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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0화

강지혁은 허리에 타올 하나만 두른 채 촉촉이 젖은 머리를 하고 나왔다. 그러고는 임유진을 보더니 싱긋 웃었다.

“왔어?”

“응.”

임유진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애먼 벽만 바라보았다.

“왜? 민망해?”

강지혁은 그런 그녀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나 머리 안 말려 줄 거야? 그때 월세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샤워하고 나온 내 머리를 누나가 말려줬었잖아.”

“너는 키가 너무 커. 그러니까 알아서...”

그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강지혁이 허리를 숙였다.

“이제 됐지?”

얼굴 바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그녀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마침 강지혁의 두 눈과 마주쳐 버리고 말았다.

그의 두 눈은 마력이라도 있는 건지 한번 보면 눈을 뗄 수가 없다.

강지혁은 타올 하나를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난 누나가 내 머리 말려주는 거 좋아.”

임유진은 뻣뻣한 손으로 타올을 건네받더니 천천히 그의 머리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었다.

타올 덕에 그와의 눈 맞춤을 피할 수 있어서 어찌 보면 참 다행이었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뿐만 아니라 강씨 저택에 들어와 살면서도 몇 번이나 그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다만 그때와 똑같은 행동이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마음이라는 것이다.

물기를 어느 정도 닦아내자 강지혁은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매만졌다.

“머리가 좀 길었네. 하는 김에 나 머리도 잘라줘.”

“미용실 가서 자르는 게 좋지 않을까? 난 할 줄 몰라.”

임유진은 반사적으로 거절했다.

“거짓말을 제일 싫어한다는 사람이 거짓말하면 어떡해.”

강지혁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때도 나 머리 잘라준 적 있잖아.”

임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강지혁은 그녀와 월세방에서 했던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시 해볼 작정인 건가?

그와 월세방에서 한 일은 많고도 많았다.

“하지만 머리 자르는 도구 같은 것도 없잖아.”

임유진은 다른 핑계를 댔다.

그러자 강지혁은 집사를 시켜 미용실에서나 볼 법한 도구들을 금방 준비해주었다.

이에 조금 말문이 막힌 그녀였다.

이렇게 많은 도구는 필요 없거니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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