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이 웃으며 다가가서 성소현을 껴안고 달랬다.“예쁜 언니, 화내지 마세요. 다음에 좋은 구경거리가 있으면 꼭 부를게요.”“안지 마, 너희 집 남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어.”성소현은 하예정을 살짝 밀치면서 한마디 던지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하예정이 자기 남자를 쳐다보니, 전태윤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난 당신이 여자를 안는 것도 싫어. 안고 싶으면, 나를 안아줘.”하예정은 재빨리 다가가서 그의 얼굴에 키스하고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 “좋아요, 앞으로는 당신만 안아줄게요. 됐죠? 빨리 손 씻어요, 당신이 식사를 마치면 난 이모네 집에 갈 거예요.”전태윤이 부르튼 소리를 했다.“난 할 일도 없는데, 당신은 왜 나를 연회에 함께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거야? 우리가 부부가 된 후, 함께 연회에 참석한 적이 없잖아.”하예정이 그를 흘겨보면서 물었다.“누구 탓인데요?”전태윤은 곧 입을 다물었다, 그의 잘못이고 그의 문제이다.그가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면, 부부는 진작에 함께 연회에 참석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그녀가 연회에 참석하면서 그를 집에 두고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결국 전태윤은 그의 와이프가 성소현의 고급 차에 올라 그를 내버려 두고 훌쩍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전태윤은 서점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숙희 아주머니에게 말햇다.“아주머니, 왜 예정이한테 버림받은 기분이 들까요?”전태윤의 뒤편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숙희 아주머니가 대답했다.“큰 도련님, 큰 사모님께서 지금 하시는 일은 모두다 도련님을 위한 것이니 기뻐하셔야 합니다.”전태윤이 신분을 밝힌 후 집사는 여러 번 고민하던 끝에 숙희 아주머니가 계속 하예정의 곁에서 일하도록 했다.“난 정말 신경 쓰지 않는데요.”전태윤은 하예정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출신에 대해 정말 신경 쓰지 않았다.그의 눈에는 하예정이 이미 아주 좋아 보였다.그녀가 시골 출신이면 어때서? 위로 조상을 몇 대를 따지면 가난하지 않은 가문이 없
하예정은 아무렇게나 입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큰 이모는 장소에 따라 옷을 맞춰 입어야 한다고 하셨다.오늘 저녁 연회를 주최하는 사람은 관성에서 중간 레벨에 속한다. 원래 이경혜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하예정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자 조카를 빨리 적응하게 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오늘 밤 연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알렸다.정상급 연회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화려하게 치장할 필요가 없어서, 이경혜가 하예정을 위해 선택한 드레스는 가장 화려한 드레스가 아니었다.하예정은 날씬한 몸매에 얼굴도 이쁘고 분위기가 넘쳐 어떤 드레스를 입어도 그녀의 타고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할 수 있었다.드레스를 갈아입은 하예정을 보고 이경혜가 감탄했다.“예정아, 넌 타고난 분위기가 있고 몸매도 좋아서 이 드레스의 장점을 그대로 보여주네. 네가 좀 천천히 걷기만 하면, 아주 완벽해.”하예정은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이어서, 타고난 분위기가 있지만, 걸음이 빨라서 걸을 때면 발끝에서 바람이 일 지경이다“이모, 제가 하이힐을 신고 걸으면 개미를 밟아 죽일 수 있어요.”그녀는 평소에 빨리 걸을 수 있는 운동화나 굽이 낮은 샌들을 신어서 하이힐을 신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예전에 심효진과 함께 심효진 고모를 따라 상류사회의 연회에 참석했을 때도 기껏해야 로힐로 갈아 신었을 뿐, 하이힐을 신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네가 성소현과 함께 프로젝트에 투자하든지, 어떤 사업을 하든지, 이모가 전폭적으로 지지해 줄게. 그땐 네가 육친도 알아 못 볼 정도로 날듯이 걸어도 이모는 너한테 뭐라고 하지 않을게. 하지만 오늘 밤엔 얌전하게 천천히 걸어야 해. 그날 너와 쇼핑하러 갔을 때, 네가 한 걸음 걸을 때 난 두 걸음 걸어야 했어.”하예정의 얼굴이 빨개졌다.성소현이 그녀가 오늘 밤에 신을 하이힐을 가져왔다.하예정은 보자마자 겁을 집어먹으며 이경혜 모녀에게 말했다.“이모, 언니, 이 신을 신으면 전 한 걸음도 걸을 것 같지 못해요. 굽이 이렇게 높고 가는데 제가 뛰면 굽이 부러지지 않을
1층으로 내려간 후 하예정은 바닥이 미끄러울까 봐 더욱 조심스럽게 걸었다.이때 마침 성기현과 유청하가 안으로 들어왔다. 임신한 유청하는 친정에 가서 저녁을 먹었고 성기현이 퇴근 후 집까지 데려왔다.하예정의 조심스러운 모습에 부부는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아가씨, 왜 그래요? 발 다쳤어요?”유청하가 다가와 관심 조로 물었다.성소현이 웃으며 대답했다.“언니, 예정의 신발 보세요. 평소에 하이힐을 자주 안 신다 보니 엄마가 이 힐 신고 밖에 나가 몇 바퀴 걸어 다니래요.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고 나서야 데리고 나가겠대요.”유청하는 고개 숙여 하예정이 신은 킬힐을 보다가 다시 막연한 표정을 지은 그녀를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유청하는 하예정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아가씨가 고생이 많네요. 그래도 서방님을 생각하면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하예정이 보폭을 너무 크게 내디뎠다. 전태윤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많은 걸 헌신해야 한다.성기현도 다가와 사촌 여동생을 힐긋 쳐다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오빠, 언니, 난 이만 나가서 걷는 연습을 할게요.”“그래요, 조심히 걸어요. 이브닝드레스도 입고 있어서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하세요.”유청하는 그녀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가볍게 웃으며 당부했다.하예정은 더 조심스럽게 걸었다.성소현이 그녀와 함께 문밖을 나섰다.하예정이 천천히 하이힐에 적응하고 있을 때 성소현은 영상을 찍어 전태윤에게 보냈다.하예정이 이경혜의 외조카 딸이란 걸 알게 된 이후로 전태윤은 슬그머니 성소현을 블랙리스트에서 풀어주었다. 심지어 하예정이 잠들었을 때 그녀 몰래 휴대폰을 챙겨와 성소현에게만 비공개했던 하예정의 카카오스토리도 풀어주었다.그제야 전태윤도 성소현이 보낸 영상을 받을 수 있었다.성소현은 영상을 보낸 후 문자도 한 통 보냈다.“태윤 씨, 예정이가 태윤 씨를 위해 엄청 노력하고 있어요. 이젠 평생 예정의 마음을 저버리지 말고 속이지도 말아요.”전태윤이 답장을 보냈다.“이번 생은 오직
이 일대의 별장은 전부 큰 별장이라 아마 관성이 처음 개발되었을 때 조건이 되는 사람들이 먼저 좋은 땅을 사서 직접 지은 큰 별장일 것이다.좋은 땅을 사지 못한 부자들은 좀 더 큰 별장에 살고 싶으면 흔히 작은 별장을 몇 채 사서 관통시킨 후 큰 별장으로 개조한다.성소현이 잠시 침묵한 후 말했다.“하긴, 우리 이웃도 저 별장을 내놓는다는 말이 나오기 바쁘게 수많은 사람들이 욕심냈어.”이때 한 무리 사람들이 별장에서 걸어 나왔다.“저기 있네!”성소현이 예리한 눈썰미로 검은 옷 사내들에게 둘러싸인 예준하를 바로 알아봤다.하예정은 한참 바라본 후에야 생각이 났다.“저분은 A시 예씨 일가의 다섯째 도련님이잖아요?”“예준하 씨는 관성에 집이 있는데 왜 또 산대? 게다가 우리 이웃집 큰 별장을 바로 사버리네. 중요한 건 예준하 씨가 우리보다 소식이 더 빠르고 추진력도 빠르단 거야.”성소현이 구시렁댔다.“설마 관성에 살림을 차릴 작정인가?”예준하는 단지 예진 그룹의 관성 쪽 사업을 책임지고 있을 뿐 A시에 자주 돌아가는 편이다. 그의 집이 그쪽에 있으니까.그도 관성에 집이 있지만 별장 한 채뿐 더 이상 부동산을 구입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도 아주 당연한 일이다. 어쨌거나 그는 A시 사람이니 조만간 A시로 돌아가기 마련이다.그런 그가 앞뒤 마당이 딸린 3천 평이 넘는 큰 별장을 샀으니 성소현도 구시렁댄 것이다.하예정이 말했다.“저런 수십조 자산을 갖춘 재벌가의 도련님들은 본인 명의로 된 부동산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 아닌가요? 태윤 씨가 내게 맡긴 부동산 등기부랑 집 열쇠만 해도 한 움큼이에요.”전태윤이 전 재산을 그녀에게 주려고 할 때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아 등기부 등본이 몇 개인지 세어보지도 않았다. 아무튼 등기부 등본이 한 묶음이고 집 키도 한 뭉치나 있어 함께 놓으면 작은 산을 이룰 지경이었다.성소현이 말했다.“하긴...”예준하는 별장에서 나온 후 차 타고 떠나려다가 경호원이 그에게 나지막이 뭐라 말했다. 곧이어 그는 고개 돌려
예준하는 그윽한 눈길로 성소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집을 사는 건 백년지계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해요. 제가 거액을 들여 집을 산만큼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하고 제 스타일대로 장식해야 편히 지낼 수 있거든요.”성소현은 문득 예전에 이 별장을 지을 때도 용한 풍수지리 전문가를 모셔 와 전문가가 말한 구조대로 집을 지었고 여러 해 동안 온 가족이 이 별장에서 무탈하게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성기현 부부는 아직도 1층 소파에 앉아 있었고 이경혜도 함께했다. 그녀는 관심 조로 며느리한테 이런저런 질문을 건네다가 성소현이 낯선 남자와 얘기 나누는 소리에 문 앞을 힐긋 바라보았는데 조카딸과 소현이가 한 젊은 남자를 안으로 들이고 있었다.성기현은 예준하의 모습을 똑똑히 본 후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가며 활짝 웃었다.“저녁 바람이 세긴 세나 봐요. 예준하 씨도 불어오고 말이에요.”예준하가 웃으며 대답했다.“그러게요. 이 정도 바람이 아니면 저 못 불어와요.”둘은 아는 사이지만 그다지 친분이 없다.예진 그룹과 전씨 그룹이 협력 관계라 예준하는 전태윤과 소정남과 친하게 지낸다. 파트너이자 친구 사이이다. 한편 전씨 그룹과 성씨 그룹이 줄곧 사이가 안 좋아 예준하와 성기현도 가볍게 인사만 건넬 뿐 딱히 왕래가 없다.이경혜는 예준하라는 이름도 들어봤고 그를 한번 본 적도 있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서로 얘기를 나누지 못해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아들이 선뜻 인사하자 그녀도 그제야 생각났다.“안녕하세요, 아주머니.”성기현 남매가 그를 안으로 모셨고 이경혜를 본 예준하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올렸다.이경혜는 웃으며 그를 반겨주었다.“불쑥 찾아뵙게 되어서 실례가 많습니다.”이경혜가 웃으며 답했다.“그런 거 전혀 없어요.”“엄마, 오빠, 장씨 일가의 별장을 바로 예준하 씨가 샀대요. 준하 씨는 앞으로 우리의 새 이웃이에요.”두 모자는 몹시 의외였다. 성기현이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넸다.“준하 씨였군요. 아니 어떻게 우리보다 소식이 더 빨라요?”
“어머님, 기현 씨, 소현 아가씨랑 예준하 씨 꽤 친해 보이지 않아요?”유청하는 좀 전에 별말 없이 쭉 들으며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소현 아가씨는 콧대 높고 도도하여 웬만한 남자는 눈에 안 들어온다.전태윤을 수년간 짝사랑한 후 아가씨는 오직 그에게만 푹 빠져 있었는데 오늘 처음 전태윤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이토록 친절한 태도를 선보였다.하예정이 얼른 해명했다.“소현 언니는 예준하 씨랑 몇 번 만났어요. 처음 만났을 땐 언니가 준하 씨 길을 빼앗았는데 결국 준하 씨가 양보했대요.”이경혜가 담담하게 말했다.“예준하 씨는 참 괜찮은 분이야. 예씨 일가 남자들은 전씨 일가 남자들과 어깨를 견줄 정도야. 단지 거리가 너무 멀어.”자리에 있는 모든 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하예정도 성소현과 예준하가 잘 되길 바랐지만 예준하가 A시 사람이라 거리가 너무 멀고 이모에겐 딸이 소현 언니 한 명뿐이라 멀리 시집보내기 아쉬워할 듯싶었다.여기까지 생각한 하예정도 바로 단념했다.두 사람이 만약 진짜 서로 감정이 생긴다면 본인들이 알아서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할 것이다. 하예정과 전태윤의 현실적인 문제에 비하면 예준하와 성소현은 문제라고 할 것도 못 된다.인제 예준하가 거액을 들여 성씨 일가의 바로 옆집에 별장을 샀으니 곧 이웃이 된다. 장거리에서 이웃이 되어 담장 하나만 사이에 두고 아주 가깝게 지낼 수 있다.성소현은 예준하를 배웅하고 다시 집안에 들어와 엄마에게 말했다.“엄마, 예정이 인제 제법 자연스럽게 걸어요. 우리 이만 출발해도 될 것 같아요.”이경혜는 하예정에게 일어나서 몇 걸음 걸어보라고 했다. 하예정이 확실히 자연스럽게 걷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청하도 함께 일어나 시어머니가 옆에 놓아둔 정교한 지갑을 공손하게 건넸다.“청하야, 집에서 푹 쉬고 있어. 아직 임신 초기라 거동이 불편하진 않아도 초기라서 각별히 더 신경 써야 해. 기현이가 옆에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쉬어. 난 소현이랑 예정이 데리고 나가봐야겠어.”“네
하 영감 부부가 하예정의 집에서 지내는 건 괜찮지만 두 노인네가 하예정의 부모님이 남겨주신 이 집을 하지문에게 주려고 하니 하예정 자매도 소송하기로 결정했다.부모님이 지은 집이고 땅문서도 하예정 아빠의 명의로 되어 있어 상속법에 따라 상속하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하지문에게 차려질 일은 없다.두 자매가 멀쩡하게 살아있으니까!“벽돌과 모래를 어디서 파는지는 알아?”이경혜가 관심 조로 물었다.“저번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경옥 이모랑 연락이 닿아서 전화해서 여쭤봤더니 작년에 금방 집을 다시 지었대요. 경옥 이모한테서 벽돌을 실어주는 기사님 연락처를 받았어요. 주말에 벽돌 한 트럭 실어주기로 제가 다 얘기해놨어요.”하예정은 줄곧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전에는 두 자매가 그럴 능력이 없었다.이젠 드디어 여건이 좋아졌으니 바로 실천에 착수해야 한다. 두 자매는 원래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내시겠다고 해서 두 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내게 하고 나중에 자연스럽게 그 집을 돌려받을 줄 알았다.다만 그녀들이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녀들을 내쫓을 때 이미 그 집을 차지하고 아들과 손자에게 남겨줄 타산이었다.그해 할아버지가 막대기로 두 자매를 내쫓으며 으름장을 놓았다.“너희들 아빠는 내 아들이야. 아들이 죽었으니 걔가 남긴 모든 것이 아버지인 내 소유지. 아들로서 제 아비에게 드린 마지막 효도라고. 너희가 사내자식이었다면 내가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끝까지 길러줬을 거야. 너희들 아비의 집도 전부 너희에게 남겨줬을 테고. 그런데 이 계집년들이 내 아들 집을 상속받으려고? 어림도 없어! 계집년이 뭔 소용이야? 다 키워봤자 시집 보내면 남이잖아. 내 아들이 힘들게 지은 집인데 누구 좋자고 딴 사람한테 넘겨!”하 영감은 집안 재산이 딸들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셋째 아들은 딸만 둘일 뿐 아들을 낳지 못했다. 하여 셋째가 죽은 후 조카에게 집을 상속하면 적어도 하씨 집안 사람이니 다른 성씨인 남을 주는 것보단 낫다고 여겼다.
전태윤이 물었다.「왜 이제야 출발해? 그 킬힐은 감당할 수 있고?」하예정이 흠칫 놀라더니 문자로 그에게 물었다.「내가 킬힐 신은 건 어떻게 알았어요?」그녀는 서점에서 나올 때 단화를 신고 있었다.전태윤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소현 누나가 너 힐 신고 걸어 다니는 영상을 내게 보냈어. 고마워, 예정아. 나 때문에 많이 힘들지.」그의 세상에 녹아들도록 노력하는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하예정은 원래 제멋대로인 사람이라 평상시 옷차림도 편안함 위주였다. 그런 그녀가 전태윤을 위해 변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전태윤은 안쓰러우면서도 감격할 따름이었다. 그는 평생 그녀를 사랑하리라 다짐했다.「소현 언니가 나를 팔았네요. 하이힐 신고 걷는 모습 되게 웃기죠?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하이힐 벗어 던지고 싶어요. 그래도 슬리퍼가 제일 편해요.」관성을 포함한 이 지역 사람들이 슬리퍼 한 켤레로 만천하를 누빈다는 것은 전국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예준하 씨를 만나서 집에 모시고 한참 얘기 나누다 보니 늦게 출발했어요.」하예정이 좀전의 남편의 물음에 대답했다.전태윤은 살짝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예준하 씨는 어떻게 만났어?」「이모네 옆집 그 별장을 예준하 씨가 샀어요. 마침 준하 씨가 풍수지리 전문가를 모시고 집 보러 왔다가 저희랑 마주쳤어요. 소현 언니가 준하 씨를 집으로 초대했고요. 앞으로 이웃으로 지내야 하잖아요.」부부가 서로 문자를 주고받아 하예정은 안심하고 대담하게 자신의 추측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다.「태윤 씨, 난 왠지 준하 씨가 장씨 일가 별장을 산 게 꼭 소현 언니랑 이웃이 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그녀가 손을 다쳐서 병원에서 수액을 맞을 때 성소현이 함께 있어 줬는데 그때 마침 예준하도 급성 위장염으로 병원에 갔다. 성소현은 아마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하예정은 똑똑히 지켜보았다.예준하는 성소현을 보자 배를 끌어안고 무기력하게 있다가 불쑥 허리를 곧추세우고 가슴을 쭉 펴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예준하는 성소현에게 다 죽어가는 모습을
장소민은 문을 닫지 않고 대답했다.“내가 기분은 안 좋았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무슨 일이 생겼어요?”하예정이 관심 있게 물었다.장소민이 먼저 물었다.“물 마실래?”“안 마실래요. 고마워요.”장소민은 다가가서 하예정을 소파에 앉히며 말했다.“큰일은 아니고, 그냥 여섯째 창빈의 일로 네 아빠와 좀 다투었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집에서 나왔어.”하예정이 말을 건넸다.“그럼 아버님께서 어머님이 여기로 오신 것을 모르신다는 말씀이세요?”장소민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아직 말하지 않았어. 박 집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어. 나도 좀 진정하려고.”“아버님께서 걱정하실 텐데. 어머님, 창빈 도련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먼저 아버님께 우리 집에 있다고 메시지 보내세요. 걱정하시며 찾아다니실지도 몰라요.”장소민은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내가 여기로 온 지도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찾아오지 않는데 내 걱정은 아예 안 할지도 몰라.”잠시 후 장소민은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내가 몰래 나왔거든. 내가 외출하는지도 모를걸. 아마 내가 여전히 방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전현민의 성격으로 장소민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그러면서 장소민은 전현림에 메시지를 보내 전태윤 집에 왔다고 전했다.전현림이 장소민에 수많은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녀는 읽기만 했을 뿐 답장하지 않았다.장소민이 전현림에 메시지를 보낸 후에야 하예정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창빈 도련님이 왜요?”“예정아, 네가 예전에 창빈이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잖아. 창빈이가 지금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난 찬성하지 않았고 네 아빠가 허락했거든.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지지해 주시거든.”전씨 가문의 형제들은 전부 요리할 줄 알았다.이것은 전씨 할머니께서 배양해 주신 결과였다. 어르신은 손자마다 전씨 가문의 보호 없이도 스스로 독립할 줄 알고 자신만의 세계를 꾸밀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형제들은 모두 다재다능하여 만약 어느
늙은이는 어린아이와 다름없다고 하더니만,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인듯하다.전씨 할머니는 장난꾸러기였다.곧 차가 중심 별장 입구에 멈추었다.하예정은 우빈을 도와 작은 가방을 메고 싶었지만, 우빈은 스스로 메겠다고 고집했다.“선생님께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엄마와 이모도 그렇게 가르쳤어요.”하예정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래, 그래. 내가 그렇게 가르쳤는데도 까먹었네. 맞아. 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지.”수많은 사람이 우빈을 사랑해 주었다.하예진 자매는 우빈이가 버릇없이 자랄까 봐 늘 교육을 중시했다.우빈에게 올바른 인생관을 가르쳐 버릇없이 자라지 않도록 말이다.우빈은 자신의 작은 가방을 메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차에서 내린 후 몸을 돌려 작은 손을 뻗어 하예정을 부축했다.하예정은 우빈의 작은 손을 잡았다. 우빈이가 그녀를 부축하여 차에서 내린 것처럼 시늉했다.“우리 우빈이 최고야.”“이모부께서 저와 이모부는 모두 같은 남자로서 앞으로 엄마와 이모를 보호하고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꺼냈다.“다 큰 어른 같네. 우리 우빈이.”하예정의 마음이 따듯해졌다.그녀가 우빈을 친자식처럼 아끼는 것이 헛된 고생이 아니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따뜻함을 느꼈다. 그는 우빈에게까지 그녀를 돌봐야 한다고 가르쳤다!우빈은 어릴 때부터 배려심이 많았는데 더 크면 분명 훈남이 될 것이다.장차 어느 집 딸이 복이 있을지 참 기대된다.“오셨어요.”박 집사가 집안에서 마중 나왔다.“집사님, 할머니께서 돌아오셨어요?”하예정이 박 집사에게 물었습니다.“사모님께서 오셨어요. 어르신은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거든요.”박 집사는 앞으로 나아가 우빈을 안아 왔다.하예정도 그가 우빈을을 안고 있도록 팔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우빈은 달콤하게 박 집사에게 인사를 건넸다.박 집사는 웃으며 우빈과 인사를 나누고는 녀석을 안고 하예정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박 집사는 걸으면서 목소리를 낮
예준하는 껄껄 웃었다.“그럼, 우리 우빈을 좋아하는 사람이 엄청 많지. 우빈이도 내가 널 좋아해 줄 자리를 남겨 둬야 해. 알았지?”우빈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당연히 남겨두어야죠.”모두가 한바탕 웃었다.막 집에 들어섰을 때, 전태윤의 전화가 걸려왔고 하예정이 이내 받았다.두 사람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전태윤은 그의 아내가 성씨 가문으로 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예전에는 하예정이 성씨 가문에 올 때면 전태윤도 따라왔지만, 오늘 밤 너무 바빠서 따라오지 않았다.하예정은 친절하게 말했다.“지금 이모 집에서 밥 먹고 이야기 좀 하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에요. 저녁에 술 많이 드시지 말고 따듯하게 입고 나가세요. 오늘 기온이 또 내려간다고 하니까.”요즘 기온이 떨었지만, 비도 내린다고 했다.겨울에 비가 오면 더 춥게 느껴진다.“술은 마시지 않을 거야. 내가 밖에서 찬 바람을 쐴 필요도 없어서 밖에 아무리 추워도 나랑 상관없어.”전태윤은 매일 난방이 있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고 설령 외출하여 사업을 논의하더라도 따뜻한 관성 호텔에서 일을 보았다.기온이 아무리 내려가도 대표 전태윤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예정아, 너 매일 밖에서 뛰어다녀야 하는데 옷을 더 입고 다녀. 우빈에게도 두 벌 더 입히고. 오늘 저녁 접대 자리에 동명이와 함께 가거든.”노동명이 바삐 돌아치는 이유가 바로 이 일 때문이었다.하예정이 대답했다.“알았어요. 제가 세 살짜리 아이도 아니고, 우빈이도 추워지면 저에게 말할 거예요. 스스로 옷을 찾아서 입을 줄도 알아요.”하예정은 우빈을 위해 이미 따뜻한 옷 한 벌을 입혀주었다.“동명 오빠도 잘 돌봐주세요.”“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러려고. 그럼 먼저 밥 먹어. 이따가 내가 동명이 데리러 가야 하니까.”하예정은 그에게 다시 당부한 뒤 통화를 끝냈다.하예정은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떼어낸 뒤에야 우빈이가 곁에 앉아 그녀가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사실
예준하가 우빈에게 물었다.“아저씨는 시간이 없어서 이모가 저를 데리러 왔어요. 그리고 아기 보러 왔는데 아기가 잠들어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어요.”우빈은 말주변도 좋고 발음도 똑똑했다.예준하는 이 녀석이 용정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모연정이 용정을 금방 입양했을 때 한 살 남짓했을 때였는데 옹알옹알 말도 잘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3살이나 되었다. 녀석은 작은 어른처럼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크고 똑똑했다.용정의 기억력이 아주 좋은 점이 가장 의외였다.그러나 예준하가 우빈을 처음 만났을 때 우빈은 너무 어리고 말도 서툴렀다. 그러나 지금은 똑똑한 개구쟁이로 변했다.예준하는 그와 성소현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도 우빈과 용정처럼 똑똑하고 영리하기를 바랐다.“아기가 아직 어려서 잠을 많이 자거든. 좀 더 크면 우빈과 잘 놀 수 있을 거야.”우빈이 대답했다.“네, 이모도 그랬어요. 아저씨는 바쁘지 않죠? 제가 매번 이모를 보러 올 때마다 아저씨를 보는 것 같아요.”우빈의 눈에는 전태윤과 노동명 그리고 소정남이 가장 바빠 보였다.노동명은 다리가 여전히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서라도 회사로 일하러 갔다.하예정처럼 아주 바빴다.하지만 예준하는 바쁘지 않아 보였다. 만약 바쁘다면 매번 예준하를 볼 수 없었을 테니까.예준하는 웃으며 말했다.“나도 바쁘거든. 그런데 네 소현 이모가 여기로 혼자 오는 게 걱정돼서 일하던 중간에 여기로 데려다준 거야.”우빈은 작은 얼굴을 쳐들고 순진하게 말했다.“그럼 아저씨도 소현 이모에게 경호원을 보내주세요. 우리 예정 이모도 경호원들이 따라다니거든요. 태윤 이모부가 그렇게 해야만 안심하고 일할 수 했어요. 그리고 우리 이모가 나쁜 사람도 때려눕힐 수 있어요. 엄청 대단한걸요. 저는 우리 이모가 가장 좋아요.”예준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래. 네 이모는 정말 대단하구나. 소현 이모도 싸움할 줄 아는데 난 여전히 걱정되어서 여기까지 데려다줬어. 겸사겸사 여기에서 밥 먹을 겸.”그러자 우빈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건넸
이경혜가 웃었다.“맛있지? 호호호...”말하는 사이에 성소현과 예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가 돌아왔나 봐요.”하예정이 말했다.우빈은 성소현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안고 미친 듯이 뛰쳐나갔다.그가 넘어질까 봐 걱정된 하예정이 얼른 일어나 따라갔다.이경혜는 따라가지 않고 소파에 앉아 고개를 돌려 하예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이경혜의 얼굴의 웃음기는 이내 사라졌다. 그녀는 일찍 돌아간 여동생 이경희를 떠올렸다.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경혜는 자신의 부모님 모두 살아계신다면 대가족이 함께 떠들썩하게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고 동생이 일찍 죽지도, 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여동생이 이 세상에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 당시 어머니의 특별 비서님은 살아계실지...’이은숙의 특별 비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이경혜가 쓸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찾았지만 결국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사람들이 그 노련한 특별 비서에 대해 기억은 없었지만, 이경혜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으로 그린 초상화가 맞을지도 모른다.이은화는 수십 년 동안 그 특별 비서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찾지 못했다.이은화가 그 비서에 대한 인상이 더 깊을 것이다.게다가 만약 살아있다고 해도 나이가 많아서 그 당시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있을지...이경혜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견고한 눈빛으로 속으로 돌아가신 엄마에게 말했다.‘엄마, 제가 반드시 엄마 대신 복수할 거예요. 우리 재산도 반드시 전부 되찾을 거에요! 엄마, 하늘나라에서 꼭 우리 예진이가 강성에서 무사히 우리의 모든 것을 되찾도록 도와주세요! 예진이는 엄마 외손녀예요. 그리고 여동생은... 제가 지켜주지 못했어요.’여동생만 생각하면 이경혜는 마음이 무거워진다.밖에 있던 성소현은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우빈을 안아 들어 올려 두 바퀴 돌았다. 우빈은 기쁘게 웃으며 성소현에게 말했다.“이모! 더 높이 해줘요! 더요!”성소현
“아, 있어요. 그런데 어린아이예요. 연정 씨 양자인데 용정이라고 해요. 근데 어린아이일 뿐인데... 참! 생각났어요. 지난번에 연정 씨가 남편이 용정을 데리고 놀러 왔을 때 정남 씨가 태윤 씨에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 있어요. 엄청 대단한 거물이 관성에 나타났는데 재빨리 떠났다고 했어요. 어디에서 왔는지 성씨가 뭔지도 조사하지 못했다고 했어요.”용정의 출신을 떠올리며 하예정은 그녀의 상상력을 발휘했다.“이모, 혹시 그 사람이 관성에 한 번 온 게 아닐까요? 예씨 가문을 이용해 관성에서 수작을 부려 무언가 꾸미려는 게 아닐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무언가를 하려면 A시로 가야 할 텐데요.”만약 용정을 노리고 온 것이라면 관성에서 계략을 꾸면 안 될 텐데 말이다.그리고 만약 지난번에 갑자기 나타난 그 거물이 용정을 노리고 왔다면 진작에 손을 썼을 것이다. 용정의 원수는 예씨 가문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다만 정겨울 뒤에 서 있는 신의 의사 일행을 두려워할 뿐이다.이경혜는 용정의 출신을 알지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기에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녀는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이해할 수 없으면 그만둬. 너무 신경 쓰지 마. 여러 번 만난 것은 우연일 수 있지. 정 생각난다면 다음에 또 만났을 때 차라리 연락처를 요구해봐.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조사해보면 되지 않을까? 그 사모님이 운별 씨와 상관있든 없든 지내다 보면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될 거야. 그런데 꼭 안전에 주의해야 해. 배 속의 아기도 잘 보호하고.”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알겠어요. 용씨 사모님이 경호원을 거느리고 다니는 것처럼 저도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안전해요. 저도 싸움할 줄 알고요.”“가장 좋은 방법은 운초 씨가 나서서 허점을 찾는 건데. 용씨 사모님과 여운별 씨가 동일 인물이라면 운초 씨가 그녀의 친동생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가장 쉽게 허점을 찾을 수 있을걸.”“운초 씨의 시력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요.”“그래도 허점을 발
이경혜는 한참을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내가 관성에서 수십 년을 살았거든. 네 이모부에게 시집가면서부터 상류사회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많은 사모님과 재벌가 아가씨들을 알고 있어. 근데 용씨 사모님이라고 들어본 적 없어.”하예정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관성의 사람은 아니라고 했어요. 단지 관성에 조금 머문다고 했고 사업도 모두 외지에 있다고 했어요. 남편도 조용하게 움직이는 편이라서 연회에도 잘 참석하시지 않는다고 하셨어요.”이경혜가 말했다.“그래도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사람과 교제하면서 살아야 할 텐데. 관성의 사람이 아닌데 관성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산다고 해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았을 텐데. 난 용씨 가문이라고 들어본 적 없어.”“아마도 재산이 너무 많은 편이 아니라서 상류 사회층에 다다르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이경혜가 물었다.“근데 이 사람을 조사봐서 뭐 하려고? 무슨 문제라도 있어?”하예정은 용씨 사모님을 알게 된 과정을 이경혜에게 알려주었다.“저는 그 사모님을 볼 때마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왠지 자꾸 여씨 가문의 여운별을 닮았다고 생각하거든. 운초 씨도 많이 닮았다고 했어요. 운초 씨는 여운별과 20년 넘게 자매로 지냈기에 여운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거든요. 그 용씨 사모님의 몸매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여운별과 비슷하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용씨 사모님은 여운별이 아니란 말이에요. 여운별이 돈이 없어서 늘 운초 씨를 찾아가 돈을 달라고 난리 치고 있거든요. 며칠 전에도 우리 시댁에 가서 돈 달라고 어찌나 난리를 치는지...”이경혜가 말을 건넸다.“몸매도 비슷하고 목소리도 비슷한데 얼굴이 비슷하지 않다고? 여운별 씨가 다시 나타난 것으로 보면 성형하지는 않았을 거고. 성형하면 한동안은 나오지 못하거든. 그럼 말투와 행동은 어땠어?”“부드럽고 단아해요. 말할 때도 잘 웃고. 근데 어딘가 매우 어색하다고 느껴져요. 그렇다고 흠을 잡으려 해도 흠잡을 곳은 없고요.”이경혜가 다시 입을 열었다.“몇 번 만난 사람일 뿐
이경혜는 말을 하면서 두 사람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유청하 모자는 모두 잠들어 있었다. 이를 본 하예정은 들어가는 이경혜를 막으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이모, 편히 쉬게 해요.”이경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문을 조용히 닫았다.우빈은 조금 실망한 모양이다.그는 동생과 잠시 놀아주려고 했다.1층으로 돌아온 우빈은 소파에 앉아 간식을 조금 먹으면서 홀에서 혼자 놀았다.성씨 가문에도 몇 가지 장난감이 있었다. 이는 우빈이가 평소에 성씨 가문에 놀러 왔을 때 성소현이 사준 장난감이었는데 집에 가져가지 않았다.지금은 새로 산 장난감들이 더 많아졌다. 아마도 어린 동생을 위해 사 온 장난감인 듯하다.우빈은 먼저 놀고 있었다.“이모, 제가 사람 한 분에 관해 물어볼 게 있어요.”이경혜는 조카딸을 바라보며 물었다.“누구? 누구에 관해 물어보려고?”이경혜는 전태윤에게 물어보면 모두 해결될 문제를 자신에게 왜 물어보는지 의아해하며 하예정을 바라보았다.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여자 한 분에 대해 알아보려고요. 태윤 씨는 여자에게 관심 없어서 제가 물어본다고 해도 남편이 또 공을 들여 알아봐야 하잖아요.”이경혜는 담담하게 웃었다.“하긴, 태윤 씨가 너에 대한 감정은 유난히 한결같지. 너희들이 이렇게 행복하고 사는 것처럼 소현과 준하 씨도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성기현은 줄곤 이경혜의 곁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그러나 성소현은 멀리 시집가야 했다.예준하는 지금 성소현에게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잘해주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성소현을 위해 데릴사위로 장가오고 싶을 마음도 있었다.예준하는 일찍 성씨 가문의 저택 옆에 큰 별장을 구매하고는 앞으로 관성에 오래 머물 계획을 하고 있었다. 성소현이 친정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이상 가까울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기나긴 인생길에서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이모,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준하 씨는 분명 소현 언니에게 잘해주실 거예요. 두
“큰이모.”하예정은 웃으며 이경혜를 불렀다.이경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오늘은 네가 우빈이를 데리러 갔구나?”“네. 동명 씨가 오후 내내 바빴거든요. 저는 요즘 반쯤 일하고 반쯤 쉬는 상태라 시간이 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가 다녀왔어요.”그러면서 하예정은 우빈을 받아 안으려고 손을 뻗으며 말했다.“우빈아, 이제 네가 스스로 걸어야지. 계속 안겨 있으면 이모할머니 힘드실 거야.”그러자 이경혜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괜찮아, 내가 안고 들어갈게. 우빈이가 부쩍 크긴 했지만 아직 어린아이잖니. 이 정도는 전혀 힘들지 않아.”그럼에도 우빈이는 고분고분 이경혜의 품에서 내려와 작은 발을 바닥에 내디뎠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저 이모할머니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엄마와 작은이모가 늘 당부했었다. 이모할머니는 연세가 많으니 어린아이처럼 계속 안겨 있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이경혜는 우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었다.“우리 우빈이는 말도 참 예쁘게 하는구나.”“이모할머니, 그럼 다른 때는 안 예뻐요?”아이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이경혜는 더욱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아니야, 우리 우빈이는 언제나 예쁘고 사랑스럽지.”하예정도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우빈이는 가끔 어른스럽다가도, 또 어떤 때는 천진난만해서 너무 귀여워요.”이경혜는 우빈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하예정과 함께 안으로 걸어가며 말했다.“우빈이는 똑똑한 아이야. 하지만 아직은 어리니까 장난도 치고 말썽도 부릴 때가 있지. 어린아이가 매일 조용하기만 하면 오히려 걱정되지 않겠니?”“네 그이도 어릴 때는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어. 예의는 바르지만 말수가 적었고 표정도 늘 딱딱했지. 눈빛마저 차가워서 어린애 같지가 않았어. 그때부터 나는 네 이모부에게 말했어. 전태윤 쟤는 크면 분명 냉정하고 무서운 사람이 될 거라고 말이야.성씨 가문과 전씨 가문은 한때 앙숙 같은 사이였지만,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다 보니 서로의 소식을 놓칠 수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