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는 언니와 강일구도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직접 그녀를 안고 차에서 내리는 행동에 그녀는 약간 부끄러워 났다.그에게 안겨 차에서 내리는 순간 익숙한 향기가 그녀의 코를 자극하였고, 그녀는 그만 참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여전히 촉감이 좋았다.‘말로는 내 배려가 필요 없다고 하면서, 안으니 그 틈을 타 손을 대다니. 이따 저녁에...'전태윤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자신의 욕망을 억눌렀다. 하예정을 땅에 내려놓은 후 전태윤은 다시 차에 가 주우빈을 안아 땅에 내려놓았다.“이모부.”주우빈은 애티난 목소리로 전태윤을 불렀고, 전태윤이 두 손을 내밀어 안으려고 하자, 곧바로 가까이 가서 안겼다. 전태윤은 재빨리 받아안은 후 꼬맹이를 높이 안아 올렸고, 꼬맹이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잠시 놀아준 후에야 전태윤은 아이를 땅에 내려놓으며 물었다.“우빈아, 이모부 보고 싶었어?.”주우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전태윤은 온화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주우빈의 얼굴에 두 번 뽀뽀를 해주었다.“이모부도 우빈이가 엄청나게 보고 싶었어.”하예진이 차에서 내린 것을 보고 그는 인사를 건넸고 그녀도 웃으며 그에 응했다.“예정 씨.”강일구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고 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에 답했다.“일구 씨는 설을 쇠러 고향에 가지 않으셨나요?”아파트의 사람들은 대부분 설을 쇠러 고향에 돌아갔고 관성에 남은 사람은 소수였다.강일구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돌아가려면 돈이 많이 들어서요. 일 년 내내 모아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데 설이 돼서 다 쓰고 나면 모은 보람이 없잖아요. 올해는 돌아가서 설을 쇠지 않으려고요. 부모님께 설을 쇠시라고 각각 몇십만 원씩 보내드리고 나니 제가 모아둔 돈이 거의 바닥나 버렸어요.”하예정은 웃으면서 말했다.“그건 그렇네요. 사실 일구씨 부모님을 여기로 모시고 와도 좋은데...”사람들은 1년 내내 몇백만 원 정도 모아뒀다가 설을 쇠면 이곳저곳에 자기도 모르게 모아둔 돈
강일구는 떠난 지 몇 분도 안되어 다시 전태윤의 전화를 받았다.“일구야, 돌아와서 해야 할 일이 더 있어. 여전히 물건을 옮기는 일이야. 이번에는 물건을 8층으로 옮겨야 해. 물건이 좀 많기도 하니 운반비는... 예정아, 일구에게 운반비는 얼마나 지불할까?”전태윤은 휴대전화에서 얼굴을 떼고는 하예정에게 물었다.하예정은 아주머니가 보내온 그 선물들을 보고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절반이 언니 몫이라고 해도, 나머지를 강일구 혼자 옮기게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강일구 씨한테 와서 보고 직접 가격을 알려달라고 해요.”이미 몇 번 거래하여 강일구와도 익숙해진 사이라 운반비를 너무 적게 주면 미안할 것이고, 너무 많이 주면 손해를 볼 것 같아 아예 강일구한테 가격을 부르라고 하였다.강일구는 보기에도 무던하고 성실한 사람인지라 터무니없이 값을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알겠어. 일구야, 먼저 와 봐.”“금방 갈게요!”강일구는 큰 도련님에게서 또 몇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게 응했다.30분 후.“여보, 나 아직 밥 못 먹었어.”전태윤은 문을 닫으며 말했다.강일구는 짐을 옮기는 것을 도운 후, 하예진 모자를 집으로 돌려보냈고, 이경혜가 예진에게 준 선물도 같이 옮겨갔다.운반비는 전태윤이 미리 지불했다. 그는 전태윤을 따라 A시에서 돌아온 후로 많은 용돈을 벌었는데, 이는 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하예정은 이모가 보내준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의 말을 듣고 본능적으로 대답했다.“나도 아직 밥 못 먹었어요. 슈퍼마켓을 한참이나 돌아다녔는데... 당신이 돌아와서 참 다행이에요. 만약 나 홀로 이 물건들을 위층으로 옮기려면 아마 피곤해 죽을 거예요.”전태윤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강일구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다.‘도련님께서 돌아오시지 않으면 사모님께서 절 찾으신대도 도울 방법이 없는걸요.’“앞으로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일구한테 말해. 일구는 돈만 충분히 쳐주면 일을 잘 처리하거든. 그럼 난 가서 밥 차릴게
전태윤은 두 시간이나 들여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식탁 위에는 그가 직접 요리한 음식들로 가득 차려져 있었고, 모두 하예진이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전태윤은 모처럼 휴대전화를 꺼내 포토를 찍어 카카오 스토리에 올렸다.지난 번에 올린 이후 전태윤의 스토리는 오랫동안 잠잠했다.포토가 스토리에 올라오자, 그의 회사 동료들과 중요한 고객들은 재빠르게 ‘좋아요'를 누르며 댓글을 남겼다.「전 대표님, 지금 바로 달려갑니다.」「대표님, 요리 솜씨가 이렇게 좋은 줄 처음 알았어요.」「대표님, 택배로 보내주세요. 제가 대신 다 먹어줄게요.」「형수님은 정말 복이 많으시네. 난 몇 년 동안 널 위해 일을 해 왔지만, 아직 네가 볶은 야채 한 가닥조차도 먹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야...」이 댓글은 소정남이 남긴 말이었다.전태윤은 포토를 올린 후 ‘좋아요'와 댓글은 보지도 않고 휴대전화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은 방금 욕실에서 목욕하고 나오는 참이었다.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바로 입을 열었다.“너무 불공평해요.”전태윤은 웃으며 다가가 허리를 살짝 굽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당신은 연습이 적어 체력이 안 따르는 거야. 앞으로 연습 많이 하면 돼.”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자기 사랑하는 와이프에게 꼬집힘을 당했다.“악! 아파!”전태윤은 일부러 아픈 얼굴을 하며 소리 질렀다.“이건 남편을 죽이는 거야.”하예정은 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엄살도 참 잘 부리네요. 예전에는 이 정도론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았으면서... 많이 아파요? 저에게 돌려 꼬집을래요?”전태윤은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어떻게 감히 당신을 꼬집겠어. 사랑하기에도 모자라는데.”“태윤 씨도 참. 입에 꿀 발랐어요? 옛날의 당신은 말도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 말이예요...”전태윤은 그녀가 머리를 다 감은 것을 보고 헤어드라이어를 가져와 머리를 말려주면서 말했다.“예전과 어떻게 비해, 지금은 진짜 부부가 됐잖아. 예전과 아주 다르지.”
심효진은 이 말을 할 때 소정남을 보며 말했는데, 소정남은 순간 산더미 같은 압력을 느꼈다.그는 요리 솜씨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전태윤처럼 호텔 셰프 못지않은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없었다.그는 마음속으로 전태윤에 대해 불평을 토했다.‘이러다가 우리 같은 싱글들은 와이프를 얻기 더 힘들어지겠어.’“효진 씨도 앞으로 행복할 거예요.”소정남은 요리 솜씨가 좋지는 않지만, 와이프에게 잘해줄 거라고 자신을 믿고 있었다. 만약 심효진과 사귀게 된다면 반드시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심효진은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앞으로 내가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르죠. 사랑과 결혼은 다르니까요. 연애할 때는 달콤해도 결혼한 후면 현실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연애할 때 애써 숨겨둔 단점들이 모두 드러나도 서로를 계속 감싸줄 수 있어야 결혼이 지속될 수 있을 거예요. 이사님은 요리할 줄 모르시죠?”소정남은 솔직하게 말했다.“요리를 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잘하지는 못해요. 뭐, 한 끼 정도 요리하는 건 괜찮을 거예요. 효진 씨, 혹시 남편을 선택하는 기준이 전태윤만한 요리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 건가요?”예전에는 남자가 아내를 택할 때 요리 잘하는 여자를 택했었다. 이제는 이것이 여자가 남편을 택하는 기준이 된 건가?‘모두 태윤이가 너무 완벽한 탓이야. 같은 남자로서, 같은 명문가 출신으로서, 그 녀석은 왜 그렇게 완벽한 거지? 어디 단점을 찾을 수가 없잖아.'전씨 할머니가 손자 한명 한명을 여러모로 훌륭하게 잘 키워낸 것이 분명하다.“우리 집 요리사는 요리를 아주 잘해요.”소정남이 한마디 덧붙였다.심효진은 음식을 한입 먹고는 말했다.“나도 내 미래의 남편이 꼭 엄청난 요리 실력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저 이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결혼 후 날 이렇게 도와주면 내가 힘들지 않을 것 같아서요. 난 부부간의 평등을 요구하는 거예요. 남편을 양반처럼 모실 생각은 없거든요.”“우리 집에는 요리사가 있으니 효진 씨는 따로 요리하지 않아도
소정남은 소씨 가문의 인맥을 이용하여 그녀의 조상들까지 낱낱이 캐냈다. 심지어 그녀의 할머니가 아이를 몇 명 낳았고 그중 몇 명이 살아남았는지 등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실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그녀는 아버지 형제자매가 다섯 명인지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를 다섯 명만 낳은 줄로 알고 있다.언젠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정남은 그녀의 아버지는 원래 9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는데 그중 5명만 살아남았고, 4명은 유아기에 사망했다고 말했다.의아해난 그녀가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아버지마저도 그 사실을 모르고 계셨다. 할머니께 다시 물어보니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앞에 네 아이는 모두 요절하고 뒤에 다섯은 모두 살아남아 그녀의 아버지마저도 자신이 네 명의 형제를 잃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하신다.예전에는 생활 조건이 좋지 않아 많은 사람이 아이를 많이 낳았지만, 아이가 죽는 일이 흔히 있다고 한다.그 일은 심효진으로 하여금 소씨 가문이 생각보다 더 강하고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자신은 소정남 앞에서 발가벗은 것처럼 비밀이 하나도 없지만 정작 자신은 소정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그녀는 소정남과 소씨 가문의 힘이 두려워 비록 소정남을 좋아하지만, 한동안 그 사랑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소정남은 실망했지만 낙담하지 않았다.“좋아요, 얼마든지 기다릴게요. 당신이 나에 대해 잘 알고 내 여자친구가 되려고 할 때까지 말이에요.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이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릴게요. 하지만 지금 왜 나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연애하면서 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될 텐데도요?”심효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이사님, 난 당신 뒤에 있는 소씨 가문의 힘이 두려워요. 아무도 베일에 싸여있는 당신네 가문을 진정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들은 알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뭐든 똑똑히 파헤칠 수 있잖아요. 우리가 소개팅하기도 전에, 당신은 이미 나와 내 가족 모두를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난 당신이 가문
이쪽의 소정남은 고백에 실패했지만, 저쪽의 전태윤 부부는 깨 쏟아지는 신혼의 달콤함을 즐기고 있었다.저녁 식사 후.하예정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았고, 전태윤은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있었다. 하예정은 이런 생활이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잠시 앉아 있던 그녀는 일어나서 부엌문에 기대어 설거지하는 전태윤을 지켜보았다.“왜, TV 보기 싫어?”그녀의 시선을 느낀 전태윤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고는 설거지를 계속하였다.“평소 드라마를 잘 안 봐서 그런지, 채널을 돌려도 보고 싶은 드라마가 없어요. 다 예전만 못한 것 같고, 이펙트도 너무 과장된 거 같고. 아무래도 내가 나이가 많은 탓인 것 같네요.”전태윤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제 몇 살인데 나이가 많다고 그래? 평소에 늘 밤늦게 돌아오는 당신이 언제 드라마를 볼 시간이 있겠어? 나도 TV 볼 시간도 없고 드라마 볼 시간도 없지만, 당신의 평가에는 인정해. 우리 회사에도 프로듀서가 있고, 직접 제작한 드라마도 있는데, 당신이 좋아할지 모르겠어.”“됐어요, 안 봐요, 드라마에 빠지면 매일 드라마만 보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돼요. 아직 채 만들지 못한 물건이 많은데 드라마 볼 시간이 있으면 공예품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돈 더 벌 거예요.”일 얘기가 나오자, 하예정은 갑자기 전태윤에게 물었다.“태윤 씨, 당신 어머니께서 나에게 예의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는데, 배워야 할까요? 혹시 어머니께서 내가 예의범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셔서 예의를 배우라고 권하시는 거 아니에요?”전태윤은 깨끗하게 씻은 접시를 넣으면서 말했다.“아니야, 우리 엄마는 당신에 대해 매우 만족하셔. 그날도 봐봐, 엄마가 나더러 부엌에 들어가 일하라고 하셨잖아. 완전 당신 편이야, 당신이 싫으면 이렇게 도우라고 하시겠어?”어머니가 하예정을 싫어한다 해도 그에게 영향 주지는 않았다. 그는 어머니에게 좌지우지되는 사람이 아니니까.“엄마는 기질이 좋은 당신이 예의를 배우면 더 좋아질 거로 생각하신 거지 다른 뜻은 없어. 물
전태윤은 테이블을 거두고 행주를 깨끗이 씻은 후 손들 씻고 돌아서서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웃었다.“당신이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배우기 싫으면 그만둬. 난 상관 안 해.”하예정은 그의 손을 잡고 베란다로 가서 그의 어깨에 기대어 바깥의 고층 빌딩을 바라보았다.“맞은편 빌딩 창문에 불빛이 얼마 안 남았네요. 모두 설 쇠러 고향에 돌아갔나 바요.”“내일 아침 우리도 돌아간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 진작 사람을 시켜 방을 치워놓으셨대.”전태윤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로 머리를 기대고 앉아있는 이 시각이 더없이 달콤하고 따듯했다.“예정아, 우리 전씨 고택은 매우 낡았으니 꺼리지 마.”“얼마만큼 낡았는데요? 흙벽돌 기와집인가요? 아니면 초가집이에요?”전태윤은 웃었다.“그 정도는 아니야. 조상께서 남기신 오래된 집이어서 비록 매년 보수하고 있지만, 낡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리고 우리는 대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고 예전에 당신에게 말했었던 것 같은데...”“고택이 얼마나 큰가요?”“우리 집 조상들은 꽤 오래전부터 장사를 시작하여 약간의 재물이 있었고, 집은 면적이 꽤 넓어 그때 당시에 놓고 말하면 호화 저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어. 비록 집집이 따로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모두 하나의 대문을 통해 출입하고 있어.”“그렇게 오래 되였는데도 아직 사람이 살 수 있는걸 보면 정말 든든하게 지은거네요.”전태윤은 가볍게 웃었다.“우리가 따로 집을 지을 돈이 없어서 조상들이 남긴 오래된 집에서 모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부터 그들은 진짜 고택을 떠나 지금의 서원 리조트를 세웠다. 젊은 세대에겐 서원 리조트도 고택에 속했다. 형제들은 모두 자기 소유의 별장에 살고 있어 명절이 되여야만 비로소 리조트로 돌아가곤 했다.“별장도 한 채 있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전액으로 샀는데, 어떻게 집을 지을 돈이 없겠어요? 위 세대분들이 옛것을 그리워하셔서 고택에서 살고 계신 거겠죠.”전태윤이
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도 일깨워 주었다.“당신도 옷을 더 입어요. 감기에 걸리면 매일 한약으로 시중 들어드릴 테니.”“당신이 매일 지켜보는데, 내가 어떻게 감히 아플 수 있겠어?”그 며칠 동안 먹은 한약은 그를 평생 두렵게 한다.하예정에게 옷을 가져다주려고 방에서 나오던 전태윤은 그녀의 핸드폰 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하예정은 핸드폰을 꺼내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비로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세요?”그녀가 이렇게 묻는 것을 듣고 전태윤은 낯선 번호라는 것을 알아챘다.전화 저편의 사람은 바로 말하지 않았다.“누구세요?”하예정이 다시 물었다.“누나, 나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예정은 안색이 변하면서 곧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누나, 끊지 마, 방해하지 않을게, 만나지도 않을 테니 그저 얘기만 좀 해. 누나, 나 미칠 것 같아.”김진우는 하예정에게 전화를 끊지 말라고 애원했다.그는 어머니가 정말 하예정에게 보복할까 봐 비록 그녀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전화마저 어머니에게 도청당하고 있어 서점에 가서 하예정을 볼 엄두도 못 냈고, 전화도 하지 못 했다. 이 한 통의 전화를 걸려고 그는 거금을 들여 자신을 감시하는 경호원을 매수하였고, 상대방의 휴대전화를 빌려 하예정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다.하예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김진우가 오랫동안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은 건 심효진의 공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젠 김진우가 자기를 포기하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전화할 줄은 몰랐다.“누구 전화인데?”전태윤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고, 상대편에게 누구세요라고 묻는 것 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자 조금 궁금해 났다.그는 옷을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면서 다시 물었다.“스팸 전화야?”“김진우예요.”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렸다.김진우가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건가?김 대표는 진작부터 두 회사의 합작이 끊긴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
“형인 씨 마음속엔 아직 네가 있을지도 몰라.”노동명이 말했다.그는 오히려 주형인이 우빈 앞에서 그의 험담을 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주형인이 험담하면 할수록 우빈은 그를 싫어할 것이고 오히려 노동명과 우빈의 정이 더 깊어져만 갈 테니까.노동명은 마침내 우빈이 주씨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에게 무척 잘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우빈도 미안했던 모양이다.주형인이 그의 험담을 했기 때문이다.“형인 씨는 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저를 사랑했다면 저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주씨 집안 가족들이 저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어떻게 시어머니와 그의 누나가 저를 비난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겠어요?”“그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이에요.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만약 형인 씨와 서현주 씨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행복하게 살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텐데. 제가 죽든 살든 상관했겠어요? 우빈에 대한 감정조차 옅어졌을걸요. 그들만의 아기가 생기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워낙 깊지 않은데다 감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노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문득 화제를 돌렸다.“맞아. 그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과 일들을 생각하지 말자. 나 내일 관성으로 돌아갈 거야. 예진아, 나랑 같이 가서 새 옷 몇 벌 사 오자. 우빈에게 줄 장난감도 좀 골라줘. 내가 매번 선물한 장난감을 녀석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하예진도 전남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진작에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만 노동명 앞에서 전남편 얘기를 꺼내면 노동명이 질투할까 봐 걱정했다.교통사고를 당한 후 노동명도 많이 연약해졌다.주로 다리 장애로 자신감을 잃은 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약해졌다.노동명
하예진이 물었다.“예정이에게 없고 저한테 있는 게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동명 씨가 재활을 꾸준히 하시고 제가 관성에 없을 때 자신을 돌보고 시간이 나면 우빈을 돌봐 주세요. 우빈이도 동명 씨를 보러 자주 갈 거예요. 녀석이 지금 자기 아빠보다 동명 씨를 더 좋아하니까요.”노동명은 의기양양하면서 말했다.“그건 내가 우빈에게 진심으로 대해서 그래. 우빈이 친아빠는 늘 우빈이 앞에서 내 험담만 하거든. 우빈이는 똑똑하니까 누가 좋고 누가 나쁜지 잘 알고 있어. 우빈이 친아빠가 내 험담을 하면 할수록 자기 친아빠를 더 싫어할걸.”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하예진을 바라보았다.주형인에 관한 얘기가 언급되자 하예진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그때 하예진이 입을 열었다.“뭘 봐요? 내가 아직도 그 남자를 신경 쓰는 줄 알았어요? 그 사람은 단지 우빈이 아빠일 뿐이에요. 제가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줄 알았죠? 그 사람을 언급하면 제 기분이 가라앉을 줄 알았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제가 어떻게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제가 아직도 사랑했다면 애초에 이혼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마음이 찢어진 이상 최대한 빨리 이혼하는 것도 좋은 일이죠.”주형인도 약속한 대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더는 하예진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유일한 연관성은 우빈 뿐이었다.그러나 주형인은 하예진과 노동명이 함께 있는 모습을 태연자약하게 지켜보지 못했다.그는 또 노동명이 친아버지인 자신보다 더 나은 계부로 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우빈 앞에서 노동명의 험담을 했다.우빈이 아직 노동명을 두려워할 때,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우빈은 노동명을 대신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다.오늘날 우빈과 노동명의 사이가 매우 좋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주형인 부자가 만날 때마다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이 폐인으로 되었기에 하예진과 함께 한다면서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거나 다름없다면서 노동명의 험담했다.또
모두 웃기 시작했다.전호영은 노동명과 하예진이 돌아오면 요리들이 올라오게끔 미리 준비해 놓았다.그들은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식사 후 고현은 곧 자리를 떠나 고성 호텔로 박 대표를 만나러 갔다.다행히도 하루 호텔과 고성 호텔은 가까웠다. 두 호텔은 길을 건너면 바로 볼 수 있다.그러나 아무리 가까워도 전호영은 고현을 배웅해 주겠다고 고집했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호텔을 나와 호텔 근처 거리를 거닐며 강성의 밤거리를 구경시켜 주었다.“기분은 좀 나아졌어?”노동명이 뒤에 있는 하예진에게 물었다.하예진은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네, 많이 나아졌어요. 앞으로 저에게 닥칠 일들이 지금보다 더 가혹할 거에요. 만약 이번 일조차 직면할 수 없다면 제가 강성에 있을 필요도 없이 관성으로 돌아가 계속 저의 레스토랑을 돌보는 게 나을걸요.”그렇게 하면 이경혜의 바람과 기대를 저버리게 될 것이다.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다행이네. 이렇게 오래 돌아다녔는데 뭐 사고 싶은 거 없어? 원하는 게 있으면 내가 선물로 사줄게.”하예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제가 사면 돼요. 선물할 필요 없어요.”“난 지금 네 남자 친구거든.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할 남자라고. 나도 너에게 선물을 준 적 없는데. 사실 우리 집 객실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러 선물로 가득 차 있거든. 전부 내가 너에게 준비한 선물들이야. 어떤 것은 너에게 선물했지만 네가 받지 않은 물건들이고 어떤 것은 내가 너에게 미처 선물하지 못한 것도 들어있어. 네가 받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먼저 그 방에 넣어두었거든. 앞으로 우리가 한 가족으로 되면 그 물건들은 어차피 너의 것으로 될 테니까. 네가 가지지 않으면 우리 집안의 돈이 낭비되는 거나 다름없을 텐데. 너도 우리 가정의 돈이 낭비되는 게 싫지?”하예진은 말문이 막혔다.과거에 그녀는 노동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재혼하고 싶지 않고 돈만 벌고, 사업을 일으켜 우빈을 잘 키워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두 사람을 1층으로 안내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에서 고현에게 뽀뽀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그는 고씨 그룹에서 고현에게 체면을 세워 주어야 했다. 어쨌든 고현은 고씨 그룹의 대표님이니까.전호영이 차를 몰고 고현과 함께 고씨 그룹을 떠났고 고현의 운전기사와 경호원들도 두 사람 뒤를 따랐다.식사를 마치고 나면 고현은 또 박 대표와 약속이 있었다.전호영은 그들이 하루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하예진과 노동명은 아직 호텔에 돌아오지 않았다.하예진 일행은 약 30분 뒤에야 호텔로 돌아왔다.하예진은 어두운 얼굴로 노동명을 호텔로 밀고 들어갔다. 노동명은 계속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못 듣는 체했다.노동명은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위로의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하예진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고 노동명도 더는 위로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위층으로 올라가 전호영이 안배해 준 식사하는 룸에 도착해서야 하예진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동명이 형.”전호영은 하예진이 노동명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급히 일어나 하예진을 도우려고 했다.“호영 씨, 동명 씨가 혼자 몇 걸음 걸을 수 있어요.”하예진은 전호영의 도움 없이 노동명의 휠체어를 식탁 앞에 세웠고 노동명은 스스로 일어나 두 걸음 걷다가 다시 탁자 앞에 있는 걸상에 앉았다.고현도 일어섰다. 그녀는 예의 바르게 두 사람과 인사를 했다.“돌아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하예진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괜찮아요. 저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언니, 일은 다 처리했어요?”모두 자리에 앉은 후 고현은 두 사람에게 각각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주며 관심 있게 하예진에게 물었다.“다 처리했어요.”하예진이 대답했다.“잘됐네요. 노 대표님, 내일 돌아가시려고요?”고현은 나지막이 물었다.노동명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예진이 보러 온 것뿐이
“엄마.”고현은 진미리의 전화를 받았다.“현아, 퇴근했어?”“네, 막 퇴근하려고 그래요. 왜 그러세요?”“드레스 말고도 평소에 입을 옷도 몇 벌 더 사줄까?”고현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거절했다.“필요 없어요.”고현은 단지 내일 저녁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여 사람들에게 그녀가 사실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어 전호영이 동성애자가 아닌 정상적인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더는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다들 전호영이 고현을 삐뚤어지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바라보았으나 고현은 정상적인 남자라고 여겼다.진미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필요 없어? 여자 신분을 회복하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내일 저녁에만 드레스 입고 계속 남자 옷을 입고 다니려고?”“네. 원래대로 다니려고요.”고현은 이제 그녀의 가짜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약간 태평공주기 때문에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고 양복을 입어도 남자처럼 보였다.진미리는 계속해서 설득했다.“신분을 드러내기로 했는데 왜 또 남자 행세를 하려고 해? 얼마나 힘들어.”“엄마, 그건 제 습관이에요. 20년 동안의 습관을 단번에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 저의 요구대로 사주세요. 앞으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시려면 엄마 아드님 걱정 좀 하세요.”“빈이 그 자식은 걱정해도 소용없어. 그럼 엄마는 네 요구대로 드레스를 사줄게. 그리고 평소 입을 옷도 몇 벌 사 갈게. 옷장에 넣어두었다가 입고 싶을 때 꺼내서 입어.”“알겠어요.”“그래. 넌 퇴근해. 난 네 아빠랑 밥 좀 먹어야겠어. 네 아빠가 오랜만에 쇼핑하니 너무 힘들대. 먼저 밥 먹고 나서 다시 옷 보러 돌아다닐게.”진미리는 전화를 끊었다.고지호가 곁에 물었다.“현이가 싫대?”고진호 부부는 고현의 도도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옷들을 많이 봤다.“현이가 싫다고 해도 우리가 집으로 사가서 현이 옷장에 넣어두
전호영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니에요. 제가 고현 씨에게 꽃다발을 반년 넘게 보냈지만, 당신은 돈을 낭비한다면서 표정 한 번 변하지 않더니만 갑자기 이렇게 반응이 달라지니 놀라서 그러죠. 고현 씨가 제 꽃다발을 좋아한다고 하니 저도 기분이 너무 좋네요.”고현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책상을 에돌아 꽃다발을 꽃병에 꽂았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보면서 말했다.“너무 예쁘네요. 이 꽃병에 마침 꽉 찼네요.”“그럼요. 저의 마음이니까요.”고현은 다시 돌아서서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출근하기 전에도 책상 위가 깨끗해야 했고 퇴근할 때도 책상 위가 정연해야 했다.“가요. 밥 먹으러 가요. 예진 언니랑 노 대표님께서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 돼요.”전호영은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며 말했다.“제가 왔을 때 동명 형에게 전화했는데 예진 누나랑 지금 돌아오는 길이래요. 조금 먼 거리에 있어서 저희보다 조금 늦게 호텔에 돌아올 것 같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지금은 퇴근 시간대라 길이 막히기 쉽거든요.”두 사람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고현은 남 비서에게 지시했다.“박 대표님께 미팅이 한 시간 늦어진다고 전해주세요.”“알겠습니다.”비서는 고현이 박 대표와의 미팅을 취소하는 줄 알았다. 다행히 박 대표와 미리 말을 해 놓았다.전호영은 고현에게 물었다.“저녁에도 또 일 보려고요?”고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전호영은 곧 그녀의 눈빛의 뜻을 알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저도 사실 매우 바쁘거든요. 매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놀부가 아니라고요.”전호영에게는 미래의 아내에게 구애하는 일도 큰일이었다.그는 매일 고현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정말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호영 씨는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한가한 사람이에요. 전씨 할머니도 호영 씨보다 더 바쁘실걸요.”전호영은 걸어가면서 말을 이었다.“그건 그래요. 저는 우리 할머니에 비하면 덜 바쁘죠. 우리 어
저녁 무렵, 전호영은 그가 자주 사용하는 마이바흐를 몰고 제때 고씨 그룹에 들어섰다.고씨 그룹 건물 입구에서 차를 멈추었다.그는 꽃다발을 안고 차에서 내렸다.양복 차림의 전호영은 언제나 그랬듯 늘 멋졌다.“전 대표님.”그는 꽃다발을 안고 걸어 들어갔고 모두 그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안부를 물었다.전호영이 지나가자 그 직원들은 웃음을 거두어들였다.전호영은 고씨 그룹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다.그의 신분이 높지 않았다면 그 직원들은 가짜 웃음조차 그에게 주기 싫었을 것이다.‘휴, 현이 씨가 여전히 여성 신분을 폭로하기 싫은 거로 보면 아무래도 내 노력이 너무 부족했나 싶다...’전호영은 계속 동성애자라는 누명을 쓰며 강성의 젊은 여성들의 증오와 미움을 견뎌야 했다.그러나 전호영은 곧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그는 고현을 따르기로 한 그날부터 단단히 마음 먹었다.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는 아내를 쫓아다닐 거라고 다짐했다.이렇게 하면 사실 좋은 점도 있다. 바로 고현이 원래 여자였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진정한 연적이 없다는 점이다.그리고 여자 연적들에 대해서도 두려울 게 뭐가 있는가!고현의 여자 신분이 드러나게 되면 그 여자들의 마음은 아마 단번에 무너질 것이다.전호영은 그렇게 기분 좋게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전호영은 남 비서의 도움으로 문을 열고는 그녀에게 서프라이즈를 주려고 살금살금 들어갔다.“나가세요! 노크 다시 하고 들어와요!”고현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전호영은 멈칫했다.고현의 청력이 정말 대단했다.“현이 씨...”고현은 고개를 들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전호영은 즉시 항복했다.“네네네, 나가겠나이다. 노크하고 다시 들어오겠나이다.”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었지만, 고현은 문 여는 소리를 듣더니 다시 노크하고 들어오라고 했다.전호영은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서 나갔다.남 비서는 그가 들어가자마자 다시 나오는 모습을 보고 무
“그래, 일 봐. 엄마가 지금 네 아빠 불러서 함께 드레스랑 하이힐을 사러 갈게.”진미리는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귓가에서 휴대전화를 떼자마자 진미리가 소리쳤다.“여보! 여보!”고진호가 밖에서 대답했다.“왜 그래?”고진호가 곧 밖에서 뛰어 들어왔다.“무슨 일이에요? 너무 큰 소리로 외쳐서 허둥지둥 달려왔는데.”“가요. 당장 옷 갈아입고 나가서 치마 좀 사요. 제가 직접 우리 딸을 위해 드레스를 골라줘야겠어요. 드디어 예쁜 치마를 사서 우리 딸을 예쁘게 꾸밀 수 있게 됐어요.”고진호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우리 현이가 그렇게 말했다고요? 너무 좋은 일이네요. 그럼, 사람 시켜 패션 디자인 사진을 가져오게 해요. 문 나설 필요 없이 사진만 고르면 되잖아요. 우리 현이가 입을 건데 당연히 가장 좋은 옷을 주문해서 제작해야죠.”“그러기엔 너무 늦었어요. 내일 저녁에 입을 드레스라서 시간이 안 돼요. 저한테도 드레스가 많지만, 중년 드레스라서 젊은이가 입기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우리 백화점에 가서 먼저 현물을 사고 나중에 천천히 주문 제작해요.”고진호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우리 현이가 치마를 입고 싶어 하다니... 호영이에게 미리 웨딩드레스를 맞추라고 알려줘야 겠어요. 그럼 곧 결혼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도 큰 걱정거리를 해결할 수 있겠네요.”그리고 나서 고진호 부부는 집중적으로 매일 시시덕거리고 껄렁껄렁한 고빈을 혼내줄 수 있을 것이다.서른이 다 되어가는 고빈 주위에는 예쁜 미인들이 많지만 여자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장녀 고현이 있기 때문에 진미리 부부는 잠시 고현의 인생 대사에 몰두하고 있었다.고현의 일이 곧 결실을 보게 되면 이번에는 고빈의 차례로 될 것이다.두 아이는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시각에 태어났다.“내일 저녁 현이가 드레스를 입고 연회에 참석하는 일은 당분간 호영에게 알리지 마세요. 제 생각에는 현이도 갑자기 치마를 입고 여성 신분을 모두에게 알리려는 것을 호영이가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진미리는
“엄마, 사실 나도 좀 망설여져요.”고현의 말을 들은 진미리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망설일 필요 없어. 너 원래 여자이고 원래 치마 입어도 되는 신분이야. 네가 20년 이상 남자 옷을 입었으니 진작 여자 옷을 입었어야 했어. 호영이도 네가 드레스를 입고 연회에 함께 참석하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어. 그때 가서 다들 네가 여자라는 걸 알게 될 거고 너희 둘이 게이라고 수군대지도 않을 테고. 사실 사람들이 나한테 네가 그토록 훌륭한데 호영 때문에 삐뚤어진다는 말을 했거든. 네가 정상인데 호영 때문에 게이로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사실을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어. 그런데 넌 여자 신분을 되찾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늘 참고 있었지. 그리고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어.”진미리 부부도 사실 큰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있었다.다른 사람의 말들은 고진호 부부가 무시하고 멀리하면 그뿐이지만 친척과 친구들이 와서 설득할 때면 그들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진미리는 결국 고현이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딸이 행복하면 그뿐이라면서 딸의 의사를 존중해 주겠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이 때문에 그 친척들은 몇 년 지나면 고현이 후회할 것이라고 화를 내면서 진미리가 고현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고빈도 따라서 게이로 될 것이고 따라서 손주를 안고 싶어 해도 기회가 없을 거라는 심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이는 진미리를 화나게 했지만 그렇다고 또 어쩔 수도 없었다.“엄마가 좀 이따가 드레스 몇 벌 골라줄게. 네 취향대로 골라봐. 액세서리는 새것으로 살래? 엄마가 몇 벌 골라줄까? 하이힐도 몇 켤게 사줄게. 다 신어 봐.”고현이 대답했다.“엄마가 결정해 주시면 돼요. 제가 내일 오후에 쉬니 집으로 돌아가서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어 볼게요. 하이힐을 신어 본 경험이 없으니 걷는 연습도 해야겠어요. 아니면 추태를 보일지도 모르니까요.”진미리가 웃으며 대답했다.“하긴, 걷는 연습을 좀 해야겠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하이힐을 신고 몇 걸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