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머리를 돌려 전태윤을 바라보았고 전태윤도 그녀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내 전태윤은 그녀의 이마를 튕기며 말했다.“내 말 못 믿어? 왜 그렇게 빤히 보고 있어. 하예정, 처형한테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나서서 처형 지켜줘야지!”전씨 가문은 분위기가 항상 좋았다. 부부 사이도 늘 깨가 쏟아졌으며 집안 남자들은 단 한 번도 여자들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전태윤의 아버지인 전현림은 이렇게 말했다. 여자에게 손을 대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다!“태윤 씨.”“응.”하예정은 눈치를 보며 물었다.“나 태윤 씨 어깨에 기대고 싶어요.”전태윤은 머뭇거렸다.“그냥 기대는 것뿐인데. 내가 뭐 흑심을 품은 것도 아니고.”하예정은 혼잣말하며 전태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전태윤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하예정도 사실 어색했지만, 기댈 곳이 필요했다.‘기댈 곳이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이네!’전태윤의 굳은 몸은 한참 뒤에야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자발적인 행동이 달갑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밀어내지는 않았다.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맴도는 전태윤의 손을 보고 하예정은 웃음이 나왔다.하예정은 갑자기 전태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전태윤은 하예정의 돌발에 깜짝 놀라 몸을 옆으로 옮겼다.하지만 하예정은 이 상황을 미리 예견했다.“하예정!”전태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계약 항상 기억해. 선 넘지 마!”전태윤의 진지한 모습에 하예정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 똘망똘망한 눈으로 전태윤의 두 눈을 바라보며 그가 따라 준 온수를 홀짝였다.그녀의 눈빛에 전태윤은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아마 정말 빨개진 듯하다.전태윤은 얼굴이 후끈후끈했다.“태윤 씨 서른인데 여자랑 스킨십 해본 적 없죠? 그냥 얼굴만 만졌을 뿐인데 왜 그렇게 반응이 격해요? 누가 보면 내가 태윤 씨 어떻게 했다는 줄 알겠어요.”하예정은 도발하며 말했다.‘할머니가 결혼을 재촉하시는 데는 꼭 이유가 있을 거야. 태윤 씨 같
전태윤은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하예정을 한참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늦었으니 빨리 들어가서 쉬어. 여기서 잠들지 말고. 밤에는 추우니 감기 걸려. 감기 걸리면 너만 고생이야.”말을 끝낸 전태윤은 뒤돌아서 들어갔다.이내 하예정은 문 잠그는 소리를 들었다.하예정은 웃으며 중얼거렸다.“문까지 걸어 잠그고, 내가 위험해?”같은 시간, 전태윤도 중얼거렸다.“이 여자 너무 위험해.”방에 들어온 전태윤은 욕실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서서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아직도 후끈거렸다.‘나 진짜 얼굴 빨개졌어.’전태윤은 자기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하예정이 만진 곳을 몇 번이고 만져보며 그녀가 자기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느낌을 되돌려 보았다.그녀의 손은 말랑말랑하고 나긋했으며 마치 스쳐 가는 바람처럼 부드러웠다.전태윤은 물을 틀고 세수했다.전태윤은 아까 자기가 했던 반응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와 혼자 중얼거렸다.“내가 기억이 있은 뒤로는 아무도 내 얼굴을 못 만지게 했어.”성인이 된 후로 전태윤은 항상 진지하고 차가운 얼굴을 유지하다 보니 아무도 감히 그의 얼굴에 손을 대지 못했다. 게다가 늘 경호원과 동행하다 보니 젊고 예쁜 여자들도 그에게 다가갈 기회가 전혀 없었다.여태 자기를 지켜왔는데, 오늘은 한 지붕 아래 여자에게 얼굴을 내주었다.전태윤은 첫 스킨십을 법적인 아내에게 주었다. 그러니 어찌할 수도 없는 데다가 격한 반응으로 그녀의 비웃음까지 사게 되었다.한참 뒤 씻고 나온 전태윤은 베란다에 두고 들어 온 하예정이 생각나서 방문을 나섰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가운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웃통을 벗고 나갔다가 하예정이 또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전태윤은 이내 가운을 입고 자기를 꽁꽁 싸맨 채로 방문을 나서 베란다로 갔다.‘잠들지 않았겠지?’전태윤의 걱정대로 하예정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전태윤은 그 모습에 화나기도, 우습기도 했다. 분명 베란다에서 잠들지 말라고 당부했는데도 그녀는 쌔근거리며 잠자고 있었다.전
눈앞의 베란다를 보며 전태윤은 담담하게 말했다.“나중에 별장으로 이사 가면 정원에 장미 키워봐. 정원 가득 장미가 자라면 지금보다 훨씬 예뻐.”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데요. 돈 아무리 모아도 아파트 하나 사기 힘든데 별장은 무슨.”물론 하예정도 별장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단지 생각일 뿐이다.‘돈 많으면 다들 별장 살라 그럴걸. 널찍한 데다가 층간 소음도 없고 얼마나 좋은데. 이런 아파트는 층간 소음이 문제야.’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아파트는 전태윤이 하예정과의 결혼을 위해 임시로 장만한 것이다.전태용은 쭉 큰 별장에서 살았었다.“태윤 씨, 먼저 식사해요. 난 꽃에 물 다 주고 먹을게요.”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로 들어갔다.하예정은 아침을 간단하게 준비하지만, 매일 다른 메뉴로 전태용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요리 솜씨도 좋았다. 제일 간단한 야채죽이나 반찬도 전태용의 입맛에 꼭 맞았다.매일 진수성찬을 먹던 전태윤은 하예정의 담백한 반찬과 요리가 아주 맘에 들었다.오늘은 전태윤이 먼저 집을 나섰다.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전태윤은 소정남과 마주쳤다.소정남은 전태윤을 향해 윙크를 날렸지만 전태윤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뭐야, 왜 그런 표정이야.”소정남은 전태윤의 옆에 바싹 붙어 걸으며 전태윤을 툭툭 건드리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왜, 형수님 아직 못 달랬어?”전태윤은 머리를 돌려 소정남을 노려보더니 계속 앞으로 걸었다.“네 성질머리로는 절대 못 달래지.”“우리 사이 아주 좋아!”전태윤은 화가 나서 쌀쌀맞게 말했다.소정남은 대충 대답하고 나서 계속해 말했다.“그런데 왜 욕구불만 가득한 표정이야?”“너 눈 어떻게 됐어? 내가 뭐 욕구불만 가득한 표정이라고.”황홀함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 욕구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게다가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설렌 적도 없었고 그녀에게 충동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전태윤은 자기가 생각해도 무뚝뚝한 사람이다.“
소정남의 다른 한 손에는 A4용지 몇 장이 들려있었다. 누가 보면 아마 서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자, 네가 얘기한 거.”소정남은 A4용지와 아침밥을 전태윤의 사무용 책상에 올려놓고는 엉덩이를 붙이며 말했다.“같이 먹을래? 관성 호텔 거야. 완전 맛있어.”관성 호텔은 전태윤이 평소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전씨 그룹의 산하 호텔이다.하지만 전태윤이 결혼한 뒤로 소정남과 함께 식사한 지도 꽤 오래됐다.전태윤도 그립긴 했다.“됐어.”전태윤은 A4용지들을 집어 들고 대충 보더니 소정남에게 물었다.“이게 다야?”“응, 다야. 상하 5대까지 정리했어.”“이것밖에 안 된다고?”“젊은 사람들이 그래도 잘나가는 거 빼고 어르신들은 죄다 농사일하고 있는데 뭐가 있겠어?”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남정의 말대로 하예정 친인척들은 젊은 사람들이 잘 사는 것 빼고는 어르신들은 특별한 정보가 없었다. 소남정은 이 사람들의 기본 정보인 나이와 결혼 여부, 그리고 자녀 여부까지 다 정리해 두었지만 A4용지 몇 장밖에 되지 않았다.하씨 집안의 정보를 보고 난 전태윤은 그들의 염치없는 행동에 더 치가 떨렸다.하예정의 사촌들, 그리고 삼촌과 큰아버지들은 다들 잘 살았다. 둘째 사촌 오빠라는 작자는 심지어 성씨 그룹의 산하 기업에서 높은 위치에 있으며 연봉 2억을 받는다. 제일 못산다는 사촌 동생도 연봉 7천만 원은 훨씬 넘어 받았다.하예진과 하예정 둘을 합쳐도 그들 중 누구의 수입보다 적다.그런데 뻔뻔스럽게 두 자매에게 병원비를 부담하라는 것도 모자라 경비며 기름값까지 내놓으라고 하다니.정말 진상이다. 뻔뻔한 진상들이다!‘부모를 일찍 여읜 미성년자 두 자매를 괴롭혀 배상금도 빼앗아 간 데다가 인제 와서 병원비까지 부담하라고?’세상에는 수많은 진상이 존재한다. 그런 진상들은 인간성을 잃은 지 오라다. 실제로는 처음 진상을 만난 전태윤은 하예정이 안쓰러웠다.“표정이 왜 그래? 그 사람들 형수님에게 죄지었어? 내가 손 좀 봐줄까?”전태윤은 쌀쌀하게 말
“따르릉...”인터폰이 울렸다.전태윤은 스피커 폰을 켰다.“대표님, 성소현 씨 또 오셨어요.”전태윤은 얼굴색이 확 변하더니 쌀쌀맞게 말했다.“내버려 두세요.”비서가 말했다.“성소현 씨가 생화 한 트럭으로 회사 앞에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대표님에게 고백하려고요.”전태윤을 바라보는 소정남의 눈에서 빛이 쏟아졌다.전태윤은 소정남을 노려보고는 여전히 쌀쌀하게 말했다.“경비원은 뭐 하고 있어요? 남의 회사 앞에서 쓰레기를 널어놓고 있는데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요?”말을 끝낸 전태윤은 인터폰을 꺼버렸다.비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소정남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사실 성소현 씨도 괜찮지, 뭐. 감정에 솔직하잖아. 너한테 빠진 여자들이 내 머리카락 수만큼이나 되는데 용기를 내는 건 성소현 씨뿐이잖아.”“괜찮으면 네가 만나. 나한테서 관심 좀 끄게 네가 좀 어떻게 해봐.”소정남은 갑작스러운 말에 사레가 들렸다.“업무 시간에 일 해야지. 빨리 먹고 꺼져. 너 혹시 한가하면 내가...”“나 바빠, 바빠 죽겠어. 지금 일하러 가려고 했어.”전태윤이 추가 업무라도 줄까 봐 소정남은 다급히 전태윤의 말을 중단시키고 허겁지겁 아침밥을 먹은 뒤에 부리나케 도망갔다.대표 사무실을 나서 문을 닫은 뒤에야 소정남은 혼자 중얼거렸다.“호기심이 아니라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 한마디 더 했다고 업무로 협박하다니. 나 이러다 언젠가는 일하다 죽을지도 몰라.’소정남은 비록 대표 사무실에서 나왔지만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정남은 비서를 시켜 성소현이 준비한 이벤트를 찍어오라고 했다. 언젠가는 전태윤을 놀려 줄 생각과 혹시라도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났을 때 성소현의 용기 있는 고백을 따라 배우기 위해서 말이다.성소현이 만든 어마어마한 크기의 생화 하트는 아주 아름다웠다.경비원은 연락받고 성소현의 생화 하트를 망가뜨리려고 했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에 차마 손을 쓰지 못했다.성소현은 스피커를 들고 68층이나 되는 높
성소현은 성씨 집안의 딸이다.성씨 집안과 전씨 집안은 워낙 관계가 좋지 않은 데다가 만약 성소현의 심기를 건드려 두 회사의 모순을 악화시킨다면 그 후과는 엄중했다.이내 전씨 그룹 앞에 차 몇 대가 멈춰 섰다.성기현은 차에서 내려 다급히 스피커를 들고 전태윤에게 고백하는 성소현에게로 다가갔다.성기현의 얼굴은 마치 흑인처럼 거무튀튀해졌다.전태윤이 성기현에게 전화를 걸어 성소현의 미친 짓을 고발했다.마침 회의 중이던 성기현은 전태윤의 고발 전화를 받고 마음이 턱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성기현은 관리층들을 내버려 두고 경호원까지 데리고 성소현을 잡으러 왔다.“전태윤 씨...”성소현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성기현은 그녀 손에 들려있는 스피커를 낚아챘다. 성소현은 머리를 돌려 거무튀튀한 얼굴을 보고 흠칫하더니 움찔거리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오빠.”성기현은 그녀의 스피커를 바닥에 메친 뒤 성소현의 팔목을 잡고 끌어갔다.“오빠, 나 태윤 씨 좋아해. 나 진짜 좋아한다고. 나 짝사랑만 벌써 몇 년째야. 이제야 용기 내서 고백하는 건데 나 응원해 줘야지. 태윤 씨도 나한테 반할 수 있잖아? 오빠, 살살해, 나 아프단 말이야!”성기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소현을 차 앞까지 질질 끌고 와 차 문을 열더니 안으로 밀어 넣었다.성소현은 반대편으로 도망가려 했다.“너 도망가기만 해봐!”성소현은 이내 꼬리를 내리고 움직이지 않았다.성기현은 차에 올라 문을 닫은 뒤 쌀쌀하게 말했다.“출발해요.”차는 이내 출발했다.“오빠.”성소현은 바싹 다가와 성기현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닥쳐!”성기현은 성소현을 혼냈다.“내가 몇 번을 말해. 전태윤은 너랑 어울리지 않으니 그만두라고 했지? 너 내 말이 말 같지 않아?”“나도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짝사랑한 지 오래되다 보니 그만두기엔 아깝더라고. 나 억울해서 그래.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해서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게 잘못이야?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결과를 알 수 있어?”성소현은 온 가족
관성 중학교하예정은 서점 카운터에 앉아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고 심효진은 그녀와 마주 앉아 연애소설 한 권을 들고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본인의 서점이라 보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볼 수 있어서 너무 편했다.심효진은 서점 내의 연애소설은 한 번씩 다 보았다.하예정은 가끔 그녀에게 보기만 하지 말고 직접 소설을 써보라고 권유했다.“예정아, 이 소설 속 주인공도 초고속 결혼했어.”심효진은 소설책을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너랑 비슷해.”하예정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초고속으로 결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소설속 여주는 재벌이랑 결혼하잖아. 난 직장인과 초고속 결혼했어.”아무리 전태윤이 대기업 대표라 해도 월급쟁이일 뿐이다.“너 소설 그만 봐. 그러다 너무 감정 이입하면 시집도 못가. 현실 속에 남자와 소설 속 남주를 비교할 수는 없잖아. 소설 속의 남주는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거야. 현실 속에 젊고 잘생기고 돈 많고 게다가 한 여자만 바라보는 재벌이 어디 있다고.”“그냥 시간 때우는 거지, 뭐. 너처럼 뜨개질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심효진은 책을 덮고 휴대폰을 꺼내 이슈 거리를 찾아보려고 했다.그녀는 SNS로 실검을 찾아보기 좋아했다.실검을 확인하던 심효진은 뭔가 발견하고 하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너 빨리 실검 확인해 봐.”“뭔데?”하예정은 눈을 힐끗하고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하예정도 SNS 계정이 있지만 가끔 자기의 수공 작품을 찍어 업로드할 뿐 팔로우도 얼마 없었다. 하지만 얼마 없는 팔로우는 모두 그녀의 찐 팬이다.“누가 전씨 가문 도련님한테 고백했대!”“그래.”하예정은 관심이 없었다.그녀는 평생 전씨 가문 도련님과 얽힐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굳이 시간 낭비를 해가며 지켜볼 필요는 없었다.“내가 듣기로는 전씨 가문 도련님에게 눈독 들이는 여자들이 그렇게 많대. 전씨 가문 주인이자 전씨 그룹 총수니 걸어만 다녀도 돈 냄새가 아주 그냥. 그런 남자한테 시집가면 평생 팔자 피는
“만약 정말 하자 있다면 성소현은 헛수고 한 거지.”심효진이 아쉽다는 말투로 말했다.“전씨 가문 도련님에게 공개 고백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인데 결과가 없으니 아쉬운걸. 근데 진짜 하자 있는 거 아니야?”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그녀들도 그저 추측할 뿐이다.물론 전씨 가문 도련님이 성소현의 고백을 받아들여 결혼이라도 한다면 간접적으로 하자 있는 남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게 된다.하지만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하예정은 전씨 가문 도련님에 대한 뉴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찌라시를 좋아하는 심효진을 통해 들을 뿐이다.하예정은 더는 관심 밖의 일에 관해 얘기하기 싫어져 뜨개바늘을 꺼냈다.중얼거리며 실검을 보고 있던 심효진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더니 카운터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하예정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야, 심효진 너 미쳤어? 깜짝 놀랐잖아.”“이 사람들이 진짜! 이건 너무 하잖아!”심효진은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하예정에게 휴대폰을 넘기며 화를 내며 말했다.“예정아, 이것 좀 봐. 이거 너랑 예진 언니 아니야? 이름도 밝히고 사진까지 떴어. 사진 너랑 예진 언니 같은데. 너랑 예진 언니 가족도 외면하는 불효자라네. 할머니 아픈데 관심도 안 하고 한 번도 만나 뵌 적도 없다고 떴어. 어르신이 너와 예진 언니 그리워하다 중병에 걸리셨대.”그 말을 들은 하예정은 미간을 찌푸렸다.하예정은 이내 심효진의 휴대폰을 넘겨받고 뉴스를 확인했다. 사진을 보니 확실히 두 자매의 유년 시절 사진이었다.내용을 읽어보던 하예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보나 마나 고향의 진상 중 한 사람이 짓이 뻔하다. 하지만 상대가 하지명인지는 확실치가 않았다.뉴스에는 이름과 사진, 전화번호까지 첨부해서 올렸다. 상대는 자매를 불효자로 만들어버렸다. 그 뉴스는 두 자매가 어르신의 손에서 자라 학업까지 마쳤건만 그 뒤로 어르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결국 어르신은 자매를 그리워하다 중병에 걸리게 되
이날 저녁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돌아오는 날은 일요일이었다.휴식날인데 우빈이는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우빈이는 일어난 후 곧장 하예정이 자는 방으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다. 전태윤이 안에서 방문을 열어주었다.“이모부, 이모 일어났어요? 들어가서 이모랑 같이 놀래요.”전태윤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꼬맹이와 화내지 말자고 스스로 가슴을 달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우빈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좀 더 자지? 평소에 어린이집 가야 하는 날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더니 쉬는 날만 되면 아주 일찍 일어나더라.”우빈이가 입을 뾰족이 내밀면서 말했다.“이모부, 나는 한 번 깨어나면 더는 못 자요. 나랑 놀아 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 심심해요. 이모 찾아와서 노는 수밖에 없어요.”현재 우빈이는 시 중심에 자리 잡은 전태윤의 개인 별장에서 지내고 있다. 서원 리조트에 있을 때는 그나마 함께 놀아 주는 어린이들이 있었기에 이모를 귀찮게 굴지 않았다.전태윤은 하는 수 없이 두 팔로 우빈이를 부쩍 들어 품에 안으면서 말했다.“이모는 아직도 자고 있어. 이모부가 우빈이랑 같이 놀아 줄게. 뭐 놀까?”“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면 좋지 않을까?”우빈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싫어요. 혼자 놀면 재미가 없어요. 이모부는 장난감도 안 놀 거잖아요.”전태윤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알았어. 이모부랑 같이 아침 조깅하러 나갈까? 이모부가 가서 운동복을 갈아입고 나올 테니 얌전하게 기다려야 해?”그는 우빈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서 내려놓으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신신당부했다.“침실에 들어가서 이모를 깨우면 안 돼. 알았지? 이모부가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올 테니.”우빈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전태윤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서 먼저 운동복 바지부터 바꿔 입고 우빈이가 그사이에 침실에 들어가서 하예정을 깨울까 봐 걱정되어 웃옷을 입으면서 밖으로 나왔다.우빈이가 조용하게 제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야 전태윤은 안도의
윤미라는 아들 노동명이 무서웠다.“알았어. 꾸준히 재활 치료할 거야. 네가 돌아올 때면 내가 2~3m나 걸을 수 있을지도 몰라. 참, 언제 돌아올 거야?”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대답했다.“설까지 있을 계획에요. 설날이 되면 제가 돌아갈게요.”“그렇게 오래 있겠다고? 우빈이는 어쩌려고?”“예정이가 돌봐주기 때문에 괜찮아요. 제가 보고 싶을 때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우빈이 보러 가주세요. 시간이 없으면 제부한테 부탁해서 우빈이를 저한테 데려오라고 하는 수밖에 없고요.”하예진은 점점 더 바빠질 것이다.당분간 아들 우빈과 함께할 시간이 적을 것이다.“우빈이가 태어날 때부터 예정이가 곁에서 보살펴서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설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요.”“사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 그래!”노동명이 한 마디 내뱉었다.우빈이는 핑계일 뿐, 사실 노동명이 그녀가 그리웠다.시간이 그토록 오래 걸리면 노동명은 자신이 하예진이 무척 보고싶을 것으로 예상했다.전화도 하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지만 그리움의 고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우빈은 어려서부터 녀석을 키워준 하예정이 있어서 하예진이 곁에 없다고 해도 바로 적응할 수 있지만 노동명은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요즘 그는 매일 하예진을 보는 것에 익숙했다.“예진아,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내가 혼자 널 보러 가도 돼? 걱정하지 마. 우리 집에 개인 비행기가 있어서 내가 그 비행기를 타고 경호원들과 함께 가면 돼. 경호원들이 날 돌봐줄 거야. 네가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거고. 널 보러 갈 뿐이야. 너랑 밥 먹고 얘기도 하면서 말이야. 내가 주말마다 널 보러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올게. 나도 출근해야 하니까.”하예진은 마음이 따듯해졌다.“그럼 주말에 우빈이도 데리고 오세요.”“난 너와 단둘이 주말을 보내고 싶은데 우빈이 녀석도 데리고 가야 해?”하예진은 얼굴이 빨개졌고 이내 웃으면서 대답했다.“동명 씨가 혼자 온 걸 알게 되면 우빈이가 삐질걸
“앞으로 더는 허튼 생각 하지 말아요. 저는 단 한 번도 동명 씨를 싫어한 적이 없어요. 제가 돼지처럼 뚱뚱하고 못생겼을 때도 동명 씨는 저를 싫어하지 않았던 것처럼요.”노동명은 급히 끼어들었다.“넌 못생기지 않았어. 전혀! 예전에 통통할 때도 못생긴 편은 아니었거든. 복스러워 보였어.”“못생긴 거 맞아요. 저는 거울만 봐도 뚱뚱한 제가 너무 싫었어요.”바보 같은 짓은 한 번만 하면 충분했다. 하예진은 다시는 예전처럼 폭식하지 않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려고 노력했다.살을 빼기 전에 하예진은 살이 너무 많이 쪄서 지방간뿐만 아니라 요산 수치도 높았다.체중 감량 후 요산뿐만 아니라 지방간 수치도 모두 많이 좋아졌다.“하예진아, 우빈한테 장난감도 사주고 옷도 사줬는데 나한테는 뭐 사준 거 없어?”노동명이 화제를 바꾸어 질투하기 시작했다.“동명 씨는 부족한 게 없잖아요. 우빈이는 아이라서 너무 빨리 커요. 해마다 새 옷을 사줘야 하지만 동명 씨는 이젠 다 큰 성인이라 작년의 옷을 올해에도 입을 수 있잖아요. 돌아가게 되면 강성의 특산 제품을 가져다드릴게요.”노동명은 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우빈이는 크면 남의 집 남편으로 되어 우빈의 아내가 그를 걱정하고 보살피게 될걸. 결국, 내가 영원히 네 곁에 있을 텐데 나를 더 관심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새 옷 사줘. 네가 사준 옷이면 난 다 좋아.”하예진은 하예정에게 거의 선물을 주지 않았다.지난번 하예진은 재혼하고 싶지 않다며 노동명의 감정을 거절했다.그러나 지금, 하예진이 시집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나 다름없다. 모두의 눈에는 두 사람이 연인으로 보였다.노동명도 자연스레 하예진의 남편 역할을 하고 있었다.노동명은 하예진의 여생을 함께하려고 한다.하예정이 끝까지 노동명에게 시집가지 않더라도, 그가 여전히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지금처럼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고 남은 인생을 그녀와 함께할 것이다.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선물을 너무 받고 싶었다. 가격을 따지
이윤미가 말을 꺼냈다.“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헤어스타일을 바꿨을 뿐이에요. 사람들을 몰래 예진 씨를 따르라고 한 것은 감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뒤를 따라가서 예진 씨의 몸매를 익히게 하려고 그런 거예요. 앞으로 예진 씨가 변장하더라도 그녀의 몸매에 대한 인상으로 분장한 예진 씨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해요. 제가 예진 씨와 만날 때마다 예진 씨의 안전을 반드시 책임져야 하니까요.”“만약 그녀가 저를 만나러 오는 도중에 사고가 나면 하예정 일행은 아마 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지도 몰라요. 그리고 예진 씨가 강성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몰래 그녀를 도와주세요. 그저 우리 엄마와 그 늙은 남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도와주면 돼요.”이윤미가 말하는 늙은 남자는 정군호가 아닌 이은화의 특별 비서였다.방윤림은 예의 갖추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아가씨, 밤이 점점 깊어지는데 얼른 돌아가세요.”이윤미는 한숨을 쉬었다.“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집에는 따뜻함이 없어요. 서로 다투고 경쟁하고 눈치 보면서... 좋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방윤림은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몰랐다.주인의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일개 비서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이윤미는 곧 방윤림과 함께 떠났다.한 시간 후.하루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다시 착용한 뒤 가발을 쓰고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이윤미가 선물한 인간 얼굴 가죽을 쓰기 아까웠다.그렇게 전업적인 도구는 가장 필요한 곳에 써야 낭비하지 않는다.하루 호텔은 전호영이 강성에서 소유하고 있는 호텔 본점이다. 하예진이 분장한 이유는 전호영에게 폐를 끼치게 하고 싶지 않을 뿐, 그를 경계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 가죽을 쓸 필요 없었다.하예정은 그녀가 묵고 있던 룸으로 돌아와 방문을 잠근 뒤에야 휴대전화를 꺼내 노동명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노동명이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도 주무세요?
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부부 사이에 한쪽이 바람을 피우면 금방 금이 생기게 되는 법이죠. 이혼을 안 했어도 서로 고된 삶을 살 테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저의 전남편도 바람을 피우고 저를 폭행하여 이혼했잖아요. 한번이 있으면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이 고치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이혼하면 죽는 것도 아닌데.”이윤미가 말을 이었다.“우리 아버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이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시거든요. 정씨 집안의 친척들도 우리 가문에서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할걸요. 어쩌면 전에 받은 혜택들도 전부 토해내야 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요즘 우리 가문은 편안할 날이 없어요. 저는 왠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이은화의 모진 마음으로는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경혜가 하예진을 강성으로 빨리 오게 한 것은 아마도 이씨 가문이 요즘 혼란스러워 이은화가 하예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예진이 그 틈을 타 사업을 일으킬 수 있고 옛날 사고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다.이 기회를 잡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진은 비록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고 강성에서도 사업이 없지만,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서 있다. 그리고 하예진의 외할머니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였다. 이씨 가문의 친척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예진 씨, 비행기를 몇 시간 타고 방금 도착하셔서 힘드실 텐데 얼른 가서 쉬세요. 일이 있으면 그 번호로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하예진이 관심하며 물었다.“저랑 같이 안 갈실래요?”이윤미는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여기 좀 더 있고 싶어요. 마음도 추스를 겸 조용히 있고 싶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도 엉망진창이에요.”“그
수십 년이 지난 탓으로 법률조차도 이은화의 사형을 선고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이윤미는 적어도 그녀가 큰이모의 후손에게 주인 자리를 돌려줄 수 있었다.그녀는 이씨 가문을 떠나 자신의 회사로 돌아가 생활해도 좋다고 생각했다.이윤미는 이런 원한과 복수에 관한 일을 멀리하고 싶었고 그녀의 소소한 삶을 더 좋아했다.이은화가 옛날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이윤미는 이은화가 그 해에 정말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고 믿었다.단지 가주 자리의 권력을 탐내는 것뿐만이 아닌 사랑 때문에 벌인 짓일 수도 있다.이은화는 지금 70세이고 정군호와 결혼한 지 수십 년이 지났으며 아들딸도 네 명이나 낳았다.하지만 이은화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 능력이 뛰어난 남자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은숙의 특별 비서일 것이다.“제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아요. 저는 제 행동으로 제가 우리 엄마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게요.”하예진은 한참 동안 이윤미를 바라보며 웃었다.“윤미 씨의 진지한 얼굴은 정말 멋있고 아름다워요. 당신 엄마가 보신다면 눈에 거슬릴지도 모르지만요. 이씨 가문의 상황은 어때요? 윤미 씨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다가 이 대표님께 붙잡혔다고 들었는데. 요 며칠 동안 윤미 씨 아버지는 모습조차 내놓지 않는다면서요.”하예진은 이은화와 정군호의 일을 알고 있었다.강성에서 이 불륜 사건은 빅뉴스였다.평소에 정군호랑 같이 다니던 늙은 남자들은 대부분 정군호에게 동정심을 품었다. 이은화가 정군호를 너무 엄하게 관리하여 그에게 자유로울 틈도 주지 않고 용돈도 적게 준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사이좋은 부부 사이라도 오랜 시간 동안 작은 일에 얽매이게 되면 감정이 깨지기도 한다.여자들은 대부분 이은화의 편을 들었다. 이은화가 남편을 관리하는 것이 좀 엄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군호가 만약 이은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닌 이은화에게 이혼을 제기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정군호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우리 엄마가 예진 씨가 오신 것을 알게 되면 아무것도 안 할 리가 없는데. 조심하세요. 아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제가 다 알려드릴게요. 제가 모르는 일은 할 수 없지만요.”하예진은 웃음을 거두며 한참 동안 이윤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윤미 씨, 우리 만난 적 있잖아요. 저도 윤미 씨가 정의롭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대표님 결국 윤미 씨와 피가 섞인 모녀지간인데, 저는 윤미 씨가 이 대표님과 맞서지 못한다고 생각해요.”이윤미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글쎄요. 우리 두 사람은 모녀 맞아요. 저를 저의 어머니와 같은 편에 서지 말라고 하면 제가 분명 스트레스도 받고 또 엄청나게 큰 용기도 필요하겠죠. 예진 씨가 저를 경계하는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저는 정말 예진 씨가 걱정돼서 이러는 거예요. 우리 엄마가 마음이 너무 독하세요. 해본 말이 아니에요. 예진 씨가 여전히 저를 경계하면 저도 더는 묻지 않을게요. 그런데 여기에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맞서게 되면 저를 찾아오셔도 돼요. 제가 최대한 도와드릴 테니까.”“사실 저와 엄마는 모녀간의 정이 별로 없어요. 저는 엄마의 곁에서 자라지 않았고 또 이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스무 살이 넘었거든요. 윤정이가 아직 이씨 가문에 남겨졌고 여전히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요. 제가 저의 엄마와 모녀간의 정이 별로 없다고 해도 우리 두 사람이 친 모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잘 알아요.”“만약 당신들이 없다면 제 생각에는 제가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짊어지고 리더가 되어 우리 가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을 거예요.”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규정을 수정하고 싶었다.그렇게 딱딱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비록 대가가 좀 클 수도 있지만, 이씨 가문을 더 멀리, 더 잘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수정하고 싶었다.이윤미는 명함 한 장을 꺼내 하예진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것은 제 다른 전화번호에요. 아는 사람이 적으니 무슨
“그럼 안전에 유의하시고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저에게 전화하세요.”방윤림이 이윤미에게 당부했다.이윤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항상 방 비서에게 의지할 수는 없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암살을 당하더라도 이윤미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능력을 갖추었다.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면 이렇게 자라지 못하고 일찍이 양어머니의 학대를 받아 죽었을 것이다.방윤림과의 통화를 마친 이윤미는 곧바로 약속 장소로 차를 몰았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하예진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하예진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누군가의 차가 오는 것을 보더니 창문을 조금 눌렀고 이윤미가 하예진의 차 옆에 주차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선글라스를 먼저 벗은 이윤미는 얼굴의 가죽을 벗어 던져 본모습을 드러냈고 차에서 내려 하예진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하예진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어떻게 저인 것을 알았어요? 두렵지 않아요?”“지금 이 시각에, 또 이렇게 외진 곳에 주변에 주택도 없는데 겁이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이 밤에 이런 곳으로 오지 못할걸요. 그리고 저기에 묘지도 있는데 이런 곳에 예진 씨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겁니다.”하예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윤미가 온 후에야 약속 장소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발견했다.하예진도 한참 후에야 차를 세울 곳을 찾아 이윤미가 오기를 기다렸다.지금 그녀들이 주차한 곳은 방윤림이 그녀들에게 준 주소에서 수백 미터 떨어져 있었다.“묘지에서 이렇게 가까운 줄은 몰랐어요. 만약 제가 알았더라면 아마 혼자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귀신이 무서워서요.”이윤미도 웃었다.“귀신이 뭐가 무서워요? 사람이 더 무섭죠.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 못 들어보셨어요? 예진 씨 분장 기술도 꽤 좋네요. 제가 제 부하들을 하루 호텔 입구에 보내 예진 씨를 기다리게 했거든요. 여기로 오시는 길에 예진 씨를 몰래 보호하라고 지시했는데 예진 씨가 나오는 것을 못 봤다고 하더라고요.”
곧 하예진은 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에서 나왔다.하예진은 방윤림이 그녀에게 준 그 주소대로 내비게이션을 켜고 차를 몰았다.노동명이 전화했다.하예진은 차의 속도를 늦춘 다음 노동명의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저 지금 나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고 해요. 지금 운전 중이니 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요.”“알았어. 운전 조심하고.”“네.”하예진은 하예정과 달리 천천히 차를 몰았다.다행히 하예정이 시내에 살고 있어서 차를 빨리 몰지 못했다. 만약 차가 적은 외진 곳으로 가게 되면 하예정은 비행기를 운전하는 것처럼 매우 빨리 몰 것이다. 전태윤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지, 그가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면 아마 하예정이 운전대조차 잡지 못하게 할 것이다.차를 몰고 있는 하예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동명은 이내 전화를 끊었다.하예진이 변장하고 남몰래 혼자 차를 몰고 이윤미를 만나러 간 것을 알면 노동명은 아마도 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올지도 모른다.하예진은 노동명이 자신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고 있어서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방윤림이 준 그 주소는 가까운 곳이 아닌 꽤 외진 곳에 있었기에 내비게이션에는 차로 한 시간 이상 가야 도착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하예진이 차를 몰고 호텔을 나서자 이윤미가 방윤림에게 물었다.“예진 씨 나오는 거 봤어요?”방윤림이 대답했다.“제가 종업원에게 부탁해서 쪽지를 보냈으니 바로 떠날 겁니다. 하예진 씨가 방금 관성에서 왔기 때문에 낯선 곳이고 차량도 없으니 택시를 탈 것 같습니다. 아가씨도 출발하시면 됩니다. 하예진 씨가 곧 약속 장소로 갈 겁니다.”방윤림은 하예진을 만난 적 있었는데 하예진이 대담하고 세심하다고 추측했다. 하예진이 강성으로 온 목적이 이씨 가문과 연관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방윤림은 하예진이 이씨 가문 때문에 강성으로 왔으니, 이윤미가 만나자고 하면 반드시 만나러 갈 것으로 생각했다.“사람을 시켜 예진 씨를 은밀히 보호하라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