾을 거야! 그럼 난 손을 쓸 필요도 없고, 바깥에 나갈 필요도 없이 매일 맛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이춘재와 재석은 여전히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바둑알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정은은 의심이 생겼다.‘나 정말 잠 잔 거 맞아?’“정은아, 일어났어? 빨리 와서 나 좀 도와줘!” 이춘재는 정은을 향해 손짓했다.“재석이 정말 대단해. 날 두 판이나 이겼어!”재석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할아버지도 저를 이기셨잖아요?”“그래도 네가 이긴 횟수가 더 많지!”정은은 다가가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저도 바둑을 잘 하는 편은 아닌데, 그냥 좀 볼 줄 알아요.”“넌 똑똑히 볼 수 있을 거야! 정은아, 이것 좀 봐줘, 내가 여기에 바둑알을 두면 이길 수 있을까?”“어디 보자...”정은은 진지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사실 여긴...”“정은아.” 재석이 갑자기 입을 열어 정은의 말을 끊었다.“바둑을 볼 때 말이 없어야 돼.”정은은 즉시 소리를 멈추며 이춘재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 저도 도와드리고 싶지 않는 게 아니에요.’이춘재는 흠칫 놀랐다.‘재석이 이 자식 좀 봐! 어르신한테 양보할 줄도 모르다니!’하지만 이춘재는 이런 솔직한 사람과 바둑을 두기를 좋아했다.‘양보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까놓고 말하면 다 날 속이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재석은 승승장구하는 기세를 보였다.이춘재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졌군, 재석아, 너도 실력이 좀 있네!”“과찬이세요.”마침 이때 현빈이 위층에서 내려왔다.“내가 조 교수와 함께 한판 둘까요?”재석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영광이죠.”두 사람이 눈빛을 마주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춘재는 자리를 내주며 현빈을 앉았다.재석이 물었다.“흑알 아니면 백알 둘래요?”흑알은 먼저 낼 수 있었기에 우세가 있었다.현빈은 앞에 있던 백알을 집어 들었다.“그냥 이렇게 하죠. 번거롭게 바꾸지 말고.”이춘재는 전에 백알을 두었고, 현빈이 그의 자리에 앉았으니 당연히 백알을 둬야 했다.‘그런데 꼭 이렇게 물어보다니, 허.
그러나 돌이켜보면, 현빈은 정은의 오빠였고, 자신의 의도를 간파하여 기분이 불쾌한 것도 정상적이었다.‘자기 여동생을 감싸는 것도 당연하지...’은혁은 얼른 미소를 지었다.“현빈이 형 말 맞네요. 초대장도 다 보냈으니 먼저 가볼게요.”은혁은 눈치 있게 작별을 고했다.봉수진은 은혁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이때 진일도 떠나려 했다.“할머니의 초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음식도 맛있었고 딸기도 아주 달콤했어요. 저도 이만 돌아갈게요.”“어? 남아서 저녁 안 먹을래?”“아니에요.” 진일은 얼른 손을 흔들었다.“저... 저 아직 일이 있어서요.”“그래, 그럼 앞으로 자주 와!”“네.”진일은 몸을 돌려 신발을 갈아 신었다.정은은 기사에게 분부했다.“기사 아저씨, 진일 선배 좀 데려다 주세요.”“아니야, 나 혼자 실험실로 돌아가면 돼.”“누가 실험실로 데려다준다고 했죠?”“어?”“아저씨, 선배를 서비대학교 대문까지 데려다 주세요. 그리고 선배가 들어가는 것까지 지켜보시고요.”‘실험실로 돌아가? 계속 밤새워 일하려고? 그런 생각 하지도 마!’진일은 반박을 하지 못했다.풀이 죽은 채로 나온 다음 조용히 차 안으로 들어갔다.현빈은 속으로 생각했다.‘남진일은 눈치가 그렇게 빠른데, 이 사람은 왜 아직도 여기에 서 있는 거지? 정말 눈에 거슬리네.’“조 교수님은 요즘 아주 한가하나 봐요?”사람을 내쫓는 의미가 분명했다.재석은 알아듣지 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프로젝트가 다 끝나서 별로 바쁘지 않아요.”“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교수님 집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현빈은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재석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먼저 돌아갈게요. 마침 냉장고에 남은 음식이 좀 있어서 저녁에 데워 먹으면 딱이네요. 할머니, 오늘 수고하셨어요. 요즘 환절기에 몸 조심하시고, 전 다음에 또 찾아뵐게요.”“왜 가려고 그래!” 봉수진은 이 말을 듣자마자 재석을 보내려 하지 않았다.“남은 음식을 왜 먹어? 우리 집에 먹을 거
“네.”얼마 지나지 않아 정은이 거실로 들어왔다.“할머니, 절 부르셨어요?”“정은아, 소개해주지. 이 아이는 장씨 가문의 도련님 장은혁이라고, 네 할아버지 생신 잔치에서 본 적이 있을 거야.”“안녕하세요.” 정은은 먼저 인사를 했다.그녀는 확실히 은혁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은혁은 현장에서 이춘재에게 마술을 선보였는데, 사과 하나로 두 마디의 축하말을 변했던 것이다.하나는 이춘재, 다른 하나는 봉수진에게 줬다.확실히 신경을 써서 준비한 선물이었다.“안녕하세요!” 은혁은 정은이 들어오는 순간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기대하는 동시에 또 긴장을 하고 있어 동작이 많이 뻣뻣했다.이때 정은이 먼저 자신과 인사를 하자, 은혁은 더욱 긴장해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봉수진이 입을 열었다.“은혁이가 너에게 묻고 싶은 일이 좀 있다네.”정은은 은혁을 바라보았다.은혁은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톡 좀 추가할 수 있어요? 우리 동생에게 알려주려고요. 그럼 더 편리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잖아요. 안심해요, 우리 여동생은 절대로 정은 씨를 방해하지 않을 거예요.”말을 이렇게까지 한 이상, 정은은 핸드폰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친구를 추가한 후, 은혁은 즉시 정은의 톡을 사촌 동생에게 알려주었다.곧 그 사촌 동생의 친구 추가 신청이 떴다.보아하니 정말 사촌 동생을 위해 정은을 추가한 것 같다.정은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난 대부분 시간을 실험실에서 보내서, 바쁘면 핸드폰을 볼 겨를이 없거든요. 그래서 제때에 답장을 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괜찮아요! 정은 씨는 볼일부터 챙기고, 시간이 날 때 답장을 하면 돼요. 그 실험실은... 학교 실험실인가요?”“아니요.”그렇게 화제는 또 무한 실험실로 되었고, 실험실이 어떻게 왔는지까지 설명해야 했다.은혁은 질문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이 질문이 끝나면 또 다음 질문이 있었다...정은은 예의상 참을성 있게 대답했다.이때, 기다리다 지친 재석과 현빈은 더 이상 가만히
재석은 어이가 없었다. ‘정말 유치해.’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난 달콤한 것만 골라서 땄는데... 운이 나빠서 신 것을 먹었나?’재석과 현빈은 딸기 두 바구니나 땄고, 마지막에 모두 정은에게 주었다.잘 포장한 후, 세 사람은 되돌아갔는데, 진일과 봉수진이 멀지 않은 곳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가까이 다가가니, 진일은 작은 호미를 들고 흙을 매고 있었다. “딸기는 토양에 대한 요구가 엄격하지 않지만, 비옥하고 푸석푸석하며 배수가 좋은 모래땅이 가장 좋고, 수소이온 농도지수가 5.5~6.5이면 가장 적합해요. 지금 이런 토양도 사실 괜찮지만, 배수성은 조금 떨어져서...”“어쩐지 전에 뿌리가 이렇게 많이 썩었더라니.” 봉수진은 그제야 깨달은 듯했다.“전에 이 흙 살 때, 그 사람은 이게 모래땅이라고 그렇게 맹세했는데, 뜻밖에도 날 속였던 것이었어! 진일아, 너 예전에 딸기를 재배한 적 있는 거야? 어쩜 그렇게 잘 알아.”“저희 집은 재배한 적이 없는데, 전에 이웃이 딸기를 심은 적 있었어요. 그리고 책까지 샀길래 저도 빌려서 좀 봤고요.”“아, 그렇구나... 호미를 이렇게 능숙하게 쓰는 걸 보니 평소에 농사일을 자주 도운 건가?”“네, 저희 어머니는 몸이 안 좋으시거든요. 아버지 혼자서 하시면 너무 힘드시니, 봄에 심고 가을에 수확하는 일 모두 도왔죠.”“정말 좋은 아이구나...”봉수진은 예리해서, 진일이 문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 아이의 집안 조건이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진일의 말을 듣고, 또 손가락에 있는 두꺼운 고치를 보니 봉수진은 마음속으로 탄식을 했다.바로 그때, 집사가 다가오더니 누군가 찾아왔다고 전했다.봉수진은 의아해했다. “누구지?”“장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 같아요.”‘장씨 가문?’봉수진은 눈살을 찌푸렸다.두 집안은 친분이 있었고, 이춘재의 생신 날에 장씨 가문 일가족 모두 왔었다.이 작은 도련님은 그의 아버지에게 이끌려 이춘재와 봉수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정은 생각뿐이었다.가정부가 와서 현빈을 부를 때, 그는 마침 서재에서 나왔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정은이 오늘 온다는 소식을 들은 현빈은 특별히 회사에 가지 않고 이원에 왔다.딱 여기서 정은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식탁으로 가 보니, 확실히 정은을 보았지만 기뻐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옆에 있는 재석과 진일을 보았다.현빈은 웃음이 굳어지며 표정이 축 쳐졌다.“조 교수님도 왔어요?”재석은 고개를 들어 웃음을 머금었다.“네, 정은이 초대를 해서 거절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리고 한동안 어르신들을 뵈러 오지 않아서 이렇게 왔어요.”정은이 초대했다는 말은 칼날처럼 현빈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현빈은 지금 아파 죽을 것 같았다.봉수진이 말했다. “현빈아, 어서 앉아서 밥 먹어.”“네.”정은의 왼쪽은 봉수진이었고, 오른쪽은 재석이었다. 지금 식탁에는 마지막 한 자리가 남았다.현빈은 그녀 맞은편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밥을 먹는 동안, 봉수진은 열심히 정은 그들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진일은 산처럼 쌓인 고기와 요리를 보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그냥 먹자. 어르신의 호의를 거절할 순 없잖아!’재석도 마찬가지였지만, 진일보다 좀 더 똑똑했다. 그는 남이 쓰지 않는 젓가락을 들어 봉수진에게 음식을 집어주기 시작했다.그렇게 봉수진은 사양하면서 음식을 먹었고, 더 이상 그들에게 음식을 집어줄 겨를이 없었다.정은은 묵묵히 재석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물리학자의 머리는 참 좋다니깐.’식사를 마친 후, 봉수진은 신이 나서 사람들을 데리고 딸기밭으로 갔다.진일이 문에 들어섰을 때 본 그 비닐하우스는 바로 딸기밭이었다.그리고 지금은 마침 딸기가 익는 계절이었다.“잘 열렸네! 크고 또 빨갛고,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재배한 것이니, 농약도 치지 않았어. 깨끗하고 싱싱해서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지.”“이따가 너희들 바구니 하나 들고 실컷 따. 그리고 돌아가서 먹어. 실험실에도 좀 가져가, 어차피 냉장고 있잖아.
정은은 만약 핑계를 찾아 진일을 불러내지 않는다면, 그는 하루 종일 실험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다 또 밤을 새우겠지. 자신이 정말 슈퍼맨이라고 생각하는 거야?’‘이틀을 꼬박 새웠는데, 잠도 겨우 몇 시간밖에 자지 않다니.’‘지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일하려고?’정은은 진일의 이런 스케줄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진일이 열심히 노력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자신의 건강을 뭘로 보고!’“뭐하는 거예요? 빨리 씻고 나와요. 나와 교수님은 문 앞에서 기다릴게요.”말을 마치자, 정은은 재석과 함께 나갔다.진일을 제자리에 서서 멍해졌다.‘아니... 밥을 먹자고? 그것도 정은이의 집에서?’정은과 재석을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 진일은 5분만에 정리하고 나왔다.사실 세수를 한 다음, 실험 가운을 갈아입었을 뿐이었다.그는 머리도 빗지 못한 채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타났다.그래도 나름 괜찮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일부러 이런 헤어스타일을 한 것인 줄 알 것이다.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었다.진일은 이렇게 멍하게 정은의 조수석에 올라탔다.재석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진일을 바라본 후, 자신의 차 문을 열었다.‘아, 내가 교수님의 차에 올라탔어야 했나?’30분 후, 차가 멈추었다.진일은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 그리고 얼떨결에 정은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의 집을 본 순간, 진일은 놀라 졸음이 싹 가셨다.‘이 집... 너무 큰데?’인테리어가 어떤 스타일인지 몰랐지만, 유난히 아름다웠고, 또 하나의 큰 화원이 있었다.화원을 지나갈 때, 진일은 멀지 않은 곳에 뜻밖에도 채소밭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더 먼 곳을 바라보니 뜻밖에도 비닐하우스가 있었다.“정, 정은아, 우리 밥 먹으러 가는 거 아니었어?”‘그런데 이 큰 별장에 온 이유가 뭐지?’진일의 말이 떨어진 순간, 안에서 엔진 소리를 들은 봉수진이 웃으며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정은아, 왔어!”이어 재석과 진일을 바라보았다.봉수진은
그렇게 정은은 이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할머니, 저...”[당신, 가서 불 좀 봐봐요. 이거 세 시간 끓였는데, 조금만 더 졸여야 돼요. 여긴 너무 시끄러우니 나 밖에 나가서 정은에게 전화할게요...]봉수진은 거실로 나왔는지, 환풍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정은아, 지금 잘 들려? 방금 뭐라고 했어?]“아무것도 아니에요... 제시간에 도착할게요. 맛있는 음식 많이 만들어주시느라 수고하셨어요.”[수고는 무슨! 하나도 힘들지 않아!]봉수진은 즐겁게 전화를 끊은 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정은은 통화를 끝낸 뒤 즉시 재석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시간이 아직 이르니까, 선배님은 아직 출발하지 않았겠지?’잠시 후, 재석이 전화를 받았다.[정은아?]“선배님, 미안해요. 오늘 아마도...”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블릿에서 출입 신청에 관한 알림이 울렸고, 문밖 카메라에 찍힌 화면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재석이었다.[정은아, 나 지금 밖에 있는데, 출입 신청 받았어?]‘선배님 너무 일찍 왔잖아!’재석은 들어온 후, 정은이 실험 구역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 실험대도 깨끗이 정리되었다.“선배님, 미안해요...”“왜? 갑자기 왜 사과를 하는 거지?” 재석은 조금 놀랐다.“그냥... 할머니께서 오늘 집에 가서 밥을 먹으라고 부르셨거든요. 전에 약속했는데 내가 깜박했어요. 그래서... 미안해요.”“오늘은 선배님과 같이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방금 전화해서 선배님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재석은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반응했다.“이게 뭐라고 이렇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거야? 집에 가서 할머니와 함께 있어줘, 나 혼자 먹어도 돼.”재석이 동료, 친구들과의 회식을 밀고 특별히 자신을 찾아와 점심을 먹었는데, 결국 자신까지 거절한 것을 생각하니 정은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선배님, 나와 같이 이원에 가서 밥 먹을래요?”어차피 이춘재와 봉수진도 재석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인상도 매우 좋아서 틀림
남자는 멈칫하더니 이내 웃음을 지었다.“왜 그렇게 묻는 거야?”정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냥 선배님인 것 같아서요. 정말인가요?”한참 후, 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응.”정은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그럴 줄 알았어요... 어쩐지 그때 좀 더 기다리라고 했더라니, 진작에 이런 생각을 했던 거였네요?”“생각해 봤지만,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어.”그래서 재석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장담할 수 없는 일을 말해서 남에게 희망을 주었다가, 실패하면 괜히 실망만 느끼게 할 뿐이었다.“나도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정은은 눈을 깜박였다.“뭔데요?”“왜 심 대표가 아니라 나라고 생각했던 거야? 아니면 그 사람에게도 물어본 거야?”“아니요. 물어본 적 없어요.”“그럼 왜 나란걸 확신할 거지?”정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때 두 사람은 이미 계단을 다 올라 각자의 집 앞에 멈추었다.“왜냐하면...”그녀는 재석의 눈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선배가 진일 선배의 가정이 어렵단 것을 알아볼 수 있고, 마을 사람들의 우매함을 감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선배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으니까요.”현빈도 그런 진일네의 형편을 보며 진일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줬다.그러나 그는 단지 알려줬을 뿐, 진일의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빈에게 있어, 이건 다른 사람의 운명이기 때문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진일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후, 현빈은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재석은 달랐다.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일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이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정은이 진일을 도와 ‘돈'이라는 난제를 해결했지만, 하백 마을의 현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뉴스에서는 정부가 도로 건설에 투자해 마을 교통을 정돈하고 농수산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것도 선배님이 제안한 건가요?”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심지어 점심 식사까지 대충 했다.민지가 말했다.“넌 몰라.”서준은 영문을 몰랐다.“너무 스트레스 받아.”“그, 그럼 어떡하지?” 민지가 정말 울 것 같은 것을 보고 서준은 갑자기 당황해졌다.“잠을 잘 자지도 못했단 말이야... 아침 달리기 시간을 10분 줄일 수 없을까? 흑흑...”“응.”‘어? 이렇게 흔쾌히 동의한 거야? 10분이 너무 적은 건가?’서준은 마치 민지의 꿍꿍이를 간파한 것 같았다.“더 이상은 안 돼.”“알았어.”그러나 그 순간, 민지의 눈에 비친 눈물은 거짓이 아니었다.그녀는 정말 울고 싶었다.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민지도 단지 그 순간 약간 멘붕을 느꼈을 뿐이었다.민지는 곧 감정을 추스렀다.“일하자!”저녁 무렵, 민지는 임무를 완수하고 바로 기지개를 켜며 한숨을 돌렸다.그녀가 예상한 것보다 30분 빨랐다.민지는 아주 만족했다.“쮼, 넌 끝났니?”“곧 끝날 거야.”“우리 이따가 시내에 가서 영화 볼까?”서준은 멍하니 있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나랑 같이 영화를 보자고?!’서준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서준이 대답하지 않자, 민지는 다시 한번 물었다.“갈거야?”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응!”민지는 웃으며 고개를 돌려 정은을 초대했다.“정은 언니, 어제 새 코미디 영화가 개봉됐어요. 꽤 괜찮은 것 같은데, 우리 같이 보러 갈까요?”‘아, 나만 초대한 게 아니구나...’정은은 손을 흔들었다.“난 아직 좀 더 있어야 끝나니까 너희들끼리 가.”민지도 정은을 정말 불러낼 생각을 하지 않아, 실망하지 않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그래요, 그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영화 다 보면 언니에게 배달해 줄게요.”“아니야, 난 실험이 끝나는 대로 바로 갈 거야.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너희들 얼른 가. 다시 돌아오면 시간이 너무 늦잖아.”“그래요,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마요!”“응!”민지와 서준이 떠난 후, 정은은 30분 후에야 실험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