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이가 뭘 했기에 네가 발렌시아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냐?""아무것도 안 했어요.""태윤아, 너는 이 할미 곁에서 자란 아이야. 이 집안에서 널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너희 두 부부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너도 이곳에 돌아올 리가 없겠지. 예정이가 도대체 뭘 했느냐? 말하기 싫으면 되었다. 조금 있다가 이 할미가 가게로 가서 물어보면 그만이지."걸음을 멈춘 전태윤은 자신의 할머니를 보며 조급함에 버럭 화를 냈다."할머니, 제가 말했죠. 저와 하예정이 결혼한 뒤에는 어떤 일에도 간섭하지 말라니까요.""난 간섭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너희 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거야. 너는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한 녀석인 데다 재산을 숨기고 결혼 사실도 숨겼지. 예정이는 네 신분이 뭔지 아예 모르고 있어. 너는 설령 네가 잘못했다고 해도 절대로 먼저 사과하는 일이 없는 아이이고. 이런 때에 너는 이때 나서서 어색한 둘 사이를 풀어줄 이 할미가 필요해."전씨 가문 할머니는 전태윤에게 하예정과 결혼한 뒤에는 더는 부부 사이의 결혼생활에 끼어들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었다.하지만 그녀는 여태 내내 두 부부 사이의 모든 행적을 유의하고 잇었다.처음에는 서로를 까먹었던 두 사람이 서로 어우러져 지내고, 전태윤이 하예정에게 점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심지어 조금 우쭐해하기도 했다.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고, 두 부부가 바라던 대로 사이가 진전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우쭐해하기도 잠시, 두 부부는 이내 별거를 하기 시작하니 그녀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아직 증손주를 품에 안지도 못하지 않았던가."조금 오해가 있었을 뿐이에요, 별일 없어요.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할머니. 하예정에게 물을 필요도 없고요. 며칠 지나면 발렌시아로 돌아갈게요."전태윤은 끝까지 원인을 이야기하지 않았다.소정남에게 한 소리를 듣고 나니 전태윤도 자신이 정말로 질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소정남은 자신이 하예정에
전씨 가문 할머니는 손자 녀석의 행위에 화가 왈칵 치밀어 아예 길가의 돌 턱에 주저앉았다.그렇게 큰 힘을 들여 겨우 손자를 설득해 결혼시켰더니…잠시 침묵하던 전태윤도 다가와 할머니 곁에 앉아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할머니도 억지로 엮은 인연은 좋을 리 없다는 거 알잖아요. 할머니는 은혜를 갚겠다고 했고, 전 할머니가 키웠으니 저더러 대신 은혜를 갚으라고 했을 때, 시키는 대로 했잖아요.""할머니 저랑 약속했잖아요. 우리 결혼 생활에 간섭하지 말라고요. 혼인 신고했던 날에도 할머니한테 제가 평생을 맡길 수 있는 여자인지 하예정의 인품을 시험해 보겠다고도 했잖아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면 반년 뒤엔 끝을 내겠다고요."전씨 가문 할머니는 불퉁하게 대꾸했다."네 그 고집을 봐선 설령 정말로 예정이를 좋아하게 된다고 해도 죽어도 인정하지 않겠지.""…"그 말에 전태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되었다, 화내지 않으마. 애초에 너더러 예정이와 결혼을 하라고 했던 건 내가 잘못했다. 네 말이 맞아. 억지로 엮은 인연은 좋을 리가 없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네 말대로 두 사람은 결혼 사실을 숨기고 있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이혼하고 나면 하예정에 대한 영향이 최소로 줄겠구나."전씨 가문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네가 후회하지 않길 바라마. 앞으로 이 할미에게 찾아와 도와달라고 하지 않기를 바라고."전태윤은 입술을 꾹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가서 내 운전기사 좀 불러 오거라. 난 이만 가야겠다. 널 보고 있으니, 네 할아버지 얼굴이나 일찍 볼 것 같구나. 네 할아버지는 가기 전에도 네가 평생 혼자 지낼까 봐 결혼 걱정을 그렇게 했는데."전태윤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땐 그는 아직 한참 젊어 애초에 결혼 걱정을 할 일이 없었다.물론, 그는 지금도 늙은 나이는 아니었다. 이제 겨우 서른밖에 되지 않은 나이지 않은가."할머니, 식사하시고 가세요."전태윤은 그래도 할머니에게 효심은 있었다. 그는 할머니,
"난 지금 밖이야. 네 가게에 가서 너랑 같이 아침 먹을 생각이었지. 참, 예정아. 아침 포장 안 해도 돼. 할머니가 3인분 포장했으니끼 가서 효진이랑 셋이 같이 먹자.""네. 그럼 가게에서 기다려요, 할머니. 저 금방 갈게요. 근데 앞으로는 이렇게 일찍 일어나지 마시고 좀 더 주무세요, 저 배 안 곯아요.""나는 나이가 되니까 잠이 길지 않아서 해만 뜨면 바로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됐어. 난 네가 곯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 그냥 너랑 같이 밥 먹는 게 좋아서 그래, 아주 맛이 나."하예정은 웃음을 터트렸다.지난 몇 달간, 그녀는 전씨 가문 할머니와 자주 식사를 함께했었다.그녀는 관성의 수많은 오래된 가게와 맛집을 알고 있어, 그녀와 심효진을 데리고 온 관성에 유명하고 맛있는 음식집에 데려갔었다.그녀와 심효진은 할머니가 젊었을 적 분명 먹보였을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다.비록 지금은 나이가 있어 많이 먹지는 못하는 데다 조건이 좋아지니 입맛도 까다로워졌기 때문에 전씨 가문 할머니는 식욕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수다를 떨고 나서야 통화를 끊었다.통화를 마치고 고개를 들자, 자신의 손자가 어둡게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발견했다. 전씨 가문 할머니는 잠시 의아해하다 물었다."날 왜 그렇게 보는 것이냐? 내가 예정이에게 뭘 묻길 바랐던 것이냐?"전태윤은 굳게 다문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이미 전화도 다 끊은 마당에 제가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그럼 왜 아까 이야기하지 않고?"전태윤은 얼굴을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씨 가문 할머니는 곧바로 손을 들어 팔뚝을 찰싹 내리쳤다."이것 봐, 넌 늘 이러지. 고집만 세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묻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입만 벌리면 물어볼 수 있잖아? 꼭 그렇게 얼굴을 굳히고 태어나길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입은 꾹 다물고 그래야겠어?""나와 네 할아버지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쩌다 널 이렇게 키웠는지 모르겠다. 입
할머니는 손자를 쳐다봤고, 손자도 할머니를 쳐다봤다.그녀는 여러 번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했지만 또 아무 말도 하지 않다 결국 박장대소를 터트렸다.전태윤은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아서는 호탕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를 쳐다봤다..할머니는 웃으며 전태윤의 어깨를 두드렸고, 전태윤은 그런 할머니가 웃다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부축까지 해줘야 했다.한참이 지나서야 할머니는 웃음을 그친 뒤 말했다."태윤아, 내가 오해를 했구나. 예정이는 킥복싱을 배웠으니 그래, 싸움 실력이 좋겠지. 평범한 양아치들을 열 명쯤은 문제도 아니지.""내가 조언을 좀 하자면, 다음에 예정이가 위험에 처한 걸 보면, 도움이 필요한지 생각하지 말고 얼른 도와주면 그만이야. 좋기는 좀 다치기도 하면서 말이야. 그러면 예정이는 미안함에 너한테 더 잘해줄 거야."전태윤은 얼굴을 굳힌 채 두 입술을 꾹 다물었다."아내를 사로잡으려면 조그마한 잔머리 정도는 써야지.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네 진심이야."전태윤은 차갑게 말했다."할머니, 저 그럴 필요 없어요.""그래, 그래. 그럴 필요 없어, 네 말이 다 맞아. 언젠간 나한테 도움을 청할 때가 올 거다, 녀석."전태윤의 얼굴은 새카맣게 어두워졌다. 이게 친할머니가 보일 수 있는 태도인가?그는 왠지 할머니가 자신이 못난 꼴을 보이길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조금 괘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전씨 가문 할머니의 기사가 차를 몰고 다가왔다."난 먼저 갈 테니 넌 천천히 운동해. 아침 먹을 때 입맛이 없으면 날 좀 따라 해 봐. 이 할미의 방법은 그래도 꽤 쓸모가 있어. 그도 그럴 게 짬에서 나오는 경험이라는 게 있잖니."전태윤의 어깨를 툭툭 친할머니는 배시시 웃으며 자신의 차로 향하며 기사에게 잊지 않고 물었다."박 집사가 포장한 아침은 챙겼나?""챙겼습니다, 뒷좌석에 있습니다."전씨 가문 할머니는 가볍게 대꾸했다.전태윤은 다정하게 차 문을 열어준 뒤 차에 타는 할머니를 부축했다. 그러다 옆자리에 놓인 도시락 세 개를 보며 입
"알겠습니다."기사와 강일구는 함께 차에서 내렸다.상대 차량 기사는 두 사람이 내려서 도와주려 하자 감격을 금치 못했다.한차례 검사한 뒤 전태윤의 기사가 말했다."당신 이 차 수리하려면 몇 시간은 걸리겠네요. 저흰 시간이 없어서 도와줄 수가 없겠네요. 괜히 뒤 쪽 차량 통행 방해하지 않게 사람 불러서 차 옆으로 밀어줄 테니까 당신은 견인차를 부르세요."차 한대 쯤이야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그래도 옆으로 옮길 수는 있었다.조금 옆으로 옮기기만 해도 차량의 통행에는 문제가 없었다.상대편의 기사는 감격하며 말했다."좋아요, 정말 감사드려요. 다만, 저희 아가씨께서 급한 일로 먼저 가보셔야 하는데, 혹시 저희 아가씨 좀 가는 길에 부탁드려도 될까요?"강일구와 기사는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강일구는 그 롤스로이스 곁으로 다가와 공손하게 전태윤에게 물었다."도련님, 상대 차량에 한 사람이 더 있는데 저 운전기사네 아가씨라고 합니다. 급히 나갈 일이 있다는데 지금 차를 견인해야 해서 그 아가씨를 태워줄 수 있냐는데요?"전태윤이 차갑게 반문했다."어느 가문 아가씨인데?"강일구는 난감한 기색으로 대답했다."…그건 안 물어봤습니다.""어느 가문 아가씨인지 물어보고, 다시… 아니다, 물어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겠군."전태윤은 그 차량에서 내려 다가오는 아가씨가 누군지 알아챘다. 바로 그녀에게 질척대며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공개적으로 쫓아다니는 성소현이었다.하예정은 그에게 성소현이 바닷가로 놀러 갔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건가?성소현이 자신의 차로 다가오는 것을 본 전태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왠지 모르게 하예정이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성소현이 하예정에게 어떻게 해야 그를 사로잡을 수 있는지 물었다는 말 말이다.하예정 그 망할 계집애는 몹시 열정적으로 생각해 낸 방법을 성소현에게 알려주는 것이 성소현이 자신을 사로잡을 수 있게 도와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그토록 통이 큰 아내는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여자가 자신
"전태윤 씨, 태윤 씨…"성소현은 전태윤의 차를 따라 몇 걸음 뛰어가다 이내 포기했다.전태윤이 차에 태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설령 차 바퀴 앞에 드러눕는다고 해도 그대로 깔아뭉갰으면 뭉갰지 절대로 차를 세우지 않았다.그렇게 그녀는 전태윤의 차량이 경호 차량들에 둘러싸여 멀어지는 것을 멀뚱히 바라보며 성소현은 발을 세게 굴렀다.이른 아침부터 여기로 찾아와 전태윤의 길을 막았었다. 막긴 막았고, 전태윤도 나름 그녀를 도와주기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차는 전태윤의 경호원들이 힘을 합쳐서야 겨우 옆으로 옮겼고 더는 통행을 방해하지 않았으니 말이다.하지만 끝내 전태윤의 차에 타지 못해 성소현은 몹시 속상했다.물론 성소현은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적어도 일 년을 쫓아보지 않는 이상 그녀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공개적으로 고백한 뒤로 이제 며칠이나 지났다고?그녀는 더 버틸 작정이었다.그녀는 언젠간 전태윤의 전용차에 타고 그의 전용차에는 젊은 여자는 오직 그녀만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행복한 상상하자 성소현은 기분이 이내 좋아졌다.그녀는 집사에게 전화를 해, 집사에게 차량 한 대를 보내라고 지시했다."어젯밤에 내가 가져온 해산물 아직 잘 키우고 있지? 안 죽었지? 안 죽었으면 그거 포장해서 같이 보내줘. 선물로 줄 거야."성소현은 하예정에게 휴가에서 돌아오면 신선한 해산물을 선물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아직 기억하고 잇었다.그녀는 어젯밤 바닷가 별장에서 돌아오며 특별히 해산물을 잔뜩 챙겨서 왔다.그녀의 부모님도 그녀가 하예정과 친구를 맺은 것을 알고는 하예정이 급이 맞지 않다고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하예정과 친구가 되는 것을 적극 찬성했다. 어쩌면 그녀에게 친구가 적은 탓일 지도 몰랐다.부모님은 그저 성소현이 높이 사며 친구가 되려 하는 여자애면 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성소현이 하예정에게 해산물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을 때, 성씨 가문 사모님은 직접 딸을 위해 많은 것을 챙겨주기도 했다.성씨 가문 사모님은 아
그녀는 하예정의 배를 흘깃 쳐다봤다. 평평하고 납작했다.그래, 그녀의 오만하고 까다로운 큰손자가 그러지 않았던가. 아직 하예정에게 손을 대지 않아 두 부부는 결백하기 그지없다고 말이다. 그녀가 증손자를 안으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하예정은 전태윤이 차갑다고 꺼려해 덮치지도 못하는데 벗겨 먹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그리고 전태윤은 또…할머니는 근심 걱정만 늘어갔다.그러던 별안간 그녀는 전태윤이 바깥에 도는 소문처럼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몸에 문제가 있어서, 안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그렇지 않으면 하예정과 결혼한 지 한 달이 다 되는 데다 같이 살기까지 하고 있는데 남편의 의무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전씨 가문 할머니는 점심에 돌아가자마자 가문의 요리사에게 전태윤에게 먹일 보신탕을 준비하라고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런 뒤 하예정더러 전태윤에게 몸보신하게 가져라주라고 할 심산이었다. 그러고도 증손주를 만들어 낼 수 없을지 어디 한 번 두고 볼 생각이었다.마침 두 부부에게 서로 져줄 기회도 만들 수 있었다.계속 이렇게 냉전하고 별거를 할 수는 없었다."우빈아, 증조할머니한테 인사해야지."하예정도 자신의 조카가 참 잘 컸다고 생각했다."증조할머니 안녕하세요."전씨 가문 할머니는 전태윤의 할머니이고 전태윤은 하예정과 동년배이니 주우빈은 확실히 전씨 가문 할머니를 증조할머니라고 불러야 맞았다.그녀는 주우빈에게 참 예의가 바르다고 칭찬하며 함께 서점으로 들어갔다."할머니, 오셨어요?"마중 나온 심효진은 그녀가 손에 도시락 세 개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얼른 도시락을 받아들었다."내가 아침 배달 왔어. 자, 다 같이 먹자. 나는 너희 둘이랑 먹는 밥이 너무 맛있어서 좋아."가게로 들어온 전씨 가문 할머니는 마치 자기 집에 온 듯 익숙하게 손을 씻고 그릇을 꺼냈다.벌써 도시락을 연 심효진은 안에 포장된 음식을 보고는 주방에서 나오는 전씨 가문 할머니에게 물었다."할머니, 어디 5성급 호텔에 가서 포장해 온
할머니는 다급한 마음에 얼른 도망을 치려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성소현은 이미 가게 문 앞까지 와 있어 그녀가 이대로 도망친다면 성소현과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그저 숨는 수밖에 없었다.그리하여 전씨 가문 할머니는 담담하게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 하예정과 심효진에게 말했다."난 다 먹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마."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화장실로 향하며 말했다."나이가 드니, 화장실에 한 번 앉으면 반 시간은 걸리겠구나."그 말에 하예정과 심효진은 그저 서로 시선만 주고받았다."예정 씨, 안에 있어요?"전씨 가문 할머니가 자리를 비키자마자 성소현이 안으로 들어왔다.왼손에는 그물 가득 새우를 들고, 오른손에는 그물 가득 게를 든 채 허둥지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예정 씨, 얼른 받아요. 무거워 죽는 줄 알았네."성소현은 재벌 가문의 아가씨로 평소에는 손 하나 까딱할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두 그물주머니 가득 새우와 게를 들고 오려니 무거워 죽는 줄 알았다.하예정과 심효진은 얼른 다가가 그녀의 손에서 두 주머니 가득 해산물을 받아들었다."성소현 씨, 이건 뭐예요?"드디어 두 손이 비자 성소현은 팔을 몇 번 털며 말했다."무거워 죽는 줄 알았네. 저 지금 팔이 다 저려요.""제가 휴가 가기 전에 말했었잖아요. 올 때 해산물 가져다줄 거라고. 이거 전부 다 우리가 바다에 나가서 건져 온 거예요. 진짜로 신선한 해산물이죠. 제가 특별히 잘 챙기라고 한 뒤 가장 큰 것들로만 골라서 키우라고 한 뒤에 돌아올 때 가져온 거예요."두 주머니 가득한 새우와 게를 본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성소현 씨, 이거 너무 많아요.""안 많아요. 천천히 키우면서 먹어요. 아니면 미리 손질해 두고 냉장고에 얼렸다가 먹고 싶을 때 꺼내 먹어도 되고요.""차에 더 있으니까 두 사람이 가서 가져와요. 전 진짜 이제 힘없어요. 어머, 귀여워라. 이 아이는 누구 아이예요?"성소현은 손을 뻗어 주우빈의
소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 정윤하는 소지훈을 보더니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헛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알고 지낸지 오래되면 도장의 코치 선배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고 이내 두근거림도 사라졌고 헛된 생각도 하지 않았다.정윤하는 그녀와 소지훈이 사이도 친구와 같은 사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소지훈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줄은 전혀 몰랐다.정윤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더니 스스로 가볍게 얼굴을 치며 혼잣말을 했다.“정윤하, 부끄러워하는 거야? 어떤 남자가 널 좋아한다고 해서 이렇게 기뻐한 거야? 좀 진정해. 진정하자고.”소지훈은 정윤하의 소개팅 상대들처럼 그녀가 나중에 가정폭력을 행사할까 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소지훈은 정혁주까지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무술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남자였다.정윤하조차도 정혁주를 이기지 못하는데.소지훈이 정혁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소지훈의 무술 실력이 정윤하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소지훈이 걱정할 게 뭐가 있을까!오히려 앞으로 소지훈과 싸울 때 그에게 터져 맞아 땅에 짓눌리지 않게 정윤하가 걱정해야 할 것이다.정윤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던 정윤하는 자신 있게 웃으며 중얼거렸다.“못생기지는 않았는데! 아저씨가 역시 보는 눈이 있네.”단 정윤하는 자신과 소지훈이 어울리는지 잘 몰랐다.소지훈은 대기업의 대표이고 집안도 재벌가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재력이 강하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정씨 가문은 가난하지 않고 연성에서도 부자에 속했지만 소씨 가문과 비교하면 그래도 차이가 컸다.정윤하는 소지훈이 보통 여자들과 다른 자신을 가지고 놀다가 질려버리면 자신을 버리고 딴 여자를 좋아할까 봐 무척 걱정했다.남자는 돈이 있으면 나빠지고 여자가 나빠지면 돈이 많아지게 되는 법!소지훈은 부자인 데다 잘생겼기에 여자에게 심장까지 꺼내어 잘해주면 그 여자는 분명 그에게 퐁
“형,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정혁주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을 본 소지훈은 그를 자신의 편으로 생각하며 물었다.정혁주가 대답했다.“여기 남아서 지켜보든지, 아니면 돌아가서 우리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하든지 하세요. 어쨌든 정윤하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저녁에 돌아올 테니까요. 돌아오면 두 사람 다시 얘기해 봐요. 소 대표님이 하신 얘기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만 믿게 하면 돼요.”“네. 정말 감사해요. 그럼 저는 돌아가서 이모님을 도와 요리할게요.”윤미연에게 잘 보이면 정윤하의 마음을 훔치는 이 길은 훨씬 쉬워질 테니까.정윤하는 소지훈의 고백에 놀란 것이 아니라 별로 믿기지 않아서였다. 어떤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도장에서 나와 찬 바람을 쐬고 추워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정윤하도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곧 집으로 돌아갔다.다행히 도장은 집에서 매우 가까웠다.윤미연은 오늘 밤 샤브샤브를 먹을 요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추운 날에는 역시 샤브샤브를 먹어야 속이 편안할 것이다.집이 난방이 안 되면 그녀도 이렇게 편하게 있지는 못한다.겨울이 되면 윤미연은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장 보는 것도 자식들에게 맡기곤 한다.그녀는 따뜻한 도시에서 정씨 가문으로 시집온 사람이다. 그녀는 너무 추위를 타서 연성에 시집온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겨울만 되면 여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문 앞으로 향하던 윤미연은 정윤하인 것을 확인하더니 바로 물었다.“이 시간이면 수업해야 할 시간 아니야? 왜 돌아왔어? 밖에 여전히 눈이 오지? 부엌에 뜨거운 생강차를 끓여놨는데 한 잔 마셔.”윤미연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왜 혼자 왔어? 너희 오빠들은?”윤미연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정윤하에게 물어보았다.정윤하가 대답했다.“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왔어요. 엄마, 아빠는요?”“네 아빠가 약속 있어서 나가셨어. 저녁에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서
소지훈이 일어나 정윤하를 쫓아가려 하였으나 정혁주가 가로막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정혁주인 것을 확인하더니 성깔 좋게 말했다.“형, 제가 나가 볼게요.”“지금 가지 말고 윤하에게 혼자 생각하게 시간 좀 줘요. 윤하가 지금 소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소식을 소화해야 할 거예요. 윤하는 지금 친구 감정이 아닌 이 남녀 간의 감정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밖이 추운데... 눈이 내리면 추워질까 걱정돼요.”그러나 정혁주는 친여동생의 모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소 대표님은 추울지 몰라도 윤하는 연성 토박이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추위에 익숙해요. 그러나 소 대표님은 아니죠. 당신은 관성에서 왔으니 관성 쪽에는 겨울이 없다고 볼 수 있죠. 윤하가 추워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내버려 둬요. 마음을 다잡고 잘 생각해 보게 내버려 둬요. 갑자기 고백하니, 윤하는 심리 준비도 하지 않아 혼란스러워졌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 대표님도 그래요. 때가 되면 고백하셔야지... 꽃다발 하나로 윤하가 소 대표님 마음을 알 거로 생각하세요?”소지훈은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도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에 그래서 직접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것 같아서요. 제가 한 트럭의 꽃을 선물한다고 해도 윤하 씨 성격으로는 이 꽃들로 얼마나 많은 꽃 떡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할 테니까요.”정혁주도 공감하며 입을 열었다.“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정윤하도 분명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를 사랑한다면 확실히 말해야 했다. 그녀가 알도록 명확하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형, 윤하 씨가 이렇게 황급하게 나갔는데 정말 저를 피하는 거 아니에요? 윤하 씨는 제가 너무 늙었다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저는 윤하 씨보다 10세 4개월이나 많은데.”그의 나이는 그녀보다 11살 많다고 말은 했지만 진지하게 계산하면 10년 4개월 연상이다.정
정윤하는 그렇게 하면 소지훈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여 말을 내뱉으려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말을 건넸다.“그럼 그때 가서 신세 좀 질게요.”소지훈이 연성에 있을 때 정윤하가 그에게 잘 접대했으니 그녀가 관성으로 가게 되면 소지훈이 잘 접대해 주면 서로에게 빚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윤하 씨, 꽃 떡 말고도 또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소지훈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정윤하가 소지훈을 쳐다보니 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정윤하가 입을 열었다.“제가 또 무슨 생각 해야 하죠? 아저씨가 저에게 꽃을 선물했으니 저를 좋아한다는 생각 해야 돼요?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고 저도 아저씨가 좋아요. 우리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로 될 수도 없는걸요.”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소지훈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윤하 씨는 제가 윤하 씨에 대해 좋아함이 우정이 아닌 남녀 간의 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아저씨가 남자고, 저는 여자인데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요? 뭐가 달라요?”“제 말은 윤하 씨, 저는 윤하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싶단 의미에요. 형제 사이가 아닌 윤하 씨 남편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소지훈은 단숨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정윤하의 되묻는 물음에 화가 난 것이다.소지훈도 충동적으로 그 뜻을 똑똑히 해석해 준 것뿐인데...그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소지훈이 그녀에게 고백해야 정윤하가 그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소정남이 알려주었다.그가 말하지 않는데 털털한 정윤하가 어찌 알 도리가 있겠는가?목소리가 좀 커진 소지훈은 그제야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웅성거리던 도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소지훈은 그들을 쳐다보고는 다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정윤하를 바라보았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점점 붉은 구름이 떠 올랐다.그는 도장이 아닌 단둘이 있는 곳을 찾아 로맨틱하게 현장을 꾸민 다음 정윤하에게
“윤하 씨, 이 꽃다발... 제 말은 윤하 씨가 이 꽃다발을 받고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소지훈은 용기를 내어 정윤하에게 물었다.정윤하는 닭 날개를 다 먹고 또 오징어구이를 먹으며 대답했다.“무슨 생각이요?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누가 키운 꽃인지 정말 아름답고 좋네요. 저 보고 꽃을 키우라고 하면 이 꽃은 이미 죽었을 거예요.”소지훈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정윤하는 눈치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그리고 꽃다발을 받고 보니 장미꽃 떡이 생각났어요. 갑자기 꽃 떡을 떠올리니 너무 먹고 싶네요. 지금 바로 주문해서 먹어야겠어요.”정윤하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인터넷으로 꽃 떡을 사려고 했다.“제가 사드릴게요. 지금 여행 중인 친구가 있는데 꽃 떡 좀 가져다 달라고 하면 돼요. 훨씬 맛있을 거예요.”정윤하가 말을 건넸다.“그들이 현장에서 만들어서 팔지 않는 한 산 것과 인터넷에서 사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을걸요. 현장에서 만든 것이 맛있다고 들어는 봤는데. 내년에 시간이 나면 저도 여행 가서 현장에서 구운 꽃 떡을 먹어봐야겠어요.”소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부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즉시 청주성으로 날아가서 꽃 떡을 만드는 것을 배워 정윤하에게 신선한 꽃 떡을 맛보게 하라고 지시했다. 단, 정윤하가 여행을 가지 않고도 신선한 꽃 떡을 먹을 수 있도록 반드시 청주성의 맛과 똑같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적어도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보다 맛있을 테니까.정윤하는 토픽 X 이라는 앱을 즐겨 사용하는 데 정말 싸다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에게 그 앱에서 물건을 사지 말라고 수없이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소지훈이 역시 부자답다고 말할까 봐 걱정했다. 그는 일반인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결국 침묵을 선택했고 그녀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주었다.“정말 주문하셨어요?”정윤하는 소지훈이 핸드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더니 그에게 물었다.소지훈이 대답했다.“네. 주문해드렸으니 받을 때까지 기다리시면 돼요.”그는 먼저 정윤하에게 인터넷으로
모두 웃으며 말했다.“우리가 소 대표님한테 매수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소 대표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윤하에게 잘 어울려요.”코치 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소 대표님도 우리 윤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윤하가 주로 만나본 젊은 남자들이 우리 말고는 좋은 남자가 없어서 그래요. 게다가 사장님과 사모님도 얼마나 걱정하세요. 만약 소 대표님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도 반대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소 대표님과 윤하가 잘 지내고 있거든요. 근데 우리 윤하가 왠지 소 대표님께 남녀 간의 정이 없다고 느껴져요. 윤하가 우리를 대한 것처럼 똑같이 소 대표님을 대하는 것 같아요.”정혁주는 코치들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했다.도장에는 여성 후배들도 많지만 유독 정윤하가 정혁주를 무척 걱정시켰다.정윤하는 습관적으로 남자들과 형제 사이로 지냈기에 그들도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그들도 정윤하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상대방이 무술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소개를 받을 남자들은 정윤하의 “명성”을 듣더니 심지어 몰래 도장에 가서 정윤하를 지켜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막강한 실력을 보더니 정윤하를 다스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결국 투항하게 되었고 다른 맞선남들과 마찬가지로 감히 나서지 못했다.이로 하여 뒷부분의 맥락은 그대로 뚝 끊기게 되었다.정혁주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너희도 사실 소 대표님의 재력에 넘어간 거야. 나조차도 좋게 느껴지는데 너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소 대표님의 재력이 정말 좋은 건 사실이야. 우리도 자기도 모르게 속아 넘어간 거지. 그런데 소 대표님은 꽤 좋은 사람이긴 해. 우리 윤하와도 너무 잘 어울리고. 너희들도 장난치고 있는 걸 알기에 나도 너희들 탓하지 않아. 우리 전부 윤하를 위해서 하는 소리잖아. 내가 소 대표님을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그분이 안 좋은 사람이라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야.”“너희들의 말처럼 윤하 계집
“들어가요. 밖이 너무 추워요.”정윤하는 꽃다발과 보온도시락을 들고는 소지훈을 도장으로 가자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를 따라갔다.도장의 사람들은 정윤하가 꽃다발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두 사람이 썸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그 꼬맹이들조차 정윤하가 안고 있는 그 꽃다발이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정윤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코치님, 이 꽃다발이 정말 아름다워요.”“코치님, 바비큐 드실래요? 우리 거의 다 먹었어요.”“코치님, 지훈 아저씨가 선물한 꽃이죠? 왜 코치님께 꽃을 주세요?”정윤하가 웃으며 대답했다.“많이 먹어. 다 먹어도 돼. 지훈 아저씨가 나에게 따로 준비해 줬거든. 너희 지훈 아저씨가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에 있는 꽃이 너무 예뻐서 나에게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라고 선물해줬어. 어때? 예쁘지? 나도 이 꽃다발이 너무 예뻐서 좋아.”학생들은 꽃다발이 예쁘다고 연신 칭찬했다.정윤하의 사제들은 헤벌쭉한 정윤하를 보고는 또 여우처럼 웃고 있는 소지훈을 보더니 결국 모두 정혁주를 일제히 쳐다보았다.정혁주는 정윤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평소에 앉던 테이블에 앞에 앉아 바비큐를 먹으며 보이차도 곁들여 마셨다.“선배님.”몇몇 코치들이 정혁주에게 다가가더니 그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궁금한 듯 물었다.“소 대표님이 우리 윤하에게 고백한 거예요? 그런데 또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정윤하의 표정을 보면 고백받은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소 대표님이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의 꽃이 예쁜 것을 보고 윤하에게 선물했다고 하던데, 이런 어설픈 이유도 윤하가 믿다니, 참! 저렇게 멍청한 꼴을 보니 사람들에게 팔려가도 돈을 세어줄 기세인데.”“윤하가 종일 우리와 함께 지내다 보니 남자답고 털털해서 그래요. 소 대표님만큼 신중하지 못하잖아요. 소 대표님이 윤하에게 직접 고백하지 않는 한 윤하는 분명 별생각 하지 않을걸요.”“어휴, 윤하가 소개팅마다 실패하고 시집을 못 가는 데는 우리 책임도 있어요
정혁주는 아예 보이차 한 병씩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보이차를 나누어 주면서 소지훈은 학생들이 정윤하 앞에서 좋은 말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매번 큰돈을 퍼부었다.소지훈은 도장으로 올 때마다 도장의 사람들에게 맛 나는 음식을 가져다주었고 또 각자의 몫도 전부 챙겨주었으며 심지어 다 먹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사 올 때도 있었다.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려면 돈도 많이 들었도 또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정윤하의 말대로 그녀의 수입으로 전체 도장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사주면 몇 번이나 사줄 수 있겠는가!정혁주는 도장의 여러 코치 중에서 수입이 가장 높지만, 소지훈처럼 돈이 많지 않았다.역시 대기업 대표답다!정혁주가 보이차를 나누어 줄 때 밖에 서 있는 두 바보를 유의하여 보며 마음속으로 소지훈은 아마 정윤하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래서 연성까지 머나먼 길을 달려서 왔을 것이다.소지훈은 지금 출장 중이지만 저녁에 약속도 없이 도장으로 온 것을 보면 아마 출장할 때 처리해야 할 일들을 다 처리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정씨 저택에 남아서 설을 쇠려고 하는 모양인데...정윤하를 노리고 온 것이 틀림없다.그리고 소지훈은 정윤하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서 작은 도움을 받았지만, 소지훈은 기어코 그녀가 자신의 은인이라고 외치며 다녔다.정혁주는 정윤하가 오지랖이 넓고 너무 빨리 움직여 소지훈을 도와주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소지훈의 실력으로 그날 밤 그 건달들 정도는 아주 쉽게 때려눕힐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소지훈의 상대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그렇게 정윤하는 소지훈의 생명의 은인으로 되었다.그리고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연애사에 관심을 두는 모습을 본 소지훈은 천 리 길을 달려와 그녀를 데리고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함께 참석했다.정씨 가문은 관성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관성 전씨 가문의 명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몇 번만 뒤져봐도 관성 전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날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사실 시간은 아직 이르다. 다만 겨울에는 낮이 짧고 밤이 길어서 빨리 어두워질 뿐이다.정윤하의 수업도 마침 끝났다.“지훈 아저씨 오셨어.”한 학생이 소지훈의 차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밖으로 나오지 마. 바람이 많이 불어.”소지훈은 웃으면서 소리쳤지만, 학생들은 모두 뛰쳐나갔다.소지훈은 이내 사 온 간식 몇 봉지를 큰 학생들에게 건네고 포장된 바비큐는 조금 작은 학생들에게 건네주어 도장 안으로 들여보냈다.정윤하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면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소지훈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아저씨가 오시기 전에는 제가 도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이제 아저씨가 가장 인기가 많네요.”정혁주도 따라 나와 정윤하의 말을 이었다.“너무 인색한 거 아니야? 소 대표님처럼 시원스럽게 모두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다들 다시 널 좋아하게 될걸.”“내가 인색한 게 아니라 월급이 쥐꼬리밖에 안 되는데 음식을 몇 번 정도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저씨는 회사의 대표잖아. 난 절대로 이 방면에서 아저씨와 다투지 않을 거야. 이런 일들은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잖아... 음? 눈이 오는 것 같아.”정혁주도 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눈이 오는 것 같긴 하네. 근데 뭐가 이상해? 겨울이 되면 눈이 자주 올 텐데, 정상이잖아.”“형님, 얼른 오세요. 보이차 몇 상자 드릴게요. 바비큐를 사 왔는데 혹시라도 학생들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될까 봐 몇 상자 사 왔어요.”소지훈은 보이차 상자를 들면서 정혁주에게 자연스럽게 건넸다.정혁주는 차를 향해 다가갔고 조수석에 놓인 꽃다발을 보더니 눈이 번쩍 뜨였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소지훈이 그들 정씨 가문의 저택에 오래 머문 덕분으로 정씨 집안 가족들이 소지훈의 성격과 사람 됨됨이를 잘 알게 되었다.소지훈은 냉혹한 면과 부드러운 면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냉혹한 면을 정씨 가문의 가족들 앞에서 보여준 적 단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그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