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인은 "아이는 자기가 낳고 자기가 책임져야지 시부모가 손자를 돌볼 의무는 없잖아."라고 말참견했다."맞아요, 아이는 자기가 낳고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데 서인 언니는 왜 혼자서 책임 안 지는 거죠?"주서인은 "내 부모는 좋아서 나를 도와 아이를 돌보는 거지, 아니면 너도 언니보고 엄마 아빠한테 가서 아이를 돌봐달라고 해." 라고 말했다.하예정은 주서인 앞에 있는 물을 들고 바로 주서인의 얼굴에 뿌렸다."아! 하예정, 뭐 하는 거야!""입이 너무 더럽고 독해서 씻어주는 건데요?"하예정은 차갑게 두 모녀를 째려보았다.주서인은 화가 나서 손을 대려고 했지만, 주씨 집안 어머니에게 말렸다. 그러고는 "예진의 부모님은 이미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어, 심술궂은 말을 했으니 예정이도 화가 날 만하지." 라고 했다."그래도 내 얼굴에 물을 끼얹으면 안 되지, 옷도 다 젖었고, 하예정, 내 옷이 얼마인지 알아? 배상할 수 있겠니?"심효진은 옆에서 힘껏 바닥을 쓸고 있다가 마침내 기회를 잡아 끼어들었다. "이 옷이 진짜면 몇십만 원 되겠지만, 아쉽게도 그쪽이 입은 것은 가짜라서 값도 안 돼요. 혹시 20만 원 넘게 이 옷을 쌌다면 사기당한 것인데,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 않았다면 기껏해야 몇만 원밖에 안 들어요."주서인은 굳은 얼굴로 심효진을 가리키며 "그쪽이 뭘 알아요? 그쪽이야말로 가짜 입은 거 아니에요? 이건 진짜예요, 20만 원이나 넘는 옷을 그쪽이 입을 자격이 있습니까? 못 입으면 질투해서 가짜라고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심효진은 "흥!" 하고 "제 옷은 아무거나 한 벌에 몇십만 원 들고요, 명품이면 몇백만 원 드는데, 그쪽 옷은 우리 집에서 겨우 식탁을 닦는 행주뿐이에요." 라고 했다."너......"주서인은 열이 나서 낯빛이 퍼렇게 되었다.몇만 원 주고 산 게 맞아서 마음도 좀 허술하기도 했다. 이 브랜드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찾아보면, 옷이 모두 몇십만 원 씩 파는데, 자기도 이것이 진짜라는 보장이 없었다."하예정."주서인은 소리를
"물론 서인 언니가 남편의 노예처럼 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어요, 하지만 나 하예정의 언니는 노예가 아닙니다, 요즘은 남녀가 평등하고 부부가 평등한 시대이니, 누구도 누구보다 귀하지 않습니다.""당신은 참고 견디는 것은 당신의 선택이고요, 근데 우리 언니한테는 참고 견디라고 하지 마세요.""싸우는 일은 주홍인이 먼저 손을 댔고, 우리 언니를 죽도록 때렸으니까 우리 언니도 살려고 저항한 것이에요. 그니까 정당방위라고요! 우리 언니한테 사과받으려는 것은 불가능해요. 돌아가서 주홍인보고 우리 언니에게 사과하라고 설득하는 게 오히려 맞지 않나요?"하예정은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사돈에게 미움을 살까봐 하는 두려운 기색도 전혀 없었다. "당신들이 우리 언니가 돈을 벌지 않고 돈만 쓴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언니를 돌려보내도 좋아요. 근데 손은 대지 말라고요. 당신들은 당신의 아이들을 아끼는 만큼, 나도 언니를 아낀다고요.""그리고 그날 언니가 하루에 20만 원 넘은 옷을 산 것은 맞아요. 그것도 제 남편을 데리고 식구를 만나야 해서 언니가 체면을 차리기 위해 언니 가족 모두에게 새 옷을 산 겁니다. 혼자에게만 쓴 것이 아니라고요. 이 일로 우리 언니가 집안 망해 먹는다고 여겨서는 안 되죠.""우리 언니가 시집간 후 오랫동안 새 옷도 못 사 입고, 이번에 딱 한 번 옷 샀다고 너무 몰아붙이는 거 아니에요? 당신 주씨 집안은 진짜 너무 너그러우시다, 며느리에게까지 너그러워서 현판을 선물하고 싶을 정도예요."주씨 집안 모녀는 하예정의 말에 낯 가렵다가 어두워졌다가 하였는데, 물론 어두운 표정들이 많았다.그녀들은 항상 자신들이 옳고 하예진은 틀렸다고 생각한다."언니가 하루 밥을 안 했다고 주홍인이 아내 없는 것과 같다고 하고, 반대로 우리 언니도 남편이 있는 것이 없는 것과 같잖아요. 아내 자식도 못 키우는데 무슨 결혼을 해요? 당신들과 평생 살지.""그리고 우리 언니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주머니, 따님 집에서 이것저것 다해주시는데 집
"너도 우리처럼 걔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으리라 생각해. 결혼하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것도 금방 화해되니까 너무 많이 따지지 말자.""주형인은 다리가 부러졌나요, 아니면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르나요? 꼭 우리 언니가 데리러 가야 해요?"언니더러 주씨 집안에 가서 주형인를 데려오라고 하면, 분명 주씨 가족들한테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데려오라는 것은 먼저 고개를 숙이라는 뜻이기에 하예정은 절대로 언니가 사과하는 일을 일어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오고 싫으면 계속 부모님 집에서 살든가.언니가 오히려 더 편하지."애가 왜 이래 고집이니?"주씨 집안 어머니는 화가 나서 하예정한테 한 소리를 했다."어차피 형인이 집에 안 들어가면 네 언니 생활비도 안 줄 테니까 각오해. 네 언니가 스스로 먹여 살릴 수 있다면 평생 우리 집안에 들어오지 마."그러고는 주씨 집안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나갔다."너희 자매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주씨 집안 어머니는 입구까지 가서도 고개를 돌려 한마디 했다.하예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참고 또 참아 물건을 부수지 않았다.언니는 참으로 시집을 잘 못 갔다.사람들은 여자가 시집을 가면 남자의 인품을 봐야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집안 상황도 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예정아, 너도 정말 성격이 좋구나, 나라면 진작에 빗자루로 쳤을 텐데, 진짜 너무 화가 난다, 이렇게 얄미운 사람도 처음 봐, 네 고향 친척과 비슷하겠어."심효진은 옆에서 들으면서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그녀들이 손을 대지 않으면 나도 손대기 힘들고, 입만 놀리면 난 지지 않아. 이런 얄미운 사람들과 화를 내면, 내 몸만 상하지. 효진아, 넌 아직 결혼 안 했으니까, 앞으로 눈을 크게 뜨고 남자와 그의 집안을 잘 보아야 해, 시집 잘 못 간 것은 정말 평생 후회할 일이야."언니는 결국에 사람을 잘 못 본 것이었다.지금 하예정이 바라는 것은 언니가 빨리 결단을 내려서 주형인과 이혼하는 것이다.언니의 상황을
"언니한테 잘 얘기할게, 더 이상 이렇게 괴롭힘당하면 안 돼."언니가 수입이 없어서 항상 불리한 상황에 부닥쳐 왔다."아니면 언니를 우리 가게에서 일하게 하자, 내가 언니의 월급을 줄게, 넌 그 돈을 내지 않아도 돼, 그러면 우빈이도 돌볼 수 있고, 일거양득이잖아."심효진은 진심으로 하예진을 돕고 싶었다.하예정은 "언니 안 올 거야, 내가 인터넷 쇼핑몰을 열어서 알바로 돈을 좀 벌 수 있다고 우리 가게 돈 벌지 못한다고 생각해." 라고 한숨을 쉬었다.사실 하예정네 가게의 수익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다만 언니가 하예정의 돈을 벌기 싫다고 버텼으니 설득할 수 없었다."예진 언니는 예전에 재무 관련 일을 했으니까, 진우한테 김씨 그룹에서 사람 구하는지 물어봐서 예진 언니를 들여보내자, 우리 고모부 회사도 전씨 그룹과 성씨 그룹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꽤 큰 그룹이야, 복지도 아주 좋아.""진우가 있으면 예진 언니도 잘 지낼 수 있어. 게다가 예진 언니 예전의 직장에서 오래 일했으니까, 경험도 많으실 거야."하예정은 생각해 보고 "그래도 돼? 언니가 직장을 떠난 지 3년이 넘었고, 몇 년 동안 사회와 단절되어 다시 직장에 복귀하는 것은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아. 진우는 금방 김씨 회사에 들어가서, 아무래도 우리 언니를 들여보내기가 어렵지 않을까?""주말에 진우 밥 사준다고 했잖아, 그때 걔한테 가서 할 수 있는지 물어봐, 안된다면 내가 직접 고모부한테 갈게."김씨 그룹은 지금 효진의 고모부가 도맡고 있다."그래, 언니를 위해 진우한테 물어볼게, 효진아, 고마워.""고맙긴,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난 네 언니를 내 친언니로 대하고 있어, 예진 언니가 지금 사는 걸 보면서, 나도 마음이 아파, 그래서 도와주고 싶고 빨리 강해지게 하고 싶어, 여자는 역시 능력이 있어야 해, 너무 남자에게 의지하면 안 돼."하예진의 결혼에서 심효진은 깊게 깨달았다.비록 효진은 돈도 많고, 집안 형편과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겠지만, 더더욱 남자에게 매달려 살지는 않을
전태윤은 휴대전화 너머로 습관적으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그 사람들 갔어? 과분한 일을 하지 않았지?" 하며 물었다."지나친 일은 하지 않았고, 심한 말은 많이 해서 화가 나서 때릴 뻔했어요. 고향 친척들과 겨룰 수 있을 정도로 얄미워요. 말끝마다 모두 우리 언니 탓이니, 우리 언니 잘못이니 하면서, 우리 언니보고 후한 선물을 준비해서 주형인에게 가서 사죄하래요, 아놔."주씨 집안 모녀에 대해 언급하자 하예정은 화가 나서 전화에서 투덜거리고 나니 또 쑥스러워하며 전태윤에게 "태운 씨, 내가 너무 화가 나서, 입 단속을 못 했네요, 죄송해요." 라고 말했다."그 사람들한테 막장 욕 안 했어? 빗자루로 내쫓아야지, 가정 폭력을 해놓고 사과하라고 하다니.""당연히 말문이 막히도록 갈구었죠. 그러더니 뻘쭘해서 도망갔어요, 효진이는 빗자루까지 가져왔어요, 나는 우리가 매너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참고 빗자루로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어요."전태윤은 웃고 싶었다.하예정은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언니의 미래를 위해 언니가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참아주고 힘들어했다."형부는 어느 회사에서 근무해요?"전태윤은 그쪽 회사의 사장에게 인사하고 저형인을 잘 '보살펴'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전태윤이 그쪽 회사의 대표를 알고 있는 전제하에서."주형인이 다니는 전자회사는 주로 각종 전자제품의 부품을 생산하는데, 규모가 매우 크고, 3천여 명의 직원이 있어요. 언니와 주형인은 모두 졸업 후 그 회사에 들어갔고, 언니는 원래 재무 담당이었고, 결혼 전에 재무 담당 이사까지 승진했어요.""언니는 너무 순진해서 주형인만 믿고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임신을 준비하다가 아이를 낳았고, 또 아이를 돌보고, 직장을 떠난 지 3년이 넘었는데, 주형인은 오히려 계속 위로 올라갔고, 지금은 이미 회사 사장이고, 비서까지 있어요.""태운 씨, 주형인 회사 사람을 알아요?""......아니요, 근데 들어는 봤어요."전씨 그룹 계열사 중 한 곳은 각종 전자제품
전태윤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하예정을 위로하였다.비록 그는 위에서 내려 보는 입장이지만 고용 기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처형은 3년 넘게 사회와 단절된 데다, 경험이 있다고 해도 지금은 생소해져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일하는 중이에요? 바쁜 것 같으니 먼저 끊을게요."알겠다고 말한 전태윤은 하예정이 전화를 끊길 기다리고 있었다.남편과의 통화를 마친 하예정은 이내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언니와의 앞으로의 일에 대해 세세히 계획했다. 그렇게 통화는 언니가 식사 준비를 하겠다고 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고, 통화를 끝내자 핸드폰 배터리가 다 닳아 하예정은 충전을 하였다.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전태윤은 관성 호텔 매니저한테 전화를 걸어 2인분의 점심을 주문하며, 다른 음식도 몇 가지 주문해 관성중학교 입구에 있는 서점으로 보내달라고 했다.그건 하예정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가게엔 심효진이 있고, 두 사람은 절친이니 전태윤은 1인분을 더 보태 심효진의 몫까지 챙겼다. 심효진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면, 어쩌면 하예정의 앞에서 그의 좋은 말을 해줄지도 모르지 않은가.호텔 매니저는 전태윤은 주문에 매우 의아했지만, 감히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진행했다.그래서 점심시간에 일을 마친 하예정은 남편의 맛있는 외조을 받게 된 것이다.관성 호텔 매니저는 직접 운전하여 2인분의 점심을 서점으로 배달했다. 그가 도착했을때, 서점엔 몇몇 학생들이 자료를 보고 있었고, 하예정은 전화로 배달을 부르려는 참이였다.매니저가 큰 바구니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본 하예정과 심효진은 어리둥절해 하며 바라봤다."실례합니다, 어느 분이 하예정씨입니까?"매니저는 예의 바르게 물었다.그의 시선이 하예정에게 머물렀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의 예감엔 눈앞에 있는 여자가 하예정씨 같았다."전데요, 누구세요?"대답을 한 하예정은 반문하며 상대방의 신분을 물었다. 상대가 누군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큰 바구니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은 매니저는
어쩌면 얼마 뒤면, 진짜 부부가 되어 다정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낼지도 몰랐다.정신을 차린 하예정은 서둘러 매니저에게 감사하다고 말한 뒤, 매니저를 밖까지 배웅했다. 그리고 매니저가 차를 타고 떠나고 나서야 돌아서서 가게로 들어갔다.음식이 2인분이니 심효진과 같이 먹으라고 보낸 게 분명했다.하예정이 가게로 돌아왔을 때, 심효진은 이미 손을 씻고 카운터 앞에 앉아있었다. 그는 친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얼른 와서 먹어, 관성 호텔은 무려 7성급 호텔이야. 전에 그곳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했을 때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집에 가서도 생각날 정도였다니까.""다 네 덕분이야."심효진이 젓가락을 하예정에게 건네면서 웃는 얼굴로 전태윤을 칭찬했다. "태윤 씨는 어쩜 이렇게 다정해? 점심을 대신 보내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분명 네가 배달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서 보낸 게 확실해.""예정아, 태윤 씨도 가만 보면 참 좋은 사람이야. 너를 믿지 못해서 반년 짜리 계약서를 쓰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계약서를 찢어버리고 너와 진짜 부부가 되려고 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한번 잘 생각해 봐."하예정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밥 한 끼 사준 것뿐인데, 그 새 홀랑 넘어갔어? 나와 태윤 씨는 사이가 나쁘지 않아. 지금 상황에서, 우리 둘 모두 더 이상 가까워질 생각은 없어.""내가 밥 한 끼에 넘어가는 쉬운 여자로 보여? 게다가 내 절친을 너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는 무조건 네 편이야. 네 형부와 비교해 보고도 태윤 씨가 별로라고 할 수 있어?"하예정과 심효진이 밥을 먹으면서 남자 얘기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 토론을 펼쳤다."형부도 언니한테 아주 잘해 줬어. 우빈이가 태어난 후에야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지."사람은 모두 변하기 마련이다.하예정은 전태윤과 부부로 지낸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뭐 얼마나 잘 알겠는가? 그녀는 아직도 전태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고, 두 사람은 서로한테 자기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
그 말에 대표들은 놀라 소정남에게 물어봤다. "소 비서, 전 대표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혹시 어느 집안사람인지 아는가?"전태윤과 같은 무뚝뚝한 양반이 여자를 좋아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쉿, 비밀로 해주세요. 아니면 대표님이 또 저한테 입이 가볍다고 뭐라 할지도 몰라요. 사랑까지는 아니고, 아직은 그저 관심이 있는 정도예요. 나중에 진짜 사랑하게 된다면 대표님 성격상 바로 말씀하실 겁니다."공개하게 되면 성소현 같은 열성 팬은 더 이상 전태윤을 졸졸 쫓아 다니지 않을 것이다.대표들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대표들은 전 대표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큰 수확이었다. 심지어 시집갈 나이인 딸이 하나 있는 대표 한 명은 자신의 딸과 전 대표를 이어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앞으로 전 대표 회사와 비지니스 회의를 할 때 자기 딸과 동행하면 전 대표가 딸을 맘에 들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전 대표는 그 관심 있는 여자와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지 않은가.충분히 공정한 경쟁할 수 있다는 뜻이다.전태윤은 자기의 오른팔이 본인을 팔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밖에서 아내의 전화를 받고는 기분이 좋아져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물론 아내에게 말을 할 때는 평소처럼 낮은 목소리로 정색하며 물어봤다. "무슨 일이 있어?""별거 아니에요, 그냥 전화하고 싶었어요. 점심시간이라 자고 있었어요? 제가 깨운 거예요?"지금쯤 점심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챈 하예정은 자신이 전태윤을 깨운 건 아닌지 걱정했다."아직 식사 중이야."그 말에 수긍하듯 대답한 하예정은 이내 물었다. "이렇게 늦게 먹는다고요? 바쁜 거 아는데 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해요, 끼니 거르면 위에 안 좋다고요.""응, 그럴게."관심받는게 처음은 아니지만 하예정의 걱정 어린 말을 들으니 마음에 온기가 느껴졌다."저기, 태윤 씨, 점심 너무 고마워요. 요리도 너무 맛있고 과일도 되게 신선하더라고요. 역시 고급 호텔의 서비스는 진짜 최고인 것 같아요."전태윤은 평소와 같은
전태윤은 큰 손으로 그녀의 손등을 덮으며 말했다.“얼굴만 비추고 대략 30분 정도 머물렀다가 바로 자리를 뜨자. 당신은 술 마시지 말고 그 여자들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 가장 좋은 건 내 옆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는 거야.”“그럼 태윤 씨 말대로 30분만 머물러요. 하지만 당신 옆에 딱 붙어 있을 필요는 없어요. 내가 있는 곳엔 사람들이 알아서 몇 미터씩 떨어지니까요.”모두가 그녀가 전태윤이 애지중지하는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겨우 임신에 성공한 그녀의 아이는 매우 귀한 존재였다. 그래서 누구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실수로 넘어지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들이 연루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하예정은 이 상황이 과도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관성 상류층 사람들은 그녀와 거리를 유지하며 아기를 낳고 나서야 모임에 나오라고 권했다.전태윤이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그 사람들이 현명한 거야. 거리를 유지하는 게 나아.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데 간접흡연을 많이 하면 좋을 게 없잖아.”하예정이 임신한 후, 전태윤은 그녀를 사교 모임에 데려가지 않았다. 간접흡연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서였다.“그럼 그냥 안 갈게요. 아기를 낳고 나서 당신이랑 모임에 나가죠 뭐. 사실 그 여자가 누군지 저랑은 아무 관계도 없잖아요. 낯익다고 느끼긴 했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만난 적이 있어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누군지 떠오르지 않는 거겠죠.”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직도 서로 모르는 걸 보면 전에도 잘 안 맞았을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친구가 되었겠지.”하예정은 많은 귀부인들과 잘 맞지 않았고 그들과는 가볍게 인사만 나누는 정도였다. 그녀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아예 관심도 없었고 그들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사실 전태윤도 아내가 사교 모임에 가지 않는 것을 더 바랐다. 만약 그녀가 참석하면 그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시간을 보낼 동안 옆에서 지켜야 했다. 그러
“그놈이 후회할 날이 올 거야! 분명 내가 친누나인데 이복누나인 여운초를 믿다니!”여운별은 속으로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한편, 하예정은 방금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젊은 주부가 정교한 인피 가면을 쓴 여운별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사실 하예정은 여운별과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했다. 변장한 여운별의 체형이 어딘가 낯익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하예정의 친한 지인 범위에는 여운별이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익숙하고도 차분한 발소리가 들리자 하예정은 서점 밖으로 나갔다.“태윤 씨!”하예정은 환한 미소를 띠며 남편을 향해 걸어갔다. 전태윤은 눈웃음을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여보, 보고 싶었어.”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하예정이 작게 말했다.“다들 보고 있잖아요. 매일 보는데 뭐가 그렇게 보고 싶다고 그래요.”전태윤과 함께 온 경호원 한 명이 봉투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봉투 안에는 포장된 음식이 들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서점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건넸다.전태윤이 직접 아내를 데리러 왔기 때문에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서점에 남아 가게를 봐주기로 했고 음식을 준비한 것도 직원들이 서점에서 식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전태윤은 아내의 손을 잡고 차로 향하며 물었다.“피곤하지 않아?”“안 피곤해요. 저 그렇게 약하고 여리지 않아요.”하예정은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사람답게 단호히 말했다.전태윤은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웃었다.“그럼, 우리 아내가 얼마나 강하고 대단한데.”“말만 번지르르하네요.”전태윤은 그녀를 차에 태웠다. 하예정이 올라타자 그도 따라 탔고 문을 닫은 뒤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그는 아내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장난스레 말했다.“그럼 벌로 뽀뽀 한 번 해줘야겠네.”하예정이 그를 살짝 밀어내며 작게 말했다.“사람들이 웃어요.”“아참. 방금 당신 오기 10분 전
용태호는 여운별에게 약속했다.만약 예씨 가문 사모님의 양자가 자신들이 찾고 있는 사람임이 확인되어 그 아이를 데려오게 되면 여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여운별에게 넘기겠다고 했다.뿐만 아니라 전씨 가문의 큰 며느리도 여운별에게 맡기겠으니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그러나 용태호는 자신이 뱉은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이 끝난 후 여운별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지만 그녀는 용태호가 자신을 위해 전씨 가문과 소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것이라고 허황한 꿈을 꾸고 있었다.경호원들 또한 용태호의 진짜 속내를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운별을 감시하고 돕는 역할만 맡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그녀가 꿈을 꿀 수 있도록 놔두는 것이 그들한테는 최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운별은 용 사장을 위해 일할 동기를 잃을 게 뻔했다.여운별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알겠어요. 하지만 왜 저한테 이렇게 냉정하고 무정하게 대하는 거죠? 사람들 앞에서는 저를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할 거 아니에요.”경호원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그녀에게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마치 관리인처럼 그녀를 철저히 통제했다. 그들은 싸움에도 능했고 여운별은 그들과의 대결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한 번은 그녀가 용태호에게 그들에 대해 고자질했지만 용태호는 그녀에게 경호원들을 화나게 하지 말라고만 조언했다.“그들은 무식하고 자비를 모르는 자들이야. 손에 피를 묻혀본 경험도 많지.”이 말에 겁이 난 여운별은 다시는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경호원 중 한 명이 냉정하게 말했다.“오늘 당신은 새로운 얼굴로 하예정 씨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제 여운별의 신분으로 돌아가 언니를 다시 한번 도발하세요. 그들이 여운별의 소식을 놓치면 곧바로 사장님의 부인 신분을 의심할 겁니다.”여운별이 실종된 상태에서 낯선 용씨 가문의 사모님이 갑작스레 나타난다면 두 사람을 연결 지으려는 의심이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여운별은 경호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
전태윤의 차량 행렬이 지나가자 여운별은 급히 좌석에 몸을 낮추어 바깥에서 그녀를 볼 수 없도록 했다.사실 전태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이 컸지만 여운별은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상대방이 자신을 알아볼까, 자신이 저지른 일이 들통날까 걱정했다.하예정이 그녀를 감옥에 보낸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방심해 하예정의 무술 실력을 몰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하예정 뒤에 전태윤이라는 강력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이다.지금은 여운별 역시 용 사장을 등에 업었지만 전태윤의 전용 차량을 보기만 하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숨고 싶어 했다.전태윤의 차량이 지나가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이 고개를 돌려 의자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여운별을 발견했다. 바깥에서 보면 마치 뒷좌석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지금 뭐 하는 겁니까?”경호원이 불만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여운별은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몰래 살폈다. 전태윤의 차량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안도하며 자세를 바로 세우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급히 몸을 숨기느라 옷이 약간 구겨졌는데 모두 명품 옷이라 그녀는 저절로 조심스럽게 다뤘다.“방금 지나간 차들, 누구 차인지 아세요? 그 롤스로이스는 전태윤이 자주 사용하는 차량이에요. 뒤따라온 차량들은 그의 경호팀 차량이고요. 그의 경호팀은 항상 그를 따라다녀요.”여운별은 긴장한 얼굴로 설명했다.전태윤이 경호팀을 대동하는 이유는 과거 그의 열렬한 팬들이 과도하게 따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결혼 후에도 그는 경호팀을 유지했는데 이는 젊은 여성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아내의 오해를 사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특히 과거 도차연 사건은 전태윤과 하예정에게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전태윤과 도 대표가 사업을 논의하면서 도차연에게 접근할 기회를 줬고 하예정의 자리를 넘보고 있던 도차연은 전태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남자를 찾아 애정 행각이 담긴 사진을 찍어 하예정에게 보냈다.경호원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자신의 얼굴을 만져
“사장님께서는 아가씨에게 더 많이 배우고 자신의 능력을 키우라고 하셨습니다. 성격도 고치고 온화하며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귀부인의 태도를 갖추라고 하셨죠. 예전처럼 오만하고 거칠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류층 귀부인들 사이로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경호원의 말에 여운별은 입을 삐죽이며 불만을 드러냈다.“당신들은 그 귀부인들이 오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실 그 여자들도 꽤 오만한 점이 있어요. 당신들이 직접 만나보지 못했을 뿐이죠.”“우리 여씨 가문도 명문가라고요. 나는 단지 나이가 어리고 성격이 좀 강해서 그렇지 품위가 없는 건 아니에요. 나도 품위를 지킬 줄 알아요. 예전 내 사교계에도 다 명문가의 딸들과 부잣집 아가씨들뿐이었죠.”비록 여운별의 어머니가 형부와 재혼하며 사교계에서 좋은 평판을 받지 못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가문의 둘째 딸로서 그녀가 관성의 상류층에서 차지한 지위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여운별은 자신이 성소현 같은 이들과는 비교될 수 없더라도, 많은 부잣집 딸들보다 훨씬 낫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그녀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고 자신의 기품과 교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지금은 스무 살로 한창 꽃다운 시기였다. 조금 오만하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큰 문제냐는 태도를 유지했다.“아가씨, 지금은 관성에 있으니 더 이상 여씨 가문의 부잣집 아가씨 행실을 하면 안 됩니다. 이를 꼭 명심하세요. 만약 사장님께서 지시하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정체가 드러난다면 매우 끔찍한 결과를 맞게 될 것입니다. 사장님은 성격이 별로 좋지 않으시거든요.”경호원의 경고는 이어졌다.“게다가 사모님의 수완도 뛰어나십니다. 사장님이 직접 나서지 않고 사모님께 아가씨를 넘기시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생길 겁니다. 사모님은 당신이 어느 명문의 딸인지 개의치 않으십니다. 당신의 목숨은 사모님의 한마디에 달려 있죠.”이 말을 들은 여운별의 얼굴이 굳
“우리 가게에는 유아용 교재가 없어서요. 다른 문구 방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예정의 서점은 중학교 앞에 위치해 주 고객층이 중학생이었고 유치원용 책은 들여놓지 않았다.“아, 그렇군요. 그럼 잠시 후 다른 문구 방에 가봐야겠어요.”젊은 여자는 책값을 지불하고 책을 들고 나가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가게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하예정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아마도 전태윤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을 때 스치듯 본 적이 있을지 몰랐지만 깊이 알지는 못해 기억나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잠시 후 태윤 씨한테 물어봐야겠다. 어떤 가문일까? 장남은 결혼했고 작은아들은 중학생이고 막내딸은 유치원이라니...’젊은 여자는 스물한두 살쯤으로 보였고 남편도 젊을 가능성이 컸다. 하예정은 임신 전 상류층 모임에 자주 참석했지만 어느 집안 자제가 그렇게 일찍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그녀가 아는 젊은 여자들은 대체로 그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방금 본 여자가 속한 가문은 아직 명문으로 자리 잡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여자의 차는 근처에 주차된 흰색 BMW7 시리즈였다. 차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두 남자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그녀의 경호원과 운전기사인 듯했다.“출발하죠.”여자는 차에 올라 운전사에게 지시했다. 차가 멀리 떠난 후, 그녀는 가게 쪽을 돌아보았다. 하예정이 더 이상 자신을 보지 못할 거리라고 판단한 순간, 여자는 얼굴을 만지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 젊은 여자는 바로 여씨 가문의 둘째 딸, 여운별이었다. 그녀는 현재 용태호의 스폰녀로 지내고 있었지만 사교계에서는 용씨 가문 사모님을 사칭하며 활동 중이었다. 이는 용태호가 모든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였다.여운별은 용태호가 준 인피가면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임무는 하예정에게 접근해 친구가 된 후 용정이라는
“저도 마음이 놓이네요. 엄마, 윤하가 아직 소 대표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은 거 맞죠? 제가 대신 받아주고 싶네요. 소씨네 식구들 성격이 다들 시원시원해서 우리 윤하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윤하도 덜렁덜렁 거리는게 저 집안과 바이브가 맞아요.”윤하 어머니는 혁진에게 말했다. “네 동생 일생의 큰 일이야. 우리가 잘 체크해주고 나머지는 윤하한테 맡겨야지. 지훈한테 시집가는 사람도 윤하도 한평생 같이 살 사람도 윤하 자신이니까 걔가 좋아야 되지. 그리고 윤하 다음은 너랑 혁주야. 너희 둘도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엄마, 저 쌀 씻으러 갈게요.” 윤하 어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혼 잔소리를 했고 혁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그런 혁진을 보고 어머니는 몇 마디 나무랐다.연성의 겨울은 눈 내린 광경을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관성은 아직도 최고 기온이 25도나 되는 여름이어서 길거리에는 반팔티를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하예정은 서점에서 남편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관성 호텔에 가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그녀는 이제 더 이상 공예품을 만들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도 전에 그녀를 도왔던 아기엄마한테 양도했다.지금은 서점에서 일하고 있고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면 조금 바빠질 뿐, 다른 시간에는 아주 한가해서 옆 가게 탐방도 자주 하곤 했다. 비록 경호원들이 뒤따르지는 않지만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심효진은 소설을 좋아해서 그녀가 서점을 지키고 있을 때는 하루 종일 앉아 소설을 읽곤 했다.하예정은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고전 작품 한 권을 골라 읽었지만 자꾸만 하품이 나와 결국 읽기를 포기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를 지나 책장 앞에 다가가 먼지털이로 책우의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사실 먼지가 별로 없었지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할 일을 찾아야 했다.그때, 밖으로부터 또깍또깍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처음 보는 젊은 부인이 서점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에르메스 백을 들고 있었고
혁진은 거실에서 지훈이 부모님이랑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지훈이 아버지는 성격이 아주 호탕한 분이셨다. 혁진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두 사람은 말이 잘 통했다.지훈이 마침 아침밥을 들고나오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을 기세였다.지훈이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몇 번이나 눈치를 주었다.이 양반이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까먹은 거 아니야?여기는 윤하네 집, 예비 사돈댁이라고. 혁진은 예비 며느리 친오빠고, 두 사람이 형제를 맺으면 나중에 아들더러 어떻게 처신하라는 거야. 아주 그냥 엉망진창이네.“아버지, 어머니, 윤하 씨 어머님께서 아침을 준비해 주셨어요. 따뜻할 때 드세요. 저희는 이미 먹었어요.”지훈은 부모님을 주방으로 불렀다. “점심은 여기서 먹어요. 조금 있다가 윤하 씨랑 제가 장 봐 올게요.”지훈이 어머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아, 나도 나가서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싶어. 지훈이 아버지, 당신도 같이 가요. 짐도 들어줄 겸.”남편의 의견을 물어보는 듯했지만 사실상 답정너였다. 집에 두고 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장 보고 돌아올 땐 이미 혁진이랑 형제를 맺었을지도 모른다.“그래요.”지훈이 아버지는 흔쾌히 대답했다.윤하 어머니는 주방에서 나오며 민망한 듯 말했다. “두 분께서 오시는 줄을 몰라서 제대로 준비 못 했어요. 점심에는 뭘 드시고 싶으세요? 말만 하세요, 제가 다 할 수 있어요. 가족이라 생각하고 편히 말씀하세요. 내외할 것 없어요.”지훈이 어머니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저희 안 그래요. 이제는 가족이나 마찬가진데요. 저희는 뭐든 잘 먹어요. 아무거나 다 돼요.”“사돈, 윤하는 정말 훌륭한 아가씨예요. 저희 지훈이랑은 비교가 안 돼요. 지훈이 때문에 저희 두 사람 속 많이 태웠어요.”지훈이 어머니는 실수도 사돈이라고 불렀지만 윤하 어머니는 개의치 않았다. “과찬이세요. 저희 윤하도 속 썩일 때가 많았어요. 지훈이야말로 성숙하고 성격도 온화하고 너그럽고 유망한 청년이죠. 저희 윤하보다 훨씬 나은 걸
원래부터 지훈을 마음에 들어 하던 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특별한 사정을 알고 나서 더욱 자신의 사윗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윤하와 결혼을 하게 되면 지훈은 그녀를 더욱 소중히 아낄 것이 분명했기에 윤하 어머니는 딸이 멀리 관성에 시집가서 마음고생할 거라는 걱정이 사라졌다.윤하와 어머니는 주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지훈이 부모님을 대접할 아침을 준비했다.지훈도 주방으로 들어와 일손을 도왔다.“지훈 씨, 안 도와줘도 돼요. 가서 부모님이랑 얘기 나눠요.”윤하는 지훈을 밀어냈다.“부모님이 저더러 도와주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저를 또 저쪽으로 보내시면 어떻해요? 누구 장단에 맞춰야 해요? 아차! 아버님이랑 큰형님이 안 보이시는데 아직 주무시나요? 아니면 도장에 일찍 나가셨어요?”지훈은 그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물어보았다. 아까는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두 사람 볼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공항에 갔어. 이쯤 되면 아마 비행기에 올랐을 거야.”윤하 어머니가 대답했다.지훈은 별생각 없었다. 고백도 했고 부모님도 인사하러 오셨고 지금은 그저 윤하의 답변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사실 지훈도 내심 많이 긴장됐다.그도 윤하가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옷도 사주고 고백 후에 도망치지도 않았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윤하가 명확히 대답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거절할 수도 있기에 두려웠다.윤하가 설령 거절한다고 해도 지훈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질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평생 그 한 사람한테만 마음을 줄 그런 사람이었다. “어머님, 준비 많이 하시지 마세요. 두 분 간단히 요기하면 돼요. 제가 이따가 두 분 호텔로 모셔다드릴 거예요. 거기서 식사하시면 돼요.”“귀한 손님들이 멀리서 오셨는데 점심은 내가 대접해야지. 외식할까 아니면 집에서 먹을까?”윤하 어머니는 물었다.“집에서 먹으면 윤하랑 혁진이는 오늘 도장 나가지 말고 장 좀 봐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