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라는 시간 동안 법률 서적을 가까이하지 않았기에 임유진은 머릿속 지식이 전부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막상 책을 들여다보니, 마치 변호사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법조문들이 너무나도 쉽게 외워졌고 스펀지처럼 기존판례와 선배 변호사들의 경험을 흡수하고 있었다.아마 근 4년간의 공백을 대뇌가 본능적으로 메꾸려고 하는 것 같았다.임유진은 두꺼운 두 권의 법률 서적을 흥미진진하게 읽어 내려갔다.강씨 저택 서재 안, 강지혁의 책상 옆에는 어느새 임유진을 위한 책상이 있었고 임유진은 지금 거기에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그러다 이해가 가지 않는 곳은 습관적으로 표식을 해둔 다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도 한다.너무 많이 집중한 탓에 그녀는 지금 강지혁이 옆에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강지혁은 변호사로서의 임유진은 본 적이 없었다. 정학이 말하면 그녀가 감옥에 갇히게 됐을 때조차도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그래서 임유진이 환경미화원 옷을 입고 있던 그때가 바로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로 강지혁은 그녀의 여러 가지 모습을 봐왔지만, 단언컨대 오늘처럼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아마 전에 변호사였을 때도 이렇게 책상에 앉아 잔뜩 집중한 채로 사건을 해결했을 것이다.임유진은 변호사 일이 좋다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는 지금 집중을 넘어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지금 그녀의 눈에는 각종 판례와 법조문들밖에 보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강지혁은 오늘 색다른 그녀의 모습에 또 어쩔 수 없이 반하고 만다. 심지어 오늘은 유난히 더 예뻐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평소에는 그저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같은 모습이라면 오늘은 마치 갓 핀 꽃이 폭풍우를 앞에 두고 끄떡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다.이게 바로 그가 사랑하는 여자인 걸까?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었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강지혁은 순간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러고는 이런 그녀
그러면 배여진은 어떻게 된 거지?만약 이런 꿈을 꾸는 게 기억 상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저 어릴 적 배여진에게 들은 내용으로 꿈을 꾼 거라면 모든 건 그녀의 상상이 되는 것이고 이걸 미리 얘기하면 강지혁은 분명히 또 오해할 게 분명했다.그래서 임유진은 모든 게 확실해지고 나서 다시 강지혁과 얘기할 예정이었다."내가 교수 알아봐 줘?"강지혁의 말하는 교수라면 아마 그쪽에서 제일 유명한 교수일 것이다."내일 이미 다 예약을 해놓은 상태라 일단은 괜찮아. 의사 선생님 만나고 나서 다시 얘기해.""그럼 같이 가."강지혁이 말했다."아니야. 내일은 너 출근도 해야 하고 나 혼자 가면 돼. 머리 아픈 거 보는 것뿐이니까 같이 와줄 필요 없어."임유진은 다급하게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꿈에 관해 물어보는 거라서 강지혁과 함께 가면 아무런 얘기도 하지 못하게 된다.그녀의 말에 강지혁이 시선이 아래로 향했고 기다란 속눈썹이 그의 어두운 눈동자를 가려버렸다."그럼 내일 조심해서 가. 기사님한테 데려다주라고 할게.""응, 알겠어."다음날, 임유진은 약속 시각에 맞춰 진료실에 도착했다. 그녀는 의사에게 그녀가 꿨던 꿈, 가끔 찾아오는 두통 그리고 두통과 함께 동반되는 조각조각의 장면들을 전부 다 토로했다.의사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잃었던 기억이 외부 자극을 통해 일시적으로 복구된 걸 수도 있어요."그 말에 임유진이 잠시 고민해보니 강현수가 그녀에게 어릴 적 일을 얘기했을 때면 어김없이 그 꿈을 꾸게 되고 두통에까지 시달렸다.그때는 그저 꿈의 특성상 오늘 하루 겪었던 사건이 꿈에 투영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그 말들이 모두 일종의 트리거 같은 거였나?"혹시 어릴 때 가족들에게서 기억을 잃었다거나 하는 말을 들은 적 없나요?"임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그녀의 아버지와 계모한테서는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그녀의 외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셔서 이제는 물어볼 수조차도 없게 됐다."물론 기억 상실이 아닐
막상 최면 치료까지 권유받게 되니 임유진은 조금 망설여졌다.만약 정말 그 모든 게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이고 강현수가 그토록 찾아 헤맨 사람이 그녀가 맞으면 그때는 어떻게 하지? 강현수를 찾아가 당신이 찾는 사람이 나라고 얘기라도 해야 하나?그때가 되면 불필요한 트러블만 일으키는 건 아닐까?하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헤매며 마음속이 헛헛할 것만 같다.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벨 소리가 울렸고 발신자는 강지혁이었다. 전화를 받자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병원에서 볼 일은 다 끝났어?""응.""의사가 뭐래?"강지혁이 물었다."뭐... 별거 아니래. 며칠 더 지켜보고 다시 오라고 하네."연인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신뢰인데 임유진은 지금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그럼 다행이고. 내일 비즈니스 전시회가 열리는데 누나도 같이 가야 해. 기사님한테는 내가 ‘루이블랑’으로 가라고 얘기해뒀으니까 누나가 좋아하는 드레스를 골라.""응, 알겠어."통화를 마친 후 강지혁은 고이준을 싸늘하게 쳐다봤다."그 의사가 최면 외에 또 무슨 얘기를 했지?""임유진 씨에게 심리상담 의사의 이름과 연락처를 줬습니다."그러고는 임유진이 받은 것과 똑같은 메모지를 강지혁에게 건넸다. 아마 임유진이 이걸 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유진이가 이 의사를 찾아가게 되면 바로 나한테 보고해.""네, 알겠습니다."고이준은 강지혁의 가장 측근임에도 그가 왜 임유진의 진료상담을 감시하는지는 알지 못했다.물론, 가장 큰 의문은 역시 이 메모지를 건네준 의사가 바로 심리상담 센터 의사라는 것이다.임유진이 왜 심리상담 의사를 보러 갔는지 궁금한 것투성이였지만 고이준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게 바로 그가 강지혁의 곁을 오랫동안 지킬 수 있었던 이유이다....'루이블랑'은 S 시에서 유명한 드레스 숍이다. 하지만 주 고객이 상류층 혹은 연예인이라 일반인은 감히 이곳에서 드레스를 구매할 수 없었다.임유진
그 뒤로 임유진은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모든 직원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예의를 차렸다. 물론 이 모든 게 임유진이라서가 아닌 강지혁이라서인 걸 그녀도 잘 알고 있다.강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당연한 사회이고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임유진은 다만 언젠가는 그녀의 뒤에 있는 누군가가 아닌 임유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싶었다.임유진이 고른 건 보라색 드레스로 깔끔한 디자인에 조금은 보수적이지만 우아함이 돋보이는 그런 드레스였다. 게다가 허리 라인에 다이아몬드와 레이스를 포인트로 둬 영한 분위기까지 풍겼다.임유진이 드레스 선택을 마치자 옆에 있던 직원이 뭔가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곧 김 실장에 의해 제지당했다.그 직원은 임유진이 탈의실로 들어가서야 비로소 말을 꺼냈다."실장님, 저거 배여진 씨가 마음에 들어 한 거잖아요. 이따가 입으러 오시는 거 아니었어요?""지금 사태파악 안 돼? 배여진 씨가 그 드레스를 마음에 들어 하든 말든 임유진 씨가 먼저 골랐으니 이건 임유진 씨 거야. 그리고 배여진 그 여자는 아직 강현수 씨 여자친구도 아니잖아. 임유진 씨는 강지혁 씨가 직접 잘 모시라고 한 사람이고."김 실장이 핀잔을 주자 그 직원은 그대로 입을 닫았다.그때 임유진이 드레스를 입고 탈의실에서 걸어 나왔고 직원들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 드레스는 가게에서 제일 눈에 띄는 드레스도 아니었지만, 임유진이 입고 나오니, 마치 그녀를 위해 디자인된 옷인 것처럼 단아하고 청순한 임유진의 장점을 살려주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까지 더해주었다.아직 화장도 안 한 채 머리도 그저 위쪽으로 대충 묶은 것뿐인데도 벌써 아름다웠다.김 실장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의 대명사를 다 그녀에게 쏟아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임유진은 김 실장의 과장된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그녀 스스로가 봐도 확실히 아름다웠다."이 드레스로 할게요."임유
배여진이 강현수의 다음 여자친구가 될 거라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강현수가 직접 인정한 적은 없었기에 김 실장은 배여진이 나중에 화를 내도 대충 넘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강현수가 직접 가게까지 같이 오는 모습에 그녀는 설마 자신이 잘못 생각한 건 아닌가 싶어 지금 퍽 곤란했다.임유진은 강지혁의 여자이고 배여진은 강현수의 여자이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두 남자의 심기를 거르지 않을 수 있을까!한편, 강현수는 아까부터 임유진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걸어올 때도 지금처럼 김 실장의 대답을 기다릴 때도 그는 그녀를 향한 시선을 거둬들일 수가 없었다.부드러운 그녀의 눈동자에는 강인함이 서려 있었고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마치 그녀를 상징하는 말인 듯 그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임유진은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 같았다.그 예시로 3년이라는 감옥생활도 그녀의 의지와 희망을 앗아가지 못하지 않았는가!배여진은 넋이 나간 듯한 강현수를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더니 곧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나 오늘, 이 드레스 입은 거 현수 씨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릴 때 그랬잖아요. 현수 씨는 보라색을 좋아해서 나한테 꼭 보라색 치마를 선물해 주겠다고."강현수는 배여진의 말을 듣고 또다시 가슴이 미어졌다. 눈앞에 그의 시선을 단번에 뺏어간 여인은 자신이 찾는 사람이 아니고 옆에 있는 배여진이 어릴 적 그 소녀이다.왜 배여진일까? 왜 임유진이 아닌 걸까!"다른 거 고르면 되지. 보라색 드레스가 이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강현수의 말에 김 실장은 그제야 활짝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배여진은 그의 말에 불만 가득한 얼굴을 했다.하지만 그때 임유진이 입을 열었다."이 옷이 그렇게 마음에 들면 언니 입어. 내가 양보할게."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김 실장에게 말했다."드레스는 다른 거로 고를게요."배여진은 임여진이 먼저 양보하겠다고 하자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하지만 곧 마치 자신한테는 적선하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또
강지혁은 시선을 강현수에게로 돌렸고 강현수도 그의 시선을 느낀 후 강지혁을 바라봤다.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 사이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는 듯했다. 그러다 강지혁은 대뜸 입꼬리를 올리더니 임유진의 어깨를 감싸 안고 얼굴을 가까이에 갖다 대고 물었다."아까 뭘 양보한다고 한 거야?"강현수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강지혁은 임유진에게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 그녀는 자신의 것이라고, 함부로 넘보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했다.강현수는 친구 약혼녀를 마음에 두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여자들이 넘쳐났고 이제까지 한 번도 남의 떡을 탐내본 적이 없다.하지만 왜 임유진만은 예외일까? 역시 어릴 때 그 소녀와 너무 닮아서일까?임유진은 지금 온몸이 강지혁에게 둘러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지혁이 너무 가까이 다가온 탓에 그녀는 지금 고개를 들면 그의 속눈썹까지 셀 수 있었다."이 드레스, 언니가 마음에 들었던 거라고 하길래 그냥 언니한테 양보하고 나는 다른 드레스 고르려고."임유진이 핑크빛으로 물든 얼굴로 얘기하자 강지혁은 그제야 허리를 곧게 세우며 말했다."그래, 그럼."임유진은 배여진의 앞에 다가가 말했다."언니, 이따 이 드레스 벗어서 줄게."배여진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토록 원하던 드레스였지만 지금은 마치 쓰레기를 주워입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어릴 때부터 항상 임유진에게 지고 살았는데 이제는 드레스 한 벌에서도 그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건가?배여진은 언젠가 임유진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바로 그때 임유진이 고개를 돌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런데 언니, 강현수 씨가 정말 언니한테 보라색 치마를 선물해 주겠다고 했어?"임유진은 ‘언니한테’라는 말을 강조했고 그에 배여진은 순간 몸에 소름이 돋더니 이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연하지."하지만 말을 내뱉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잔떨림이 있었다.임유진은 그녀의 답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채 고개를
게다가 아까 상황을 돌이켜 봤을 때 임유진은 분명 자신이 보라색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후 생각을 바꿨다.확실하게 선을 그으려는 걸까...?이 생각이 머리에 스치자 강현수는 기분이 언짢아졌다....강현수와 배여진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VIP 탈의실에 들어왔다. 배여진이 임유진이 입었던 드레스를 입고 강현수의 앞에 나타나자 그는 그저 ‘괜찮네.’라는 한마디만 하고 아무런 리액션도 없었다.배여진도 이 드레스는 자신보다 임유진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걸 알고 있다. 게다가 아까 임유진의 모습을 먼저 봤던 터라 배여진이 상대적으로 덜 예쁘게 비칠 수도 있었다."현수 씨, 역시 이 드레스 유진이한테 양보할 걸 그랬을까요...?"배여진은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나는... 나는 그저 현수 씨한테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어릴 때 나한테 보라색 좋아한다고 그랬었잖아요."배여진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또다시 말을 이었다."나 결혼생활이 힘들 때면 항상 어릴 때 생각을 했어요. 현수 씨가 꼭 나 찾으러 오겠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언젠가는 날 그 지옥 같은 생활에서 꺼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현수 씨가 짠하고 나타난 거 있죠!"그녀는 점점 격앙되어 강현수의 팔까지 잡았다.강현수는 고개를 숙여 눈앞에 있는 여자를 보더니 서서히 팔을 뺐다."여진아, 내가 너한테 잘해주는 건 네가 어릴 때 날 구해줬기 때문이야. 네가 필요로 하는 거, 원하는 거 다 들어줄 수 있어. 하지만 거기까지야."배여진은 그만 몸이 굳어버렸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지금 욕심부리지 말라는 건가?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는 건가?왜? 가난한 시골 여자라서? 아니면 대학교도 못 간 그런 여자라서? 그것도 아니면 이미 한번 결혼한 몸이라서?!배여진은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어릴 때 구해준 거에 대한 보답만 해주고 여자친구는 못 된다면 이 생활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강현수에게 애
강지혁은 뒤에서 임유진을 와락 끌어안더니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가까이 댄 후 뜨거운 입김을 토해냈다."너무 예쁘다, 누나."임유진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스킨쉽을 하는 강지혁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야.. 야 이거 놔. 직원들이 보잖아!"그녀는 낮게 속삭이며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뭐 어때. 사랑하는 연인이 껴안고 스킨쉽 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니야?"임유진은 한숨을 내뱉은 후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봤다.거울 속의 그녀는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강지혁의 품 안에 갇혀 있었다. 강지혁의 올 블랙 슈트는 그녀의 은백색 드레스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마치 화보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그때 임유진은 거울 속 강지혁과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마치 거울을 뚫어버릴 듯 서로를 뜨겁게 바라봤다.강지혁의 턱은 그녀의 어깨에 놓여있고 검은색 머리카락은 뒤로 넘겨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사람을 홀리는 듯한 그의 눈동자는 임유진을 삼키듯 보고 있었고 그의 섹시한 입술은 천천히 열리며 그녀를 향해 예쁘다는 말만 반복했다."너무 예뻐."강지혁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음에도 임유진은 행여 직원들에게 들릴까 봐 주위를 살폈다."걱정하지 마. 나 잘 참고 있으니까. 이따 잘 참았다고 상 줘야 돼, 알겠지?"강지혁의 입술은 그녀의 목을 간지럽혔고 임유진은 이제 몸 전체가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한편, 가게 직원들은 지금 말을 잇지 못했다. 차갑고 안하무인에 여자는 절대 가까이하지 않는 강지혁이 여자한테 이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게다가 그의 절절한 눈빛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임유진에게 푹 빠진 남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주얼리도 강지혁이 직접 임유진을 위해 루비를 골라주었다."너무 비싸.""누나한테 어울리는 거로 고른 거야."강지혁은 임유진에게는 뭐든 제일 좋고 제일 비싼 것만 주고 싶었다. 그녀에게 과거의 상처를 덮을만한 행복을 주고 싶었다. 물론 아무리 돈으로 메꾼다고 해도 이미 지나버린 시간과 그녀가 받은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