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빈이야말로 그들의 친손자이다.셋방으로 돌아온 그 둘은 아들과 며느리가 한참 TV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아빠, 엄마, 우빈이는요?”일어나 부모님을 맞이하던 주형인은 아들이 보이지 않자 물었다.그러자 서현주도 같이 다가와 물었다.“작은 방 다 치우고, 어린이 방으로 꾸며놨어요. 그리고 우빈에게 줄 새 장난감도 많이 사놨는데, 우빈이는요? ”그녀는 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로부터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투명 백과 쪽지 한 장을 받았다. 그 여자는 투명 백에 들어있는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머니의 것이라며, 빨리 계획대로 우빈을 동물원이나 어린이 공원 같은 사람이 많은 곳으로 데려갈 것을 요구했다.만약 그 여자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그녀 어머니의 손가락 두 개를 잘라서 보내겠다고 한다.쪽지 내용을 보고 매우 놀란 서현주는 시부모님이 우빈을 데려오기를 고이 바랐지만, 결국 그녀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이제 계획은 어떡하지?’주경진과 김은희는 소파에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예진이가 따로 막지는 않았지만, 우빈에게 물어보고 우리와 함께 가려거든 그때 데려가라고 하더라. 우빈이가 우릴 따라올 리 있나.”뒤따라 소파에 앉은 주형인은 엄마의 말을 듣고 말했다.“그러게 예전에 왜 외손자만 이뻐한 거야? 친손자도 좀 봐주고 할 거지. 우빈이 지금 우리랑 서먹서먹하잖아.”“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넌 아빠의 책임을 다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 우빈이는 아빠인 너와도 친하지 않은데... ”속으로 화를 억누르며 입을 다물고 있던 주경진은 아들이 원망하자 결국 터져버렸다. 아빠가 화를 내자 주형인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그럼 이제 어떡하죠?”서현주가 묻자 김은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앞으로 자주 가 봐야지 어쩌겠어. 우빈인 아직 어려서 천천히 정 쌓으면 돼. 그리고 너도, 앞으로 형인이가 우빈이 보러 가면 헛된 생각을 하지 말고 잠자코 있어. 형인인 아들을 보러 간 것이지, 예진이를 보러 간 게 아니니까. 항상 질투하지 말고
서현주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 문을 소리 내어 닫았다.“자기야! 자기야!”주형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불렀다.“됐어, 신경 쓰지 마. 현주는 네가 예진이랑 만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야. 너랑 예진이 단둘이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 함께 가겠다는데 질투는 무슨. 자기도 예진에게서 널 빼앗은 거면서.”김은희는 새 며느리가 아주 눈에 거슬렸다. 전에는 자기 아들이 인기가 많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서현주가 내연녀라는 생각에 꼴 보기 싫었다.주씨네 가족은 내일 점심에 하예진 모자와 함께 동물원에 놀러 가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봄나들이에 아주 적합한 날씨이니.한편, 하예정 부부도 언니 집에서 잠시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다.가는 길에 하예정은 남편에게 말했다.“예전에도 주씨네는 입으로만 우빈이를 귀여워했지 돌봐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우빈인 언니 혼자서 피땀 흘려가며 키워온 거예요. 그래가지고 지금 와서 우빈이가 자길 따라갔으면 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언니가 산후조리 할 때도 옆엔 나밖에 없었거든요, 그때 난 너무 피곤해서 한 달에 살이 3킬로나 빠진 거 있죠.”언니가 산후조리 할 때 하예정은 언니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잘 누워 쉬라고 했다. 그녀는 음식도 언니 앞에까지 가져다줬고,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도맡아 했었다.그 보름 동안, 아직 갓난아이였던 우빈은 때로는 밤새도록 울기도 했다.주형인은 출근하여야 한다면서 아예 객실에 가서 잤고, 우빈이 때문에 언니가 잘 쉬지 못할까 봐 걱정된 그녀는 혼자 아이를 안고 달래다 아이가 잠들어서야 잠시나마 쉴 수 있었다.그때 언니는 주형인더러 시어머니에게 부탁하여 우빈을 좀 돌봐줄 수 없냐고 물었는데, 그는 자기 엄마는 임정한을 돌봐야 하기에 우빈이까지 돌볼 수는 없다고, 하예정이 언니와 조카를 돌보면 될 거라고 했다.“주씨네는 지금 우빈이가 자기 집 식구들보다 나와 더 친하다고 질투하고
“무슨 일로 찾아왔냐고 물어봐.”한밤중에 심심해서 차를 몰고 달려와 길을 막은 건 아닐 테니.강일구는 도어를 내리고 이리로 걸어오는 노동명에게 물었다.“노 대표님, 여긴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태윤이 차에 있죠? 태윤아! 나 한동안 너희 집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아. 캐리어도 가지고 왔어. 하지만 박 집사 아저씨께서 이건 너하고 상의해야 한다면서 날 들여보내주지 않아. 그래서 여기서 내내 널 기다리고 있었어.”전태윤은 듣자마자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만약 오랫동안 사귀어 온 친구가 아니었다면, 운전기사에게 앞에서 길을 막고 있는 차를 날려버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똑같이 그 말에 많이 놀란 하예정은, 남편의 얼굴이 어둡게 변한 것을 보고 대신 노동명에게 물었다.“동명 씨, 혹시 무슨 일로 우리 집에...”“끈질기게 따라붙는 여자를 만났어요. 내 명의로 된 집이 어디 있는지도 잘 알고 있어 내가 어디로 가든 계속 찾아오네요. 너무 짜증 나서 어쩔 수 없이 염치를 무릅쓰고 찾아온 거예요.”노동명이 말하고 있는 여자는 바로 손은경이었다.손은경은 윤미라가 마음속으로 찜한 최고의 며느릿감이다. 그리고 모처럼 아들의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것도 개의치 않는 여자다. 그래서 윤미라는 최선을 다해 아들과 손은경을 이어 주기로 결심했다.아들이 본가로 돌아오지 않으려 하자 윤미라는 손은경을 데리고 아들 소유의 별장으로 찾아갔다.그녀는 아들의 명의로 된 부동산이 어느 곳에 있는지 낱낱이 알고 있다.더는 피할 수 없자 노동명은 전태윤을 방패로 삼아 옷 몇 벌을 대충 챙기고는 캐리어를 끌고 이리고 찾아왔다.평소 너무 세심한 스타일이 아닌 노동명도 자신이 이렇게 찾아오면 친구의 부부생활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지금 전태윤만이 그를 도와 손은경을 막아줄 수 있다. 소정남마저도 그럴 능력이 없다.만약 소정남이 대신 막아줄 수 있다면... 노동명은 진작에 찾아갔을 것이다.소정남이 그의 생각을 알아챘다면 참 다행이라고 한숨을 돌렸을 것이다.하예정
전태윤은 비록 몇몇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들 부부가 자주 사는 집은 바로 이 별장과 발렌시아 아파트이다.하필이면 이 두 집이 회사에서 가장 가까워서 출퇴근이 편리하다.길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노동명은 염치없이 이곳으로 찾아와서 전태윤과 함께 한동안 살 생각을 했다.“태윤아, 이 로맨틱한 배치들은 다 네 아이디어야?”노동명은 어두운 얼굴의 전태윤을 보며 말을 이었다.“정말 예쁘게 꾸몄는데? 프러포즈 현장 같아. 아니 결혼 현장 같아. 앞으로 예정 씨와 결혼식 올릴 때도 이렇게 꾸미면 다른 여자들이 막 질투할 거야.”전태윤은 퉁명스럽게 말했다.“내 아이디어가 아니면 네 아이디어겠냐?”“난 이 방면엔 신경이 무뎌 이런 방법을 생각해 여자를 즐겁게 할 재간이 없어.”“네가 무딘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넌 돈밖에 받을 줄 모르잖아.”“어? 내가 무슨 돈을 받았다고 그래?”전태윤은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노동명이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해 있을 때 하예정이 두 남자에게 물 한 잔씩 따라주고는 과일을 준비하러 가려 했다.전태윤은 마누라를 못 가게 막더니 자기 옆에 앉혔다.“여보,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동명인 여기 자주 와 당신보다 이 별장에 더 익숙해. 먹고 싶은 게 있거든 자기 절로 가지러 갈 거야.”“네, 네, 맞아요. 그러니 예정 씨도 그만 않아 쉬어요.”그는 자신을 봤을 때부터 줄곧 어두운 표정인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감히 하예정에게 이것저것 가져오라고 할 엄두가 안 났다.“어떻게 된 거야? 그 아가씨 아직 떠나지 않았어?”전태윤이 차가운 얼굴로 친구에게 물었다.“응. 그리고 또 얼마나 더 머물지 몰라. 우리 엄마 이번엔 정말 마음에 드나 봐. 계속 전화 와서 같이 쇼핑하라지, 밥 사주라지... 일이 바쁘다고 둘러댔는데 엄마가 그 아가씨를 데리고 내 별장에 찾아올 줄이야. 그렇다고 엄마를 쫓아낼 수도 없고. 떠날 생각이 없어 보여 그냥 내가 먼저 떠났어.”노동명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그는 아마도 자
“미안하다.”“미안하면 호텔에 묵던가.”“그냥 한번 해본 소리야. 내가 네 집에 처음 묵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도 나랑 정남이가 술을 많이 마셨거나 밤이 너무 깊으면 모두 너희 집에 묵었잖아. ”“...”전태윤은 와이프를 일으키며 차갑게 말했다.“넌 안방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객실에 가서 쉬기나 해.”그리고 하예정의 손을 잡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안방으로 돌아온 전태윤은 찌뿌둥해서 말했다.“언제부터 우리 집이 동명이 녀석의 피난처가 된 거지?”하예정은 부드럽게 웃으며 타일렀다. “동명 씨도 궁지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며칠 묵으러 온 걸 거예요. 당신들은 오랜 친구잖아요.”“그게 아니라 일부러 날 방패막이로 삼은 것 같아. 그 여자가 자기한테 관심이 있다는 걸 똑똑히 알면서 어쩜 우빈에게 옷 몇 벌 사주고 처형한테 옷 산 돈을 돌려받을 수 있지?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도통 모르겠네.”하예정은 남편을 부드럽게 껴안았다. 그녀의 적극적인 포옹에 전태윤의 불평하는 목소리도 점차 줄어들었다.“아마도 동명 씨는 정말 우빈이가 좋은 거지 언니에게는 다른 뜻이 없을지도 몰라요.”그들은 모두 노동명과 하예진 사이에 남녀 간의 감정이 있다고 생각했다.“예정아, 한 남자가 아무 이유 없이 여자에게 잘해주지는 않거든. 그런 행동엔 분명 다른 의도가 숨어있을 거야.”“동명 씨가 우빈이에게 아주 잘해주긴 해요.”전태윤은 그저 웃기만 했다.할머니는 진작 노동명을 떠보셨다.노동명은 아직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거나, 아니면 시치미를 떼고 있는 건데, 전태윤은 전자가 맞을 거로 생각했다.그는 자신이 하예진에게 잘해주는 이유가 우빈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우빈을 정말 좋아하니까.“노씨 사모님은 분명 문벌이 맞는 집안의 아가씨를 며느릿감으로 고르려 할 거예요. 설사 노 대표가 우리 언니에게 마음이 있다 해도... 난 동명 씨가 언니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니도 지금 재혼할 마음이 없고요, 설령 재혼한대도 그 상대가 동명
“그렇게 생각하지 마. 처형은 점점 더 행복해질 거야.”전태윤은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하긴요, 아직 결정된 일도 아니고... 당신 말대로 동명 씨는 매우 주견이 있는 사람이니 자기 인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만약 우리 언니에게 마음이 움직이면, 우리 언니 행복하게 해주겠죠?”“응, 우린 그저 천천히 지켜보기만 하면 돼. 당신은 지금 생각이 너무 많아.”전태윤은 옷을 건네주며 말했다.“여보, 얼른 씻어.”옷을 건네받은 하예정은 남편의 잘생긴 얼굴에 뽀뽀하고 샤워를 하러 갔다.30분 후.부부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나눴다.“여보, 언제쯤 나랑 같이 연회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아?”전태윤이 물었다.“같이 참석해야 할 연회가 있나요?”이모를 따라 몇 차례 연회에 참석한 후, 그녀는 자신감이 커졌다. 주로 전태윤이 든든한 뒷배가 돼주었다.이제 남편이랑 연회에 참석해도 주눅 들지 않을 거다. 적어도 킬힐을 신고도 여성스럽게 걸을 수 있게 됐다.이모는 그녀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 숨기는 거 하나 없이 모조리 다 가르쳐줬다.성소현은 줄곧 이 방면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배우려 하는 조카딸이 나타나자, 이모는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경험을 모두 전수해 주려 한다.성씨네 사모님은 두 조카딸이 우수하면서도 강한 여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자기 딸은 출신이 좋고, 아버지와 형도 지켜주고 있어 노력하지 않아도 아무도 감히 괴롭히지 못하지만, 두 조카딸은 다르다. 열심히 배우고 강해져야 다른 사람들의 진정한 존중을 받을 수 있다.“낮에는 회사 일로 바빠, 당신도 바쁠 테니 당신의 낮 시간을 뺏지 않을게. 만약 저녁에 가야 할 연회가 있으면 같이 가줘.”남자들끼리 비즈니스 얘기할 때 아내를 데리고 가기 적합하지 않은 장소도 있다. 그는 그런 장소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데리고 갈 생각이 없었다.“네, 알겠어요. 필요할 때 언제든지 말해줘요. 인제 전씨 가문의 미래 안방마님이 등장할 때도 됐죠.
“마누라가 있는 남자는 당연히 다르지. 네가 조리한 스테이크는 너 혼자 먹지만, 내가 조리한 스테이크는 우리 부부가 함께 나눠 먹으며 향수할 수 있어. 사랑하는 마누라가 내가 조리한 스테이크를 먹는 걸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일이거든. 물론 이런 행복을 너 같은 싱글은 못 느끼겠지만. 너 혼자 산해진미를 먹은들 맛있을 것 같아? 하지만 부부가 같이 먹으면 맨밥에 김치라도 맛있는 거야.”“너 참 잘도 말한다. 마치 우리처럼 요리할 줄 모르는 남자는 나중에 행복을 얻지 못할 것처럼 말이야. 나는 너처럼 요리 솜씨는 없지만, 요리 솜씨가 아주 좋은 아내를 찾아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으면 돼.”“그러면 마누라 말고 밥하는 도우미를 찾아.”말문이 막힌 노동명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스테이크 나도 하나 줘.”“저절로 만들어 먹어. 이참에 배울 겸 경험도 쌓고 좋잖아. 나중에 네 마누라에게 스테이크를 조리해 주면 아주 즐겁고 맛있게 먹을 거야.”노동명은 입을 삐죽거렸다.“손님에게 그게 할 소리냐?”“요청받지도 않고 불쑥 찾아온 방해꾼이지 손님은 아니지. 직접 만들어 먹기 싫으면 요리사에게 부탁해. 일단 내가 다 조리하고 나서 부엌을 비우면 그때 다시 요리사에게 아침 식사를 준비해 달라면 돼.”전태윤이 부엌을 차지하고 있을 때 요리사는 한창 마당에서 원예사와 허풍을 떨고 있었다.“그래, 그래, 나절로 할게. 내가 먹을 거 하나 못 만들 줄 알았어? 나 칼 좀 굴린 사람이야. 예전에, 밖에서 빈둥거릴 때 뭘 안 배웠겠어?”예전에 노동명은 조직의 선배에게 음식을 만들어 준 경험이 있다.전태윤은 사랑하는 마누라에게 영양가 있는 아침 식사를 차려준 후, 또 마당에 가서 왕성하게 핀 장미꽃들을 잘라 아름다운 꽃다발을 묶었다.그는 꽃다발을 마누라가 앉을 자리에 가져다 놓은 후 위층으로 올라가 마누라를 깨웠다.노동명은 전태윤이 하예정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을 지켜보며 몰래 사진을 찍어 절친 소정남에게 보냈다.「정남아, 너도 보고 좀 배워.」「네가 배워야 하는 거
아침 8시, 하예진의 토스트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서성이던 노동명은 결국 차에서 내려 몇 걸음 걸어가다가 불현듯 무언가가 생각난 듯 다시 돌아와 차 뒷좌석에서 작은 박스 하나를 꺼냈다.그 박스 안에는 블록 세트가 들어 있었다.우빈을 좋아하는 노동명은 많은 장난감을 사서 차에 놓아두었다. 가게에 들어가 우빈을 볼 때마다 장난감을 선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가게에 찾아가는 것은 하예진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빈을 좋아해서 간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그는 우빈이가 선물한 바람개비를 싫증 내는 바람에 방법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노동명은 그 블록 박스를 들고 가게로 들어갔다.“노 대표님, 좋은 아침이에요.”하예진이 노동명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이전 메뉴 그대로 드실래요?”“응, 그대로 줘.”친구 집에서 아침을 먹었지만, 오전에 많은 일을 하려면 좀 지나 배가 고플 것 같아서 하예진네 가게에서 좀 더 먹어두어야 한다.“우빈아.”노동명은 우빈이가 카운터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다가가서 그 블록을 건네주었다.“우빈아, 이건 아저씨가 오늘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동명 아저씨한테서 선물을 받는 것에 익숙한 우빈이는 블록을 받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열어 봐, 아저씨가 같이 놀아줄게.”우빈이가 박스를 열고 안에 있는 블록 부품을 쏟아냈는데 로봇이었다. 현재 우빈의 나이에 이런 블록을 가지고 노는 것은 매우 어려운 편이었다.하지만 블록을 좋아하는 우빈은 하루 종일 놀아도 싫증 내지 않을지도.사실 노동명이 고난도 블록을 우빈에게 선물한 것은 자기 나름의 타산이 있었다. 우빈의 현재 나이로는 스스로 조립을 완성할 수 없으니 함께 놀 핑곗거리가 생긴 거다. 우빈을 도와 블록을 맞추면서 감정도 키울 수 있고. 그러면 우빈이도 동명 아저씨가 점점 더 좋아져 아저씨에게 고분고분 안길지도 모른다.“노 대표님, 우빈에게 장난감이 많은데 자꾸 사주지 마세요. 장난감 가게를 열어도 되겠어요.”하예진은 손님에게 주
하예진이 말을 건넸다.“제 생각에는 사모님 세 분이 꾸민 음모일 가능성이 커요. 어떻게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그냥 우리의 추측일 뿐이에요. 대체 누가 진범인지 우리가 알 필요 없는걸요. 아마 그 진범의 실체를 드러내놓지도 않을걸요.”이은화는 기필코 이 일이 알려지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미처 진실을 가릴 겨를이 없었다.나중에 이은화가 정신을 차리게 되면 바로 처리 할 것이다.현장을 본 몇몇 친척들도 빨리 도망가긴 했지만 사실 도망갈 수 없다. 이은화가 조사하기만 하면 누가 위층으로 올라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내일 이은화가 가장 먼저 그녀를 찾아갈 것이라고 여겼다.그녀에게 외부에 소문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할 것이고 누가 꾸민 짓인지도 직접 조사할 것이다.나중에 조윤 일행이 이혼을 당했는지, 집에서 쫓겨났는지 눈여겨보면 바로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윤정 씨는 조만간 이씨 가문을 떠나야 할 것 같네요.”고현이 한마디 했다.고현은 이윤정을 매우 싫어했다.이윤정이 그녀를 연모하고 매달리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이윤정을 처음 본 순간부터 싫어했다.이윤정이 그녀를 사랑하든 말든 상관없었다.“정군호도 좋은 결과는 없을 거예요. 요즘 일어난 일들에 관해 이 대표님이 어찌 용서할 수 있겠어요? 설령 정군호 씨도 계략에 걸렸을지라도 이 대표님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조만간 이씨 가문의 상황도 많이 변할 것 같네요.”펑!갑자기 큰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고현은 하던 말을 멈추었다.고현과 하예진은 고개를 돌렸다.고현의 경호원들의 차를 뒤따르던 검은 차가 대형 화물차에 의해 추돌당한 것이었다!화물차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그 검은 차는 경호원들의 차에 부딪혀 반대편 도로로 넘어지면서 네 바퀴가 하늘을 향했다.“차 세워!”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운전기사는 급히 속도를 줄여 길가에 차를 세웠다.모든 차량이 길가에 차를 멈추었다.그 화물차도 멈췄다. 화물차 운전기사는 큰 문제는
“윤정 씨가 올려간 요리에 문제가 생겼는데 누가 꾸몄을까요? 윤정 씨인가요? 아니면 이모할아버지인가요? 누가 손을 쓰든 간에 그 계략은 참으로 악랄하고 지독하네요!”하예진은 말을 마치고 한참을 생각해보더니 스스로를 비방하며 계속해서 말했다.“그 사람들과 비교하면 저는 독하지도 악랄하지도 않네요.”만약 가주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이런 수단을 써야 한다면 하예진은 결코 해내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차라리 이은화의 자리를 이윤미에게 양보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현은 깊이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그 두 사람은 아닐 거예요. 이 대표님도 아닐 거고, 우리는 더더욱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연회 기간 내내 이은화의 시선 안에서 움직였어요. 이씨 가문의 친척들은 그럴 용기가 더더욱 없을 거고요. 윤미 씨의 담으로 보면 그럴 가능성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윤미 씨에 대해 알고 있는 바로는 그녀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계신 분이에요. 이런 비열한 수단으로 윤정 씨를 상대하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어쨌든 정군호 씨는 윤미 씨의 친아버지인걸요.”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저도 윤미 씨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윤미 씨와 접촉한 적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그분은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만약 윤미 씨가 그런 비열한 수단을 쓰고 싶었으면 진작에 썼을 것이라고 믿어요. 오늘 밤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잖아요.”“맞아요. 이씨 가문의 몇몇 친척들도 그 장면을 목격했어요. 그들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뛰쳐나갔지만, 이모할머니께서 분노에 휩싸이는 바람에 그 사람들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분들도 이모할머니께서 자신을 기억하고 보복하는 게 두려워서 뛰쳐나갔을 거예요.”하예진은 그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했다.고현도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 대표님의 성격은 모질어요. 집안의 추악함을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 그 몇몇 사람들이 똑똑히 보지 못했다면 살길이 있을 텐데. 만약 누군지 똑똑히 보았다면 아마도 목숨이 위
이씨 가문의 집사 진숙녀는 위층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모르는 눈치였다.이은화가 자리에 없기에 진숙녀는 이은화 대신 손님을 문밖까지 배웅하고 있었다.진숙녀는 하예진의 말을 이은화에게 전하겠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하예진은 고현의 차에 탔고 그녀의 경호원들은 고현의 경호원들은 몇 대의 차 안에 비집어 들어가 앉았고 하예진의 차는 이씨 가문의 경호원들을 운전하게 하여 그녀를 뒤따라 가게 했다.지금 이 시각, 전호영도 하예진이 너무 부러웠지만 질투할 때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일단 이씨 가문 저택을 떠나려고 했다.방금 위층에서 본 장면도 전호영이 제아무리 뻔뻔하고 견식이 넓다고 해도 그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일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그들이 위층으로 올라갈 때 그 두 사람은 침대에서 여전히 바쁘게 운동하고 있었다.차가 이씨 가문의 저택을 떠난 후, 고현은 비로소 궁금해하면서 하예진에게 물었다.“언니와 호영 씨가 위층으로 올라가서 대체 무엇을 보셨어요? 이 대표님 남편분에게 또 무슨 사고라고 생긴 거예요?”하예진이 대답했다.“네, 사고 났어요. 그것도 엄청나게 큰 사고요. 오늘 밤에 이씨 가문으로 올 때도 조용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했지만 그토록 자극적인 장면을 볼 줄은 몰랐어요.”그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하예진의 본능적인 반응은 눈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몸을 돌리는 것이었다.하예진은 지금 생각해보니 정상적인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정군호는 이은화의 남편으로서 얼마 전에 바람을 피우다가 이은화에게 잡혀 폭행까지 당해 오늘의 연회에도 감히 참석하지 못했다.겨우 며칠 지나지 않아 났는데 정군호가 또 바람을 피웠다.그것도 바람피우는 상대가 이윤정이었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옛날 집사의 딸이다. 그녀와 이윤미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은화 부부는 진실도 모른 채 줄곧 이윤정을 친딸로 여기며 키웠다.정군호가 아무리 파렴치해도 이윤정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 둘은 침대에서 함께 운동했다.하예진은 두 사람이
조윤이 넘어진 모습을 본 정일범은 다가가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조윤은 정일범의 손을 덥석 잡더니 놀라면서 말했다.“여보, 얼른 가서 아버님과 윤정이를 보세요. 두 사람... 두 사람이... 차마 말을 못 꺼내겠어요. 얼른 가서 직접 보세요.”그 말을 들은 정일범은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몸을 돌려 위층으로 달려갔다.정일범 형제와 이윤미도 뒤를 따라 올라갔다.결국, 이은화도 올라갔다.원래 떠나려던 하예진 일행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위층을 바라보고 있었다.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조윤을 저렇게 놀라게 했단 말인가!“형수님, 아버님과 윤정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김여희와 박수아 조윤을 둘러싸고 궁금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조윤의 얼굴이 붉어지며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하다가 급기야 김여희 일행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다.순간 김여희와 박수아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재빨리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그 좋은 연극을 그녀들은 놓칠 수 없었다.곧 위층에서 이씨 가문 사람들의 고함과 물건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이 순간, 이씨 가문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예진 일행도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무슨 일이 생겼는지 제가 올라가 볼게요. 혹시 도울 일이라도 있는지.”전호영은 뻔뻔스럽게 도와주러 간다는 핑계로 이씨 가문의 몇몇 사람들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 보았다.하예진도 이씨 가문의 일원으로서 위층으로 올라가 그녀의 관심을 표현하고자 전호영의 뒤를 따라갔다.5분도 채 안 되어 전호영이 쏜살같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그와 함께 올라갔던 가문의 사람들도 함께 당황한 표정으로 내려왔다.전호영은 고현을 끌고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예진 누나, 우리 얼른 가요.”하예진은 난처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오더니 곧장 집 밖으로 나가면서 대답했다.“가요. 빨리 가요. 못 보겠네요.”어떤 사람들은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고 어떤 사람은 친절하게 모두에게 돌아가라고 소리쳤다.“모두 집으로 돌아가세요. 얼른요.”이 피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모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고현과 전호영이 하예진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는 점을 눈치챘다.그들은 하예진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지만, 하예진의 뒤에 서 있는 몇몇 대가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그리고 하예진의 친동생은 전씨 가문의 큰 사모님이었기에 하예진에게 투자해 줄 돈은 부족하지 않았다.하예진이 용기와 안목이 훌륭하기만 하면 자금이 부족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이은화에게 눌렸던 능력 있는 사람들은 점점 그들만의 꿍꿍이를 꾸미기 시작했다.하예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저는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뭐든지 관심이 있어요. 고 대표님, 내일 혹시 시간 되시는지요? 제가 한번 찾아뵙겠습니다.”고현이 말을 이었다.“오세요. 저야 언제든지 편하죠.”전호영은 곁에서 질투하며 말했다.“고현 씨가 우리 누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니 제가 질투 나네요. 제가 갈 때마다 고현 씨는 너무 바쁘다고 저와 말할 겨를도 없다고 하더니, 누나가 찾아간다고 하니 언제든지 편하다고 말하는 거예요?”고현은 곁눈질하며 대답했다.“저와 예진 씨가 마음이 잘 맞아서 그래요.”이윤미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저도 예진 씨랑 잘 맞는 것 같은데, 고 대표님만 괜찮으시다면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윤미 씨가 오신다면 제가 시간이 없어도 짜내야죠. 다른 사람이라면 저는 그럴 시간이 없을걸요.”이씨 가문에서 고현은 이윤미의 체면만 세워주고 싶었다.고현은 줄곧 이윤미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윤미와 고빈을 맺어주려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고빈은 이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둘러댔다.사실 그는 이윤미에게 설레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감정이라는 것은 서로가 상대방에게 설레는 느낌을 받아야 행복한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오랜 시간 끝에 사랑이 키워진다고들 하지만 누구나 다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이윤미가 웃으면서 말했다.“제 손에도 프로젝트가 있는데 저는 지금 엄청 좋게 보고 있어요
“네 엄마는 연세가 많으신데 여전히 사업에 많은 정력을 쏟아붓고 있지. 윤미한테 돈을 들여 후계자로 배양하고 계시지만 나한테만 돈을 아끼셔. 아빠도 지금 연세가 있지만 내 건강은 여전히 좋아. 하지만 그래도 나도 돈이 필요한걸. 아내로서 해야 할 책임도 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여자를 만나면 안 된다고 하셔.”정군호는 술을 마셔서 그런지, 이윤정과 두 사람만 있어서 그런지 이은화에 대한 불만을 한꺼번에 쏟아냈다.이윤정은 정군호의 괴로워하고 분노하는 표정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자리에 앉아 정군호와 함께 술 한잔했다.그녀는 마음속 깊이 여전히 정군호를 동정했다.아래층 연회는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정군호는 데릴사위라는 신분으로 수많은 남자가 범할법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위층에 숨어서 사람을 만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아래층의 모든 사람은 여전히 연회에서 식사하고 있었지만 편하게 먹지 못했다.주로 귀한 손님이 세 명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그들도 이은화가 왜 가족 연회를 벌이려는지 알 수 없었기에 현장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예진아, 그럼 무슨 사업에 투자할 거야?”이은화가 관심 있게 물었다.그러나 마음속으로 하예진의 투자 사업에 걸림돌을 던져 하예진의 사업이 싹트지 못하게 처음부터 막으려 했다.하예진이 강성에서 자리를 잡게 하면 안 되니까... 그녀가 강성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할 것이다.가문의 친척들도 하예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은화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하예진을 이용해 이은화와 싸우게 하거나 혹은 진심으로 하예진을 지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아직은 모르지만 일단 지켜봐야죠. 요즘은 사업이 잘 안 되기 때문에 항상 잘 살피고 결정해야 해요.”하예진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은화가 뭐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이은화가 말을 이었다.“맞아. 요즘 장사가 너무 어려워. 우리 이씨 그룹도 갈수록 장사가 안되고 있거든. 우리뿐만 아니라 고씨 그룹도 아마 업적이 조금 떨어졌을걸.”이은화가 말하며 고현 쳐다보았다
이윤정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은화가 입을 열었고 고현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녀가 정군호에게 위층으로 음식을 가져다 드시지 않는다면 불효녀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강성 사람들은 이씨 가문의 가족들이 이윤미보다 이윤정을 더 아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이은화가 부부가 짝퉁 딸인 이윤정을 좋아하고 친딸 이윤미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만약 이때 이윤정이 효도하지 않는다면 체면이 완전히 구겨질 것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이라는 배경으로 부잣집으로 시집가려고 했다.그녀는 할 수 없이 이은화의 지시대로 정군호에게 음식과 술을 챙겨 직접 위층으로 가져갔다.이윤정이 위층으로 올라가자 조윤은 동서들과 눈을 마주치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계속해서 밥을 먹었다.하예진은 조윤 일행이 서로 눈빛을 마주치는 장면을 보더니 그녀들이 무언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이윤정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으로 분석해보더니 아마 자신에게 덤터기를 씌우지는 않을 것으로 여겼다.하예진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윤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리고 가끔 고현과 몇 마디 나누곤 했다.고현은 외부인 앞에서 말도 별로 없이 점잖게 음식을 먹었다. 하예진은 그녀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일종의 즐거움으로 여겼다.전씨 할머니께서 선택하신 손자며느리들 전부 최고인 것으로 보면 어르신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셨다.전호영은 자주 고현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자상하게 배려해주었다.이윤정은 음식과 술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 부모님의 방문 앞에 이르렀고 손을 내어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문을 두드리면서 말했다.“아빠, 문 열어요. 저예요. 제가 음식 좀 챙겨왔어요. 아빠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으셔서 엄마가 음식 좀 가져다드리라고 하셨어요. 엄마가 가족 중에 신분과 지위가 있는 사람을 초대해서 모두 지금 식사하고 계세요.”방안에는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이윤정이가 방문을 한참을 두드려서야 방문이 열렸다.정군호는
이은화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 자식들에게 말했다.“고 대표님께서 오셨어. 나와 함께 마중하러 나가자.”전호영이 오는 것에 대해 이은화는 놀라지 않았다.하예진의 뒤에는 전씨 가문과 성씨 가문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라는 신분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긴 했으나 강성에서 전씨 가문의 세력은 고씨 가문에 미치지 못했기에 이은화는 고씨 가문을 더 중히 여겼다.이은화가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고현이 온 것을 보면 아마도 고현이 하예진의 후원자라는 것을 이은화에게 알려주기 위함일 것이다.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하예진의 강성 후원자가 바로 고씨 가문이라는 것을 암시해준 것과 다름없다.고현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이윤정은 매우 긴장해 하면서 급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평범한 옷차림을 내려다보았다. 이윤정은 오늘 밤 하예진만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예쁜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지금 위층으로 올라가서 드레스로 갈아입는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다행히 그녀의 일상 옷차림의 스타일도 참신하고 트렌디하여 단정하고 고급스러움이 돋보였다.게다가 이윤정은 젊고 예쁘며 몸매도 좋았다.예쁜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현장의 사람들을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었다.자신감이 넘친 이윤정은 이윤미를 힐끗 쳐다보더니 일어나 이은화의 곁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하면 고현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하예진은 따라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이씨 가문의 주인이 아니니 손님을 접대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짝퉁 딸 이윤정이 이윤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본 하예진의 눈은 반짝거렸다.이윤정이 고현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사실을 하예진도 전해 들은 적 있었다.고현은 이윤미에게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이윤정을 무시했다. 이는 이윤정을 화가 치밀어 오르게 했다.고현이 나중에 여성의 신분을 밝히면 이윤정은 아마 입이 떡 벌어질 것이고 가슴도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고 하예진이 마음속으로 비방했다.이은화가 자식들과 며느리를
“그럼 내가 앞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나에게 꼭 말해. 내가 실력이 막강한 것은 아니지만 인맥이 넓어 너에게 도움은 될 거야. 이번에 사업차 온 거지?”하예진이 대답했다.“그럼요. 아니면 이모할머니 생각에는 제가 무슨 일로 여기로 왔다고 생각하세요?”그녀는 이은화에게 되물었다.이은화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네가 여기로 와서 이씨 성을 바꾸러 온 줄 알았어.”“저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제 몸에 이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한 저는 이씨 가문의 후손인걸요. 제가 이씨 성으로 바꾸지 않는다고 해도 제가 전임 가주의 후손이라는 사실만은 지울 수 없어요.”하예진은 마치 두 번째 이경혜처럼 늘 이은화에게 가시 돋친 말을 했다.이경혜의 성격과 능력은 이은숙을 무척 닮았다. 하예진은 이은숙의 핏줄을 이어받은 후손으로서 이윤미와 겨룰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다.“가주님. 연회를 시작하셔도 됩니다.”이씨 가문의 집사 진숙녀가 때마침 다가와서 이은화에게 공손히 말했다.그러자 이은화가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자, 그럼 모두들 자리에 앉으세요!”이은화는 몸을 일으키며 하예진에게 말을 건넸다.“예진아, 가자. 우리도 자리에 앉자. 네 경호원은 우리 집사와 함께 밖에 나가서 기다리시라고 해. 어쨌든 우리 가문의 연회이니 우리 가족밖에 참석할 수 있거든. 내 경호원들도 밖에 있는걸.”하예진이 말하기도 전에 이은화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네 경호원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 먹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내쫓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네 경호원은 너와 함께 여기로 왔기 때문에 갈 때도 너와 함께 떠나게 될 거야.”하예진은 경호원들에게 진숙녀를 따라 나가라고 지시했다.이은화는 하예진과 함께 그녀들의 자리로 향했다.두 사람은 함께 앞에서 걸어갔고 이윤미는 말없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이윤미는 이은화가 하예진을 연회에 초대한 이유가 그녀에게 위세를 떨치거나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닐 거라고 여겼다.연회에는 수많은 눈이 지켜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