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문주는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말하든 상관하지 않고 혼자 지친 몸을 이끌고 떠났다.밤은 점점 깊어 갔고, 고요함이 대지를 뒤덮었다.희미한 불빛만이 거리 양쪽에 수놓아져 쓸쓸하고 적막한 운치를 만들어냈다.그는 운전하는 대신 이런 캄캄한 밤을 혼자 걸었다.차가운 밤바람이 그의 목을 타고 가슴까지 불어 들었다.살을 에는 듯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그는 어느새 조수아와 처음 마주친 골목에 다다랐다.골목이 낡아서 그런지 주위의 벽에서 먼지가 떨어졌다.옆에 있던 길고양이 몇 마리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즉
조수아는 진영택의 말투에서 다급함과 근심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그녀는 몇 초 동안 침묵한 뒤에 대답했다. “진 비서님, 나와 그 사람은 이미 헤어졌으니 더는 나를 찾아오면 안 됩니다.” “조 변호사, 내 말 좀 들어봐요. 육엔 그룹의 최신 제품인 M60 스마트폰이 출시된 지 한 달도 안 돼서 아시아 태평양 시장을 완전히 점령했어요. 이것은 F 국의 어떤 브랜드에게 큰 타격이 될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 대표님이 출장 중일 때 그에게 손을 대고, 지금 그는 F 국의 어떤 유명인을 침해한 것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
한 달 만에 육문주의 얼굴이 많이 야위었다.가뜩이나 깊은 눈이 움푹 패여 있고 눈꼬리에는 주름이 뚜렷했다.그녀는 지금까지 이렇게 좌절한 육문주를 본 적이 없다.조수아는 조용히 서서 육문주가 한 걸음씩 그녀에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내내 어두운 얼굴이었던 육문주는 조이를 보는 순간 한 줄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쉬웠다. “수아야, 나의 사건을 받아줘서 고마워.”조수아는 눈을 내리깔고 공적으로 말했다. “시장 지도자의 위임으로 너의 대리 변호사로 나왔어. 이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그녀는 옆에
헬레나는 일부러 잠시 멈추더니 조수아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소리를 매우 낮춰서 말했다. “그가 나를 약혼녀로 공식적으로 선언하면 법관 앞에서 우리가 단지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고 말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를 망신시킬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여성용 담배를 들고 불을 붙였다. 조수아는 그녀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며 소리는 작지만 매우 강력하게 말했다. “당신을 실망시킬 것 같네요. 내가 있으면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어요!”헬레나는 담배연기를 한 모금 내뿜은 뒤 조수아를 비꼬며 말했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고 침착함으로 가득 찼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로의 눈 속에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있었다. 조수아의 차가운 손끝을 살짝 움츠린 뒤 육문주를 향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재판이 시작되고, 상대 변호사는 육문주의 모든 죄증을 열거했다. 외부인들이 보기에도 이 증거를 뒤집을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모두가 이 사건에 낙관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을 때, 조수아가 육문주를 위해 변호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랜 잠에서 깬 사자처럼 부드러운 입으로 변론하며 맑고 당당한 목소리가 재판장에 울려
그의 목소리에는 끝없는 억울함과 상처가 담겨 있었다. 큰 손으로 조수아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조심스럽고도 애지중지 하는 모습이었다.그 모습은 조수아를 약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가 이전처럼 독단적이고 강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럴 경우에는 그를 거리낌 없이 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의 육문주는 부서지기 쉬운 자갈처럼 보였고, 조금만 힘을 줘도 깨질 것만 같았다.조수아는 입가에 억지로 미소를 짓고 냉정하게 말했다.“육 대표님이 저에게 이렇게 큰 보상을 주지 않아도 돼요. 당신
그건 다 그가 스스로 만든 일이 아닌가!두 사람은 연성빈의 차를 따라 현지의 고급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연성빈은 젠틀하게 조수아의 차 문을 열어주었다.그의 얼굴에는 온화하고 아름다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조수아, 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너를 만나고 싶어서 여기서 반나절을 기다렸어.”조수아는 거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 사건 수사할 때 그들이 큰 도움을 줬어, 그래서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사야겠어.”“괜찮아, 그냥 밥 한 끼 함께 하면 돼.” 두 사람은 함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고 회백머
식사를 마친 후, 연성빈은 조수아를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방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물었다. “수아야, 내가 지난번에 너에게 말한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조수아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바로 뒤에서 낮고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 변호사, 지금 시간 괜찮으신가요? 제 사건에 몇 가지 후속 문제가 있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육문주가 검은 옷을 입고 차가운 표정으로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공손하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졌으며, 눈에는 다른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연성
이 말을 들은 육천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일단 교수님부터 뵙고 다른 일은 나중에 얘기하자.”육천우는 차유라가 격동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아까처럼 또다시 품에 안길까 봐 즉시 몇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허나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오늘 수고했어. 이따가 교수님 병실 옮기면 간병인을 불러 돌보라 할 테니 우린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거 어때?”허나연은 처져있는 차유라를 보고 마음이 약해져서 육천우의 팔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만하면 됐어. 유라 씨도 많이 속상할 텐데 이런 일로 그만 좀 자극해.”허나연은 건
육천우의 말에 허나연은 눈빛이 굳어지면서 쏘아보며 말했다.“무슨 말이야? 그날 밤 피임조치 취하고 한 거 아니었어?”그날 허나연은 술을 많이 마신 상태라 상황을 상세히 기억하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에 바닥에 널려있는 쓰고 버려진 물건들을 보고 나서야 잠자리를 하게 되였다는 걸 알았다.육천우는 천천히 허리를 구부려 허나연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마지막 욕실에서 할 때 못 썻어.”허나연은 당황한 나머지 몸에 있는 털들이 다 서는 느낌이었다.‘그날 저녁 얼마나 불타올랐는지 어렴풋이 기억나긴 하는데, 만약 정말로
허나연의 한마디에 차유라는 할 말이 없었다.차유라는 당연히 다른 마음으로 육천우한테 안겼고 일부러 육천우의 동정심을 건드릴려고 아버지의 병세를 엄중하게 말했던 것이다.둘이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 허나연이 오해하고 화를 내어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지면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육천우가 자신을 한번 안았다고 외투를 벗어 버리고 곧바로 허나연 앞에 가서 이런 식으로 해명할 줄은 몰랐다.‘소설 속의 남 주는 전부 말도 안 하는 역할이던데 왜 육천우는 있는 그대로 전부를 허나연한테 보고하는 걸까? 내가 어디가 허나연보다
허나연은 제자리에 서서 한가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육천우는 울먹이고 있는 차유라를 위로하기는커녕 차갑게 밀어내고 돌아서서 바로 허나연이 서있는 곳으로 향했다.그때 마침 맞은편에 쓰레기 수거차 한 대가 오자 육천우는 입었던 외투를 벗어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고 허나연의 곁으로 다가가서 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내가 안은 게 아니야. 차유라가 갑자기 덥쳐 들어 안긴거야. 화내지 않으면 안 돼?”허나연은 제자리에 넋을 놓고 있는 차유라를 보고, 또다시 쓰레기차 위에 버려진 외투를 보더니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
“육천우!”허나연은 화가 나서 육천우를 한 대 쥐어박고는 작은 입을 삐죽삐죽 내밀며 애교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육천우는 허나연의 머리를 문지르며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알았어. 놀리지 않을게. 이따가 맛있는 저녁 사줄게. 그럼 되지?”허나연은 작은 얼굴을 올려 아주 귀여운 모습으로 육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북성사거리의 바비큐랑 취두부 튀김이랑 두리안구이랑 다 먹을 거야.”육천우는 애틋하게 허나연의 이마에 입맞춤하고는 말했다.“애기야, 그렇게 구린 음식을 먹으면 이따가 내가 어떻게 뽀뽀해 줘?
‘이런 꼴 나도 보고 싶어서 본 거니? 니가 여기까지 끌고 온 거잖아.’화가 잔뜩 난 차유라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샘난다고 티 낼 수도 없어서 억지웃음을 하고 말했다.“걱정하지 마, 그럴 일 없을 테니까.”육천우는 아주 예의 있게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이제 경기도 다 끝났으니 이따가 사람 시켜 데려다줄게. 난 우리 나연이가 아직 저녁도 못 먹어서 축하도 할 겸 데리고 밥 좀 먹여야겠어.”이 말을 듣자, 차유라는 속에서 분통이 터졌다.‘분명 나도 밥을 못 먹었는데 육천우의 마음속엔 진짜 허나연밖에 없는 건가?
차유라는 자신이 금방 허나연한테 깍듯하게 인사까지 한 것을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였지만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허나연 씨가 어떻게 여기에...”허나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의외죠? 저같이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아가씨는 육천우 책상 위에 놓일 꽃병 정도밖에 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렇게 생각한 거면 차유라 씨 너무 순진한 거 아닌가요? 이런 능력 하나 정도도 갖추지 않는다면 제가 어떻게 육천우의 아내가 될 수 있겠어요.”허나연의 말을 들은 차유라는 화
18번 선수는 첫 번째 모퉁이를 지날 때 흰색 스포츠카의 방해를 받아 하마터면 경기장 밖으로 날아갈 뻔했지만, 그녀의 기술이 훌륭한 탓으로 드리프트 한 번으로 위험을 모면했고 이 일로 인해 그녀의 순위도 맨 마지막으로 떨어졌다.이 장면을 본 차유라는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으면서 말했다.“저 여자 진짜 대단한 거 아니야? 영화에서 봤던 장면보다 더 짜릿한데? 천우야, 저 여자 너 아는 사람이야? 있다가 나 사인받아주면 안 돼?”육천우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대답했다.“그래, 알았어.”육천우의 대답에 차유라는 뭐라도 얻은 듯 교
육천우는 대형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레이싱카 경기장이야. 너랑 경기 보러온 건데 싫은 건 아니지?”차유라는 한동안 침묵을 이어갔다.“...”첫 데이트에 레이싱카 경기장으로 왔다.레이싱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트렌디한 스타일로 청바지 아니면 캐주얼한 복장을 선호한다.그녀처럼 만찬에 참가하는 듯 성대하게 드레스를 입은 사람이 없었다.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이 뜨거워진 차유라는 얼버무리며 말했다.“나... 나는 우리가 레스토랑으로 가는 줄 알았어.”앞장서서 가던 육천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