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목소리는 서러움에 젖어 있었고, 억울함도 살짝 묻어있었다. 하지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앞이 흐릿해질지언정 고집스럽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고정남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이라도 들었는지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의사 선생님께서 이미 할아버지가 잠드셨다잖니?”“내가 할아버지를 보러 온 건 효심을 다 하는 일인데 깨든 말든 상관없잖아요! 여기서 할아버지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요! 아버지도 똑같아요. 내가 강씨 가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셔서 면회도 못 하게 하는 거죠?”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두 뺨에는 겨우 참았던 눈물이 줄줄 흘렀다.“그리고 아버지 저한테 편견이 있어요. 날 친딸로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아요.”강유리는 복도 모퉁이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성신영, 그새 연기가 더 늘었네? 정말 놀라워! 저 아저씨도 이제 곧 넘어가겠네.’고정남은 한동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성신영을 위로하려 했지만 결국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송이혁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이혁아, 내 체면을 봐서 들여보내주렴. 시끄럽게 굴지 않을 테니……”“……”송이혁은 고정남의 태도가 변했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부녀를 바라보고 있다가 강유리 쪽을 가리키더니 말했다.“가족이 왔네요. 가족한테 물어보세요. 저는 그저 부탁을 받은 입장이라서요.”고정남과 성신영은 그의 말에 동시에 고개를 강유리 쪽으로 돌렸고, 강유리는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어와서는 입을 열었다.“이렇게 시끄럽게 굴었는데도 아무 말씀이 없으시잖아. 할아버지가 널 안 보고 싶어 하신단 생각은 안 들어?”성신영은 강유리를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언니, 할아버지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자자한데 날 들여보내지 않는 건 좀 웃기지 않아?”“고 씨 집안 아가씨께서 생각이 참 짧네? 강씨 집안 사람이 아니란 걸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 어따 대고 입에 감히 할아버지 성함을 올려?”“뭐라고?”성신영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일그러졌지만,
“엄마, 어디까지 오셨어요?”“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중이야. 네 할아버지 처음 뵙는 자리라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고 싶었는데... 네 남편이 워낙 미적거려야 말이지.”“어머님, 저... 괴롭힘 당했어요.”고개를 숙인 강유리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잠깐의 침묵끝에 송미연이 한결 무거워진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 누가 감히 널!”고개를 돌린 강유리는 잔뜩 당황한 고정남을 힐끗 바라보았다.“고성 그룹 사람들이요.”“이런 썩을 것들... 기다려! 시엄마가 바로 갈 테니까!”이 모습을 지켜보던 송이혁이 헛웃음을 지었다.‘뭐야? 지금 바로 시어머니한테 이르는 거야?’한편, 고정남은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지, 지금 엄마한테 이른 거야? 아니, 애초에 너한테 엄마가 있기나 해?”강유리의 집안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해본 적은 없었지만 성신영 덕분에 그쪽 집안 사정은 대충 알고 있는 그였다.‘쟤 엄마는 죽었다고 들었는데... 설마... 새엄마를 부른 거야?’“이 세상에 엄마 없는 사람도 있나요? 대표님께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셨나 보죠?”강유리가 매섭게 쏘아붙이자 말문이 막힌 고정남은 어색하게 헛기침만 뱉어냈다.다른 건 몰라도 독설 본능만은 놀랍게도 그와 비슷한 여자이기에 불쾌함이 가득 찬 그녀의 얼굴이 왠지 다르게 보였다.한편, 역시 강유리의 통화를 들은 성신영 역시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아까 설마... 시어머니한테 전화를 한 건가? 고부 사이가 저렇게 좋을 수도 있었나?’성신영은 자연스레 육경원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눈빛 한번 제대로 주지 않고 타박만 하는 시어머니가 짜증 났지만 고부 갈등은 모든 여자들이 겪어야 할 시련이라 믿으며 재산을 물려받을 그날만을 기다려왔는데...‘어떻게 시어머니한테 그렇게 애교를 부릴 수가 있어? 그럴 리가 없어...’“언니, 우리 비록 피로 엮인 사이는 아니지만 난 항상 언니를 친언니라고 생각해 왔어. 그런데 어른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말하는 건 도
고정남은 육시준과 육시준의 부모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고, 그의 얼굴에는 망연함이 가득했다.“며느리요?”“고씨 집안이 사생아 하나를 데리고 왔다는 말은 들었어. 온 가족이 기뻐했다며? 그 애를 물든, 빨든 난 전혀 관심이 없어. 하지만 우리 송씨 네 땅을 짓밟고, 육씨 집안을 괴롭히는 건 절대 안 돼. 고정남, 너 정말 뻔뻔하다?” 송미연이 차갑게 말했다.그 말에 고정남은 인상을 찌푸렸다. ‘사생아’라는 말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사모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네요. 제 막내딸은 사생아가 아닙니다!”송미연은 차가운 냉소를 뿜어냈다. “그래? 모르는 사람이 없어! 쌍둥이가 지금 겨우 몇 살인데…”“미연아.”육지원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송미연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육시준은 지금 자신의 부모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강유리를 쳐다보았고, 강유리도 그런 그의 눈빛을 느끼게 되었다.육지원은 고씨 집안의 일을 잘 알고 있다. 근데 왜 그럼에도 저번에 육시준이 물었을 때 모른다고 말한 건지 싶었다. 지금은 그는 또 지난 일을 들먹이는 송미연의 행동을 제지하고 있었다.대체 육씨 집안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거지?“이게 다 무슨 일이야?” 아직 이성을 지키고 있던 육지원이 송이혁에게 물었다.그의 말에 송이혁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고모부.”송이혁은 그에게 간단하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사건의 전말은 대충 이러했다. 성신영이 강씨 어르신을 찾아뵈러 병원에 갔었는데, 병원에서 어르신의 병세가 불안정한 상태라며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방문을 거절했다. 그리고 성씨 집안사람들도 그중에 포함되어 있었고.고정남은 슬프게 울고 있는 딸의 모습에 바로 강유리를 협박했다. ‘기어코 만나겠다면 뭐 어쩔 건데’라는 말을 하면서…“너 정말 뻔뻔하구나? 고작 이런 일로 여자를 괴롭혀?” 송미연은 이 상황이 진심으로 어이없었다.송이혁의 자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육씨 집안 사람들이 여기 있다고 그새 마음이 변해버린 거야?육지원은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제일 진중하고 온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 고씨 집안에 들어간 지 시간이 얼만데! 어른이 말할 때는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해. 그것도 모르는 거야? 가르쳐준 사람 없어? 이렇게 기본적인 예절 문제를 아직도 못 배웠단 말이야?” 마치 조롱하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녀의 궁금증을 해결하기에는 충분한 말이었다.성신영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예전에 그녀가 성씨 집안으로 찾아가 아버지와 함께 강유리의 혼사문제를 상의할 때도 이렇게 혼이 났었던 것 같았다.어른들 말하는데 아랫것들이 끼는 게 아니라면서 말이다.하지만 강유리도 아랫것들이지 않은가? 송미연도 방금 송이혁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바로 강유리의 편을 들어줬는데!데자뷔였다.옛날에 강씨 어르신이 건강했을 때도 이와 똑같았다. 강씨 어르신은 진실이 뭔지 신경도 쓰지 않았고, 항상 강유리의 편을 들어줬다. 강씨 어르신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강유리를 편애하는 바람에 성홍주가 성신영에게 더 마음을 주게 된 것이었다.강씨 어르신이 몸져누우면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육씨 집안이 나서고 있었다.강유리 이 계집애는 왜 이리 팔자가 좋은 거야!성신영은 질투심과 미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강유리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독사처럼 음침하고 무서웠다.“배운 게 없으면 좀 집에 가만히 박혀나 있어. 쪽팔린건 둘째 치고, 주위 사람들 기분까지 잡치게 만들잖아.”말을 이어 나가던 육지원은 이내 시선을 고정남에게로 돌려버렸다. “성신영이 집에 돌아온 기념으로 고씨 집안에서 파티를 연다고 들었어. 우리 집안은 좀 바빠서, 굳이 참석하지는 않을게.”“…”그는 아연실색하며 육지원을 쳐다보았다. 그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고씨 가문은 서울에서
육시준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송미연이 먼저 선수를 쳤다. "둘이 뭘 그렇게 궁시렁대고 있어?"송미연의 말에 강유리는 순식간에 몸을 꼿꼿이 세웠다. "아니에요. 어머님, 아버님 마음에 감사해하던 중이었어요!""그러니?" 송미연은 조금 멍해졌다.“당연하죠. 아님 저희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어른들 말에 아랫것들이 끼어들면 안 되죠." 육시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담담했다."…"그 말이 육지원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그 말은 성신영을 꾸짖기 위해 찾은 핑계일 뿐이였지,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송미연은 그를 한번 째려보고는 다시 강유리를 쳐다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버님 말은 너무 맘에 두지 말렴. 그냥 네 편 들어주려고 한 말 일거야. 우리 집안, 그렇게 팍팍한 집안 아니야."그 말에 강유리는 웃음을 지으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육지원을 쳐다보았다. "진짜예요. 오늘 두 분께 너무 감사했어요."송미연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가족끼리 무슨 그런 말을 하고 그래! 네가 우릴 찾아준 게 오히려 더 고마운 걸! 됐다. 어서 외할아버지 뵈러 들어가 봐."신파를 좋아하지 않았던 송미연은 쿨 하게 이 얘기를 넘겨버렸다.문을 열자,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강씨 어르신은 이미 깨어있었다. 그는 침대맡에 앉아 패드를 손에 든 채로 여유롭게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씨 어르신이 고개를 들었다."왔어?" 강씨 어르신의 미소는 무척이나 온화하고 자애로웠다. 예전처럼 말이다.강유리가 찾아올 때마다 그는 깨어 있는 상태로 침대맡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곤 했다.그러니까, 방금도 깨어있었단 말이지?바깥에서 들리는 소란을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지?"네. 오늘 일이 좀 있어서, 좀 늦어졌어요." 강유리는 빠르게 반응을 하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강씨 어르신에게 육지원과 송미연을 소개시켜 주기까지 했다."부모님이 항상 찾아뵙고 싶어 하셨어요. 유리가 어르신 몸 걱정을 하는 바람에 이렇게
짧디짧은 몇 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강유리는 놀라운 작품들을 여러 개 출품했고, 여러 친구들의 도움과 관리하에 불순한 자의 진면목을 알아내기도 했다.강씨 어르신은 그런 강유리가 자랑스럽기도, 안쓰럽기도 했다…“그리고, 남들이 어떻게 보든 저희는 진심으로 며느리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육씨 집안 사람들도 진심으로 유리를 받아들이고 있고요. 그러니 모두 기꺼이 그녀의 바람막이가 되어줄 겁니다.”송미연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부드러웠고, 그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힘이 숨겨져 있었다.그 말을 듣자, 강유리는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순간, 따뜻하고 거친 큰 손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 남자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강유리는 고개를 돌렸고, 한 쌍의 깊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그 안에는 무언의 인정이 담겨있었다.송미연의 말은 곧 육시준의 속마음이기도 했다.그렇기에 그는 기꺼이 강유리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것이다. 그녀의 편을 들어주며, 그녀가 영원히 아름답고 당당하게 살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강씨 어르신은 두 사람의 행동을 전부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알아요, 전 믿어요.”방금 그는 모든 걸 확인했다.뻔뻔한 고정남의 말에 그는 바로 침대에서 내려왔고 당장 밖으로 달려가 저 미친 새끼를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까지 차올랐었다.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강유리는 흔들림 없이 상대방의 방식으로 복수를 시전했다.힘 좀 있다고 사람 괴롭히는 거?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게다가 예상 밖으로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그녀에게 아주 잘 협조해 주었다…“유리가 태어날 때, 민영이가 사주를 보러 갔었어요. 유리가 복을 안고 태어났다고 하더라고요. 집안으로 복이 들어온대요. 재산이든 사랑이든 부족하지 않게 살아가게 된다고 했어요.”“얘네 엄마가 그런 것도 믿었어요?” 송미연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믿기만 한 게 아니에요. 거의 통달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어요!”“…”강민영 얘기
송미연은 어르신과 함께 저녁을 먹었고, 또 잠시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강유리는 조용히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차가운 그녀의 얼굴에는 고분고분함이 가득했다.어른들 앞에서 아이가 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복도.육시준은 문기준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문기준이 낮은 목소리로 요 며칠 조사한 내용을 읊조리고 있었다.강민영의 경력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녀는 유강 그룹의 아가씨면서도 출신은 미천하지만 성격은 무척이나 건실한 남자와 함께 가업을 이어 나갔다.결혼 후 두 사람 사이에는 바로 아이가 생겼고, 외국으로 6개월간 몸조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출산 후 몸이 너무 허약해진 탓에 그녀는 외국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더 보내게 되었다.겉으로 보기에는 무척이나 평범한 사실들이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이 모녀에 관련된 정보들은 무척이나 적었고, 출산한 병원도 사립 병원이라 기록이 이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병원이 리모델링하면서 예전의 진료기록을 다 잃어버렸다던데…“그렇다고 소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그 사립 병원이 캐번디시 가문의 소유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문기준이 한마디로 결론을 내렸다.그 말에 육시준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또 캐번디시야?”“네! 한 가지 사실이 더 있긴 한데... 아직 의심 중이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문기준이 생각도 안 하고 바로 대답했다. “말해봐.”“강민영에게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사모님의 이모분이라고 하는데, 비혼주의자시랍니다. 쭉 해외에 살고 있어서 자료가 강민영보다 더 적습니다. 캐번디시네 가문이랑 인연이 깊은 게 아닐까 의심되는 상황입니다.”“…”강유리의 신변에는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 모든 건 캐번디시네 가문이랑 연관을 지을 수 있었다.처음 그들이 외국에서 마주치게 되고, 그녀의 조사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다 캐번디시네 사람이 중간에 개입해서 그런 것이었다. 귀국한 후 그가 처음으로 콜라보한 작품의 원작자도 캐번디시 가문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뭐요?”육시준이 캐묻자 육지원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냥. 어디까지나 내 짐작일 뿐이야. 고정남도 자기 친딸이 ‘사생아’라 불리는 건 원치 않겠지.”‘그러니까 성신영에게 대충 그 정도 명분만 주고 두고 보려는 거겠지.’이에 육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엄마가 사생아라는 단어를 꺼내니 고정남이 발끈하긴 했었지...’“그래서 사생아가 맞긴 한 겁니까?”“사생아라고 하기엔 또 애매한 구석이 있어.”“왜요?”“다들 고정남이 가문의 반대를 못 이겨서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하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과 조금 달라.”목소리를 가다듬은 육지원이 말을 이어갔다.“고정남은 정말 가문과 인연을 끊고서라도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하려고 했었어. 그런데... 고태규 회장이 어디 보통 사람이야? 결국 지금의 부인, 그러니까 차한숙과 잠자리를 하게 만들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한숙은 임신을 했고 쌍둥이를 낳게 됐어. 그런데 아이들이 돌이 다 되어 가는데 호적에도 못 올리고 있으니 차한숙 쪽 부모가 결국 나서게 된 거야. 그제야 여자는 그제야 고정남에게 차한숙이라는 아내는 물론, 쌍둥이 자식까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워낙 자존심이 센 여자니 바로 고정남과 헤어지고 서울을 떠났어. 그래서 지금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거야.”아침드라마 못지않은 스토리 전개에 육시준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다.“결국 고정남이 그 여자를 배신한 거군요.”‘와이프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이기적으로 두 집 살림을 해온 그 우유부단함이 이 모든 사단을 만든 거겠지...’“뭐, 그런 거나 마찬가지지.”육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그 여자도 임신 중이었는데 떠날 땐 아이를 지울 거라고 했었다네. 뭐, 시간이 한참 뒤에야 아이를 낳았다는 걸 알게 됐지만.”이에 육시준이 헛웃음을 터트렸다.“고태규 회장이 숨긴 거겠죠. 다들... 찌질하네요.”‘아니면 영감들은 다 그렇게 비겁한 술수를 쓰는 걸 좋아하는 건가?’“어쨌든 고씨 집안 핏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