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예정은 태윤이 밤늦게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토요일 아침에 함께 시장에 가서 장을 보기로 약속했다,.그리고 할머니와 통화를 하였는데, 오늘 올 시댁 식구들이 아마 두세 테이블 정도는 될거라고 했다. 태윤의 그 많은 남동생들도 모두 오니....할머니는 그녀와 태윤이 이미 혼인 신고를 하였으니 이제는 그들 전씨 가문의 며느리로서 전씨 가문의 어른을 만나는 것 외에, 남편 밑에 있는 동생들도 그녀라는 큰형수와 만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한다.오늘 사야 할 식재료가 많아, 그녀 혼자 가면, 아마 들고 오기 힘들 것 같아 태윤을 불러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그날처럼 태윤은 새벽 6시에 예정의 음성 전화에 잠을 깼다.잠에서 깬 태윤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고 또 참아 가까스로 자기 아내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태윤씨."예정의 맑고 깨끗한 소리가 듣기 좋게 들려왔다."10분 뒤에 나갈게.""좋아요, 제가 제육볶음을 하였으니 이따가 나오면 먹어봐요, 다 먹고 나서 같이 장 보러 가요.""당신…. 몇 시에 일어났어?"이제 새벽 6시에 불과한데 그녀는 이미 아침 식사를 다 차렸다."5시 넘어서 일어났어요."한 사람이 두세 테이블의 식사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예정는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태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통화를 끊는다.그녀가 자기 가족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에 태윤은 만족을 느낀다.10분 후,태윤은 일상복 차림으로 주방에 모습을 드러냈다.예정은 혼자 아침을 먹고 있다가 그를 향해 웃었다. "내가 볶은 제육볶음 한번 먹어봐요, 언니가 내가 볶은 제육볶음이 가장 맛있데요."태윤은 접시를 한 번 쳐다보았는데, 비주얼도 괜찮았고, 식욕도 좋아 보였다. 그는 한 접시의 제육볶음을 다 먹었는데, 확실히 맛있었다. 그녀의 요리 솜씨는 매우 좋은 것 같다. 그녀가 직접 만든 아침을 먹는 것이 밖에서 사온 아침을 먹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그들은 마트에서 두 시간 동안 쇼핑하며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고급차로 외출하는 것이 습관이 된 태윤은 평소에도 몸을 단련하고 킥복싱도 하는 사람이지만, 예정과 함께 2시간 동안 마트를 돌고 음식도 챙겨 드는데 피곤함을 느낀다.그는 이것이 회사에서 서류 처리하고, 회의를 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했다.집에 도착하여 차를 세운 뒤, 예정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전씨 할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예정아, 집에 있어? 우린 지금 아래층에 왔는데....""할머니, 저희 금방 마트에 갔다 오는 길이에요, 거기서 조금만 기다리시면 금방 갈 거예요.""태윤이랑 마트 갔다 왔니?"할머니는 흐뭇하게 들으셨다. 차갑고 도도한 큰손자가, 뜻밖에도 자기 아내와 함께 마트에 장 보러 가다니....가난한 척 하겠다더니.... 그래 이참에 보통 사람답게 살아보라지 뭐."네, 가서 장 좀 보고 왔어요.""태윤이는 평소에 일이 바빠서, 여태 마트에 가본 적이 없으니 데리고 가 구경하는 것도 좋지. 예정아, 힘이 센 태윤에게 물건을 들어 달라 해, 너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고, 알았지?"’할머니, 대체 누가 친손자예요?’차에서 내린 예정은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받으며 한 손으론 뒷좌석 문을 열고 안에서 접을 수 있는 카트 한 대를 꺼냈다."할머니, 걱정 마세요”카트 사이즈가 작아 그녀가 산 야채와 과일을 모두 놓을 수 없었다. 남은 것은 태윤이 모두 들었는데....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할머니, 지금 바로 갈게요.”"그래, 이따 봐."예정은 통화가 끊기자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카트를 끌고 양손에 바구니를 들어 손이 자유롭지 못한 태윤에게 말했다. "태윤씨, 어서 가요. 할머니께서 벌써 아래층에 도착하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대요."곧 그들은 젊은 부부가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예정은 카트를 밀고 있었는데, 그 카트 안에는 그녀가 산 야채, 음료수, 과일 등이 가득
"예정은 아직 모르고 있으니 다들 명심하고 정체를 드러내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첫째 너희 부부는 퇴직금이 없어서 집에서 채소나 좀 심고 꽃 좀 기르고 하며 겨우 생활비 좀 벌 수 있다고 하는거 잊지 말고."“올 때 약속했던 것을 모두 잊지 마, 들통났다 태윤이한테 야단맞으면 나도 어쩌는 수가 없다.”할머니는 지금 큰손자가 돈 많이 못 버는 아주 평범한 남편으로 가장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여, 큰손자를 극구 도울 생각이었다.비록 할머니는 예정이가 절대 돈을 탐내지 않는 좋은 여자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지만 말이다. "알았어요!!!"모두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들은 하예정이 낯설지 않았다, 할머니를 구해준 사람이고, 또 처음에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 사람은 할머니의 아들들과 며느리들이었다.태윤의 엄마는 큰아들이 예정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에 대하여 별로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시어머니가 이미 그녀의 그 도도한 큰아들을 설득하여 결혼하게 하였으니, 그녀도 달리 막을 방법이 없었다. 예정이가 할머니를 구해준 것은 사실이고, 태윤 엄마도 그녀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들 가족도 이미 예정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그녀에게 보답하겠다고 말했었다. 예정은 그들의 보답을 완곡히 거절하였는데, 이는 뜻밖에도 할머니의 마음을 사게 하였다. 할머니는 그녀가 매우 훌륭한 인품을 가진 소녀라고 생각했다.그리고 힘껏 태윤과 예정의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는데, 이제 소원 성취하신 것이다.다행히도 태윤과 예정은 조용히 혼인 신고만 했다. 태윤은 한동안 지켜보면서 그녀가 정말 할머니의 말처럼 좋은 사람이라 확신되야만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했다.태윤 엄마는 마지막에 큰아들과 예정이가 조용히 헤어지길 원한다.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물론 할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예정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할머니.”젊은 부부가 다가왔다.예정은 미소를 지으면서 할머니와 인사를
사교성이 좋은 지율은 가장 빨리 예정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전혁은 큰형수가 형님을 짐꾼으로 만든 모습을 목격한 후, 큰형수를 자기의 든든한 지원자로 보았다.예진은 남편과 아들 우빈을 데리고 전씨 가족들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아내가 다른 사람의 고급차를 긁어 적지 않은 수리비를 보상하여야 하였는데, 태윤이 차주와 아는 사이여서 비로소 2백만 원만 배상하게 되었다. 주형인은 아직 만난 적이 없는 태윤을 정중히 보게 됐다.원래 오늘 두 집 식구의 만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형인은 마음가짐이 바뀌게 되었는데, 직접 태윤을 만난 후, 그의 카리스마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큰 그룹 회장 같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안녕하세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예정의 형부입니다. "형인은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태윤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태윤은 형인과 악수하며 담담하게 형님이라고 불렀고 예진한테 처형라고 인사를 했다.예진은 제부의 잘 생긴 얼굴을 보면서 사진에서 본 것보다 더 엄숙하고, 차갑고, 말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만족했다."우빈아, 이모부께 인사드려."우빈은 씩씩한 생김새에, 눈은 엄마 예진을 닮아 맑고 새까만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눈에 항상 정기가 돌고 있는 것 같아 보는 사람의 귀여움을 자아냈다.태윤은 저도 모르게 귀여운 우빈에게 시선이 끌렸다. "처형, 우빈이 안아봐도 돼요?"”그럼요"예진은 동생에게 아들을 건네주었고 예정은 조카를 받아 안아 다시 태윤에게 건네주었다.예진의 이 동작은 태윤을 하여금 처형은 세심한 사람이란걸 느끼도록 했다. 그가 직접 아이를 받아 안으면 두 사람이 부딪칠까 봐 아이를 먼저 동생에게 넘긴것이다. 그와 예정은 부부이기에 이 정도의 스킨십은 괜찮은 것이다.우빈이는 태윤의 품에 안겨 계단을 올라갔다. 우빈은 아직 말을 잘 못하지만, 사람을 부를 줄은 안다. 보통 아이들은 태윤처럼 차가운 사람을 두려워 하기 마련이다. 전씨 가문의
태윤은 형님과 교류하고 싶지 않았다. 형인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일 뿐만 아니라 또한 예진에 대한 형인의 태도 때문이다.우빈이가 목이 말라 물을 찾고 있을 때, 물이 들어있는 젖병이 자기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형인은 굳이 예진을 불러 아들에게 물을 가져다주라고 하는 것이다.비록 오늘 처음 만났지만, 태윤의 예리한 느낌으로 봤을 때, 형인은 집에서 살림만 하는 아내를 안중에 두지도 않고, 아내가 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이 매우 홀가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것 같았다.전씨 가문의 가풍과 가훈을 지키며 자라온 태윤은 아내를 존중하지 않는 그런 남자를 싫어했다. 그는 하예정과 초고속 결혼을 하였고, 둘 사이에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여전히 예정에게 아내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해줬다.예정은 태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웃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그만두세요.""말을 잘하는 셋째가 형님과 얘기하면 형님이 심심함을 느끼진 않을 거야."전씨 집 셋째는 늘 웃는 얼굴로 누구와도 대화가 잘 통하고, 웃으면서 놀리기도 곧잘 한다."그럼 당신은 나 좀 도와줘요."태윤이가 주방에 들어온 것은 예정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젊은 부부가 주방에서 바쁘게 돌자 양가 가장들은 모두 흡족해했다.예진은 제부가 여동생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어느덧 요리가 끝나고 점심때가 되었다.점심 식사 때 예정의 요리 솜씨를 맛본 양가 가족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전씨 가족들은 평소 산해진미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예정이 만든 집밥을 먹어보니 너무 맛있었다. 하루 종일 떠들썩하게 놀다가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나서야 양가 가족 모두 잇따라 떠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집은 안정을 되찾았다.인사를 끝낸 예정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몸을 던지며 뒤에서 따라 들어오는 남편을 향해 말한다."허리가 끊어질 지경이예요."태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예정도 그냥 그렇게 말을 던졌을 뿐, 그가
“태윤씨, 내가 할게요.”예정은 말하면서 싱크대에 다가왔다. 태윤은 자리를 내주며 예정에게 다정스럽게 앞치마를 매주었다.”음.... 다음에는 그냥 밖에서 먹어.”"그렇게 해요."예정도 그렇게 생각했다.오늘은 양가가 만나는 날이고 상견례 의미로 뭘 좀 잘해보고 싶어서 집에서 요리하게 된것이었다. 예정은 좋은 인상을 남겨주고 싶었을 뿐이다."아까 할머니가 뭐라고 하셨어?"태윤이 갑자기 묻는다.예정은 손을 멈추고 태윤을 바라봤다. 태윤도 예정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둘의 눈이 마주치자 예정은 장난기가 어린 말투로 말했다. “우리가 방 나눠서 자냐고 물어보셨어요. 우리는 이미 혼인신고도 한 사이니, 나보고 더 대담하게 행동하라고 하셨어요. 태윤씨 옷 벗겨서 함께 자라고 하시던데요?""…."역시 할머니께서 하실 말씀이었다.“그리고 할머니께서 내년에 증손녀를 꼭 안아보고 싶다고 하시며 우리가 혹시 딸을 못 낳으면 딸을 낳을 때까지 노력하라 하셨어요. 그리고 만약에 딸을 낳으면 평생 모은 재산까지 모두 저한테 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할머니가 평생 저축한 돈이 수천억이나 되는데…. 할머니는 정말로 장손 며느리를 중시하고 계시는구나!"할아버지 세대에 여자애 없었나요?""증조할아버지 세대에 여자애 하나 있었어, 바로 증조할아버지의 여동생이었는데 어렸을 때 다섯 살도 안 돼 일찍 돌아가셨어.... 그 후론 계속 여자애가 태어나지 않았단 말이야, 이상하게도...."태윤은 남자 형제만 아홉이었다."어쩐지 할머니께서 평생 모은 돈을 다 주신다고 하시더라구요, 딸을 낳는 게 하늘의 별 따는 듯 어려운 일이었네요."예정의 말에서 태윤은 뭔가 그녀가 여우 꼬리를 드러내기라도 한 듯, 혹시 할머니의 재산을 탐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꼭 그녀의 목적을 찾아내겠다고 생각했다.’어쩐지 할머니에게 잘 대해준다고 했어, 그래서 할머니는 내 생각도 무시한 채 이 결혼시켰고....’남편이 답이 없자 예정은 고개를 돌려
예정은 속으로 미안하지만 아직 서로 달래고 그럴 관계까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둘은 앞으로 같이 살아가야 하고 태윤이가 어떻게 화를 내든 간에 자기를 쫓아내지 않는 한 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예정은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주방을 깨끗이 치운 뒤 방도 한 번 쭉 닦았다. 그리고서 베란다에 있는 그네 의자에 가서 앉았다. 밤바람이 서서히 불어오며 그네 의자를 흔들어주자 그처럼 한가하고 기분 좋은 일이 없었다.지금의 베란다는 마치 작은 정원처럼 식물로 가득 차 있다.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며 예정은 자기도 모르게 다시 한번 태윤의 효율적인 행동에 감탄했다.차분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차차 베란다를 향해 다가왔다. 곧 베란다에 나타난 태윤은 예정이 그네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태윤은 종이 두 장을 예정에게 건네준다."뭐에요?"태윤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마치, 보면 알게 될 텐데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 같았다. 예정이 종이를 건네받고 내용을 읽어보니 합의서였다. 태윤이 협의서를 두 장 인쇄한 것도 의미가 분명했다. 한 사람당 하나씩 가지고 있자는 뜻이었다. 심지어 태윤은 이미 서명도 했고 개인 도장까지 찍었다.'어머, 엄청 진지하네....'예정은 발끝으로 땅을 디디며 그네 의자를 밀어 다시 흔들었고, 의자에 기대어 태윤이 써놓은 합의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합의서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합의서를 읽어보니 중점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아직 감정적 기초가 없는 상황이니 명목상의 부부관계만 유지하면 되는 것이고, 예정은 태윤의 몸에 집착하지 말고 거리를 두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만약 반년 안에 둘 사이에 여전히 감정이 나타나지 않아 결국 이혼하게 된다면, 태윤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예정에게 양도하고 지금 운전하고 있는 자동차도 함께 예정에게 양도할 것이라는 내용도 적혀있었다. 합의서에 특별히 강조한 것은 예정이가 할머니의 재산에 손을 대면
예정은 펜을 받아 합의서에 이름을 사인했다. 태윤은 인주를 가져와 손가락 지문을 누르게 했다. 사인 된 합의서는 둘이 각각 하나씩 보유하기로 했다.예정은 합의서를 아무렇게나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태윤은 예정의 이런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뭐라 말을 하기가 그랬다. 결과적으로 그가 작성한 합의서이고, 합의서의 조건은 대부분 예정을 겨냥하여 짠 내용이었는데 예정은 합의서에 조건을 하나도 추가하지 않았다."오늘도 하루 종일 피곤했으니 일찍 쉬어.""태윤씨도요. 전 여기 잠깐 앉아서 꽃구경 좀 할게요. 작은 정원 같은 큰 베란다를 갖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정말 기분이 좋은 일이네요.”그녀는 합의서에 대하여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과 결혼을 한 것은 정말 아무런 의도가 없었던 것인가? 모든 게 다 나의 의심일 뿐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화를 내지 않고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거지?'태윤은 예정을 잠시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그러고는 곧 차 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태윤씨, 어디로 가는 거예요?""음, 그럴 일이 있어. 기다릴 필요 없으니 문만 좀 열어두면 돼.""제가 태윤씨를 왜 기다려요?”태윤은 그 말에 목이 메였다. 예정의 대답은 마치 태윤의 뺨을 때리는 것 같았다.'예정에게 한 방 맞은 것 같아.'태윤은 술을 마시러 이동명을 찾아갔다. 이 합의서는 분명히 예정을 난처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예정은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태윤의 마음만 답답해졌다. 아마 처음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런 느낌을 받아서인 것 같다.예정은 태윤의 합의서가 어떻게 쓰였어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이 말인즉 자기가 이렇게 잘 생겼어도 그녀는 사랑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몸매도 이렇게 좋은데 그녀는 자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아니.... 태윤이 넌 도대체 뭘 불평하고 있는 거야? 예정이 그렇게 눈치를 잘 보니 기뻐해야 할 일이잖아, 적어도 그렇게 뻔뻔
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부부 사이에 한쪽이 바람을 피우면 금방 금이 생기게 되는 법이죠. 이혼을 안 했어도 서로 고된 삶을 살 테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저의 전남편도 바람을 피우고 저를 폭행하여 이혼했잖아요. 한번이 있으면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이 고치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이혼하면 죽는 것도 아닌데.”이윤미가 말을 이었다.“우리 아버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이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시거든요. 정씨 집안의 친척들도 우리 가문에서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할걸요. 어쩌면 전에 받은 혜택들도 전부 토해내야 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요즘 우리 가문은 편안할 날이 없어요. 저는 왠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이은화의 모진 마음으로는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경혜가 하예진을 강성으로 빨리 오게 한 것은 아마도 이씨 가문이 요즘 혼란스러워 이은화가 하예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예진이 그 틈을 타 사업을 일으킬 수 있고 옛날 사고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다.이 기회를 잡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진은 비록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고 강성에서도 사업이 없지만,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서 있다. 그리고 하예진의 외할머니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였다. 이씨 가문의 친척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예진 씨, 비행기를 몇 시간 타고 방금 도착하셔서 힘드실 텐데 얼른 가서 쉬세요. 일이 있으면 그 번호로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하예진이 관심하며 물었다.“저랑 같이 안 갈실래요?”이윤미는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여기 좀 더 있고 싶어요. 마음도 추스를 겸 조용히 있고 싶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도 엉망진창이에요.”“그
수십 년이 지난 탓으로 법률조차도 이은화의 사형을 선고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이윤미는 적어도 그녀가 큰이모의 후손에게 주인 자리를 돌려줄 수 있었다.그녀는 이씨 가문을 떠나 자신의 회사로 돌아가 생활해도 좋다고 생각했다.이윤미는 이런 원한과 복수에 관한 일을 멀리하고 싶었고 그녀의 소소한 삶을 더 좋아했다.이은화가 옛날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이윤미는 이은화가 그 해에 정말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고 믿었다.단지 가주 자리의 권력을 탐내는 것뿐만이 아닌 사랑 때문에 벌인 짓일 수도 있다.이은화는 지금 70세이고 정군호와 결혼한 지 수십 년이 지났으며 아들딸도 네 명이나 낳았다.하지만 이은화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 능력이 뛰어난 남자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은숙의 특별 비서일 것이다.“제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아요. 저는 제 행동으로 제가 우리 엄마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게요.”하예진은 한참 동안 이윤미를 바라보며 웃었다.“윤미 씨의 진지한 얼굴은 정말 멋있고 아름다워요. 당신 엄마가 보신다면 눈에 거슬릴지도 모르지만요. 이씨 가문의 상황은 어때요? 윤미 씨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다가 이 대표님께 붙잡혔다고 들었는데. 요 며칠 동안 윤미 씨 아버지는 모습조차 내놓지 않는다면서요.”하예진은 이은화와 정군호의 일을 알고 있었다.강성에서 이 불륜 사건은 빅뉴스였다.평소에 정군호랑 같이 다니던 늙은 남자들은 대부분 정군호에게 동정심을 품었다. 이은화가 정군호를 너무 엄하게 관리하여 그에게 자유로울 틈도 주지 않고 용돈도 적게 준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사이좋은 부부 사이라도 오랜 시간 동안 작은 일에 얽매이게 되면 감정이 깨지기도 한다.여자들은 대부분 이은화의 편을 들었다. 이은화가 남편을 관리하는 것이 좀 엄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군호가 만약 이은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닌 이은화에게 이혼을 제기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정군호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우리 엄마가 예진 씨가 오신 것을 알게 되면 아무것도 안 할 리가 없는데. 조심하세요. 아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제가 다 알려드릴게요. 제가 모르는 일은 할 수 없지만요.”하예진은 웃음을 거두며 한참 동안 이윤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윤미 씨, 우리 만난 적 있잖아요. 저도 윤미 씨가 정의롭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대표님 결국 윤미 씨와 피가 섞인 모녀지간인데, 저는 윤미 씨가 이 대표님과 맞서지 못한다고 생각해요.”이윤미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글쎄요. 우리 두 사람은 모녀 맞아요. 저를 저의 어머니와 같은 편에 서지 말라고 하면 제가 분명 스트레스도 받고 또 엄청나게 큰 용기도 필요하겠죠. 예진 씨가 저를 경계하는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저는 정말 예진 씨가 걱정돼서 이러는 거예요. 우리 엄마가 마음이 너무 독하세요. 해본 말이 아니에요. 예진 씨가 여전히 저를 경계하면 저도 더는 묻지 않을게요. 그런데 여기에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맞서게 되면 저를 찾아오셔도 돼요. 제가 최대한 도와드릴 테니까.”“사실 저와 엄마는 모녀간의 정이 별로 없어요. 저는 엄마의 곁에서 자라지 않았고 또 이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스무 살이 넘었거든요. 윤정이가 아직 이씨 가문에 남겨졌고 여전히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요. 제가 저의 엄마와 모녀간의 정이 별로 없다고 해도 우리 두 사람이 친 모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잘 알아요.”“만약 당신들이 없다면 제 생각에는 제가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짊어지고 리더가 되어 우리 가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을 거예요.”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규정을 수정하고 싶었다.그렇게 딱딱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비록 대가가 좀 클 수도 있지만, 이씨 가문을 더 멀리, 더 잘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수정하고 싶었다.이윤미는 명함 한 장을 꺼내 하예진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것은 제 다른 전화번호에요. 아는 사람이 적으니 무슨
“그럼 안전에 유의하시고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저에게 전화하세요.”방윤림이 이윤미에게 당부했다.이윤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항상 방 비서에게 의지할 수는 없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암살을 당하더라도 이윤미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능력을 갖추었다.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면 이렇게 자라지 못하고 일찍이 양어머니의 학대를 받아 죽었을 것이다.방윤림과의 통화를 마친 이윤미는 곧바로 약속 장소로 차를 몰았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하예진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하예진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누군가의 차가 오는 것을 보더니 창문을 조금 눌렀고 이윤미가 하예진의 차 옆에 주차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선글라스를 먼저 벗은 이윤미는 얼굴의 가죽을 벗어 던져 본모습을 드러냈고 차에서 내려 하예진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하예진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어떻게 저인 것을 알았어요? 두렵지 않아요?”“지금 이 시각에, 또 이렇게 외진 곳에 주변에 주택도 없는데 겁이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이 밤에 이런 곳으로 오지 못할걸요. 그리고 저기에 묘지도 있는데 이런 곳에 예진 씨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겁니다.”하예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윤미가 온 후에야 약속 장소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발견했다.하예진도 한참 후에야 차를 세울 곳을 찾아 이윤미가 오기를 기다렸다.지금 그녀들이 주차한 곳은 방윤림이 그녀들에게 준 주소에서 수백 미터 떨어져 있었다.“묘지에서 이렇게 가까운 줄은 몰랐어요. 만약 제가 알았더라면 아마 혼자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귀신이 무서워서요.”이윤미도 웃었다.“귀신이 뭐가 무서워요? 사람이 더 무섭죠.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 못 들어보셨어요? 예진 씨 분장 기술도 꽤 좋네요. 제가 제 부하들을 하루 호텔 입구에 보내 예진 씨를 기다리게 했거든요. 여기로 오시는 길에 예진 씨를 몰래 보호하라고 지시했는데 예진 씨가 나오는 것을 못 봤다고 하더라고요.”
곧 하예진은 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에서 나왔다.하예진은 방윤림이 그녀에게 준 그 주소대로 내비게이션을 켜고 차를 몰았다.노동명이 전화했다.하예진은 차의 속도를 늦춘 다음 노동명의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저 지금 나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고 해요. 지금 운전 중이니 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요.”“알았어. 운전 조심하고.”“네.”하예진은 하예정과 달리 천천히 차를 몰았다.다행히 하예정이 시내에 살고 있어서 차를 빨리 몰지 못했다. 만약 차가 적은 외진 곳으로 가게 되면 하예정은 비행기를 운전하는 것처럼 매우 빨리 몰 것이다. 전태윤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지, 그가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면 아마 하예정이 운전대조차 잡지 못하게 할 것이다.차를 몰고 있는 하예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동명은 이내 전화를 끊었다.하예진이 변장하고 남몰래 혼자 차를 몰고 이윤미를 만나러 간 것을 알면 노동명은 아마도 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올지도 모른다.하예진은 노동명이 자신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고 있어서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방윤림이 준 그 주소는 가까운 곳이 아닌 꽤 외진 곳에 있었기에 내비게이션에는 차로 한 시간 이상 가야 도착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하예진이 차를 몰고 호텔을 나서자 이윤미가 방윤림에게 물었다.“예진 씨 나오는 거 봤어요?”방윤림이 대답했다.“제가 종업원에게 부탁해서 쪽지를 보냈으니 바로 떠날 겁니다. 하예진 씨가 방금 관성에서 왔기 때문에 낯선 곳이고 차량도 없으니 택시를 탈 것 같습니다. 아가씨도 출발하시면 됩니다. 하예진 씨가 곧 약속 장소로 갈 겁니다.”방윤림은 하예진을 만난 적 있었는데 하예진이 대담하고 세심하다고 추측했다. 하예진이 강성으로 온 목적이 이씨 가문과 연관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방윤림은 하예진이 이씨 가문 때문에 강성으로 왔으니, 이윤미가 만나자고 하면 반드시 만나러 갈 것으로 생각했다.“사람을 시켜 예진 씨를 은밀히 보호하라고 하세요.
고현은 전호영을 흘겨보았다.전호영은 코를 만지며 웃었다.“현이 씨가 만든 요리가 당연히 맛있죠.”“그럼 저는 뻔뻔스럽게 얻어먹으러 갈게요.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가서 쉴게요.”하예진은 눈치껏 두 사람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하예진은 그녀가 묵고 있는 방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자마자 노동명의 메시지에 답장하려고 했다.그러나 답장하기도 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하예진은 일어나 문을 열러 갔다.“호텔 종업원입니다.”종업원은 그녀가 문을 열자 웃으며 말했다.“실례지만 하예진 씨 맞습니까? 누군가가 당신에게 편지 한 통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셨어요.”종업원은 하예진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하예진은 봉투를 받아들고 종업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방에 돌아온 그녀는 호기심에 봉투를 뜯었고 그 안에는 작은 편지 한 장만 들어있었다.편지의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강성의 어느 주소가 들어있었다.주소 밑에는 말 한마디만 남겨져 있었다.[예정 씨,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혼자 오세요. 제가 예정 씨 안전을 보장해 드릴게요.]오른쪽 아래 끝에 “방”이라는 글자가 쓰였다.‘방? 방씨? 이름은 뭐지?’하예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방”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사람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녀는 “방”이라는 글자가 이름은 아닐 것으로 추측했고 아마도 성씨가 “방”씨 일 것으로 짐작했다.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이윤미 주변에 “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 같긴 한데...하예진이 하루 레스토랑을 개업하는 날 이윤미가 방윤림을 보내 그녀에게 선물을 전해주도록 했다.하예진은 아마도 이윤미가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 되었다.시간을 보던 하예진은 망설임 없이 캐리어에서 단독으로 포장된 검은색 마스크와 선글라스, 눈에 띄지 않는 낡은 옷 그리고 가발을 꺼냈다.그녀는 변장하고 나서 휴대전화와 편지를 들고 조용히 룸을 나섰다.다행히 그녀가
하루 호텔.맨 위층에 있는 로얄 스위트룸.하예진과 고현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전호영은 두 여자에게 물과 과일을 가져다주러 갔다.“언니, 우리 집에 묵는 건 어때요? 저 혼자 살아요. 집도 크고 방도 많아서 저랑 같이 살면 편하실 거예요”고현은 하예진을 그녀의 개인 별장에 초대했다.하예진은 그녀를 보며 웃었다.“제가 고 대표님 집에 가면 강성의 연예 기자들은 고 대표님이 호영 씨와의 감정이 깨졌다고 보도할걸요. 호영 씨가 헛수고했다면서, 고 대표님은 여전히 여자를 좋아하는 거라면서 기사를 낼 거에요.”고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는 여전히 남자 차림으로 다녔기에 하예진이 그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보도되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하예진은 강성에 막 왔기 때문에 사업도 일으키지 못한 채 사람들의 원한을 사게 되면 그녀에게도 좋은 점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현을 사모하는 여자가 너무 많기에 그녀들이 전호영을 이길 수는 없지만, 하예진은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적어도 그녀들은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대표님과 호영 씨 감정도 이제 점점 안정되고 있는데 저는 적절한 시기에 고 대표님이 여자라는 사실을 외부에 솔직하게 말하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항상 두 사람이 동성애자라고 오해하잖아요. 사실도 아닌데.”고현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외부 사람들에게 해명할 필요 없어요. 언젠가 호영 씨와 결혼하게 된다면 제가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면 사람들도 진실을 알게 될 거에요.”하예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사람들이 고 대표님이 여자 분장을 하고 나온 줄로 알 거예요. 고 대표님이 여자 행세를 한다고 여전히 오해하실 거예요. 저는 보통 다른 사람에게 결혼이나 이혼을 권유하지는 않거든요. 저도 과거에 결혼생활 때문에 소란을 피우다가 이혼을 당했거든요.”“형인 씨가 저를 폭행했을 때 저는 부엌에 있는 칼을 들고 거리에서 쫓아다녔기도 했고 그 사람을 때려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고
이은화가 말을 이었다.“난 정말 먹고 싶지 않아. 너라도 얼른 밥 먹으러 가. 엄마는 좀 더 앉았다가 돌아갈 거야. 내가 약속할게. 이 정도 일 때문에 쓰러지지 않을 거야. 엄마도 이틀 지나면 기분이 금세 좋아질 거야. 내일 나도 네가 알고 있는 엄마로 돌아올게. 약속할게. 늙은 영감탱이 때문에 죽느니 마느니 하면서 난리 피우지 않을 거야. 말이 나온 이상 너한테 좀 물어보자. 예정이가 오면 어떻게 임할 생각이야?”“제 원칙을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대처할 거에요.”이은화는 멈칫하더니 칭찬했다.“역시 내 친딸이야! 엄마가 관성에 있을 때 경혜를 만났는데 나한테 원한을 품고 있더라고.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경혜는 마음속으로 날 진범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나에게 민감하게 말을 하더라고. 경혜가 나보고 예진이한테도 기회를 주어 배양하라고 제안하더군. 예진이와 너를 평등하게 경쟁시켜 예진이가 지면 네가 이씨 가문을 이어받아도 아무런 의견이 없다고 했어. 그런데 예진이가 이기면 우리 모든 사람은 권세 중심에서 손을 떼라고 말하는 거야.”이경혜가 이렇게 명확하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뜻은 비슷했다.이은화는 딸 이윤미에게 말했다.“윤미야, 우리 집을 남에게 양보할 수는 없잖니? 그래서 엄마가 승낙하지 않았어. 예진이가 이번에 강성에 온 목적도 너무 단순하지 않을 거야. 잘 감시해. 예진이가 우리 가문의 친척들과 너무 많이 접촉하게 해서는 안 돼. 강성에서 사업을 펼쳐나가려면 돈이 있어야 할 거야. 예진의 사업의 앞길을 막아 돈을 벌지 못하게 하면 강성에서 버티지 못할 거야.”“강성은 우리 구역이야. 예진의 배후에 큰 세력이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거야. 여기는 우리 이씨 가문의 구역이니까. 만약 감쪽같이... 그러면 더 좋고.”이은화는 자신의 목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이윤미에게 하예진을 처리하라는 의미였다.“하지만 흔적을 남기면 안 돼. 만약 정말 그렇게 한다면 증거는 반드시 깨끗이 지워야 하거든. 예진의 뒤에 있는 몇몇 세력은 우리가 건
“엄마, 우리 이모의 특별 비서는 아직도 살아 계세요?”이윤미는 화제를 돌렸다.이은화가 가문의 규정을 바꾸는 것을 동의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네 이모가 사고를 당한 뒤로 이은숙의 비서도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생사는 누구도 몰라.”이은화가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에 오른 후, 사람들을 보내 그 특별 비서를 찾도록 했지만 아무 소식도 없었다. 마치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은화는 여전히 그 특별 비서를 찾아다녔다.그 당시 사고에 관한 일을 그 비서도 많이 알고 있을 것이고 그의 손에도 증거가 있을 것 같았다.그를 찾지 않고 증거를 인멸하지 않으면 폭탄을 남겨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가 언제,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나 이은화의 살인 증거를 내놓을지 누가 알겠는가!비록 어렸을 때 이은화의 짝사랑 상대일지라도, 이은화는 그녀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그 비서를 찾으면 반드시 그를 죽이고 입을 닫게 하려고 했다.수십 년 동안 그 비서의 소식도, 두 조카의 소식도 없었다. 이은화는 자신의 외조카가 죽거나 영원히 나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그녀는 평안하고 순조롭게 이씨 가문을 그녀의 딸에게 넘겨줄 수 있었으니까.하느님은 여전히 이은화에게 잠재적인 위험을 남겨 주셨다.두 조카 중 비록 한 명이 죽었지만, 죽은 조카가 두 딸을 이 세상에 남겨두었다.살아 있는 조카딸 이경혜는 부잣집에 시집가서 아들과 딸을 낳고 권세도 있어 건드리기가 쉽지 않았다.작은 조카 이경희의 두 딸 하예진과 하예정도 건드리기 어려운 존재였다.그녀들의 배후에는 여러 가문의 큰 세력이 서 있었고 그녀들을 건드리는 것은 그 가문들을 적수로 삼는 거나 다름없었다.요즘 이씨 가문의 실력은 예전만 못하기에 이은화는 그 세력들과 감히 맞서지 못했다.“나는 네 이모 가족의 죽음은 그 비서가 꾸민 음모라고 의심하고 있어. 그 비서는 네 이모를 좋아하지만 네 이모가 이모부와 결혼해서 마음속으로 원한이 맺혔을 거로 생각해. 사람들은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