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조 변호사님께서 절 용서하시고 저 대신 문주 오빠 앞에 가서 사정해 준다면 송씨 집안 사건을 변호사님께 드릴 거예요. 어때요?”미안하다고 하면서 표정은 여전히 기세등등했다.조수아는 가볍게 웃으며 사정없이 말했다.“난 당신 사과도, 송씨 집안 사건도 필요 없어요. 육문주 씨가 당신을 어떻게 대하는 건 그 사람 일이지 나랑 상관없고. 그러니 다시는 이렇게 찾아오지 마요. 환영하지 않으니까.”말을 마치고 떠나려고 할 때 쥐에서 비웃음이 담긴 송미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조 변호사님, 당신 아버지가 이미
조수아를 모함하는 것에 실패한 데다가 내일 또 촌구석에 가서 빈소를 지키게 되어 기분이 좋지 않았던 송미진은 친구와 술을 마시러 갔고 취한 다음 대리기사를 불렀다.차에 올라타 주소를 알린 후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혼곤히 잠이 들었다.한참 지난 후 차가 멈췄다.송미진은 집에 도착한 줄 알고 눈을 떴지만 황량한 들판을 발견하고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문을 열고 도망치려는데 검은 봉지가 그녀의 머리 위에 씌워졌고, 뒤이어 주먹과 발길질이 이어졌다.송미진은 오장육부가 깨지는 듯 아팠다.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에 뭐가 들
“아빠 말 잘 듣고 엄마 잘 챙겼어?”밀크는 ‘멍멍'하고 두 번 짖었다.그는 손에 든 봉지를 밀크 목에 두르고 웃으며 말했다.“엄마랑 너한테 줄 선물인데, 아빠 대신 네가 좀 전해줄래?”밀크는 알겠다는 뜻으로 몇 번 짖고는 조수아를 향해 달려갔다.조수아는 5킬로미터를 달렸고 온 얼굴이 땀에 젖어 있었다. 그녀는 밀크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리고 밀크의 머리를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엄마가 함부로 남의 물건 가지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그녀가 웃으며 밀크의 목에서 봉
육문주는 급히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조수아의 유산은 확실히 그녀가 원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차는 바로 빌라로 이동했다.그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도우미는 즉시 입을 열었다.“대표님, 제가 방금 캐비닛을 정리할 때, 조수아 씨가 전에 마셨던 한약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그 안에 임산부가 마시면 유산할 수 있는 약이 들어 있었어요.”그 말에 육문주의 눈빛이 순간 서늘해졌다.생리통이 심한 조수아를 위해 그는 한의사를 불러 조리해 주었다.계산해 보니
시간은 마침 조수아 생일 전날이었다.즉, 조수아 생일날 그가 송미진을 구하러 갔을 때 조수아가 유산했던 것이다.만약 그가 그녀를 데리고 약을 가지러 가지 않았다면 유산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어쩐지 조수아가 아이를 죽인 사람이 그라고 하더라니.기억의 문이 열리자 육문주의 눈 밑에는 광기 어린 절망과 고통의 빛이 감돌았다.그날 조수아가 그에게 만약 아이를 가졌다면 어떡하냐고 물어봤었다.그는 당시 그녀에게 아이를 문제 삼지 말라고 경고했었다. 피임을 잘해서 아이를 가질 가능성이 없다고도 했었지.아직도 그때 조수아 눈에 담겼
임다윤은 육문주가 자신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놀란 표정을 지었다.“문주야, 내 손자인데 어떻게 그러겠어? 수아가 너한테 말한 거니? 내가 미워서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거야. 그러니까 믿지 마.”육문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어렸을 때 그와 누나를 끔찍이 아꼈던 어머니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그 일 이후로 어머니는 완전히 변한 것 같았다.그는 꾹 다물었던 입을 열면서 세 글자를 말했다.“유순당.”이 세 글자를 듣자마자 임다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하지만 곧 진정하고 물었다.
육문주는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말하든 상관하지 않고 혼자 지친 몸을 이끌고 떠났다.밤은 점점 깊어 갔고, 고요함이 대지를 뒤덮었다.희미한 불빛만이 거리 양쪽에 수놓아져 쓸쓸하고 적막한 운치를 만들어냈다.그는 운전하는 대신 이런 캄캄한 밤을 혼자 걸었다.차가운 밤바람이 그의 목을 타고 가슴까지 불어 들었다.살을 에는 듯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그는 어느새 조수아와 처음 마주친 골목에 다다랐다.골목이 낡아서 그런지 주위의 벽에서 먼지가 떨어졌다.옆에 있던 길고양이 몇 마리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즉
조수아는 진영택의 말투에서 다급함과 근심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그녀는 몇 초 동안 침묵한 뒤에 대답했다. “진 비서님, 나와 그 사람은 이미 헤어졌으니 더는 나를 찾아오면 안 됩니다.” “조 변호사, 내 말 좀 들어봐요. 육엔 그룹의 최신 제품인 M60 스마트폰이 출시된 지 한 달도 안 돼서 아시아 태평양 시장을 완전히 점령했어요. 이것은 F 국의 어떤 브랜드에게 큰 타격이 될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 대표님이 출장 중일 때 그에게 손을 대고, 지금 그는 F 국의 어떤 유명인을 침해한 것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
“네가 안고 자고 싶다면 될 일이야? 네가 그러다가 이모부한테 쫓겨 나오면 내 잘못 아니다.”둘째와 셋째는 아빠와 천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나서 쉴 새 없이 옹알이했다.육문주는 셋째를 끌어안고 볼 뽀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딸이 좋아. 역시 우리 보배 딸이 제일이야. 너희 오빠 한번 봐봐. 고작 3살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와이프를 입에 붙이고 살잖아.”셋째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입을 비죽이며 뭐라 말했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자리로 돌아간 송학진은 차서윤을 아래 우로 훑어보고 관심 어린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는 나한테 연락해야지. 내가 걱정했잖아. 날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거 맞아?”미간을 찌푸린 채 잔뜩 화가 나 보이는 송학진을 차서윤이 빙그레 웃으며 달래줬다.“걱정하지 마세요. 강한나 씨를 만났을 때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어요. 식사하는 내내 자꾸 저희를 보면서 친구들과 뭐라고 소곤거리더군요. 그 사람들이 무슨 수를 쓸 것을 먼저 예상하고 화장실로 간 거예요. 둘째 도련님이 다가올 때 먼저 스프레이를 뿌리고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전 그런 적 없어요. 바람피우다가 송 대표님한테 잡혀서 저한테 덮어씌우려는 수작인 것 같은데요. 그만하시죠.”차서윤은 장사연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더니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그녀의 뺨을 후려치고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저 남자를 이용해서 저를 망가뜨리고 제가 바람났다고 학진 씨를 불러올 수작이었죠. 이런 수작에 제가 넘어갈 줄 알았어요? 제가 바보로 보여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화가 가시지 않는지 장사연의 나머지 반쪽 뺨을 후려쳤다.“제가 학진 씨와 결혼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가
강한나와 친구들은 시간이 됐다 싶어 화장실을 찾아가서 문이 잠겨있다며 호텔직원을 불러 모았다.그 소식을 들은 송학진도 아림을 데리고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무슨 영문인지 화장실 앞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서 마음이 놓이지 않은 송학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에요?”어떤 여자가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딱 보면 알리죠. 파렴치한 남녀가 지금 바람피우는 거죠. 정말 이상한 여자가 다 있네요. 방 하나 예약하면 될 일을 굳이 화장실에서 저러잖아요.”“더 스릴 있으니까 그러는 거죠. 저는 이런 장면 많이
강한나가 4년을 기다려 기다려온 것은 송학진이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이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 소식이 가짜라 생각했고 송학진이 다른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강한나는 송학진과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외국에서 돌아왔는데 한차례 모욕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늘 아침에 발생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뺨이라도 처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고 가슴이 아파 났다.그녀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내 남자는 영원히 내 것이야. 누구도 빼앗
송학진이 차서윤과 아림을 데리고 행복한 모습으로 레스토랑에 나타난 것을 본 강한나는 치밀어 오르는 질투심을 참을 길이 없었다.오늘 저녁은 친구들이 그녀를 위해 마련해준 자리였다. 그녀의 친구들은 송학진을 알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고 있었다.너무나도 거북한 장면에 강한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어색한 웃음을 자아냈다.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송학진을 불렀다.“학진아.”강한나의 부름 소리를 들은 송학진은 아무런 표정 없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서윤과 아림을 끌어안고 예약한 자리로 갔다.강한나의 친구들
“그런다고 제가 용서해 줄 것 같아요?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저한테 손대지 마세요.”“여보, 그건 너무했어. 벌써 금욕이라니! 내가 참지 못하고 죽으면 어떡해. 다음에 주의할 테니까 제발 용서해 줘.”두 사람이 차 옆에서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매니저가 아림을 데리고 멀리서부터 다가왔다.아림은 팝콘을 품에 안고 활짝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아빠, 엄마. 얘기 끝나셨어요?”송학진이 허리를 굽혀 아림을 안아 들고 어린이의 볼에 입을 맞춘 뒤 웃으며 대답했다.“응, 얘기 다 끝났어. 근데 어쩌지? 엄마가 아빠 때문에 많이 화
송학진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란 차서윤은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피팅룸에 놓인 커다란 거울에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거울 앞에서 남자에게 입술을 약탈당하는 모습이 비쳐있었다.거울 속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차서윤은 너무 부끄러워 토마토처럼 목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키스가 끝나자 수치스러운 마음에 그녀는 송학진의 어깨에 이빨 자국을 남기고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이건 너무했어요!”송학진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잠깐 미간을 찌푸린 뒤 웃으며 대답했다.“미안해.근데 너 아
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말했다.“요놈이 너한테 뭘 가르친 거야. 이제 보면 엉덩이를 때릴 거야.”“천우 오빠 때리지 마세요. 쌍둥이한테 뽀뽀도 할 수 있게 하고 날 엄청나게 예뻐한단 말이에요. 아빠, 쌍둥이들이 너무 귀여웠어요. 손도 너무 작고 보들보들해요. 나도 여동생을 갖고 싶어요.”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차서윤의 입술에 뽀뽀하고 그녀의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이건 엄마가 허락해야 해. 여보, 우리 오늘 밤에 딸 소원을 들어줄까?”차서윤은 송학진을 흘겨보며 말했다.“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요.”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