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문주은 담담하게 말했다.“나 먼저 올라가서 수아랑 통화 좀 할게. 천우야, 너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배 아파.”국수 한 가락을 잡아 입에 넣던 천우는 육문주의 말에 깜짝 놀라 허겁지겁 먹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게 마지막이야.”입가에 소스를 묻힌 천우의 모습이 어리바리하면서도 귀엽게 느껴진 곽서연은 티슈로 천우의 입을 닦아주더니 웃으며 말했다.“너의 아빠 올라가셨어. 이거 먹어. 누나는 배불러서 그만 먹을래.”천우는 반짝이는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서연 누나, 나한테 음료수 한 모금만 먹게 해준다면 내가
천우의 말에 화가난 박서준은 천우의 반들반들한 아랫배를 깨물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안 하는 게 낫겠다. 그래야 내가 더 오래 살 수 있을 거 같은데.”천우는 박서준이 깨물자 깔깔 웃으며 말했다.“둘째 삼촌, 간지러워요. 살려주세요.”“아직도 산소 호흡기를 뗄 거야?”“아니요. 안 그럴게요.”두 사람이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육문주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바닥에 누워있는 두 사람을 보고 즉시 물었다.“내 아들을 바닥에 재운 거야?”박서준은 화가 나서 육문주를 노려보며 말했다.“바닥? 형 아들이 한 짓을 좀 보
왕궁은 여왕의 결혼 상대를 선택하기 위해 특별히 비공식 연회를 열었다.초청을 받고 온 사람들은 모두 M 국 왕공이나 귀족들이었다.아들이 있는 사람들은 아들을 데리고 오고 아들이 없는 사람들은 구경하기 위해 왔다.여왕과의 혼인이라는 건 대단한 영광이기도 하고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기회이기도 했다.육연희와 육문주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집사가 와서 상황을 보고했다.“여왕 폐하, 손님들이 다 도착하였으니 인젠 나가셔야 합니다.”“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아직 한 사람이 안 왔어요.”육연희가 말을 마치기 바쁘게 박서준이 성큼성큼
육연희는 몇 년 전 술집에서 배우진의 첫 모습을 봤던 것처럼 한동안 설레어 본 적도 없던 마음이 떨리기 시작했다.남자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육연희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따라갔다.남자는 육연희를 향해 고개를 숙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여왕 폐하, 저는 윌리엄 가문의 막내아들 윌리엄 요한이라고 해요. 저는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노래를 잘 불러요. 여왕 폐하와 함께 삶을 즐길 기회를 주세요.”남자의 말에 육연희의 심장은 무언가에 찔리는 것처럼 욱신거렸다.자기를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삶을 즐
육연희는 가면을 쓰고 있는 윌리엄 요한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봤다.차가운 가면의 뒤편에서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야만 나타나는 뜨거운 눈빛이 느껴졌다.윌리엄 요한이 오늘 육연희한테 첫눈에 반한 게 아니라면, 예전부터 자기를 좋아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육연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윌리엄 요한을 바라보며 물었다.“우리 오늘 처음 만난 게 확실한가요?”육연희의 물음에 윌리엄 요한이 웃자 뜨거운 그의 숨결이 육연희의 얼굴로 흩어졌다.윌리엄 요한은 육연희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궁금해? 그러면 빨리 날
육문주는 웃으며 말했다.“우리 아들이 대단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 티를 낸 거야. 누나, 가면 쓴 그 남자를 의심하는 거야?”육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응. 자꾸 누군가를 닮은 거 같단 말이야. 하지만 그 사람은 아닐 거야.”“안전을 위해서라도 조사할 생각이었어. 조사해 보고 알려줄게.”“그래. 오늘 밤 천우랑 같이 자도 돼?”육연희의 말에 천우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좋죠. 나 고모랑 자는 거 좋아요. 여기 있는 이쁜 누나들과 같이 놀 수도 있고요.”육연희는 웃으며 천우의 얼굴을 조몰락거리며 말했다.“벌써
일주일 뒤.M 국 여왕의 결혼식.왕궁에서는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다.번거롭고 복잡한 의식이 모두 끝나자 육연희는 드디어 방으로 돌아가 쉴 수 있었다.천우는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짧은 다리로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고모, 맛있는 거 가져왔어요.”천우는 육연희 곁으로 달려가 작은 케이크를 집어 육연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고모, 빨리 뭐 좀 드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고모가 죽으면 가면 쓴 삼촌은 마누라가 없어지잖아요.”육연희는 케이크를 받아 입에 넣더니 웃으며 말했다.“할머니가 가져다주라고 한 거야?”천우는 검고 반
천우는 윌리엄 요한을 몇 초 동안 쳐다보더니 말했다.“연후 삼촌은 호칭을 바꿔 부르라고 할 때 돈을 줬었는데 삼촌은 아직 안 줬잖아요. 그러니까 싫어요.”천우의 말에 윌리엄 요한은 주머니에서 돈 봉투를 꺼내 건네주더니 웃으며 물었다.“이제는 불러줄 거야?”천우는 돈 봉투를 받더니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와, 많다. 연후 삼촌이 준 것보다 더 많아요.”천우는 윌리엄의 목을 끌어안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 고모부.”“그래. 앞으로 자주 놀러와.”천우는 돈 봉투를 가방에 넣으며 까만 눈동자로 윌리
“예람이가 너 어제 귀국했고 나연이도 너희 집에서 잤다고 하던데. 별일 없었지?”“어떤 방면에서요?”“뻔히 알면서 왜 물어? 만약 너희 둘한테 무슨 일 있었다면 엄마가 이모랑 삼촌한테 말해서 결혼 서둘러야지. 어차피 이 결혼은 정해놓은 건데.”육천우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엄마 실망하실 거잖아요. 아니면 오늘 제가 나연이 데리고 집에 갈까요? 술이라도 먹이면 무슨 일이 생길 것도 같은데. 그럼 그때 가서 이모한테 얘기하시면 되잖아요.”조수아는 화가 나서 욕을 했다.“이놈아. 나연이는 어릴 때부
말을 마친 육천우가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려 하자 허나연은 즉시 달려들어 그를 침대에 깔아 눕혔다.옷도 입지 않은 채 다시 껴안게 되자, 허나연의 머릿속에는 어젯밤의 장면이 하나둘 떠올랐고 하얀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육천우는 누운 채로 허나연의 허리를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어젯밤으로 만족을 못 하는 거야? 아침부터 왜 이래?”허나연은 화가 나 있는 힘껏 육천우의 가슴팍을 내리치고 씩씩거리며 말했다.“어젯밤에 우리한테 일어난 일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돼. 특히 네 엄마 아빠와 우리 엄마 아빠.”육천우는
육천우는 지금까지 뭔가를 이렇게 서둘러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신발을 벗을 틈도 없이 허나연을 문 앞에 있는 신발장 위에 앉힌 뒤 입술을 맞추었다. 차 안에서 계속 자제하던 감정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야릇한 기운이 순식간에 방 안에 퍼졌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두 사람은 이성을 잃은 채 서로를 탐했다.옷가지는 하나씩 바닥에 떨어졌고 방에서는 가슴 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허나연은 마치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꿈속에서 그녀는 육천우와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 허나연은 눈을 감고 머리를 쥐어박더니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육천우는 큰 손으로 허나연의 머리를 쓰다듬고 부드럽게 말했다.“그래. 오빠 왔어.”육천우의 대답에 코끝이 찡해진 허나연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억울한 듯 말했다.“천우 오빠, 왜 지금까지 나 보러 안 온 거야? 나연이가 싫어진 거야?”허나연의 안쓰러운 모습에 마음이 아파진 육천우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날 싫다고 그랬었잖아. 파혼까지 해달라고 소리 지른 건 너야.”허나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글썽인 채 육천우를 바라보았다.“천우 오빠, 삼 년 전에 했던 말을 취소할게. 파혼하는 거 싫어. 결혼하고 싶어. 그러
육예람은 허나연을 끌고 룸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오색 띠가 흩날렸다.친구 중 한 명이 다가오며 말했다.“나연아, 너의 천우 오빠가 돌아온다며? 축하해.”허나연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육천우 얘기 꺼내지도 마. 속이 갑갑해지려 하니까.”“갑갑할 게 뭐가 있어? 잘생겼지 능력 좋지. 겨우 26살에 M 국 금융계를 휩쓸었잖아. 개인 재산이 이미 네 아버지를 넘었다고 들었는데? 내가 만약 이렇게 좋은 남편이 있으면 자다가도 웃다가 깰 거야.”“그렇게 부러우면 네가 가질래?”“싫어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깬 허나연은 눈을 반쯤 감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기 너머에서 육예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연아,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걸 먼저 들을래?”허나연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나쁜 소식.”“너의 약혼자이자 나의 오빠가 곧 돌아온대. 너 앞으로 우리랑 같이 맘 편히 못 놀겠다. 하하하. 어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지 않아?”찬물을 끼얹는듯한 소식에 허나연은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육천우가 돌아온다. 사사건건 간섭하며 아무것도 못 하게 구속하는 그가 돌아온다.‘그럼 앞으로 나이트는
“건강하고 멋진 남편으로 네 앞에 서겠다고 했잖아. 서연아, 지난번 청혼은 너무 성급했어. 오늘 양가 부모님 앞에서 다시 한번 정중하게 청혼할게.”말을 마친 뒤 박서준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더니 안에서 청록색 팔찌를 꺼내 쥐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서연아, 이건 외할아버지께서 장가갈 때 아내에게 주라고 남긴 팔찌야. 이걸 착용하면 너는 이제 박씨 집안 며느리가 되는 거고 박서준의 아내뿐만 아니라 육 씨 집안 둘째 며느리가 되는 거야. 이 모든 신분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됐어?”정상적으로 걷고 있는 박서준 때문에 놀란 마
곽서연은 근간에 계속 여러 곳을 다니며 무대를 돌았던 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박서준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었다.얼마나 잤는지 누군가 귀를 깨물었고 곧이어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잠꾸러기야, 집에 도착했어.”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곽서연은 뜨거워진 얼굴을 박서준의 어깨에 몇 번 문지르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삼촌, 서프라이즈는요?”박서준은 웃으며 곽서연의 이마에 뽀뽀했다.“눈 감아. 같이 어디 가자.”말을 마친 박서준이 넥타이를 풀어 곽서연의 눈을 가리자 그녀의 궁금증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박서준을 밀어낸 곽서연의 눈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욕망으로 일렁였다.“제가 나가서 해장국을 가져다줄게요. 삼촌이 방금 취한 척 했다는 걸 눈치 못 채게 하세요. 안 그러면 정말 오늘 어떻게 될지 몰라요.”박서준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여보 말 들을게.”박서준은 ‘여보’라는 호칭을 전혀 어색함 없이 불렀지만, 곽서연은 듣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 그의 가슴을 때리며 말했다.“함부로 부르지 말아요. 저 아직 아니거든요.”“조만간 될 거잖아. 하루빨리 박서준의 아내로 살면 누릴 수 있는 것도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