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혁은 조용히 임유진을 바라보았다.“누나는 내가 돈이 너무 없어 보여??”“아니, 아니야!”유진은 고개를 저었다.“나는 단지 네가 더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거야.” 아마도 유진은 평생 이런 삶을 벗어나지 못할 테지만, 지혁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걱정 마. 그렇게 될 거니까. 그때가 되면 난 누나가 어떤 삶을 원하든 다 들어줄 수 있을 거야.”지혁은 진지한 얼굴로 유진을 바라보았다.지혁은 단지 게임일 뿐일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유진의 삶을 바꾸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일은 지혁에게는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유진은 지혁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유진은 지혁이 정말 그렇게 해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유진은 지혁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 웃으며 말했다. “그래, 좋아! 그럼 나는 이제 우리 동생만 믿는다? 그럼 난 아무 일도 안하고 편하게 앉아서 돈만 펑펑 써야지! 백수처럼!”“그래, 그렇게 해.”지혁의 깊고 까만 눈동자가 반짝였다. ‘누나가 원하기만 한다면, 평생 돈만 쓰는 백수로 살 수 있게 해 줄게.’다음날, 고이준은 휴게실에서 직원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오늘 우리 강 대표님 입은 니트 스웨터 봤어?][아니, 왜?][지금 인터넷 상에서 가장 핫한 스웨터인 것 같아서 말이야.][그럴 리가 있겠어? 강 대표님이 그런 옷을 입는다는 게 말이 돼?][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혹시 유명 브랜드 옷을 짝퉁으로 제작되어서 유행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긴, 대표님이 입고 계신 옷은 느낌이 다르기는 해. 나도 우리 남편에게 사주고 싶을 정도라니까.][그 정도야? 그럼, 나도 그 옷 살 수 있는 링크 좀 보내줘.]이준은 조용히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이준은 창피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오늘 보스가 입고 있는 옷은 지금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그 니트 스웨터가 맞았다. 심지어 보스가 입은 것과 똑같은 옷을 입고 출근한 직원도 보았다. 정작 보스
“아마도 99개쯤 되는 것 같습니다.”고이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이준은 신문에 나왔던 소민준의 인터뷰를 기억하고 있었다. 민준은 당시 취재진에게 99개의 전광판 광고를 내준 의미는 99번의 생을 다시 살아도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이것은 한때 진세령의 팬들로부터 최고의 사랑 고백으로 추앙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세령은 현재 연예계에서 인기 있는 여자 스타였고 세령을 아끼는 팬들도 많았다.“다 내려!” 강지혁이 단호히 말했다.“전부 다요?” 이준은 의아한 표정이었다.“전부 다.” 지혁은 다시 한번 확실하게 일렀다.“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이준은 대답은 했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갑자기 소민준의 옥외 전광판 광고를 왜 내리라고 하시지, 설마 소 씨 가문이나 진 씨 가문이 우리 보스에게 미움을 산 건가? 하지만, 보스는 이미 그들에게서 약혼식 초대장도 받았잖아…….’이준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설마, 우리 보스가 광고를 내리라고 하는 이유가…… 혹시 임유진 씨 때문인가?’이준은 놀라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우리 보스가 여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한단 말이야? 고작 그 여자 한 사람을 위해 소 씨 가문과 진 씨 가문 반대편에 선다고? 하지만, 전에 아내가 될 뻔했던 여자인 진애령을 위해서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잖아!’‘임유진이라는 여자는 우리 보스에게 대체 어떤 존재지?’이준은 아무리 생각해도 보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임유라는 호텔 복도에 서서 멀끔한 정장에 고급 구두를 신고 신사다운 모습으로 서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형부…… 아니, 이제는 형부라고 부를 수 없지요. 소 대표님과 우리언니는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요.”유라는 민준이 이곳 호텔에서 식사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알아내 민준을 만나기 위해 이 곳에 왔다. 유진이 오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자기라도 올 수밖에 없었다.민준은 유라의 입에서 언니
“누가 형부라는 거죠?”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갈색 코트에 세련된 차림의 아름다운 여자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여자는 임유라를 발견하고는 냉소를 지었다.“누군가 했더니, 살인자의 여동생이군요.’여자의 말에 유라의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유라는 눈 앞의 여자가 진세령, 즉 소민준의 현재 약혼녀라는 것을 알아보았다.세령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유라를 쳐다보았다. “기억나요. 당신은 이름도 없는 배우잖아요. 왜 우리 민준 씨 앞에 나타나서 형부라고 부르는 거죠? 혹시 여주인공이라도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요?”유라는 아무런 반격도 못하고 당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좋은 구경이라도 난 것처럼 세 사람이 서 있는 곳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유라는 속으로 세령을 욕하며 정작 입 밖으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사람만 치지 않았어도, 이미 인기 스타가 되었을 테고 그랬다면 오늘 같은 모욕은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순간, 유라는 자신이 애초에 괜찮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임유진 덕분이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왜 안 가고 그러고 있죠?” 세령은 불쾌한 얼굴이었다.유라는 미소를 지으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민준을 바라봤다. ‘그냥 이대로 돌아간다면, 애당초 내가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지.’“그만 돌아가. 나는 네 언니와 아무 사이도 아니야.” 민준이 냉정하게 말했다.“하지만…….” 유라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어 머뭇거렸다.그러자 세령이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당신이 가지 않고 계속 버티고 있겠다면, 경비원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유라는 할 수 없이 입술을 깨물며 그곳을 떠났다. 나중에 다시 기회를 잡으려는 생각이었다.세령은 고개를 돌려 민준을 바라봤다.“당신 아직까지 임유진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건 아니죠? 방금 임유라가 당신에게 형부라고 부르던데, 당신은 강지혁이 두렵지도 않아요? 잊지 말아요. 우리 언니는 그 사람과 결혼하려고 했었어요.”이 말은 그에게 마치
진세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민준을 바라보았다. 이번 광고는 소 씨 가문이 주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소민준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볼게…….”민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민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뭐? 내렸다고? 전부 다? 위약금은 어떻게 하고?”“그쪽에서 위약금을 전액 배상하더라도 광고를 내리겠다고 했어요.”담당 매니저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그리고 대표님, 다른 회사에도 연락해 봤는데 광고를 받으려는 곳이 하나도 없어요.”이 말은, 소 씨 가문과 진 씨 가문은 자기 회사 말고는 다른 곳에 더는 광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도대체 누가 감이 이런 짓을 한 거야?” 민준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소리를 질렸다.“GH 그룹이에요.”매니저가 대답했다.“이번 일은 GH 그룹의 비서 고이준이 직접 지시한 거예요.”민준은 일순간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고이준……. 그 사람은 강지혁의 개인 비서잖아! 설마 이 모든 일 강지혁의 뜻인가? 그가 정말 전광판 광고를 다 내리라고 했다는 거야?’‘이게 무얼 뜻하는 거지? 그는 소 씨, 진 씨 두 가문의 결합을 반대하는 건가?’민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소 씨 가문이 도시전체에 내걸었던 99개의 전광판 광고는 하룻밤 사이에 전부 사라졌다. 이것은 S시의 제일 핫한 화제로 되었으며, 인터넷에서는 민준과 세령의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냐는 찌라시까지 떠돌았다.그날 밤, 민준과 세령은 둘의 관계에는 이상이 없으며 옥외 전광판 광고가 내려간 건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기 때문임을 밝혔다. 또한, 두 사람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알렸다. 두 사람의 입장 표명에 세령의 팬들은 세령을 더욱 추앙하게 됐다.유진은 월셋방에 앉아 뉴스를 보다가 어리둥절해졌다. ‘혁이에게 광고 이야기를 한 게 어제인데, 다음 날 바로 광고가 내려가다니!’“광고가 사라지니까 기분이 좋아?” 갑자기 지혁의 목소리가 들려
지혁은 몸이 뻣뻣하게 굳었지만 저항하지 않았고 유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그녀의 숨결을 느꼈다.은은하고 향긋한 향기는 그에게 안도감을 주었다.마치 유진의 곁에 있으면 긴장했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 같았다.“혁아, 너는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너의 곁에 있을 거야.”유진의 목소리가 천천히 그의 귓가에 울렸다.“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에 있을 거야?”지혁이 중얼중얼 물었다.“그럼.”유진은 당연하게 대답했다.“날 무서워하지 않을 거지?”지혁이 말하자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내가 왜 너를 무서워하겠어, 우리 혁이는 이토록 착한데 널 이뻐할 시간도 부족해. ”우리 혁이.이런 호칭은 마치 자신의 것이라고 점찍은 것 같았다.하지만 지혁은 이런 호칭을 싫다고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기뻐했다.그가 고개를 들자 두 사람의 얼굴이 거의 붙어 코끝이 부딪힐 것 같았다.유진은 순간 얼굴이 빨개져서 무의식적으로 뒤로 피하려고 했지만 지혁이 그녀의 허리에 껴안으며 그녀가 뒤로 피하려는 것을 막았다.“누나, 내가 착해서 좋아하는 거야?”지혁이 나지막하게 물었다.지혁의 잘 생긴 얼굴이 보이자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깨물었고 볼이 더 뜨거워진 것 같았다.분명 평범한 말인데 왜 그의 입에서 나오자 그렇게 달콤한 것일까?“음.”한참이 지나서야 유진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그럼 내가 더 착하면 누나가 저를 더 좋아할 거야?”그가 말했다.“…….”어린아이가 말하면 천진하고 귀엽게 느껴질 것이지만 지혁이 말하니 아주 매혹적이었다.“그럴 거야?”그는 그녀에게 조금 더 다가갔고 얇은 입술이 거의 유진의 입술에 붙을 뻔했다.“……그럴 거야.”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유진은 분명히 지혁을 동생으로 여기는데 왜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올 때 그녀는 마치 모든 피가 머리 위로 솟아나는 것처럼 온몸이 뻣뻣해지는
유진은 이렇게 빨리 세령을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세령은 여전히 당시 유진이 처음 보았을 때의 모습과 같다. 아름다운 생김새, 정교한 메이크업 그리고 화려한 옷차림. 마치 연예계의 톱스타 같다.당시 감옥에서 손톱을 뽑으라고 했을 때도 세령은 여전히 정교하고 예쁜 명품 옷을 입었고 음침한 감옥과는 어울리지 않았다.그렇다, 아주 화려했다.그러나 이런 신분이 고귀한 영애라 해도 악한 목소리로 손톱을 뽑으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잔혹한 행동을 한다.하여 그녀가 다시 생각도 하기 싫은 악몽이 되었다!한편 세령의 곁에 있던 인애는 유진을 보자 곧바로 비웃었다.“누구인가 했네. 세령아, 네 언니를 해친 가해자잖아! 진짜 보복을 당했네. 여기에서 환경미화원일을 하다니.”유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바닥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쓸었다. “정말 얼굴이 뜨거워. 나라면 남의 언니를 죽였으면 동생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무릎 꿇고 빌겠는데 정말 아무 일도 없는 척 하네.”인애는 계속 비꼬았다.그러자 유진은 한숨을 쉬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난 이미 대가를 치렀어.”터무니없는 죄명 때문에 그녀는 3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고 변호사 면허가 취소되었으며 게다가 감옥에서 온갖 고생을 했다. 그리고 출소 후 환경미화원으로 일 하고 있다.그녀의 인생은 모든 것이 바뀌었고 너무나 큰 대가를 치렀다.“대가? 감옥살이 3년 밖에 안 했는데 대가라고 생각해?”세령이 차갑게 말했다.“임유진, 우리 언니는 목숨이 없어졌어.”“그럼 더 이상 어떻게 하고 싶은데?”유진은 차분하게 되물었다. 어차피 그녀는 최악의 인생을 겪고 있다. 그녀는 지금 가진 것이 하나도 없고 잃을 것도 없다.세령은 형광색 환경미화원 작업복을 입은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3년이란 시간, 그녀의 까만 머리는 누렇게 변했고 비록 얼굴은 여전히 청순하지만 영혼은 뺏긴 듯한 눈빛, 그리고 빗자루를 잡고 있는 두 손은 이미 힘든 일에 적응이 된 것 같
유진은 그 말이 너무 역겨웠다.“그럼 그냥 내 동생에게 말하면 되잖아.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 일해야 되니까 길 좀 비켜줘.”인애가 화를 내며 말했다.“네가 아니라면 소민준이 세령이에게 프로포즈하려고 올린 광고가 왜 내리게 되겠어? 네가 강지혁의 약혼녀를 죽였으니 강지혁이 소 씨 가문에게 칼을 겨누는 거잖아. 하지만 넌 팔자 좋게 여기에서 마음 편하게 청소를 하고 있잖아.”유진은 흠칫 놀랐다. 그녀는 지혁이 한 일이라는 걸 생각지도 못했다.강지혁……지난번 그녀가 신정민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강지혁 때문이다.강지혁은 S시의 신과도 같다. 그는 거대한 GH그룹을 장악하고 있으며 아무도 감히 그를 건드릴 수 없고 그의 한마디는 마치 S시의 성지와 같다.그리고 그녀와 강지혁은 정말 많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애초에 민준이 급히 유진이와 헤어졌을 때 S시에서 감히 그녀의 변호사가 되줄 사람이 없었고, 온갖 고통을 겪은 그녀에 대한 감옥 교도관의 내혹한 태도마저, 모두가 강지혁 때문인가?유진이가 교통사고에서 죽인 사람이 바로 강지혁의 약혼녀였기 때문이다.심지어 한번은 감옥에서 유진이는 차가운 물에 머리를 눌려 질식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그녀가 감옥에서 이와 같은 괴롭힘을 당한 것도 강 씨 가문의 지시 때문이다. 그리하여 강 씨 가문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그녀를 더 열심히 밟고 괴롭혔다.유진은 인애의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바닥을 쓸었다.인애가 너무 화 나 유진이의 뺨을 때리고 싶었지만 세령이 인애를 막았다.“세령아, 임유진은 너무 뻔뻔해. 내가 제대로 혼내 주야겠어.”인애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세령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내 반지 하나가 없어졌어. 이곳에 떨어졌는데 누가 쓰레기인 줄 알고 버렸나봐. 환경미화원더러 좀 찾아줘라고 해야겠어.”인애는 흠칫 놀라더니 재빨리 알아듣고 웃으며 말했다.“맞아. 잘 찾아줘야지. 네 반지는 엄청 비싸잖아. 이곳 쓰레기를 하나하나 다 뒤져봐야겠어.”인애는 말을 하며 임유진
“네? 차에 간다고요?”팀장은 깜짝 놀랐다. 2천만 원이 넘는 반지를 잃어버렸는데 그녀는 같이 찾을 생각조차 안 했다.“세령이는 잘나가는 연예인인데 당신들이 반지를 찾는 걸 서서 기다리겠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팬들에게 둘러싸일 거예요.”박인애가 말하자 팀장도 그제야 이해가 갔다.세령의 차는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차에 앉아 있다해도 쉬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유진이의 초라한 모습을 볼 수 있다.“쟤는 쓰레기를 뒤지는 거랑 어울려.”인애는 악독하게 웃었다.“방금 그렇게 잘난 척해도 지금 쓰레기 더미에 있잖아.”세령이 담담하게 말했다.“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가자.”지금 유진의 모습은 아무런 위협도 없는 것 같았다.비록 민준이 그녀를 사랑했지만 결국 민준한테서 버리게 되었다.유진은 감옥에 있을 때 열 손가락이 끊임없이 피가 흘렀고, 손가락의 뼈가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억울한 누명을 썼고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했다!하여 세령은 그녀가 너무 미웠다.왜 그녀는 이런 고통을 겪고도 이와 같이 버티는 것일까!정말 무죄라고 견지한다면 무죄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법에는 증거 뿐이다!“맞다! 기념이라도 남겨야지.”인애는 말을 하더니 핸드폰을 꺼내 유진이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찍었다.이 일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정상 퇴근은 불가능이었다. 게다가 미옥조차도 그 있지는도 모르는 반지를 찾아야 했다.유진은 고무장갑을 벗고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혁아, 나야. 오늘 일이 좀 있어 늦게 끝날 거 같아. 저녁은 자기절로 먹고. 날 기다릴 필요는 없어.”전화 저쪽에서 청아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그냥……음, 회사 일 때문에. 아무튼 날 안 기다려도 돼.”유진은 말하면서 팀장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자 재빨리 전화를 끝고 장갑을 껴서 쓰레기 더미를 뒤적였다.GH그룹 대표 사무실.지혁이 이준에게 분부했다.“임유진 회사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봐.”이준은 대답하고서 곧바로 대표실을
백연신은 차창을 통해 한지영이 머무르고 있는 1층 방의 창문을 바라보았다.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녀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는지,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만든 자신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는지 같은 질문이 절로 떠올랐다.“안 올라가십니까?”기사가 물었다.“응, 이렇게 보는 거로도 충분해.”백연신은 말을 하며 계속해서 아파트 창문에 시선을 고정했다.내일이면 한지영에게 씌워진 오명을 전부 다 벗겨낼 수 있다....다음날.인터넷은 고은채의 기사로 난리가 났다.한 기자가 고은채에게 백연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그것도 여러 명이 있었다며 폭로했기 때문이다.그중 제일 화제가 된 남자는 지하 클럽에서 호스트로 활동했었던 남자였다. 그 남자는 고은채를 만난 후 아주 오랜 기간 그녀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왔고 그 덕에 현재는 억 소리가 나는 별장에서 살고 있다고 하며 외출할 때도 꼭 경호원을 한 명씩 데리고 다닌다고 한다.고은채의 기사를 폭로한 기자는 이것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라며 자신의 수중에는 인터넷에 공개된 그녀가 남자와 끌어안고 키스하는 수위가 약한 사진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해괴망측한 취향이 가득 담긴 사진도 다수 있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아무것도 모른 채로 백연신의 별장에서 석방된 고은채는 기자들의 손에 들린 사진과 그들의 질문을 통해 아주 빠르게 알아챘다. 지금 이건 백연신이 짠 각본이라는 것을.그녀와 친밀한 사이라고 소개된 호스트는 확실히 그녀의 파트너가 맞다. 백연신의 철벽으로 풀지 못했던 욕망을 어디든 분출해야만 했으니까.아마 기자가 공개하지 않은 사진에는 그녀가 남자의 무릎을 꿇리고 개처럼 바닥을 기게 하는 등의 모습이 찍혔을 것이다.하지만 고은채가 호스트와 놀아난 건 2년 전의 일이었다. 하이에나 같은 기자가 아무런 요구도 해오지 않고 그 사진들을 2년이나 간직하고 있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즉, 해당 사진들은 기자가 자기 힘으로 입수한 사진이 아닌 백연신에게서
당시의 백연신은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고는 고은채 밖에 없었고 고은채는 고고하게 고개를 치켜든 채 뭐든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있었다.그녀가 도와줘야 백연신이 살 수 있고 또 그녀가 도와줘야만 백연신은 앞으로도 훨훨 날아오를 수 있었다.자신이 우월하다는 감각에 취한 탓일까, 고은채는 홧김에 그에게 한지영을 구해주는 대신 자기 옆에 있으라고 했다. 이제껏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이 남자를 지금에야말로 자기 발밑에 무릎을 꿇리고 온전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그래서 백연신이 한지영에게 이별을 고했을 때 그녀는 그의 육체라도 곁에 묶어둔 것에 환희를 느꼈다. 어차피 마음 같은 건 시간의 흐르면 당연히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백연신은 어느샌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점점 벗어나 있었고 형세는 완전히 뒤집혀버렸다.고은채는 백연신이 미련 없이 몸을 돌리자 그의 뒷모습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다시 그 여자랑 잘 될 수 있을 것 같아? 당신과 그 여자의 인연은 이미 5년 전에 끝이 났어. 두 번 다시 이어질 수 없다고!”백연신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녀의 말 따위는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말이다.고은채는 백연신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고씨 가문에 살길이 터진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가문이 재기할 수 있게 조금이라도 힘을 모으는 것뿐이다.내일부터 꽤 치욕스러운 나날을 보내면서 말이다.고은채는 한지영의 루머를 바로잡아주고 백연신과 합의 하에 파혼한 것처럼 연기해야 할 생각만 하면 벌써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백연신의 차량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서서히 별장에서 멀어졌다.운전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백연신을 바라보며 물었다.“어디서 모실까요?”백연신은 몇 초간 가만히 있더니 이내 한지영이 현재 살고 있는 주소로 향해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시트에 등을 기댔다.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생각해보면 그는 어릴 때부터 어느 한순간 피곤하
“뭐...?”고은채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백연신을 바라보았다.그도 그럴 것이 이때만을 기다려온 사람이 갑자기 죽여야 하는 상대에게 살길을 터주겠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까.“내가 돈을 빌려주면 해진 그룹은 파워팰리스 프로젝트만큼은 사수할 수 있을 거야.”백연신의 말에 고은채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그의 말을 달리하면 고씨 가문은 파워팰리스 프로젝트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잃게 된다는 뜻이었다.그리고 그렇게 되면 고씨 가문은 더 이상 부유층이 아니게 되고 한순간에 지위가 하락하게 된다.‘아니야. 이성적으로 생각해. 파워팰리스 프로젝트만 제대로 사수해도 다시 재기할 가능성이 생겨!’“원하는 게 뭐야? 이유도 없이 자금을 빌려주지는 않을 거 아니야.”고은채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분명히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 거라고 생각하며 말이다.“내가 원하는 건 우리 둘의 결혼 파기야.”백연신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고은채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빈정거리며 웃었다.“결혼 파기? 우리 집안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결혼 파기 그까짓게 안 될까 봐 무서워?”“나는 네가 직접 사람들에게 우리 결혼은 합의하에 없던 일이 된 거라고 하길 원하는 거야. 그리고 지영이가 그런 모욕적인 오명을 쓰게 된 것도 네 입으로 직접 해명하길 원하고.”백연신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고은채는 머릿속을 스친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순간 눈을 크게 떴다.“설마... 파워팰리스 프로젝트로 딜을 하려는 게 한지영 때문이야?”“아니면? 내가 그 이유 말고 너희 가문에게 살길을 터줄 이유가 또 있어?”고은채의 두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그도 그럴 게 백연신은 지금 고작 한지영 하나 때문에 몇조가 되는 이익을 포기한다고 하고 있으니까.‘그렇게 오래 판을 짜놓고 이제 와서 여자 하나 때문에 이익을 포기하고 후환까지 남겨둔다고...? 미친 거야?’고은채는 이쯤 되니 백연신이라는 남자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안 적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강지혁은 불안한 만큼 더욱더 강하게 임유진을 몰아붙였다. 그러다 갑자기 입술을 떼더니 임유진의 눈을 마주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만 내 곁에 있으면 나는 하나도 안 아파... 그러니까 날 떠나지 마.”그러고는 또다시 입술을 부딪치며 마치 그녀의 모든 걸 다 집어삼키려는 듯 폭풍 같은 키스를 퍼부었다....“백연신 씨, 당신 이거 납치야.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거라고! 우리 부모님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빨리 날 내보내!”고은채는 백연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쳐댔다.이곳에 갇혀있는 동안 그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휴대폰도 압수당한 바람에 그녀는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너희 부모님은 지금 너희 집안에 떨어진 불똥 때문에 그거 처리하느라 널 챙길 여유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미 너희 부모님한테 따님이 현재 내 별장에 있다고 얘기했어.”백연신은 소파에 앉으며 느긋한 태도로 얘기했다.“불똥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고은채가 급 심각해진 얼굴로 물었다.이에 백연신은 부하직원에게 눈빛을 보냈고 부하직원은 리모컨을 들어 거실에 있는 티비를 켰다. 모니터 속에서는 요 며칠 해진 그룹과 고씨 가문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도한 뉴스들이 편집되어 흘러나오고 있었다.고은채는 굳은 얼굴로 영상을 계속해서 바라보다 마지막에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몸을 덜덜 떨었다.‘대체 내가 여기 있는 동안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우리 집안을 완전히 망하게 할 생각이야?’“지금껏 쥐새끼처럼 몰래 움직이면서 뒤에서 칼을 갈고 있었던 거야?!”고은채는 분노로 범벅된 얼굴로 백연신을 바라보았다. 고씨 가문이 며칠 사이에 이렇게까지 무너진 걸 보면 꽤 오랜 기간 이 상황을 준비한 게 틀림없었다.그녀는 그가 정성스럽게 판을 짜는 동안 조금의 의심도 없이 아직도 자신이 모든 걸 주무르고 있다고 착각
“너는 그 기억을 영영 되찾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어?”강지혁의 질문에 임유진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그가 말하는 기억이 절벽에서의 일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다. 이곳으로 돌아온 그 날 고이준에게서 들었으니까.강지혁은 두 눈을 임유진에게 고정한 채 그녀의 반응을 조금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가만히 바라보았다.임유진은 숨을 한번 깊게 들이켜더니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닌 현재야. 그리고 나는 고통으로밖에 다가오지 않을 과거라면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기억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기억을 잃어버린 상태라도 괜찮다는 소리야?”“응.”임유진은 고통스러운 과거로 서로가 고통을 받느니 차라리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리면 당시의 고통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같은 건 영원히 알지 못한 채로 살 수 있게 될 테니까.임유진은 말을 마친 후 손을 뻗어 강지혁의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졌다.“혁아, 기억을 회복하는 것도 좋지만 무리는 하지 마. 네 몸을 축내면서까지 과거 일을 떠올리지 말라는 소리야. 나는 네가 행복하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으니까.”강지혁은 그녀의 말에 머리가 다시금 아파 왔다.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뱉어져 나온 순간 마치 거대한 돌덩이가 심장을 꽉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네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어...”강지혁은 자기가 말하고는 자기가 더 놀랐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대체 왜?왜 이 말이 이토록 익숙한지, 왜 이 말을 수백 번은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언제 이런 말을 한 거지? 임유진이 절벽에서 떨어지고 난 뒤에?강지혁은 기억을 헤집으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머리는 점점 더 아파져 왔다.게다가 이제는 얼굴이 창백하게 굳고 이마에 땀까지 송골송골 맺히며 고통스러운 신음까지 멋대로 흘러나왔다.임유진은 상태가 점점 더 심각
소민아는 양 볼이 퉁퉁 부은 채로 씩씩거리며 딸과 함께 저택에서 나왔다.임유진은 율이와 현이를 씻긴 후 방으로 데려가 잠을 재웠다.현이는 많이 피곤했던 건지 엄마와 오빠에게 번갈아 뽀뽀한 후 금세 잠자리에 들었다.율이는 동생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진지한 얼굴로 임유진에게 말했다.“나는 엄마가 계속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요.”임유진은 아이의 말에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아무래도 소민아가 엄마 자리를 꿰차고 들어오기라도 할까 봐 걱정됐던 모양이다.“걱정하지 마. 너희 아빠는 절대 다른 여자를 너희 엄마라고 데려오지 않을 테니까.”아이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러고는 굿나잇 인사를 한 후 드디어 잠자리에 들었다.임유진은 천사 같은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아이들을, 이 가정을,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무슨 수를 써서든 꼭 지켜주고 싶었다....침실로 돌아온 임유진은 강지혁이 눈을 질끈 감은 채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는 걸 보고 빠르게 그쪽으로 달려갔다.“왜 그래? 또 두통이 도진 거야?”강지혁은 걱정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에 몸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임유진은 그의 눈빛에 어려있는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조금 놀라며 물었다.“혁아, 무슨 일...”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혁아.”임유진은 그런 그의 등을 끌어안으며 물었다.“또 머리가 아파?”강지혁은 한참을 침묵한 뒤에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응...”방금 머리에 통증이 일었을 때 그는 그의 요구로 종일 경호원들을 뒤에 붙인 채로 있어야만 했던 임유진의 모습을 기억해냈다.아무리 임신 중이라 걱정이 됐다고 해도 이건 도가 지나쳤다. 이건 마치 그녀가 떠날 아주 조금의 틈조차도 주지 않으려는 듯한 무척이
소민아는 순간 임유진에게 맞은 것보다 더한 타격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괜찮아.”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은 그녀의 손바닥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다음부터는 때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네가 직접 손을 올리지 말고.”그는 임유진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걱정을 멈추지 않았다.“이것 봐. 빨개졌잖아.”“회, 회장님, 저는 더...”소민아는 저도 모르게 자기가 더 아프다고, 자기는 얼굴이 붓기까지 했다며 속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강지혁은 그녀의 말에 그제야 소민아의 존재를 의식한 듯 쌀쌀맞은 말투로 얘기했다.“내 아내가 5년이나 집을 떠나있었다고 해도 여전히 내 아내고 이 집안의 안주인이야. 대체 언제부터 집안의 사람도 아닌 것이 내 아내한테 훈수를 두기 시작했지? 아까 이 집을 자기 집처럼 생각한다고 했나? 나는 너라는 인간을 한번도 내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 주제넘은 생각은 집어넣어.”소민아는 차갑디차가운 그의 말과 눈빛에 몸을 움찔 떨었다.“하지만 저는... 제 딸은 강씨 가문의...”“내가 거둔 양녀는 소안나지 네가 아니야. 너는 우리 가문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고. 알아들어?”소민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당신한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소리네...? 내가 당신을 가지기 위해 그렇게도 노력을 했는데... 그게 다 부질 없는 짓이었다고?’소민아는 강지혁에게 손 마사지를 받고 있는 임유진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5년 만에 나타난 여자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차지한 것이 도무지 용서되지 않았다.“회장님은 임유진 씨 때문에 가문이 불필요한 욕을 먹게 될까 봐 걱정도 안 돼요? 아무리 강씨 가문이라도 여론이 박살 나면 그때는...”강지혁은 소민아의 말을 자른 채 담담한 목소리로 얘기했다.“내 아내가 원하면 나는 얼마든지 이 가문을 바칠 수 있고 얼마든지 이 가문을 내 손으로 망가트릴 수 있어. 강씨 가문 전체가 내 아내 건데 대체 네가 뭐라고 자꾸
“그... 유진 씨랑 유진 씨 스승님이 이상한 관계라는 거요. 애가 휴대폰에 눈을 일찍 뜨는 바람에 평소 제 휴대폰을 들고 이런저런 영상을 클릭해보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됐나 봐요. 물론 저는 안 믿어요! 유진 씨 스승님이 유진 씨랑 부적절한 관계라 변호사 업계에서의 유진 씨 이름을 날리려고 일부러 재판에서 졌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요즘 가짜 뉴스가 어디 한두 갠가요...”소민아는 겉으로는 임유진을 믿는 척 옹호하는 척하면서 강지혁이 혹시라도 제대로 못 들었을까 봐 다시 한번 아주 자세하게 얘기를 해줬다.“뭘 많이도 봤나 보지?”강지혁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유진 씨 일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어쩌다 그런 이상한 내용까지 보게 됐어요. 저랑 우리 안나가 이렇게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된 게 전부 다 회장님 덕분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언제부턴가 저 역시 강씨 가문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었어요.”소민아는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 씨,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한지영이라는 친구분과는 슬슬 거리를 두는 게 어떨까요? 근묵자흑이라고 사람이라는 건 본래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잖아요.”임유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소민아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소민아 씨는 오지랖이 태평양처럼 넓나 보네요. 나와 내 친구가 연을 이어가든 말든 그쪽이 상관할 바 아니에요. 그리고 대체 몇 번을 더 말해야 하죠? 분명히 내가 호칭 똑바로 하라고 했을 텐데요.”소민아는 그 말에 갑자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저는 그저 사모님이 걱정돼서 이러는 것뿐이에요. 서둘러 친구분과의 연을 끊지 않으면 조만간 그 피해가 강씨 가문에까지 오게 될 거라고요. 사모님은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걱정도 안 되세요? 그리고 제가 낮에는 차마 말을 못 했지만 다섯 살짜리 애들도 상간녀가 뭔지 알고 남의 남자를 뺏는 여자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도 알아요. 사모님과 사모님 스승님의 일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저희끼리만 알면
소안나의 질문에 현이가 뭐라 입을 열려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율이가 현이를 자기 등 뒤에 세우며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사과 다 했으면 이만 집으로 돌아가.”소안나는 축객령을 내리는 율이의 말에 기분이 확 나빠졌다. 마치 나쁜 사람으로부터 동생을 지키려 하는 그 모습이 같잖고 눈꼴이 시렸다.‘내 오빠였잖아! 나만의 오빠였잖아! 그런데 왜 내가 아닌 저 애를 감싸고 있는 거야!’“율이 오빠... 오늘은 내가 잘못했어. 오빠 엄마한테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 됐는데... 미안해. 용서해줘. 나도 오빠 동생이니까 한 번만 봐줘...”소안나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목소리만 작았지 진정성은 현이 때보다 훨씬 많았다. 율이에게 미움받는 건 싫다는 마음은 진심인 듯했다.하지만 강선율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여전히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강지혁 역시 똑같은 눈빛으로 소안나를 바라보았다.“소안나, 방금 그 말은 누가 가르쳐줬지?”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소안나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대답했다.“제, 제가 사과하고 싶어서 엄마한테 여기로 오자고 한 거고 언니한테 한 말도 제가 엄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우연히 보게 된 거예요...”강지혁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한 집사, 애들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네, 회장님.”집사는 아이 셋을 데리고 부엌으로 향했다.“아가씨, 사모님께서 사다 주신 말차 케이크가 있는데 그거 드릴까요?”“난 말차 케이크 같은 거 안 먹어요.”소안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바로 대꾸했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맛이 바로 말차맛이었으니까.집사는 소안나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더니 정중한 얼굴로 정정했다.“제가 물은 건 안나 아가씨가 아니라 현이 아가씨였습니다.”소안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집사의 말이 꼭 너는 양녀이니 주제를 알라는 식의 말로 들려왔기 때문이다.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제는 정말 이 집에서 자신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점점 더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