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망나니짓을 하니 너무 아쉬웠다.고현은 바로 그 꽃다발을 힘껏 낚아채 전호영의 앞에서 꽃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발로 몇 번 짓밟았다. 그리고는 전호영의 곁을 지나갔다.“꽃을 받았으니 전 대표도 어서 돌아가세요.”고현은 차가운 말투로 몇 마디 내뱉었다.전호영은 바닥에 짓밟힌 꽃다발을 보고 또 고현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재미있는걸. 은근 신경 쓰이네.”전호영은 고현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할머니가 주신 시간이 거의 끝나가자 어쩔 수 없이 움직인 것뿐이었다.고현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 고현에게 구애하면서 그녀의 반응을 보니 그제야 전호영은 조금이나마 호감이 생겼다.고빈은 바닥에 버려진 꽃다발을 보면서 걸어왔다.전호영은 바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전 대표.”고빈은 허리를 굽혀 누나에게 밟혔던 꽃다발을 주우며 입을 열었다.“전 대표, 슬퍼하지 마세요. 전 대표가 만약 진심으로 우리 고씨 가문의 남자를 좋아한다면 저를 고려해 보라니까요. 저는 기꺼이 전 대표와 함께 연기해 드릴 수 있어요.”“이렇게 예쁜 꽃다발이 망가진 것을 보니 너무 아쉽네요. 저는 평소에 이런 꽃들을 여성 지인들에게 선물하거든요. 물론 다들 감동하고 무척 좋아하죠.”고빈은 말하면서 그 꽃다발을 들고 근처에 있는 휴지통에 버렸다.고빈은 다시 전호영에게로 다가갔지만 전호영은 실망한 모습으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전 대표.”“고빈은 앞으로 다가가 전호영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위로했다.“전 대표, 실망한 척할 필요 없어요. 연기하려면 저를 찾으셔도 돼요. 전 대표가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저는 전 대표가 연기하는 건지 진짜 우리 형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건지 헷갈려요.”“저는 정말 당신 형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어요. 고빈 씨도 정말 멋지지만 당신 형보다 매력이 없어요. 당신 형이 도도하잖아요. 저는 고현 씨의 도도함이 좋아요.”말을 마친 전호영은 고빈의 어깨에 걸쳤던 손을 떼어냈다.“고빈 씨, 저는 고현 씨를 진심으로 좋아해
고현은 한참 말이 없다가 목소리를 낮춰서 입을 열었다.“전호영 씨가 지금 공개적으로 저한테 구애하고 있어요. 자꾸 따라다녀요. 하지만 저는 남자예요! 전 대표도 동생이 게이로 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실 겁니다. 전 대표, 이 일을 잘 처리해주세요.”“호영이가 공개적으로 당신에게 구애하겠다고 말했어요? 실행으로 옮겼어요? 아니면 말로만 한 거예요?”전태윤은 이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고현에게 물어봤다.“그분은 오늘 저에게 꽃도 주었어요. 회사 입구에 꽃바다를 만들고 그 꽃들로 글씨도 새겨놓았어요. 수많은 사람의 관심도 끌었고요. 지금 강성의 모든 사람은 저와 전호영의 관계에 대해 의논하고 있어요.”“태윤 씨, 전호영 씨는 관성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게이가 아닌 정상적인 남자였다고 들었어요. 지금 막 이런 성향을 보일 때 빨리 전호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계속 이대로 놔두면 안 돼요.”“저는 전호영 씨를 받아주지 못해요. 우린 결과가 없을 겁니다. 전호영 씨가 저를 따른다 해도 저는 감정적으로 그분을 속상하게 할 수밖에 없어요.”전태윤의 사촌 동생들에 대한 사랑을 믿었기에 고현은 전태윤이 전호영을 꾸지람할 줄 알았다.그러나 그 말을 들은 전태윤은 잠시 침묵했고 아내 다시 입을 열었다.“고 대표, 다른 일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텐데 이 일은 제가 도와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감정은 사적인 일이라서 제가 전호영의 형이라 할지라도 동생의 감정을 좌우할 수 없어요.”“호영이가 정말 고 대표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우리도 호영의 선택을 존중할 거예요.”고현은 놀라워했다.“태윤 씨, 정호영이 게이일 수도 있는 데 관여하지 않으신다고요?”“감정상의 일은 제가 관여할 수 없어요. 세상 속에 그렇게 많은 게이가 존재하는데 그분들 부모님도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어떻게 관여해요? 호영이가 남자를 좋아하든 여자를 좋아하든 우리가 좌우지 할 수 없어요.”전태윤은 사상이 진보적인 것처럼 말했다.“우리는 호영이가 여자를 찾든 남
고현이 전화를 끊자 전태윤은 전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호영은 이내 전화를 받았다.“형.”“너 이 자식, 행동이 참 빠르구먼. 어제까지만 해도 전화로 조언을 구하더니 오늘 바로 열정적으로 구애하고 있었던 거야? 고현이 깜짝 놀란 눈치더라고.”전호영은 이미 고씨 호텔에서 빠져나와 하루 호텔로 돌아왔다. 어쨌든 전호영은 자신의 목적에 달성했다.고현이 적응할 수 있도록 반나절의 시간을 주었다.저녁에 고현은 연회에 참석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전호영도 저녁에 그 연회에 참석해야 했다. 그때 가서 다시 고현에게 구애할 작정이었다.전호영은 고현이가 남자 신분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는지 지켜보았다.“둘째 형님과 형수님 모두 그렇게 조언해 주셨고 나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 할머니가 주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 몇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더 움직이지 않는다면 할머니께서 이번 설에 나를 집에서 쫓아낼 수도 있어.”전호영 바보처럼 웃으며 말했다.“형, 이 방법이 아주 좋았어. 내가 고현에게 꽃을 줬는데 고현의 그 무표정하던 얼굴이 확 변하는 것을 봤거든.”“나보다 더 남자다웠어. 나보다 더 남자다운 것 외에 나보다 더 멋있잖아. 내가 반드시 그녀의 가면을 벗겨버리고 말 거야.”전태윤은 또 입을 열었다.“고현 씨를 아내로 받아들이려고 구애하는 거야? 아니면 너보다 더 남자다워서 이겨보려고 구애하는 거야?”“물론 아내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전태윤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고 대표가 방금 나한테 전화 왔어.”“고 대표가 형에게 전화했다고? 뭐라고 고자질했어?”“너에게 신경 쓰라고 그러지. 네가 게이 성향이 있다고 빨리 바로 잡으라고 했어. 네가 고 대표를 쫓아다녀도 고 대표가 게이가 아니기에 소용없대. 계속 이렇게 지속하면 너만 다칠 거라고 말하더라고.”“게다가 네가 결혼 재촉을 피하려고 고현을 이용해 게이에 관한 화제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어.”전호영은 한바탕 웃었다.“형, 나도 알고 있어. 고빈 씨도 나에게 그렇게 물어
“애초에 나와 네 형수님의 일을 교훈으로 삼아야 해. 앞으로 아내분의 관심을 끌려고 할 때 절대 숨기거나 속여서는 안 돼.”전호영은 대답했다.“지금은 고 대표가 나를 속이고 나에게 숨기고 있거든. 알았어. 내가 적당한 시기에 고 대표에게 해명할게.”“그래. 알아서 해. 난 관성 호텔로 손님 만나러 가야 해.”전태윤은 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었다.전태윤이 호텔로 가고 있었다.전태윤 곁에 함께 있는 사람은 예쁜 아내 대신 경호원 팀뿐이었다.예전에는 소정남과 함께 갔지만 지금 소정남은 아내 주위만 맴돌았다. 하늘 아래에서 심효진이 가장 중요했다.퇴근 시간이 아직 안 되었는데도 소정남은 일찍 집에 가서 아내 곁을 지켰다.전태윤은 결국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문자 몇 통을 보냈다. 전호영의 요즘 정황을 하예정에게 가장 빨리 알려주었다.도씨 그룹.퇴근 시간, 회사 사람들은 대부분 밥을 먹으러 갔고 밖으로 나가기 싫은 사람들은 배달을 시켜서 끼니를 때웠다.도차연은 햇볕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되어 밖에 나가기 싫었고 배달을 시켜서 점심을 먹으려 했다.다만 도차연이 주문한 음식이 오랫동안 배달되지 않자 도차연은 기분이 매우 나빴다.도차연이 재촉하려고 전화를 들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들어오세요.”도차연은 배달 온 줄로 알고 전화를 끊었다.사무실 문이 열렸다.도차연은 전태윤의 모습을 보았다.도차연은 놀라서 멍하니 서 있었다.배달원이 봉지를 두 개 들고 들어오며 도차연에게 다가가면서 사과했다.“차연 씨, 죄송해요. 길이 좀 막혀서 좀 늦었어요. 화내지 마시고 제발 나쁜 평가를 주시지 않길 바라요.”배달원은 봉지 두 개를 도차연의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도차연이 여전히 멍하니 있는 것을 보자 배달 아저씨가 눈을 몇 번 반짝이더니 곧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차연 씨! 차연 씨!”도차연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도차연은 몰래 힘껏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팠다.아픈 것을 보니 꿈이 아니었다.현실이었다!도차연은 전태윤
배달원에게 검은색 양복을 입히고 넥타이를 착용해 준다면 뒤에서 볼 때 분명 전태윤으로 보일 것이다.물론 얼굴은 닮지 않았다.“차연 씨, 늦어서 죄송해요.”배달원이 아직도 사과하고 있었다.“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혹평 안 드릴게요. 퇴근 시간이라 길이 막힐 수 있으니 천천히 돌아다니세요. 주위를 잘 보면서 다니면 돼요. 늦어도 괜찮아요. 참,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도차연의 머리 회전 속도가 매우 빨랐다. 배달원의 몸매와 걸음걸이 모양새가 전태윤과 비슷한 모습을 보자 무언가 계략이 머릿속에 생겨났던 것이다. 이 남자를 이용해서 전태윤과 하예정의 사이를 이간질할 속셈이었다.배달원은 도차연을 보더니 우물쭈물하며 알려주고 싶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도차연은 강요하지 않고 명함을 건네주며 말했다.“당신 몸매가 제가 아는 사람과 많이 닮았어요. 당신과 함께 일을 하고 싶어요. 보수는 많이 드릴게요. 제가 속이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시지 마시고요. 이것은 저의 명함입니다.”“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세요. 저와 함께 일을 할 의향이 있으시다면 다시 전화 주세요. 제가 전화를 기다릴게요. 제가 드릴 보수는 당신이 5년 동안 배달한 것보다 훨씬 높을 겁니다.”배달원은 도차연의 명함을 건네받아 보았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 넣으면서 도차연을 향해 말했다.“저와 어떤 일을 함께하고 싶으신지요? 살인과 방화 같은 위법행위는 못 해요. 제가 아직 장가도 못 갔거든요.”도차연은 웃으면서 대답했다.“안심하세요. 법에 어긋난 일은 아니에요. 다만 저와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주시면 돼요. 돌아가셔서 잘 생각해 보시고 저에게 연락해주세요.”“아, 네. 차연 씨, 좋은 평가 부탁드릴게요.”배달원은 떠나기 전에 도차연에게 배달평가에 별점 5개를 부탁한다고 말했다.배달원은 도차연 사무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고 도씨 그룹을 나온 뒤에야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도차연 앞에서 저의 얼굴을 보여줬어요.”“도차연이 명함
가짜 전태윤이 말했다.“도차연의 눈이 엄청 높을걸요. 저는 그런 일은 감히 상상도 안 해요.”“도차연은 연애 경험이 없어요. 도차연을 잘 달래고 그녀의 뜻에 잘 따른다면 전태윤과 비슷한 몸매를 가진 당신의 우세로 그녀가 결국 빠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당신의 몸매를 잘 유지해야 하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이것이 바로 당신이 성공의 길로 향하는 비결일 테니까요.”살이 찌거나 빠지면 전태윤 비슷하지 않았다.“네, 알겠습니다.”부자가 되기 위해 가짜 전태윤은 반드시 몸매를 잘 유지할 것이다.조금 전 도차연에게 배달할 때 도차연이 넋 놓는 모습을 보면서 가짜 전태윤은 자기 몸매가 진짜 누군가와 몹시 닮았다는 걸 알았다. 도차연이 좋아하는 누군가와 닮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통화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카톡에는 돈 천만 원이 들어왔다. 도기범이 가짜 전태윤에게 준 보상이었다.단지 도차연에게 배달 한 번만 하고 얼굴만 보여줬을 뿐인데 돈 천만 원이 들어왔던 것이다. 가짜 전태윤은 부자들의 돈을 버는 것이 매우 쉽다고 생각했다.관성 비행장.성소현은 캐리어를 끌고 가면서 예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나 거의 다 도착했어. 도착했어?”오늘 성소현이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날이다. 예준하가 성소현을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다.예준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나오면서 날 볼 수 있을 거야.”성소현도 웃었다.“그래, 좀 이따가 봐.”“알았어.”예준하는 통화를 마친 뒤 휴대전화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꽃을 들고 있었고 나머지 손으로는 봉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 봉지 안에는 갓 구운 과자 두 통과 우유 몇 병이 들어있었다.예준하는 성소현이 비행기를 두 시간 탔기 때문에 배고플까 봐 걱정했다. 성소현이 기내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과자와 우유를 준비해서 요기하게 하려고 준비했다. 그리고 시내 안으로 들어가서 맛있는 밥을 먹이으려는 계획이었다.잠시 후 예준하는 인파를 따라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 별로 대화해 본 적도 없었다.그런데 소지훈이 직접 픽업하러 오다니!당황한 성소현은 제자리에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소현 씨, 이 꽃 소현 씨 거예요.”예준하와 소지훈, 두 사람 모두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소지훈은 장연준과의 내기에서 진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경혜를 따돌리는데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일부러 성소현에게 호감이 있는 척 예준하를 긴장시킬 수도 있고, 이경혜가 장연준과 성소현을 엮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었다.이경혜는 소지훈의 행적조차 몰랐기 때문에 두 사람을 엮을 수 없었다.그녀는 자기 딸이 소지훈과 성격이 안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사위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소지훈이 꽃다발을 내밀자, 성소현이 본능적으로 받았다.그녀는 품속에 있는 꽃다발을 보더니 또 고개 들어 소지훈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되찾았다.“지훈 씨, 이게 무슨 뜻이에요?”“아무것도 아니에요. 오늘 관성으로 돌아온다길래 일부러 픽업하려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집에 데려다주는 김에 밥 한 끼 얻어먹으려고요.”소지훈은 단숨에 해야 할 일을 똑똑히 말해주었다.성소현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소현 씨, 지훈 씨.”예준하는 성소현 옆으로 다가가더니 그녀가 품에 안고 있는 꽃다발을 소지훈에게 돌려주면서 자신이 산 꽃다발을 안겨주었고, 또 소지훈의 손에서 성소현의 캐리어를 낚아챘다.“지훈 씨, 번거로우실 필요 없이 제가 소현 씨를 데려다줄게요. 먼 걸음 해주셔서 감사해요.”예준하는 어찌 된 일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예의 갖춰 고마움을 표시했다.소지훈은 예준하의 행동을 말리는 대신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이렇게 괜찮은 남자를 사위로 받아들이기 싫어하다니...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이렇게 괜찮은 남자가 딸을 좋아한다면 자다가도 웃으면서 깨겠는데. 준하 씨가 먼 A 시 사람이라 둘이 만나는 걸 반대하나 보네. 서로 호감도 없는 연준 씨와 엮어봤자 뭐해. 억지로 엮어봤자 아무런
소지훈의 아버지는 그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사방에서 10살이나 어린 여자를 찾고있었다. 소지훈이 어느 여자한테 마음이 흔들리면 그 여자와 엮어놓고 싶었다.소지훈보다 10살이나 어리면 고작 24살밖에 되지 않았다.소지훈은 노동명과 같이 관성 상류사회에서 나이가 비교적 많은 골드 미스터였다. 노동명은 그보다 한두 살이 더 많았다.전씨 할머니가 믿는 점쟁이가 소균성에게 말하기를 소지훈이 진정한 남자가 되는 방법은 나이가 10살이나 어린 여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그 여자의 이름, 외모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24살짜리 여자를 죄다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소지훈은 그 내용을 전혀 믿지 않았다.‘이렇게 용한 점쟁이가 있다고?’소지훈이 잡아끄는 바람에 예준하는 그저 끌려갈 뿐이다.성소현은 할 말을 잃었다.‘이 두 남자, 날 데리러 온 거 아니었어? 왜 나를 버리고 둘만 가는 건데?’서로 손을 잡고 있는 두 남자 중의 한 명이 꽃다발까지 들고 있는 기이한 광경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다.성소현마저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이 모습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나중에 기분이 안 좋을 때 꺼내 보기로 했다.“지훈 씨.”발걸음을 멈춘 예준하가 먼저 손을 뺐다. 소지훈은 비록 형제 중에서 무술이 가장 약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일반사람보다 힘이 강했기 때문에 예준하가 몇 번이고 손을 뿌리쳐 보려고 해도 끄떡없었다.예준하는 그만 두 사람의 힘 차이를 느끼고 말았다.“왜 그래요?”소지훈도 따라서 발걸음을 멈추면서 예준하에게 물었다.예준하가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각자 갑시다. 동성애자로 오해받기 싫으니까.”소지훈은 의아한 듯 눈을 깜빡거렸다.‘동성애자?’소지훈은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성소현은 보더니 그제야 깨달았다.“죄송해요. 제가 소현 씨를 까먹었네요.”“소현 씨를 건드리지 마세요.”예준하는 소지훈이 성소현의 손을 잡을까 봐 재빨리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면서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이 손을 놓치면 소지훈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