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주승아가 갑자기 깨어났다.민효연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주승아가 혼수상태에 빠진 이 몇 년 동안 민효연은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희망은 점점 사라졌다.민효연의 마음도 점점 무뎌져 갔다.그런데 지금 주승아가 깨어난 모습을 보았다.민효연은 병상 끝에 앉아서 주승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승아야 승아야...…”그녀는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한편으로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주승아도 묵묵히 민효연을 보더니 눈물이 눈가를 따라 흘러내렸다.몇 년이라는 시간이 모녀에게는 몇십 년이 지난 것 같았다.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설영준은 아직 화장실에 있다.그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문밖에서 들려오는 민효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착잡했다.10여 분이 지나고 나서야 민효연은 정신을 차리고 주승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잠깐 나갔다 올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민효연은 주승아에게 한마디를 건넸다.주승아도 그녀가 무엇을 하러 가는지 짐작한 듯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민효연은 인자한 미소 지으며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병실을 나갔다.설영준은 문밖이 다시 조용해지고 나서야 문을 열고 나왔다.그는 다시 주승아의 병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주승아는 시선을 들어 설영준과 다시 눈을 맞췄다. “승아 씨가 깨여나서 너무 기뻐요. 몸조리 잘하고 빨리 회복하길 바랄게요.”설영준이 말했다.주승아의 얼굴이 갑자기 엄청나게 빨개졌고, 마치 수줍은 소녀 같았다.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그녀는 20세 초반이었다.고,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설영준를 좋아하는 마음은 단 한 번도 변한적이 없다.주승아는 그의 빨리 회복하라는 말에 대답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설영준은 돌아서서 두 걸음을 걷고 나서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돌아서며 말했다.“병원에 온 사실을 비밀로 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장님께는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주승아는 무척 진지한
박윤찬은 식사를 마치고 떠날 무렵에 비는 좀 전보다 많이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송재이는 문 앞에 서 있는 박윤찬에게 말했다.“우산 가져다줄게요!”박윤찬은 할 말을 망설였지만 송재이의 뒷모습을 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내밀었던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이원희는 수시로 그의 시선을 훔쳐보았다. 잠시 후 송재이는 우산을 박윤찬에게 건넸다.“감사합니다.”박윤찬은 예의상 우산을 받아 들고 돌아서서 떠났다.…... 이튿날 오전에 이원희와 윤선주의 이혼 소송이 정식으로 개정되었다.이날은 송재이가 소문으로만 듣던 윤선주의 실물을 처음으로 본 날이기도 했다.그녀는 방청석에 앉아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를 보았다.나이는 대략 마흔쯤이었지만 관리를 잘하여 그렇게 안 보였다.그의 말투와 행동은 모두 온화하고 품위가 있었다.예전에 들었던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인상과는 전혀 달랐다.하지만 송재이는 어떤 사람들은 위장에 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문득 예전에 경주에서 만난 도정원의 큰아버지 도진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도진욱은 송재이에게 지금 눈앞의 윤선주와 너무도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전체 재판 과정은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윤선주는 처음에는 여유로웠지만 나중에는 박윤찬의 치밀한 공세에 무너지기 시작했다.특히 박윤찬이 어디선가 구해 온 한 녹음 파일이 결정적이었다.녹음된 대화는 윤선주와 그의 아버지가 이원희를 그의 아버지와 잠자리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녹음이 재생될 때 법정은 충격으로 술렁였다.이원희는 원고석에 앉아 눈을 꾹 감았다.그녀는 그들의 음모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때 어떻게 빠르게 반응해서 휴대폰으로 그들의 대화를 녹음했는지 자신도 몰랐다.아마 그때부터 이미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다음에도 오랜 시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이 녹음을 꺼냈다.주변에서는 계속 수군거렸다.윤씨 가문의 두 부자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이원희에
갑자기 설영준의 이름을 듣고 윤선주는 순간 멈칫했다.그는 얼굴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정말로 그는 지금 방청석에 서서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설영준을 보았다.윤선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두 사람은 사람들 사이로 잠시 눈을 마주쳤다.그 후 윤선주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가 아무리 부드럽게 웃어도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소송이 끝난 후 며칠 동안, 이원희와 윤수아는 송재이의 집에 계속 머물렀다.그들은 윤선주가 다시 그들을 귀찮게 할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송재이와 함께 지내면서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남도에서 송재이도 혼자였고 밤에 돌아오면 외로웠지만 이제는 함께 있는 사람이 있어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어차피 여기에 방이 더 있으니까 그냥 나랑 같이 사는 게 어때요? 이사 와서 같이 살아요!” 송재이는 진심으로 그들을 떠나보내기 싫어했다.이원희는 원래 집을 구하려고 했었다.이동안 송재이에게 계속 신세를 졌기 때문에 그녀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이제 송재이의 권유를 받자 그녀는 잠시 멍해졌다. “정말 나와 함께 살고 싶어요?”“네, 이사 와요!”이원희도 사실 송재이와 함께 살고 싶어 한다.그녀는 밝은 미소를 지었지만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이원희는 두 번 기침을 하고 송재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지금 설영준과 박윤찬이 그녀의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그들은 송재이의 집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왔다.박윤찬은 이미 여러 번 왔지만 설영준은 송재이가 이사 온 후 처음이었다.박윤찬에 비해 설영준은 상당히 거만한 모습으로 마치 누가 그에게 2백만 원을 빚진 사람 같았다.송재이가 박윤찬에게 들은 바로는 설한 그룹의 사업 영역이 이제 남도로 확장되었다고 한다.설영준은 앞으로 남도에 올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이번에도 그는 남도에 새 지사를 설립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했다.정말로 지사를 설립하기 위해서만 온 것일까?송재이는 그녀의 등에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그녀는 얼굴을 돌렸다
“오늘 내가 당신이랑 합숙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의 그 눈빛이 거의 나를 죽일 듯 했어요. 내가 여기 살지 않으면 아마 오늘 밤에도 이유를 찾아서 여기서 자려고 했을 거예요...”이원희가 말했다.송재이는 웃었다.웃음 속에는 약간의 자기 자신을 비웃는 웃음과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 “그가 남고 싶어도 나랑 자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그는 꽤 중독됐어요. 나는 그의 눈에 단지 그런 존재일 뿐이에요.”아마도 이원희와의 우정이 이정도 까지 깊어진 것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녀가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였을 것이다.이것이 그녀가 처음으로 이원희에게 당시 설영준과 헤어진 이유를 말한 것이다.“당신이 다른 어떤 여자와 닮았다”라는 사건을 언급할 때마다 아직도 역겨움을 느낀다.“어떤 여자가 자신이 대체물로 여겨지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설영준이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도 그저 육체적인 이유일 뿐이에요. 내가 지난번 경주에 갔을 때, 그와 한 번 잤지만 그것도 단지 육체적인 매력 때문이었어요. 우리 둘이 옛정을 잊지 못한 것보다는 단지 섹파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에요. 맞아, 그렇게 얕은 거예요.”송재이가 이런 말을 할 때 무심한 듯 말했지만 그녀만이 얼마나 많은 희망과 절망을 반복했는지 알고 있었다.밤에 송재이는 혼자 침대에 누워 뒤척였다.잠에 들자 그녀는 다시 혼란스럽고 수치스러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빛과 그림자가 섞인 아래에서, 그녀는 다시 그 남자를 보았다.매우 잘생겼고 몸매가 탄탄하며 근육이 뚜렷한 상태로 시원하게 입고 그녀에게 다가왔다.처음 이런 꿈을 꿨을 때는 매우 부끄러웠다.하지만 몇 날 밤을 연속으로 꾸고 나니 그녀도 익숙해졌다.이날 아침, 다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심지어 약간의 여운을 느끼며 깨어났다.몸을 뒤척이며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재현했다.그의 키스는 부드럽고 끈적하며 길고 오래 지속되었다.그녀는 온몸이 떨렸다....이원희는 박윤찬에게서 설영준이 남도에 지사를 설립할 일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하지만 송재이는 이에
문예슬은 농담하는 말투였다.하지만 송재이는 그녀가 방금 “설영준이 밤마다 즐긴다”라고 말한 것을 주의 깊게 들었다.송재이는 잠시 멈추었지만 얼굴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그리고 매우 자연스럽고 편안한 어조로 물었다. “너 경주에서 그를 만났어?”문예슬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이상한 술자리들을 자주 가야 해서 설영준 대표님을 만나는 것도 꽤 정상적인 일이야. 예전에는 그가 이런 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열심히 다니더라. 내가 본 것만 해도 몇 번이나 됐어.”문예슬은 술자리 이야기를 할 때 얼굴에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묻어났다.하지만 송재이의 침울한 표정을 보자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잠시 멈추고 당황한 듯 서둘러 말했다. “사실 그렇게 과장된 건 아니야. 그의 곁에는 여자가 없었고 주변의 협력자들이 일부러 그의 곁에 여자를 두려고 했지만 그는 그걸 엄청 거부했어!”그 말투와 표정은 본래 사실을 숨기려다 오히려 진실을 드러낸 것 같았다.송재이는 비웃으며 컵 안의 물을 한 번에 마셨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당당하게 미소 지었다. “그 사람 싱글인데 몇 명의 여자를 만나는 게 아주 정상이지, 나랑 상관없어!”문예슬은 송재이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잠시 후에야 물었다. “정말로 잊었어?”“응, 오래된 일이야. 다 지난 일이지.”문예슬은 송재이가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문득 감탄하며 말했다. “그때 내가 너와 설영준이 사귀는 걸 알았을 때 정말 화가 났었어. 배신당했다고 생각했지.”“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설영준은 나에게 관심도 없었어. 나 혼자서 착각한 거지.”“너희가 사귀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넌 나를 배신하지 않았어.”“오히려 내가 그를 얻지 못해서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우며 그 분노를 너에게 푼 거야. 내가 좁은 마음을 가졌던 거지. 송재이, 미안해.”송재이는 문예슬이 사과를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문예슬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였다.그 순간, 송재이의
한순간, 문예슬은 송재이의 눈빛에서 쓸쓸함을 보았다.“내일 나는 경주로 돌아가, 너 혹시 윤찬 씨에게 전할 게 있으면 내가 대신 전해줄까?” 문예슬이 갑자기 말을 꺼내며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송재이는 깜짝 놀랐다. “윤찬 씨?”문예슬은 미소를 지었다. “이원희한테 다 들었어. 이번에 원희가 이혼 소송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윤찬 씨 덕분이야. 그리고 윤찬 씨는 너의 친구라서 너의 면목을 보고 그 사건을 맡은 거잖아. 이제 이원희의 소송이 끝났으니 너도 뭔가 표시를 해야 하지 않아? 이원희가 그에게 돈을 주려고 했는데 윤찬 씨가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송재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사실 그녀의 입장에서 박윤찬에게 선물을 줄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법률계에서 박윤찬의 위치를 고려하면 자신의 면목을 보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로 이원희의 사건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나중에 이원희에게 받은 변호사 비용도 둘 사이의 우정을 고려한 가격이었다.박윤찬은 이 기간 동안 많은 손해를 보았다.어쨌든 그는 그녀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마지막으로 생각한 후, 백화점을 떠나기 전에 그녀는 옆 브랜드 매장에 들러 직원에게 185사이즈 셔츠 두 벌을 주문했다.박윤찬과 설영준의 키와 체격이 비슷했다.설영준은 바로 이 사이즈를 입는다.틀리지 않을 것이다.주문을 마치고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문예슬이 벨트를 파는 매장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녀가 문예슬을 몇 번 부르자 문예슬은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지었다. “잠깐만, 금방 갈게.”문예슬은 벨트 몇 개를 사서 아빠와 오빠에게 줄 거라고 말했다.송재이는 별 생각 없이 두 사람이 물건을 다 산 후 함께 백화점을 떠났다.그녀는 자신이 산 두 벌의 셔츠가 든 쇼핑백을 문예슬에게 넘겼다.문예슬이 경주로 돌아가면 박윤찬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은 그녀가 이원희의 소송에서 이긴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문예슬은 흔쾌히 승낙했다....밤이 되
설영준의 미간이 점점 더 찌푸려졌다.“민효연이 미쳤나? 내가 누구와 함께 있든 그녀가 무슨 자격으로 간섭하지?”녹음된 내용을 들어보면 민효연은 간섭할 뿐만 아니라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막으려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송재이와 그 사이를 정말로 민효연이 이간질한 건가?정아현의 사진을 이용해 오서희를 통해 송재이에게 그에게 전 여자친구가 있다고 믿게 만든 것인가?민효연...... 예전에 확실히 그를 잘못 믿었다.......문예슬은 오후 비행기로 남도에서 경주로 돌아가 회사에서 몇 가지 일을 처리했고 3일 후에 예율 법률 사무소로 갔다.그 날 박윤찬은 공교롭게도 사무실에 없었다.박윤찬은 설영준의 사무실에 있을 때 문예슬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그에게 전화를 한것은 꽤 놀라운 일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친분이 없는데 어떻게 갑자기 연락이 왔을까?그 순간 설영준은 서류를 보면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박윤찬은 그를 한번 쳐다본 후 전화를 받았다.“윤찬 씨, 지금 어디에 계세요? 제가 당신을 만나고 싶은 일이 있어요.”문예슬은 카운터 근처에서 매우 부드러운 톤으로 말했다.“내일 사무실로 오세요. 지금 밖에 있어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박윤찬이 말했다.“그런데......”문예슬은 쇼핑백을 들고 잠시 고민한 후에 말했다. “이건 송재이가 당신에게 보낸 선물이에요. 그녀가 정성스럽게 준비했어요!”“송재이?”박윤찬은 생각 없이 대답했다. 반대편에서 설영준은 펜을 잡고 있던 손이 잠시 멈췄지만 그도 잠깐의 일일 뿐 계속해서 서류에 적었다.박윤찬의 눈빛은 의미심장했고 그는 설영준을 한번 보고 다시 한 번 전화로 말했다. “지금 설한 그룹에 있어요. 시간을 따로 잡고 싶지 않으면 그냥 오세요!”“좋아요, 지금 바로 갈게요!”박윤찬이 전화를 끊었다.사무실은 잠시 조용해졌다.잠시 후, 설영준이 입을 열었다. “누가 당신한테 전화했어요?”“문예슬!”박윤찬이 말했다. “그녀는 방금 남도에서 돌아왔
박윤찬은 아까보다도 어두운 설영준의 표정을 보면서 오늘 문예슬을 부른 것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설영준이 화가 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영준을 화나게 만든 결정적인 물건이 벨트라는 것을 몰랐다. 박윤찬에게 벨트를 선물해준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몰랐다. 설영준이 보는 앞에서 박윤찬은 벨트의 포장지를 뜯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박윤찬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맞은 편에 앉은 남자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박윤찬의 손에서 벨트를 뺏어 들고는 말아서 다시 봉투 안에 넣었다.“선물을 돌려보내고 윤찬 씨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얘기하세요.”설영준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군더더기 없는 말을 뱉었다. 이에 어리둥절해진 박윤찬이 말했다.“저한테 왜 안 어울린다고 그래요? 저는 이 벨트가 마음에 드는데요...”“여자가 남자한테 벨트를 선물하는 건 남자를 자신에게 얽매이게 하겠다는 의미예요.”설영준은 차가운 말투로 한마디 하고는 고개를 들어 박윤찬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윤찬 씨는 저 여자의 남자입니까? 이미 그렇게 된 거예요, 아니면 그럴 예정인 거예요?”뒤에 따라온 두 마디의 물음은 박윤찬의 등골이 오싹하게 했다. 다행히 설영준은 그저 그를 한번 보기만 하고 시선을 옮겼다. 그의 손에는 아직 절반 남은 담배가 들려있었고 두어 번 빨더니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버렸다.“돌려보내면서 무슨 뜻인지 물어봐요.”이는 설영준이 묻고 싶은 말이었지만 박윤찬이 대신해 말을 전하라고 했다. 어떤 말들과 일들에 대해서 설영준은 체면을 차리고 있었다. 박윤찬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설영준은 곁에 있던 정장 외투를 들고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설영준은 빌딩 꼭대기의 옥상으로 갔다. 바람이 불어오자 그는 머리가 더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무실 안에는 박윤찬 홀로 남아있었고 연초의 냄새가 아직 은은하게 풍겨왔다. 그는 깊게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송재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재이 씨가 준 선물은 정말 고마워요. 아주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