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말에 육문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되물었다.“아는 사람이라고?”조수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혹시 예전에 송미진이랑 손잡고 나를 해치려고 했던 이 비서, 이지수 씨 기억나? 줄곧 못 찾고 있었잖아. 그 사람이 바로 이지수였어. 다만 지금 성형을 해서 예전이랑 얼굴이 많이 바뀌었더라. 그때 문주 씨 발에 차이면서 바닥에 엎어졌을 때 허리에 있는 반점을 봤어.”“나랑 지수는 대학교 4년을 같은 기숙사에서 살아서 틀림없어. 분명 임다윤 씨가 숨겨줬을 텐데 어쩌면 그 애 입에서 임다윤 씨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낼 수 있
임다윤도 그리고 이현도 마찬가지다.송학진은 두 주먹을 꼭 쥐고 다시 물었다.“지금 이현은 어디에 있어?”“임다윤 씨가 자주 가는 미용실 지하에 있어요. 그곳은 수아가 먹었던 그 흥분제를 제조하는 곳이었거든요. 저는 직원이고 이현 씨는 책임자에요. 그들이 그곳에서 접선하는 걸 봤고 이번 일도 이현 씨가 시킨 겁니다. 그리고 잘 마무리되면 제 아들과 만날 수 있도록 출국시켜 준다고 했어요.”그녀의 말을 들은 송학진은 아까보다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처음에 이 흥분제에 대해 알아보다가 분명 외국 암시장의 제품이라 판매자를 쉽게
그의 목소리에 이현은 본능적으로 한 발짝 물러났다.그리고 흐릿해진 두 눈을 비비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육문주는 검은 옷차림을 한 채 어두운 얼굴로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이현은 그제야 육문주의 속임수에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하지만 애써 담담하게 그에게 말했다.“사람 잘못 본 것 같네요. 저는 이현이 아니에요.”그의 말에 육문주는 씨익 웃더니 이현앞까지 다가가 단번에 그의 가면을 벗겨내고 익숙한 얼굴과 마주했다.그리고 어두운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한껏 살기가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아저씨, 이따
“그러다가 그 노숙자는 저를 막아서면서 그 여자더러 도망치라고 했는데 전 홧김에 그를 기절시킨 뒤 바로 불바다에 던져버렸어요. 그 후로 저는 그 노숙자의 신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거죠.”그의 말을 감식실에서 듣고 있던 박서준은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이제야 자기 어머니의 얼굴은 화재가 나기 훨씬 전에 이미 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그 당시 그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고 왜 가끔 정신이 이상했는지도 이제 알 것 같았다.여태껏 온화한 모습이던 박서준은 한껏 차가운 살기를 뿜으며
여기까지 생각한 육문주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비록 예전부터 줄곧 이 일은 임다윤이 벌인 일이라고 의심해 왔지만 이제 와서 보니 또 다른 일까지 연루되어 있었다.순간 명치가 따끔거리면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그리고 입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그럴 리가 없어. 그 사람이 진짜 설매 이모의 살해범이라고? 그럼 송미진의 친엄마일 리가 없잖아. 이게 만약 진짜라면 왜 나랑 송미진이 이어지길 바랐던 건데? 남매인 걸 알면서 그런 일을 벌였다고?”송학진은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나도 의심했
그리고 두 주먹을 꽉 쥔 채 이현을 보며 물었다.“우리 어머니가 감옥에 들어간 뒤에 송미진은 수아를 납치하고 사람을 시켜 암살하려고까지 했어, 이 모든 걸 누가 지시한 거야?”이현은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 만날 때마다 검은 망토를 쓰고 휠체어에 앉아 있어서 얼굴은 보지 못했거든요. 근데 이 일은 다 그 사람이 시킨 거예요. 만약 제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을 다 죽여버린다고 협박했어요. 저는 모든 사실을 다 말했으니 제발 우리 가족만 살려주세요.”그는 무릎을 꿇고 그에게 애원했다.
그녀는 육문주의 품에서 작게 흐느꼈다.살을 에는 듯한 고통을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사실 그녀는 여러 번 의사를 찾아가 진통제 좀 달라고 부탁하려 했으나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신 중이라 진통제를 먹으면 아이한테 영향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에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견뎌내야 했다.육문주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입 맞춰주면서 다정하게 달랬다.“내가 다쳤을 때 내 상처에 네가 입을 맞춰주니까 통증이 덜하던데 우리 이 방법을 시도해 볼까?”조수아는 반신반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그게 과연 가능할
‘그게 언제지?’‘설마 첫 만남이 그 골목이 아니었나?’조수아가 어렵게 잠에 든 모습에 육문주는 감히 깨워서 물어볼 수 없어 호기심을 다시 가슴 깊숙이 삼켰다.이튿날 아침, 조수아는 눈을 뜨자마자 수염이 덥수룩해진 육문주를 발견했다.그리고 턱밑까지 내려온 다크써클.순간 마음이 아파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잠긴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자기야, 면도해야겠다.”육문주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싱긋 미소를 지었다.“수염 난 남편이라서 싫어?”조수아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아니, 적응이 안
이미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송학진한테 차서윤의 말은 마치 휘발유처럼 그를 더욱 불타오르게 했다.송학진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선물?”차서윤은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말했다.“먼저 씻어요. 조금 후면 알게 될 거예요.”송학진은 차서윤의 코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여보, 내가 뭘 원하는지 잘 알잖아. 저쪽 칸에서 씻을 테니까 자기가 여기서 씻어. 씻고 나왔을 때 선물이 날 실망하게 하지 않길 바랄게.”“그럴 일 없어요.”차서윤은 송학진을 방에서 밀어내고 물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송학진
“외삼촌이 그럴 리가 없어요. 외숙모와 아림이도 나 때문에 만난 거잖아요. 만약 유치원에서 내가 아림의 치마를 적시지 않았다면 외삼촌이 외숙모를 만날 일이 있었을까요?”천우의 말을 잠깐 생각해보던 육문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만약 천우가 아니었다면 송학진은 어쩌면 아직도 솔로였을 수도 있었다.갑자기 뿌듯해진 육문주는 잔을 들고 자리에 있는 형제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너희들 우리 아들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천우가 아니었으면 우리 이 축하주를 언제 마셨을지도 모를 일이야.”곽명원은 웃으며 말했다.“천우가 아니었
박서준은 웃으며 말했다.“배은망덕한 건 아닌 것 같네. 보살펴준 보람이 있어. 왔던 김에 가족들이랑 며칠 시간 좀 보내다 갈 거야.”박서준의 말에 곽서연은 즉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정말요? 그럼 우리 그동안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박서준은 곽서연을 흘려보며 말했다.“삼촌이랑 헤어지는 게 그렇게 싫어?”“네. 매일 매일 삼촌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천우보다 더하네?”곽서연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삼촌은 내가 달라붙는 게 싫어요?”박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싫다고 그러면 또 울
곽서연과 박서준이 동시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곽명원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박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형네 집 공주님께서 발을 삐끗해서 울고 계시잖아.”곽명원은 별생각 없이 곽서연 곁으로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그녀의 발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마구잡이로 잡고 돌리는 턱에 아파 난 곽서연은 바로 소리를 질렀다.“아! 삼촌 살살 좀 해요.”곽서연은 참을 수 없는 아픔에 고여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곽명원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아프다고? 어릴 때처럼 아픈 척하
송학진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난 강한나는 눈시울을 붉히고 입술을 깨물며 경호원을 바라보고 말했다.“내 발로 나갈 테니까 비켜요.”말을 마친 강한나는 도도한 걸음으로 이곳을 떠났다. 많은 사람이 뒤에서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모든 것이 끝나고 송학진은 차서윤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와 예복을 갈아입었다.송학진은 차서윤의 붉어진 눈을 보더니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윤아, 이제 내가 있으니까 누구도 감히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송학진은 차서윤이 이십여 년간 저런 아버지 밑에서 보내다 겨우 그
차경훈은 한순간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차서윤이 모든 증거를 모으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차경훈은 울며 빌었다.“서윤아, 아빠가 그때는 정신이 없었어. 앞으로 안 그럴 테니까 고소만 하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차서윤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고소뿐만 아니라 부녀지간의 관계까지 끊을 거니까 앞으로 다시는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세요. 더는 꿈에서조차 보기 싫으니까. 우리 이젠 죽을 때까지 연락하지 말죠.”차서윤의 말에 경호원은 차경훈을 강제로 현장에서 끌고 나갔다.차서윤의 완강한 태도에 겁을
그 말을 들은 차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송학진의 볼에 입맞춤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결심을 내렸다.“감사해요. 근데 저는 학진 씨가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속의 흉터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야 한다 해도 학진 씨를 위해서 뭐든 할 거예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신부 들러리로부터 핸드폰을 가지고 송학진에게 건네줬다.“제 핸드폰과 스크린을 연결해 주세요.”그 말은 들은 송학진은 차서윤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그녀에게 무수한 악몽을 남겨준 악마 같은 남자를 보자 차서윤은 지금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분노와 슬픔이 있었고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감옥에 있어야 할 차경훈이 왜 멀쩡하게 결혼식장에 나타난 것일까.송학진이 재빨리 다가와서 그녀를 품에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해 줬다.“괜찮아. 내가 사람을 불러서 저 사람을 감옥으로 돌려보낼게.”그가 매니저에게 눈치를 보내자 매니저는 사람을 불러와서 송학진을 제압했다. 경호원들에게 잡힌 차경훈은 그들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네가 안고 자고 싶다면 될 일이야? 네가 그러다가 이모부한테 쫓겨 나오면 내 잘못 아니다.”둘째와 셋째는 아빠와 천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나서 쉴 새 없이 옹알이했다.육문주는 셋째를 끌어안고 볼 뽀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딸이 좋아. 역시 우리 보배 딸이 제일이야. 너희 오빠 한번 봐봐. 고작 3살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와이프를 입에 붙이고 살잖아.”셋째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입을 비죽이며 뭐라 말했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