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준하가 오늘 엄청 바쁘대. 꽃과 편지는 평소대로 받았는데 문자는 겨우 몇 통밖에 못 했어. 준하 큰형수가 곧 출산이라 준하가 가능한 한 빨리 업무를 보고 A시에 다녀오겠다고 했어.”“모연정 씨가 쌍둥이를 임신했잖아요. 보통 쌍둥이들이 예정 출산일보다 빨리 태어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6월에 낳는다고 했는데 지금 5월 중순인 걸 보면 곧 낳을 것 같아요.”아이 이야기를 꺼내자 성소현은 하예정에게 2세 계획이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가에 맴돌던 말을 그대로 삼켰다.하예정는 일이 너무 바쁜 탓에 모든 정력을 일에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2세 계획을 잠시 고민하지 않았다.만약 성소현이 아이 이야기를 꺼내면 하예정은 갑자기 슬퍼질 것이다.“저는 이따가 태윤 씨를 데리러 가야 해서 오늘은 같이 못 먹을 것 같네요.”성소현도 이해하듯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래. 아니면 나도 준하를 데리러 갈까? 예정아, 준하가 퇴근하고 내가 와있는 걸 보면 어떤 표정일까?”“너무 좋아하겠죠.”두 사람은 아직 정식으로 연인 관계를 확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주동적으로 예준하를 찾아간다면 이 또한 애정을 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예준하가 무조건 기뻐할 것이다.얼마 후, 성소현은 하예정의 서점을 떠났다.점심시간이 너무 짧은 탓에 하예정은 전태윤을 데리러 가지 않았다. 그녀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가게 문을 닫고 꽃필무렵으로 갔다.전이진와 여운초는 아직도 밀당 중이다. 비록 전이진이 호감을 드러내면서 부지런히 대시를 했지만 여운초는 여전히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답답한 전이진은 사석에서 전태윤과 요즘 너무 힘들다고 투덜댔다.그는 전태윤과 하예정이 혼인신고 덕에 쉽게 관계를 확정 지었다고 생각했다.전태윤은 그 말을 듣자 피식 웃었다. 사실 두 사람도 많은 일을 겪고 서로 맞춰가면서 결혼까지 골인했다.전태윤이 예전에 하예정 때문에 울고불고 난리를 칠 때 전이진도 그 모습을 보았다.비록 전이진이 아직 여운초의 마음을 얻지 못했지만
여운초의 두 고모는 그녀가 잘되는 모습을 배 아파 지켜볼 수가 없었다.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여운초가 이미 여씨 그룹을 장악했다고 알려줬다.여운초도 전씨 일가 앞에서 이 일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예정에게 솔직하게 말했다.“누구도 우리 남매의 것을 빼앗을 수 없어요.”그녀가 여씨 그룹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건 아니었다. 동생의 몫은 동생이 성인이 된 후에 넘겨주려고 했다.하지만 여운별의 몫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고마워요. 지금까지는 괜찮아요. 동호 오빠도 도와주고 있고.”그리고 전이진도 있었다. 여운초는 전이진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지만 만약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골칫거리가 더 많아졌을 거다. 그녀는 결국에 그의 신세를 지고야 만 셈이다. 전이진은 점점 더 자신감이 부풀어 올랐고 여운초를 가지고 노는듯싶었다. 주도권을 잃은 그녀는 이 관계에서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이진 도련님도 운초 씨를 도와줄 수 있잖아요.”여운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때, 전이진이 꽃다발을 안고 갑자기 등장했다. 하지만 그건 진짜 꽃이 아니라 5만 원짜리 지폐를 한 장씩 접어서 만든 꽃다발이었다.하예정은 전이진을 보고 여운초에게 말했다.“운초 씨, 저는 꽃을 가져다주러 가야 해요. 그럼, 이만.”“그래요.”여운초도 전이진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이를 모른척하고 담담하게 하예정을 배웅하려고 애써 노력했다.“형수님.”전이진이 하예정을 불렀다.“그래. 왔어? 태윤 씨는 아직도 회사에 있어?”“네. 아직도 회사에 있어요. 제가 먼저 퇴근한 거예요.”하예정은 웃으면서 여운초에게 더 이상 배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차를 몰고 떠났다.하예정이 떠난 후에야 전이진은 여운초에게 들고 있던 꽃을 주었다.“운초야, 네 생각이 나서 이 꽃을 샀어.”“우리 가게에 있는 게 꽃인데. 필요 없어.”그녀는 꽃을 돌려주려고 했다.
“운초야.”전이진은 그녀의 붉은 입술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비록 여운초는 그의 눈빛을 볼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전이진이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는 점점 허스키해졌다. 그녀를 또 한번 가지고 싶었다.이를 눈치챈 여운초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전이진이 준 꽃다발을 안고 뒷걸음질 치다가 실수로 화분을 걷어찼다. 그녀가 막 넘어지려고 할 때 전이진은 크게 힘센 손으로 재빨리 그녀의 허리를 감고 그녀를 다시 끌어와 품에 안았다.공허했던 몸과 마음이 그녀로 인해 꽉 차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전이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정신을 차린 여운초는 몸부림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이진, 이거 놔.”가게에는 다른 직원들도 있었다. 직원 두 명과 경호원 두 명은 마침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전이진의 행동을 보지 못했다.“나는 너를 구한 거지 해친 거 아니잖아.”그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며 말했다. 그리고 볼에 뽀뽀했다. 그러자 그녀의 가벼운 떨림을 느낀 전이진은 피식 웃었다.‘엄청 예민하네.’그는 여운초가 이런 행동에 크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어떻게 그녀를 꾈지 알 것만 같았다.“전이진!”그녀는 매우 예민했다. 이렇게 뽀뽀를 받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고맙다고 인사해.”여운초는 싸우기 귀찮아서 타협하기로 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이진아, 잡아 줘서 고마워.”전이진은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 듣기 좋았던 적이 없었다. 이진이라는 두 글자가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에서 불리는 것이 너무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장소가 아쉽게도 그녀의 가게라 더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없었다.“고작 한마디야?”여운초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아, 짜증 나.’“밥 사줘.”그는 또 밥을 사달라고 했다.여운초는 어이가 없어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그래. 사줄게. 우리 가게에서 먹어. 내가 밥 해줄게.”“요리할 줄 알아?”“아니.”그녀는
전이진은 여운초를 카운터 앞으로 끌어당겨 앉혔다.“요리해 줄게.”그러자 그녀는 어리둥절해졌다.“정말?”그녀는 방금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다. 전이진더러 그녀와 함께 있으면 생활에 많은 불편함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면 자기에 대한 호감이 떨어질 줄 알았다.“내 요리 솜씨를 한번 맛봐.”전이진은 허리를 숙인 채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마음을 사로잡고 싶으면 그 사람의 입맛부터 사로잡아야 한다고. 내가 그 생각을 왜 이제야 했을까?”“...이진아,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 내가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그럼.”그녀는 말을 하지 않았다.“이 꽃다발을 들고 자랑해도 되고 뜯어도 되지만 돌려주지는 마. 아니면 화낼 거야. 내가 화나면 어떻게 되는지 너도 알잖아.”여운초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니 그녀는 대응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가게 안쪽에는 간이 주방이 하나 있었다. 주방이라고 하기에는 설비들이 아주 초라했다. 가스레인지랑 전기밥솥이 있었기에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할 수 있었다.전이진은 한번 둘러보더니 식재료가 없는 것을 보고 말했다.“운초야, 장을 안 봤어?”“아니.”그녀는 배달시키려고 했다. 전이진은 쌀을 씻으면서 말했다.“그러면 내가 밥을 안치고 가서 장 좀 보고 올게. 뭐 먹고 싶어? 직원들과 같이 먹을 거야?”그 말을 들은 두 직원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아닙니다. 이진 도련님. 저희는 분식 먹으러 갈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그러자 그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직원들은 너무 눈치가 빨랐다. 그는 장사가 잘되면 여운초더러 직원들에게 월급을 올려주라고 말하고 싶었다.잠시 후, 전이진은 가게를 떠나 장을 보러 갔다. 장을 보고 돌아와 경호원 두 명에게 말했다.“먼저 가서 밥 먹어.”경호원들은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직원 두 명과 함께 근처 분식집으로 떠났다.그들이 밥을 먹으러 가고 전이진이 야채를 씻을 때 여운초가 해고한 사촌
여운초의 사촌오빠가 명령을 내리자 그의 일행들이 즉시 움직였다.그들은 선반 위에 놓인 화분을 넘어뜨리면서 가게로 쳐들어갔다.“뭐 하는 거예요?”여운초는 일어나서 엄한 말투로 물었다.그러자 최씨 도련님인 최성욱이 기세등등하게 다가와 말했다.“뭘 하냐고? 야, 이 맹인아. 네가 먼저 의리를 지키지 않았잖아. 자, 다들 뭐해? 얼른 가게를 쳐부숴! 우리 돈줄을 끊어 놓고 너는 앉아서 돈이나 세고 있어?”그는 전이준이 준 돈 꽃다발을 보더니 생각지도 않고 손을 뻗어 빼앗아 가져왔다.눈 깜짝할 사이에 누군가가 다시 꽃다발이 빼앗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여운초가 아니라 전이진이였다.최씨와 김씨 일가는 전씨 둘째 도련님이 여운초를 좋아해 부지런히 대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만약 전이진의 신분을 신경 쓰지 않았더라면 두 가문에서 손을 잡아 여운초를 제대로 혼냈을 것이다. 심지어 여씨 저택에서 살 수도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최성욱은 전이진이 이곳에 있을 줄 몰랐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잠시 여기에 주차한 줄 알았다.“전, 전이진 도련님?”그는 말을 약간 더듬었다. 전이진은 그의 양복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마침 채소를 썰고 있었기에 그는 식칼을 들고 나왔다. 그는 한 손으로 식칼을 쥐고 한 손으로 그 꽃다발을 빼앗았다. 그리고 어둡고 사악한 눈빛으로 최성욱을 노려보았다.“뭐 하는 거야?”전이진은 차가운 어투로 물었다. 넘어진 선반을 보자 그는 더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가게를 부수러왔어?”“...전, 전이진 도련님. 우리는... 우리는 가게를 부수러 온 것이 아니라 방금 실수로 넘어뜨린 것뿐이에요.” 얼음장처럼 차가운 분위기를 감지한 최성욱은 겁에 질렸고 방금 기고만장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왜 하필 여기에 있는 거야?’비록 사람 인수로는 더 많았지만 그들은 전이진 앞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그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건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었기 때문이다!“내가 귀머거리
전이진은 빼앗은 꽃을 다시 여운초의 품에 안기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운초야, 계속 돈을 세고 있어. 요리는 금방 될 거야. 이 사람들을 신경 쓰지 마. 내가 있잖아.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지켜줄게.”그리고 그는 최성욱을 몇 번 째려보면서 말했다.“운초가 내 약혼녀라는 걸 몰라? 감히 내 약혼녀까지 건드려? 최씨 집안, 정말 대단하네.”전이진의 말 속에는 많은 뜻이 있었다. 그러자 최성욱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오해, 오해입니다. 이진 도련님. 저희가... 저희가 잘못했어요. 저희랑 운초는 사촌 남매예요. 우리 엄마는 운초의 친고모고요. 한집안 식구입니다.”전이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우리 운초는 너희 같은 친척을 두고 싶지 않아 할걸.”여운초와 작은고모는 사이가 좋았다. 그녀의 목숨도 작은고모가 구해준 셈이다. 하지만 작은고모가 멀리 시집가면서 전이진은 여운초의 목숨을 구해준 작은 고모를 볼 기회가 없었다. 기회가 되면 그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그녀의 작은 고모를 친고모처럼 대할 것이다.“이진아.”좀처럼 말할 기회가 없었던 여운초가 입을 열었다.“저 사람들한테 따질 게 있어. 먼저 가서 밥 해줘. 배고파.”“알았어. 조금만 기다려.”그녀의 배고프다는 말 한마디에 전이진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여운초를 해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전이진은 식칼을 쥐고 부엌으로 돌아가 계속 요리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최씨와 김씨 집안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위풍당당한 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이 양복과 넥타이를 벗지도 않고 앞치마를 두른 채 그녀에게 요리를 해주다니. 부잣집 도련님 같은 모습은 전혀 없고 오히려 매우 친근했다.여운초를 얼마나 좋아하면 이렇게까지 잘해줄까?최성욱은 자기 어머니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전이진이 여운초를 더 많이 좋아하니 말이다! 그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이 신기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전씨 가문 도련님들은 어장관리를
“이진 도련님, 하지만 저희는 지금 그렇게 많은 현금이 없어요. 계좌 이체로 할 수 없을까요?”최씨 도련님이 입을 열었다.“저기 반대편에 은행이 있잖아. 카드는 가지고 다니겠지? 가서 현금을 찾아와. 운초가 현금으로 하면 좋겠다고 했으니 현금으로 배상해.”전이진이 엄하게 말하자 최성욱은 하는 수 없이 사촌 동생인 김양훈더러 맞은편 은행에 가서 현금 400만 원을 인출해 오도록 했다.그리고 일행들의 지갑에 있는 현금을 모두 꺼내 456만 원을 모았다.“운초야, 이건 배상금 456만 원이야.”그는 돈다발을 여운초 앞에 내밀었다. 그녀는 돈을 받고 재빨리 세기 시작했다.한참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456만 원 맞아요. 볼 일 없으시면 이만 가세요.”그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망설였다. 결국에는 최성욱의 말에 달렸다. 그는 일행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고 또 우두머리였기 때문이다.“운초야, 우리가 그래도 사촌 남매인데 너무 무정하게 굴지 마. 외삼촌이랑 외숙모는 이미 감방에 갔어. 외삼촌이 그래도 네 아버님 형인데. 네 아버지 일은... 그리고 외숙모가 또 네 친엄마인데 너무 한 거 아니야.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 비록 지금 네가 여씨 그룹을 가졌지만 말이야. 너는 시각장애인이잖아. 한 대표님이 아무리 진심으로 도와준다고 해도 그 사람은 결국 외부인이야. 우리는 친사촌 남매고. 어떤 일이 생겨도 우리는 너를 도와 줄 수 있어. 그런데 우리를 쫓아내면 한 대표님만 이득을 보는 거잖아. 어쩌면 뒤에서 몰래 웃고 있을걸.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회사에 있어서 너보다 더 잘 알아. 너는 방금 회사를 인수했잖아. 한 대표님이 평소에 외삼촌 비위를 맞춰가며 지금 이 자리까지 왔어. 지금 외삼촌이 곤경에 처했으니 틀림없이 외삼촌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거야. 그 사람은 지금 너를 이용하는 거야.”두 형제는 화가 치밀어 올라 가게를 부수러 온 것도 사실이지만 여운초를 협박하여 다시 회사에 들어가려는 목적도 있었다. 비록 전이진 때문에 마음에 내키지도 않는 배상금
여운초는 평소에 자기 의견도 내세우지 않으며 투명 인간처럼 살아왔다. 가끔 몇 마디 할 때도 조곤조곤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가장 독한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저는 한 대표님을 100% 믿습니다! 저는 내 편인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의심되는 사람을 내 편으로 들이지도 않아요.”그들은 입을 벌리고 또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신들이 했던 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운초가 한동호를 통해 여씨 그룹을 빠르게 장악한 걸 보면 어쩌면 정말 그들이 부당 수익을 챙기고 탐낸 증거가 있을지도 모른다.“운초야... 앞으로 후회하지 않길 바랄게. 만약 여씨 그룹이 네 손에서 망하면 우리 모두 죽어서 하늘에 계신 작은 외삼촌을 볼 면목이 없다.”최씨 도련님은 그렇게 한마디 내던지고 일행들에게 말했다.“가자.”그러자 여운초가 담담하게 말했다.“사촌 오빠들 그러면 안녕히 가세요. 배웅하지 않겠습니다.”그들은 씩씩거리며 가게를 떠났다.그리고 전이진은 직원과 경호원들에게 말했다.“저 화분들을 다시 선반 위에 놓아.”그들은 400만 원 넘게 배상금을 지불하면서 이 화분들을 가져가는 것을 까먹었다.‘쌤통이다!’전이진은 여운초에게 말했다.“만약 저 사람들이 또다시 소란을 피우러 오면 전화해. 내가 사람을 데리고 와서 때려줄게. 그러면 얌전해질 거야.”“도련님, 저희 두 명이면 제대로 혼 내줄 수 있습니다!”한 경호원이 입을 열었다. 그는 전이진이 자기의 실력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다. 사실 전씨 집안 경호원들은 모두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이때 옆에 있던 다른 경호원이 그를 잡아당겼다.멍청이!‘도련님 매력 어필 시간이잖아. 왜 끼어들어?’그제야 그 경호원은 눈치를 챙기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화분을 옮기면서 전이진의 시선을 피했다.이때 여운초가 말했다.“그러지 않을 거야. 나 혼자 있는 줄 알고 들어오면서 화분을 깨뜨렸어. 만약 네가 있는 걸 알았다면 저
하예정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전태윤에게 말했다. “태윤 씨, 우리도 리조트에 이틀 정도 지내러 갈까요? 주말에 출근도 안 하고 서점도 주말에는 문을 안 열잖아요.” 예전에는 서점만 운영할 때 주말에도 문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사업이 커지면서 서점은 그냥 하예정과 심효진의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애정으로 운영하는 곳이 된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전태윤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친구인 소정남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읽고 나서 그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 우리도 리조트에 가서 주말을 보내자.” “어머님, 아버님, 할머니도 오늘 가시니까 소정남 씨와 효진이도 불러서 점심 같이 먹어요. 샤부샤부 어때요? 오랜만에 샤부샤부 먹고 싶어요.” 하예정이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것에 전현림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아무런 이의도 없이 받아들였다. 하예정이 자신의 어머니와 꽤 닮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그렇게 친한 것 같았다. 예전에 전씨 할머니가 일부러 하예정을 자신의 은인으로 만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온 가족이 하예정에게 감사하게 되었고 전씨 할머니는 장남인 전태윤에게 하예정과 결혼하라고 했다. 전현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의 수법은 정말 대단해. 손자들도 어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다행히 전태윤과 하예정은 사이가 좋았으며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하예정을 아끼는 전태윤은 당연히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 그는 소정남에게 답장을 보냈다. “예정아, 우리 아침 먹고 리조트로 가자. 소정남이랑 효진 씨도 리조트에서 만나자. 샤부샤부는 사람이 많아야 더 맛있잖아. 예준하 씨랑 소현 누나도 불러야겠다.” 전태윤이 제안했다. 하예정은 성소현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성소현은 사양했다. 그녀는 예준하와 A 시로 날아가 예진 리조트에서 며칠 지낼 예정이었다. 예준하를 계속 관
전태윤은 그를 속인 거였다. 하예정은 주우빈에게 답장을 보냈다. [눈이 왔구나. 우빈이 운이 좋네, 갔는데 바로 눈이 와서 진짜 눈을 볼 수 있게 됐구나.] [눈사람도 만들 수 있네. 이모는 지금까지 눈사람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아침 맛있게 먹었어? 옷 많이 입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너희 셋째 작은 아버지는 여행 갔는데 열흘에서 보름 정도는 있어야 돌아올 거야. 네가 따라가면 유치원에 못 가잖아.] 다행히 전호영은 빨리 도망친 덕분에 주우빈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하예정의 답장을 받은 주우빈은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하예정과 주우빈은 30분 동안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마친 후, 전태윤은 중얼거렸다. “오늘에서야 우빈이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 줄 알았네. 당신이랑 30분 동안이나 이야기하다니.”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 “우빈이는 앞으로 수다쟁이가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따뜻한 남자가 될 거예요.” 따뜻한 남자에다 수다쟁이라니... “9시가 넘었네요. 부모님과 할머니도 일어나셨을 거예요. 우리도 얼른 서둘러야죠. 창빈 도련님은 오늘 원림성의 A 시로 가는 거예요?” 전태윤은 먼저 그녀의 옷을 가져오며 말했다. “월요일에 갈 거야. 이틀 정도는 집에서 할머니랑 시간을 보내려고.” 10여 분 후, 부부는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 거실 소파에는 전현림 혼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전씨 할머니와 장소민, 그리고 어제 형의 집에서 잔 전창빈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님.” 부부는 전현림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전현림은 부부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일어났구나. 아침 식사 준비해 뒀어. 아직 따뜻할 거야. 먹으러 가.” “엄마랑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전태윤이 물었다. “창빈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요?” “할머니가 엄마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셨는데 창빈이도 같이 갔어.” “이렇게 추운 날씨에 할머니가 산책하러 나가시다니.” 전태윤이 말했다. “할머니 말씀하시길,
“예진아, 늦었어. 얼른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야겠어. 내일 아침 같이 먹자.” 노동명의 목소리는 약간 쉰 듯했다. 하예진은 그의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동명 씨, 잘 자요.” “잘자.” 하예진은 그를 밀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직접 휠체어를 조종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달콤한 미소였다. 그날 밤은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지나갔다. 주말 아침, 출근할 필요도 없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평소 일찍 일어나던 전태윤도 침대에서 나오기 싫었다. 그는 침대에 늘어져 아내의 따뜻한 핫팩이 되어 주었다. 관성의 기온이 떨어져 정말 추웠지만 사실 기온은 아직 10도 정도였다. 낮에는 최대로 10도 중반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관성 사람들은 너무 추웠다.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인터넷으로 두꺼운 옷을 주문했다. 관성 사람들이 옷을 주문하면 판매자들은 재빨리 발송했다. 며칠 후 주문이 취소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관성의 추위는 찬 공기가 남하할 때 며칠 동안 추워지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발송이 늦으면 날씨가 풀리고 나서 두꺼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주문을 취소하게 된다. 방에는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가장 추운 며칠 동안 전태윤은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그는 보일러를 켜면 하예정이 더워서 자신의 품에 안기지 않을까 봐 일부러 켜지 않았다. 그가 하예정이 자신의 품에 안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건 절대 예정이에게 들키면 안 돼. 아니면 또 교활하다고 할 거야.’ ‘카톡!’ 하예정의 카톡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잠에서 깼지만 움직이기 싫어서 전태윤에게 말했다. “여보, 누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는지 좀 봐줘요. 너무 시끄러워요.” 전태윤이 말했다. “내 생각엔 우빈일 거야.” “우빈이는 엄마랑 있어서 이렇게 일찍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직 꿈나라에 있을지도 몰라요.”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꺼내 그녀에게 먹여줬다. 영화가 끝날 즈음, 하예진은 그가 챙겨준 음식으로 배부르게 먹고는 그를 보고 말했다. “이제 됐네요. 야식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예요. 또 산책하면서 소화라도 좀 시켜야겠어요.” 노동명이 일어나자 하예진과 보디가드가 그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를 밀면서 호텔까지 걸어가. 산책하면서 소화 시키는 거지.” 하예진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죠 뭐. 그런데 걸어가면 길을 못 찾을지도 몰라요. 길을 잘못 들면 우리 둘 다 강성의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돌아다녀야 할 거예요. 저 원망하지 마요.” “그럴 리 없어.” 지금은 밤이 더욱 깊어졌다. 영화관을 나오니 거리의 떠들썩함은 사라지고 점점 고요해지고 있었다. 하예진은 노동명을 천천히 밀며 걸었다. 보디가드들은 두 사람 뒤에서 조용히 그들을 보호했다. 걷다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동명 씨, 눈이 오네요. 빨리 차 타고 호텔로 돌아가요.” 어느 정도 걷자 하예진은 더 이상 배가 부르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오니 길이 미끄러워 운전하기 어려울까 걱정되었다. “그래.” 노동명은 아무런 이의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에게는 그녀의 말이 곧 정답이었다.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이내 그들은 이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우빈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강일구는 주우빈과 함께 있었다. 하예진이 돌아오자 강일구는 방으로 돌아갔다. “우빈이 자고 있어?” 노동명은 방에 들어와 주우빈을 보았다. 아이가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불을 살짝 덮어주며 말했다. “보일러 온도는 적당하면 돼, 너무 높일 필요 없어. 우빈이가 땀을 흘리고 있잖아.” 아이는 더우면 이불을 걷어차는 버릇이 있었다. 하예진은 온도를 조금 낮췄다. 노동명은 주우빈의 땀을 닦아주고 이불을 살짝 걷어내 더 덥지 않게 했다. 노동명의 행동을 보며 하예진의 눈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그는 주
노동명은 남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등에 한 번, 손바닥에 한번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하예진은 다급하게 손을 뺐다. 그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관 안은 어두웠고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동명 씨, 진지하게 좀 굴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노동명은 늘 거칠고 대범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쳤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그런 그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녀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변했다. 하예정은 언니가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명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진지해질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예진아, 앞으로 네가 휴식을 원할 때,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서 바람을 좀 쐬고 싶다면 나에게 말만 해줘. 아무리 바빠도 내 손에 있는 일을 내려놓고 너와 함께 나갈 수 있어. 일도 중요하지만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해. 나는 돈도 충분히 있어. 예전에 번 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했어. 지금 일을 하는 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용돈을 버는 정도야. 나에게는 너와 우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하예진은 그를 꾸짖듯 말했다. “동명 씨가 말하는 약간의 용돈은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 버는 금액이에요. 동명 씨,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예진이 식당을 운영하며 매출이 좋아 월 순이익이 꽤 높다고 하더라도 그가 버는 돈에 비하면 그녀의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잇, 비교하니까 열 받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온 힘을 다해야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노동명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 고생하며 노력한 결과다. 노동명은 업계에서 십여 년을 뛰어다니며 오늘의 성과를 이루었다. 노
우빈은 새 장난감을 들고 호텔로 돌아가 놀고 싶었다.아직 강성의 밤 구경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하예진이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아, 일구 삼촌과 함께 호텔로 돌아가서 놀아달라고 할래? 엄마랑 아저씨랑 좀 더 돌아다니다가 돌아갈게.”우빈은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하여 강일구는 우빈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계속 돌아다녔다. 이는 두 사람만의 데이트나 다름없다.“동명 씨,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 이 근처에 큰 영화관이 있거든요. 저는 거의 매일 그 영화관 입구를 지나다녔는데도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어요.”노동명이 간절히 원하던 바였다.그는 즉시 경호원에게 먼저 영화표를 사라고 지시했고 그와 하예진은 천천히 걸어갔다.십여 분 후, 두 사람은 영화관 입구에 도착했다.경호원은 표를 끊고 간식도 사 놓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간식을 먹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단지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이고 구매한 표도 곧 시작하게 된다.영화관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면 곧 들어갈 수 있었다.노동명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한 손으로 경호원의 어깨를 잡고 나머지 한 손은 하예진이 부축하여 들어갔다.자리에 앉은 노동명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들 주변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그와 하예진, 그리고 몇 명의 경호원들이 두 사람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경호원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었다.“영화관에 와서 영화를 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노동명은 자리에 앉은 뒤 감개무량하게 한마디 했다.하예진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저도 몇 년 됐어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온 적 없어요.”결혼한 뒤로 영화를 보기는커녕 주형인은 그녀와 함께 쇼핑하는 것조차 점점 더 짜증을 냈다.그는 하예진이 물건을 살 때 항상 물건을 이리저리 비교하여 싼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싫어했다.하예진은 그때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배속의 태아를 돌봐야 했다. 저축한 돈은 모두 신혼집을 꾸미는 데 썼기에 돈 가방
하예진은 아들의 이마를 톡 쳤다.“뭐라고 한 거야?”우빈은 하예진이 때린 곳을 만지며 노동명에게 말했다.“아저씨, 엄마가 절 아프게 때렸어요. ‘호’ 해주세요.”노동명은 재빨리 불어주고는 다시 어루만져주며 하예진을 나무랐다.“예진아, 우빈 이마를 자꾸 치지 마. 똑똑한 애가 멍청해지면 어떡해.”“똑똑하면 똑똑하고 멍청하면 멍청한 아이인 거예요. 제가 몇 번 쳤다고 멍청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멍청한 건 녀석이 원래 멍청한 아이였기 때문이에요.”“우리 우빈은 똑똑하거든 멍청하지 않는단 말이야.”우빈은 하예진에게 혀를 내밀고는 얼른 노동명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노동명 아저씨가 그를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우빈을 아껴주던 노동명은 결국 우빈을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들어갔다.가게에 들어간 우빈은 노동명 품으로부터 바닥에 미끄러져 내려와 먼저 몇 권의 유아용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하예진의 앞에서 귀여운 얼굴을 들고 물었다.“엄마, 이거요. 저 장난감을 더 사도 돼요?”노동명이 녀석에게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녀석은 엄마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만약 하예진이 그에게 새 장난감을 사지 말라고 고집한다면 그도 사지 않을 것이다.하예진이 대답했다.“하나만 사.”우빈이가 대답했다.“네.”우빈은 장난감 몇 개 더 사려고 했지만, 하예진이 한 가지만 살 수 있다고 하니 하나만 사는 수밖에!녀석은 얼른 가서 그의 장난감을 고르고 있었다.노동명은 우빈이가 여러 장난감을 어루만지며 전부 가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이 좋아하는 건 다 사자. 내가 선물로 사줄게.”“동명 씨, 너무 아이 뜻에만 따르면 안 돼요. 한 가지만 고르게 해요. 장난감도 가지고 왔던데.”그러나 하예진은 아들에게 장난감 하나만 사주겠다고 고집했다.노동명은 어쩔 수 없이 하예진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는 우빈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사서 우빈에게 주고 싶었다.“우빈은 너무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고 아껴
“엄마, 하나만 사줘요. 네?”우빈은 계속해서 졸라댔다.“안 돼. 장난감을 사도 여기저기 쌓여 있을 텐데. 네가 놀다가도 정리하지 않으면 엄마가 대신 치워야 하잖아.”“엄마, 제가 다 치울게요. 앞으로 다 치울게요.”우빈도 스스로 정리하고 있었다. 다만 가끔 치우지 않을 때도 있었을 뿐이다.“장난감을 가지고 왔잖아.”하예진은 우빈에게 장난감을 너무 많이 사주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녀석이 장난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우빈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댔다.“새 장난감 사고 싶어요. 제가 새것 사 가서 동생에게 줄게요.”“그 동생은 아직 어려서 못 놀아.”“그럼, 스케치북을 사줘요. 글씨를 쓰고 숫자도 적으면서 놀래요. 네?”우빈이는 한발 물러서서 스케치북이라고 사고 싶었다.그 장난감 가게에는 연필들과 책들도 많았다.우빈은 그 가게를 다 돌아본 후에야 엄마를 찾으러 돌아와서 사달라고 졸랐다.강일구는 우빈이가 좋아하는 것을 사준다고 했지만, 녀석은 감히 받지는 못하고 하예진의 뜻을 물어보려고 했다.하예진은 항상 우빈의 장난감이 너무 많아서 두 번째 장난감 방도 가득 찼다고 잔소리했다.우빈은 장난감을 매우 사랑했다. 어떤 장난감은 실수로 망가져도 엄마가 버리겠다고 하면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다.하예진이 쓰레기통에 버리면 녀석은 전부 도로 주워왔다.“스케치북은 사줄게.”우빈은 금세 원숭이처럼 노동명의 허벅지에 올라가 자신을 안아달라고 요구했다.그리고 하에진이 그들을 밀고 앞으로 가게 했다.“엄마, 그럼 우리 스케치북 사러 가요.”가게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녀석이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있었다.우빈은 여러 대의 큰 장난감 차와 강아지 인형이 갖고 싶었다.정말 탐나는 장난감이었다!그는 엄청 좋아했다.“스케치북만 사. 이따가 돌아오면 그림도 그려.”하예진은 그녀의 아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그녀는 손을 뻗어 아들의 이마를 콕 찔렀다.“엄마가 네 곁에 없었는데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노동명은 다정하게 말했다.“널 위해서 늘 재활을 꾸준히 하고 있어. 회사 일은 특히 중요할 때만 나가서 처리하거든. 우리 형도 도와줘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노동명은 그윽한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예진아, 만약 네가 없었다면 난 정말로 재활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면서 평생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바보.”“아니거든. 난 단지 너와 우빈을 너무너무 사랑했을 뿐이야. 남들은 네가 이혼한 여자라고 말하고 있어. 내가 널 알게 되었을 때에도 넌 뚱뚱하고 못생겼는데 내가 왜 널 좋아하게 되었는지 몰라... 근데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나도 그 이유를 찾고 싶지도 않아. 아마 너의 강인함과 감히 자신을 개변시키는 그 능력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르지. 난 우빈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사실 난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느껴져서 안 좋아하거든. 근데 처음으로 우빈을 보자마자 좋아하게 되었다.”“저도 알아요. 저도 제 아들 덕을 봤죠.”노동명은 우빈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빈의 엄마, 즉 하예진에게 조금 더 많은 관심과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그러다가 접촉 횟수가 많아졌고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정이 들었다.“우빈이가 우리 두 사람 중매를 선 거나 다름없어.”노동명은 헤벌쭉 웃었다.“태윤이도 마찬가지야. 태윤 때문이 아니었다면 널 알지도 못했을걸. 예진아, 네가 강성에서 일을 마치면 나랑 결혼하는 건 어때?”하예진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노동명이 계속하게 말했다.“내가 정상적으로 걷지 못해도 난 결혼하고 싶어. 난 이미 스스로 설 수 있어. 그리고 몇 걸음 정도는 앞으로 걸을 수 있게 됐고. 1년이란 시간을 더 주면 분명 정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야. 근데 난 그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노동명은 지금 36세이고, 2년만 더 기다리면 38세까지 될 것이다.곧 있으면 마흔이 된다.하예진은 속으로 흐뭇해하며 대답했다.“좋아요. 저야 지금 당장이라도 동명 씨와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요. 근데 동명 씨가 원하지 않잖아요.”노동명은 자신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