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간이 심각해지면 간경화로 발전이 돼, 그녀는 간경화 환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단지에서 나온 하예진은 아들이 탄 유모차를 밀며 분유가게로 가 분유를 샀다.이전까지는 다 동생이 그녀를 대신해 분유를 사 와 줬었다.걸어가려니 조금 멀었지만 산책 겸 쇼핑인 셈 쳤다."아빠."별아간 주우빈이 아빠를 불렀다.하예진은 얼른 사방을 둘러봤지만 주형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의아해진 하예진이 주우빈에게 물었다."우빈아, 아빠 봤어?"주우빈은 길가에 세워진 차를 가리키며 아빠라고 불렀다.그 말은 그 차가 아빠의 차라는 뜻이었다.아들이 가리킨 차를 보니 확실히 남편과 똑같은 차가 맞았지만 차번호는 주형인의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우빈아, 저건 아빠 차가 아니라 아빠 차랑 같은 차인 거야. 번호가 다르잖아, 그러니까 아빠 차가 아닌 거야."주우빈은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은 적었지만 아빠의 차를 기억하고 있었다.그에 하예진은 주우빈이 아빠를 그리워하는 거라고 생각해 말했다."우빈아, 아빠가 보고 싶은 거야? 엄마가 아빠한테 전화해서 통화하자고 할까?"주형인은 다시 집에 돌아온 뒤에는 여전히 전처럼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왔다. 하예진이 더는 시중을 들지 않은 탓에 주형인은 점심에도 돌아와서 먹지 않고 아예 밖에서 해결했다.하예진도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가정 폭력은 이미 두 부부 사이에서 넘을 수 없는 고리가 되었다.하예진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주형인은 더더욱 자신의 잘못을 인정 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하예진에게 먼저 잘못을 인정 하지 않았으니 부부는 지금 동상이몽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부부 관계가 어떻든 주형인은 주우빈의 친부였다."네."주우빈은 얌전하게 대답했다.하예진은 유모차에 달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매번 집 밖을 나설 때면 그녀는 그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렇게 하면 편리했다.주형인에게 전화를 거니 한참이 지나서야 통화가 연결됐다."또 무슨 일이야?"주형인의 말
하예진이 귓가에 휴대폰을 가져다 대자마자 전화 너머에서는 주형인의 욕설이 쏟아졌다."당신 평소 우빈이를 어떻게 가르치는 거야? 어떻게 가르쳤길래 우빈이가 윗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가족애며 우애는 하나도 몰라? 어떻게 자기만 장난감을 사고 형한테는 사주지 말라는 말을 하게 해."남편에게 한바탕 욕을 먹자 하예진도 화가 나 차갑게 대꾸했다."내가 평소에 어떻게 가르쳤냐고? 그게 우빈이 잘못이야? 너희 누나네 자식이 매번 우빈이 장난감 빼앗고 때리는데, 당신은 우빈이가 뭔 샌드백인 줄 알아? 이리저리 치이고도 조용하게?""분명 걔가 잘못한 건데, 아빠로서 자기 아들 편을 안 들어줄망정, 아들이 철이 없다고 혼을 내?우빈이 장난감을 전부 누나네 아들한테 다 양보해 주고, 걔가 우빈이를 때릴 때면 얌전히 다 맞고 있어야 직성이 풀려?""당신 누나네 아들은 그 부모들한테 하도 예쁨을 받아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우빈이를 괴롭히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눈이 멀기라도 한 거야, 그게 안 보여? 주형인, 우빈이야말로 당신 아들이야, 당신 친아들이라고! 걔는 당신 조카일 뿐인데 어떻게 뭐가 더 중요한지를 못 가려?"주형인은 하예정의 질책에 말문이 막혔다. 이내 주형인이 곧장 대답했다."당신이랑은 말이 안 통해,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해. 당신 우빈이 데리고 어디 가는 거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당신은 또 어딘데? 회사 아니지? 나도 당신 주변이 시끄러운 거 들려. 우빈이 분유도 다 떨어지고 기저귀도 떨어져 가길래 사러 가는 길이야. 아들은 나와 더치페이 안 했지? 나 혼자서 10개월을 품었으니 애 분윳값 정도는 당신이 내야 하지 않겠어? 지금 당장 돈 보내."그녀의 동생은 그녀에게 얻어내야 할 것은 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하예진은 아들에게 분유를 사줄 돈은 있었지만, 이 아들은 주형인의 아들이기도 하니 주형인에게도 양육의 책임이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 분윳값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매이랕이 돈 달란 얘기밖에 모르지? 내가 돈 찍어내는 것도
서현주는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주형인은 서현주가 자신의 돈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불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과 함께하고 싶어 하기에 마지막 선을 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서현주가 이렇게 진지하게 나오니 주형인은 더욱더 진심으로 빠져들었다.그는 서현주에게 더 많은 돈을 모으게 되면 새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약속했다.그 말에 서현주는 감동하며 여러 번 입을 맞췄고 그는 기쁨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하예진은 더 말을 이으려 했지만 주형인은 이미 전화를 끊었고 이내 카톡으로 분윳값 25만 원을 이체했다.비록 50만 원을 받아내지 못하고 고작 25만 원에 그쳤지만 하예진은 그래도 주형인이 보낸 돈을 곧바로 받았다."왜 그래요? 오빠 부인이에요?"주형인이 전화를 받았을 때, 서현주는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그러다 주형인이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서현주는 와인 두 잔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왔다.오늘 밤의 서현주는 마치 부잣집 딸같은 차림새였다. 명품 드레스를 걸치니 원래도 젊고 예쁜 그녀는 더욱더 예뻐 보였다. 굴곡진 몸매는 주형인과 함께 모임에 나타나자 적잖은 남자들의 이목을 끌어 서현주는 콧대가 한껏 높아졌다.그녀는 자신의 외모와 몸매에 꽤나 자신 있었다.주형인은 그녀를 꾸미는 것에 기꺼이 돈을 썼다. 그녀에게 예쁜 이브닝드레스를 선물했을 뿐만 아니라 금목걸이와 귀걸이 한 쌍, 금팔찌 두 개를 선물 해, 전부 착용한 뒤 오늘 밤의 모임에 함께 참석했다.서현주는 자신이 비록 부잣집 딸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못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그 사람이야. 돈 달라고 전화 왔어. 내가 뭔 은행인 줄 알아, 하루 종일 돈돈 거려."주형인은 아내에게 25만 원을 보내 주면서도 기분 나빠하며 구시렁거렸다. 그는 하예정이 자신에게 분윳값을 요구해서는 안 됐다고 생각했다.서현주는 와인은 주형인에게 건네며 물었다."두 사람 더치페이하는 거 아니었어요? 오빠 이제 집에 가서 밥 먹는 것도 아닌데, 무슨 염치로 돈
서현주가 입을 열었다."아이는 두 사람 거니까 원래 반반씩 내야죠. 오빠는 잘못한 거 없어요."주형인은 당연히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주형인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관성 호텔은 역시 제일 고급진 호텔이기는 하네, 여기 모임의 와인은 우리가 평소 마시는 것보다 훨씬 좋네."서현주는 웃으며 대꾸했다."여기가 어딘데요. 오늘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은 다 작은 회사 대표거나 우리 같은 좀 잘나가는 직장인들 밖에 없어서 좀 아쉬워요. 성 대표님이나 전 대표님 같은 거물은 한 명도 없네요."그녀는 전 대표 같은 풍문에 휩싸인 사람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지난번에 우연히 마주치긴 했지만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해, 전 대표가 정말로 소문에서처럼 차갑고 차가운 데다 비범하게 잘생겼는지 알 길이 없었다."앞으로 전 대표나 성 대표 같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또 있을 거야."주형인은 서현주를 위로했다. 서현주보다 훨씬 아쉬운 건 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서현주는 그저 그의 비서에 불과했고 잘나가는 직장인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그였다.만약 전 대표 같은 사람과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다면 앞으로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전씨 그룹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오빠, 전 오빠도 앞으로 대단한 사장님이 되었으면 해요."서현주는 직장을 나와 스스로 회사를 설립해 사장이 되는 주형인을 상상했다. 그때 하예진을 밀어내고 주형인의 아내가 된다면 그녀는 큰 회사의 사모님이 될 수 있었다.주형인은 그런 서현주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나중에 내가 충분히 인맥을 쌓고 자금도 모으고 나면 내 회사를 차려야지."두 사람은 한참을 우스며 이야기를 나누다 아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사업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서현주는 그런 주형인의 곁을 내내 지키고 있었고, 주형인이 다른 사람과 비즈니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그녀도 간간히 의견을 냈다.서현주는 만약 오늘 밤에 이 자리에 온 게 하예진이었다면, 지금의 하예진 외모로는 분명
어떤 회사든 사장이 바뀌면 고위 임원들도 따라서 변했다.새로운 사장이라면 뭐가 됐든 자신의 심복을 키워야 했다.한 사장의 설명을 들은 주형인은 김진우에게 갑자기 호감이 생겨 한 사장에게 물었다."사장님, 저 진우 도련님이랑 잘 아는 사입니까? 혹시 저 줄 좀 대주실 수 있으십니까? 김씨 그룹 계열사도 IT산업이니 저희 회사와 협력할 기회가 많은데 딱 이어 줄 연이 모자랍니다."유진 테크는 한 사장이 일하고 있는 회사와도 협력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안면을 튼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한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제가 보기에 진우 도련님은 지금 하도 떠받들어져 귀찮아하는 것 같네요. 곧 있으면 자리를 찾아 앉을 테니 이리로 오면 제가 진우 도련님에게 주 사장님을 소개해 연을 맺어드리겠습니다."그 말에 화색이 된 주형인은 감격해하며 잔을 들어 올린 뒤 한 사장을 향해 말했다."한 사장님, 참 감사합니다."한 사장은 주형인과 잔을 살짝 부딪친 뒤 술을 마시고는 옆에 있는 서현주를 조금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주형인에게 말했다."오늘 서 비서 참 예쁘군요. 주 사장님, 참 미인복이 있으십니다.""젊은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오르시고 높은 연봉에 미인까지 곁에 두시다니, 정말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습니다."주형인같이 비서와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이 적지 않은 편이라 다들 알면서도 모른 체 하고 있었다.그들 같은 사람은 접대가 필요할 때면, 아내가 대단한 능력자거나 부부 사이가 아주 좋아야만 아내를 데리고 모임에 나오지, 그렇지 않으면 보통은 비서나 애인을 데리고 참석했다.그것이 바로 전태윤과 성기현같이 진정한 재벌가 도련님들이 이런 모임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들 그 바닥은 모임이 한 번 열리면 참석하는 빈객은 다 지위와 신분이 있는 사람이고 함께 하는 파트너는 다 자신의 아내였다.재벌가 사모님의 무리는 정실이 아니면 어울리기 몹시 힘들었다. 내연녀가 자리를 꿰찬 경우, 설령 재혼을 했다고 해도 재벌가 사모님들은 내연녀였던 사람과
"진우 도련님, 안녕하세요."주형인은 오른손을 내밀어 김진우와 악수했다.주형인과 악수한 김진우가 말했다."주 사장님 이름이 어쩐지 익숙한데요."어쩐지 주형인이라는 이름이 그는 귀에 익었다.주형인은 조금 놀라 대답했다."도련님께서 제 이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시다고요?"이 업계에서 어느새 이렇게 유명해졌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김씨 가문 도련님이 그의 이름을 다 들어본 적이 있다니.김진우는 웃으며 대답했다."확실히 조금 익숙하네요. 아마 누군가가 주 사장님의 이름을 말씀하는 걸 들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은 본 적 없었는데 오늘 드디어 만나네요."주형인은 얼른 자신의 명함을 꺼내 김진우에게 건네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 않습니까? 이건 제 명함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김진우는 주형인의 명함을 받은 뒤 흘깃 보고는 챙겨 넣었다.그는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서현주를 흘깃 쳐다봤다. 비록 매혹적인 여자이긴 했지만 김진우는 그저 한번 흘깃 쳐다보고는 시선을 거두었다.김진우의 눈에 제일 좋은 여자는 바로 그의 예정 누나밖에 없었다.하예정 말고 다른 사람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몇 사람은 김진우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다들 술을 마시며 기쁘게 일 이야기를 이어갔다.…...아이의 분유와 기저귀를 산 하예진은 아기용품점에서 나왔다. 분유는 아이 유모차에 놨지만 기저귀는 하도 많아 놓을 수가 없었다.점원이 다섯 개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고 하니 그녀는 다섯 개를 샀고 서비스로 온 하나까지 총 여섯 개나 샀다.아기 유모차는 화물차가 아니라 그렇게 많은 기저귀를 놓을 자리가 없었다.어쩔 수 없이 하예진은 다시 한번 주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주형인은 받지 않았다.하예진은 또 여러 번 다시 걸었고, 여섯 번째가 되어서야 통화는 연결됐다."하예진, 또 왜? 나 바쁜 거 몰라? 넌 내가 무슨 시장 바닥에 있는 줄 알아? 아무 때나 다 전화 받을 수 있게? 앞으로
"우빈아."길 중간으로 날아가 엎어진 분유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하예진은 황급히 달려가 아들을 안고는 잔뜩 긴장해서는 아들의 몸에 상처가 있지는 않은지 살피며 쉴 새 없이 물었다."우빈아, 어디 부딪친 거야? 어디 아픈 데는? 엄마한테 말해 봐.""엄마."주우빈은 그저 울기만 할 뿐 양손으로 하예정의 목을 꽉 안은 채 놓지를 않았다.다친 게 아니라, 그저 놀랐을 뿐이었다."퍽!"커다란 굉음이 울리자 하예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차 한 대가 길 중앙으로 날아간 분유통을 쳐서 날렸고 공교롭게도 분유통은 다시 그 차 앞 유리에 다시 쿵 떨어지는 소리였다. 분유통은 무게가 있는 데다 위로 날아올랐다가 다시 떨어진 탓에 차 앞 유리는 산산조각이 났다.그 차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주우빈은 더 깜짝 놀라 엄마의 목을 꽉 안고는 놓지 않았다.하예진은 그 차의 표식을 자세히 살폈다. 포르쉐였다!외제차였다!'이거, 수리비를 달라고 하지는 않겠지?'지난번에 실수로 마이바흐를 긁었을 때, 전태윤이 그 차주와 아는 사이였기에, 전태윤의 얼굴을 봐서 이동명은 일부분의 수리비만 받았었다.이번에 또 배상을 해야 한다면, 이제 더는 배상할 돈도 없었다.하예진은 두려움에 찬 눈으로 차주가 내리는 것을 쳐다봤다.거대하고 우람한 모습이 퍽 눈에 익었다.'저 사람, 이동명 씨 아닌가?'차주가 저 사람이라니?이건 너무 공교로운 거 아닌가?차에서 내린 이동명은 자신의 차 앞 유리를 살폈다. 또 바꾸게 생겼다.이미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분유통을 본 그는 길가에 엎어져 있는 하예진의 유모차와 바닥에 떨어진 기저귀와 분유통을 쳐다봤다. 대충 다 이해가 갔다.하예진을 본 이동명은 자신에게 재수가 옴 붙었다고 생각했다. 또 저 뚱뚱한 여자였다!그는 곧바로 돌아가 차에 탔다.하예진은 그가 차를 타고 떠나는 줄 알고 한시름을 놓고 있었는데, 이동명은 차를 갓길에 세우고 있었다.다시 차에서 내린 그는 그 분유통을 주워 다시 돌아왔다. 그러고는 넘어진 하에진의 차를 세워주고 분유통과 기저귀를 주워주
이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예진을 쳐다봤다. 친구와 하예정은 결혼을 한 사이고, 이 뚱뚱한 여자는 친구의 처형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 이동명은 하예진에게 수리비를 요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이번에도 그녀는 고의가 아니었다.그에게도 과속한 책임이 있었다.이동명의 주시에 하예진은 속으로 잔뜩 겁을 먹어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막 입을 열려는데 이동명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많이 샀는데 당신 남편은 도와주러 오지도 않는 겁니까? 아니면 좀 적게 사든지요.""집과 조금 거리가 있을 뿐이라, 다 가져갈 생각이었어요. 제 남편에게 전화해 봤는데 바빠서 데리러 올 새가 없다기에 하는 수 없이 혼자 가져가는 길이었고요. 그러다가 방금 전에 벽돌이 튀어나온 걸 보지 못해 부딪치는 바람에 유모차가 쓰러지고 분유통이 굴러떨어졌어요. 이동명 씨가 그걸 칠 줄은 몰랐어요."하예진은 작은 목소리로 해명했다."애가 울고 있으니 당연히 애부터 달래야 해, 길에 떨어진 걸 주울 틈이 없었어요.""이동명 씨, 저 이번에는 진짜 고의가 아니에요."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정말로 수리비를 요구할 거라면 저 반만 내면 안 돼요? 제가 한 눈 팔아서 실수를 했다만 이동명 씨도 너무 빠른 속도로 운전을 했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이동명 씨에게도 책임이 있어요."그 말을 다 들은 이동명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지난번에는 전태윤이 그에게 전화를 했던 탓에 전태윤의 얼굴을 봐서 고작 180만 원의 수리비를 요구했던 것이다. 사실 그가 냈던 돈이 하예정보다 훨씬 많았다.그때 전태윤은 하예정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만약 했었다면 아마 하예진에게 배상하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이동명은 손을 뻗어 기저귀를 들었다.하예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기저귀를 전부 차에 실은 뒤 다시 돌아와 유모차를 미는 그를 쳐다봤다.이동명은 하예정을 보며 말했다."타요, 바래다줄게요."'이 뚱뚱한 여자 남편은 이 여자한테 잘해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
“어쨌든 우리 여씨 가문의 재산은 운별 누나가 망치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우리 두 큰고모도 틀림없이 운별 누나를 달래서 모든 재산을 빼앗으려 할거에요. 운별 누나는 사람 말을 너무 잘 믿어서 조금만 달래면 뭐든지 나누어 줄 거에요.”여천우가 이렇게 한 이유는 단지 여씨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이다.추미자 부부가 그들의 명의로 된 재산을 여천우에게 물려주게 하고 또 여천우는 그 재산들을 모두 여운초에 돌려줄 셈이다. 여천우는 여운초의 사람 됨됨이를 믿었다.여천우는 여운초가 그녀의 재산이 아니면 탐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의 여운초도 그의 재산을 탐낼 필요가 없었다. 약혼자 전이진의 집에 재산이 엄청 많아서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인 여운초는 여천우의 그깟 재산을 손에 넣지 않을 것이다.“누나, 우리 부모님 명의로 된 합법적 재산이 얼마나 남았어?”여천우는 부모님이 이전에 하신 부분적인 사업들이 법에 어긋난 사업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불법적인 사업들은 이미 차압되었고 따라서 그 수입도 이미 몰수되었다. 그가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부모님의 합법적인 소득뿐이었다.여운초가 대답했다.“불법적인 사업과 모든 수익은 차압되거나 몰수됐어. 여씨 가문 기업은 법에 어긋난 사업을 하지 않았어. 다행히 네 아버지께서 여씨 그룹을 불법적인 사업에 손을 대지 않게 했지. 지금 여씨 그룹이 하는 사업은 모두 합법적인 사업이야.”“여씨 그룹의 주식은 우리 아버지가 대부분을 차지하셨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우리 아버지께 대부분 주식을 나눠주셨지. 게다가 아버지 본인도 주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주식의 절반을 차지하고 계셨거든. 그리고 나머지는 너의 아버지와 다른 소액주주들의 것으로 되었지. 현재 여씨 가문 주식 가격에 네 부모님 명의로 된 부동산 몇 채를 합치면 마침 200억 원 조금 넘을 거야.”여천우 친아버지 여태웅은 20여 년 전 추미자와 함께 친동생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범죄 때문에 중형
틀림없이 누군가가 여운초를 건드려 자극했을 것이다.여운초는 오랜 한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폭발한 게 틀림없었다. 하여 추미자 부부의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비우려고 했을 것이다.또 하나, 여운초는 추미자 부부방의 비밀번호를 몰랐다. 심지어 여천우조차도 몰랐다.추미자는 여천우가 여운초의 편을 든다고 많은 일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여운초도 사실대로 여운별이 일찍 감옥에서 나와 오늘 아침에 여씨 가문의 별장에 쳐들어온 사실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었다.여천우가 그 사실을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알고 보니 사고뭉치였던 여운별이 나와서 사고를 친 것이다.여씨 가문은 또 시끄러워질 것이 뻔했다.여천우는 여운초에 말했다.“우리 부모님 방에 있던 물건들을 전부 내 방에 가져다줘. 그리고 운별 누나 물건은 운별 누나가 가져가게 해. 그리고 운별 누나 방도 깨끗이 치워.”여천우는 그 별장이 여운초의 별장이었기에 여운초가 여운별이 그 별장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으면 여운초를 존중해 주고 싶었다.여천우는 여운별이 예전에 어떻게 여운초를 괴롭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운별을 도와 여운초에게 사정하지 못했다.여운별이 감옥 안에서 일찍 나온 것도 아마 감옥에서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실제 성격을 잘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누나, 운별 누나가 소송을 걸어 재산을 나누려고 하면 나에게 알려줘. 재산을 너무 많이 주면 다 써버릴 거야. 아무리 많은 재산일지라도 운별 누나는 분명 다 탕진 할걸.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질만 부리면서 돈만 쓰잖아.”여천우는 여씨 그룹을 여운초에게 맡기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이지 밤새 뛰어와서 여운별을 막고 싶었다.여천우는 두 누나의 인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여운별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응석받이로 키웠기에 패가망신할 사람이었다.“절대로 운별 누나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 안 돼. 내가 지금 휴가를 내고 돌아갈게. 감옥으로 가서 우리 부모님을 만나 그들의 명의 아래에 있는 재산을
여미란은 추미자가 살아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여미란은 마음속 깊이 추미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씨 가문의 사모님 추미자는 먼저 여미란의 남동생에게 시집간 뒤로 그 남동생을 죽이고 또 여미란의 오빠에게 시집갔지만 지금 그 오빠마저도 감옥으로 들어갔다.여미란의 동생이 죽었다고 해도 그녀의 오빠와 관계가 없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화근은 역시 추미자였다.여미란의 오빠가 추미자와 정정당당하게 함께 있기 위해 동생을 죽인 것이다.여운초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여운초는 지금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이었고 전씨 가문이 그녀의 배후에 서 있었기에 여미란 일행은 감히 여운초를 찾아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여미란은 마음속으로 여운초를 수천 번, 수만 번 욕하면서 자신을 달래곤 했다.여운초는 여운별이 여씨 가문을 떠나 어디로 갈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최씨 집안과 김씨 집안이 여운별의 피를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예전에 여미란 자매의 집에 재산이 많았지만 늘 친정집에서 이득을 보려고 애썼다.이제 최씨와 김씨 집안은 부귀한 생활에 익숙해져 꿈에서라도 부자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찰나에 여운별이 스스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게 되었기에 그녀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그때가 되면 여운별은 그녀의 손에 쥐어진 적디적은 재산을 가지고 두 집안에 의해 피를 빨리게 될 것이 뻔했기에 여운초는 곁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지켜만 보면 되었다.여운초가 여천우와 말했듯이 여운초는 자신의 재산을 일전 한 푼도 그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지만 자신의 재산이 아닌 것은 전부 그들에게 돌려줄 것이다.추미자는 예전에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큰 방에서 살았지만 정작 별장 주인인 자신이 가정부와 함께 방을 쓰게 된 기억을 떠올린 여운초는 집사에게 지시했다.“이 방을 깨끗이 청소하세요. 이 방을 다시 새로 꾸밀 거예요.”이 큰 방이 바로 주인의 방이다.여운초는 먼저 금고를 그녀가 지금 사는 방으로 옮기라
정현숙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여운별은 자신의 큰고모 여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미란이 전화를 받지 여운별이 입을 열었다.“큰고모, 제 물건을 돌려받았어요. 제가 지금 돈이 있으니 고모께서 저에게 아파트 한 채를 찾아 세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운초에게 소송을 걸어 재산을 많이 분배받으면 그때 큰 별장을 구매할 거예요.”여운별이 그녀의 물건을 가져갔다는 말에 여미란은 바로 물었다.“들어갔어? 들어갔으면 왜 그 집에서 살지 않고. 별장에 살면 얼마나 좋아. 세 들어 살면 돈도 따로 나가야 하는데.”여운별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그제야 말을 이었다.“우리 일단 만나요.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제가 지금 차에 기름 넣으러 가야 해요. 그리고 고모 찾으러 갈게요. 둘째 고모와 사촌 오빠들에게 점심에 제가 밥을 사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요 이틀 동안 사촌 오빠들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제가 성격이 나쁘고 제멋대로지만 배은망덕한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저에게 잘해주신 사람들을 모두 마음에 담아두거든요.”“지금 제가 좀 초라하긴 하지만 제가 우리 재산을 되찾으면 절대로 고모들께 푸대접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반드시 고모들을 도와 지난날처럼 부자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도울 거에요.”그림의 떡은 누구나 다 그릴 수 있었다.여운별도 그림의 떡으로 두 고모를 달래려고 했다.그리고 그녀가 정말 소송에서 이겨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적어도 수백억의 재산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에 두 고모의 집안에 돈을 조금 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촌 오빠들을 도와 일자리를 하나 더 마련해주겠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은 회사에 관한 일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씨 그룹으로 돌아가면 지인에게 회사 일을 도와달라고 해야 했다.두 고모 댁의 사촌 남매는 항상 그녀에게 잘 대해주었다. 심지어 사촌 남매들이 그녀에게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그녀에게 잘해줄지라도 여씨 그룹을 그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누가 뭐라 해도 사촌 형제들은 여씨 그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