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에 전태윤은 미소를 거두었고 농담도 그만두었다. 그는 진지한 얼굴을 그를 보며 물었다.“연준아, 너 설마 진짜 소현 씨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아니야.”장연준은 서둘러 부정했다.“난 오늘 저녁에야 소현 씨 어머니의 의도를 눈치챘어. 난 소현 씨 어머니가 길에서 몇 번이나 그런 일이 있고 하필 내가 소현 씨 어머니를 발견하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준 게 전부 소현 씨 어머니가 꾸민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장연준은 멍청하지 않았다.이경혜의 의도를 눈치챈 뒤 분석해 보니 이경혜를 마주치게 된 것이 그녀가 계획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경혜 부부는 사이가 좋았고 은퇴한 뒤 이경혜의 남편은 항상 그녀와 꼭 붙어 있었다.이경혜가 산책을 하는데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곁에 있지 않았다. 그리고 발목을 뼜을 때 하필이면 휴대전화를 챙기지 않았다니, 그게 정말 다 우연일까?“형, 난 소현 씨가 형을 짝사랑한 적이 있다는 걸 알아. 심지어 소현 시는 공개적으로 구애했어. 난 소현 씨를 만날 생각이 없어. 왜냐면... 그건 좀 아닌 것 같거든.”전태윤이 말했다.“그건 중요하지 않아. 소현 씨가 날 좋아했던 건 맞지만 난 소현 씨와 만난 적이 없어. 소현 씨는 내가 결혼했다는 걸 알고 더는 내게 대시하지 않았어. 연애관이 바른 편이야. 중요한 건 지금 소현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 예준하 씨라는 거지. 예씨 집안 다섯째 도련님 말이야. 두 사람은 아직 공개적으로 연애하는 건 아니지만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다 눈치챘어. 성소현 씨와 예준하 씨는 사이가 무척 좋아. 두 사람 다 감정적인 면에서 고집스러워. 네가 중간에 끼어든다면 손해를 입고 상처를 받는 사람은 네가 될 거야.”전태윤은 장연준이 성소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연준이 성소현을 좋아하는 것도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성소현이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때 일이다. 지금 성소현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전태윤은 자기 사촌 동생이 성소현에게 마음을 품는
성소현이 인사를 건넸다.전태윤은 성소현이 자신을 매부라고 부르자 입꼬리가 살짝 떨렸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예정하는 성소현보다 한 살 어린 그녀의 사촌 동생이었다.예전에 성소현은 전태윤을 태윤 씨라고 불렀는데 오늘 자극을 받아서 일부러 그를 매부라고 부른 듯했다.“소현 씨.”장연준은 곧 평소대로 돌아왔다.성소현과 그는 시선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속으로 정말 우연이라고 생각했다.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둘 다 이곳으로 온 걸 보니 말이다.“예준하 씨는 성소현 씨와 같이 오지 않은 건가요?”장연준이 미소 띤 얼굴로 성소현에게 물었다.성소현이 대답했다.“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해서 가보라고 했어요. 형수가 곧 출산해서 당분간 A시로 돌아가야 한대요.”장연준은 짧게 대답했다.하예정이 말을 이었다.“출산 예정일 아직 안 되지 않았어요? 벌써 출산이라고요?”“준하 씨는 그렇게 얘기했어. 나도 잘 몰라.”“쌍둥이를 임신했다고 들었는데, 쌍둥이는 출산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어요.”모연정이 곧 출산한다는 말에 하예정은 부러웠다. 모연정은 정말로 성공한 인생이었다. 두 사람 다 좋은 집안의 사모님이었고, 대부분 사람에게 하예정이야말로 진정한 성공한 인생이었지만, 모연정과 비교했을 때 하예정은 자신이 못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임신하지 못했으니 말이다.그녀보다 늦게 결혼한 심효진조차 임신했는데 그녀는 감감무소식이었다.다행히도 시댁과 남편은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한가해지거나, 누군가 곧 출산하거나 임신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표정이 어두워진다.“여보, 우리 미리 선물 준비하는 게 어때요? 모연정이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생후 1개월이 됐을 때 가봐야 하잖아요. 그러면 아이 선물을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연정과 대화를 나눌 때 내가 아이를 내 자식처럼 여기겠다고 한 적도 있거든요.”모연정의 아이는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다.수많은 사람이 모연정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처럼 대할 것이다.
장연준은 소문과 다른 성소현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형, 형수님, 전 먼저 가볼게요.”“조금 더 앉아있지 그래요? 야식 먹고 가요.”하예정이 붙잡았다.장연준은 웃으며 말했다.“전 야식 거의 안 먹어요. 야식 한 번 먹으면 운동을 또 오래 해야 이렇게 좋은 몸매를 유지할 수 있거든요. 형수님, 전 아직 미혼이라 이미지가 중요해요.”하예정도 웃었다.“연준 씨는 태윤 씨랑 똑같네요. 태윤 씨도 몸매 관리해야 한다면서 야식은 안 먹으려고 해요.”장연준이 떠나려고 하니 하예정도 그를 붙잡기 뭐했다. 전태윤이 자신의 사촌 동생을 배웅했다.“예정아, 네 차 좀 빌려줘. 나 여기서 자고 싶지는 않아.”성소현은 조금 전에 도착했을 때는 충동적인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잘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차를 빌려서 자신의 명의로 된 집에 가서 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전태윤과 하예정을 방해할 일도 없고 말이다.“여기서 하룻밤 자요.”“아냐. 태윤 씨가 겉으로는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내가 정말 여기서 자고 간다면 표정이 아주 안 좋을 거야.”전태윤은 독점욕이 아주 강한 남자였다.그러니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았다.“태윤 씨가 감히 언니에게 눈치를 준다면 내가 서재에서 자게 할 거예요.”성소현은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더 여기 있을 수 없지. 나 때문에 서재에서 자게 된다면 평생 날 볼 때마다 표정이 안 좋을지도 모르니 말이야.”하예정도 웃었다. 그녀도 전태윤이 아주 제멋대로인 성격이라는 걸 알았다.하예정은 흔쾌히 차 키를 몇 개 꺼내서 성소현의 앞에 놨다.“차고 안에 있는 차는 이것뿐이에요. 아무거나 하나 골라요.”성소현은 그중 아무거나 고른 뒤 말했다.“무슨 차든 상관없어. 그냥 타고 갈 수 있는 차면 돼.”전태윤은 장연준을 배웅하고 돌아온 뒤 성소현이 한 말을 들었다. 그는 속으로 차고 안에 있는 차 중 아무거나 골라도 다 좋은 차니 당연히 뭘 고르든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준하는 다음 날 오후에 A시로 향하는 비행기에 탔다. 그가 A시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모연정이 아이를 낳았다.딸 하나 아들 하나였다.예준하는 곧바로 성소현에게 연락해 그녀와 기쁨을 나눴다.처음 삼촌이 된 건 아니었으나 이번은 조금 달랐다.예전에는 당숙이었지만 이번에는 친삼촌이었다.그의 전화를 받았을 때 성소현은 자신의 명의로 된 집에 있었다. 그녀는 본가로 돌아가지 않았다.이경혜는 하예정을 통해 성소현이 본인의 명의로 된 집에서 지낸다는 걸 알고 먼저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설득하지 못했고, 냉전에 빠졌다.이경혜는 자신은 잘못이 없고 딸이 철이 없고 효심이 없어 자신의 설득을 듣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성소현은 엄마가 고집이 너무 세다고 생각했다. 예준하가 모든 걸 알맞게 계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엄마는 그가 관성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출산했다고?”성소현은 예준하에게서 모연정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무척 기뻤다. 그녀는 곧바로 예준하에게 축하 인사를 해줬다.“준하 씨, 또 삼촌이 된 걸 축하해.”“고마워. 이번에는 친삼촌이 되었어. 형수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았어. 집안 어른들도 다 기뻐해. 특히 우리 형 말이야. 형은 당장 폭죽이라도 터뜨릴 기세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서 폭죽 터뜨리는 건 불법이지.”“딸 하나 아들 하나라고? 와, 진짜 너무 부럽다!”성소현은 야단을 떨면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 부러워. 출산 한 번에 아들도 딸도 얻었잖아. 아기 엄청 귀엽지? 사진 찍었어? 몇 장 보내줘 봐.”“아기 아직 인큐베이터 안에 있어. 난 딱 한 번 봤는데 엄청 작았어. 정말 귀여웠어. 내가 사진 찍어뒀거든. 잠시 뒤에 보내줄게. 우리 어머니가 그러던데 아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달라져서 시간이 좀 지나면 더 귀여워진대.”두 아기는 예상보다 일찍 태어났다. 출산 예정일이 되지 않은 데다가 쌍둥이라 태어났을 때 2.5kg도 되지 않았기에 현재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다
“나도 가봐야 해, 회사에 일이 많아서.”예준하는 안도하면서도 오후에 다시 관성으로 돌아가기로 했다.회사에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기도 했지만, 주요하게는 관성으로 돌아가면 성소현을 가까이서 지킬 수 있었다.“그래서 몇 시에 도착해? 내가 마중 나갈까?”예준하는 평소 A시를 오갈 때 대부분 전용기를 이용했고, 다른 형제들이 전용기를 쓸 때만 항공권을 끊곤 했다.그런데 성소현이 데리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전용기를 타지 않기로 했다.예준하가 말했다.“비행기 표 사면 캡처해서 보내줄게.”“알았어, 오늘 저녁은 같이 먹자.”예준하는 잔뜩 들떠 있었다.“좋아.”“그럼 난 일하러 갈게.”예준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그래, 몸 관리 잘하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만 해.”“알았어. 지금까지는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전에 하예정이 판매 시장을 관성에만 둘 수는 없고 밖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둘은 의논을 마친 끝에 함께 인근 도시로 가서 시장을 둘러보고 땅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볼 계획이었다.예준하는 웃으며 말했다.“다들 똑똑한 사람들이잖아. 일해. 이따 저녁에 보자.”통화를 마친 예준하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고 웃으며 돌아서서 병실로 가려던 찰나, 부모님이 안에서 나오는 걸 보고 다가가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시려고요?”“우린 이만 가려고. 너는 여기서 형 곁에 있고 싶으면 그렇게 해. 네 형수도 우리가 보살필 필요 없었어. 네 형이 알아서 다 해.”예애정의 눈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대단한 큰며느리는 한 번에 아들딸을 같이 낳았다. 모연정이 쌍둥이를 낳았다는 소식에 시어머니인 그녀는 웃음이 나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드디어 손자 손녀가 생겼다.부부는 매일 며느리와 두 아기를 보러 병원에 다녀갔다.남우현 부부와 모씨 가문 사람들도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에 오는데, 남우현의 아내와 김계화는 엄마로서 병원에 남아 예준성과 함께 모연정을 돌봐 주었다. 예씨
막내아들이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예애정도 더 이상 결혼을 재촉하지 않지만, 예준하는 감정적인 부분에 대해 부모님과 좀처럼 얘기하지 않았고 주로 큰 형과 이야기하는 편이라 예애정은 큰아들 예준성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성소현의 사진을 보고 큰아들과 며느리를 통해 성소현에 대해 알게 된 그녀는 성소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하지만 예준하가 아직 성소현을 사로잡지 못했기에 예애정도 아무렇게나 그녀를 찾아가서 놀라게 할 수는 없었다.성소현이 놀라게 될까 봐 함부로 도망가서 성소현을 귀찮게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예준하의 잘생긴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솔직하게 말했다.“저 돌아오고 지난 며칠 동안 몸은 집에 있었지만 마음은 관성에 있었어요.”매 순간 성소현을 떠올리며 하루가 일 년 같다는 말을 체감하고 있었다.예애정은 큰 소리로 웃더니 친구처럼 막내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준하야 힘내! 엄마가 마음속으로 응원할게.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만 해. 엄마가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너 대신 아내를 찾아줄게.”“엄마 아들이 그렇게 쓸모없는 놈이에요? 제 아내는 제가 사로잡아야죠.”“그래그래, 네가 직접 나서는 게 중요하지. 이런 건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 없어. 경험이 없으면 네 형수한테 요령 좀 물어봐. 네 형수가 예전에 소설을 썼는데, 책 속 주인공들이 아내 꼬시는 걸 잘하더라. 형수한테 요령을 물어보면 분명 도움이 될 거야.”예준하는 웃으며 말했다.“난 엄마가 형한테 도움 청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네 형의 방법은 따라 할 수가 없어. 걔가 얼마나 독한데. 13살에 벌써 네 형수를 눈독 들여서 뒤에서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처리해 버렸다고. 그러다가 나중에 네 형수가 형을 만나게 된 거지. 걘 여자 꼬시는 건 몰라. 네 형보다 차라리 선우 걔가 더 나을 거다.”선우는 은서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예준성과 모연정은 바로 혼인신고를 한 케이스였다. 여자의 마음을 얻는 데는 선우가 훨씬 더 경험이 뛰어났다.모자
“이 집은 너무 썰렁해. 두세 명 정도는 들어와서 살아야 사람 냄새 나지.”이경혜는 돌아다니며 지나치게 썰렁한 딸의 집에 대해 불평했다.이씨 가문의 집사가 이틀에 한 번씩 사람을 보내 집을 청소하긴 했지만, 이 작은 저택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성소현은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전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성소현은 굳이 바꾸고 싶지 않았다.이경혜는 딸을 바라보며 더 이상 얘기를 이어나가지 않았다.“엄마가 저녁에 자선 갈라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니 같이 가자.”“엄마, 나 파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예정이나 예진 언니 데리고 가요.”이경혜는 또다시 그녀의 머리를 툭 건드렸다.“넌 이제 사업가잖아. 사업가는 사교가 중요한데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어떻게 사업을 해? 네가 관성에서 사업하는 것도 다 네 오빠와 이씨 가문의 위치가 있으니까 네 체면도 서는 거야. 그나마 다행인 건 너희들 다 능력이 되니까 남들 싫은 소리 안 듣는 건데, 관성을 떠나서 다른 도시로 가봐. 누가 널 알아주기나 해? 엄마가 너를 파티에 데려가는 것도 너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야. 예정이도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걘 책임감이 있잖아. 의욕도 있고 배우려는 의지도 있으니까 나서서 어울리는 거지. 예정이도 예전에 비해 이젠 자신감이 90% 정도 오른 것 같아. 게다가 전태윤도 파티에 참석하는데 예정이는 당연히 전태윤과 동행하겠지 왜 엄마랑 가겠니? 너는 엄마 딸이잖아.”이경혜는 가끔 딸이 이러는 걸 보면 정말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그들 집안에서 곱게 키워 생긴 버릇이니 어쩔 수 없었다.“예진 언니는? 예진 언니 데려가면 되잖아요.”“예진이 성격 몰라서 그래? 예정이도 못 말리는 애를 엄마가 어떻게 말려. 그리고 예진이는 저녁에 우빈이도 챙겨야 하잖아.”성소현은 입술을 달싹이다 마지못해 응했다.“알겠어요. 같이 가면 되잖아요. 우리 성씨 그룹에서는 뭘 얼마나 기부하는데요?”“저녁에 보면 알 거야.”
“예정아, 나 이제 임신해서 출산하려면 아직 8, 9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정남 씨 때문에 돼지가 될 걸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복 받은 줄 알아.”그러자 심효진이 말했다.“언젠가 너한테 그 말을 똑같이 할 때가 오길 바란다.”하예정이 우빈의 손을 잡고 돌아오자 우빈은 심효진을 이모라고 부른 뒤 혼자 의자에 올라가 앉았다.심효진은 손을 뻗어 우빈이의 작은 얼굴을 쓰다듬었다.“임신하면 이것저것 간섭하는 것도 많고 자유롭지가 않아. 그래도 우빈이처럼 귀여운 아기를 낳을 수 있다면 그만한 보람이 있을 것 같아.”“혹시 이모 배 속에 남동생이 있어요?” 우빈은 천진난만하게 물었다.그 말을 들은 심효진과 하예정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가 심효진이 우빈에게 말했다.“우빈아, 이모 배 속에 있는 아기 여동생 아니야?”그녀는 딸을 원했다.우빈은 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전 몰라요.”조금 전엔 아이가 본능적으로 한 말이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안 돼서 아들인지 딸인지 몰라.”하예정은 심효진이 딸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웃으며 말했다.“딸일 수도 있고, 모연정 씨처럼 쌍둥이일 수도 있지.”“모연정 씨 부럽다. 나도 한 번에 아들딸 다 낳고 싶은데 아쉽게도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갔더니 아기집이 하나만 있다더라.”하예정이 말했다.“그럼 하나씩 낳으면 되겠네. 은서윤 씨도 모연정 씨보다 조금 늦게 출산했어. 원래는 은서윤 씨 아기가 모연정 씨 아기보다 더 컸는데, 모연정 씨가 쌍둥이를 임신하면서 아이가 일찍 태어난 거야. 그래서 은서윤 씨 아들이 모연정 씨 아기들보다 어려졌어.”“은서윤 씨도 아이를 낳았어? 아들이야?”심효진은 모연정이 출산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하예정은 그렇다고 대답했다.정겨울도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전이진은 정겨울이 A시로 돌아와 예씨 가문 넷째 사모님의 신분으로 예진 리조트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전태윤에게 며칠 휴가를 내고 정겨울에게 여운초의 눈 치료를 부탁하고 싶다며
“할머니, 어디 가시려고요?”소정남은 전씨 할머니가 나가려는 것을 보면서 묻고 있었다.전씨 할머니가 대답하셨다.“너무 오래 나가 놀았는데 산기슭에 있는 옛 친구들을 찾아가 이야기도 나누고 카드놀이도 해야지.”전씨 할머니는 귀부인티를 내지 않고 산기슭에 있는 노동자들의 부모님들과 잘 어울려 다니셨다.그 할머니들도 전씨 할머니와 이런저런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이야기들 나누렴. 난 나가야겠어. 좀 이따가 밥 먹을 때 날 부를 필요 없어. 사람을 시켜 산기슭에 음식을 가져다주라고 해. 옛친구들과 함께 먹게. 어묵 같은 거 있으면 더 좋고.”“할머니, 연세가 많으셔서 그런 음식은 적게 드세요.”전씨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 알았어. 안 먹을게.”“제가 할머니께 드시지 말라고 하면 할머니께서는 저를 욕하시더니 왜 예정이가 드시지 말라고 하면 바로 수긍하세요?”전태윤이 일부러 투덜거렸다.그는 전씨 할머니가 손자며느리가 생겼다고 손자를 안중에 두지도 않으신다고 불평했다.전씨 할머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를 떠나셨다.할머니는 하예정을 유난히 좋아하셨다.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듯했다.그러나 손자는 너무 많아서 그다지 소중하지 않았던 모양이다.떠들썩한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저녁 6시가 넘으니 날이 금세 어두워졌다.전씨 가문의 세 사모님은 여운초를 데리고 연회에 참석하러 집을 나섰다.전이진은 리조트 입구까지 배웅하며 끊임없이 명해은에게 당부했다.“엄마, 우리 운초 씨를 잘 돌봐주세요. 남들이 괴롭힘당하게 하지 말고요.”“알았어. 누가 감히 우리 며느리를 건드리면 내가 가장 먼저 그녀를 용서할 수 없을 거야!”명해은은 전이진의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있었다.전이진은 또다시 들이밀었다.“아니면 제가 따라갈래요.”“네 아버지랑 다 집에 있는데 네가 따라가서 뭐 하게?”명해은은 운전 기사에게 차를 몰아라고 지시했고 창문을 눌러 아들에게 고개를 내밀어 말을 건넸다.“날도 어두워지고
전창빈은 할머니께 말씀드렸다.“할머니께서 조금 전에 저 보고 할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집에 방금 돌아오셨는데 물도 아직 한 모금 마시지 않으시고 바로 내려가셔서 카드놀이도 이야기도 나누시겠다고 하시다니.”하예정도 말했다.“할머니, 그 할머니들도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할머니께서도 오랜만에 돌아오셨는데 그 할머니들의 돈을 전부 따버리면 안 돼요.”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돈 내기하는 거 아니야. 카드놀이에서 지는 사람의 얼굴에 낙서하면서 노는 거지. 누가 얼굴에 가장 많이 그려지는지 지켜보면서 노는 거야.”현장의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노인네의 세계를 그들은 아직 잘 모른다.어르신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재치다.곧, 소정남과 심효진 부부, 그리고 소정남 부모님도 함께 들어왔다.집안이 더 시끌벅적해졌다.전씨 할머니는 소정남의 아버지 소균혁을 보더니 물었다.“셋째야, 당신 집 맏이가 사돈집에 갔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안 왔어?”소정남의 아버지는 형제 중 셋째였다.전씨 할머니는 예전부터 줄곧 소균혁을 셋째라고 불렀다.“설전에야 돌아온다고 하셨어요.”소지훈은 정윤하에게 고백했고 정윤하도 소지훈에게도 약간의 관심이 가진 듯 했다.소지훈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정윤하는 수차례의 고민 끝에 결국 소지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며칠 만에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소균성 부부는 연성에서 너무 기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잊은듯했다.하마터면 홀아비가 될 뻔한 아들이 드디어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생겼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소균성 부부의 마음에 걸려 있던 큰 돌도 마침내 땅에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하여 너무 기뻐서 관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비록 관성이 매우 춥고 가끔 눈이 온다고 해도 소균성 부부는 따뜻한 관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차라리 정씨 가문에 틀어박혀 불을 쬐고 싶어 했다.세 식구가 정씨 가문 사람들이 정윤하와 소
“여보, 오늘 밤은 내가 선물한 보석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가.”“보석 반지만 이진 씨가 선물한 걸 착용하면 되잖아.”전이진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래, 그럼. 이것만은 우리 엄마에게 양보할게.”여운초는 웃긴다는 듯 그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다.“참, 당신과 형수님께서 용씨 사모님도 오늘 밤 연회에 참석한다고 하던데.”전이진은 문득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목소리와 몸매가 여운별과 닮은 그 젊은 사모님을 언급하자 여운초의 웃고 있던 얼굴이 굳어졌다.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마침 잘 지켜볼 수 있게 됐네.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지켜보면 허점을 잡히기 마련이야.”“내가 시간 날 때 사람 시켜서 알아봤거든. 근데 그 사모님이 정말로 용씨 사모님이더라고. 남편이 정말로 용씨였어.”“응.”여운초는 용씨 사모님이 여운별이라고 의심은 하고 있지만, 증거는 없었다.만약 용씨 사모님과 여운별이 같은 사람이라면 분명 음모일 것이다. 만약 음모라면 배후에는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 모든 상황을 조종하고 있을 것이다.여운초는 10년 동안 어둠 속에서 살면서 인간성을 꿰뚫어 보게 되어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지금 여운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경계심을 품고 있다.그녀의 친어머니마저도 그녀가 죽기를 원했기에 그녀는 정말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나와 여운별은 20년 동안 자매로 지내면서 많은 일이 있었거든. 남들이 모르는 여운별의 사소한 습관들도 난 전부 잘 알고 있어. 아마 여운별 본인도 모를 수도 있어. 내가 몇 번만 더 만나고 접촉해 보면 분명 허점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용씨 사모님도 우리 앞에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만약 정말로 여운별이 가장한 거라면 이렇게 단기간에 여러 생활 습관은 고칠 수 없을 거야.”전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동일 인물이 옳든 아니든 용씨 사모님의 실체를 알기 전에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해.”“나도 알아. 아주버님과 형수님이 곧 돌아오실 거야.
그랬다. 전태윤도 하예정과 딸을 낳고 싶었다.특히 그가 매일 예지연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볼 때마다 늘 딸이 갖고 싶었다.예준성의 그 보배 딸은 점점 더 귀여워지고 있었다. 옥같이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에 눈도 어찌나 동그란지 여기저기 눈동자를 굴려서 볼 때면 앞으로 분명 똑똑한 아이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예준성도 매일 SNS에 그의 보물단지 예지연의 사진을 몇 번이고 올린다.물론, 매일 예씨 가문의 대표 SNS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예준성은 소중한 딸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아까워했다. 심지어 A시 사람들은 예씨 가문의 손자 세대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있다.예지연이 너무 어려서 어른들의 보호를 잘 받고 있었기에 언론에 아이의 정면 거의 찍히지 못했다.전태윤도 예준성의 SNS를 볼 수 있는 것도 하예정과 모연정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기 때문이지, 그와 예준성의 친분으로는 볼 수 없었다.그는 예준성이 전씨 가문이 딸을 낳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의 소중한 딸을 자랑한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때때로 예준성이 영상을 보내면 전태윤은 예준성이 보낸 영상을 반복해서 보곤 한다. 심지어 영상 속으로 들어가 예지연을 집으로 데려가 그의 딸로 삼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고 있다.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그들은 할머니 일행이 돌아오면 모두 서원 리조트로 출발하려고 했다.어젯밤에 리조트로 돌아온 전이진 부부는 지금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다.여운초가 연회에서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고 전이 진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가끔 여운초가 남편에게 물었다.“이진 씨, 이 드레스를 입으면 어때?”“좋은데. 당신은 어떤 옷을 입어도 너무 예쁘고 너무 어울려.”전이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는 일어나서 여운초의 등 뒤로 가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여보,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우리 엄마와 함께 있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당신을 잘 보호할 수 있을 거야.”“처음으로 당신 아내의 신분으로 어머님을 따라
하예정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전태윤에게 말했다. “태윤 씨, 우리도 리조트에 이틀 정도 지내러 갈까요? 주말에 출근도 안 하고 서점도 주말에는 문을 안 열잖아요.” 예전에는 서점만 운영할 때 주말에도 문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사업이 커지면서 서점은 그냥 하예정과 심효진의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애정으로 운영하는 곳이 된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전태윤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친구인 소정남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읽고 나서 그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 우리도 리조트에 가서 주말을 보내자.” “어머님, 아버님, 할머니도 오늘 가시니까 소정남 씨와 효진이도 불러서 점심 같이 먹어요. 샤부샤부 어때요? 오랜만에 샤부샤부 먹고 싶어요.” 하예정이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것에 전현림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아무런 이의도 없이 받아들였다. 하예정이 자신의 어머니와 꽤 닮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그렇게 친한 것 같았다. 예전에 전씨 할머니가 일부러 하예정을 자신의 은인으로 만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온 가족이 하예정에게 감사하게 되었고 전씨 할머니는 장남인 전태윤에게 하예정과 결혼하라고 했다. 전현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의 수법은 정말 대단해. 손자들도 어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다행히 전태윤과 하예정은 사이가 좋았으며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하예정을 아끼는 전태윤은 당연히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 그는 소정남에게 답장을 보냈다. “예정아, 우리 아침 먹고 리조트로 가자. 소정남이랑 효진 씨도 리조트에서 만나자. 샤부샤부는 사람이 많아야 더 맛있잖아. 예준하 씨랑 소현 누나도 불러야겠다.” 전태윤이 제안했다. 하예정은 성소현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성소현은 사양했다. 그녀는 예준하와 A 시로 날아가 예진 리조트에서 며칠 지낼 예정이었다. 예준하를 계속 관
전태윤은 그를 속인 거였다. 하예정은 주우빈에게 답장을 보냈다. [눈이 왔구나. 우빈이 운이 좋네, 갔는데 바로 눈이 와서 진짜 눈을 볼 수 있게 됐구나.] [눈사람도 만들 수 있네. 이모는 지금까지 눈사람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아침 맛있게 먹었어? 옷 많이 입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너희 셋째 작은 아버지는 여행 갔는데 열흘에서 보름 정도는 있어야 돌아올 거야. 네가 따라가면 유치원에 못 가잖아.] 다행히 전호영은 빨리 도망친 덕분에 주우빈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하예정의 답장을 받은 주우빈은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하예정과 주우빈은 30분 동안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마친 후, 전태윤은 중얼거렸다. “오늘에서야 우빈이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 줄 알았네. 당신이랑 30분 동안이나 이야기하다니.”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 “우빈이는 앞으로 수다쟁이가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따뜻한 남자가 될 거예요.” 따뜻한 남자에다 수다쟁이라니... “9시가 넘었네요. 부모님과 할머니도 일어나셨을 거예요. 우리도 얼른 서둘러야죠. 창빈 도련님은 오늘 원림성의 A 시로 가는 거예요?” 전태윤은 먼저 그녀의 옷을 가져오며 말했다. “월요일에 갈 거야. 이틀 정도는 집에서 할머니랑 시간을 보내려고.” 10여 분 후, 부부는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 거실 소파에는 전현림 혼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전씨 할머니와 장소민, 그리고 어제 형의 집에서 잔 전창빈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님.” 부부는 전현림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전현림은 부부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일어났구나. 아침 식사 준비해 뒀어. 아직 따뜻할 거야. 먹으러 가.” “엄마랑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전태윤이 물었다. “창빈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요?” “할머니가 엄마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셨는데 창빈이도 같이 갔어.” “이렇게 추운 날씨에 할머니가 산책하러 나가시다니.” 전태윤이 말했다. “할머니 말씀하시길,
“예진아, 늦었어. 얼른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야겠어. 내일 아침 같이 먹자.” 노동명의 목소리는 약간 쉰 듯했다. 하예진은 그의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동명 씨, 잘 자요.” “잘자.” 하예진은 그를 밀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직접 휠체어를 조종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달콤한 미소였다. 그날 밤은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지나갔다. 주말 아침, 출근할 필요도 없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평소 일찍 일어나던 전태윤도 침대에서 나오기 싫었다. 그는 침대에 늘어져 아내의 따뜻한 핫팩이 되어 주었다. 관성의 기온이 떨어져 정말 추웠지만 사실 기온은 아직 10도 정도였다. 낮에는 최대로 10도 중반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관성 사람들은 너무 추웠다.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인터넷으로 두꺼운 옷을 주문했다. 관성 사람들이 옷을 주문하면 판매자들은 재빨리 발송했다. 며칠 후 주문이 취소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관성의 추위는 찬 공기가 남하할 때 며칠 동안 추워지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발송이 늦으면 날씨가 풀리고 나서 두꺼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주문을 취소하게 된다. 방에는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가장 추운 며칠 동안 전태윤은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그는 보일러를 켜면 하예정이 더워서 자신의 품에 안기지 않을까 봐 일부러 켜지 않았다. 그가 하예정이 자신의 품에 안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건 절대 예정이에게 들키면 안 돼. 아니면 또 교활하다고 할 거야.’ ‘카톡!’ 하예정의 카톡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잠에서 깼지만 움직이기 싫어서 전태윤에게 말했다. “여보, 누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는지 좀 봐줘요. 너무 시끄러워요.” 전태윤이 말했다. “내 생각엔 우빈일 거야.” “우빈이는 엄마랑 있어서 이렇게 일찍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직 꿈나라에 있을지도 몰라요.”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꺼내 그녀에게 먹여줬다. 영화가 끝날 즈음, 하예진은 그가 챙겨준 음식으로 배부르게 먹고는 그를 보고 말했다. “이제 됐네요. 야식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예요. 또 산책하면서 소화라도 좀 시켜야겠어요.” 노동명이 일어나자 하예진과 보디가드가 그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를 밀면서 호텔까지 걸어가. 산책하면서 소화 시키는 거지.” 하예진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죠 뭐. 그런데 걸어가면 길을 못 찾을지도 몰라요. 길을 잘못 들면 우리 둘 다 강성의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돌아다녀야 할 거예요. 저 원망하지 마요.” “그럴 리 없어.” 지금은 밤이 더욱 깊어졌다. 영화관을 나오니 거리의 떠들썩함은 사라지고 점점 고요해지고 있었다. 하예진은 노동명을 천천히 밀며 걸었다. 보디가드들은 두 사람 뒤에서 조용히 그들을 보호했다. 걷다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동명 씨, 눈이 오네요. 빨리 차 타고 호텔로 돌아가요.” 어느 정도 걷자 하예진은 더 이상 배가 부르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오니 길이 미끄러워 운전하기 어려울까 걱정되었다. “그래.” 노동명은 아무런 이의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에게는 그녀의 말이 곧 정답이었다.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이내 그들은 이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우빈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강일구는 주우빈과 함께 있었다. 하예진이 돌아오자 강일구는 방으로 돌아갔다. “우빈이 자고 있어?” 노동명은 방에 들어와 주우빈을 보았다. 아이가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불을 살짝 덮어주며 말했다. “보일러 온도는 적당하면 돼, 너무 높일 필요 없어. 우빈이가 땀을 흘리고 있잖아.” 아이는 더우면 이불을 걷어차는 버릇이 있었다. 하예진은 온도를 조금 낮췄다. 노동명은 주우빈의 땀을 닦아주고 이불을 살짝 걷어내 더 덥지 않게 했다. 노동명의 행동을 보며 하예진의 눈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그는 주
노동명은 남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등에 한 번, 손바닥에 한번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하예진은 다급하게 손을 뺐다. 그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관 안은 어두웠고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동명 씨, 진지하게 좀 굴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노동명은 늘 거칠고 대범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쳤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그런 그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녀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변했다. 하예정은 언니가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명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진지해질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예진아, 앞으로 네가 휴식을 원할 때,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서 바람을 좀 쐬고 싶다면 나에게 말만 해줘. 아무리 바빠도 내 손에 있는 일을 내려놓고 너와 함께 나갈 수 있어. 일도 중요하지만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해. 나는 돈도 충분히 있어. 예전에 번 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했어. 지금 일을 하는 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용돈을 버는 정도야. 나에게는 너와 우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하예진은 그를 꾸짖듯 말했다. “동명 씨가 말하는 약간의 용돈은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 버는 금액이에요. 동명 씨,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예진이 식당을 운영하며 매출이 좋아 월 순이익이 꽤 높다고 하더라도 그가 버는 돈에 비하면 그녀의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잇, 비교하니까 열 받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온 힘을 다해야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노동명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 고생하며 노력한 결과다. 노동명은 업계에서 십여 년을 뛰어다니며 오늘의 성과를 이루었다.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