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서준은 머리를 돌려 서준명을 보며 말했다.“그만하지 못해? 나 지금 직원 혼내고 있는 거 안 보여?”카운터 직원은 황홀한 상상에 빠져서 무아지경이었다.이때 구서준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저기요, 출근 시간에 그런 망상이나 하고 있어요? 일 똑바로 해요, 허튼 생각 하지 말고! 아니면 확 잘라버리는 수가 있어요!”“네, 대표님.”통화를 끝낸 후, 서준명이 구서준에게 물었다.“너 아직도 네 삼촌과 연애 기술 뭐 그런 거 경쟁할 거야?”구서준이 버럭버럭하며 말했다.“너 당장 내려!”“이거 내 차야!”“....”몇 초의 침묵이 지난 뒤, 구서준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나 서씨 집안 도련님께서 어쩔 수 없이 네 차에 앉아 주는거야.”“....”두 사람은 더는 차에서 내리는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회사의 두 대표가 부소경의 눈을 피하고자 회사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우스운 상황이다.같은 시각, 부소경은 아직도 사무실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부소경은 신세희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관찰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다들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했다.두 사람의 눈꼴 신 모습은 정말로 혼자 보기 아까운 장면이다.하지만 다들 어쩔 수 없이 남성에서 서열 1위인 부소경과 그의 와이프의 애정행각을 눈앞에서 지켜보아야 했다.부소경은 담담하고 진지했다.자연스럽게 신세희에게 커피를 내려주고 서류를 정리해주며 서포트를 했다.신세희는 처음에 이 상황이 부담스러워 부소경을 빨리 내보내려고 했지만 부소경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어쩔 수 없이 신세희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일에 전념했다.신세희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후, 동료들과 디자인에 대해 논의하였다.동료들 모두가 온 몸을 덜덜 떨었지만, 신세희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일에 전념했다.신세희가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늘 그렇듯 깔끔하고 정갈했다.디자인 팀의 모두가 그녀의 멘탈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두 사람의 담담하지만, 깊은 감정을 부러워했다.그들이 불안한 건 단 하나, 자기의 일을 내팽개치
드디어 검은 포스를 풀풀 풍기던 대표님이 가신단다. 신세희는 아무렇지도 않은 눈치였다. 부소경이 있든 없든 그녀는 한결같이 업무를 보았을 테고 집에서도 늘 그와 식사를 함께했으며 밤에도 같은 침대에서 잠들었으니 그가 무서울 리 없었다.“조심해서 가요.”신세희가 도안을 내려놓으며 그에게 말했다.“차는 식기 전에 마시고.”부소경이 말했다.“네.”“그리고 반 시간마다 목 스트레칭도 하고, 건강 챙겨야지.”부소경이 또 잔소리를 늘어놓았다.“네.”“......”이쯤되니 부소경은 문득 궁금해졌다. 두 친구와 있을 때는 그렇게 활짝 웃었으면서 왜 남편인 자기한텐 이렇게 무뚝뚝한 걸까. 당장 따져 묻고 싶었지만 여자들까지 질투하는 사람으로 기억될까 봐 입을 꾹 다물었다.그는 불만을 억누르며 사무실을 나섰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신세희는 그를 배웅하지도 못했다. 할당된 업무는 제때 완성해야 할 게 아닌가. 사실 오전이면 끝날 업무였으나 임서아와 부소경의 방해로 아직 절반밖에 해내지 못한 참이었다. 게다가 부소경이 회사를 벗어나기만 한다면 동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녀에게 말을 걸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부소경이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사람들은 신세희를 빠짐없이 둘러쌌다.“어쩜 저렇게 따뜻한 남편을 두셨어요.”“F그룹의 대표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뻔했지 뭐예요?”“세상에... 세희 씨, 대체 저 살아있는 염라대왕 같은 분을 어떻게 길들인 거예요?”“저도 가르쳐 주세요.”“어떻게, 무릎이라도 꿇을까요?”신세희는 말문이 턱 막혔다. 부소경을 길들였다고? 그가 과연 길들여지는 사람이었던가? 그녀는 한 번도 누군가를 길들인다거나 굴복시키려고 한 적 없었다. 다만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난들에 마음은 이미 무뎌진 상태였다. 그녀는 벼랑 끝을 걷는 기분으로 6년을 버텨왔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 채워진 나날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감정이 되어버린 것이었지만 사무실 동료들이 그녀의 사정을 알 리 없었다. 신세희는 이내 설핏 웃으
부소경은 구서준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구서준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왜 다시 돌아온 거지? 염라대왕 같으니라고.’이렇게 사람을 놀리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건데. 제 아내 곁을 떠나기가 그렇게 싫은 건가? 구서준은 잔뜩 구겨진 얼굴을 애써 숨기며 억지로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삼촌.” “임서아를 닮았군.”부소경이 담담한 표정으로 끔찍한 말을 했다. “뭐라고? 조금 전 신발을 들고 초라하게 여길 떠났던 임서아 말이야? 어떻게 그런 여자랑 나를 비교할 수가 있어?”구서준은 억울해서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켕기는 게 가득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저기... 삼촌! 난 딱히 작은엄마를 보러 온 게 아니야.”“나도 마찬가지야.”부소경은 절대로 구서준과 서준명을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한 행동이 아니었다. 전부 어제 구서준이 그에게 보여주었던 사진과 영상들 때문이었다. 그 안의 신세희는 햇살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를 6년이나 찾아다녔고 지금은 같은 침대에서 잠들건만 한 번도 그녀의 이런 달콤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신세희는 그 어여쁜 미소를 별 볼 일 없이 하찮은 두 여자에게 지어 보이고 있었다. 문득 부소경은 그 두 사람이 매우 궁금했다. 자신이 떠난다면 두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세희를 찾아올 터였다. 그러나 구서준과 서준명을 마주치는 건 그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게다가 딱히 그들을 오해한 것도 아니었다. 둘은 이 회사의 대표가 아니던가?그러나 아무 생각이 없는 부소경과는 달리 서준명과 구서준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다. 건축회사의 떳떳한 대표라는 이들은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며 허둥지둥했다. 다행히 그들은 간신히 이성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 마침 그들의 앞에는 엄선희와 민정아가 있었다. 민정아와 더 가까이 있었던 서준명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구서준이 먼저 선수를 쳤다. 민정아의 손을 덥석 잡은 구서준이 당당하게 말했다.“삼촌은 모르겠지만 사실 난 정아 씨를 꽤 오랫
엄선희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얌전하게 말했다. “그럼요, 서 대표님.” 이윽고 엄선희가 신세희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세희 씨, 부 대표님, 안녕히 계세요.”남자에 눈이 먼 배신자 같으니라고, 신세희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신세희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름 서준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서씨 집안 어르신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서준명의 인품은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는 함부로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녀 사이의 감정에 대해서는 조의찬이나 구서준보다도 믿음직스러웠다.만약 정말로 엄선희가 서준명과 결혼한다면 그것도 나름 해피엔딩일 것이다. 신세희는 웃음을 머금으며 밖으로 나가는 네 사람을 쳐다보았다. “단짝 친구들?” 부소경이 무심하게 물었다. “단짝 친구라기보다는 일하면서 친해진 사람들이에요. 모두 나를 많이 아껴주고 있어요. 특히 민정아 씨는 나를 아주 잘 챙겨줘요.”한때 민정아가 그녀를 괴롭혔던 일들은 묻어두기로 했다. 굳이 밝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민정아는 속에 꿍꿍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주 덤벙거리고, 솔직하고, 지금은 꽤 불쌍한 사람이었다. 부소경은 별다른 질문 없이 수긍했다. “당신 친구도 많지 않은데, 언제 집에 한번 초대하지.”고개를 번쩍 든 신세희가 부소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기 귀를 의심했으나 부소경의 표정은 더없이 담담했다.신세희는 말을 더듬으며 다시 확인했다.“고작 그것 때문에요?” 부소경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점심에 회의가 있어서 이젠 가봐야 해.”“......” 블라인드 너머로 부소경의 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신세희는 그제야 두 사람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정직한 이름으로 저장된 번호 중 자음의 순서대로 먼저 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아씨, 이만 돌아와, 그이는...” 그녀는 아직 누군가에게 자기 남편을 소개하기가 민망했다. 잠깐 뜸을 들인
민정아에게도 콧대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니면서 잘난 척하는 꼴이 우스우면서도 증오스럽더랬지. 월급으로 연명하는 평범한 회사원들은 감히 그녀에게 대항하지는 못했지만 모두 그녀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서준처럼 돈이 많은 부잣집 도련님은 민정아 같은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집안의 메이드보다도 못한 여자였기에 구서준이나 서준명은 그녀를 매우 싫어하고 업신여기고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자신을 낮추다 못해 아예 땅을 파고 들어갈 기세였다. 고요하지만 고집스러운 저항을 눈여겨보던 구서준은 문득 모두에게 배척받던 시절의 신세희를 떠올리게 되었다. 신세희는 늘 당당하고 무덤덤했지만 지금의 민정아는 달랐다. 그녀는 마치 놀란 햄스터처럼 불안해했다. ‘이건 너무 괴롭히고 싶잖아?’ 민정아는 구서준의 흥미를 돋게 했다.회사 여직원들과는 얽히고 싶지 않았던 그였지만 불현듯 그녀의 살짝 거친 입술을 맛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서울에서 제 잘난 멋에 한껏 거드름을 피우는 미녀들은 수도 없이 봐왔다. 그래서 이렇게 자존감도 낮고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햄스터 같은 모습에 마음이 동한 것이다. 민정아를 사랑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그런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건 그저 일시적인 호기심뿐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반대편으로 홱 돌린 민정아는 잔뜩 긴장하며 얼굴을 붉혔다.“안 돼요, 구 대표님. 더 이상 대표님께 그런 마음을 품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 제게 이러지 마세요. 전 지금 부모님께 쫓겨나서 마땅히 머물 곳조차도 없어요. 대표님이 저를 책임지지 않으실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그런데 만약에 제가 덜컥 임신이라도 해버린다면 제 처지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죄송합니다. 저는...” 민정아는 자기가 진정으로 궁금했던 질문을 꾹꾹 눌러 삼켰다.‘만약 그렇다면, 저와 결혼할 생각은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저는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하지만 그녀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사
그건 마치 언니가 동생을 귀여워하는 모습 같았다. 민정아는 그게 너무 부러웠다. 그녀가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민정연은 그녀를 살살 구슬려 마치 자기가 부잣집 아가씨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건 모두 그녀를 자만에 빠지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민정아는 그저 필요할 때 이용하고 버려버리는 패에 불과했던 것이다.역시나 그녀는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회사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녔다. 거만한 그녀의 태도에 질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기피하고 혐오했다.반면, 엄선희는 착하고 대인관계도 좋았다. 동료들도 그녀를 좋아했고 상사도 그녀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니 서준명이 내미는 기회도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았는가? 엄선희도 나중에는 신세희처럼 부잣집 사모님이 될 수 있을 터였다. 민정아의 자존감이 또 한 번 하락하는 순간이었다.제 잘난 멋에 살던 여자가 기가 죽어 몸을 잔뜩 웅크리는 데는 3주라는 시간이면 충분했다. 다행히 민정아는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민정아가 어색해하는 걸 눈치챈 신세희가 말을 걸어왔다.“뭐 어때? 데이트하러 간 사람은 빼고, 우리끼리 구내식당에서 밥이나 먹지 뭐.”민정아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으응, 사... 사모님.”“신세희라고 불러줘.” “응, 세희 씨.”민정아가 웃으며 말했다. 신세희는 민정아도 자기처럼 사랑받으면 한없이 밝아지는 사람이라는 걸 발견했다. 두 사람은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며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진작부터 신세희에게 아부하며 잘 보이려고 애를 썼던 리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바로 그들을 따라갔다.엘리베이터에 오른 리나는 굳이 신세희를 찾아와 커피를 건넸던 계미림을 마주치게 되었다. 잠깐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이내 서로를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신세희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공통된 목표를 가진 두 사람이었기에 대화는 또 쉽게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사모님이 민정아 씨를 용서하는 걸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우리도 몇 번 아부하고, 눈앞에 자주 나타난다면 성공할
그녀의 행동에 민망해진 두 사람은 어쩔 줄 몰랐다. 조용히 밥을 먹던 동료들이 두 사람에게 아니꼬운 시선을 보내왔다. 그러나 당사자인 신세희는 퍽 담담했다.계미림의 향수 냄새가 이렇게 지독했다는 걸 미처 몰랐었다. 코가 민감한 신세희는 자극적인 냄새를 잘 맡지 못했다. “사모님, 저희에게는 반성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생각이신가요?” 계미림이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에는 저희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잘못을 뉘우치고 있어요. 제가 커피까지 챙겨서 사모님을 찾아갔었는데,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그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신세희는 더욱 몸을 물렸다. 이에 계미림은 기가 잔뜩 죽었다.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신발 밑창으로 사모님의 뺨을 때리려고 했던 민정아 씨도 용서하고 친하게 지내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왜 저는 안 되는데요? 옛말에 웃는 얼굴에는 침을 뱉지 않는다고...”“잠시 실례할게요.” 신세희가 그녀의 간절한 호소를 싹둑 잘라내며 민정아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제야 지독한 향수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있다. 그녀의 행동에 계미림은 눈시울까지 붉혔지만 차마 신세희에게 화를 낼 순 없었다. 그 대단하신 임서아조차도 신세희 앞에선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던가. 그러니 계미림도 몸을 한껏 낮추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고도 신세희는 매우 담담했다. “계미림씨, 나한테 이러지 마세요. 민정아 씨는 내 뺨을 때리려고 했지만 이내 잘못을 깨닫고 내게 진심으로 사과했어요. 그것도 내 정체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요. 하지만 당신은 다르잖아요. 만약 내가 부소경 씨 아내가 아니라면 당신이 굳이 커피까지 들고 날 찾아와서 내게 잘 보이려고 애썼을까요?” 계미림과 리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신세희가 고요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그 사람 부인이든 아니든, 난 권력을 휘두르며 사람을 괴롭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난 그저 평범한 디자이너일 뿐이고 조용히 이곳에서 일만 하고 싶어요.
“나도 열심히 일하고, 좋은 사람이 될 거야. 아무에게도 부끄럽지 않도록.”민정아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 사실 그녀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다. 특히 민정연에게 모진 소리를 들을 때면 더욱 그러했다. 민정아는 이런 모습을 당당함과 거만함으로 보기 좋게 포장했었다. 그러나 자기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친 그녀에게 남은 건 볼품 없는 열등감뿐이었다. 신세희는 그런 민정아를 위로했다. “괜찮아. 앞으로 다 잘될 거야.”민정아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고마워.”그날 오후부터 한동안 평화로운 회사 생활이 이어졌다. 임서아는 더는 회사로 찾아오지 않았고 그녀도 굳이 임서아의 소식을 알아보지 않았다. 회사에서 개망신을 당한 임서아가 절대 가만히 있진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딱히 두렵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대항할 방법은 많고도 많았다. 신세희는 임서아가 굳이 그녀를 찾지 않더라도 절대 임씨 집안을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현재 가장 급한 건 고향에 다녀오는 일이었다. 며칠 사이 대놓고 신세희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었고 리나나 계미림처럼 아부를 하는 사람도 없었으니 회사 분위기는 아주 좋아졌다. 부소경은 일주일 연속 퇴근하는 신세희의 회사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과거 차 안에서 기다렸을 때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지만, 지금은 대놓고 밖에서 기다리니 자연히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일찍 퇴근하는 길에, 차에 기댄 채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는 부소경을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다가가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부 대표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사모님을 데리러 오신 건가요?” “대표님...” 하여 신세희의 두 친구는 그녀를 놀려 대기 바빴다. “모범 남편 등장. 저 듬직한 모습 좀 봐, 약속 시간은 아주 칼같이 지키죠?” “남성의 거물, 알고 보니 세상 참한 남편으로 밝혀져... 이러면 남의 집 남편들은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나요?” 두 사람은 퍽 죽이 잘 맞았다. 부소경과 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