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으로 들어가니 집사가 전호영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권했다.“도련님, 마실 것으로 무얼 드릴까요?”집사가 정중하게 물었다.큰 도련님은 집에 온 사람이기만 하면 다 손님이니 전호영을 귀한 손님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하였다.“따뜻한 물 한 잔이요. 감사합니다.”“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집사는 돌아서서 전호영에게 물을 따라주러 갔다.고빈이 들어왔을 때는 테이블 위에 이미 과일과 디저트가 놓여 있었다.고빈은 집사가 거들어주기 전에 스스로 냉장고에서 음료수 한 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마셨다. 순식간에 시원해졌다.“날씨가 더울 때는 참 음료수 한 모금 마시는 게 최고야.”집사는 그런 도련님을 보고 나무랐다.“둘째 도련님, 큰 도련님이 보시면 또 꾸중 들을 겁니다.”“이런 걸로 날 꾸중할 거면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냉장고에 넣을 리가 없죠. 그냥 나보고 마시라고 넣어둔 것 아니겠어요? 많이 마시지도 않고 딱 한 병뿐인걸요.”집사는 그저 웃기만 할 뿐 고빈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집사님은 가서 일 보세요. 제가 호영 대표님을 접대하면 돼요. 이따가 나랑 형은 연회에 참석하러 가야 하니까 일찍 식사하는 거로 하죠. 호영 대표님께서 오셨으니 요리를 두어 개 더하라고 해요.”“알겠습니다.”집사는 곧 떠나 부엌에 들어가 일을 거들었다.고빈은 음료를 마시며 전호영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앉자마자 전호영을 훑어보며 말했다.“호영 대표님은 정말 훌륭한 분이세요. 어느 방면에서나 다 그렇게 훌륭하시니, 대표님을 이길 수가 없죠.”전호영은 고빈을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자꾸 칭찬할 필요 없어요, 저는 당신에게 정말 관심이 없으니까요.”“정말 모르겠어요, 왜 저한테 관심이 없으세요? 제가 형보다 더 못생겼나요? 아니면 쿨한 남자를 좋아하는 거예요? 저도 사실 쿨해질 수 있어요. 미소 짓지 않고 정색하면 형과 다름없어요.”고빈은 갑자기 전호영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호영 대표님, 우리 둘도 이제 좀 친해졌잖아요?
“우리 형의 취향은 제가 제일 잘 압니다만, 왜 당신에게 알려줘야 하는 거죠? 알려주면 제가 제 형을 배신한 거로 되잖아요. 저는 형을 팔아먹는 일은 하지 않아요.”전호영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그도 고빈한테서 고현의 취향을 알 수 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고씨 집안 부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았다.비록 고빈은 히죽히죽 웃으며 아무 경각성 없는 모습이지만 사실 그의 형을 매우 보호하고 있었다.“고현 대표님은 들어오자마자 위층으로 올라갔어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곁에 두고 미지근한 물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보았다.“우리 형은 조금 있다가 연회에 가야 해서요. 외출하기 전에 샤워하고 옷도 갈아입고 배도 좀 채운 후에 술 두 병을 챙겨 가는 게 습관이에요.”“술 두 병을 가지고 가는 건 왜죠? 여기 사람들은 연회에 참석할 때 술 두 병을 가지고 가는 게 습관인가요?”고현이 외출하기 전에 샤워하는 것에 대해 전호영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약 파티에 갔다가 술에 취해 돌아와 샤워하지 않고 자면 더러우니까.보아하니, 고현은 생활에 매우 신경 쓰는 사람이고 결벽증이 있을지도 모른다.결벽증이 심하지 않다면 상관없었다. 큰형도 결벽증이 좀 있지만 형수가 생기면서부터 결벽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형수님이 생활에 신경을 안 쓴다는 뜻은 아니고, 그저 형수님이 생기고 나서 큰형은 더 이상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게 되었다.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인지 모른다.고빈은 전호영에게 말했다.“호영 대표님, 저의 형에게 구애하려거든 먼저 형에 대해 잘 알고 나서 행동해요. 우리 형의 얼굴만 보고 함부로 행동하다가 후회하지 말고요. 우리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우리 형이 보통 먼저 집에서 밥을 먹고 연회에 참석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연회에서 우리 형이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자기가 가지고 간 술만 마시는 것은 남의 술이 맛없다고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호영 대표님과 같은 구애자를 경계하는 것이고요.”전호영은 침묵했다.
전호영은 고빈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고빈 씨에게 잘 보여서 저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죠? 형을 저에게 곱게 포장해서 주기라도 하나요? 만약 그렇다면 잘 보이도록 하죠.”고빈은 입을 열었다.“...제가 그렇게 도와주고 싶어도 감히 못 해요. 형이 저를 때려죽일 거예요. 호영 대표님이 몰라서 그러는데, 전 어렸을 때부터 형님의 괴롭힘 아래에서 자랐거든요. 제가 교양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모두 겉모습이에요, 허상이거든요. 형 말인데요, 엄청 폭력적이에요. 나중에 호영 대표님에게 폭행을 가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전호영도 지지 않고 말했다.“공교롭게도 저도 폭력적인 경향이 있어서 말이에요. 싸움 잘하는 사람을 찾고 싶었던 참이에요. 앞으로 어떤 갈등이 있으면 누가 옳든 그르든 싸워서 지는 쪽이 바로 잘못한 거죠.”고빈은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전호영의 두뇌는 그들과 다르게 회전하는 듯했다.어이없어하는 고빈의 모습에 전호영은 웃으며 고빈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고빈 씨, 전 속지 않아요. 그러니 더 이상 거짓을 지어낼 필요 없고요. 당신 형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봤거든요.”“알아본 건 다 거짓 정보예요. 우리 형은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인 데다가 언론 기자들이 주시하는 대상이라 만약 잘못 행동했다간 몰래카메라에 찍혀 보도될 수도 있잖아요. 우리 고씨 그룹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 여태 잘 참아온 거예요.”전호영은 웃으며 말했다.“저도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더욱 당신의 형에게 구애하고 싶네요. 그래야 천천히 현이 씨를 이해할 수 있죠. 이제 구애에 성공하여 함께 살게 되면 서로 더욱 잘 이해하게 되겠죠? 현이 씨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일생의 시간을 들여 이해하도록 노력할 테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어떻게 이리도 안 먹히는 거지?”고빈은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전호영도 속으로 비꼬았다.‘현이 씨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않고서야 어떻게 감히 행동할 수 있겠어?’두 사람은 아래층에서
“저는 호영 대표님과 다툴 시간이 없습니다. 배고프면 앉아서 밥을 드시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꽃을 들고 이만 떠나세요.”“나한테 달라니까...”누나의 눈총을 받자 고빈은 또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전호영은 즉시 고현의 곁에 앉아 뻔뻔스럽게 말했다.“배고프니 현이 씨와 같이 밥을 먹을게요. 이 꽃다발은 무조건 받으라고 강요하지 않을게요. 앞으로 제가 강성에 있는 한 현이 씨가 제 꽃을 받아줄 때까지 전 매일 보낼 겁니다.”“한번 받아주면 더 이상 보내지 않을 건가요?”“아뇨, 받아주면 더더욱 많이 보내야죠.”고현은 못 들은 듯 침묵했다.집사가 주방에서 요리를 가져왔다.요리가 나온 후 집사는 술 두 병을 가져와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고현에게 말했다.“고현 도련님, 말하셨던 술 두 병입니다. 이따가 꼭 가지고 가세요.”“고마워요. 잘 담아줘요.”집사는 곧 봉투를 가져와 술 두 병을 담아놓았다.고현과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한 경험이 있는 전호영은 고현이 음식을 빨리 먹는다는 것을 알고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묵묵히 밥을 먹었다. 미래의 약혼녀 집 요리사의 요리 솜씨를 감상하며 개선이 필요한 곳을 생각하며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그녀에게 한 수 자랑할 것을 계획했다.고현이 자기 요리 솜씨에 반해 고백을 들어줬으면 하는 속셈이었다.식사 후, 십여 분간 휴식한 고현은 바로 출발했다.전호영은 여전히 그녀를 따라다녔다.고현은 차에 오르기 전에 전호영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호영 대표님, 저는 지금 연회에 참석하러 가야 하니 더 이상 따라오지 마세요.”예전부터 고현은 연회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신분으로 자주 각종 연회에 참여해야 했다.하지만 오늘 밤, 연회에 가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그녀는 연회에 참석하면 전호영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전호영은 강성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오늘 저녁 연회 초대장은 이미 보름 전에 사람들에게 보냈다.고현은 전호영에게 초대장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전호영은 손에
고현 일행은 곧 고성 호텔에 도착했다.고성 호텔 입구에는 고현 전용 주차 석이 있다. 다른 사람은 그 주차 석들을 사용할 수 없다. 다른 손님들은 어떤 신분이든 상관없이 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해야 했다.전호영은 고현의 덕에 호텔 입구에 주차할 수 있게 됐다.호텔 입구에는 미녀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하나같이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호화롭게 단장을 하고 호텔 입구에 서 있어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었다.전호영이 차에서 내리자 미녀들이 우르르 달려왔다.‘이게 무슨 상황이지?’전호영은 자신을 향해오는 미녀들을 보면서 생각했다.‘강성의 미녀들을 건드린 적이 없는데?’“대표님.”“도련님.”그녀들이 입을 연 후에야 전호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향해 온 것이 아니라 미래의 와이프를 향해 온 것이었다.‘아니지, 그럼 이 사람들 다 내 라이벌이잖아?’전호영이 수를 세어보니 십여 명은 되였다.게다가 이건 단지 강성 상류사회의 명문 규수들일 뿐이고, 스타들과 유명한 모델들, 고씨 그룹의 비즈니스 파트너나 여직원 중에도 고현을 좋아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현도 결혼 전의 전태윤처럼 차가웠지만 여전히 많은 팬을 두고 있었다. 이 방면에서는 전태윤보다 훨씬 강했다. 전태윤의 성격은 모두가 잘 알고 있었고 또 성소현이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바람에 감히 라이벌이 될 담이 없었다.그래서 전태윤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현만큼 많지 않았다.여기엔 주로 고빈의 도움이 컸다. 고현의 쌍둥이 동생인 고빈이 전호영처럼 말도 잘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기 때문이다. 고빈은 예쁘고 기질이 좋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기만 하면 모두 친구로 여겼다.여자들은 먼저 고빈의 친구로 된 수 고현에게 접근하는 목적을 달성했다.이때, 고현의 경호원들은 즉시 앞을 가로막으며 보호했다.고빈은 되려 웃으며 인사했다.“다들 여기서 저를 기다리는 거예요?”고빈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대표에 도련님인걸요.”“고빈 대표님은 둘째 도련님이시죠.”그녀들의 마음속에 대
그리고 전호영이 반응하기도 전에 단숨에 그를 에워쌌다.라이벌을 대할 때 그녀들은 그야말로 한마음 한뜻이라고 할 수 있다.너무 많은 여자가 고현을 좋아하는 것에 이미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남자 라이벌까지 한 명 추가되었으니... 심지어 새로 나타난 남자 라이벌은 관성의 전씨 그룹에서 온, 전씨 일가의 셋째 도련님이다.비록 그녀들은 집안 어른들로부터 전호영에게 미움을 사는 일을 절대 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받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전호영은 호텔에 들어가기도 전에 10여 명의 라이벌에게 포위 공격을 당했다.다행인 것은 전호영은 말솜씨가 좋고 입도 독했다.동시에 10명 이상의 라이벌에게 포위당했지만 대단한 말재주로 규수들을 말문이 막히게 반박했다.그러고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누나를 따라 호텔에 들어가지 않은 고빈은 말싸움의 전 과정을 목격했다.심지어 전호영이 열 몇 명의 라이벌들을 상대하는 영상을 휴대폰으로 찍어 가족 단톡방에 보냈다. 단톡방의 구성원은 네 식구뿐이다.고빈은 아예 누나를 단톡방에서 부르며 말했다.[누나, 호영 대표님 얼마나 대단한지 봐. 모두 내놓으라 하는 명문가 규수들인데 호영 대표님 앞에서 다 져버렸어. 일대 십으로 이긴 거잖아? 정말 대단해. 존경할 지경이야.]고현은 아예 휴대폰을 보지 않았다.연회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그녀는 주위 사람이 자기 휴대폰 화면을 보게 될까 봐 항상 걱정했다. 여자인 신분이 드러나길 원하지 않았다.가족들만 있을 땐 부모님들은 모두 그녀를 딸이라고 불렀고 동생도 그녀를 누나라고 불렀다.그녀는 매번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가족들에게 채팅 기록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했다. 비록 가족들이 그녀의 비밀을 누설할 리는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특히 최근에는 부모님과 동생이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그녀를 시집보내려고 한다.이때, 고현의 경호원 중 한 명이 실수로 한 여자아이와 부딪쳤다. 상대방이 들고 있던 와인도 모조리 경호원의 몸에 다 쏟아졌다.“죄송해요.”여자
이윤미는 바삐 말했다.“괜찮아요, 다치지 않았어요. 저는 괜찮아요.”그녀는 고현을 힐끔 보고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수줍은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현 대표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길을 잘 보지 않아서 실수로 대표님의 경호원과 부딪혔네요.”“제가 사과해야죠. 연회장에 사람도 적지 않은데 제가 이렇게 많은 경호원을 데리고 온 탓에 윤미 씨가 제 경호원과 부딪치게 된 거잖아요. 무사하다니 다행입니다.”고현은 자신을 따르는 규수들과는 보통 차갑게 대했고 누구에게도 특별히 친절하지 않았다.뭔가 눈에 든 이윤미를 대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말투가 누그러졌고 얼굴의 차가운 표정도 어느 정도 녹았다.이걸 본 다른 사람들은 이씨 일가의 규수가 아주 뻔뻔한 방법으로 고씨 일가의 큰 도련님의 관심을 끈다고 생각했다.“저런 시골뜨기도 감히 고현 도련님의 관심을 끌려 들어?”“지금은 이씨 집안의 귀한 규수잖아요. 앞으로 이씨 일가의 가장이 될 사람인데... 고현 도련님에게 빠질 만도 하죠 뭐. 전씨 일가의 셋째 도련님마저도 반할 정도로 훌륭한 분이니까요.”“나도 딸이 있다면 고현 씨를 사위로 삼았으면 하는걸요.”“이씨 일가 가장이 이윤정을 데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누군가가 이씨 일가 가장이 수양딸 이윤정과 함께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작은 소리로 사람들에게 더 이상 논의하지 말라고 일깨워줬다. 하지만 청력이 좋은 이윤미는 주위 사람들의 속삭임을 모두 들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비꼬았다.‘그래, 고현 도련님을 마음에 두고 있어. 그래서 어쩔 건데? 당신들이 나에게 어떻게 할 수라도 있을 것 같아?’강성에는 젊은 인재들이 적지 않게 있지만 대부분은 이미 결혼했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마음에 둔 사람이 따로 있어 이윤미의 눈에 들지 못했다.과거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여태까지 독신으로 살아온 것이다.양부모는 그녀가 18살이 된 후부터 항상 그녀를 시집보내고 싶어 했다. 그녀에게 주선해 준 남자들은 모두 재벌 2세였
하지만 이윤미는 이 모든 것은 양부모와 형제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피를 빨릴까 봐 두려웠다.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녀가 원래는 이씨 일가의 친딸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받을 운명이었지만 양아버지의 음모로 이윤정과 신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윤미는 부유하게 자라는 대신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었다.친부모와 세 오라버니는 비록 이윤미의 존재를 받아들였지만 가짜 딸이자 가짜 동생인 이윤정에 대한 배려를 멈출 수 없었다.잘못을 저지른 양아버지는 벌을 받았지만 이윤정이 마음에 걸린 이씨 일가는 이윤정을 이씨 일가의 둘째 아가씨로 남게 했다.이윤미와 이윤정은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고 이윤정이 이윤미보다 10분 빨리 태어났다.다만 이윤미는 이씨 일가의 핏줄이자 앞으로 이씨 일가 가장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했기에 첫째 아가씨로 되었다.“고현 도련님.”이씨 일가의 현 가장은 70세 좌우이지만 관리를 잘해 50대 초반처럼 보였다.그녀의 곁에는 친딸처럼 아끼며 키워온 이윤정이었다. 그녀는 걸어오면서부터 시선을 고현의 몸에서 떼지를 못했다.“고현 대표님, 우리 집 윤미랑 부딪쳤다고 들었는데...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신지요?”이씨 일가 가장은 고현에게 관심 있게 물었다.고현은 말했다.“제가 아니라 경호원이 실수로 윤미 아가씨와 부딪힌 겁니다. 다행히 무사해요.”그녀는 이윤미가 경호원과 부딪혔다는 것을 듣고 바로 말을 바꿨다. “윤미도 괜찮을 거예요. 우리 집 윤미는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자란 탓에 힘든 일을 많이 해봐 몸이 든든하거든요. 부딪혀도 아프지 않을 거예요.”구경꾼들은 참지 못하고 또 술렁댔다.이윤미가 이씨 일가에 돌아온 후 현 가장의 친딸에 대한 태도는 시종일관 무덤덤했다고 했다. 하긴, 자기 곁에서 자란 아이가 아니니 아무런 애정도 없을 수 있었다. 마음이 모질고 독한 가장이 남과도 다름없는 친딸에게 특별히 잘해주길 바라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하지만 아무리 친딸과 사이가 안 좋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친딸이 몸이 든든하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아영은 요즘도 이런 식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자유로운 시대인데 아직도 자식들의 혼사를 결정해 주는 집안이 있다고?’도아영은 곧바로 자기 집 안 어르신들을 떠올리더니 다시 묵묵히 조금 전의 의문을 거두어들였다.재벌 가문에서는 많은 혼사가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대부분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곤 한다.그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많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익뿐이었다. 두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진 혼인으로 인해 두 회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관건이었다.“그럼 전이혁 씨 할머니께서 왜 저를 선택하셨어요? 저는 할머니를 본 적도 없는데.”도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녀는 전씨 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아마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도아영을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본 뒤에야 전이혁의 미래 아내로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전이혁에게 건네주며 도아영에게 구애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께서는 나이가 많으시지만 아직도 자주 돌아다니시니까. 우리가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죠. 다행히 할머니의 건강은 좋으시고 관리도 잘 되어서 겉으로 보기엔 예순 정도로 보이세요.“전이혁도 할머니가 어떻게 도아영을 선택하셨는지 모른다.도아영만 궁금한 게 아니라 고현과 여운초도 전씨 할머니께서 언제 그녀들을 눈여겨보셨는지 궁금해했었다.“그래서 저를 알게 되었고 저를 쫓아다녔던 거예요? 전이혁 씨가 저에게 한 행동이 애정 공세가 아니라고 하면 당신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죠?”전이혁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인정해요. 제가 당신에게 구애했다는 것을.”전이혁은 도아영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든 면에서 그와 잘 어울렸으니까.하지만...“그런데 왜 한동안 사라지고 저를 무시했어요? 일부러 관심을 끌려는 작전이었던 거예요?”전이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전이혁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너무 늦었다.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자리에 앉아서 몸만 돌려 옆에 앉은 도아영을 돌아보았다. 전이혁의 깊고 검은 눈빛은 도아영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했다.이때 도아영은 몸을 굽혀 천천히 전이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전이혁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아영이 어떤 향수를 뿌리는지는 몰랐지만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너무 좋았다.“전이혁 씨.”도아영은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말해봐요, 듣고 있어요.”그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대답했다.“제가 한 가지만 물을게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저를 대하는 거예요? 저에게 잘해주는 게 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에게 애정 공세를 하면서 왜 또 저를 무시하는 거죠?”전이혁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한 가지 물음보다 더 많이 물어본 것 같은데.”잠시 침묵이 흐른 뒤로 전이혁이 말을 이었다.“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면 도아영 씨는 저를 나쁜 놈이라고 욕할 거죠?”그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싶었다.전이혁은 도아영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의 눈썰미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없었다면 전이혁은 도아영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도아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대담무쌍함, 의협심, 기발한 성격, 고요할 때의 차분함과 활발할 때의 성격은 전이혁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던 것이다.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바로 그 ‘여우 같은 여자' 말이다. 도아영 같은 재벌가 따님이 아니라.도아영의 아름다운 눈이 반짝이며 전이혁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이혁을 내려다보았다.전이혁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순간 도아영의 동작과 표정이 마
“예정 언니, 벌써 다 드셨어요?”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우리가 좀 빨리 먹는 편이긴 하지. 평일엔 일이 바빠서 먹는 시간도 쪼개 써야 하다 보니 빨리 먹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도아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정은 우빈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로얄 스위트룸을 빠져나왔고 거기에 문을 닫아주는 센스까지 보였다.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도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전이혁과 도아영은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그들에게 특별히 남겨준 기회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얄 스위트룸 안에는 전이혁과 도아영만 남았다.도아영은 와인잔을 들어 우아하게 음미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전이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역시 피할 수 없었군.'전이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도아영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도아영은 대답 대신 잔을 기울이며 그를 바라만 보았다.‘정말 잘생겼어...'그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실제로 본 전태윤도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지만 지나치게 차가운 인상에, 인사할 때 잠깐 마주친 뒤로는 도아영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오직 하예정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아내 바보'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전태윤의 차가운 카리스마와 달리 전이혁은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전태윤 앞에서 전이혁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단둘이 있을 때면 전이혁의 우수함이 빛을 발했다. 그는 도아영이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였다.전이혁이 잘해줄 때면 도아영은 그에게 정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그녀를 소홀히 대할 때면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그를 한 대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내가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애완견이야?'마음 내키면 그녀와 잠시 놀아주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는 그의 태도에 도아영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전이혁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전이혁 씨, 왜 자리
하예정은 두 사람 사이의 암투를 모른 척하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좋은 술 두 병 시킵니다. 저는 임신 중이라 못 마셔요. 우리 배 속의 아기 건강 생각해서라도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하거든요. 태윤 씨도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혁 도련님이 도아영 씨랑 같이 마실 수밖에 없네요. 도련님, 아영 씨를 잘 모셔야 해요. 저와 태윤 씨가 있으니 도련님이 취해도 괜찮아요. 저희가 책임질게요.”하예정은 도아영에게 윙크했다. 도아영은 슬쩍 OK라는 사인을 보내며 자신 있다는 듯 웃었다.하예정은 그제야 도아영의 주량이 꽤 괜찮음을 눈치채고 안심했다. 하예정은 도아영이 전이혁에게 꼬치꼬치 캐묻다가 술에 취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도아영이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니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술과 여러ㅓ 요리가 나오자 도아영은 직접 전이혁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자! 전이혁 씨, 건배하죠.”전이혁은 잔을 받지 않고 오히려 도아영의 잔을 가져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도아영 씨, 공복에는 술에 취하기 쉬워요. 이 술은 독해서 마실 땐 괜찮다가도 나중에 훅 가버릴 수 있어요. 먼저 요리들을 좀 드시고 또 국물도 한 그릇 드세요.”그 말과 함께 전이혁은 도아영에게 국물을 떠주었다.“국물부터 드셔보세요.”도아영은 평소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이혁이 떠준 거라 예의상 한 수저 떠먹었다.“하 대표님, 이 국물이 정말 맛있네요. 저 원래 국물을 잘 안 마시는데 이 국물은 진짜 맛있어요.”“그럼 많이 드세요. 우리 집은 항상 식사 때 국물을 준비하는 게 습관이에요.”하예정은 우빈에게도 국물을 떠주며 물었다. 식습관은 바꾸게 하기 어려운 법이다.도아영은 관성의 사람이 아니라서 관성의 식습관과 달랐다.국물을 마시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국물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그 국물이 정말로 맛있었던 모양이다.“몇 살이에요? 동갑인 것 같은데.”“하 대표님이랑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제 생일은 연말이라 하 대표님보다 몇 개월 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