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짜고짜 사람한테 손찌검하는 예의가 아니지 않나요?”임유진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예의? 그쪽이 나한테 예의를 바라면 안 되지. 지금 나한테 바람 현장을 딱 잡혀놓고 지금 누구한테 설교 질이야! 여자친구 있는 거 뻔히 알면서 감히 승호한테 꼬리를 쳐?”세레나는 씩씩대며 말했다.“저는 당신 남자친구한테 관심 없습니다.”지금, 이 상황이 제일 당황스러운 건 아마 유승호일 것이다. 임유진에게 선물을 건네주면 끝 날 일이 세레나 때문에 꼬이기 시작했다.그는 얼굴만 보고 여자친구를 사귀는 게 아니었다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그만해!”유승호는 정신을 차리고 세레나의 팔을 잡아당겼다.“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유진 씨한테 사과해!”“사과? 유승호 너 미쳤니? 나한테 지금 사과하라고 했어? 이딴 년한테? 대체 둘이 얼마나 많이 붙어먹은 거야?!”세레나는 연예인으로서의 품위나 체면도 없이 필터를 거치지 않고 막말을 해댔다.정한나가 그녀를 부른 것도 이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의 성격이 더러운 건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유승호는 그녀의 말에 기가 찼다.붙어먹었다니! 그런 일은 있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 된다.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지금쯤 강지혁과 강현수 손에 죽어 있을 테니까!“그 입 닥쳐!”“내가 왜? 생긴 건 그렇게 안 생겨서 감히 임자 있는 남자를 건드리고 다녀? 내가 오늘 인터넷에 이 여자 얼굴 다 뿌려버릴 거야! 사람들한테 이 여자가 얼마나 더러운 여자인지 다 알려줄 거야!”세레나는 휴대폰을 들고 임유진을 찍으려고 들었다.유승호는 그녀의 행동에 머리가 지끈해졌다. 이대로 일이 커지면 그는 S 시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미쳤어?!”유승호는 세레나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 들고는 바로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세레나는 한번 맞더니 한참 뒤에야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지금 나 때린 거야?”“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알아?!”유승호는 그녀를 향해 큰소리를 냈다.“뭐하긴 남의 남자 꼬신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세레나의 손은 이미 임유진의 등에 닿았고 그녀는 있는 힘껏 임유진을 앞으로 밀었다.임유진이 쓰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는 얼마 전 사무실에서 정리하다 남은 낡은 컴퓨터 부품들이 놓여있었다. 그게 한두 개가 아니었던 터라 만약 그쪽에 부딪히게 되면 아마 몸 여러 군데 상처가 생기게 될 것이 분명했다.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임유진의 팔을 잡아당겨 중심을 바로잡게 하더니 바로 세레나의 허리를 발로 차 그녀를 멀리 날려버렸다.이 모든 행동이 단 3초 안에 일어났다.세레나는 벽에 세게 부딪혔다. 그 탓에 벽에 부딪힌 곳과 허리가 알싸하게 아파 왔다.“누가 감히 날...!”세레나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에게 시원하게 욕을 퍼부어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상대의 얼굴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강현수?! 강현수가 왜 여기 있어? 그것도 저 파렴치한 여자를 안고?!’세레나는 아직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현수 씨, 그 여자 조심해요. 남의 남자나 꼬시는 더러운...”하지만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바로 뺨을 맞아버렸다.그녀를 때린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남자친구 유승호였다.유승호는 지금 수명이 몇 년은 짧아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현수 씨, 정말 죄송합니다. 얘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이래요. 오늘 일은 제가 반드시 유진 씨에게 사과하도록 하겠습니다!”유승호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사과? 고작 그딴 거로 해결될 거라 생각하나 보지?”강현수의 싸늘한 한마디에 유승호는 식은땀이 흘렀다.세레나는 멍한 얼굴로 이 상황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멍청한 사람도 지금쯤이면 상황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눈치챘을 것이다.세레나는 그제야 임유진은 유승호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유승호가 아닌 오히려 강현수와 뭔가 있는 것 같았다.“괜찮아요?”강현수는 품에 있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네, 괜찮아요. 고마워요.”임유진은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뒤 품에서 나와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강현수의
“아, 네! 그러세요!”강현수가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차 변호사는 이미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그는 곧바로 두 사람을 작은 회의실로 안내했다. 그러고는 임유진에게 말했다.“여기서 얘기하도록 해요, 유진 씨.”임유진은 이 상황이 조금 어이가 없었다.문이 닫힌 후 회의실 안에는 강현수와 그녀 둘만 남았다.그들을 둘러싼 공기는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회의실 밖.정한나와 주변 동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임유진과 유승호의 밀회에서 갑자기 세레나가 등장해 본처의 바람현장 목격 장면이 연출되더니 후반으로 가서는 사실 임유진은 유승호가 아닌 강현수와 뭔가 있었다는 결말로 끝이 났다.강현수가 등장했을 때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물론 정한나만 제외하고 말이다.전에 그녀가 임유진을 괴롭혔을 때도 강현수는 오늘처럼 임유진을 지켜주었다.요즘은 계속 배여진이라는 여자와 스캔들이 많이 뜨는 것을 보고 당연히 임유진에게는 흥미가 떨어졌다고 생각했다.그도 그럴 것이 강현수에게는 항상 여자가 많았고 그 여자들 모두 오래가지는 못했으니까.하지만 오늘 또 한 번 타이밍 좋게 나타나 또다시 임유진을 지켜줄 줄이야...대체 임유진이 뭐길래 강현수가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정한나는 강현수를 떠올리다 문득 최근 부교수가 된 자신의 남자친구를 떠올리고는 혀를 찼다.임유진을 조롱하고 모욕하던 직원들은 사실을 확인하고는 마치 짠 듯이 입을 다물고 서로서로 눈치를 보았다.회의실 내부.적막을 깨고 임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까는 고마웠어요. 하지만 저와 강현수 씨 둘이서 나눌 만한 얘기는 따로 없을 것 같은데 왜 보자고 하신 거죠?”만약 아까 그 상황에서 강현수가 1초라도 더 늦었더라면 임유진은 오늘 몸이 성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굳이 따로 얘기를 나누려는 강현수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강지혁이랑은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강현수가 물었다.그날 파티장에서 임유진은 강지혁과 재결합
“더 할 얘기 없으시면 이만 나가볼게요.”임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그리고 문고리를 잡으려는데 강현수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버렸다.“꼭 그렇게 나한테 선을 그어야겠어?!”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을 유지하던 그였지만 지금은 많이 감정적으로 변했다.강현수는 지금 상당히 초조해하고 있다. 자기도 설명할 수 없는 초조함이 온몸을 지배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임유진은 그저 가만히 눈앞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았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보고 있자니 어릴 적 그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오래전 앳된 얼굴의 강현수는 풀숲에서 그를 업고 내려와 잔뜩 지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었다.“이곳을 벗어나면 내가 예쁜 치마를 엄청 많이 사줄게. 그리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줄게. 그리고 앞으로는 내가 널 지켜줄게! 오직 너만을 지켜줄게!”그때의 임유진은 그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차피 어린애란 원래 자기가 했던 말을 금방 잊어버리니까.하지만 그를 잊어버린 건 그녀였다. 임유진은 의도치 않는 고열로 그와 함께한 모든 추억을 전부 다 잊어버렸다.그 때문에 강현수가 그 뒤로 줄곧 그녀를 계속 찾고 있는 것도 몰랐다. 십몇 년의 세월 동안 그의 그리움은 어느새 집념이 되었고 그건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깊었다.그리고 그 집념은 현재 배여진에게로 향했다.임유진은 강현수의 오해를 바로잡아주지 않았다.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그녀가 사랑하는 건 그가 아니었으니까. 만약 모든 걸 다 말해버리면 강현수의 집념은 오롯이 그녀에게로 향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에게 희망 고문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지금 이 순간 임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하지만 강현수는 그 눈빛이 마치 어렸을 때의 그 소녀가 바라보는 듯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의 두 눈은 그의 꿈에 자주 등장했었다. 어릴 때 그 소녀가 크면 분명히 이런 눈일 거라고 수천 번은 더 상상했으니까.강현수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녀
임유진의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랐고 심지어는 전에 산속에서 우연히 만나 그녀를 업고 산에서 내려갔던 장면을 자주 꿈으로 꿨다.그리고 매번 꿈속에서 임유진을 업을 때마다 그는 마치 그 어린 여자아이를 업은듯했다.“정말 더 이상 강지혁 사랑 안 할거예요?”임유진은 그의 질문에 어딘가 모를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며 옅게 웃었다.“내가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는 게 당신들한테는 그렇게 중요해요?”강지혁은 강현수를 사랑하지 말라고 하고 강현수는 이제 더는 강지혁을 좋아하지 않는지 묻는다.두 남자는 언제나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묻는다. 그녀가 뭘 원하는지는 한 번도 물은 적이 없다. 임유진이 원하는 건 그저 별 탈 없이 무난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뿐이다.임유진의 미소와 목소리는 무수히 많은 비수가 되어 강현수의 심장을 찔렀다....임유진은 지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오늘은 너무나도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졌다.막 단지 앞에 도착했을 때 낯익은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강씨 저택 기사가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임유진의 앞으로 걸어왔다.“유진 씨, 대표님께서 차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임유진은 조금 놀란 얼굴로 차량을 바라보았다.최근 강지혁은 보통 기사를 보내거나 아예 집 안에 들어가거나 둘 중 하나였기에 오늘은 조금 의외였다. 임유진은 조금 얼떨떨한 얼굴을 한 채 기사를 따라 차량 옆으로 다가갔다.기사가 그녀를 위해 뒷좌석을 문을 열어주자 바로 강지혁의 얼굴이 보였다.임유진이 차에 올라탄 후 차량은 천천히 단지를 벗어났다.“어디 가는 거야.”“오늘 갑자기 누나가 해준 요리가 먹고 싶어졌어. 월세방은 너무 작아서 불편하니까 우리 집으로 가.”“내가 한 것보다는 집에 있는 셰프님 요리가 더 맛있을 텐데.”“난 누나가 해준 게 제일 맛있어.”강지혁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전에 좁은 원룸에 있었을 때 임유진은 그에게 자주 요리를 해주었다.요리라고 해도 강지혁이 평소 먹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네 일이잖아.”강지혁은 아주 당연하게 대답했다.“찾아온 건 맞지만 딱히 별말은 안 했어.”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강지혁은 마치 그녀의 모든 꿰고 있는 듯했다.여전히 강지혁의 감시 아래 있는 건가?“그래?”강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임유진의 앞으로 다가갔다.“솔직히 궁금해. 왜 강현수한테 네가 그때 그 여자아이라고 얘기해주지 않은 거야?”임유진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강지혁은 손끝으로 그녀의 입술을 매만지며 다시 한번 물었다.“대답해줘. 왜 말 안 했어?”임유진은 갑자기 코가 시큰거렸다.왜 말 안 했냐니.어떻게 이런 걸 질문이라고 할 수 있지?기억을 되찾은 뒤에도 강현수에게 얘기하지 않은 건 강지혁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그래서 배여진이 그녀의 행세를 하며 강현수를 속여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강지혁이 그 일로 불안해하는 걸 원치 않았으니까. 그래서 강현수와의 모든 걸 끊기도 마음먹은 것이다.임유진은 그에게 충분한 안정감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에게 자신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흥미를 잃으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장기 말 같은 거였다.“왜 내가 얘기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해?”강지혁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그걸 말했으면 아까 너 혼자 오지 않았을 테니까.”임유진이 진실을 말했다면 강현수는 절대 그녀를 혼자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임유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말할 필요를 못 느낀 것뿐이야. 이미 지난 일이기도 하고.”“그 사촌 언니라는 여자가 네 행세를 하며 그딴 태도를 보이는 데 정말 괜찮아? 만약 네가 원한다면 더 이상 사칭하지 못하게 내가 해결해 줄게. 강현수가 그 여자를 감싸고 돈다고 해도 말이야.”“필요 없어.”임유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가족 간의 정, 뭐 그런 거야?”“그런 거 아니야.”임유진은 배여진에게 가족 간의 정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녀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는 건 배여진도 결국 외할머니 손녀이고 어릴 때 할
강지혁은 이 순간 임유진에게 요리를 부탁한 것을 후회했다.“계속 그러고 있어. 찌개는 내가 끓일게.”“네가?”임유진이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왜, 불안해?”강지혁은 냄비 앞으로 가더니 일단 내용물을 확인하고 물을 한번 넣더니 조미료도 한번 넣고 적당히 졸인 후 맛을 한번 보고는 만족한 듯 불을 껐다.그 일련의 행동이 너무 우아하고 자연스러워 임유진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강지혁은 찌개를 다시 끓일 때 이따금 그녀 쪽을 바라보며 제대로 흐르는 물에 손을 두고 있는지 체크했다.임유진은 10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손을 뺄 수 있었다.아직 조금 붉은 기가 있었지만 이 정도는 큰일도 아니었다.“아직도 빨개.”강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틀 정도 지나면 괜찮을 거야.”임유진의 말이 끝나는 순간 강지혁은 그녀의 데인 손가락을 입에 넣어 혀로 부드럽게 핥았다.그 행동에 임유진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강지혁은 그녀의 손가락을 핥는 것을 그만두고 서서히 입술로 그녀의 손가락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의 시선은 줄곧 임유진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임유진은 마치 뭔가에 홀린 듯 그의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심장 박동도 점점 더 거세졌다.그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계속 이대로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그녀는...임유진은 있는 힘껏 손을 빼고서는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이제 정말 괜찮아!”강지혁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평소보다 더 어둡게 빛나는 그의 눈 때문에 지금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아채기 힘들었다.“먹자 이제.”도우미는 임유진이 만든 요리들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밥 먹는 동안 두 사람 중 그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온통 식기와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뿐이었다.임유진은 강지혁이 이상하게 조용하다는 생각을 했다.길었던 식사 시간이 끝이 나고 강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기사한테 데려다주라고 할게.”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현관을 나
방금 그는 하마터면 그대로 그녀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갈 뻔했다.더 이상 임유진을 사랑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서 임유진과 헤어졌지만, 그녀의 행동은 여전히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임유진은 아까 작정하고 유혹하는 것도 아닌 그저 단순히 그와 눈을 맞춘 것뿐이다. 그럼에도 강지혁은 그 시선 한 번에 이성이 날아갈 뻔했다.“말해줘. 어떻게 해야 널 사랑하는 거 그만할 수 있는지... 말해줘, 유진아...”고요한 방안에서 그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강지혁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었고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임유진이라는 여자 앞에서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유진아... 유진아...”그는 침대에 홀로 누워 그녀의 이름을 한 번 또 한 번 되새기기만 했다. 그의 세상이 온통 그녀로만 가득 차 있는 것처럼....다음날, 임유진이 로펌으로 출근해보니 직원들의 태도와 시선이 전과 무척이나 달라져 있었다.몇 명은 임유진 곁으로 와 대놓고 강현수와의 관계를 묻기도 했다. 물론 그럴 때면 임유진은 그저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그 대답에 호기심 가득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흥이 깨진 얼굴을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정한나는 그런 임유진을 보며 질투심에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사람들 보는 앞에서 임유진을 개망신 주고 로펌에서 쫓아내 버리려고 했던 그녀의 계획이 전부 다 어그러졌다.이제는 임유진을 내보내기는커녕 동료 직원들의 반응을 보면 임유진과 어떻게든 엮이고 싶어 안달인 것 같았다. 어제 그녀와 함께 임유진을 비난했던 몇 명은 임유진이 지나갈 때마다 살갑게 인사를 건네고는 했다.정한나는 그 모습이 눈에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3일 뒤 열릴 재판에 필요한 자료들 정리해주세요.”차 변호사는 임유진에게 재판에 필요한 절차들과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임유진에게는 이미 너무나도 익숙한 내용이었다.“네, 알겠습니다. 차 변호사님, 이 사건 정말 피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