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다 해서라도 그녀를 보호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사람들은 그가 모질다며 무정하다며 욕했지만, 이런 그가 그녀를 보호하고 싶다고 생각 할 줄이야.“괜찮아, 네가 두려워하던 일은 어젯밤에 일어나지 않았어. 내가 제때 달려갔거든.”강지혁이 말했다.정말 그가…… 그녀를 구했다!임유진은 고개를 들어 멍하니 가까이에 있는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런데 네가 어떻게 거기에서 나를 구할 수 있었어?”그는 분명 어제 그녀와 함께 그곳으로 가지 않았는데 말이다!“누나 기억 안 나? 누나가 나한테 전화해서 구해달라고 했어.”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괜찮아, 제때 도착했어.”전화 한 통에 백 킬로미터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달려와 나를 구했다고?!임유진의 마음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움이 피어났다.그는 말하면서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조심스럽게 그녀의 몸에 덮었다.“누나 손이 거울 조각에 긁혔을 뿐이야. 아마 손은 며칠 동안 치료해야 할 것 같아. 만약 나중에 흉터가 남으면 내가 좋은 의사 찾아서 손에 생긴 흉터 없애 줄게.”임유진은 그제야 자신의 오른손에 거즈를 두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충격적인 일들 때문인지 오른손이 다친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누나는 어제 일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어?”강지혁이 정색한 채로 물었다.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어젯밤 설날 음식을 먹다가 발생한 일들을 하나하나 솔직하게 강지혁에게 말해주었다.듣고 있던 강지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친척들은 정말…… 그녀를 이런 식으로 바보에게 보내다니! 이건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일이었다!그는 그녀에게 이런 짓을 한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그때, 강지혁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강지혁은 발신 번호가 뜨는 것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린 후 유진에게 말했다.“내가 신분을 숨긴 건 내가 누나를 속인 거니 누나가 사과를 원하다면 원하는 대로 사과할게. 하지만 지금은 병원이니까 누나 몸부터 추스르고 나중에 다시
강 씨 어르신은 손에 든 전화를 노려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옆에 있는 간병인에게 넘겨주었다.걱정 안 해도 된다고? 그렇다면 정말 좋겠지만, 확실하지 않은 다짐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지난날 그의 아들도 그에게 같은 말을 했었다.“아빠, 나는 한 여자를 위해 강씨 가문을 저버리지 않을 거예요.”그러나 결국 아들은 한 여자를 위해 강씨 가문을 버리고 목숨도 버리게 되었다!“그 여자가 누군지 알아봐. 그 여자에 관한 모든 상세한 자료를 알아야겠어.”강 씨 어르신은 담담하게 명령했다.“알겠습니다.”병실 모퉁이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고 금테 안경을 쓴 채 노트북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임유진은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녀는 제대로 정신을 차릴 시간이 없었던 것만 같았다.이때 의사와 간호사가 와 그녀를 살폈다. 그들은 기본적인 검사들과 그녀의 피를 채혈해 갔고 검사 절차가 몇 개 더 남았다며 오후에 피검사 결과가 나온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그리고 누군가 병실 밖에서 문을 몇 번 가볍게 두드린 후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임유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상대방은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깔끔하고 점잖아 보이는 남자였다. 나이도 그녀랑 비슷한 또래 같아 보였다.상대방은 임유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유진 씨, 안녕하세요, 저는 고이준입니다…… ‘혁이'의 개인비서예요. 이건 유진 씨 휴대전화와 가방이에요. 가방 안에 사라진 게 없는지 확인 해 보셔도 됩니다.”상대방은 핸드폰과 가방을 임유진의 침대 머리맡에 놓고 말했다. 그가 막 물러나려 할 때 임유진이 그를 불렀다.“그…… ‘혁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에요?”고이준은 공손하게 말했다.“임유진 씨, 때를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저는 그저 그의 비서일 뿐이에요.”“그럼 내 친척들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을까요?”임유진은 질문을 바꾸어 물었다.고이준은 그녀의 물음
그녀가 가방을 열고 안에 있는 물건들을 보았지만 사라진 물건은 없었다.그리고 그녀의 휴대전화를 박 씨 집에서 발견하고 가져왔지만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임유진이 다시 전원을 켜자 부재중 전화와 문자 알림이 쏟아졌다.그중에는 외할머니 번호, 한지영의 번호 또 다른 낯선 번호들도 있었다.외할머니가 전화한 이유는 임유진이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한지영이라면…… 임유진은 20통 가까이 걸려 온 전화를 보고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곧 한지영이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유진이야?”“응, 내 핸드폰이 어제 맛이 가서 방금 켰는데 너 전화했었네?”임유진이 말했다.한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세상에, 내가 어제 저녁에 너한테 전화하니까 통화가 안 되더라고. 설날에 외갓집에 간다고 하길래, 나는 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돼서 전화해 봤어. 솔직히 너의 외갓집의 친척들중에 외할머니만 너한테 잘해 주시고 다른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잖아.”한지영은 끊임없이 말을 뱉었다. 그녀는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연락이 안 되자 점점 불안했었다. 만약 오늘 점심에도 연락이 안된다면, 그녀는 오후에 직접 그녀의 외갓집으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녀도 주소를 알고 있으니까.“참, 어젯밤에 친척들이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지?”한지영이 걱정하며 물었다.“그들은 날 바보에게 며느리로 시집을 보내고 그 돈으로 집을 사려고 했어.”임유진은 숨기지 않고 어젯밤 외갓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한지영에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한지영은 치를 떨며 말했다.“어떻게 그런 뻔뻔한 사람들이 다 있을 수 있지? 넌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다행히도 혁이가 나를 구해줬어. 난 괜찮아.”임유진이 말했다.“그럼 너 지금 오피스텔이야? 내가 갈게.”한지영이 말했다.“아니, 난…… 아직 외갓집에 있어. 지금 혁이와 함께 있으니까 돌아가면 다시 만나자.”임유진이 황급히 대답했다.한지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화를 내며 임유진에게 조심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당부했다.
이때, 핸드폰에서 외할아버지가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유진이에게 빨리 경찰서에 가서 사건을 철회하라고 해. 첫째와 사람들이 다 나올 수 있도록 해야지.”“풀어주라고요? 뭘 풀어줘요? 그들이 죄를 지었으니, 가둘 수 있을 만큼 가둬야 해요!”“당신 아들딸인데, 다른 성을 딴 애 때문에 꼭 그래야겠어?”“뭐가 다른 성을 딴 애예요?, 유진이도 내 외손녀예요! 애가 엄마도 없는데, 나라도 힘이 돼줘야 해요!”“당신 이러다가 나중에 다 당신을 외면할 거야. 아님 혹시 감옥살이를 한 외손녀가 나중에 당신의 시중을 들고 임종까지 지키게 하고 싶은 거야?”두 노인은 휴대전화가 아직 통화 상태라는 것을 잊은 듯 다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외할머니가 통화 중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물었다.“유진아, 들려?”“네, 들려.”임유진이 말했다.“외할머니는 네가 아무 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 됐어. 너의 큰 외삼촌, 둘째 외삼촌, 셋째 이모, 그리고 너의 사촌오빠, 사촌 언니 그들은 돈에 눈이 멀어 미친 짓을 했어. 너는 그 사건을 철회할 필요가 없다.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지.”외할머니는 강경한 어투로 말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임유진은 핸드폰을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외할머니가 자신에게 전화한 이유가 이 일을 그만두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해서 자신한테 경찰서 쪽에 큰 외삼촌, 둘째 외삼촌, 셋째 이모를 풀어달라고 말해주길 바랄 줄 알았다.그런데 뜻밖에도 외할머니는 오히려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어릴 때 아버지로 인해 외할머니에게 버려졌고, 그녀는 작은 마을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울먹이는 유진이의 손을 잡고 괴롭힌 아이들을 찾아갔다.그리고 매번 외할머니가 말했다.“유진이 울지 마. 할머니가 있잖아. 할머니는 유진이 편이야. 유진이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니 다른 사람의 괴롭힘을 당해서도 안 돼!”외할머니는 그녀를 위해 다른 사람을 찾아 따지고, 그래도 말이 안 통한다면 그녀는 물불 안 가리
그녀의 눈물은 항상 그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녀의 눈물을 멈출 수만 있다면 그는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갑자기 임유진이 강지혁의 품에 안겨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왜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안고, 자신의 얼굴을 그의 가슴에 기대었을 때, 그녀는 억누르고 있던 마음속의 그 고통을 그에게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강지혁은 고개를 숙이고 품속에서 목 놓아 우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를 가볍게 껴안고 마음껏 울게 내버려 뒀다.임유진은 자신이 지금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알지는 못했지만, 하도 울어서 나중에는 눈물이 안 나오는 거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강지혁은 휴지를 들고 그녀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부드럽게 닦았다.“누나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나한테 말해 줄래?”“외할머니야.”그녀는 코를 훌쩍거렸다.“외할머니가 뭐라하셨어?”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물었다.“아니, 외할머니는 무슨 일이 있냐고, 큰삼촌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어. 갇혀야 할 만큼 갇혀 있다고 하시면서 말이야.”임유진은 콧소리를 냈다.강지혁은 조금 의외라 생각했다.“이 외할머니, 그래도 괜찮은 분이시네.”“외할머니는 나에게 잘해 주셨어.”임유진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외할머니가 이 정도까지 잘해 주실 줄은 몰랐다. 외할머니는 본인의 행동으로 온 가족이 자신에게 등 돌리고 적이 되더라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럼 누나는? 친척들을 봐줄 거야?”강지혁이 물었다.임유진은 눈을 들어 눈앞의 사람을 쳐다보았다.강지혁이 말을 이었다.“누나가 풀어주라고 하면 경찰국에 전화해 사람을 풀어주라고 할 수 있지만, 만약 누나가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겠다면 변호사를 찾아 그들이 평생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어.”그는 이 일이 자신한테는 별것 아니라는 듯 시큰둥하게 말했다. 임유진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그녀 역시 법학을 전공했다. 같은 일이라도 사건의 흐름에
임유진은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가 손바닥에 있는 그 흉측한 상처를 보았더라도 그녀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을 것이다.간호사가 임유진의 오른손에 다시 거즈를 감아 주었다. 임유진은 따끔함에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려졌지만,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내가 할게요, 나가요.”강지혁이 간호사에게 말했다.간호사는 공손하게 방에서 물러났고, 강지혁은 거즈를 능숙하게 임유진의 오른손에 감았다. 그녀가 오른손에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의 동작은 가볍고 부드러웠다.상처를 다 싸맨 후, 그는 거즈를 내려놓으며 말했다.“며칠 동안 가능한 한 오른손을 사용하지 말고, 아까처럼 주먹을 꽉 쥐지 마. 피를 얼마나 더 흘려야 그만둘 거야?”그녀는 그가 거즈를 감고 나서 마무리로 예쁘게 매듭 묶는 걸 보았다.“너 능숙하게 잘 묶는구나.”순간 그의 두 눈에 우울함이 스쳤다.“어렸을 때 좀 배웠어.”“그때 아버지는 여기저기 어머니를 찾아다녔어. 가끔 길에서 뒷모습이 비슷한 사람을 보면 달려가서 무작정 잡아당기곤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가 맞은 적이 많아.”그리고 그는 항상 아버지를 위해 상처를 싸맸고,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그의 솜씨도 능숙해졌다.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그는 한번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상처를 싸맨 적이 없었는데 오직 그녀만은 예외였다.“앞으로 거울 조각 같은 걸 손으로 막 잡지 마. 이번에는 네가 운이 좋아서 손 근육을 다치지 않았지만 자칫하면 앞으로 손을 못 쓸뻔했어.”강지혁이 말했다.임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하지만 어젯밤에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의식을 잃었을지도 몰라. 그러면…… 상대방은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했겠지.”“아파?”그가 물었다. 어젯밤 그가 뛰어들었을 때 그녀가 손에 거울 조각을 쥔 채 피를 흘리고 있던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그는 본인의 의지만으로 이런 상황을 버티고 있는 여자를 한평생 본 적이 없었다. 정신은 혼미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의지로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괜찮아.”
강지혁은 목이 메었다. 임유진은 그가 지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분명 지혁은 이미 유진에게 자신의 신분을 말했는데도 말이다.방안의 불빛 아래, 유진의 긴 머리카락은 어깨에 흩어져 있고, 얼굴은 창백하게 물들어 있으며 살구 같은 눈동자는 아주 긴장한 채로 지혁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듯했고 운명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마치 이미 고된 생활로 인해 너무 힘들어 이미 불공평함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듯했다.“누나, 병원에서 잘 치료하고 있어. 다른 건 생각할 필요 없어. 퇴원하면 그때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려줄게.”지혁이 말하자 유진은 지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했던 일을 다 말한 것인지 유진은 하품을 하더니 눈꺼풀이 축 처졌다.“누나 피곤하면 먼저 좀 자. 의사가 방금 최근 며칠 동안 졸릴 거라고 했어.”지혁은 말을 하며 유진을 부축하여 눕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진은 잠이 들었다.지혁은 유진의 잠든 얼굴을 보고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유진의 볼을 어루만지더니 마지막으로 유진의 입술을 만졌다.“누나, 내가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까?”지혁에게 대답하는 것은 단지 고요함일 뿐이다.유진이 깨어났을 때 지혁은 유진의 병실 침대 옆에 앉아있었고 여전히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배고프지? 음식을 가져오라고 할까?”지혁이 말했다.지혁이 말하자 유진은 그제야 자신이 정말 배가 고픈 것 같다는 것을 알았다.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일단 내가 누나를 안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는 걸 도울게. 조금 있다 밥 먹자.”지혁은 말하면서 유진을 번쩍 안았다.“나 혼자…….”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혁이 유진을 번쩍 안아 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지혁의 목을 안았다.지혁은 유진을 안고 화장실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유진을 한쪽 세면대에 앉힌 다음 부드러운 털 슬리퍼를 신겨준 뒤에야 다시 유진을 바닥에 내려놓았다.“똑바로 설 수 있어?”지혁이 물었다.“응.”유진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지혁은 유진의
강지혁은 임유진에게 칫솔을 쥐어주고 치약을 짜서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유진에게 건네주었다.유진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이를 어떻게 닦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고 유진의 몸을 둘러싼 지혁의 숨결에 취해있었다.그때 지혁은 수건을 꺼내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셨다.“나 혼자 할 수 있는데…….”유진이 입술을 깨물었다.“내가 하는 게 더 편하잖아?”지혁이 말했다.‘문제는 너무…… 가깝잖아!’지혁은 유진을 백허그한 채로 수건을 적시더니 물기를 짰다…….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았다.유진은 줄곧 혁이가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혁이는 두꺼운 앞머리로 이마를 가리지 않았으며 정교한 정장까지 입고 있어 온몸에 귀티가 배어 있었다. 마치 아주 높은 곳에 있어 넘볼 수 없는 존재와 같았다.유진은 이전에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지영조차도 지혁이 노숙자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유진은 왜 지혁이 유진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혁을 자기 곁에 남겨 두려고 한 것일까.너무…… 외로웠던 것일까?현실은 지혁이 노숙자도 아닌 보통 신분이 아니다.지혁의 옷차림에서 아주 값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가 지혁을 대할 때도 매우 공손한 태도였다.“누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지혁의 목소리로 인해 유진은 하던 생각을 접었다.유진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보자 혁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자 유진은 순간 흠칫 놀랐으며 마치 이 순간 지혁의 시선에 납치당한 것 같았다.“누나, 얼굴이 아주 빨개.”지혁은 말을 하며 몸을 살짝 기울이더니 유진에게 다가갔다. 지혁의 입술, 촉촉한 숨결이 유진의 볼과 목에 닿자 아주 간질거렸다.순간 유진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너는 왜…… 아직도 날 누나라고 부르는 거야?”유진은 시선을 피한 채 더 이상 거울을 보지 않았다.“내가 누나라고 부르는 게 싫어?”지혁이 낮게 반문했다.“넌 분명히 노숙자가 아닌
그리고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강문철의 예상을 벗어남으로써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쟁취했다. 물론 그것도 하늘의 뜻이 어떤지 봐야겠지만 말이다.김재호는 하늘을 바라보며 강문철이 살아생전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만약 임유진이 정말 지혁이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그때는... 살려둬. 하지만 지혁이 곁에 두지는 마. 임유진은 지혁이한테 약점밖에 안 돼.”“그러면 차라리 죽도록 내버려 두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김재호의 질문에 강문철은 끝까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김재호는 그저 강문철에게 임유진이 만약 바다에 빠졌는데도 살아나면 그때는 그녀를 살려주라는 지시만 받았다.한편 절벽에서 2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작은 오두막 안에 있던 진세령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휴대폰을 바닥으로 힘껏 내던졌다.예쁜 얼굴이 단숨에 질투와 분노로 무섭게 일그러졌다.“왜! 왜 임유진이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왜 살려주려고 하는데! 왜! 왜!”강지혁은 그녀의 언니인 진애령의 죽음 때는 자기와는 아주 조금도 상관없는 사람의 죽음을 들은 듯한 표정으로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동정심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그런데 그랬던 강지혁이 임유진을 위해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버튼을 누르며 죽음을 택했다.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임유진의 행복만을 빌었다.“임유진이 뭐라고 그렇게 해!”진세령은 결과적으로 임유진이 죽은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봤는데도 전혀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분명히 속이 시원하고 상쾌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지독한 패배감만 들었다.강지혁처럼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죽어주려고까지 하는 남자를 그녀는 영원히 얻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니까....강지혁이 미쳐버린 지금 고이준은 자신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싶어 일단 경찰을 불러 바다에 떨어진 임유진을 수색하게 한 다음 강제로 강지혁을 구급차에 태워 병원에 보냈다.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느 정도 처리하고 보니 그제야 김재호가 그
강지혁은 생각보다 감정에 섬세한 남자라 임유진은 차라리 그가 그녀를 조금 덜 사랑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아무리 지금은 마음이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을 수 있을 테니까.임유진은 강지혁이라는 남자와 흰머리로 뒤덮일 때까지 정말 잘살아 보고 싶었다. 예쁜 아이 셋을 낳고 평생 웃으며 행복하게 잘살아 보고 싶었다.그래서 그때 그에게 영원의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평생 그의 곁에 있어 주겠다는 말을 했다.하지만 그녀는 그 약속을 이제 지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본의 아니게 약속을 어겨버렸네...?’임유진은 중력으로 몸이 점점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문득 강문철이 그녀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강문철은 그녀가 정말 강지혁을 사랑하는지 내기를 하자고 했다.‘내가 혁이를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보고 싶으셨나? 그래서 내 손을 기어봉에 묶어놨나? 내가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려고?’임유진의 귓가에 강지혁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극심한 고통과 해수가 그녀를 집어삼켰다.“유진아! 유진아!”강지혁은 이대로 임유진의 차량을 따라가려는 듯 절벽 쪽으로 달려갔다.그리고 고이준은 그런 그를 있는 힘껏 끌어당기며 이내 경호원들에게 같이 힘을 보태라고 지시했다.그러자 경호원들이 우르르 달려와 강지혁의 팔과 몸을 잡았다.“놔! 이거 놔! 유진이 구하러 가야 하니까 이거 놔!”강지혁이 눈이 빨개진 채로 목이 부서지라 외쳤다.“사모님께서는 차량과 함께 떨어지셨습니다! 이대로 대표님께서 뛰어봤자 함께 목숨을 잃는 것밖에 안 된다는 뜻입니다! 사모님이 마지막으로 했던 얘기, 대표님도 들으셨잖습니까! 그런데도 이대로 사모님을 따라가실 겁니까?!”고이준이 외쳤다.그러자 그 말에 강지혁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그도 알고 있다. 임유진이 그를 위해 희생했다는 사실쯤은. 하지만... 그녀가 세상에 없는데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그때 기계 장치 쪽에서 치지직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금 강문철
임유진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새어 나왔다.지금 이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남의 행복이나 비는 바보 같은 남자 때문에 그녀는 가슴이 아프고 또 숨이 막혔다.강지혁의 엄지손가락이 결국에는 버튼을 눌렀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있는 차 안 모니터에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임유진은 그게 폭탄 해제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그녀와 강지혁 사이에는 이제 고작 2분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2분이라는 시간 동안 강지혁은 언제든지 손을 떼고 그곳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다.“고 비서님, 당장 혁이를 저기서 끌어내 주세요!”임유진이 고이준을 향해 외쳤다.그 말에 고이준의 몸이 움찔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강지혁을 끌어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임유진이 탄 차량 주위에 깔린 폭탄들이 터지게 된다.“내 몸에 손대면 그게 누구든 가만 안 둬!”강지혁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아주 크게 울려 퍼졌다.이에 경호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고이준은 더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고이준, 유진이가 절벽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면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가. 그리고 지금 당장 내 곁에서 멀리 떨어져.”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다시 시선을 돌려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아, 이건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그러니까 괜한 생각하지 마.”원해서 하는 거라고?하지만 그게 원해서든 아니든 임유진은 그가 죽는 걸 원치 않았다.그때 그녀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다. 사실 그녀에게는 강지혁의 죽음을 막을 방법이 하나 남아 있었다.임유진은 뭔가를 결심한 얼굴로 기어봉에 묶인 손을 한번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여 어느새 많이도 불룩해진 자신의 복부를 바라보았다.“미안해. 엄마가 너무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라 정말 미안해... 엄마가 한 선택에 너희를 휘말리게 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너희 아빠를 사랑하고 있어. 그래서 혁이가 죽는 걸 이대로 지켜볼 수 없어... 그러니까 너희들이 엄마 한 번만 봐줘.”임유진은 숨을 한번 고
하지만 강문철은 틀렸다. 강지혁은 임유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강지혁이 기계 장치 가까이에 다다르자 바로 타이머부터 보였다. 타이머에 표시된 숫자는 8이었다.이제 8분이 지나면 폭탄이 터지게 된다.“안 돼! 혁아, 그러지 마!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너희 할아버지는 절대 네가 그런 선택을 하게 내버려 둘 분이 아니야. 누구보다 가문을 중요시했던 분이셨잖아! 네가 죽으면 가문을 이을 사람도 없어지고 회사도 망하게 될 텐데 너희 할아버지가 그것도 생각 못 하셨을 것 같아? 그러니까 제발 멈추고 우리 다시 생각해보자! 응?!”“유진아, 괜찮아. 겁먹지 않아도 돼. 내가 반드시 널 구해줄 테니까.”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곧바로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치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이내 강문철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콜록콜록... 결국에는 임유진 때문에 목숨을 거는 선택을 하고야 말았구나. 그런데 네 선택은 틀렸다.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임유진은 네가 목숨을 걸고서까지 구해줄 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콜록콜록... 폭탄을 해제하려면 네 엄지로 빨간색 버튼을 한동안 누르고 있어야만 한다. 폭탄이 해제되기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하거든. 그런데 계속해서 누르고 있으면 임유진 쪽 폭탄은 해제되겠지만 이 기계에 설치된 폭탄은 바로 터지게 되겠지.”강문철의 담담한 목소리에 사람들은 괜히 몸이 오싹해 나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도무지 친할아버지라고는 생각을 못 할 얘기였다.“다만 버튼을 누르고 폭탄이 해제되는 시간 동안 너는 언제든지 손을 떼고 이 기계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해제에 실패하고 임유진 쪽의 폭탄이 바로 터지게 되겠지. 어디 한번 보자꾸나. 네가 그 여자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콜록콜록... 그리고 임유진이 정말 네가 목숨을 바칠만한 여자인지.”강문철의 목소리가 완전히 끊기고 이내 무거운 적막이 찾아왔다.임유진은 자신의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어
임유진은 자신의 양손이 왜 한쪽은 핸들에 묶여있고 또 한쪽은 기어봉에 묶여있는지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애초에 다른 선택지는 없게 둘 중 하나가 살 수 있게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지금 그녀가 탄 차량의 주위에 얼마만큼의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그걸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만약 파악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폭탄을 건드리면 최악의 결과로 치닫게 된다.정말 두 사람 다 사는 방법은 없는 걸까?임유진은 머리를 최대한으로 굴리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그때 김재호의 말을 전부 듣고 있던 진세령이 표독스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어때? 상황이 엄청 재미있어졌지? 이제 강지혁은 어떻게 할까? 나는 강지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널 버릴 거라는 거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데 너는 어때? 혹시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얼굴이 그렇게 죽상이 된 거야? 하하하!”임유진은 진세령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강지혁의 얼굴만 바라보았다.그리고 강지혁도 그런 그녀를 똑같이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그의 눈동자에 뭔가의 결심이 섰고 임유진은 그걸 보고는 서둘러 크게 외쳤다.“혁아, 하지 마!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그런데 강지혁은 그녀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녹음을 켠 후 휴대폰을 입 가까이에 가져갔다.“나 강지혁은 죽은 후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전부 아내인 임유진에게 넘겨주겠다. 이건 그 어떤 외부의 강요도 받지 않은 온전한 내 의지임을 밝힌다.”그는 말을 마친 후 곧바로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렸다.그리고 고이준은 그의 휴대폰을 받고 그대로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지금 자기 목숨을 희생해 유진 씨를 구하려는 건가? 그래서 유언을 남긴 건가...? 하지만 이대로 대표님이 죽어버리면...’고이준은 그 뒤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강지혁의 유언에 굳어버린 건 고이준 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김재호의 얼굴 역시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대표님, 정말 임유진 씨를
김재호가 한 손을 들어 임유진이 타 있는 차량과 약 20m 정도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저쪽으로 가시면 웬 기계 장치가 하나 보일 건데 거기에 폭탄을 해제할 수 있는 버튼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대표님의 지문이 필요합니다.”김재호의 웃음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그리고 강지혁은 김재호의 말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 상황이 단지 지문을 찍고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만약 그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굳이 이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까.“인내심 테스트하지 말고 똑바로 끝까지 말해. 너와 여기서 입씨름할 시간 없으니까!”강지혁은 지금 일 초라도 빨리 임유진을 저기서 구해내고 싶었다.“그러죠. 만약 대표님께서 해제 버튼을 누르시게 되면 기계 장치에 설치된 폭탄의 스위치가 자동으로 켜지게 될 겁니다. 즉 임유진 씨를 구하면 대표님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뜻이죠.”김재호는 강지혁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큰 목소리로 말했다.차 안에 있는 임유진에게도 이 얘기가 전달되기를 바라서였다.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임유진은 그의 말을 아주 똑똑히 들어버렸다.임유진은 마치 온몸이 한기에 둘러싸인 것처럼 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어 버렸다.자신이 사는 대가로 강지혁이 목숨을 잃게 될 줄은 정말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왜... 대체 저 남자는 뭣 때문에 이런 짓을 계획한 거지? 단순히 내 목숨이 목적인 거면 내가 기절해있을 때 진세령을 통해 나를 죽이면 됐을 텐데...?’그때 임유진의 의문에 대답을 해주듯 김재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께서 이 판을 계획한 건 다 대표님이 정신을 차렸으면 해서입니다. 임유진 씨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요. 대표님, 임유진 씨를 대체할 여자는 차고도 넘칩니다. 만약 외모 때문이라면 똑같이 성형하게 하면 될 일입니다.”요즘은 의술이 워낙 좋아 완전히 똑같게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비슷하게는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임유진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차분한 음성으로 진세령에게 말했다.“지금이라도 날 풀어주면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해줄게. 혁이한테도 널 봐달라고 하고 네 집안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라고도 할게.”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대한 진세령이 혹할 만한 제안을 제시하는 것밖에 없었다. 진세령에게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그걸 기회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그런데 진세령은 마치 임유진의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건지 자기 할 말만 이어나갔다.“나는 그냥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 강지혁이 널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우리 언니가 죽었을 때는 눈물은커녕 동정심도 내보이지 않았거든. 솔직히 너도 확인해보고 싶지 않아? 강지혁이 널 위해서 정말 목숨을 걸 수 있을지 없을지?”진세령의 두 눈은 어느새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임유진을 증오했다. 한낱 버러지 같은 여자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으니까.진애령의 사고가 있었던 그때 사실 진세령은 임유진의 곁에서 소민준을 빼앗으며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소민준이 임유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을까 봐.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소민준은 아주 손쉽게 임유진을 버렸다. 마치 다 쓴 건전지를 버리듯 너무나도 쉽게 그녀를 버려버렸다.생각해보면 첫사랑의 이미지로 남자들을 홀린 자신이 임유진 따위를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그래서 진세령은 강지혁도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소민준처럼 임유진을 가차 없이 버릴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그는 김재호라는 남자에게서 거액의 보수를 건네받은 후 해외로 넘어가 남은 생을 편히 즐기면 된다.그때 검은색 승용차가 연이어 이곳에 도착했다.임유진은 차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연달아 내리는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 중에 강지혁의 모습이 보였다.강지혁은 아슬아슬한 상태로 절벽에 걸려있는 차량과 그 차량의 운전석에 앉은 임유진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바
강지혁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꽉 깨물었다.아무리 강지혁이 강문철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강문철이 강지혁을 알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했다.강문철은 강지혁이 의심이 많은 인간이라는 것과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면 불안감이 극도에 달한다는 것까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김재호에게 실종 놀이를 하게 한 다음 갑자기 나타나게 했다.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야 이미 불안도가 잔뜩 오른 강지혁이 직접 김재호를 심문하려고 저택에서 나올 테니까.강문철은 죽어서도 죽은 게 아니었다.게다가 김재호의 말에 따르면 강문철은 강지혁에게 내기까지 하려고 했다. 임유진과 관련된 내기를 말이다.‘유진아, 제발... 제발 무사해 줘!’...임유진의 눈썹이 움찔 떨리더니 이내 예쁜 두 눈이 떠졌다.임유진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깜짝 놀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그녀는 차량 운전석에 앉아있었고 한 손은 핸들에 꽉 묶여있고 나머지 한 손은 기어봉에 묶여있었다.그리고 그녀가 탄 차량은 차 앞머리만 간신히 땅을 밟고 있고 뒤쪽은 공중에 떠 있었다. 즉 차량의 절반만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린 상태라는 뜻이었다.만약 이대로 조금만 큰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게 되면 이 차는 말할 것도 없이 절벽 아래의 망망대해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임유진은 상황을 파악한 후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눈앞에 영상 통화가 켜져 있는 휴대폰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화면 속에는 진세령의 얼굴이 보였다.“깼어?”진세령이 음험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솔직히 생각도 못 했어. 내가 짓밟은 한낱 벌레가 오늘날의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거라고는 말이야.”“진세령!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내면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임유진이 물었다.임유진은 아까 그렇게 강지혁을 보낸 후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침실로 돌아온 지 몇 분도 안 돼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졸음이 몰려와 잠시 침대에서 눈을 붙였다.그리고
경호원은 강지혁의 목소리에 당황한 듯 말을 버벅거렸다.“그, 그게 사모님 방으로 가봤는데 사모님은 그 어디에도 없고 채린이와 이모님만이 바닥에 기절해있었습니다. 방 안에는 CCTV가 없어 밖에 있는 CCTV를 돌려봤지만 사모님께서 침실을 나선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안에는 지금 미약하게나마 약물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찾아! 지금 당장 저택 전부를 뒤져서 유진이를 찾아!”강지혁은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린 후 누구 한 명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김재호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김재호의 머리를 세게 움켜쥐고 벽에 짓눌렀다.“유진이를 어디로 빼돌렸어! 만약 유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네 사지가 다 찢길 줄 알아!”쿵 하는 소리와 함께 김재호의 머리가 옆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벽에 세게 부딪혔다.분명히 아플 텐데도 김재호는 오히려 소리 내 웃었다.“지금 당장 저를 죽이셔도 저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까 말했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요.”“유진이를 어디로 빼돌렸는지 말하라고 했어!”강지혁이 살기를 내뿜으며 김재호의 머리를 수도 없이 벽을 향해 박았다.지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임유진뿐이었다.한편 고이준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한 강지혁의 눈빛과 행동에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임유진은 강지혁의 목숨과도 같은 사람이기에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만약 임유진을 건드리게 되면 그건 자기 목숨을 끊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김재호를 죽이고 말겠어!’고이준은 이 생각에 얼른 강지혁의 곁으로 다가갔다.“대표님, 차라리 김재호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가 보는 게 어떨까요? 분명히 김재호는 사모님께서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일단은 화를 좀 가라앉히시고 손을 멈춰주세요. 이러다 김재호가 죽어버리면 아무것도 묻지 못하잖습니까.”그 말에 강지혁의 눈빛에 이성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차에 실어. 그리고 지금 당장 집으로 간다!”강지혁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