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진은 빼앗은 꽃을 다시 여운초의 품에 안기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운초야, 계속 돈을 세고 있어. 요리는 금방 될 거야. 이 사람들을 신경 쓰지 마. 내가 있잖아.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지켜줄게.”그리고 그는 최성욱을 몇 번 째려보면서 말했다.“운초가 내 약혼녀라는 걸 몰라? 감히 내 약혼녀까지 건드려? 최씨 집안, 정말 대단하네.”전이진의 말 속에는 많은 뜻이 있었다. 그러자 최성욱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오해, 오해입니다. 이진 도련님. 저희가... 저희가 잘못했어요. 저희랑 운초는 사촌 남매예요. 우리 엄마는 운초의 친고모고요. 한집안 식구입니다.”전이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우리 운초는 너희 같은 친척을 두고 싶지 않아 할걸.”여운초와 작은고모는 사이가 좋았다. 그녀의 목숨도 작은고모가 구해준 셈이다. 하지만 작은고모가 멀리 시집가면서 전이진은 여운초의 목숨을 구해준 작은 고모를 볼 기회가 없었다. 기회가 되면 그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그녀의 작은 고모를 친고모처럼 대할 것이다.“이진아.”좀처럼 말할 기회가 없었던 여운초가 입을 열었다.“저 사람들한테 따질 게 있어. 먼저 가서 밥 해줘. 배고파.”“알았어. 조금만 기다려.”그녀의 배고프다는 말 한마디에 전이진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여운초를 해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전이진은 식칼을 쥐고 부엌으로 돌아가 계속 요리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최씨와 김씨 집안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위풍당당한 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이 양복과 넥타이를 벗지도 않고 앞치마를 두른 채 그녀에게 요리를 해주다니. 부잣집 도련님 같은 모습은 전혀 없고 오히려 매우 친근했다.여운초를 얼마나 좋아하면 이렇게까지 잘해줄까?최성욱은 자기 어머니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전이진이 여운초를 더 많이 좋아하니 말이다! 그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이 신기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전씨 가문 도련님들은 어장관리를
“이진 도련님, 하지만 저희는 지금 그렇게 많은 현금이 없어요. 계좌 이체로 할 수 없을까요?”최씨 도련님이 입을 열었다.“저기 반대편에 은행이 있잖아. 카드는 가지고 다니겠지? 가서 현금을 찾아와. 운초가 현금으로 하면 좋겠다고 했으니 현금으로 배상해.”전이진이 엄하게 말하자 최성욱은 하는 수 없이 사촌 동생인 김양훈더러 맞은편 은행에 가서 현금 400만 원을 인출해 오도록 했다.그리고 일행들의 지갑에 있는 현금을 모두 꺼내 456만 원을 모았다.“운초야, 이건 배상금 456만 원이야.”그는 돈다발을 여운초 앞에 내밀었다. 그녀는 돈을 받고 재빨리 세기 시작했다.한참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456만 원 맞아요. 볼 일 없으시면 이만 가세요.”그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망설였다. 결국에는 최성욱의 말에 달렸다. 그는 일행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고 또 우두머리였기 때문이다.“운초야, 우리가 그래도 사촌 남매인데 너무 무정하게 굴지 마. 외삼촌이랑 외숙모는 이미 감방에 갔어. 외삼촌이 그래도 네 아버님 형인데. 네 아버지 일은... 그리고 외숙모가 또 네 친엄마인데 너무 한 거 아니야.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 비록 지금 네가 여씨 그룹을 가졌지만 말이야. 너는 시각장애인이잖아. 한 대표님이 아무리 진심으로 도와준다고 해도 그 사람은 결국 외부인이야. 우리는 친사촌 남매고. 어떤 일이 생겨도 우리는 너를 도와 줄 수 있어. 그런데 우리를 쫓아내면 한 대표님만 이득을 보는 거잖아. 어쩌면 뒤에서 몰래 웃고 있을걸.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회사에 있어서 너보다 더 잘 알아. 너는 방금 회사를 인수했잖아. 한 대표님이 평소에 외삼촌 비위를 맞춰가며 지금 이 자리까지 왔어. 지금 외삼촌이 곤경에 처했으니 틀림없이 외삼촌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거야. 그 사람은 지금 너를 이용하는 거야.”두 형제는 화가 치밀어 올라 가게를 부수러 온 것도 사실이지만 여운초를 협박하여 다시 회사에 들어가려는 목적도 있었다. 비록 전이진 때문에 마음에 내키지도 않는 배상금
여운초는 평소에 자기 의견도 내세우지 않으며 투명 인간처럼 살아왔다. 가끔 몇 마디 할 때도 조곤조곤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가장 독한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저는 한 대표님을 100% 믿습니다! 저는 내 편인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의심되는 사람을 내 편으로 들이지도 않아요.”그들은 입을 벌리고 또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신들이 했던 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운초가 한동호를 통해 여씨 그룹을 빠르게 장악한 걸 보면 어쩌면 정말 그들이 부당 수익을 챙기고 탐낸 증거가 있을지도 모른다.“운초야... 앞으로 후회하지 않길 바랄게. 만약 여씨 그룹이 네 손에서 망하면 우리 모두 죽어서 하늘에 계신 작은 외삼촌을 볼 면목이 없다.”최씨 도련님은 그렇게 한마디 내던지고 일행들에게 말했다.“가자.”그러자 여운초가 담담하게 말했다.“사촌 오빠들 그러면 안녕히 가세요. 배웅하지 않겠습니다.”그들은 씩씩거리며 가게를 떠났다.그리고 전이진은 직원과 경호원들에게 말했다.“저 화분들을 다시 선반 위에 놓아.”그들은 400만 원 넘게 배상금을 지불하면서 이 화분들을 가져가는 것을 까먹었다.‘쌤통이다!’전이진은 여운초에게 말했다.“만약 저 사람들이 또다시 소란을 피우러 오면 전화해. 내가 사람을 데리고 와서 때려줄게. 그러면 얌전해질 거야.”“도련님, 저희 두 명이면 제대로 혼 내줄 수 있습니다!”한 경호원이 입을 열었다. 그는 전이진이 자기의 실력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다. 사실 전씨 집안 경호원들은 모두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이때 옆에 있던 다른 경호원이 그를 잡아당겼다.멍청이!‘도련님 매력 어필 시간이잖아. 왜 끼어들어?’그제야 그 경호원은 눈치를 챙기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화분을 옮기면서 전이진의 시선을 피했다.이때 여운초가 말했다.“그러지 않을 거야. 나 혼자 있는 줄 알고 들어오면서 화분을 깨뜨렸어. 만약 네가 있는 걸 알았다면 저
전씨 그룹.전태윤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퇴근 준비를 하였다. 하예정이 그를 데리러 올 것을 알고 그는 일찌감치 건물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가 계단을 내려갈 때 마침 퇴근 시간이라 오가던 직원들은 그를 보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그가 문 앞에 서서 가지 않는 것을 보고 고위층 직원들은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다가가서 물었다.“대표님,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아니야. 예정이를 기다리는 중이야. 나를 신경 쓰지 말고 얼른 퇴근해.”“...”그들은 전태윤이 이상하게도 일찍 내려간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하예정을 마중 나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꽃필무렵에 먼저 가서 꽃을 샀다.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혀서 조금 늦었다. 그녀가 전씨 그룹에 도착했을 때 직원들은 거의 모두 퇴근했다.그녀의 차가 천천히 전씨 그룹에 들어서자 꼿꼿하게 서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두 사람의 거리는 꽤 멀었고 전태윤은 경호원도 없이 홀로 서있었지만 하예정은 그를 첫눈에 알아봤다.그는 어디에 있든 빛났다. 키 크고 잘생기고 카리스마가 넘쳤다.평소에 하예정은 차를 주차장에 세웠지만 퇴근 시간이 지나자 오늘은 아예 건물 입구까지 몰고 갔다. 전태윤은 하예정의 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방긋 웃더니 그녀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달려갔다.그 모습을 본 하예정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전태윤더러 차에 타라고 손짓했다.그는 조수석에 놓인 장미 꽃다발을 보고 꽃다발을 안더니 웃으면서 물었다.“내꺼야?”“내가 만약 다른 남자를 위해 산 거라면 당신은 사람을 데리고 가서 이 꽃다발을 뺏어올 거예요?”그러자 전태윤이 카리스마 넘치게 대답했다.“그럼! 너는 내 와이프야. 나에게만 꽃을 줄 수 있어. 다른 남자에게 선물하면 뒤져.”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선물할 남자가 없는데.”전태윤은 그녀의 볼을 꼬집으면서 계속 말했다.“나 하나로 만족해. 왜 이제야 왔어? 다음에 꽃 선물 할 거면 일찍 와. 그러면 내가 꽃다발을 들고 퇴근할 수 있잖아. 회사 사람들
그 말을 들은 하예정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도련님들이 아부를 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큰형수인 자기에게 예의를 차린다고 생각했다.전태윤과 할머니가 그녀를 많이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가족들도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하예정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과분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전혀 거만해하지 않았다.“운초 씨와 이진이는 아직 그대로예요. 진도가 너무 느린 것 같던데.”그러자 전태윤이 의기양양해하며 말했다.“다 나보다 못하지. 나는 한 방에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하예정은 그를 째려보면서 말했다.“혼인신고 할 때 당신 표정이 그게 뭐예요. 굳어 있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내가 총을 들이밀면서 강제로 혼인신고 하러 끌고 간 줄 오해하겠어요.”“...”사실 전태윤은 그때 혼인신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그 결정을 후회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급히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합법적인 부부가 되었다. 전태윤은 할머니한테 자기 은혜를 대신 갚아달라고 강요받았기 때문이다.은혜를 갚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꼭 하예정과 결혼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하예정이 할머니에게 애교를 쓰고 달래면서 자기를 손자며느리로 인정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혼인신고를 한 후에야 그는 진정한 이유를 알았다.물론 지금 전태윤은 하예정과 결혼했기에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소현 언니와 상의했어요.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본가 쪽에 많은 마을이 있는데 마을 상태가 다 비슷비슷해요. 젊은이들은 밖에서 일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노인과 아이들뿐이라서 일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밭이 대부분 황폐해졌더라고요. 내일 소현 언니와 함께 내려가 보려고요. 계약할 수 있는 건 계약하고 땅을 좀 더 구해야겠어요.”전태윤이 자상하게 대답했다.“둘이 알아서 결정해. 어떤 결정을 하던 나는 당신을 응원할 거야.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랑 말하고. 투자에 필요한 본전은 내가 얼마든지 줄 수 있어.”“먼저 빌리는 거로 할게요. 돈을
전태윤의 할머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성소현과 전태윤은 가문 실력으로 놓고 보면 어울리나 전씨 가문 며느리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호텔에 가서 저녁을 먹을까요? 당신 이따가 손님 접대도 해야 하는데 집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어요.”“그래.”그러자 하예정은 해맑게 웃었다. 비록 두 사람 사이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사랑이 아니였지만 전태윤은 점점 더 그녀를 존중하고 그녀의 뜻을 따라줬다. 여느 부부들처럼 평범하고 충실한 삶을 살면서 가끔 낭만도 즐길 줄 알았다.전태윤은 항상 다음 생에도 그녀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전태윤에게 시집가서 다시 부부가 되고 싶었다....노씨 저택.윤미라는 핸드폰을 내려놓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맞은편에 앉은 노진규는 손에 신문을 들고 있었지만 계속 윤미라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윤미라와 노동명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또 뭔 일인데? 요즘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매일 이렇게 화내면 빨리 늙어. 화내지 마. 내일 피부과 예약하고 같이 관리받으러 가줄게.”윤미라는 무능력한 노진규를 보더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아줌마가 늙으면 늙었지 뭐가 어때서요. 아들이 그렇게 말을 안 듣는데 어떻게 화가 안 나요? 매일 앉아서 신문이나 보고. 당신 아들한테나 좀 신경 써요. 혼 내지도 않고 계속 제멋대로 하게 놔두니깐 얘가 이렇게 된 거잖아요.”그녀는 모든 잘못을 노진규에게 덮어씌웠다. 그러자 노진규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그래. 다 내 탓이야. 내가 잘못 가르쳐서 그래. 좋은 건 다 자기를 닮아서 그렇다고 하고 나쁜 건 다 내 탓이야? 동명이는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손자야. 어머니가 동명이를 응석받이로 키워서 이렇게 된 건데 왜 내 탓이야. 아들이 크면 다 말을 잘 안 듣기 마련이야. 그리고 이젠 나이도 거의 40이 되어가는데 왜 계속 동명의 일에 참견해. 당신이 하라는 대로 동명이가 한 적이 있어? 싫다는데 계속 그러니깐 당신만 화나는 거 아니야. 시어머니가
노진규가 말했다.“나도 동의 안 해. 근데 뭘 어쩌겠어? 이건 오롯이 동명이가 결정할 일이야. 그 녀석은 줄곧 우리 말을 안 듣잖아.”“만약 내가 예진이 찾아가서 얘기하면 그 애가 예정이한테 말할까요?”윤미라가 갑자기 물었다.“예진이는 뭣 하러 찾아가? 동명이한테 아예 마음이 없다잖아! 문제는 당신 아들이야.”윤미라는 잠시 침묵한 후 말을 이었다.“알아요, 나도. 예진이 문제가 아니란 걸. 하지만 동명이가 고집만 부리며 도통 말을 안 듣잖아요. 일단 예진이부터 손을 쓸 수밖에요. 예진이더러 그 가게 빼고 다른 곳에 가서 토스트 가게를 운영하게 하려고요. 동명이랑 멀리 떨어지게요. 나중에 동명이가 전씨 일가에 갈 때면 예진이는 못 가게 해야 해요. 두 사람 또 마주칠라.”“물론 예진이가 관성을 떠나 동명이가 모르는 곳으로 가서 살겠다면 더 좋고요. 그 아이가 동명이를 안 만난다면 나도 거액의 보상금을 줄 예정이에요.”윤미라는 진작 생각을 마쳤지만 하예진의 뒤에는 성씨 일가와 전씨 일가가 뒷받침해주고 있고 하예정과의 자매의 정이 깊어 그녀의 일이라면 하예정도 절대 방관할 리가 없다.하예정이 일단 간섭하면 전씨 일가도 함께 뛰어든다.전태윤은 아내 사랑이 지독한 팔불출이니까.윤미라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전씨 일가의 어르신은 대체 왜 전태윤에게 하예정이라는 신붓감을 정해줬을까.전이진이 말하길 여운초도 어르신이 정해준 신붓감이라고 한다.어르신의 안목 한번 참 독특할 따름이다.손주 녀석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조건을 타고났는데 어르신은 왜 그들에게 이런 조건의 신붓감을 정해준 걸까?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어르신이 전태윤 일행의 친할머니가 맞을지 의심할 지경이다.재벌가에서 서로 조건이 대등한 집안끼리 결혼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니까!“당신 지금 우리 집안과 전씨 일가의 관계를 무너뜨릴 생각이야?”노진규가 윤미라를 힐끔 째려봤다.이에 윤미라가 다급히 대답했다.“그럼 나더러 어쩌라고요? 아무튼 오늘은 싫은 소리부터 할게요. 죽는 한이 있어도
아내가 사고 칠까 봐 걱정된 노진규는 더는 막을 수 없자 마지못해 아내와 함께 문밖을 나섰다.그는 계속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기사더러 운전하라고 했다.부부는 뒷좌석에 앉아서 가는 길 내내 노진규가 아내를 타일렀다.“당신 예진이 찾으러 간 거 동명이가 알면 분명 당신이랑 대판 싸울 거야. 모자지간의 감정만 상하지 뭐. 예정이가 알면 태윤이도 알게 돼. 태윤이가 아내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 당신도 잘 알지? 예진이는 태윤의 처형인데 그런 사람을 관성에서 떠나라고 하는 건 벌집을 건드리는 거나 다름없어. 우리 집안과 전씨 일가의 관계를 완전히 무너뜨린다고.”윤미라는 머리를 기웃거리고 남편을 째려보며 말했다.“그냥 예진이 찾아가서 얘기만 한다고요. 누가 관성 떠나라고 협박한대요? 잔소리 좀 그만해요. 귀찮아 죽겠어. 우리 집안과 전씨 일가는 대대로 내려오며 돈독한 사이로 지냈어요. 내가 예진이 찾아간 걸 그 집안에서 알면 또 어쩌게요? 내가 욕을 한대요 때리기를 한대요? 그냥 얘기 좀 하겠다잖아요. 전씨 일가는 부모를 다 여의고 아무런 가정 배경도 없는 여자를 며느릿감으로 들일 순 있지만 우리 집안은 절대 안 돼요.”“모두가 전씨 일가 사람들처럼 그러지 못해요. 관성 상류층 사모님들 중 99퍼센트가 나랑 똑같은 생각일 거예요. 제 아들이 조건이 대등한 집안의 여자를 만나 결혼하길 바란다고요. 집안 조건은 예로부터 정말 중요해요. 나도 예진이를 겨냥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단지 서로 조건이 안 맞으면 이 결혼도 오래가지 못하고 트러블이 잦을 거예요. 나도 다 애들을 위해서 이런 거잖아요. 나중에 이혼하겠다고 소란을 피우면 꼴이 얼마나 흉해요.”“...”노진규는 할 말을 잃었다. 아내의 말이 일리가 있으니까.“그래 그럼 좋게 얘기해. 너무 강압적인 말투로 예진이 다그치지 말고. 그 아이 속상할라.”윤미라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성씨 일가와 전씨 일가가 뒷받침해주고 있는데 내가 어찌 감히 강압적으로 나오겠어요? 속상하긴 누가 속상해? 당신
“이씨 가문을 잘 꾸려나가려면 젊은 세대에게 의존해야죠. 우리 가문의 젊은 세대들도 능력만 있으면 모두 중히 여겨야 하는 거죠. 숙모님들, 맞죠?”이씨 가문의 셋째 삼촌 이지후는 야망이 있지만 이제 분투할 정력이 없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다만 그들의 후손의 앞날일 뿐이다.하예진이 방금 한 말은 승낙한 거나 다름없다.하예진이 방금 한 말은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가 하예진 쪽으로 돌아간다면, 가문의 젊은 세대들은 능력만 있다면 모두 적당한 자리에서 빛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는 의미이다.하예진은 자신이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두 사모님이 눈을 마주치며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씨 가문의 넷째 숙모 김연희가 입을 열었다.“맞아요. 역시 전임 가주의 후손답네요. 전임 가주가 이씨 가문을 다스릴 때 우리 이씨 가문은 강성에서 그 누구도 얕볼 수 없는 존재였죠.”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이 이씨 가문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전임 가주 이은숙이 여전히 이씨 가문을 운영했을 때 김연희와 최순자는 아직 이씨 가문으로 시집오지 않았다. 당시 그녀들의 나이는 6세에서 12세 사이였고 가문의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그러나 그녀들의 남편들은 어느 정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적어도 학창시절에 이씨 가문 사람이라고 하면 아무도 괴롭히지 못했다.그 후, 가문의 어르신들 이야기를 통해 자주 듣게 되었다.전임 가주 이은숙의 인간 됨됨이나 일 처리 방면에서는 매우 훌륭했지만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 낳은 탓으로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 하루가 멀다고 병으로 앓게 되어 이은화에게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그리고 두 숙모분께서도 안전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씨 가문에서 떠벌리며 다니지 않는 한 강성에서의 안전은 제가 보장해 드릴 수 있어요.”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무슨 일을 하든 너무 날뛰지 않고 눈에 띄게 행동하지 않으면 죽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만약 그들이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한다면 하예진이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감히 협력하지
몇 분 후, 방에서 하예진을 기다리고 있던 전호영은 예진이 도착하자 바로 나와서 문을 열었다.“예진 누나.”“고마워요, 호영 씨.”“우리 사이에 무슨, 천천히 얘기 나눠요, 저는 일 보러 나가볼게요.”방을 나온 전호영은 하예진을 방으로 들여보내고는 일구를 포함한 경호원들에게 아무도 못 들어가게 단단히 지키고 있으라고 지시했다.펜트하우스가 출입이 통제되긴 하나 경각심을 높여서 나쁠 것은 없었다.일구와 다른 경호원들은 전호영의 말에 깍듯이 응했고 전호영은 자리를 떴다.하예진이 방으로 들어가자 두 숙모님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들을 위한 과자와 과일들이 놓여 있었고 따뜻한 물도 준비해져 있었다.“예진 씨.”하예진이 들어오자 두 숙모는 소파에서 일어나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고 인사했다. 하예진 라인에 서기로 했으니 두 사람은 이제 본모습을 보일 때가 된 것이다.두 분은 나이가 있는 분들이셨지만 보양을 잘한 덕분에 겉보기에는 훨씬 젊어 보였다.“두 분 앉아계세요.”하예진은 차를 내와 찻잔에 부으면서 말했다. “차를 마시면 정신도 맑아지고 좋더라고요.”“우린 이제 나이가 들어서 차를 별로 안 마셔요. 차를 마시면 저녁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셋째 숙모가 웃으면서 답했다.하예진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간식을 권했지만 두 분은 사양했다.“두 분께서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고요?”하예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두 분과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니 다룰 얘깃거리도 별로 없었다.“예진 씨가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라고 우리 그이가 그러더군요. 우리 두 집안이 기꺼이 힘을 합쳐 도와드리겠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셋째 숙모가 입을 열자 넷째 숙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속으로는 하예진 앞에서 이 가주에 대해 불평하고 싶었지만 집을 나설 때 남편이 그러지 말라고 그녀에게 신신당부했기에 꾹 참고 있었다. 그저 두 집안의 의사를 전달하고 다른 말은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하예진은 관성의 대표로 이곳에 왔기 때문에
하루 호텔은 안전 레벨이 아주 높은 곳으로 그곳에 가면 숙모님들이 마음을 좀 더 내려 놓을 수가 있었다.이에 하예진도 동의를 표하였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방을 예약 해놓을게요.”그녀는 뒤돌아서서 휴대폰을 꺼내어 전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루 호텔에서 제일 안전한 방이 어느 방이에요? 누가 엿듣거나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곳으로 빌리려고요.”전호영은 일 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그야 무조건 펜트하우스에 있는 스위트룸이죠. 지금 제가 묵고 있어요, 누나가 필요하다면 제가 빌려드릴게요.”“고마워요, 이씨네 숙모님 두 분이 먼저 가실 거예요, 믿을만한 사람을 시켜서 조용히 두 분을 방까지 모셔드리도록 해줘요. 카메라에 찍히지 않게 주의해 주시고요.”전호영이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안배할게요. 두 분 호텔로 이동하시게 하세요, 거의 도착할 때 저희 쪽에 연락 주시면 돼요.”그러고는 하예진에게 번호 하나를 알려주었다.“누나, 조금 있다가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돼요, 펜트하우스까지 에스코트해 줄 거예요. 저도 조금 있다가 바로 돌아갈게요.”현재 그 방은 전호영이 지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방문을 열 수가 없었기에 호영이 호텔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부탁드릴게요.”“별말씀을요.”하예진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하던 일 계속 해요, 제가 두 분께 말해놓을게요. 여기서 호텔까지 가려면 약 20분 정도 걸릴거에요. 저는 30분 뒤쯤에 도착할 것 같아요.”“알겠어요.”통화를 마친 예진은 두 숙모한테 다가가 말했다.“제가 이미 말해놓았으니 두 분께서 지금 그쪽으로 출발하시면 되세요. 거의 도착할 즈음 이 번호에 전화하시면 그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그분들이 두 분을 방까지 에스코트해 주실 거예요.”하예진은 전호영이 알려주었던 번호를 셋째 숙모한테 말해주었다.“먼저 가 계시면 돼요. 저는 십 분 뒤에 바로 출발할게요.”“그래요.”두 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나서 지체없이 바로 출발했다.
“그 분들이랑은 어떻게 되는 사이신지?”하예진이 물었다.두 사람은 자신들의 남편 정체를 말한 후 하예진의 반응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녀가 침묵하자 두 사람은 하예진이 자신의 남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서둘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넷째 숙모고 이분이 셋째에요.”하예진은 그녀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실 때 뒤따르는 사람이 없었나요?”“없어요, 뒤처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 예진씨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하예진은 미소를 지었다. “저야 아무 걱정이 없지만 두 분께서 저를 찾아온 일이 이 가주님의 귀에 들어가 두 분께서 불리해질까 봐 걱정이에요.”하예진은 원래부터 이씨 집안을 노리고 있었으니 이씨 가족 사람들과 접촉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오히려 아무 접촉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씨 집안 사람들이 그녀를 먼저 찾아왔다면 이 가주가 그 사실을 알고 응징할 수도 있기에 그 후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보였지만 이내 다시 물었다.“예진 씨, 잠깐 따로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좋아요, 저는 아무 때나 괜찮아요. 어디서 얘기할까요? 장소를 알려주시면 제가 곧 갈게요. 함께 이동하면 눈에 뜨일 수 있으니까 따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예진의 말에 그 두 사람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마음이 담겨 있어 두 사람은 마음이 놓였다.두 사람의 남편들은 집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지냈다. 이 가주는 그들을 비롯한 직계가 아닌 가족들에게 아주 인색하고 발전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오히려 이 가주의 억압을 받아 두각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두 가족은 몰래 모여 이틀 동안이나 상의를 했고 결국에는 하예진 라인에 서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하예진이 이길 것이라고 배팅을 한 것이다. 만약 하예진이 이긴다면 그들이 하예진을 처음부터 지지해 온 사람들로서 앞으로의 발전이 나쁘
하예진은 경계심에 차 물었다.“날 스토킹하기라도 하는 건가?”그녀는 단지 공장을 보러 왔을 뿐 오래 머물지 않을 텐데 이씨 집안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한다니, 그녀가 이씨 집안을 노리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그녀를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이곳 강성에 온 목적은 하나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고 이씨 집안을 장악하는 것이다.이는 큰 이모가 그녀에게 맡긴 중대한 임무였다.곧 하예진은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이씨 집안에서 아무런 경계가 없다면 더 이상한 것이었다.“내가 나가 볼게.”그녀는 아마도 이씨 집안 만찬에 참석했던 사람의 부인이겠거니 생각했다.그날, 만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남녀 반반이었고 예진은 일구랑 함께 참석했었기에 만찬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일구는 얼굴이 익을 것이었다.예진은 경호원과 함께 나갔다.공장 입구에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고 차에 앉은 사람들은 내리지 않았다. 하예진이 나오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녀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아마도 남들이 그녀들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하예진은 그녀들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강성 시민 중에는 그녀들을 알아볼 사람이 많았다.하예진이 다가가자 한 분이 눈웃음을 보이며 인사를 건네왔다.“예진 씨, 잠깐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예진은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누구신지? 얘기를 나누려면 누구신지 알아야죠”그들은 예진이랑 같이 따라 나온 사람들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그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성분이 말을 건넸다.“혹시 이씨네 셋째 큰아버지랑 넷째 큰아버지를 기억하시나요?”그 두 사람은 이 가주랑 동년배지만 직계가 아니고 데릴사위도 아니기에 자신들의 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엄격히 말하면 셋째 큰아버지는 이 가주의 집안 동생이고 이 가주는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니라 데릴사위를 들이기 때문에 그녀의 자식들은 그를 삼촌이라고 부르지 않고
“여보, 나도 이십몇 년 간의 남매 정을 생각해서 도와준 거야. 갈 데도 없고 돈도 없는데 불쌍하잖아. 당신이 싫다면 내가 내보낼게.”정일범은 아내 조윤이 엄마한테 이를까 봐 겁이 났다.외도 사실이 들통난 후 윤정이가 오빠들을 도와줬기에 조윤은 윤정이를 무척이나 미워했다.윤정의 처지가 딱하게 된 지금, 조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더욱 심하게 굴 것이 뻔했다.하지만 조윤 탓을 할 수가 없었다. 반병 남짓 남았던 술을 아버지에게 갖다준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조윤은 차갑게 쏘아붙였다.“지금 당장 내보내요. 이후에도 연락하지 말고요, 그 애는 당신들의 동생이 아니잖아요. 당신들의 동생은 윤미라고요. 그 애 친아빠 때문에 당신들이랑 윤미가 이십 년이나 떨어져 살았는데 당연히 그 사람들을 싫어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윤미가 그 집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그 사람들이 윤미한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봐요. 일범씨, 당신도 딸을 가진 아빠잖아요. 우리 딸이 다른 집에 바뀌어 가서 학대를 당했다고 생각해 봐요, 어떨 거 같아요?”정일범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그는 곧 하인 부부에게 지시했다. “가서 윤정의 짐을 모두 정리해서 줘. 지금 당장 나가라고 해, 다시는 여기에 나타나지 말고.”윤미의 둘째 형수랑 셋째 형수도 자기 남편에게 눈치를 주었다.두 남자는 와이프한테 찰싹 붙어 실실 웃어대며 낮은 목소리로 다시는 윤정이를 집에 들이지 않겠다고 사과했다.윤정이는 절망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이제 진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오빠들도 도와주지 않고 일전한 푼도 없는 상황에 어떡하지?이제 진짜로 친엄마한테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형편이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고 시골과 도시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어릴 적부터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그녀가 시골로 돌아가 생활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하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돌아가지 않으면 클럽에서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기
이윤정은 조윤을 노려보며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조윤은 이윤정에게 더는 해명하지 않고 그 사실을 이윤정에게 알려준 다음 두 동서에게 걱정스레 말했다.“가요. 우리 들어가요. 밖이 추워 죽겠어요.”조윤은 몸을 돌려 뒤따라 나오는 김숙자에게 지시했다.“앞으로 제 동의 없이 이 천한 X을 우리 별장 안에 들여보내지 마세요. 일범 씨가 다시 감히 윤정이를 여기로 끌어들인다면 우리 어머님의 노여움을 감당할 수 있는지 한 번 물어 보세요.”이윤정은 넋을 잃고 주저앉아버렸다.얼마 후 정일범 형제가 도착했다.그들은 땅바닥에 앉아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는 이윤정을 보았다.그녀의 얼굴은 손가락 자국들로 가득했고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리고 입가에는 핏자국이 있었으며 머리는 헝클어진 채로 옷도 너무 얇게 입어 입술이 퍼렇게 변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정일범은 무척 가슴 아팠다.“윤정아.“세 형제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구경꾼들은 조윤이 자리를 뜨자마자 흩어졌다.물론 이윤정에 대한 소문은 곧 강성에서 널리 퍼졌다.정일범은 양복 외투를 벗어 이윤정의 몸에 걸쳐주었고 그의 두 동생은 이윤정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오빠.”이윤정은 정신을 차리더니 정일범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형수님, 형수님들이 나를 이렇게 때렸어. 나에게 복수하는 거야. 내가 오빠들이 바람피울 때 오빠 편을 들었다고 지금 내가 초라해진 틈을 타서 나에게 복수하는 거야. 내가 여기 있는 걸 아는 사람은 분명 이윤미일 거야. 이윤미와 형수님들이 연합해서 나를 상대하는 거라고. 오빠, 나와 아빠는 단지 오빠가 준 술 반병을 마신 것뿐인데 그렇게... 오빠가 나와 아빠를 함정에 빠뜨릴 리가 없잖아. 그럼 분명 형수님이 우리 술에 약을 탔을 거야.”정일범은 다급하게 이윤정의 말을 끊었다.“윤정아. 이런 일은 함부로 말하면 안 돼.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말하지 마. 엄마는 아직도 화가 안 풀리셨거든.”정일범도 조윤이 이윤정을 함정에 빠뜨린 사실을 알고 있다.지금 이윤정은 이
“넌 내 남편의 친동생이 아니야. 혈연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내 남편이 널 여기로 데려와 살면서도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 첩을 이 별장에 몰래 감춘 게 아니면 뭔데! 이 별장은 우리 어머님께서 우리에게 사주신 신혼 별장이고 부동산 소유증 위에도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나도 알 권리가 있어. 둘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내 남편이 몰래 여기로 널 데려온 것으로 보면 너희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야?”조윤은 이윤정이 이씨 가문에서 쫓겨난 이유를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이윤정에게 죄를 덮어씌웠다.이윤정은 입이 열 개라도 해명하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억울하다고 누군가의 음모에 말려든 것이라고 울부짖을 뿐 감히 다른 말은 내뱉지 못했다.이런 모습은 오히려 사람들이 조윤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했고 이윤정을 보는 눈빛에는 혐오와 비난이 물들게만 했다.어떤 사람들은 이씨 가문의 예전 집사였던 이윤정의 친아버지가 나쁜 심보로 딸을 바꾸는 바람에 진정한 이씨 가문의 후계자인 이윤미가 고생하고 구박받으면서 자랐다고 여겼다. 하여 그 집사의 근본적인 인성부터 나쁘다고 비난했고 따라서 이윤정도 그 집사의 핏줄을 이어받아 아무리 이씨 가문에서 자랐다고 해도 환경과 상관없이 그 유전자가 나쁘다고 수군댔다.뿌리에서부터 상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이윤정은 악랄한 표정으로 과거 그녀의 비위를 맞추던 조윤 일행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이제 만족해? 당신들은 날 무너뜨리고 싶어서 날 당신들의 계략에 빠지게 한 거지? 당신들이 진범이지?”사건이 일어난 뒤로 이윤정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약을 타서 자신을 모함한 사람이 바로 조윤 일행이라고 추측했다.정군호의 술은 정일범이 준 술이고 가져왔을 때 이미 반병밖에 남지 않았다.그럼 정일범이 아니라면 분명 조윤일 것이다.조윤은 차가운 웃음을 날렸다.“윤정아,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울어도 소리쳐도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 엄청 화나지? 얼마 전에 우리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 안
예전에는 우아하고 오만하던 이씨 가문의 후계자였던 이윤정은 지금은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강아지처럼 어디로 가나 사람들에게 쫓겨나고 욕만 먹었다.“윤정이는요?“조윤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뒤 정원에서 그네에 앉아 계세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저대로 한참을 앉아 계세요.”김숙자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조윤 일행은 기세등등하게 뒤 정원으로 걸어갔다.김숙자는 정일범에게 알릴지 말지 고민하다가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 남편에게 알렸다. 그녀의 남편도 정일범에게 알릴지 말지 고민했다.결국, 두 사람은 정일범에게 전화를 걸었다.“큰 도련님, 큰사모님께서 둘째 사모님과 셋째 사모님과 함께 여기로 와서 다짜고짜 둘째 아가씨가 여기에 머물고 계시는지 물어보셨어요. 지금은 뒤 정원으로 둘째 아가씨 찾으러 가셨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요. 큰 도련님, 얼른 돌아오세요.”정일범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어떻게 아셨대요? 지금 바로 돌아갈게요.”조윤은 지금 이윤정을 무척 원망하고 있어서 과거의 감정이 사라진 지 오래다. 만약 정일범이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이윤정은 아마 조윤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김여희와 박수아도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정일범은 두 남동생도 불러 함께 별장에 갔다.김숙자 부부는 정일범과의 통화를 마친 뒤로 밖으로 나갔는데 이윤정의 울부짖음과 욕설 소리를 들었다. 물론 욕설 퍼붓는 사람들은 조윤 일행이었다.김숙자 부부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서둘러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대로 달려갔다.조윤 일행과 이윤정의 소리가 너무 컸는지 이웃들은 울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내밀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밖으로 걸어 나왔다. 걷다 보니 결국 정일범 별장 입구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역시 남의 가십거리를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인가 보다.이윤정이 아무리 오만하고 조윤 일행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고 해도 그녀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이윤정은 조윤에게 머리채까지 잡혀 비참하게 뒤 정원으로부터 앞 정원까지 끌려갔다.아파 죽을 지경이다!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