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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작가: 십일
정은은 학교 다닐 때, 2층의 한식을 가장 좋아했다. 밥을 떠 주는 아주머니는 동그란 얼굴에 웃으면 무척 상냥해 보였고, 매번 그녀를 볼 때마다 관심을 가지며 간단하게 인사를 한 다음, 고기 한가득 담아주었다.

멀리 있어도 정은은 단번에 그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여전히 예전과 다름이 없으시네. 졸업한 지 3년이나 되었는데, 아주머니는 아직도 날 기억하고 계실까?’

정은은 뒤에서 줄을 섰다. 아주머니는 밥을 떠주느라 바빴기에 그녀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식판의 무게를 느끼자, 정은은 활짝 웃었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재석이 돈을 낸 다음, 두 사람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오랜만에 먹는 거지만, 맛은 예전과 똑같네요.”

셰프의 솜씨는 3년 전보다 못하긴커녕 심지어 많이 진보했다.

정은은 예전을 떠올렸다.

“대학 때, 난 늘 실험을 하느라 점심을 깜박했거든요. 실험실에서 나오면 시간은 거의 2시가 다 되어 갔기에, 음식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 아주머니는 매번 나에게 닭다리를 하나 남겨주시더라고요.”

재석은 방금 정은의 뒤에서 줄을 섰는데, 그 아주머니가 그녀를 본 순간, 짜증 대신 웃음을 지은 것을 발견했다.

정은은 식판에 있는 밥을 보면서 갑자기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사실 나와 룸메이트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거든요. 수민과 오미선 교수님 외에, 식당 아주머니는 가장 친절하신 분이셨어요. 이젠 선배님도 내게 있어 무척 고마운 사람이에요.”

재석은 멈칫했다.

정은은 계속 말했다.

“그래도 학교가 좋네요. 환경이 조용하고 인간관계도 단순해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죠. 어쩌면 석사 입학을 준비하는 일이 내가 한 결정 중 가장 옳은 선택이었을지도 몰라요.”

...

밥을 먹은 후, 두 사람은 즉시 돌아가지 않고, 학교 안에서 돌아다녔다.

자갈길을 따라 포도나무를 지나니, 한바탕 맑은 바람이 불어왔다. 멀리서 호수의 물결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정은은 그들이 어느새 학교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인 미름 호수에 도착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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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쏘 (쏘쏘)
상의가 갈기갈기 찢어졌다면서 너무 돌아다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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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24화

    시선이 마주치자, 도겸의 그윽한 눈빛이 정은의 눈에 들어왔다.“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넌 잘 알고 있을 텐데.”정은은 눈썹을 찡그렸다.“아주 간단해, 내게 돌아와. 동의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난 네가 원하는 것 모두 줄 수 있어.”“그건 불가능해!”정은은 깔끔하게 거절했다.“정은아...”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지금 마음속으로 분명히 내가 비열하고 파렴치하다고 욕하고 있겠지. 그러나 난 정말 네가 없으면 안 돼...”“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는 건 어때? 약속할게, 지금부터 나에게 여자라곤 너 하나뿐이야. 네가 싫어하는 것들 내가 모두 고칠게. 그러니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 응?”말이 끝나자 도겸은 다급하게 정은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정하게 피했다.“난 네가 한 말을 한 글자도 믿지 않아. 네 요구에 더욱 승낙하지 않을 거고.”그녀는 서류와 펜을 거두었다.“오늘은 내가 잘못 찾아왔어. 네가 사인하고 싶지 않은 이상, 나도 더 강요하고 싶지 않아.”말을 마치고 정은은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발걸음은 급하면서도 빨랐다.마음속으로 이미 도겸에게 아무런 희망도 품지 않았지만, 그런 말을 들은 후에 정은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이 지경으로 파렴치하다는 것에 엄청 놀랐다.레스토랑을 나온 정은은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다만 문을 열고 앉기도 전에, 쫓아온 남자는 강경하게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뒤로 당겼다.기사는 이 상황을 보고, 두 사람에게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바로 떠났다.“지금 뭐 하는 짓이야? 강도겸!”“말을 마치자마자 날 혼자 내버려두고 떠나다니. 난 매번 네가 떠나는 뒷모습밖에 볼 수밖에 없었어. 정은아, 넌 왜 날 이토록 괴롭히는 건데!”“그래서? 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 강도겸 도련님은 영원히 무고하고 영원히 당당한 거야? 집에 돌아가, 강도겸. 네 어머니를 찾아가라고. 그분은 네 성질을 받아주시겠지만, 난 그럴 의무가 없어!”남자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정은의 손목을 꽉 잡았다. 그리고 숨을 깊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23화

    “넌 스테이크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썰기가 귀찮아서 줄곧 안 먹었잖아. 그 이후로 양식을 먹을 때마다 내가 썰어줬고.”정은은 잘게 썬 스테이크를 보면서 표정이 담담했다. 그녀는 오늘 음식을 먹기 위해서 온 게 아니었기에,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은 이미 그녀의 한계에 이르렀다.이번에 정은은 더 이상 남자에게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이 온 이유를 설명했다.“지금 수속은 거의 다 준비됐는데, 네 동의서가 필요해. 오늘 그 동의서 가지고 왔으니 위에 사인해 줄 순 없어?”도겸의 미소는 점차 사라졌다.정은을 바라보는 눈빛도 기쁨으로부터 냉정함, 그리고 실의에 빠졌다.“나랑 밥 한 끼 먹는 게 그렇게 어려워?”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다.“왜 굳이 이럴 때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거야?”정은은 영문을 몰랐다.“네가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했잖아? 지금 밥을 먹으면서 또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다니. 넌 자신이 한 말을 이미 잊어버린 거야?”남자는 말문이 막히더니 칼과 포크를 내려놓았다.“얘기하자고?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정은은 저도 모르게 똑바로 앉았다.도겸은 정은이 꺼낸 서류와 펜을 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만약 이 동의서 때문이 아니라면, 넌 오늘 날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그녀는 사실대로 말했다. “응.”“허... 너에게 있어 나도 단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 거야? 사인을 해주면 각자의 인생을 살자 이건가?”정은의 말투는 평온했다.“우린 이미 각자의 길을 걸었고, 이제야 갈라선 게 아니잖아.”“만약 내가 오늘 사인하지 않겠다면?” 도겸은 또박또박 말하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정은은 화를 내지 않았고 심지어 아무런 불만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오직 의혹뿐이었고, 도겸이 그저 낯설다고 느낄 뿐이었다.“그 땅은 이미 나에게 증여했고, 계약서에도 이미 사인했어. 그런데 왜 굳이 동의서를 붙잡고 늘어놓는 거야?”“후회했으니까.”헤어지자고 말한 것을 후회했고, 정은을 놓아준 것을 후회했으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22화

    정은은 정신을 차리며 몸을 돌렸다.도겸은 양복 차림을 하고 있었고, 반듯하지만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는데, 얼굴은 조금 움푹 들어갔다.그녀가 남자를 훑어보는 동시에 도겸도 탐욕스럽게 정은을 주시하고 있었다.베이지색의 니트, 검은색 바지, 카키색 트렌치코트.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닿았고, 염색을 하지도 파마를 하지도 않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늘어졌다.그리고 하얀 색 운동화는 심플하면서도 수수했다.“안녕.” 정은은 도겸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먼저 입을 열어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다정했던 연인이 ‘안녕’이라는 말로 오프닝을 하다니.그 순간, 도겸은 마치 토르의 망치에 맞은 것 같았다.“정은아, 우리 사이에 굳이 인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정은은 웃으며 말을 받지 않았다.도겸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지만, 그녀를 따라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무슨 일 있어서 찾아온 거야?”“응.” 정은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들어가서 얘기할까?”“좋아.”정은은 사무실로 들어갔다.도겸은 그녀의 뒤를 따라갔는데, 들어갈 때 문을 닫으며 바깥의 비서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차단했다.“임 비서님! 이 미녀는 누구예요? 왜 여태껏 본 적이 없죠? 대표님과 무슨 얘기를 하시려는 거예요?”말하는 사람은 새로 온 지 두 달도 안 된 여 비서였다.전에 비행기표를 잘못 예약했던 비서는 진작에 잘렸다.임태명은 눈살을 찌푸렸다.“할 일 다 했어? 배워야 할 것은 다 배운 거야? 질문이 그렇게 많으면 비서로 일하지 말고 기자가 되지 그래?”여 비서는 미소가 굳어졌다.“죄송합니다. 그냥 좀 궁금해서...”태명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너희들도 마찬가지야!”모두들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시선을 돌렸다.태명은 안색이 더욱 보기 흉해졌다.“너희들 중 들어온지 몇 년이나 된 사람도 있고, 갓 온지 얼마 안 되는 신인도 있어. 온 기간이 길든 짧든, 경력이 있든 없든, 여기에서 일할 거면 단단히 기억해...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말고, 보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21화

    “네! 지금 바로...”“아니야, 나 혼자 갈게.”...정은은 비서의 테이블 옆에 서 있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 큰 창문이 있었다.그녀는 창문 앞으로 걸어가서 아래의 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앞은 번화한 상가, 좌우 양쪽은 고급 오피스 빌딩, 그리고 멀리 내다보면 강이 보였다.정말 금싸라기 땅이었다.회사 창립 초기에 그들은 자금도 인맥도 없었고, 사무실은 두 사람이 세들어 사는 지하실 위층의 작은 아파트로 정했다.비록 방은 두 개밖에 없었고, 좀 누추했지만, 그래도 창문과 그리 크지 않은 주방이 있었다.스타트업은 규모가 아주 작아서, 도겸을 제외하고 직원이 5명밖에 없었으며 심지어 모두 기술을 책임졌다.프론트, 회계, 출납, 재무팀, 인사팀, 이런 직위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했다. 그들을 모집할 돈이 전혀 없었으니까.그럼 어떡하겠는가? 정은이 혼자서 도맡을 수밖에 없었다.매일 위층 아래층을 뛰어다니며, 나가서 일을 볼 때도 버스를 탈 수 있으면 절대 택시를 타지 않았다. 배달비를 절약하기 위해, 바쁘지 않을 때면 그녀는 스스로 채소를 사서 밥을 지었다.그때는 엄청 힘들었지만 그래도 열정이 넘쳤다.사람들은 정은이 공부를 포기한 것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학문이란 높은 산을 오르지 못했지만, 적어도 정은은 믿을 만한 애인과 나날이 발전하는 사업을 가지게 되었다.미래에도 행복한 가정, 귀여운 아이들이 생길 것이다.도겸도 매우 노력했다.그 2년 동안 그는 전심전력으로 일에 몰두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면서 밤늦게 잤다. 어렵게 하루의 휴가를 내면 또 정은을 데리고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그때의 도겸은 정은의 그 어떤 정서상의 변화도, 기쁨이든 슬픔이든 막론하고 가장 먼저 감지하며 제때에 위로를 해줄 수 있었다.언제부터 바뀌었을까?회사를 차린지 3년 되던 해에 회사는 고속발전단계에 들어섰고, 업무는 미친듯이 확장되기 시작했으며 버는 돈도 갈수록 많아졌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20화

    “증여인의 사인이 필요하다고요? 왜요?”정은은 눈앞의 직원을 보면서 의문을 참지 못했다.상대방이 설명했다.“그 땅이 일반 땅이 아니라서요. 정식 증여 계약서가 있지만, 규정에 따라 증여인의 사인이 있는 동의서를 내셔야 해요.”정은은 서류를 꼭 잡았다.‘그러니까 지금 강도겸의 사인이 필요해.’...“대표님, 오셨습니까.”도겸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 비서는 문앞에서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오전 9시에 투자 측과 그룹 미팅을 통해 건원 식품에 자금을 투입하고 계속 투자를 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을 하셔야 합니다.”“10시에 호진그룹의 우 대표님이 오셔서 협력에 관해 상의를 하실 예정입니다. 11시에는 부문의 보고회가 있습니다.”“오후에는 대표님의 이전 계획에 따라 오스트의 이 대표님과 골프 약속을 잡았습니다. 이상이 바로 오늘의 일정입니다.”비서는 걸으면서 보고했고, 마침 도겸이 문을 밀고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보고를 끝냈다.도겸은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투자 측과의 그룹 미팅은 미뤄버려. 그리고 우 대표에게 전해. 30분밖에 주지 않을 테니, 만약 이번의 방안도 여전히 성의가 없다면 더 이상 합작할 필요가 없다고.”“네.”사무실로 들어가자, 탁자 위에는 커피가 놓여 있었다.도겸은 손가락으로 컵을 만졌는데, 온도가 딱이었다.그는 커피를 들고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한 모금만 마시고 돌아서서 내려놓은 다음, 더 이상 마시지 않았다.‘이렇게 오랫동안 연습했는데도 정은이 탄 커피보다 못하다니... 분명히 같은 원두에 같은 커피머신인데, 컵까지 똑같잖아. 왜 맛이 변했을까?’1년이 지났지만, 도겸은 여전히 정은이 자신의 곁에 없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커피도 아니야, 죽도 아니야, 소고기 소스도 아니야, 거실의 배치 그리고 침실의 침대 시트도 아니야.아무튼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여기까지 생각하자, 도겸은 쓴웃음을 지었다.똑똑.“들어와.”비서는 아침밥을 내려놓은 다음 조용히 물러났다.도겸은 입맛이 없었지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19화

    수화기 너머의 하정남은 오랫동안 침묵했다.[너희들 정말 스스로 실험실을 지으려는 거야?]“그럼요!”[충동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당연하죠! 우리는 아주 진지하다고요!”[그래, 20억이라고 했지? 이따가 네 계좌로 입금할게!]“우와, 고마워요 아빠! 사랑해요, 뽀뽀.”[헤헤...]딸 바보인 하정남은 어수룩하게 웃었다.그날 저녁, 민지는 단톡방에 아버지가 입금한 금액을 보냈다.공이 얼마나 많은지, 눈앞이 아른거릴 정도였다.[해결됐어요!] ...서준은 민지의 문자를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녀가 이 문자를 보낼 때 얼마나 득의양양하게 웃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는 것 같았다.보아하니 그도 노력해야 할 것 같았다.그는 핸드폰을 거두고 소파 앞으로 걸어갔다.“할아버지, 오랫동안 저와 바둑을 두지 않으셨는데, 한 판 하실래요?”“그래! 모처럼 돌아왔는데, 이미 오랫동안 나와 바둑을 두지 않았구나.”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소파에서 일어나 바둑판 앞에 가서 앉았다.정말 재미가 있는 경기였다.서준은 내색하지 않고 양보했고, 어르신은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 웃었다.“서준아, 너 또 졌구나.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은 거야?”서준은 한숨을 쉬며 일부러 고민했다.“할아버지의 기예가 더 대단하신 거죠. 솔직히 말씀하세요, 그동안 저 몰래 연습하셨죠?”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하하하하...”할아버지는 기뻐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건 안 돼요, 한 판 더 해요!”이번에 서준은 더 이상 봐주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승리를 거두었다.할아버지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일부러 삐진 척했다.“내가 연습했다고? 내가 보기에 네가 더 많이 연습한 것 같군! 이제 그만하겠다, 하나도 재미가 없구나!”말을 마치자, 그는 계속 말했다.“주말도 명절도 아닌데 왜 갑자기 집에 돌아온 거야? 심지어 나와 함께 바둑을 두다니? 말해봐, 무슨 일 생겼어?”“에헴!”‘역시 할아버지의 눈을 속일 수가 없군.’서준은 이 사실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18화

    두 사람은 일제히 서준을 바라보았다.서준은 머리를 긁적였다.“왜 날 그렇게 보는 거야... 쑥스럽게.”“쮼, 너희 부모님은 도대체 뭐 하시는 분이셔?” 서준을 바라보는 민지의 눈빛이 순식간에 의미심장해졌다.정은이 말했다.“지난번에 네가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공무원이라고 하지 않았어?”보아하니 서준의 부모님은 일반 공무원이 아닌 모양이었다.그녀도 눈치 있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민지는 보기에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 눈치가 무척 빨랐다.‘정부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신분을 숨겼다고 들었는데, 그럼 전에 서준이 말하지 않은 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그렇게 민지도 이 일을 붙잡고 늘어놓지 않았다.서준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최선을 다해 해낼게요.”“좋아.”민지가 말했다.“실험실을 위하여.”“다시는 쫓겨나지 않기 위하여.”두 사람은 말을 마치고 일제히 정은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멈칫하다가 말을 이어받았다.“파이팅?”“파이팅!!!”...한다면 바로 한다고, 세 사람은 즉시 행동하기 시작했다.민지는 정은의 집을 나서자마자 자신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빠!”[그래, 우리 딸. 밥은 먹었어?]“아직이요...”민지는 순식간에 불쌍한 척했다.하정남은 이 말을 듣자마자 수상함을 알아차렸다. ‘우리 귀염둥이가 밥조차 먹지 않았다니. 큰일이 생긴 게 분명해.’[아빠한테 말해 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민지는 즉시 최근 실험실에서 발생한 일을 아버지에게 말했다.“정말 열 받죠?!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탁.하정남은 허벅지를 두드리며 말했다.[정말 사람을 너무 무시하네! 학교는 관리해야 할 것을 상관하지 않고, 두둔해서는 안 될 일만 단단히 보호하고 있군. 명문대학이 뜻밖에도 이런 짓을 하다니! 사람을 뭘로 보고!]“그래요!” 민지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아빠, 내가 그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실험실을 하나 짓는 게 낫다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송지혜 교수의 두 학생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17화

    “우리 아빠의 명의로 된 부동산이 엄청 많은데, 여태껏 남을 내쫓은 적이 있어도 남에게 쫓아낸 적이 없단 말이에요!”“그래도 믿을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저희에게 낡은 방 하나 빌려주면서, CPRT도 없고 소방기자재도 없지만, 저희가 죽어라 낸 연구 성과는 결국 학교의 명의로 되어야 하잖아요?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딨어요? 정말 재수가 없어요...”어릴 때부터 부족함 없이 자란 민지는 여태껏 이런 억울함을 당한 적이 없었다.“뭐가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낡은 방 한 칸일 뿐, 기기조차 저희가 스스로 산 거잖아요!”이 불 같은 성질은 정말 조금도 참을 수 없었다.그녀가 한바탕 욕설을 퍼붓자, 서준과 정은은 아연실색했다.“어... 많이 놀랐어요?” 민지의 둥근 얼굴에 어색함이 드러났고, 그녀는 얼른 설명했다.“저 평소에 이렇진 않지만, 가끔 성질이 나면 멈출 수가 없네요... 에헴!”서준은 침을 삼켰다.정은은 눈빛이 반짝거리더니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민지가 말한 것도 마침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거야! 우리가 계속 학교에서 실험실을 빌린다면, 영원히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학교에서 회수하고 싶으면 회수하고, 트집을 잡고 싶으면 트집을 잡고, 다른 팀에 주고 싶으면 줄 수 있으니까.그들은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도살’당할 수밖에 없었다.“그럼... 더 이상 학교에서 실험실을 빌리지 말까요?” 민지가 떠보았다.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이 물었다.“그럼 어디에서 빌려야 하는 거죠?”“왜 빌려? 민지가 그날 말한 것처럼, 우리 혼자 실험실 하나를 지으면 되잖아?”‘실험실을 짓는다고?’이 말이 나오자, 서준은 멍해졌다.민지는 멈칫하다가 곧바로 흥분해지더니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래요! 저희가 실험실을 지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얼마나 편리해요!”그들만의 실험실이라면 남에게 빼앗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남의 괴롭힘을 당할 일도 없었다.정은이 말했다.“내가 자료를 찾아보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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