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선생님, 물 드세요.”정겨울은 물 잔을 건네받으며 인사했다.“고마워요.”“제가 더 고맙죠. 정 선생님께서 산후조리 하신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우리 아들이 또 이렇게 초대했네요. 제도 너무 미안해서 이진이를 꾸지람했다니까요..”정겨울도 목이 말랐는지 물 반 컵을 한꺼번에 마셔버렸다.“괜찮아요. 저도 산후조리 할 때 너무 심심했어요. 빨리 오고 싶었지만 우리 남편이 저더러 집에서 더 쉬라고 하는 바람에 이렇게 늦게 왔네요.”“저도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 제 몸을 제가 더 잘 돌볼 수 있는데도 자꾸 저보고 쉬라고 하세요. 이진 씨가 약혼녀분께 참 정이 깊은 모양이더라고요.”“운초 씨 눈을 치료해 주기 위해 우리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도 꿋꿋하게 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저도 이진 씨 성의에 몹시 감동했거든요. 저도 운초 씨를 위해 기꺼이 도와드릴 겁니다.”“제가 운초 씨의 눈을 치료해 주어 이진 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게 해주고 싶어요.”여운초는 전이진과 약혼한 사이지만 약혼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아직도 잘 모르고 있었다.정겨울은 여운초가 불쌍하기도 했다.게다가 두 가문에서도 사업상의 거래가 있었기 때문에 정겨울은 기꺼이 전이진을 도와 여운초의 눈을 치료해 주려 했다.“정말 고마워요!”명해은은 감사할 따름이다.그녀도 며느리의 눈이 치료되기를 바라고 있었다.명해은은 밖에서 패기 넘치게 예비 며느리를 보호하고 있었지만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그녀의 장남은 무척 훌륭했고 며느리도 어느것 하난 뒤떨어질 게 없는 여자였다. 유독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명해은은 아들을 매우 가슴 아파했기에 며느리의 눈을 치료해 주는 기회가 생겼으니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사모님, 전씨 할머니와 예정 씨께서 오셨어요”하인이 들어와서 명해은에게 알려주었다.곧 전씨 할머니와 하예정이 들어왔다.“할머니.”전씨 할머니가 들어오시자 정겨울은 물컵을 내려놓으며 일어나 웃음 지으면서 인사했다.“정
“할머니, 안색이 정말 좋으세요.”정겨울은 전씨 할머니를 칭찬했다.예진 리조트에 있을 때 정겨울은 전씨 할머니의 맥을 짚어보았는데 어르신의 건강은 엄청나게 좋으셨다. 십여 년을 더 사셔도 문제없을 정도로 말이다.정겨울의 스승님께서도 진귀한 약재로 몸조리를 하셨기 때문에 몸이 아주 튼튼하셨다.스승님께서는 120세까지 살도록 노력하여 예훈이가 장가가고 자식들을 낳는 것까지 보고 싶다고 하셨다.예훈이가 아직 말도 못 하는 어린 아기인데도 말이다.전씨 할머니도 웃으며 정겨울의 손을 잡았다.“겨울 씨, 스승님께 장수할 수 있는 약이 있을까요? 저한테 몇 알 주시면 제가 좀 힘이 날 것 같은데. 120세까지 살게 하면 더 좋고요. 지금 세상에 백 세까지 사는 건 신기한 일도 아니잖아요.”“언제 증손녀를 안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증손녀를 안아야 제가 당당하게 우리 영감 만나러 갈 수 있을 텐데요. 저는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은 가진 여자 아기를 너무 좋아하거든요.”“지연이처럼 귀여운 증손녀를 한 보따리 줘도 저는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데.”정겨울이 웃으며 대답했다.“우리 스승님께서 지금 저의 아기를 돌봐주고 계시거든요. 제가 좀 있다가 돌아가서 스승님께 여쭤볼게요. 전씨 할머니께 120세까지 살 수 있는 약을 몇 알 달라고 해볼게요.”“전씨 할머니께서 증손녀를 안으시려면 아마 오래 기다리셔야 할걸요. 하지만 할머니께서 손자분 9명이나 계시니 9명의 며느리도 있다는 의미잖아요. 그럼 언젠가 그 9명의 며느리 중에서 증손녀를 낳아줄 분 계실 거에요.”정겨울은 확실하게 대답해 주지 못했다.정겨울도 전씨 가문으로 시집간 여자들이 아들만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적 있었다.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전씨 가문의 며느리들이 자신의 신체의 산 알칼리성을 조절해서 임신을 준비해도 결국 아들을 낳고 말았다고 한다.물론 지금은 의학이 발달한 시대라서 딸을 낳고 싶으면 인위적으로 간섭해 시험관 아기를 수술을 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정겨울은 자연적으로 임신
여운초는 오랫동안 눈이 멀었기에 여준희를 따라다니며 진찰을 받았고 심지어 절에 가서 기도까지 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매번 실망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실망의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여운초는 희망 가질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여운초도 정겨울이 가족들이 품고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만약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녀 혼자 실망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익숙해졌으니까. 하지만 가족들도 그녀따라 함께 실망하는 것이 몹시 싫었다.“겁내지 마.”전이진은 두 팔을 벌려 그녀를 힘껏 껴안았고 그녀의 이마에 부드럽게 뽀뽀를 해주었다.“겁내지 마. 내가 있잖아.”여운초는 고개를 들어 전이진의 모습을 애써 보고 싶었지만 눈앞은 여전히 흐릿하여 잘 보이지 않았다.전의진의 말과 포옹 그리고 입맞춤은 여운초의 마음속으로 따뜻한 물결처럼 흘러들어와 그녀의 마음을 녹여주었다.여운초는 마침내 긴장을 풀었다.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전이진은 약혼녀의 손을 잡고 전씨 가문의 별장으로 들어갔다.따르릉...전이진의 핸드폰이 울렸다.전이진은 가족들의 재촉하는 전화인 줄 알았다.“우리 엄마 재촉하는 전화일 거야.”전이진이 휴대전화를 꺼내 보더니 어머니가 아닌 여천우에게서 걸려온 전화임을 발견했다.그의 처남이었다.전이진은 뜻밖이라고 생각했다.여천우가 대학에 있을 때만 해도 여운초와 가끔 장난도 치고 했다. 하지만 그 뒤로 여천우는 두 고모의 편을 들지는 않았지만 남매사이의 감정은 원래처럼 사이좋은 시절로 돌아가지 못했다.필경 여운초가 들여보낸 세 사람은 다름 아닌 여천우의 친부모와 새어머니의 딸이였기 때문이다.여천우는 예비 형부에 대한 태도는 그나마 좋았지만 예비 형부의 연락처를 요구한 적이 없었기에 도리상 전이진의 휴대번호를 알지 못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여천우가 전이진이게 전화를 걸온 것이다.전이진은 뇌를 굴리는 것이 귀찮았다. 여천우가 진심으로 연락할 마음만 있다면 한동호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이내 알아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정 선생님을 아직 만나지도 못했어. 정 선생님께서 오실 때 내가 마침 출장 갔거든. 지금 네 형부가 날 데리러 갔다가 방금 네 형부 별장으로 도착했어. 곧 정 선생님을 만나게 될 거야.”동생은 여전히 여운초를 걱정하고 있었다.이는 여운초를 기쁘게 만들었다.“누나, 결과가 어떻든 낙심하지 마. 정 선생님께서 방법이 없다고 하시면 우리가 더 좋은 의사를 찾아가면 되니까.”여천우는 누나를 위로하고 있었다.정겨울마저 누나의 눈을 치료하지 못하면 정말로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정겨울은 신의의 제자였다. 신의라고 불릴 수 있는 정도면 그 의술이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다는 의미였다.여운초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오히려 동생을 위로했다.“천우야, 누나 속상하지 않아. 결과가 어떻든 난 다 견딜 수 있어. 어둠 속에서 이렇게 오래 살았으니 이젠 익숙해졌는걸. 네 형부가 억울하지. 그렇게 우수한 분이신데 나와 같이 눈이 먼 여자랑 결혼해야 하니까.”“운초 씨.”전이진은 고개를 숙여 말을 꺼냈다.“내가 뭐 억울할 게 있어.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그날부터 당신 눈이 치료되든 말든 꼭 당신과 결혼하여 여생을 함께할 거라고 다짐했어. 당신이 회복될 수 있다면 더 좋은 거고 회복할 수 없다면 내가 당신 눈이 되어줄게.”여천우가 전화기 건너편에서 말했다.“난 형부의 인성을 믿어. 형부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전씨 가문의 가풍이 어떤지 우리 모두 다 잘 알잖아. 누나 자신도 믿고 형부도 믿어봐.”여운초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뻔했지만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꾹 참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나지막이 대답했다.“알았어. 천우야, 학교에서 잘 지내는 거 맞지? 돈은 있고? 학교 밥은 맛있어? 맛이 없으면 밖에 나가서 먹어. 돈 없으면 누나가 보내 줄게.”“부족하지 않아. 누나가 정기적으로 내 계좌에 생활비를 이체해 주고 있잖아. 나도 아르바이트하면서 돈도 좀 벌고 있어서 충분해.”“돈이 부족해서 아르바이트하는 건 아니고
정겨울의 명성이 자자했으나 정작 정겨울 본인을 본 적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사람들은 의술이 훌륭한, 작은 신의라 불리는 정겨울이 중년 여자일 거로 생각했다.“정 선생님, 이쪽은 제 약혼녀 여운초에요.”전이진은 자신의 약혼녀를 정겨울에게 소개해 주었다.정겨울은 전이진이 낯선 여자를 부축하며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그 여자가 환자임을 바로 알아차렸다.“운초 씨.”여운초가 청력으로 상대방의 위치를 추측하는 것을 알았기에 정겨울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여운초가 금방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녀의 얼굴은 계단 쪽을 향하고 있었다.정겨울이 먼저 인사를 건네오자 여운초는 그제야 말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정 선생님, 안녕하세요.”“운초 씨, 이리 와서 앉으세요. 제가 먼저 맥을 짚어 드릴게요.”정겨울은 단도직입적으로 전이진 더러 여운초를 부축하여 자신의 곁으로 앉히게 하였고 여운초의 맥을 짚어주려 했다.전이진은 서둘러 약혼녀를 부축해 정겨울 쪽으로 향했다.정겨울의 곁에 앉아있던 전씨 할머니도 자리를 비워 여운초가 정겨울 바로 옆에 앉도록 했다.정겨울은 여운초의 맥을 짚은 뒤 눈을 들여다보았고 그제야 입을 열었다.“운초 씨는 중독으로 인한 실명으로 보이네요. 운초 씨 과거에 치료받은 적 있었죠? 병의 증상에 따라 전문적인 치료 받은 적 있죠? 요즘은 빛도 좀 보이죠?”여운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제가 실명한 후로 수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진찰을 받았고 치료도 수많이 해보았지만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그 뒤로 정말 대단하신 의사 한 분을 만나게 되어 눈을 치료받게 되었는데 효과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제 눈을 완전히 치료하시지 못한 채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요. 그 후로도 의사 선생님을 몇 명이나 만났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었어요.”“그래서 저도 더 이상 희망을 품지 않고 혼자서 10년 넘게 어둠 속에서 살게 되었어요. 저도 익숙해졌는걸요.”그 뒤로도 여운초는 아무
정겨울은 웃으며 담보했다.“괜찮아요, 이거 불치병 아니니까 맘 편히 놓으세요. 제가 이런 말 하면 꼭 해낼 사람이라는 거 잘 아시죠.”그녀는 여운초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길어서야 3달, 3달 뒤에도 시력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제 스승님을 모셔 와 도와드릴게요. 하지만 해독 쪽에서는 제 스승님도 저보다 못하신걸요.”그녀는 독초와 독화를 워낙 많이 심었던지라 스승보다 독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그리하여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의술과 독약을 다루는 능력이 대단하다며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몇백 년만 빨리 태어났다면 신의와 마약왕으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 분명하다.정겨울이 직접 나선다면 꼭 여춘초의 눈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녀의 말에 모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정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여운초는 며칠 동안 걱정했던 마음을 놓은 채 정겨울의 손을 꼭 잡고는 끊임없이 감사하고 말했다. 그에 정겨울은 웃으면서 사양했다.“저보다 운초씨 작은고모, 고모부 그리고 약혼자에게 감사하세요. 그분들이 운초씨를 포기하지 않고 지금껏 견지해 와서 오늘의 운초씨가 있는 거 아닐까요.” “작은고모는 제 생명의 은인이세요. 그때 고모가 돌아오지 않으셨다면 전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여운초는 그때의 비극과 십 년 동안 실명으로 인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가 가장 고마워하는 이는 작은고모 여준희였다. 여준희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아버지의 사망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어머니는 수를 써서 그녀에게 독약을 먹여서는 “병”으로 죽게 하려고 했다.아버지가 돌아가신 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도 세상을 뜨시고 두 고모마저 의붓아버지 편에 섰다. 원래 여씨 가문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았던지라 정말 “병”으로 죽는다고 해도 작은고모만 진심으로 슬퍼하지, 다른 이들에게 그녀는 죽으면 죽었지, 대수로울 것 없었다. 여씨 가문에서 그녀는 쓸모없는 사람이었으니까.마침, 그때 여준희가
여준희의 작은오빠는 눈물을 머금고 세상을 떠났다.전에 그녀는 작은오빠의 죽음에 큰오빠와 새언니의 참여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정말로 냉혹하고 무정한 사람들이다!여준희는 큰오빠와 새언니가 감옥에 갇혀 곧 중형을 받게 될 것에 대해 그것은 그들이 마땅히 치러야 할 죗값이며 동정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작은오빠와 조카에게 한 짓거리를 생각하면 사형을 받아도 마땅했다. 여운별이 머지않아 출소한다. 하지만 나온다고 뭐가 달라지는가?백이 되어줄 부모님도 사라졌지, 여운초만 다시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면 여운별이 제아무리 오만방자하다고 해도 아무런 풍랑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여준희는 문득 자기 두 언니가 생각났다. 그들도 참 지독하지, 전이진을 가장해서 운초를 속이려 했으나 현재 전이진의 보복을 받아 파산의 길로 들어섰다. 이 결과는 모두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여준희와 여운초는 서로를 끌어안고 통곡하며 마음속 깊숙이 숨겨놓은 고통을 마음껏 털어놓았다. 두 사람이 너무 안쓰러웠기에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한창 설움을 터뜨리는 두 사람을 보며 정겨울은 자기가 가져온 약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에는 그녀가 직접 재배한 약초가 들어 있었는데, 일부는 알약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것은 여전히 원래 약초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녀는 약초 몇 개를 꺼내 투명한 봉투에 넣으며 전이진에게 말했다.“둘째 도련님, 이 약초들은 물에 끓여 운초씨 눈을 씻는 거예요. 제가 급하게 온지라 가져온 약이 별로 없거든요. 제가 갈 때 함께 오셔서 약을 더 가지셔도 좋습니다.”“알겠어요.”정겨울은 또 다른 약 처방을 전이진에게 건네며 처방대로 약을 받아오게 했다.마지막으로 그녀가 직접 만든 알약 두 병을 함께 건네며 말했다. “이 약은 제가 직접 연구해 낸 약이에요. 운초씨가 약 먹을 때마다 한 병에 하나씩 총 두 알을 중약과 함께 복용하면 됩니다.”전이진은 열심히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정 선생님, 눈약은 약국에서도 구매할 수 있나요
정겨울의 방문에 전 씨 할머니께서 산장으로 오셨고 관성에 남아 있는 한 모두 서둘러 돌아왔다. 저녁은 둘째 도련님 저택에서 해결했다. 정겨울을 불러온 이가 전이진이였으니 둘째네 집에서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넷째 도련님 전이혁과 다섯째 도련님 전우가 돌아온 것을 보고 하예정은 눈을 깜빡이며 곁에 있는 남편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태윤 씨, 이혁 씨와 전우 씨 아직도 관성에 있네요. 전 두 분 다 배우자 찾으러 간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전태윤은 사랑스러운 아내를 지긋이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할머니가 주신 사진을 받은 지 얼마 안 되니까 그렇게 빨리 움직이진 못 하겠지. 이혁이는 할머니가 골라주신 사람을 좀 싫어하는 것 같아.”“전우는 아직 티가 안 나 모르겠는데. 재가 워낙에 참을성 있는 애라서.”여섯째는 전태윤의 친동생이며 올해 겨우 스물다섯 살이다. 할머니는 원래 여섯째에게도 골라주려고 했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니 성숙하고 듬직하지 못하다고 여겨 2년은 더 기다려도 된다고 생각했다.할머니는 하예정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난 뒤 여섯째에게 배우자 찾아주는 것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일곱째는 사회에 발을 들이민 지 얼마 안 되는지라 소개팅하기엔 너무 일렀다. 당분간은 할머니 표적이 되진 않을 것이니 안심해도 된다.아무튼, 위에 있는 몇 명의 형들도 아직 미혼이니까.전태윤과 하예정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전이혁이 두 사람 쪽으로 걸어왔다. “태윤이형, 형수님.”전태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에 응하였다.하예정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돌아오셨어요?”전이혁이 대답했다.“네, 집 문에 발도 안 들여놓고 곧장 백부님 댁으로 쳐들어왔어요.”“그보다 태윤이 형, 형수님 축하해요.”전이혁은 하예정의 임신을 축하하러 온 것이다. 드디어 형과 형수가 엄마 아빠로 승진하니 그보다 기쁜 소식이 따로 없었다.“전에 카톡으로 축하 인사를 드렸지만 그래도 직접 봬서 축하해주려고요.’”전이혁은 실웃음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