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칠한 키에 잘생긴 남자가 여자를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안긴 여자는 다름 아닌 에바였고 두 사람은 키스를 나누는 듯했다. 육연희가 충격받은 이유는 키스 때문이 아니라 남자의 손목에 찬 시계를 봤기 때문이었다.그 시계는 윌리엄 가문의 최고 명품으로 시가가 사백억 정도 나가는 전 세계에 딱 하나밖에 없는 시계였다.항상 윌리엄 가문의 도련님인 윌리엄 요한의 손목에 걸려 있다는 걸 사업을 하는 모든 사람이라면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물론 육연희도 시계를 찬 윌리엄 요한을 본 적이 있었다.‘그러니까, 사진에 있는 이 남자가 윌
격렬한 정사가 끝나고, 조수아는 옅게 배어나온 땀을 한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육문주는 그런 조수아를 품에 안은 채 마디가 분명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오관을 덧그렸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깊고 매혹적인 눈매에 전에 없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조수아는 몸이 혹사될대로 되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순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분 때문에 마음만은 충만했다.그러나 그녀의 정욕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육문주의 휴대폰이 울렸다.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본 조수아는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육문주의 팔을 끌어안고 있는 손에 힘이
육문주의 낯빛이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색 눈동자가 조수아에게 단단히 박혔다.“내가 결혼은 안 된다고 했잖아. 그 정도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애초에 내 제안을 거절했어야지.”조수아의 눈가에 옅은 붉은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그때는 우리 둘만의 감정이었는데 지금은 세 사람이 엮였잖아.”“걔는 너한테 위협이 안 돼.”자조 섞인 웃음이 지어졌다.“그녀의 전화 한 통에 당신이 내 생사는 상관도 안 하고 나를 내팽개치는데. 말해 봐, 문주 씨. 대체 어떻게 해야 그걸 위협이라고 쳐주는지.”육문주의 눈밑에
술잔을 쥔 육문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장이 그 순간 쿡하고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송미진이 자살시도를 했을 때 조수아가 생리통 때문에 여러번이나 전화한 걸 처음에는 받았다가 나중에는 짜증이 나서 그냥 끊어버렸던 게 생각이 났다. 설마 그것 때문에 조수아가 헤어지자고 한 건 아니겠지? 눈매를 드리운 육문주는 송학진과 허연후가 그 쓰레기 남편 흉을 보는 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끝까지 타들어간 담배가 손가락을 뜨겁게 하는데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온밤을 육문주는 마음이 뒤숭숭했다.보통 이맘때쯤 되면 조수아가 걱정스
육문주의 키스는 언제나 뿌리침을 불허할 정도로 강압적이었다. 조수아를 테이블로 밀고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은 그는 다른 한 손으로 허리를 제 쪽으로 바짝 당겼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향긋한 몸이 육문주의 모든 신경줄을 예민하게 자극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 갇힌 맹수가 나오고 싶다면서 울타리에 쉴 새없이 몸을 부딪쳤다.조수아와 함께 한 시간 동안 육문주는 잠자리 쪽으로 아주 만족스러웠었다. 그가 얼마나 원하든 조수아는 힘들어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수요에 다 맞춰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조수아는 뻣뻣하다 못해
조수아는 민첩하게 옆으로 몸을 비켜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 조금이 그녀의 발등을 덮치고 말았다. 발등이 얼얼해지는 통증에 저도 모르게 헛숨이 들이켜졌다. 고개를 들어 송미진에게 따지려던 조수아는 등 뒤에 있는 유리 선반을 향해 몸이 기우뚱거리고 있는 송미진을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그녀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송미진은 그것을 뿌리치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와장창!깨진 유리에 팔뚝이 그인 송미진이 피를 주르륵 흘렸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선혈을 뒤로하고 육문주의 싸늘한 음성이 날아왔다. “조수아, 이게 뭐하는 짓이
육문주는 잠시 의문이 담긴 눈빛을 했다가 차갑게 답했다.“목숨 안 아까우면 직접 실험해 보든지.”조수아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왜 못해봤을 거라 생각하는데? 만일 내가 얼마 전에 방금 2000CC의 피를 흘렸다고 하면, 그래도 나더러 헌혈하라고 강요할 거야?”“조수아, 억지부리지 마. 생리를 해봤자 고작 60CC의 피를 잃는 게 다야. 핑계를 대도 말이 되는 핑계를 대야지.”조수아는 쓴웃음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힌트를 줬는데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남자의 모습에 한숨만 나왔다. 만약 육문주가 자신
힘겹게 뜬 시야 안으로 익숙한 얼굴이 비쳤다.조수아는 구명줄을 잡은 사람처럼 남자의 옷깃을 꽉 붙잡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선배, 저 여기서 데리고 나가주세요.”그녀는 육문주에게 이렇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불쌍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싫었다. 다른 건 다 싫고 그저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연성빈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이 상태로 어떻게 나가겠다는 거야? 안 되겠다. 일단은 의사선생님한테 가자.”“안 돼요, 선배! 저 아까 현혈하고 나와서 잠시 어지럼증 때문에 그
훤칠한 키에 잘생긴 남자가 여자를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안긴 여자는 다름 아닌 에바였고 두 사람은 키스를 나누는 듯했다. 육연희가 충격받은 이유는 키스 때문이 아니라 남자의 손목에 찬 시계를 봤기 때문이었다.그 시계는 윌리엄 가문의 최고 명품으로 시가가 사백억 정도 나가는 전 세계에 딱 하나밖에 없는 시계였다.항상 윌리엄 가문의 도련님인 윌리엄 요한의 손목에 걸려 있다는 걸 사업을 하는 모든 사람이라면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물론 육연희도 시계를 찬 윌리엄 요한을 본 적이 있었다.‘그러니까, 사진에 있는 이 남자가 윌
“그래. 기다릴게.”30분 뒤.웨이브펌을 한 노란색 머리카락의 누군가가 에바를 찾았다.그는 손에 든 물건을 에바한테 넘기며 말했다.“나, 이거 큰돈 주고 산 거야. 그러고 보니까 이상해. 너랑 윌리엄 요한은 많은 행사에 함께 참석했었는데 왜 사진이 한 장도 없지?”에바의 눈에는 냉랭한 빛이 역력했다.“그걸 말해야 알아? 누군가 여왕 폐하가 보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서 다 없앤 거겠지.”“윌리엄 공자 사람 마음을 갖고 노네. 너랑 했던 약속은 다 잊었다는 거야? 역시 좋은 남자는 하나도 없어. 진심이라고는 전혀 없이 다 이
윌리엄 요한의 말에 머루는 고집부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 윌리엄 요한의 품에 엎드려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윌리엄 요한은 머루를 안고 수의사에게 다가갔다.머루는 수의사가 주사를 놓을 때도 짖지도 않고 조용하게 검고 반짝이는 큰 눈으로 윌리엄 요한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눈을 깜박이는 사이에 윌리엄 요한이 사라질까 봐 두렵기라도 한 듯 빤히 쳐다봤다.불쌍한 머루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 난 윌리엄 요한은 머루의 귓가에 속삭였다.“앞으로 다른 사람한테 안 보낼 거야. 엄마 아빠랑 같이 살자. 좋지?”머루는
마치 어린 소녀가 화가 나서 투정을 부리는듯한 말투로 말했다.윌리엄 요한은 화내기는커녕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물고 웃으며 말했다.“알았어. 그럼 앞으로 날 더 미워하게 만들어 줄게. 미움은 사랑이고, 미움이 깊을수록 사랑도 더 깊어지는 거야. 여보, 내 말이 맞지?”육연희는 미간을 찌푸렸다.솔직히 말하면 육연희는 윌리엄 요한에 대해 미움도 거부감도 없었다.그 싸늘한 마스크만 빼고.육연희가 장님도 아니고 감정이 없는 냉혈인도 아닌데, 윌리엄 요한이 그녀에 대한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육연희는 윌리엄 요한이 자기를 위해
강렬한 짜릿함이 가슴을 타고 온몸으로 번지자 육연희는 참지 못하고 작게 신음 소리를 냈다.육연희는 윌리엄 요한의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안으며 잠긴 목소리로 외쳤다.“윌리엄 요한.”육연희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던 윌리엄 요한은 그녀의 민감한 부위를 한 번 더 자극했다.육연희는 온몸이 욕망에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몸에 걸친 잠옷이 천천히 벗겨지고, 방안의 불도 어두워졌다.윌리엄 요한은 가면을 벗고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거침없이 입을 맞췄다.처음에는 부드럽게 입을 맞추더니 나중에는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윌리엄 요한은
하지만 다시 거론되는 지난 일에 씁쓸해진 마음이 본인조차 이해되지 않았던 육연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바로 그때, 방문이 열리자 윌리엄 요한이 송이 버섯탕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와 침대 옆에 앉았다.그는 육연희의 안색이 좋지 않자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하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연희야, 몸이 안 좋아?”육연희가 눈을 뜨자 금색 가면을 쓴 윌리엄 요한의 얼굴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검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육연희는 이불을 꽉 움켜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윌리엄.”“응. 나 여기 있어. 왜?”육연희는
말을 마친 허연후는 고개를 숙여 한지혜의 목을 깨물었다.한지혜가 임신하고 있어 허연후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으로 욕구를 만족시켰다.두 사람의 첫날밤은 아주 특별했다.다른 한편, M 국의 왕궁 안.육연희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네이버에 있는 실시간 검색어를 보고 있었다.한지혜의 결혼식이 1위를 차지하면서 배우진의 행보도 화제가 되었다.인터넷에는 배우진이 시련을 겪어 깊은 산속에 은둔하고 있다는 둥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사랑을 좇으러 갔다는 둥 별의별 소문이 다 떠돌았다.이런 헛된 소문들은 오히려 한지혜의 결혼 뉴스
한지혜와 허연후의 결혼식은 골든 호텔에서 진행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연예계 전체를 뒤흔들어 놨으며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모두를 감동하게 했다.따라서 자취를 감춘 배우진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더해졌다.연예계를 은퇴한 뒤 배우진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결혼식을 앞두고 한지혜는 배우진한테 전화도 해보고 결혼식에 참석해 달라는 카톡도 보냈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회답도 없었다.결혼식의 모든 절차가 끝나자 한지혜는 침대에 앉아 돈을 세며 격동된 목소리로 말했다.“연후 씨, 결혼 한 번에 이렇게 많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한지혜 집으로 향한 천우는 차에서 내려 짧은 다리로 마당에 뛰어들어오며 소리쳤다.“이모, 저 왔어요.”천우의 목소리에 소파에 누워 과일을 먹고 있던 한지혜는 즉시 일어나 허연후를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왜 천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죠?”허연후는 웃으며 한지혜의 얼굴을 꼬집으며 말했다.“네가 공연히 이뻐한 건 아니구나. 임신 소식을 듣고 단숨에 달려왔다고 하던데, 와이프를 낳아주지 못하면 미안해서 얼굴도 못 보겠어.”한지혜는 허연후를 밀치며 원망하는 태도로 말했다.“천우가 온다는 사실을 왜 안 알려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