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름 예의를 지키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았다, 물론 전제로 그 어른이 어른다워야만 공경할 마음이 생겼다."예정아, 아가 그 사람들 네 친정 친척들이니? 또 널 찾아온 거야? 혹시 또 너더러 네 할머니 병원비 내라고 하는 거야? 저 사람들도 참 뻔뻔하기도 하지. 좋은 차도 몰고 별장에서 지내면서 수천, 수억의 재산도 있으면서 자기네 어머니가 아프니까 병원비 내기 싫어서 부모가 다 돌아간 조카에게 돈을 내라고 하다니.""뻔뻔한 사람은 많이 봤어요, 이렇게 뻔뻔한 사람은 처음이야. 정말 놀라워.""그러니까요, 예정이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받은 보상금도 저 사람들이 다 나눠갔잖아요. 15년 전의 1억이면 엄청난 돈이잖아요. 저 사람들이 지금까지 호사를 누리면서 사는 건 다 예정이 부모님 사망 보험금으로 시작된 걸 텐데, 어떻게 예정이를 괴롭힐 수가 있대요.""예정아, 넌 마음이 너무 약해서 탈이야. 저렇게 뻔뻔한 사람들은 찾아오면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말고 곧바로 쫓아냈어야지. 저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무슨 짓을 해도 잘못한 줄 모를 거야. 다들 자기들이 맞고 다른 사람이 잘못한 줄 알 걸.""예정아, 다음번에 또 널 찾아와서 할머니 병원비 내라고 괴롭히면 그냥 소리를 질러버려. 우리가 와서 그 뻔뻔한 작자들 쫓아내는 거 도와줄게."주변 이웃들은 다 하예정과 친척 사이의 갈등을 알고 있어 하예정이 빗자루를 들고 집안 어른들을 쫓아내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해도 하예정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예정이 좀 약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그들이었다면 당장에 사냥개 몇 마리를 기르다가 진상 친척들이 찾아오면 아예 개를 풀어 물게 했을 것이다.저런 진상 친척들과는 말 한마디 섞고 싶지 않았다.하예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 사람들, 그래도 제 부모님의 남매잖아요. 저도 화가 너무 많이 나서 이렇게 쫓아낸 거예요.""이러는 게 맞아. 그 사람들이 아무리 네 부모님의 남매라고 해도 그 사람들 너무 매정하잖아. 보통 사람들
배시시 웃은 하예정이 얼른 대답했다."다음에 제가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꼭 당신에게 나설 기회를 줄게요."그녀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괜히 빚을 지는 것은 사양이었다.그 말에 전태윤이 반문했다."당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뭔데?"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아주 아주 많죠. 그냥, 지금 생각나지 않는 것뿐이에요. 태윤 씨, 먼저 볼일 봐요."한참 동안 그녀를 쳐다보던 전태윤이 냉담하게 말했다."그럼 난 회사로 야근하러 갈게. 가게 문 몇 시에 닫아? 내가 데리러 올 테니까 같이 퇴근해. 괜히 그 친척들이 또 당신 차 막아설라.""안 그래요. 혈기 왕성한 하지철이나 그런 짓을 하죠. 한 번 실패했으니 두 번은 없을 거예요. 그 사람들 엄청 진상짓을 하는 것 같아도 실은 다들 엄청 쫄보예요.""전 신경 쓰지 말고 당신 볼일 봐요. 저 엄청 엄청 늦어야 가게 문 닫고 갈 거예요. 어쩌면 언니네에 다녀올지도 모르고요."그러니까 하예정은 전태윤과 같이 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처형 일자리는 어떻게 됐어?"전태윤은 주형인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바로 아내에게 알려주지는 않았다. 소정남에게 알아보라고 했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는 입을 다무는 게 좋았다. 만약 정말로 아니라면 괜히 주형인과 하예진의 결혼 생활을 망친 주범이 될 수도 있었다.언니의 일자리 얘기가 나오자 하예정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언니는 매일 같이 나가서 일자리를 찾고야 있긴 한데 여전히 소식은 없네요. 전 처음으로 일을 찾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걸 알았어요."하예진은 결혼 전에도 직장인이었는데 이제 직장을 떠난 지 3년 만에 다시 돌아가려니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전태윤은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천천히 기다리지 뭐, 지금은 확실히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긴 해.""전 언니가 계속 일자리를 못 찾으면 창업이라도 하게 돈을 빌려줄 생각이었어요. 그러면 우빈이도 보살 필 수 있고 또 돈도
지방간이 심각해지면 간경화로 발전이 돼, 그녀는 간경화 환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단지에서 나온 하예진은 아들이 탄 유모차를 밀며 분유가게로 가 분유를 샀다.이전까지는 다 동생이 그녀를 대신해 분유를 사 와 줬었다.걸어가려니 조금 멀었지만 산책 겸 쇼핑인 셈 쳤다."아빠."별아간 주우빈이 아빠를 불렀다.하예진은 얼른 사방을 둘러봤지만 주형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의아해진 하예진이 주우빈에게 물었다."우빈아, 아빠 봤어?"주우빈은 길가에 세워진 차를 가리키며 아빠라고 불렀다.그 말은 그 차가 아빠의 차라는 뜻이었다.아들이 가리킨 차를 보니 확실히 남편과 똑같은 차가 맞았지만 차번호는 주형인의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우빈아, 저건 아빠 차가 아니라 아빠 차랑 같은 차인 거야. 번호가 다르잖아, 그러니까 아빠 차가 아닌 거야."주우빈은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은 적었지만 아빠의 차를 기억하고 있었다.그에 하예진은 주우빈이 아빠를 그리워하는 거라고 생각해 말했다."우빈아, 아빠가 보고 싶은 거야? 엄마가 아빠한테 전화해서 통화하자고 할까?"주형인은 다시 집에 돌아온 뒤에는 여전히 전처럼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왔다. 하예진이 더는 시중을 들지 않은 탓에 주형인은 점심에도 돌아와서 먹지 않고 아예 밖에서 해결했다.하예진도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가정 폭력은 이미 두 부부 사이에서 넘을 수 없는 고리가 되었다.하예진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주형인은 더더욱 자신의 잘못을 인정 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하예진에게 먼저 잘못을 인정 하지 않았으니 부부는 지금 동상이몽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부부 관계가 어떻든 주형인은 주우빈의 친부였다."네."주우빈은 얌전하게 대답했다.하예진은 유모차에 달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매번 집 밖을 나설 때면 그녀는 그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렇게 하면 편리했다.주형인에게 전화를 거니 한참이 지나서야 통화가 연결됐다."또 무슨 일이야?"주형인의 말
하예진이 귓가에 휴대폰을 가져다 대자마자 전화 너머에서는 주형인의 욕설이 쏟아졌다."당신 평소 우빈이를 어떻게 가르치는 거야? 어떻게 가르쳤길래 우빈이가 윗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가족애며 우애는 하나도 몰라? 어떻게 자기만 장난감을 사고 형한테는 사주지 말라는 말을 하게 해."남편에게 한바탕 욕을 먹자 하예진도 화가 나 차갑게 대꾸했다."내가 평소에 어떻게 가르쳤냐고? 그게 우빈이 잘못이야? 너희 누나네 자식이 매번 우빈이 장난감 빼앗고 때리는데, 당신은 우빈이가 뭔 샌드백인 줄 알아? 이리저리 치이고도 조용하게?""분명 걔가 잘못한 건데, 아빠로서 자기 아들 편을 안 들어줄망정, 아들이 철이 없다고 혼을 내?우빈이 장난감을 전부 누나네 아들한테 다 양보해 주고, 걔가 우빈이를 때릴 때면 얌전히 다 맞고 있어야 직성이 풀려?""당신 누나네 아들은 그 부모들한테 하도 예쁨을 받아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우빈이를 괴롭히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눈이 멀기라도 한 거야, 그게 안 보여? 주형인, 우빈이야말로 당신 아들이야, 당신 친아들이라고! 걔는 당신 조카일 뿐인데 어떻게 뭐가 더 중요한지를 못 가려?"주형인은 하예정의 질책에 말문이 막혔다. 이내 주형인이 곧장 대답했다."당신이랑은 말이 안 통해,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해. 당신 우빈이 데리고 어디 가는 거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당신은 또 어딘데? 회사 아니지? 나도 당신 주변이 시끄러운 거 들려. 우빈이 분유도 다 떨어지고 기저귀도 떨어져 가길래 사러 가는 길이야. 아들은 나와 더치페이 안 했지? 나 혼자서 10개월을 품었으니 애 분윳값 정도는 당신이 내야 하지 않겠어? 지금 당장 돈 보내."그녀의 동생은 그녀에게 얻어내야 할 것은 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하예진은 아들에게 분유를 사줄 돈은 있었지만, 이 아들은 주형인의 아들이기도 하니 주형인에게도 양육의 책임이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 분윳값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매이랕이 돈 달란 얘기밖에 모르지? 내가 돈 찍어내는 것도
서현주는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주형인은 서현주가 자신의 돈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불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과 함께하고 싶어 하기에 마지막 선을 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서현주가 이렇게 진지하게 나오니 주형인은 더욱더 진심으로 빠져들었다.그는 서현주에게 더 많은 돈을 모으게 되면 새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약속했다.그 말에 서현주는 감동하며 여러 번 입을 맞췄고 그는 기쁨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하예진은 더 말을 이으려 했지만 주형인은 이미 전화를 끊었고 이내 카톡으로 분윳값 25만 원을 이체했다.비록 50만 원을 받아내지 못하고 고작 25만 원에 그쳤지만 하예진은 그래도 주형인이 보낸 돈을 곧바로 받았다."왜 그래요? 오빠 부인이에요?"주형인이 전화를 받았을 때, 서현주는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그러다 주형인이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서현주는 와인 두 잔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왔다.오늘 밤의 서현주는 마치 부잣집 딸같은 차림새였다. 명품 드레스를 걸치니 원래도 젊고 예쁜 그녀는 더욱더 예뻐 보였다. 굴곡진 몸매는 주형인과 함께 모임에 나타나자 적잖은 남자들의 이목을 끌어 서현주는 콧대가 한껏 높아졌다.그녀는 자신의 외모와 몸매에 꽤나 자신 있었다.주형인은 그녀를 꾸미는 것에 기꺼이 돈을 썼다. 그녀에게 예쁜 이브닝드레스를 선물했을 뿐만 아니라 금목걸이와 귀걸이 한 쌍, 금팔찌 두 개를 선물 해, 전부 착용한 뒤 오늘 밤의 모임에 함께 참석했다.서현주는 자신이 비록 부잣집 딸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못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그 사람이야. 돈 달라고 전화 왔어. 내가 뭔 은행인 줄 알아, 하루 종일 돈돈 거려."주형인은 아내에게 25만 원을 보내 주면서도 기분 나빠하며 구시렁거렸다. 그는 하예정이 자신에게 분윳값을 요구해서는 안 됐다고 생각했다.서현주는 와인은 주형인에게 건네며 물었다."두 사람 더치페이하는 거 아니었어요? 오빠 이제 집에 가서 밥 먹는 것도 아닌데, 무슨 염치로 돈
서현주가 입을 열었다."아이는 두 사람 거니까 원래 반반씩 내야죠. 오빠는 잘못한 거 없어요."주형인은 당연히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주형인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관성 호텔은 역시 제일 고급진 호텔이기는 하네, 여기 모임의 와인은 우리가 평소 마시는 것보다 훨씬 좋네."서현주는 웃으며 대꾸했다."여기가 어딘데요. 오늘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은 다 작은 회사 대표거나 우리 같은 좀 잘나가는 직장인들 밖에 없어서 좀 아쉬워요. 성 대표님이나 전 대표님 같은 거물은 한 명도 없네요."그녀는 전 대표 같은 풍문에 휩싸인 사람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지난번에 우연히 마주치긴 했지만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해, 전 대표가 정말로 소문에서처럼 차갑고 차가운 데다 비범하게 잘생겼는지 알 길이 없었다."앞으로 전 대표나 성 대표 같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또 있을 거야."주형인은 서현주를 위로했다. 서현주보다 훨씬 아쉬운 건 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서현주는 그저 그의 비서에 불과했고 잘나가는 직장인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그였다.만약 전 대표 같은 사람과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다면 앞으로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전씨 그룹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오빠, 전 오빠도 앞으로 대단한 사장님이 되었으면 해요."서현주는 직장을 나와 스스로 회사를 설립해 사장이 되는 주형인을 상상했다. 그때 하예진을 밀어내고 주형인의 아내가 된다면 그녀는 큰 회사의 사모님이 될 수 있었다.주형인은 그런 서현주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나중에 내가 충분히 인맥을 쌓고 자금도 모으고 나면 내 회사를 차려야지."두 사람은 한참을 우스며 이야기를 나누다 아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사업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서현주는 그런 주형인의 곁을 내내 지키고 있었고, 주형인이 다른 사람과 비즈니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그녀도 간간히 의견을 냈다.서현주는 만약 오늘 밤에 이 자리에 온 게 하예진이었다면, 지금의 하예진 외모로는 분명
어떤 회사든 사장이 바뀌면 고위 임원들도 따라서 변했다.새로운 사장이라면 뭐가 됐든 자신의 심복을 키워야 했다.한 사장의 설명을 들은 주형인은 김진우에게 갑자기 호감이 생겨 한 사장에게 물었다."사장님, 저 진우 도련님이랑 잘 아는 사입니까? 혹시 저 줄 좀 대주실 수 있으십니까? 김씨 그룹 계열사도 IT산업이니 저희 회사와 협력할 기회가 많은데 딱 이어 줄 연이 모자랍니다."유진 테크는 한 사장이 일하고 있는 회사와도 협력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안면을 튼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한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제가 보기에 진우 도련님은 지금 하도 떠받들어져 귀찮아하는 것 같네요. 곧 있으면 자리를 찾아 앉을 테니 이리로 오면 제가 진우 도련님에게 주 사장님을 소개해 연을 맺어드리겠습니다."그 말에 화색이 된 주형인은 감격해하며 잔을 들어 올린 뒤 한 사장을 향해 말했다."한 사장님, 참 감사합니다."한 사장은 주형인과 잔을 살짝 부딪친 뒤 술을 마시고는 옆에 있는 서현주를 조금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주형인에게 말했다."오늘 서 비서 참 예쁘군요. 주 사장님, 참 미인복이 있으십니다.""젊은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오르시고 높은 연봉에 미인까지 곁에 두시다니, 정말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습니다."주형인같이 비서와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이 적지 않은 편이라 다들 알면서도 모른 체 하고 있었다.그들 같은 사람은 접대가 필요할 때면, 아내가 대단한 능력자거나 부부 사이가 아주 좋아야만 아내를 데리고 모임에 나오지, 그렇지 않으면 보통은 비서나 애인을 데리고 참석했다.그것이 바로 전태윤과 성기현같이 진정한 재벌가 도련님들이 이런 모임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들 그 바닥은 모임이 한 번 열리면 참석하는 빈객은 다 지위와 신분이 있는 사람이고 함께 하는 파트너는 다 자신의 아내였다.재벌가 사모님의 무리는 정실이 아니면 어울리기 몹시 힘들었다. 내연녀가 자리를 꿰찬 경우, 설령 재혼을 했다고 해도 재벌가 사모님들은 내연녀였던 사람과
"진우 도련님, 안녕하세요."주형인은 오른손을 내밀어 김진우와 악수했다.주형인과 악수한 김진우가 말했다."주 사장님 이름이 어쩐지 익숙한데요."어쩐지 주형인이라는 이름이 그는 귀에 익었다.주형인은 조금 놀라 대답했다."도련님께서 제 이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시다고요?"이 업계에서 어느새 이렇게 유명해졌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김씨 가문 도련님이 그의 이름을 다 들어본 적이 있다니.김진우는 웃으며 대답했다."확실히 조금 익숙하네요. 아마 누군가가 주 사장님의 이름을 말씀하는 걸 들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은 본 적 없었는데 오늘 드디어 만나네요."주형인은 얼른 자신의 명함을 꺼내 김진우에게 건네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 않습니까? 이건 제 명함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김진우는 주형인의 명함을 받은 뒤 흘깃 보고는 챙겨 넣었다.그는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서현주를 흘깃 쳐다봤다. 비록 매혹적인 여자이긴 했지만 김진우는 그저 한번 흘깃 쳐다보고는 시선을 거두었다.김진우의 눈에 제일 좋은 여자는 바로 그의 예정 누나밖에 없었다.하예정 말고 다른 사람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몇 사람은 김진우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다들 술을 마시며 기쁘게 일 이야기를 이어갔다.…...아이의 분유와 기저귀를 산 하예진은 아기용품점에서 나왔다. 분유는 아이 유모차에 놨지만 기저귀는 하도 많아 놓을 수가 없었다.점원이 다섯 개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고 하니 그녀는 다섯 개를 샀고 서비스로 온 하나까지 총 여섯 개나 샀다.아기 유모차는 화물차가 아니라 그렇게 많은 기저귀를 놓을 자리가 없었다.어쩔 수 없이 하예진은 다시 한번 주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주형인은 받지 않았다.하예진은 또 여러 번 다시 걸었고, 여섯 번째가 되어서야 통화는 연결됐다."하예진, 또 왜? 나 바쁜 거 몰라? 넌 내가 무슨 시장 바닥에 있는 줄 알아? 아무 때나 다 전화 받을 수 있게? 앞으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고현과 전호영이 하예진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는 점을 눈치챘다.그들은 하예진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지만, 하예진의 뒤에 서 있는 몇몇 대가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그리고 하예진의 친동생은 전씨 가문의 큰 사모님이었기에 하예진에게 투자해 줄 돈은 부족하지 않았다.하예진이 용기와 안목이 훌륭하기만 하면 자금이 부족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이은화에게 눌렸던 능력 있는 사람들은 점점 그들만의 꿍꿍이를 꾸미기 시작했다.하예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저는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뭐든지 관심이 있어요. 고 대표님, 내일 혹시 시간 되시는지요? 제가 한번 찾아뵙겠습니다.”고현이 말을 이었다.“오세요. 저야 언제든지 편하죠.”전호영은 곁에서 질투하며 말했다.“고현 씨가 우리 누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니 제가 질투 나네요. 제가 갈 때마다 고현 씨는 너무 바쁘다고 저와 말할 겨를도 없다고 하더니, 누나가 찾아간다고 하니 언제든지 편하다고 말하는 거예요?”고현은 곁눈질하며 대답했다.“저와 예진 씨가 마음이 잘 맞아서 그래요.”이윤미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저도 예진 씨랑 잘 맞는 것 같은데, 고 대표님만 괜찮으시다면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윤미 씨가 오신다면 제가 시간이 없어도 짜내야죠. 다른 사람이라면 저는 그럴 시간이 없을걸요.”이씨 가문에서 고현은 이윤미의 체면만 세워주고 싶었다.고현은 줄곧 이윤미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윤미와 고빈을 맺어주려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고빈은 이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둘러댔다.사실 그는 이윤미에게 설레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감정이라는 것은 서로가 상대방에게 설레는 느낌을 받아야 행복한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오랜 시간 끝에 사랑이 키워진다고들 하지만 누구나 다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이윤미가 웃으면서 말했다.“제 손에도 프로젝트가 있는데 저는 지금 엄청 좋게 보고 있어요
“네 엄마는 연세가 많으신데 여전히 사업에 많은 정력을 쏟아붓고 있지. 윤미한테 돈을 들여 후계자로 배양하고 계시지만 나한테만 돈을 아끼셔. 아빠도 지금 연세가 있지만 내 건강은 여전히 좋아. 하지만 그래도 나도 돈이 필요한걸. 아내로서 해야 할 책임도 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여자를 만나면 안 된다고 하셔.”정군호는 술을 마셔서 그런지, 이윤정과 두 사람만 있어서 그런지 이은화에 대한 불만을 한꺼번에 쏟아냈다.이윤정은 정군호의 괴로워하고 분노하는 표정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자리에 앉아 정군호와 함께 술 한잔했다.그녀는 마음속 깊이 여전히 정군호를 동정했다.아래층 연회는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정군호는 데릴사위라는 신분으로 수많은 남자가 범할법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위층에 숨어서 사람을 만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아래층의 모든 사람은 여전히 연회에서 식사하고 있었지만 편하게 먹지 못했다.주로 귀한 손님이 세 명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그들도 이은화가 왜 가족 연회를 벌이려는지 알 수 없었기에 현장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예진아, 그럼 무슨 사업에 투자할 거야?”이은화가 관심 있게 물었다.그러나 마음속으로 하예진의 투자 사업에 걸림돌을 던져 하예진의 사업이 싹트지 못하게 처음부터 막으려 했다.하예진이 강성에서 자리를 잡게 하면 안 되니까... 그녀가 강성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할 것이다.가문의 친척들도 하예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은화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하예진을 이용해 이은화와 싸우게 하거나 혹은 진심으로 하예진을 지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아직은 모르지만 일단 지켜봐야죠. 요즘은 사업이 잘 안 되기 때문에 항상 잘 살피고 결정해야 해요.”하예진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은화가 뭐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이은화가 말을 이었다.“맞아. 요즘 장사가 너무 어려워. 우리 이씨 그룹도 갈수록 장사가 안되고 있거든. 우리뿐만 아니라 고씨 그룹도 아마 업적이 조금 떨어졌을걸.”이은화가 말하며 고현 쳐다보았다
이윤정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은화가 입을 열었고 고현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녀가 정군호에게 위층으로 음식을 가져다 드시지 않는다면 불효녀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강성 사람들은 이씨 가문의 가족들이 이윤미보다 이윤정을 더 아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이은화가 부부가 짝퉁 딸인 이윤정을 좋아하고 친딸 이윤미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만약 이때 이윤정이 효도하지 않는다면 체면이 완전히 구겨질 것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이라는 배경으로 부잣집으로 시집가려고 했다.그녀는 할 수 없이 이은화의 지시대로 정군호에게 음식과 술을 챙겨 직접 위층으로 가져갔다.이윤정이 위층으로 올라가자 조윤은 동서들과 눈을 마주치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계속해서 밥을 먹었다.하예진은 조윤 일행이 서로 눈빛을 마주치는 장면을 보더니 그녀들이 무언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이윤정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으로 분석해보더니 아마 자신에게 덤터기를 씌우지는 않을 것으로 여겼다.하예진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윤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리고 가끔 고현과 몇 마디 나누곤 했다.고현은 외부인 앞에서 말도 별로 없이 점잖게 음식을 먹었다. 하예진은 그녀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일종의 즐거움으로 여겼다.전씨 할머니께서 선택하신 손자며느리들 전부 최고인 것으로 보면 어르신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셨다.전호영은 자주 고현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자상하게 배려해주었다.이윤정은 음식과 술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 부모님의 방문 앞에 이르렀고 손을 내어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문을 두드리면서 말했다.“아빠, 문 열어요. 저예요. 제가 음식 좀 챙겨왔어요. 아빠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으셔서 엄마가 음식 좀 가져다드리라고 하셨어요. 엄마가 가족 중에 신분과 지위가 있는 사람을 초대해서 모두 지금 식사하고 계세요.”방안에는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이윤정이가 방문을 한참을 두드려서야 방문이 열렸다.정군호는
이은화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 자식들에게 말했다.“고 대표님께서 오셨어. 나와 함께 마중하러 나가자.”전호영이 오는 것에 대해 이은화는 놀라지 않았다.하예진의 뒤에는 전씨 가문과 성씨 가문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라는 신분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긴 했으나 강성에서 전씨 가문의 세력은 고씨 가문에 미치지 못했기에 이은화는 고씨 가문을 더 중히 여겼다.이은화가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고현이 온 것을 보면 아마도 고현이 하예진의 후원자라는 것을 이은화에게 알려주기 위함일 것이다.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하예진의 강성 후원자가 바로 고씨 가문이라는 것을 암시해준 것과 다름없다.고현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이윤정은 매우 긴장해 하면서 급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평범한 옷차림을 내려다보았다. 이윤정은 오늘 밤 하예진만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예쁜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지금 위층으로 올라가서 드레스로 갈아입는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다행히 그녀의 일상 옷차림의 스타일도 참신하고 트렌디하여 단정하고 고급스러움이 돋보였다.게다가 이윤정은 젊고 예쁘며 몸매도 좋았다.예쁜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현장의 사람들을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었다.자신감이 넘친 이윤정은 이윤미를 힐끗 쳐다보더니 일어나 이은화의 곁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하면 고현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하예진은 따라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이씨 가문의 주인이 아니니 손님을 접대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짝퉁 딸 이윤정이 이윤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본 하예진의 눈은 반짝거렸다.이윤정이 고현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사실을 하예진도 전해 들은 적 있었다.고현은 이윤미에게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이윤정을 무시했다. 이는 이윤정을 화가 치밀어 오르게 했다.고현이 나중에 여성의 신분을 밝히면 이윤정은 아마 입이 떡 벌어질 것이고 가슴도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고 하예진이 마음속으로 비방했다.이은화가 자식들과 며느리를
“그럼 내가 앞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나에게 꼭 말해. 내가 실력이 막강한 것은 아니지만 인맥이 넓어 너에게 도움은 될 거야. 이번에 사업차 온 거지?”하예진이 대답했다.“그럼요. 아니면 이모할머니 생각에는 제가 무슨 일로 여기로 왔다고 생각하세요?”그녀는 이은화에게 되물었다.이은화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네가 여기로 와서 이씨 성을 바꾸러 온 줄 알았어.”“저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제 몸에 이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한 저는 이씨 가문의 후손인걸요. 제가 이씨 성으로 바꾸지 않는다고 해도 제가 전임 가주의 후손이라는 사실만은 지울 수 없어요.”하예진은 마치 두 번째 이경혜처럼 늘 이은화에게 가시 돋친 말을 했다.이경혜의 성격과 능력은 이은숙을 무척 닮았다. 하예진은 이은숙의 핏줄을 이어받은 후손으로서 이윤미와 겨룰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다.“가주님. 연회를 시작하셔도 됩니다.”이씨 가문의 집사 진숙녀가 때마침 다가와서 이은화에게 공손히 말했다.그러자 이은화가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자, 그럼 모두들 자리에 앉으세요!”이은화는 몸을 일으키며 하예진에게 말을 건넸다.“예진아, 가자. 우리도 자리에 앉자. 네 경호원은 우리 집사와 함께 밖에 나가서 기다리시라고 해. 어쨌든 우리 가문의 연회이니 우리 가족밖에 참석할 수 있거든. 내 경호원들도 밖에 있는걸.”하예진이 말하기도 전에 이은화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네 경호원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 먹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내쫓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네 경호원은 너와 함께 여기로 왔기 때문에 갈 때도 너와 함께 떠나게 될 거야.”하예진은 경호원들에게 진숙녀를 따라 나가라고 지시했다.이은화는 하예진과 함께 그녀들의 자리로 향했다.두 사람은 함께 앞에서 걸어갔고 이윤미는 말없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이윤미는 이은화가 하예진을 연회에 초대한 이유가 그녀에게 위세를 떨치거나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닐 거라고 여겼다.연회에는 수많은 눈이 지켜보고
“오늘 밤, 예진 씨가 우리 이씨 가문의 귀한 손님일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예진 씨가 누구인지, 우리 이씨 가문에서 어떤 신분인지를 알려드리기 위함이에요. 오늘부로 여러분께서 집으로 돌아가신 후 가족들에게 앞으로 우연히 예진이를 만나게 되더라도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해야 한다고 꼭 전하세요.”모두가 이은화를 보고 있었다.이은화는 내심 친딸이 제멋대로 결정한다고 불만스러웠지만, 이씨 가문은 조만간 이윤미가 운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다.하예진을 추켜세워 가문 후계자의 신분을 주는 것도 이윤미에게 큰 시련이 될 것이다.이윤정은 이윤미와 싸울 자본이 없지만, 하예진에게는 있었다.이은화는 딸 이윤미가 하예진의 지위를 추켜세워주고 하예진과 공평하게 경쟁하기를 원한다면 이윤미의 의사를 존중해 주려고 했다.만약 이 경쟁에서 이윤미가 이겨서 당당하게 이씨 가문의 대표 자리에 앉게 되면 다른 사람의 더는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다.만약 이윤미가 지게 된다면... 이씨 가문의 대표 자리가 다시 이은숙 후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 하늘의 뜻일 것이다.물론 이은화도 자신이 빼앗은 모든 것이 다시 이은숙 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이윤미가 능력이 부족해 하예진에게 졌어도 이은화에게는 아들이 셋이나 있기 때문에 이씨 가문의 남자들도 그룹을 계승할 수 있도록 이씨 가문의 규칙을 개정하면 그뿐이다. 혹은 공개적으로 가문의 사람 중에서 능력이 뛰어난 젊은 여성을 선택하고 배양해서 하예진과 계속 싸우는 방법도 있다.이은화가 살아 있는 한 이은숙의 후손들은 쉽게 주인 자리에 앉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반복적으로 깊이 생각한 뒤, 결국 이윤미가 결정한 사항을 반대하지 않았다.“윤미가 한 말이 바로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아까 제가 노망났나 봐요.”이은화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현장의 사람들은 하예진에 대한 태도가 더 공손해졌다.하예진은 속으로 비웃었다.이은화
“예진 씨.”이윤미는 하예진한테 다가가 정중히 사과했다.“저희 엄마가 연세가 있어서 노망났나 봅니다. 방금 말이 좀 지나친 것 같은데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릴게요.”이때 하예진이 답했다.“이건 이 대표님이랑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이왕 이 대표님께서 저를 손님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가 가는 게 맞습니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자기 경호원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이은화는 자기 친딸 때문에 짜증 나 죽겠는데 하예진까지 자신을 무시하니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예전에 관성에 가서 이경혜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은화에게 만약 하예진과 이윤미가 신분 자리를 놓고 싸워도 상관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또한 하예진을 이씨 가문의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그게 걸맞은 대우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하지만 이은화는 이 부탁을 들어주기 싫었다. 이미 하예진이 자기 큰조카 딸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오늘 특별히 이런 자리에 초대해 어르신들의 기개를 빌려 그녀의 기를 죽이려 했다.하지만 하예진은 그들을 진짜 가족 어르신들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이씨 가문에서 특별히 자신을 초대해서 왔는데 이런 강압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이건 분명 손님 대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자신을 달가워하지도 않는 자리에 굳이 남아 있을 필요가 있을까?하예진은 두말없이 바로 자리를 떴다.오고 싶지도 않았는데 이은화가 사람까지 보내서 초대한 자리였다.“예진아.”하예진이 집 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이은화가 그녀를 부르면서 이윤미와 함께 다가왔다.그리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뒤 차분하게 말했다.“예진아, 네 외할머니는 내 친언니야. 나도 네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그러면 내가 네 이모할머니가 되는 것이고 지금 전체 이씨 가문을 관리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는 내 아랫사람이 맞아.”“또한 이 집안에 거의 모든 사람이 다 네 어르신일거야... 아마 언니가 죽지 않았다면 네가 언니 뒤를 이어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겠지. 우리 이씨 가문에서 후계자의 지
정일군이 다시 재촉했다.네 사람은 이윤미가 혹시나 이은화 앞에서 자기 험담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이윤미가 하예진을 데리고 오는 모습에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쏠리게 되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하예진의 얼굴이 낯익은 것 같았다.이은화는 이미 상석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주위에도 사람들이 빼곡히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는데 모두 이씨 가문에서는 꽤 높은 지위와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예진아, 어서 와.”이은화는 하예진을 반갑게 맞이한 뒤 집사에게 당부했다.“예진이한테 의자 하나만 갖다줘.”이때, 하예진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집사가 서둘러 작은 의자 하나를 갖고 오는 모습에 코웃음을 치며 이은화에게 말했다.“저를 초대할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면 이렇게 가식 떨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멀리서 온 것도 알고 특별히 하루 호텔까지 와서 저를 여기에 데려왔으면서 제가 앉을 자리조차 마련하지 않았네요. 오늘 이 대표님의 접대 방식에 다시 한번 놀라고 갑니다.”말을 마친 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만 가자!”“예진아.”이은화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세웠다.“이 중에 너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있는지 어디 한번 봐봐. 너한테는 모두 어르신들인데 저 분들더러 자리를 양보하라고 할 수는 없잖아?”“이 자리에 앉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네 체면은 세워준 거야.”순간 모든 사람은 분위기에 얼어버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사실 눈앞에 저 여자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만 듣고도 그녀가 가문의 후계자란걸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촌수로 따지면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 하예진한테는 어른뻘이지만 그녀는 전임 가주의 후계자이고 또 이씨 가문의 규칙대로라면 하예진 이야말로 진짜 대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아무리 촌수가 높다고 해도 하예진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이은화도 사실 이걸 이용해서 하예진의 기선을 제압하려 했다.의도는 당연히 하예진이 돌아옴으로써 이윤미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다.그녀의 말에
그 말에 정일호는 잔뜩 겁을 먹은 채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들은 사람이 없겠지?”문득 자기 집인데도 큰 소리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정일호는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점점 이씨 가문의 규칙들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다.다른 가문의 후계자라면 보통 다 남자인데 이씨 가문만 여자였다.또한 이씨 가문에서 남자보다 여자의 지위가 더 높았다. 아무리 이씨 가문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저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가주 자리는 꿈도 못 꾸는 신세였다.“이미 우리랑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마 듣지는 못했을 거야. 근데 오늘 이렇게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건데 아무리 지금 밖에 묶어둔 여자들이 그리워도 혹시나 새언니들한테 들키지 않게 조심해. 아무리 엄마가 오빠들 편을 든다고 해도 새언니네 집에서 찾아오면 혼나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러다가 혹시나 이혼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정일범이 답했다.“그 여자들은 그저 심심풀이로 데리고 노는 거지, 미쳤다고 집까지 데리고 오겠어? 그리고 하나같이 집안 형편이나 신분을 봐도 우리 가문이랑 수준이 안 맞아.”그가 지금 데리고 있는 내연녀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매달 몇십만 원씩 용돈을 줘도 엄청 고마워했다.또한 정일범의 아내는 명문가 딸은 아니었지만 작은 사업을 하는 집안이라 어느 정도 그에게 도움 주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정일범은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 진작에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돈을 벌려고 했다. 이씨 그룹에서 자신은 그래도 꽤 높은 자리에 있고 거기에 처가의 도움을 빌려 밖에서 공동 사업을 하게 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그 돈은 전부 정일범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된다.하지만 처가 쪽에서 그의 불법행위에 대한 증거들을 아직 손에 쥐고 있어서 만약 아내와 이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들은 곧바로 그 증거들을 이은화한테 넘겨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일범의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지금은 아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