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14화

Author: 주 한잔
복문 객줏집에서.

창가에 서있던 소우희는 평서왕 저택 팻말이 걸려 있지도 않는 마차를 보자마자 주먹을 꽉 쥐었다.

저 마차에 몇 번이나 탄 적이 있기에 저 안에 누가 있는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민수에게 미인 한 명을 보내줬다는 이지윤의 말이 떠오르자 마음이 더욱 씁쓸했다.

질투가 점점 차오르자 어느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던 소우희는 이내 말을 타고 나타난 소한준을 보게 되었다.

곁에 서있던 혜주가 소우희에게 손수건을 건넸고 그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던 소우희가 말했다.

“혜주야, 네가 이렇게 말도 못하게 되니 내 고민과 고충을 함께 대화로 풀어줄 사람도 없구나.”

혜주가 입을 뻥긋거리며 손짓까지 했지만 안타깝게도 소우희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됐다. 셋째 오라버니가 돌아오셨구나. 역시 소우연 그자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복문 객줏집에는 옆방에 묵고 있는 손님 외에 이지윤이 소우희를 암암리에서 지켜주라고 보낸 호위무사 여섯 명도 있었다.

이 호위무사들은 전적으로 소우희의 명령에 따랐다.

이내 소한준의 발걸음소리가 방문 밖에서 들렸다.

똑똑똑!

“우희야, 문을 열어보거라.”

소한준은 문을 두드리며 말했고 혜주는 이내 방문을 열어주었다.

소한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방안에 들어섰다. 조금 전, 소우연을 만나러 가기 전에 평춘왕 저택에 먼저 찾아갔지만 안타깝게도 그 저택 문지기에 이어 평춘왕 세자마저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저 평춘왕이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당분간 아무도 만나지 못한다는 말만 전해 듣게 되었다.

“오라버니, 왜 그러시는 겁니까?”

소우희가 가여운 표정으로 걱정하듯 묻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혜주를 쳐다보았다.

“혜주야, 얼른 오라버니께 차 한 잔 따라 드리거라.”

고개를 끄덕인 혜주가 재빨리 차를 따랐다.

소한준과 소우희는 탁자 앞에 앉았고 이내 소한준은 오늘 소우연을 만난 사실을 소우희에게 얘기해주었다.

조용하게 듣고 있던 소우희가 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소우연은 절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15화

    겉으로 보기엔 온순하고 예의 바른 이지윤은 사실 그 누구보다 독한 사람이었다. 소우희를 도와 평춘왕을 저택에 감금한 것도 모자라 평춘왕에게 만성 독약까지 먹였는데 이런 사람이 어찌 마냥 단순하고 착하기만 하겠는가?“우희야, 그러지 말고 일단 이 오라버니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화가 잔뜩 난 소한준은 소우희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기에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정신을 번쩍 차린 소우희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지금 아버지와 둘째 오라버니는 제 말을 전혀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집에 돌아간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소우희는 소한준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그러다가 셋째 오라버니도 결국 아버지와 둘째 오라버니께서 한 말을 듣고 저를 안 믿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그럴 리가 있겠느냐?”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던 소우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에 든 손수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불안해 보였다.“하지만 소우연의 의술이 확실히 대단하긴 한 것 같더구나. 오늘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다들 소우연을 경성에서 가장 대단한 여성 의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소한준의 말에 소우희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보십시오. 오라버니께서는 저택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환자를 치료해주는 소우연만 보고 바로 저를 의심하고 계시지 않습니까?”“아니다. 난 너를 의심하는 게 아니야. 다만…”다만 소우연이 정말 의술을 할 줄 알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쳐도 오라버니께서는 잘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소우연은 지금까지 계속 저를 도와 약초를 말렸습니다. 그동안 제가 소우연에게 많은 의학 지식을 가르쳤고 그 덕분에 소우연은 의술을 조금 익히게 된 겁니다. 그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라버니…”말을 하던 소우희는 어느새 훌쩍거리더니 눈물을 왈칵 쏟았다.“오라버니도 이제 제가 진정한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16화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조금 전 그 여인이 바로 이민수가 평서왕 저택에 데려간 아령이라는 말이야?”소우연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진우의 보고에 눈이 휘둥그레졌다.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확실합니다, 왕비님. 전에 만안당에서 봤을 땐 긴가민가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람을 시켜 조사해봤는데 그 여인이 탄 마차가 평서왕 저택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마차 안에 세자 이민수도 있었습니다.”소우연은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이내 본채 앞마당에 들어선 소우연은 본채 안에 둘러봐도 이육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바로 서재로 향했다.한편, 서재 밖에 서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간석은 소우연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왕비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왕야를 찾아 뵈러 왔다.”소우연이 닫힌 서재 문을 쳐다보며 대답한 순간, 간석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서재 안에서 이육진의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오거라.”소우연 홀로 문을 열고 들어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밖을 지켰다.한편, 서재 안에서 이육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진규는 소우연을 보자마자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문이 굳게 닫히자 바로 가면을 벗은 이육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우연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다가갔다.“부인.”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던 소우연은 그런 이육진을 본 순간, 바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품에 안겼다.“왕야, 전 오늘 아령을 만났습니다.”“그래? 그럼 그자가 정말 너와 많이 닮았더냐?”이육진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자 소우연은 고개를 번쩍 들고 의아한 표정으로 이육진을 쳐다보았다.“왜?”이육진은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왕야는 그자가 저와 닮았는지 그것만 궁금하신 겁니까?”“아니, 난…”“그자는 갓을 쓰고 있어서 전 그자의 머리카락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궁금하시면 직접 만나 보시지요. 아니면 진규나 진이준 그리고 진호범에게 물어봐도 되고요.”순간, 이육진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는 그저 단순히 궁금해서 물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17화

    소우연이 주먹으로 이육진을 가볍게 툭 때리며 말했다.“전 왕야를 믿습니다. 하지만 조심한다고 해서 나쁠 게 없지 않습니까? 굳이 적과 대놓고 정면 승부할 필요는 없지요.”입술을 살짝 오므린 이육진은 소우연의 말을 조용하게 듣고 있었다. 그가 몇 년 동안 폐인처럼 산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의 세력이 약해진 건 절대 아니다.그렇지 않았다면 평서왕 부자와 이 강산을 빼앗으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너무도 불안해하는 소우연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육진은 일단 그녀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알겠다. 연이 네 말을 잘 듣는 서방이 되겠다.”서방이라는 말을 점점 자연스럽게 하는 이육진을 덕분에 소우연도 이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이육진의 얼굴을 가볍게 감싸며 말했다.“얼굴의 흉터가 전보다 더 연해졌습니다.”이육진이 감개무량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소우연이 말을 이어갔다.“아직도 폐하와 덕빈마마께 말씀을 드리지 않은 것입니까?”“아직 얘기 안 했다.”두 사람은 그렇게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한참동안 서있었다.조금 뒤, 소우연이 이육진의 손을 잡고 몇 걸음 걷다가 태연한 이육진의 표정에 그에게 물었다.“걷는 건 조금 익숙해지셨습니까?”“그래, 나쁘지 않구나.”걸음걸이를 처음 배우는 게 아니었기에 그리 불편한 데는 없었다.소우연의 손을 잡고 서재 안을 몇 바퀴 돌던 이육진은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이를 발견한 소우연이 말했다.“너무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정성껏 침을 놓을 테니 왕야는 무조건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그래.”소우연의 손을 놓은 이육진은 탁자 위에 놓인 가면을 얼굴에 쓰며 말했다.“이만 본채로 돌아가자.”소우연은 그런 이육진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이 저택에 전부 이육진의 사람들인데 얼굴도 어느 정도 회복한 마당에 왜 아직도 저택 안에서까지 가면을 쓰고 있는 걸까?“뭘 그리 보고 있느냐?”가면을 쓴 이육진은 휠체어에 앉으며 물었다.“왕야, 이 저택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18화

    정연이 질문을 하려던 그때, 소우연이 먼저 말했다.“더 물을 것 없다. 내가 시키는 대로 준비하거라.”정연은 표정이 심각한 소우연을 보며 의아했지만 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15분 뒤, 소우연과 정연은 저택 대문을 나서자마자 미리 마차를 끌고 와서 기다리고 있던 진우를 발견했다.“왕비님, 오셨습니까? 왕야께 왕비님이 운불사에 가신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까요?”진우의 물음에 소우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내가 어디에 가든 너희들은 왕야께 말씀드리지 않았느냐?”전에 이육진이 소우연의 하루 일과를 자세하게 알고 있는 걸로 봐서는 그가 소우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게 분명하다.한편, 진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저기… 왕야께서는 특별하게 중요한 일이 아니면 왕비님의 행적을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소우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운불사로 가는 길이 꽤 멀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 사소한 일도 아니기에 이육진에게 얘기를 해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그럼 사람 시켜 궁궐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왕야를 태운 마차가 나오면 그때 보고를 올리라고 하여라.”“네.”고개를 끄덕인 진우는 이내 저택 대문을 지키고 있는 호위무사에게 다가가 몇 마디 당부했다.운불사는 경성 밖에 위치했기에 마차로 가도 최소 네 시간이 걸렸다.때문에 소우연이 운불사에 도착했을 때 절 안에는 참배자가 거의 없었다.“정연아, 이 돈을 절에 기부하거라.”소우연은 정연에게 미리 준비한 돈보따리를 건넸다.“네, 알겠습니다.”진우는 본당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정연은 돈 보따리를 들고 운불사 스님을 찾아갔다.한편, 소우연은 운불사 대문 앞에 놓인 불상들에게 경건하게 인사를 올린 뒤 마지막으로 본당에 들어섰다.그녀는 기도를 하면서 절을 올렸다.‘도대체 누구지? 왜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거지?’소우연이 의아해하던 그때, 발걸음소리가 들렸다.“언니.”소우희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돌린 소우연은 미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19화

    진우는 두 사람 뒤를 조용하게 따랐다.이를 힐끔 쳐다보던 소우희가 소우연에게 말했다.“언니 호위무사가 우리를 계속 따라오고 있네?”“할 말 있으면 그냥 해.”‘진우가 따라오는 게 뭐! 이게 안전감이라는 거거든!’“이 옥패의 주인이 누구인지 언니는 정말 모르는 거야?”소우희의 물음에 소우연이 고개를 저었다.“몰라.”소우연은 옥패를 가지고 있다가 경성에 돌아가면 사람 시켜 알아보려고 했는데 그럴 새도 없이 며칠 사이에 옥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한편, 거짓말이 아닌 듯한 소우연의 대답에 소우희가 몰래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때 당시 남강에서 돌아오자마자 소우희는 사람을 시켜 옥패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였고 수소문 끝에 겨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이 옥패는 회남왕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그 말인 즉, 소우연이 구해줬던 그 소년이 바로 이육진이라는 뜻이다.만약 이육진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지금보다 소우연에게 더 잘해주겠지?그리고 오늘, 소우희는 바로 그 옥패를 이용하여 소우연을 불러냈다.“옥패는?”소우연이 묻자 소우희가 입술을 살짝 오므리며 대답했다.“나한테 있어.”“그럼 네가 훔쳐간 거네.”“훔쳐가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건 엄연히 내가 주운 거야.”‘허허… 주웠다고? 소우희 얘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뻔뻔해지네.’“옥패는 평생 못 돌려받겠네.”“언니, 언니 것이 아닌 물건을 탐내지 마.”‘내가 미쳤어? 이 옥패를 너한테 돌려줬다가 그걸 이육진이 보기라도 하면 네가 자신을 살려줬던 사람이라는 걸 알 텐데? 그럼 이육진이 너한테 더 잘해주겠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난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소우연 넌 평생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아야 돼!’이런 생각에 소우희의 웃음이 점점 더 짙어졌다.“너랑 더 이상 할 말 없어.”한 마디 남긴 소우연이 돌아서서 떠나려던 그때, 소우희가 말했다.“언니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어.”“누구?”소우연은 그자가 혹시 이 옥패의 주인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20화

    탁자 앞에 앉아있던 소한준은 주먹을 꽉 쥔 채 기고만장하게 말하는 소우연을 보며 화가 더할 나위 없이 치밀었다.예전의 소우연은 감히 소한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심지어 기세 등등하기까지 하다니!“뭐라고 하였습니까? 지금 왕비가 됐다고 친정 가족들이 눈에 뵈지도 않은 겁니까?”“그렇습니다. 장군님 아직도 그걸 눈치채지 못하셨습니까?”“왕비…”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하게 듣고 있던 소우희가 입을 삐죽 내밀며 소한준에게 고자질하듯이 말했다.“오라버니, 저 태도 좀 보십시오! 소우연에게 이제 그 어떤 말도 안 통합니다!”“우리 사이에 할 말이 있긴 해? 이제 얘기해봐. 그 옥패를 네가 가지고 있어?”소우연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소우희는 서러운 표정으로 소한준을 쳐다보았고 소한준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소우연에게 말했다.“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버지와 두 형들에게 진실을 얘기할 겁니까? 우리 가문에서 진정으로 의술을 익힌 사람은 왕비가 아니라 우희이지 않습니까!”“뭐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겁니까?”씁쓸하게 웃던 소우연은 이내 고개를 돌려 소우희를 쳐다보았다.“네가 이런 말로 소 장군을 속은 거야? 너 정말 양심이 있긴 해?”“아니야! 난 속인 적 없어! 오라버니, 소우연 좀 보십시오! 저를 죽일 듯이 째려보면서 말도 안 되는 모함을 하고 있습니다!”“말도 안 되는 모함을 하는 사람은 소우희 너잖아!”“난,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너 어떻게 날 이렇게 망가트릴 수가 있어? 내가 평춘왕 저택에 시집간 게 너와 회남와의 책임이 조금도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소우희의 뻔뻔한 태도에 소우연은 이제 밖에서도 소우희와 다정한 자매 연기를 더 이상 못할 것 같았다.그녀와 소우희는 이제 명백한 원수이다!전생의 잔인한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온 소우연은 심장이 찢어지듯 아팠다.다른 건 몰라도 전생에 소우희가 소우연에게 회남왕 저택에서 도망치라고 부추기지 않았다면 소우연은 그렇게까지 처참한 죽음을 당하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21화

    깊이 숨을 들이마신 소한준은 소우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눈빛만으로 서로의 뜻을 알았다. 결국 소한준이 소우희의 제안에 동의한 것이다.“됐으니, 일단 앉아서 차나 마시자.”소한준은 옆에 있던 의자를 가리키며 소우희와 소우연에게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소우희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지만, 둘의 시선은 모두 소우연에게 쏠렸다.소우연은 두 사람을 흘긋 바라보며 방안의 분위기가 매우 불쾌하다고 느꼈다. 만약 자신을 불러낸 사람이 소우희란 걸 알았다면 십중팔구 오지 않았을 것이다!애초에 그녀는 전에 치료해 준 그 소년이 소우희 손에 붙잡혔다고 생각했고, 소우희가 그를 미끼로 이용할까 염려되어 따라온 것이었다.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 옥패 역시 분명히 소우희의 손안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우희는 절대로 자신과 옥패 이야기를 길게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뒤돌아 걸어 나갔다.소우희는 초조해져 소한준의 어깨를 가볍게 밀며 말했다.“오라버니, 이대로는 저 정말 소우연 때문에 죽어요. 아버님, 큰 오라버니, 둘째 오라버니와 할머님까지 모두 저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할 게 분명해요…”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매우 가련한 모습이었다.소한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마침내 탁자 위의 찻잔을 들어 그대로 던졌다.찻잔이 소우연의 목덜미를 명중하자, 그녀는 몸을 한 번 떨고 곧바로 쓰러지려 했다.“왕비마마, 괜찮으십니까!”찻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는 매우 컸다. 밖에 있던 진우의 귀에도 그대로 들렸다. 검을 쥔 채 선방 문 앞에서 즉시 물었다.이때 방 안에서 하얀 옷을 입고 쓰개치마를 쓴 여인이 나와 밖을 향해 말했다.“아무 일도 없다.”진우는 소우연의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방 안에서 소한준은 하얀 옷을 입은 그 소녀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녀의 목소리가 소우연과 똑같을 수가 있단 말인가?소우희는 그의 의혹을 알아챈 듯 말했다.“오라버니,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제가 지금 소우연을 객줏집으로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22화

    진우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소인은 문밖에 있겠습니다.”“좋다.”방 안에서 소우희가 큰 소리로 말했다.“좋아요. 언니가 저랑 이야기하기 싫다면 전 좀 쉬고 있을게요. 오라버니, 언니랑 이야기 좀 해주세요.”소한준도 이에 대답했다.“알겠다. 그럼 너는 일단 쉬고 있거라.”“네, 오라버니.”소우희는 곧바로 검은 옷을 입은 호위의 도움을 받아 뒷창으로 나갔다.소한준은 하얀 옷을 입은 여인에게 말했다.“앉아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느냐?”아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와 대각선 방향으로 단정하게 앉아 작게 물었다.“이름이 무엇이냐?”“소녀는 아령이라 합니다.”소한준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아령과 간간이 말을 나누었다.밖에 있던 진우는 여전히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후, 마침 정연이 돌아와서 그에게 물었다.“왕비마마께서 아직 안에 계십니까?”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네.”“왕비마마께선 평소 소씨 가문과 사이가 좋지도 않으신데, 어찌 이렇게 오래 이야기를 나누신단 말입니까?”진우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연과 눈이 마주치며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설마 왕비마마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왕비마마…” 진우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정말 별일 없으십니까?”방 안에서 남녀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명확하진 않았다. 그래도 진우는 확실히 소우연이 소한준과 이야기하는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방 안에서 아령이 잠시 긴장한 표정을 짓더니 밖을 향해 말했다.“나는 괜찮으니 마차나 준비해라. 곧 관저로 돌아갈 것이다.”그제야 진우와 정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정연은 밖에서 기다리고, 진우는 운불사 마구간으로 마차를 가지러 갔다.소한준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아령과 함께 천천히 문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내가 배웅해주마.”아령은 소한준의 뒤를 따르며 작게 답했다.“저와 소우희는 평생 화해할 일 없을 테니 헛수고하지 마십시오.”“그래도 우리는 뼈

Latest chapter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0화

    “그 아이… 소씨 가문 전체를 증오하는 걸까.”소우연이 혼잣말처럼 중얼였다.햇살 한 줄기가 주먹만 한 감방 창을 뚫고 들어와, 소우연의 하얗고 고운 얼굴을 비췄다.그녀는 그 빛 아래서도 당당하고 우아했다.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품격과 위엄이 그녀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반면 소우희는 지푸라기 위에 쓰러진 채,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었다.가려움이 피부를 찢을 듯 파고들었고, 근육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꼴사납게 널브러진 그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간신히 기어 올라온 잔재 같았다.왜?왜 소우연만 이렇게 타고난 운명이 다른 걸까?이육진에게 시집간다 했을 때, 누구나 그녀가 끝났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멀쩡히 살아 돌아온 것도 모자라, 지금은 당당히 태자빈 자리에 앉아 있으니. 소우희는 미칠 것처럼 속이 뒤집혔다.분했다. 억울했다.온몸이 분노로 들끓었다.아직도 아령이 왜 자신을 그런 지경으로 몰았는지 알지 못했다.알았다 해도, 그걸 소우연 따위에게 말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죽는다 해도, 절대 이 여자 앞에선 입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다.소우연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됐어. 어차피 네 입에서 들을 얘기는 없을 테니까. 그럼 남은 시간, 실컷 고통을 누리도록 해.”“아아아아아아!!!”말은 알아들을 수 없어도, 무슨 말을 내뱉고 있을지 소우연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저주와 원망, 추악한 욕설…그녀에겐 이제 그것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잠시 후, 감옥 복도 끝에서 이육진이 걸어왔다.“다 정리했다. 간수들에겐 유동식을 먹이도록 했고, 의원도 붙였어. 죽을 수 없게 만들었지.”“아아악! 아아아아아악!!!”소우희는 짐승처럼 비명을 질렀다.절식으로 빨리 죽고 싶었건만, 그들은 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이육진… 그 자는 진짜 악마였다.죽을 권리조차 빼앗다니 말이다…그녀의 절규와 광기 어린 울부짖음에도 소우연과 이육진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감옥을 떠났다.그들의 뒷모습은 점점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누구든 좋아… 날 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69화

    대체 그놈 머릿속엔 뭐가 들었단 말인가.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멍청함.짐승처럼 욕망에 눈이 멀어 움직이는 꼴이라니.이래서 사람들이 그를 고자 취급하는 게지.이민수의 눈동자엔 분노가 그대로 담겨 있었고, 그 감정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아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군자는 열 번 복수해도 늦지 않습니다.’이민수는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난 마차에서 기다리겠다. 소우희를 만나고 나면 바로 나오거라.”아령이 물었다.“세자 저하는… 보지 않으실 겁니까?”그녀는 분명 이민수가 처음으로 마음 준 여인이었다.“아니.”소우연이든 소우희든.이제 소씨 가문의 피를 지닌 자라면 모두 증오스러웠다.“알겠습니다.”표정은 아쉬운 듯했지만, 속은 후련했다.애초에 그녀는 소우희를 단둘이 만나고 싶었다.……감옥 안.소우희는 지푸라기 더미 위에 축 늘어진 채 쓰러져 있었다.모기떼가 온몸을 물어뜯었고, 하룻밤 사이 그녀의 얼굴은 부어오른 자국으로 뒤덮였다.붉고, 시퍼렇고, 검붉게.부어오른 자국과 뒤틀린 상처들이 뒤엉켜 있었다.그 얼굴로 흘러나오는 끊임없는 신음 소리만 들어도, 그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소우연이 그녀 앞에 다가서자, 소우희의 눈동자가 잠시 멍해지더니 곧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채 흔들렸다.“내가 널 죽여주길 바라는 거야?”소우연의 목소리는 차가웠다.거지꼴로 누워 있는 소우희는 눈을 깜빡이며 온몸을 떨었다.이육진은 미간을 찌푸렸다.더 보고 있자니 불쾌감이 올라왔다.그는 감옥 책임자를 찾아 다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걱정 마. 넌 죽게 될 거야. 단지, 매일 매일 뼛속을 긁는 고통과 끝없는 가려움 속에서 서서히 죽어갈 뿐이지.”“아아아악!!!”죽여줘… 제발, 죽여줘…그녀에겐 지금 이 순간이 지옥보다 끔찍했다.분노도, 원한도, 혐오도…어떤 말로도 지금의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무언가를 저주하는 마음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것조차 무력했다.몸은 아팠고, 그보다 더 끔찍하게 가려웠다.그녀는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68화

    “세자 저하, 그럼 전 몸을 편히 하기 위한 약을 좀 구해오겠습니다.”아령은 이민수에게 조심스럽게 인사한 뒤, 소범준에게 직접 마차를 몰게 했다.소범준은 그 말을 듣고 목이 콱 막힌 듯했다.겉으로는 약을 구하러 간다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이지윤의 아이를 가지려는 수작이었다.마차는 한참이나 골목을 빙빙 돌았다. 누군가의 눈을 피하려는 건지, 혹은 무언가를 감추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마차는 어느 약방 앞에 멈췄다.이후 아령은 소범준에게 평서왕부의 후문까지 말을 타고 함께 가자고 했다.가는 길에 소범준은 툭 던지듯 말했다.“당신의 계략과 담대함은 웬만한 사내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오.”그 말엔 진심이 섞여 있었지만, 더 큰 비중은 냉소였다.아령이라고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사람으로 태어나 누구는 귀하게. 누구는 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나으리는 종으로 사는 삶이 만족스러우신가 보지만, 전 아닙니다. 전 어머니의 한을 꼭 풀어드려야 해요.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이들을 절대로 편히 살게 두지 않을 겁니다. 나쁜 자들이 잘사는 세상, 그게 공평한가요?”그녀는 그림처럼 단정한 얼굴을 들고 소범준을 또렷이 바라봤다.“제가 나서지 않으면, 제가 저를 위해 싸우지 않으면, 어머니의 억울함은 끝내 땅속에서 잠들고 말아요.”소범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조용히 되물었다.“나으리의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해를 입고 죽었다면, 복수하지 않으시겠어요?”여전히 침묵하는 그를 향해, 아령은 코웃음을 쳤다.“관리들은 마음껏 불을 지르면서 백성은 등불 하나 못 켜게 하는 세상, 그게 정의인가요? 여자인 제가 가진 건 이 얼굴과 몸뿐이에요. 이걸 무기로 쓰는 거죠.”말을 마친 그녀는 묵묵히 문을 두드렸다.곧 누군가 문을 열었고, 소범준은 이끌려 별당으로 들어가 차와 다과를 대접받았다.그 사이 아령은 소매 안에서 약 한 알을 꺼내 삼켰다.혹시라도 이번에도 임신에 실패한다면, 다음 달은 더욱 조급해질 게 뻔했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67화

    아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세자 저하는 아령의 유일한 사내입니다. 이 생에서 저는 오직 저하 한 사람만을 섬기겠어요. 제발… 저하께서도 제게 조금만 더 다정하실 수는 없나요?”아이 때문이라도, 이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령은 그의 속내를 읽은 듯 다시 말을 이었다.“세자 저하의 상황을 바깥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세자 저하의 아이를 가진다면… 훗날 무슨 소문이 나더라도, 그 소문을 깨뜨릴 수 있는 증거가 되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제가 어찌 이 아이를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그 순간 이민수는 문득 냉정을 되찾았다.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이 여자, 정말이지… 영리하구나.’만약 좀 더 일찍 아령과 마음을 나눴더라면, 지금처럼 궁지에 몰리진 않았을지도 모른다.“좋아. 약조하지. 너와 아이한테만큼은 잘 대해주마. 다만…”세자빈의 자리는 줄 수 없었다.아령은 고개를 끄덕였다.“전 세자 저하 곁에 있을 수만 있으면 됩니다. 이 아이의 정체도 지금 당장 밝히실 필요 없어요. 모든 게 안정된 후에 천천히 말씀하셔도 늦지 않지요.”“좋아.”그녀는 조심스레 배를 어루만졌다.하지만 이민수는 왠지 모를 의심이 들어 혜주에게 어의를 불러오라 명했다.그 순간 아령의 눈빛엔 잠시 경멸이 스쳤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듯 진맥을 받았다.“축하드립니다, 세자 저하. 회임이 맞습니다.”어의는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그간 사는 게 허무했던 이민수에게 드디어 삶의 의욕을 되찾게 해주는 일이 생긴 것이다.아령의 말처럼, 언젠가 자신이 불능이라는 소문이 퍼질 수도 있었다.그때 그녀와 그녀 뱃속의 아이는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 명분이 될 터였다.“좋다… 아주 좋아!”이민수는 크게 웃으며 상을 내렸다.그 시각, 뜰의 오동나무 위에 숨어 있던 소범준은 그 모든 대화를 또렷이 듣고 있었다.무공 수련자라 귀가 예민한 데다, 아령과 이민수의 목소리까지 컸으니 말이다.그는 속으로 몸서리쳤다.‘이 여자… 정말 무섭구나. 거짓말도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66화

    “정말 매정하네요.”소우연은 담담하게 속삭이듯 말했다.전생에 소씨 일가가 자신에게 보였던 차가운 시선이 떠올랐다.그런데 오늘을 돌아보니…그들은 여전히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소우희를 다시 데려가 치료하고 있었다.결국 소씨 일가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단지… 그녀에게만 그토록 냉정했던 것이다.애석할 따름이었다.소우희는 분명한 죄인이었고, 설령 소씨 일가가 동정을 베푼다 해도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그런 몰골로 옥에 갇힌다면, 앞으로 버틸 날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연아, 나는 그들과 같지 않아.”“나는 이육진도 아니고, 이지윤도 아니야.”이육진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혹시라도 소우연이 그 패륜들과 자신까지 함께 미워하게 될까 두려웠다.소우연은 잔잔히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다르십니다.”“정말이냐?”“네. 전 전하만은 믿고 있어요.”그녀의 믿음은 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이번 생에서 복수 외에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는 이육진이 시신을 수습해 준 은혜를 갚기 위함이기도 했다.그를 위해 죽는다 해도, 그건 감히 감사의 마음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소우희가 오늘 같은 결말을 맞이한 건, 어찌 보면 속이 시원할 지경이었다.역사가 반복된다면 이번 생에서 추락하는 건 소우희였고, 그 대상은 더 이상 그녀가 아니었다.“전하… 내일 소우희를 한번 보고 싶어요.”이육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가자.”하늘에는 노을이 붉게 퍼지고 있었다.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달은 벌써 천천히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해가 완전히 사라지자, 고요한 달빛이 뜰을 환히 비추기 시작했다.……한편.아령은 이민수의 상처를 정성껏 감싸고 있었다.그런데 무심결에 세게 닿았는지, 이민수는 화가 난 듯 그녀를 발로 걷어찼다.아령은 복부를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고통에 찬 얼굴로 이민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세자 저하, 소녀 아령은 죽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65화

    “임 어의.”소우연의 목소리가 문 앞에서 조용히 울려 퍼졌다.임 어의는 깜짝 놀라며 급히 일어나 예를 올렸다.“태자빈 마마께 문안 올립니다.”“됐네.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하지.”임 어의는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내심 긴장하면서도 소우연의 말투에 어딘가 안정감을 느꼈다.“태자 전하의 몸은 괜찮으신가? 자손을 얻는 데에 이상은 없겠지?”소우연은 조용하고 단정한 어조로 물었다.“전하께선 기력이 왕성하시고, 맥상도 아주 안정되어 있었습니다.”“그런데도 왜 아직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까.”밤낮으로 함께한 시간이 적지 않았다.이육진의 품에 안겨 숨이 넘어갈 정도였던 밤도 많았다.그런데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 도무지 알 수 없었다.자신의 몸 상태는 늘 살피고 있었다.맥으로 봐도 생식력엔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기에 더 답답했다.임 어의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지만 말을 망설이다, 결국 소우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돌려 말하지 말고 그냥 말해 보시게.”“태자빈 마마… 소신의 생각으로는 태자 전하께선 전혀 이상이 없으십니다.그리고 마마께서도 의원이시니, 본인의 상태는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요. 결국… 이건 인연이 아직 닿지 않은 탓이라 생각합니다. 너무 조급해하시지 말고, 조금 마음을 내려놓으신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소우연은 가볍게 눈썹을 찌푸렸다.“그래도 태자 전하는 훗날 황위를 이으실 분이야. 내가 태자빈인데 아이가 없으면, 사람들이 전하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임 어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덧붙였다.“실제로 부부가 모두 건강해도 너무 간절한 마음이 되려 긴장을 유발해서, 오히려 수태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소우연은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그 말은 예전 의서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막상 자신의 일이 되니 잊고 있었다.‘혹시 우리 둘 다 너무 마음을 졸인 걸까…’“다른 방법은 없을까?”임 어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길일을 택하신 뒤, 태자 전하께 며칠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64화

    “내일 임 어의를 다시 모시는 게 어떨까요?”소우연은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며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애교 섞인 말투엔 묘하게 은근한 뉘앙스도 감돌았다.이육진은 문득 지난번 일을 떠올렸다.그녀와의 내기에서 이기면, 그가 원하던 방식대로 그녀가 먼저 다가와 주기로 했던 것.그는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네가… 그때처럼 해 준다면 생각은 해 보지.”“그때처럼…?”소우연의 두 볼에 붉은 기운이 번졌다.처음만 해도, 이육진은 그렇게 대담한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요즘은 책에서 어디까지 배웠는지, 그녀를 애무하는 손길도 능숙했고.이젠 아예 그녀가 먼저 다가와 주길 바라고 있었다.“어떻느냐, 해 줄 수 있겠느냐?”이육진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묻자, 소우연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아기를 갖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게요.”이튿날 정오 무렵, 소우연은 진우를 보내 임 어의를 모셔오게 했다.마침 이육진도 막 궁으로 돌아온 참이었고, 임 어의는 이미 이당에 도착해 진맥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내가 직접 가겠다. 넌 안에서 기다리거라.”이육진은 마음이 내키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렸다.매달 태의원에서 진맥을 받고 있었고, 늘 아무 이상 없다는 말뿐이었으니.그는 간석에게 일렀다.“요즘 부인이 겉으론 안심한 듯해도 속으론 아직 풀리지 않은 게 있는 듯하구나. 창고 열쇠를 주고, 부인이 마음에 드는 걸 직접 고르게 해 줘라.”“예, 전하. 곧 전하겠습니다.”그렇게 말하고 이육진은 이당으로 향했다.임 어의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맞절했다.“태자 전하께 문안 올립니다.”이육진은 곧장 주석에 앉으며 말했다.“절은 됐다. 앉거라.”하지만 임 어의는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태자 앞에서 감히 앉는 것이 두려웠지만, 또 명을 어기는 건 더 무서웠다.결국 그는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진우의 전갈을 받았습니다. 태자빈 마마께서 진맥을 요청하셨다고 들어 이렇게 왔습니다.”“내 몸을 좀 봐주거라.”이육진은 곧장 본론으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63화

    이육진이 말했다.“진이준의 보고에 따르면, 아령이 이민수 쪽에 붙었다더구나. 혹시 네가 그 자의 물건을 망가뜨려서, 아령이 복수하러 온 건 아닐까?”“전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오후에 정연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이육진이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에 맺힌 물방울을 닦아주려 했지만, 그 손끝에도 물이 많아 오히려 그녀의 눈가를 젖게 만들었다.그 모습이 꼭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여, 소우연은 피식 웃었다.그러자 이육진은 장난스럽게 그 물방울 위에 입을 맞췄다.“솔직히 난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이민수가 자기 통방을 보내 너한테 시비 걸게 할 만큼 바보는 아닐 테고. 게다가 그런 짓은 평서왕부에 해가 될 뿐이지. 지금 그 집안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게 바로 불필요한 시선인데.”소우연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아령은 이민수 뜻으로 움직인 게 아닐 거예요. 어쩌면 그냥 자기 마음대로 왔을 수도 있죠.”그녀는 시선을 떨구고, 욕조에 떠 있는 꽃잎을 바라봤다.그중 한 장이 이상하게 물 위에 뜬 것이 아니라, 마치 허공에 맴도는 듯 떠 있었다.손을 뻗어 치우려던 순간, 남자의 그것이 눈앞에 드러났다.“전하… 정말.”그녀는 볼을 불룩 부풀리며 속상한 기색을 드러냈다.목욕 때마다 일이 생기긴 했지만, 오늘따라 더 얄밉게 느껴졌다.이육진은 기침을 한번 하며 말을 돌렸다.“오직 너와 함께할 때만… 살아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쁘고, 행복하다는 걸 느껴.”그 말에 소우연은 마음이 조금 풀린 듯, 그의 중심에 꽃잎을 덮어주며 눈을 바라봤다.“그런데 그 아이는… 멍청해 보이진 않았어요. 왜 굳이 사람 많은 만안당에서 절 찾아와 시비를 걸었을까요. 부군. 아령은 단순히 이민수가 아니라, 그냥… 저한테 적대심을 가진 것 같아요.”이육진은 고개를 갸웃했다.“하지만 소우희와 아령은 예전에 교류가 있었다 들었는데… 혹시… 소우희를 위해서?”소우연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소우희 같은 성격에, 누가 그 애를 위해 나서겠어요. 게다가 예전에 아령이 혜주를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62화

    “그게 어쨌단 말이죠?”아령은 여전히 태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소범준은 말문이 턱 막혔다.‘간도 배포도 하늘을 찌르는구나.’‘그게 어쨌다니?’‘이 일이 평서왕의 귀에 들어가면, 네 목이 꺾일 수도 있단 말이다.’‘그걸 모르고 이러는 거야?’“이 일에 대해선 단 한 글자도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소. 그러니 제발… 아내와 자식들만은… 돌려주시오.”아령은 더는 미소조차 허락하지 않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꿈 깨세요. 우린 이미 같은 배에 탔어요. 다시 돌아갈 길은 없죠. 정녕 가족의 안위를 원한다면, 내 명을 따라야 해요. 아셨습니까?”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칼날처럼 내리꽂혔다.소범준은 마치 깊은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지금까지의 모든 게 덫이었다.“만약 왕야나 세자 저하께서 이 일에 대해 추궁하신다면, 그땐 어찌할 생각이오?”아령은 조용히 웃었다.“솔직히 말씀드리자면요, 세상 사람들의 문제는 제게 아무 상관없어요. 누구도 제 인생의 짐이 되어선 안 되죠.”소범준은 그제야 이 여인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실감했다.그렇다면 이지윤은?분명 둘은 연인처럼 보였고, 남다른 정이 오가는 줄 알았는데.하지만 아령은 묵묵히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남자는 칼 드는 속도만 늦출 뿐이죠.’그가 다른 이들과는 달라도, 결국은 그냥 잠깐 마음을 줬을 뿐이었다.희고 맑던 얼굴에 스친 그 음습한 그림자.소범준은 싸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이 여자는…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의진을 마치고 돌아가는 마차 안.정연이 따뜻한 찻잔을 내밀었지만, 소우연은 손을 내저었다.잠시 머뭇거리던 정연이 조심스레 말했다.“태자빈 마마, 어깨 좀 주물러드릴까요?”“응, 부탁하마.”오늘은 이상하게 피곤했다. 하루 종일 앉아 진맥을 보느라 어깨가 뻐근했다.정연이 손끝으로 조심히 그녀의 어깨를 풀며 말을 꺼냈다.“오늘 그 아씨… 아령이라 했지요. 혹시 평서왕세자를 위해 나서신 건 아닐까요?”“흠, 글쎄.”소우연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