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우는 또 4통의 전화를 받았다!하나같이 안지영이 맞선을 보려고 한 일을 얘기했고, 하늘그룹을 건드리지 않으면 바로 시집가겠다고 했다는 얘기도 했다. 바로 시집을 간다고? 이렇게나 호탕하단 말인가!안지영이 안씨 가문을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알 수 있었다.배준우는 이 얘기를 그대로 나태웅에게 전달했다. 그 시각 나태웅과 나태현은 회사에서 미팅 중이었다.….회의실.배준우의 전화를 받은 후 나태웅의 안색은 급격하게 어두워졌고, 미팅이 끝날 때까지 회의실은 감히 숨도 내쉴 수 없을 만큼 긴장한 기류가 감돌았다.미팅이 끝난 후에 나태현이 나태웅에게 물었다. “동영그룹에서 나왔는데도 배준우가 아직도 너한테 수시로 연락해?” 나태현은 책상 위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다른 일 때문이야!”“몇 년동안 넌 충분히 그를 많이 도와줬어.” 가끔 나태현은 동생에게 뭐라고 하면 좋을지 난감했다.또한 그 일 때문에 형제는 몇 년간 서로 서먹서먹하게 지냈고, 태도 역시 냉랭했다.나태웅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핸드폰을 들고 일어서서 회의실을 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보는 나태현의 눈빛에는 냉랭함이 스쳐 지났다.사무실에 돌아온 나태웅은 바로 안지영에게 전화 걸었다.그녀는 아마 계속해서 다른 사람과 맞선을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그녀는 한참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나 대표님.”“어디야?”“지금 맞선보고 있어요.” 안지영은 난감한 듯 얘기했다.그녀의 말투에는 의기소침함이 묻어났다.하루 동안이나 맞선을 보았지만, 그녀는 자신과 결혼하겠다는 상대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들은 분명 배준우와 친분이 있고 도움 요청할 수 있는 상대이다. 그들 목숨을 내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배준우를 두려워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들은 배준우와 사이가 좋았다. 혹 자신이 그 정도로 예쁘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생각할수록 안지영은 멘붕이 왔다.안지영이 맞선을 본다는 얘기에, 나태웅은 화를 겨우 참으면서 손목시계를 보았다.그 순간 화가 분출했고,
”엉엉…!” 안지영은 바로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한참 울고 나서 눈물을 닦으니 또 다시 의욕이 살아났다!나태웅이 내일은 무조건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고 하니, 오늘밤엔 꼭 적합한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는가?그렇다면 지금의 맞선 상대를 어떻게든 꼭 잘 설득해야 한다.안지영은 속으로 파이팅을 외쳤다!다시 기운을 찾고 레스토랑에 들어와 보니, 자리에는 사람이 가고 없었고, 웨이터가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안지영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뒤로 하고 웨이터에게 물었다. “여기 있던 분은 어디 가셨나요?”안지영을 본 웨이터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 조금 전 여기 계시던 분이 계산하시고 먼저 가셨습니다.” “……”설마, 이렇게 그냥 갔다고?다들 배준우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가 그렇게 두려운 것인가?배준우의 이름만 듣고 바로 핑계 찾아 떠났고, 이 사람은 아예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물, 불 가리지 않고 덥석 매달릴 정도로 귀찮은 여자로만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비록 현재 상황에서 그렇게 하고 싶지만, 결국 안지영은 레스토랑에서 나왔다!핸드백에서 리스트를 꺼냈고, 모두 배준우와 사이가 가까운 사람들이었다.펜으로 체크한 사람은 이미 맞선을 본 상대이고, 배준우와 사이가 제일 좋은 사람들이기에 지금 다른 사람을 찾으려고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안지영은 또 한 번 리스트를 훑어보았고, 육범수와 장선명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육범수는 여자 친구가 있으니 장선명이 그 중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였다.또다시 안지영의 전화를 받은 장선명은 조금 놀란 말투로 물었다. “한번 만나자고?”“네,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 절대로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안지영은 전화로 얘기했다.한편 장선명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손목시계를 보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배준우가 혹시 당신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나요?”“그는 나쁜 놈입니다!”안지영은 더 이상 자신의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사람인가? 자기 마누라가 임신했는데 그녀에게 그 책임을
”이것이 당신이 말한 본론 입니까?” 장선명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사실 안지영은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지만 애써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참으려고 노력했다.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얘기했다. “장 대표님은 외부를 충분히 놀라게 할만할 물건을 소유하고 계시지요. 만약 당신의 아내가 조금만 행동을 조심하지 않는다면, 장 대표님 역시 목숨이 위태로워지실 수 있습니다.”그 말인즉, 장선명은 여자를 선택함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였다. 이 얘기를 들은 장선명은 눈살을 찌푸리며 안지영을 보았고, 감추고 있었던 흉악한 눈빛이 스쳐지나갔지만 돌아서니 그 눈빛은 사라졌고, 건방지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그래요?”“장씨 어르신께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늘 장 대표님 혼사에 대하여 걱정하셨죠. 지금은 적합한 상대도 없으신 것 같고.”“그럼, 당신이 그 적합한 상대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장선명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참 재미있는 여자이다. 분명 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으면서 겉으론 엄숙한 표정으로 자신과 거래를 하고 있다.그녀는 준비하고 왔지만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이는 결코 아무 여자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어르신에게 예쁨을 받도록 노력할 것이고, 당신이 하는 일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안지영이 말했다.“……”“저와 결혼하시면, 당신을 성가시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성가시게 하지 않는다는 말에 장선명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그가 몇 년 동안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여자는 귀찮은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어르신이 그의 결혼을 재촉하는 것 역시 사실이였다.그는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나날이 건강이 나빠진다는 소식에 그도 더 이상 적합한 사람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안지영의 말이 맞았다. 아직은 적합한 사람이 없었다.이 여자 오늘 단단히 준비하고 온 것이로군!“그럼, 당신 조건은 무엇인가요?” 잠시 생각하던 장선명은 웃으면서 안지영을
배준우는 정말이지 도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인간이었기에 장선명이 고개를 끄덕였다.“뭐 이미 그렇게 되기는 했지만, 너네가 걔를 그렇게 속인 건 솔직히 과했다고 생각해.”이렇게 큰일을 그렇게나 오랫동안 속여온데다가 앞으로도 그냥 쭉 그렇게 속일 생각이었다니 말이다. “우리가 잘못한 건 맞지만, 지금은…”거기까지 말한 안지영도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뭘 말하든 이미 늦었다는 걸 느껴버린 탓이었다.어쨌든 배준우 본인도 이제 아내도 아이도 있는 몸인데 남에게만 화풀이하는 모양새가 좋지는 않은 게 분명하니까!“어찌 됐든, 배준우가 더 이상 안 씨 집안을 곤란하게 할 일을 없게 만들어준다고 약속만 해준다면 전 당신에게 시집 갈게요.”장선명이 손에 든 와인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나 쉽게?”“네. 그렇게 쉽게요.”안지영이 곧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막상 그녀가 이렇게 위축된 모습으로 나오니, 장선명도 이 여자가 꽤 재밌다고 느껴지는 것이었다.그리고 솔직히, 그녀가 꽤 걸맞은 상대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그럼 1년은 어때?”“네?”“맥시멈 3년으로!”장선명이 안지영을 돌아봤다.아주 적절한 기간이었다.평생은 너무 기니, 딱 적당한 시간 말이다. 이 결혼은 어쨌든 기간이 정해진 계약 관계니까.안지영이 채 무슨 뜻인지 모르고 머뭇대는 사이, 장선명이 뒤이어 말을 이었다.“이혼녀가 되는 건 상관없는 거지?”결혼도 아직 안 했는데 이혼 이야기를 해야 된다니!물론 이 결혼이 확실한 목적을 띄고 있는 이상, 안지영도 전혀 그런 것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상관없어요.”“그러면 됐어.”“그러면 선명 씨도 안 씨 집안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하는 거죠?”“당연하지.”마치 약속을 지킬 거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 장선명은 그 자리에서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창 자고 있을 시간이기는 해서, 전화는 한참이 지나서 연결되었다.졸음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여보세요…
나태웅이 몇 통의 전화를 걸든 안지영은 받지 않았고,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나머지 당장에 사람을 불러 그녀가 어딘지 알아내라고 시켰다.그러나 그가 채 그녀의 행방을 알아 내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뉴스가 터져 강성 시내를 아주 홀라당 뒤집어 놓고 말았다!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뉴스를 확인하고는 놀라서 뒤집어졌다.성적 취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루머가 자자한 장 가의 넷째 도련님 장선명이, 새벽에 갑자기 결혼을 발표한 것이었다.바로 그 배 가의 큰 도련님보다도 조금 더 다가가기 힘든 존재라는 장 가의 넷째 아들 말이다!나태웅이 그 뉴스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댓글 창이 99만 개를 넘어갈 정도로 미어터지는 상태였다. 그것만 봐도 이 뉴스의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대표님.”안지영의 행방을 찾아오라는 불호령에 새벽에 잠자리에서 끌려 나온 비서실장 왕여가 다가와 공손하게 손을 모아 섰다.나태웅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 “애는 어딨어?”“방금 그랜드 마운틴에서 나와서 안 가 쪽으로 갔다고 합니다.”왕여가 대답했다.그랜드 마운틴? 장선명이 사는 곳 아닌가?지금 떠났다고? 이제서야? 이 미친 여자 같으니라고!안 씨네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나태웅은 당장 외투를 챙겨들고 날듯이 밖으로 곧 바로 뛰쳐나갔다.그 기세는 당장이라도 안지영을 목 졸라 죽일 듯했다.….한편, 이제서야 배준우와 뭔가 말이 통했다고 느낀 고은영은 조금 마음이 놓여 처음으로 푹 잠을 잤다.아침 식사 자리에서도 그녀는 그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조심스럽게 배준우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은 여전했다. 그전에 얼마나 호되게 놀랐는지 여실히 보이는 대목이었다.“뭘 그렇게 봐?”“준우 씨 기분이 어떤지 보고 있었어요!”그녀는 정말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배준우가 뱃속의 아이를 원하는 게 맞는다고 느껴진 지금에서야 간신히 무서운 게 조금은 없어졌고, 그는 그녀가 하는 짓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당연히 더 이상 어쩔 수 없게 되었다!장선명과 배준우, 이 둘이 아주 가까운 건 익히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 장선명이 나선다면야, 배준우로서도 더 이상 안지영을 어쩌기는 힘들어지는 것이다.고은영이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봤다.“뭘 또 그렇게 쳐다봐?”“이거….. 혹시 지영이가 협박당한 건 아닌가요?”“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지. 걘 확실히 너보단 똑똑한 거 같던데?”배준우가 낮게 웃었다.그러나 안지영이 똑똑하다고 하는 그 뒤를 이어 하고 싶던 말은 하지 않았다.안 씨 네 아가씨가 똑똑한 건 확실히 똑똑하긴 하지만 요 몇 년간 고은영에게 영향을 받은 것도 적지는 않기 때문이다.…..한편 고은영은 마냥 마음을 놓지는 않아서, 배준우가 위층으로 서류를 가지러 간 사이에 안지영에게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어젯밤에 하도 일이 많았다 보니 그때 그녀는 한창 잠에 빠져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혼몽한 목소리가 전해져 온다.“은영아.”“너, 너 결혼해?”"약혼이라고 약혼…. 약혼 몰라?”고은영의 말을 듣자마자 안지영은 그녀가 뉴스를 봤다는 걸 알아 차렸다.전날 장선명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혹시라도 그가 나중 가서 다른 소리를 할까 봐 바로 기사를 내자고 한 것이었다.우선 약혼부터 하고, 3달 뒤에 결혼하자는 말에도 그가 군말 없이 다 알겠다고 해서 오히려 안지영이 약간은 황당해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쉽게 말이 통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이렇게 되면 확실히 배준우가 끼어들어 안 씨 집안에 뭔 수작질을 하는 일은 더 이상 없게 되는 것이다.아무래도 이제는 그녀를 건드리는 게 곧 제 형제나 다름없는 장선명을 건드리는 일이니, 화풀이 한번 하자고 형제지간의 좋은 감정까지 깨기에는 배준우 입장에서도 별로 가치 있는 일이 아닐 테니까.이게 안지영이 열심히 배준우와 사이좋은 사람들만 찾아다니면서 선을 보던 이유이기도 했다.“약혼이어도…. 너, 혹시 장선명 씨 좋아해?”“그러는 넌. 너는 배 대표님이 좋니?”안지영은 어이
지금의 안지영으로서는 당연히 나태웅이 그 전날 야밤에 냅다 안 씨네 집으로 가서 밤새 떠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몰랐다. 물론 그 방문 덕에 안진섭 역시 밤새 한숨도 못 잔 것은 당연지사였다.때문에 그의 목소리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분노가 가득했다.“내 차마 사람 불러서 널 끌고 오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 당장 집으로 와라!”“아… 알았어요!”그의 엄한 말투를 들으니 사실 안지영도 겁 없이 큰일을 쳐놓은 것치고는 꽤나 겁이 났다.아빠가 엄하게 굴 때는 반드시 일이 커지고 난 다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예전에 공부를 시킬 때도 그랬고, 아무튼 그가 엄해질 때는 감히 반박할 엄두도 안 나기도 했고, 말을 안 들어서도 안된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안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본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홉시가 조금 넘어가던 시각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느꼈다.역시나, 나태웅이 거기 있었다!그는 한창 제 아빠인 안진섭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안진섭의 얼굴은 단단하게 굳어 있기는 했지만 공손하기 그지없어서 그녀는 그만 약간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나태웅 제가 뭐라고? 저 까짓 게 뭐라고 감히 아빠를 저렇게 긴장하게 만들 일이 있단 말인가?안지영이 돌아온 것을 본 안진섭의 얼굴이 더 굳었다.“왜 이제서야 오는 거지?”“아빠 전화 끊자마자 바로 온 거예요."안지영이 우물우물 대답했다."어젯밤부터 전화도 안 받고, 너, 너 어린 여자애가 무슨 야밤에….”거기까지 말한 그의 입이 꾹 다물고 말았다. 외동딸 하나에다가 아내와도 일찍 사별한 탓에 더욱더 애지중지하면서도 엄하게 길러온 딸이었다. 그런 딸이 야밤에 남자를 찾으러 갔다는 둥의 그런 말을 안진섭은 차마 제 입으로는 꺼낼 수 없었던 것이었기에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어쨌든 이제 배 대표님이 저희를 곤란하게 할 일은 더 이상 없을 거예요. 아빠도 마음 놓으세요.”“너…..”배준우가 행
나태웅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안지영도 그녀대로 그의 온몸에서 풍기는 분노가 대체 뭣 때문인지 알 수가 없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아이디어는 본인이 줘 놓고, 내가 하란 대로 잘 해서 해결을 해 냈는데 기뻐하기는커녕 화만 내다니.“그리고, 약혼식은 일주일 뒤에 하니까 와 주세요. 샴페인도 있고…."약혼식에 뭔 놈의 얼어 죽을 샴페인이야!나태웅은 그 순간만큼은 아주 그녀를 잡아먹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옛말에 사람 사귈 때 가려 사귀어야 한다더니 역시 조상님들 말에는 틀린 구석이 하나 없다. 고은영 패거리와 어울려 다니더니 머리까지 완전 고은영처럼 되어 버린 듯했다.그대로 차에 타고 떠나버리는 나태웅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영문을 알 수가 없어 턱을 만지작거렸다.“정말이지 남자 마음은 알 길이 없네!”한마디 투덜거림을 마치 듣기라도 한 듯 귀신같이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당장 출근이나 해!]전화도 아니고 문자로 날아온 텍스트 한 줄로도 그의 분노가 느껴졌다.오늘 출근하면 뭔가 나태웅이 사심 가득한 야근을 시킬 것 같다는 아주 불안하고도 그럴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정말이지 남자라는 녀석들은 무시무시했다! 고은영과 배준우의 관계를 옆에서 보면서도 했던 생각이지만, 역시 다시는 남자들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였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눈에 안진섭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들어왔다.요 몇 년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흡연이었다.그의 앞에 놓여있는 재떨이에 어젯밤부터 피워 냈을 수많은 담배꽁초들이 가득해서 그녀는 조금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빠!”“나 대표님이랑은 이야기 잘 했어?”안지영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잘’ 했느냐고 묻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그냥 고개를 끄덕이자 안진섭이 “후”하고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그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장 씨네 넷째 도련님은 꽤 괜찮은 분이세요.”"네가 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봤길래 보자마자 좋은지 나쁜지를 안다는 것이냐!”장선명이 좋은 사람인지 아
“진이훈!”“네, 대표님.”“거기 서서 뭐 해! 얼른 돕지 않고!”나태웅이 고함을 질렀다.겨우 한숨을 돌렸던 진이훈은 그런 나태웅의 말을 듣고 온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것만 같았다.‘나도 같이 죽자는 건가... 아무리 상사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진이훈은 죽고 싶지 않았다....나태웅은 결국 강제로 끌려 들어갔다.새벽 두 시. 나태범은 실크 잠옷을 입고 얼굴을 찡그린 채 나태웅을 쳐다보았다. 단잠을 방해한 녀석이 썩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나태범은 화가 난 말투로 말했다.“체력이 남아도는 모양이야?”동영 그룹에서 사람이 되어 온 줄 알았더니만, 지금 보니 사람이 덜 된 것이 분ㅁ여하다.16살 때보다 더 세게 반항하고 있으니 말이다.그때도 나태웅을 진정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어려워졌다.나태범의 사람들은 나태웅을 끌고 들어와 의자에 억지로 앉혔다. 의자에 앉는 순간 나태웅은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감을 드러냈다.나태범은 그런 나태웅을 보면서 더더욱 화가 났다.“내가 오늘 너한테 한 말을 다 잊은 거야?”“안지영은 지금 킹덤 타운에 있어요. 방법을 대서 거기서 나오게 해야해요.”“...”“...”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보듯 나태웅을 쳐다보았다.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뿐만이 아니었다.나태웅을 잘 아는 사람들은 나태웅이 몇 년 동안 변하지 않았음을 잘 알아낼 수 있었다.동영 그룹에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변한 것 하나 없었다.“너 이 자식, 안지영이 킹덤 타운에 산다고 해서 킹덤 타운에 쳐들어가 그런 짓을 벌여?”그렇게 말하면서도 나태범은 가슴 한편으로 뿌듯함을 느꼈다.나태웅이 드디어 조바심을 내니까 말이다.“이유가 부족한가요?”“그래,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보마.”“아버지!”옆에 있던 나태현이 언성을 높였다.나태범과 나태현의 시선이 부딪쳤다. 나태현의 눈빛은 차갑고 진지했고 나태범의 시선은 어쩔 수 없다는 것 같았다.나태현은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프로젝트 두
나태웅이 킹덤 타운으로 돌아가려 하자 나태현은 화가 나서 나태웅의 뒤통수를 후려쳤다.“너 이 새끼 그만할 때도 됐잖아!”‘어쩌다가 이런 놈을 친동생으로 둬서...’“난 킹덤 타운에 갈 거야. 지금 당장! 얼른 운전해!”나태현은 화가 치밀어올라 숨도 가빠졌다.앞에 앉아 있던 운전기사는 나태웅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백미러를 통해 나태현을 쳐다보았다.나태현은 심호흡을 여러 번 했지만 여전히 진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화가 난 나머지 충동적인 결정을 내렸다.“그래, 가버려!”그러고는 차에서 내려 문을 쾅 닫았다.차에는 나태웅과 운전기사만이 남았다.나태웅이 차갑게 말했다.“운전해.”운전기사는 그 말을 들으면서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었다.운전기사는 나태웅을 데리고 킹덤 타운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오늘 밤 일 때문에 나태현을 데리고 킹덤 타운에 갔을 때 두 사람 눈앞에 벌어진 장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나태웅과 장선명 다 이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지금 다시 킹덤 타운에 돌아가면 아까보다 더 심하게 싸울 것이다.게다가 나태웅이 계속 부르는 그 안지영이라는 사람도 장선명의 편을 드는 것 같던데.어느새 진이훈의 차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진이훈을 본 운전기사는 동아줄을 잡은 것처럼 기뻐했다. 나태현의 명령도 잊은 채 바로 차에서 내려 도망쳤다.차에서 내린 진이훈은 운전기사가 차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을 발견했다.그럼에도 당황하지 않고 나태웅에게 다가가 물었다.“대표님, 오늘은 여기서 묵으실 겁니까?”진이훈은 나태웅이 이곳에서 묵지 않을까 봐서 걱정이었다.지금 나태웅의 상태를 보아하니 진이훈이 운전해도 소용없을 것이다.게다가 화가 잔뜩 난 상태니 곱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나태웅은 천천히 눈을 떴다.어두운 공간 속에서 나태웅의 두 눈은 위험하게 반짝였다. 밖에 서 있던 진이훈은 싸늘한 눈동자를 보면서 마음속에서 불안함이 피어올랐다.나태웅이 차갑게 얘기했다.“킹덤 타운으로 간다.”“...”그 말을 들
역시나 사업가의 딸이라 그런지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안지영은 나태웅이 전에 안지영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잊은 모양이다.나태웅이 이 사실을 안다면... 더욱 큰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다시 또 이곳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난장판은 두 개의 프로젝트 덕분에 끝이 났다.배준우가 떠난 후 장선명은 안지영을 품에 꽉 안은채 물었다.“어떻게 프로젝트 두 개에 본인을 팔 수 있어?”“사실 백서면 충분했는데, 덕분에 서탑까지 가져오게 됐네요.”안지영이 애교 섞인 말투로 얘기했다.그래서 나태현이 처음에 서탑을 얘기했을 때는 가만히 있었지만 백서를 언급하자 바로 허락한 것이다.백서의 프로젝트는 안열이 자주 얘기하던 것이다. 안지영은 백서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좋은지 잘 알고 있었다.장선명은 여전히 불만스러웠다.“네가 승낙하지 않았으면 나태현이 더 얹어줬을 수도 있잖아.”나씨 가문의 사람들은 재력을 과시하길 좋아한다.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이니 이 기회에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도 있었는데...장선명의 불평을 들으면서 안지영은 이마를 짚고 얘기했다.“걱정하지 마요. 우리가 더 승낙하지 않았다면 그냥 나태웅을 버리고 갔을걸요?”“...”장선명은 나태현이 그런 냉혈한일 줄은 몰랐다.하지만 안지영은 나씨 가문의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다.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다. 나태현이라면 자기 동생을 버리고도 남을 것이다.장선명 눈가에 생긴 상처를 보면서 안지영은 속으로 나태웅에게 욕설을 가득 퍼부었다.‘정말 미친놈 아니야? 여기까지 쳐들어와서 사람을 떄리다니.’...나태웅은 나태현에게 끌려 나가서 차에 앉았다.그러면서도 화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그런 나태웅을 보면서 나태현은 동생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였다.나씨 가문에 도착한 후 나태현이 입을 열었다.“직접 가서 회장님께 얘기 드려.”두 프로젝트는 나태웅 때문에 넘기게 된 것이다.사실 나태현은 킹덤 타운에 가기
분위기는 차갑기만 했다.장선명의 태도는 아주 결연했다. 나태웅이 오늘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킹덤 타운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배준우는 안지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만하자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안지영은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했다.안지영은 이미 나태웅 때문에 화가 극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런 나태웅을 위해 장선명을 말리라고? 왜? 안지영의 태도는 장선명과 같았다.그런 안지영의 태도를 본 배준우는 나태웅에게로 시선을 돌려 눈치를 주었다.나태웅도 알 수 있었다.나태웅은 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이를 꽉 깨물었다.모든사람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 나태현이 장선명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그러면 서탑의 프로젝트를 너한테 줄게.”장선명은 그 말을 듣고 차갑게 웃었다.“내가 약혼녀를 팔아넘길 사람으로 보여요?”“...”“백서의 프로젝트도.”“내가...”장선명은 화가 났다.하지만 장선명이 화를 쏟아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장선명의 손을 잡아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장선명은 어리둥절해져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그래요. 호탕해서 좋네요. 받아들일게요.”“안지영!”장선명이 이를 꽉 깨물었다.“이제 가세요.”“...”장선명은 화가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장선명은 그깟 돈에 안지영을 팔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안지영은 흔쾌히 자신을 팔아넘겼다.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안지영의 허락을 받은 나태현과 배준우는 다 한숨을 돌렸다.나태현이 일어서서 나태웅을 향해 얘기했다.“가자.”하지만 나태웅은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안지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차가운 눈빛은 안지영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았다.그런 나태웅을 본 나태현은 얼른 일어나 나태웅을 끌어갔다.“가자니까.”이러고 있다가는 더 큰 일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나태웅은 나태현에게 거의 끌려 나가면서도 끝까지 안지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안지영이 왜 허락하는 거지? 왜 장선명 대신 결정하는 거지? 안지영이 장선명의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자
급한 일이기는 하지만 배준우는 일단 품속의 고은영부터 다독였다.이렇게 귀엽고 포근한 아내를 두고 집을 나서야 한다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나태웅은 다른 남자의 여자를 넘보고 있으니. 이런 기분을 모르겠지.’배준우는 나태웅이 안지영과의 사이를 제대로 처리 못 해서 이 사달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제 나태웅과 안지영의 사이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비틀어졌다. 그러니 이렇게 애를 써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배준우는 나태웅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먼저 자. 난 늦게 돌아올 거니까.”“지영이 일 때문이에요?”고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응,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나태웅이 킹덤 타운에 갔대. 안지영은 지금 킹덤 타운에서 장선명과 동거 중이거든.”배준우의 말을 들은 고은영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대충 알 것 같았다.안지영을 향한 나태웅의 집착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이런 상황에 놓인 안지영을 떠올린 고은영이 얘기했다.“나도 같이 갈게요.”“그러지 마. 같이 가 봤자 싸우는 모습만 보고 올 텐데.”“...”고은영은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장선명과 안지영은 다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다.거기에 궁지에 몰린 나태웅까지 더해지면...“그래요. 그럼 난 안 갈게요.”고은영이 대답했다.고은영은 약간 맥이 빠졌다.고은지는 오늘 이미 천락 그룹에 출근했다. 고은영은 고은지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 몰랐다.배준우가 킹덤 타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열두 시 반이었다.거실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있었는데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나태현은 이미 도착해있었다.거실의 분위기는 북극보다도 춥고 무거웠다.장선명은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입가에 피가 묻어있었다.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 옆에 앉아 있었다.나태웅은 다른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얼굴에도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진이훈도 두 그림자를 보았다.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뒷좌석을 스윽 살피고는 전전긍긍하면서 물었다.“대표님, 돌아갈까요?”‘그러게 내가 오지 말자고 했잖아!’킹덤 타운에 찾아와봤자 창피만 당하고 쫓겨날 것이다.진이훈은 나태웅이 바로 별장으로 쳐들어갈까 봐 걱정되었다.이윽고 차량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이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나태웅은 먼저 차에서 내려버렸다.“...”진이훈은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다. 이윽고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바로 차에서 내렸다.“대표님, 대표님!”진이훈은 나태웅을 꽉 잡았다.이곳은 킹덤 타운이다. 나태웅이 이곳에서 일을 벌여봤자 좋은 점은 하나도 없다.게다가 장선명의 성격이 어떤지는 강성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 아닌가.장선명은 위험하고 날카로운 사람이다.장선명을 건드린 사람에게는 좋은 결말이 없었다.다만 나태웅과 진이훈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장선명이 벌써 돌아왔다는 것이다.나태웅은 원래 안지영과 끝장을 보려고 이곳에 온 것이었건만, 신나나를 찾으러 간 장선명이 벌써 킹덤 타운에 돌아왔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창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아하니, 두 사람은 신나나 때문에 싸우지도 않고 있었다.두 사람의 그림자는 전형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이거 놔!”나태웅의 명령에도 진이훈은 나태웅을 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 꽉 잡았다.그리고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얘기했다.“대표님, 안지영 씨는 확실히 장선명 씨의 약혼녀입니다.”안지영과 장선명의 시작이 어찌 되었든, 애원이었는지, 거래였는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은 결국 정상적인 예비부부가 되었다.‘장선명 씨의 약혼녀’라는 말이 나태웅의 신경을 긁었다.진이훈이 아무리 말려도 나태웅은 결국 진이훈을 뿌리쳐냈다.“대표님, 대표님!”나태웅의 세상은 완전히 붕괴하였다. 나태웅은 지금 진이훈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화가 잔뜩 난 채로 킹덤 타운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진이훈의 머릿속은 오직 한마디로 가득했다.‘오늘 이곳에
진이훈은 자기 뺨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찾아가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저 여자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너무 화내지 마십쇼. 안지영 씨는 나 대표님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장선명 때문에?”“...”진이훈은 할 말을 잃었다.정확하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씨 가문은 장 씨 가문에게서 사과를 받아내야했디.하지만 나태웅의 충동적인 결정 때문에 그것마저도 거품으로 돌아갔다.진이훈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태웅은 화가 나면 그 감정에 휩쓸려 모든 것을 잊는 사람이었다.그 시각.안지영도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장선명은 저녁 열한 시에 들어왔다. 여덟 시에 나갔으니 총 세 시간 동안 밖에 있은 셈이었다.집에 돌아온 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물었다.“왜 화내고 있는 거야?”“나태웅 때문에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대답했다.안지영의 화를 이만큼이나 돋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태웅이 유일할 것이다.이제야 회사 일 때문에 나태웅에게 제대로 복수도 하지 못했는데, 나태웅은 거의 매일 시비를 걸었다.게다가 가장 화가 나는 건, 나태웅 때문에 안지영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태웅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것이다.안지영은 그런 나태웅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나태웅이 매일 시비를 걸고 또 자기 아버지까지 끌어들였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신나나 씨는 어때요?”안지영은 나태웅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바로 화제를 돌렸다.나태웅 얘기를 듣던 장선명은 표정이 어두워졌다.신나나의 얘기를 꺼내자 장선명의 표정은 더욱 썩어들어갔다.“눈가를 3cm 정도 봉합했어. 지금은 병원에 있어.”“그렇게 심각한 일이었어요?”안지영은 아주 놀랐다.클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하지만 신나나는 매직 썬의 에이스로서 인기도 많고 돈벌이도 쏠쏠했다.기씨 가문은 요즘 들어 강성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문이었지만 장씨 가문과
안지영은 화가 나서 이마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였다.전화기 너머의 나태웅은 계속해서 이어 얘기했다.“안지영, 장선명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본 남자야. 네가 그런 남자의 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아니면, 장선명이 정말 너랑 약혼할 거라고 생각해? 매하리에서 한번 은혜를 입었다고 정말 너를 데리고 일생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지금도 봐, 장선명은 다른 여자를 위해 너를 버렸잖아!”안지영은 나태웅의 말투가 안지영의 불행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장선명에게 버려진 안지영을 보면서 축하 파티라도 열 사람 같았다.나태웅의 인성을 잘 아는 안지영은 나태웅의 생각도 쉽게 알 수 있었다.‘전에 동영 그룹에 있을 때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하, 그렇게 말하면 본인이 장선명 씨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면 왜 나더러 하주원한테 가서 사과하라고 하는 거예요? 시비를 가리는 눈이 없나 봐요?”“그건 다른 일이잖아!”“뭐가 다른데요! 내로남불 같은 놈.”안지영이 중얼거리면서 말했다.지금의 안지영은 그저 나태웅을 욕할 기회만 있으면 서슴지 않고 욕설을 쏟아냈다.안지영은 전 세계의 욕설을 모아서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나태웅은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말이다.“안지영, 좋은 말로 할 때 입에서 걸레 빼.”“너나 입에서 걸레 빼세요.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내가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당신만큼은 죽어도 찾아가지 않을 테니까. 왜 계속 내 눈앞에서 걸리적거리는 거예요! 관종이에요?”“...”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확신했다.‘안지영,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선심을 써서 얘기해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뿐이었다.하지만 안지영은 쉬지 않고 이어서 얘기했다.“그리고, 선명 씨가 신나나 씨 때문에 매직 썬에 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굳이 와서 귀띔해 줄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알려줬다고? 이건...’“나태웅 씨, 당신은 장선명이랑 비교하
‘지금 벌인 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미친 거 아니야?’안지영은 심호흡을 하면서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려고 노력했다.“안지영,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나태웅은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고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안지영도 더는 참지 못하고 같이 화를 냈다.“내가 생각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나태웅,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나태웅에게 괴롭힘당하는 요즘을 생각하면 안지영은 나태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강성의 사람들은 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미치광이가 된 줄 안다.하지만 안지영은 나태웅의 정신병이 대대로 유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강성에서 가장 잔인한 여자로 만들어 버렸다.그리고 이제는 안지영을 괴롭히는 데 그치지 않고 장선명까지 괴롭히려고 한다.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숨이 턱턱 막혔다.“내가 뭐 하는 거냐고? 뭐 같아 보이는데?”“내가 당신 같은 사람의 속셈을 어떻게 알겠어요! 궁금하지도 않아요!”안지영은 짜증이 확 몰려왔다.안지영은 나태웅 때문에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채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안지영, 장선명이 오늘 밤 왜 나갔는지 정말 모르겠어?”“당신이 일을 벌이니까 나간 거잖아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죽이고 싶었다.“신나나 때문에 킹덤 타운을 떠난 거야.”“...”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분노로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었다.안지영은 숨이 점점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화가 난 나머지 제 자리에 서서 몇 바퀴나 돌았다.나태웅에게 뭐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나가지 않았다.아무 대답도 못 하는 안지영을 보면서 나태웅은 말투를 약간 누그러뜨렸다.“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장선명은 신나나를 구하러 매직 썬에 간 거야.”나태웅은 일부러 신나나의 이름을 강하게 읽으며 얘기했다.마치 안지영에게, 장선명은 이미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