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는 태블릿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섰다.평온하고 부드러운 자태와, 생각보다 더 덤덤한 얼굴에 세훈은 마음 한구석이 아파왔다.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그는 발걸음을 뚝 멈춰 섰다.그의 이상 반응에 경호원 팀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세훈은 손을 올려 넥타이를 쭉 잡아당겼다. 차분하던 얼굴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여러분 죄송하지만, 자리 좀 비켜 주시죠.”차분하고 진정성 있는 독일어가 들려왔다. 조각 같은 얼굴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제 아내가 마중을 와서요. 이만 돌아가 주세요.”그 말에 소란스럽던 주변이 조용해졌다.그러나 이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그러니까 저 잘생긴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거지?][가자, 가자, 유부남이래.]사람들이 속속히 자리를 떠나고, 공항에도 정상적인 질서가 찾아왔다.경호원 팀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내가 마중을 나왔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중간에 서있던 세훈은 이미 그 틈에서 나왔다.세훈은 청아의 앞으로 우뚝 섰다.두 사람 모두 비즈니스 룩이었고, 멀리서 보아도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하지만 가까워진 거리와는 달리, 두 사람은 오히려 모르는 사람처럼 서먹했다.세훈은 말없이 청아를 바라만 보다가, 겨우 한마디를 짜냈다.“오랜만이에요.”청아는 살풋 미소를 짓더니, 예의 바른 미소를 지어 보였다.“강세훈 대표님, 오랜만입니다.”대표님이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 세훈은 심장이 칼로 난도질을 당한 것 같았다. 마음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마치 3년 전 그날, 사랑스럽게 쳐다보던 눈에 차가운 냉기를 담고 헤어짐을 고하던 그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때 청아는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강세훈 도련님, 제가 너무 오랫동안 괴롭혀서 죄송하네요.”그날의 기억은 매일 밤 세훈을 괴롭혔고,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는 아픔이 되었다.카페에서.청아는 고개를 숙여 메뉴판의 커피를 살폈다.세훈은 시선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몰라, 조심스레 청아의 얼굴을 살폈다.“그동안 잘 지
만나고 싶어 하니, 그럼 만나지 뭐, 라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나온 청아였다.그녀는 더 이상 순수하고 열정이 넘치던 과거의 송청아가 아니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올 용기조차 없었다면, 이 관계를 이겨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그녀의 쌀쌀맞은 말투에 세훈이 침묵했다. 잠시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지만, 세훈은 빠르게 표정을 지웠다.“배가 고파서요.”세훈은 그녀의 업무 요청을 피했다.청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세훈을 쳐다보았다. 태평하게 배고프다는 말을 할 줄은 예상 못 했다.예전의 강세훈은 사람의 마음에 칼을 수십 번 꽂고도,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고, 차갑게 떠나던 사람이었다.그는 절대 먼저 숙이는 법이 없었다.청아는 조금 당황했지만, 세훈의 제안을 거절하지도 않았다. 오늘 이 자리에 청아는 회사를 대표해 나왔고, 식사 대접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그녀는 메뉴판의 몇 가지 요리를 체크해 웨이터에게 넘겼고, 정통적인 독일어 발음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웨이터가 자리를 떠나고, 청아가 고개를 돌리자 한참 전부터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세훈과 시선이 마주쳤다.그의 얼굴에는 전에 본 적이 없던 깊은 감정이 담겼다. 몇 년 전 유치하고 오만하던 소년은 이미 사라지고, 어딘가 낯선 모습만 남았다.아무렴 괜찮았다. 이제 본인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으니.3년 전부터 청아는 강씨 대 가문의 첫째 아들이자, 미래 강씨 그룹 후계자와 어울리는 짝이 아니었다. 더구나 가문이 망하고, 홀로 해외에서 아픈 동생을 돌보고 있는 현재로서는 관계의 저울이 더 기울어졌다.지금의 세훈은 이미 강씨 그룹의 실권자로 되어 회사를 전 세계로 이끌었다. 세훈이 기침을 해도 비즈니스계가 술렁였다.서로 다른 세상 사람이니 더 감정을 섞을 필요가 없었다.더구나 세훈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니.커피가 서빙되고, 청아는 가볍게 커피를 저어주고 우아하게 한 모금 마셨다.그녀의 커피잔에 설탕을 추가해 주려던 세훈만 자리에 굳어버렸다.“전에는 커피 맛이 쓰다고 꼭 설탕을 넣어 먹었잖아요.
청아는 감정 조절에 실패한 세훈의 모습을 처음 목격했다. 이에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당신을 버렸다니.”입꼬리는 올렸지만, 눈빛은 서늘했다.“당신은 무려 강씨 그룹의 후계자였어요. 저같이 아무 볼일 없는 사람이 무슨 용기로 감히 당신을 버리고 떠나겠어요?”“송청아!”세훈은 손목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고, 이를 악물었다.그는 자신이 성숙한 사랑을 주지 못해 그녀가 상처받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모든 게 사실이 아니었다.자신을 떠날 때 뱉은 이유마저 거짓이었다.세훈은 자신이 쓰레기처럼 쉽게 버려졌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강세훈 대표님, 여긴 밖이고 행동 조심하세요.”청아는 잡힌 손목이 아파왔지만,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을 뱉었다.“날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마요!”세훈이 그녀의 말을 자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강청아 씨, 몇 년 전의 일은 모두 지나갔지만, 아무 이유 없이 날 그곳에 버리고 떠난 이유를 똑바로 말해줘요.”청아는 너무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눈앞의 남자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그의 깊은 눈망울에도 분노가 담겼으나, 그보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진 슬픔이 더 생생했다.3년이 지나도, 세훈은 알지 못했다.청아는 점점 반항하던 몸짓을 멈추고, 차갑고 무뚝뚝하지만, 상처를 꾸역꾸역 참는 얼굴로 말했다.“아무 이유 없습니다.”세훈의 눈이 흔들렸다.청아는 입술을 살짝 달싹이다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전에도 말했었지만, 당신의 연인이 되었던 건 모두 제 승부욕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인이 되었으니, 승부는 끝이 났죠.”세훈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온몸에 살기가 넘쳤다.그는 청아의 턱을 확 움켜쥐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송청아, 당신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마저 드네요.”문 앞에서.네 형제는 이런 대화를 엿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수아와 강연이 아직 어리둥절해할 때, 세윤과 제훈은 재빨리 동생의 어깨
세훈의 개인적인 사정이었으므로 강씨 형제들이 개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또한 세훈은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를 형제들이 아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제훈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두 눈을 감았다.“그래, 알겠어.”그래서 그 역시 먼저 청아를 찾아가지도, 이 일에 개입하지도 않을 것이다.강씨 형제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세훈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청아 언니한테도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강연이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치 지금 세훈의 편을 들지 않는 게 미안한 듯 겸연쩍어 보였다.“송이야 지금 뭐라는 거야? 넌 너무 단순해!”세윤이 혀를 끌끌 찼다.“순진하기 짝이없어.”‘형도 속고, 송이도 속았어.’“난 사실…… 송이의 의견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수아는 부드러운 말투로 천천히 말했다.“청아 언니가 우리 오빠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 다들 직접 봤었잖아. 절대 승부욕 따위로 보이지 않았어. 오빠를 보는 언니의 눈이 얼마나 반짝였고, 또 얼마나 사랑이 가득했는데.”“그게 다 연기였다면 정말 두 손 두 발 들고 말테지만, 고작 승부욕 하나로 완벽한 연기를 보인 여자가 또 어떻게 오빠처럼 권력과 재부를 모두 가진 남자를 버리고 떠나겠어? 심지어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어렵게 돈을 벌어 아픈 동생을 치료시키고 있잖아. 언니는 단 한 번도 오빠한테 도움을 구한 적이 없어.”수아가 침착하게 분석했다.“청아 언니는 그런 비열한 사람이 아니야. 강하고, 정직하긴 오빠 못지않은 사람이지.”강씨 형제는 침묵했다. 다들 기억 속의 청아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생각해 보니 청아는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예나도 청아를 만나본 적이 있었다. 예나는 청아를 해바라기처럼 밝고 따뜻한 아이라며 칭찬했었다.저들이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한들, 예나의 눈이 틀렸을 리가 없었다. 청아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청아가 왜 세훈에게 이별을 고하고, 이렇게 아픈 말을 하는지, 아직 이해되지 않았다
똑똑똑-문을 세 번 두드렸으나 방안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세훈은 불을 켜지 않은 채, 네온 등이 반짝거리는 창밖이 보이는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문밖의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렸다.세훈은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쳐다보았다.비서에게 일러 뒀으니, 사소한 일로 문을 두드릴 리가 없었다. 이렇게 계속 문을 두드리는 것을 보아 무슨 일이 생긴 듯싶었다.세훈은 인상을 쓰고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웠다.곧은 허리와 치켜세운 턱, 여전히 세훈은 강씨 그룹 대표다운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슬픔 감정에 자신을 오래 방치할 여유가 없었다.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니.그래서 그는 한시도 틈을 보이거나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어떡하지?”귀를 문 앞에 가져다 대도 여전히 방안은 조용했다.“오빠 잠든 건 아니겠지?”그 말에 세윤도 귀를 가져다 대고, 이리저리 자세를 고쳐 방 안의 상황을 살폈다.수아와 강연은 그의 뒤에 서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제훈은 가장 뒤에 서서 팔짱을 척 끼고 벽에 몸을 기댔다.“계속 두르려, 형은 나올 거야.”“제훈아, 확신해?”세윤이 물었고, 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다시 두드려볼게.”문에서 귀를 떼고 다시 두드리려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들리더니 여차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손을 들고 문을 두드리던 세윤과 어두운 표정의 세훈이 눈을 딱 마주쳐버렸다.세윤은 심장이 벌렁거렸다.세훈은 주위를 쭉 살펴보더니 살벌한 표정으로 물었다.“여기서 뭘 하는 거야?”“그... 그게...”세윤은 긴장한 얼굴로 동생들의 도움을 구하려 고개를 돌렸다.그런데 세 사람은 언제 떠났는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세윤은 눈물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형, 그게...”“다시 문 두드리지 마!”세훈이 쌀쌀맞게 말했다.“지금 네 말을 들어줄 기분 아니야.”“그게 아니라, 형...”세훈은 그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아 바로 문을 닫으려 했다.그러나 문이 닫히기 전 어느 작은 몸짓이
강연은 배를 문지르며 불쌍한 고양이 표정을 지었다.세훈은 더는 거절할 수가 없어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세윤에게도 물었다.“너도 같이 먹을래?”세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형 고맙지만 사양할게. 송이랑 잘 먹어!”그리고 세윤은 강연을 향해 의문 모를 눈빛을 주고 빠르게 문을 닫았다.세훈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덤벙대긴.”“오빠가 좋아하는 갈비찜이랑, 고등어구이랑 새우도 있어요! 빨리 먹어봐요, 오빠.”강연이 도시락 뚜껑을 열자, 향기가 방안 가득 퍼졌다.강연은 길게 숨을 들이쉬다가 눈꼬리를 예쁘게 접었다.“엄청 향기롭죠? 맛있겠다!”“내가 좋아하는 거야? 아니면 네가 좋아하는 거야?”세훈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우리 둘 다 좋아하는 거죠. 우린 형제니까!”강연이 젓가락을 꺼내 세훈의 손에 쥐어주었고, 그의 밥 위로 갈비를 올리고, 새우도 까서 올렸다.밥 한 끼를 든든하게 먹으니 방금까지 우울했던 기분이 모두 사라지고, 따뜻한 온기만 남았다.강연은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나른하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배가 너무 불러서 터질 것 같아요. 내 음식 솜씨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셰프를 하지 않은 건 이 사회의 손해예요.”세훈은 도시락을 정리하다가 강연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잘났네.”“당연하죠, 내가 잘난 구석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요??”강연이 개구쟁이처럼 혀를 내밀었다.“제 소원은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고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세훈은 아무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차갑던 그의 얼굴이 조금은 온화해졌다.강연은 세훈을 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오빠,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오빠 옆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요. 우린 언제나 오빠를 지켜주고 응원하고 있어요.”세훈이 하던 행동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려, 강연의 당찬 얼굴을 바라보았다.머릿속에는 다른 동생들이 똑같은 얼굴로 이러한 말을 하는 모
“청아 누나랑 형이 헤어지기 전, 누나는 보름 동안 잠적했었어.”제훈이 말했다.“보름 전, 사업이 망한 누나 아버지는 동생을 차에 태우고 강으로 동반 자살을 시도했어.”“뭐라고?”그 말에 강연을 비롯한 강씨 형제는 소름이 끼쳤다.“내 기억 속 청아 누나 집안 형편은 괜찮은 편이었어. 비록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셨지만, 동생이랑 아버지랑 사이도 좋아 보였고, 그래서 청아 누나가 그렇게 밝고 당차다고 생각했었는데.”세윤이 참지 못하고 탄식했다.“그런데... 그런 일이 있었다니.”눈시울이 붉어진 강연도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일을 겪고 사람이 어떻게 멀쩡할 수 있겠어요? 그때 언니도 겨우 20살일 텐데.”“오빠는 이 사고를 몰랐던 걸까?”수아가 물었다.‘이 일이 있었던 직후 헤어졌다면, 오빠는 그동안 대체 뭘 하고 있었던 말인가?’“형은 몰랐을 거야. 심지어 청아 누나가 실종된 그 시간 동안 형도 잠적했어.”“뭐? 왜?”세윤과 수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강연도 마찬가지였다.늘 책임감이 넘치던 세훈이였다. 그때 청아와 사이도 좋았는데, 청아의 사정을 모른척하고 보름 동안 잠적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때는...”제훈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강씨 그룹 내부에 문제가 생겼고, 형은 회사에 모든 시간을 퍼부었어. 그래서 청아 누나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그래서 언니는 이 일 때문에 상처를 받은 걸까?”수아가 물었다.“형이 회사 일을 누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누나의 감정은 눈치도 채지 못했으니.”제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수아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오빠가 청아 언니의 옆에 있어주지 못한 건 오빠의 잘못이 커. 하지만... 오빠는 헤어지고 오랫동안 힘들어했잖아. 그래서 자꾸 오빠가 너무 가여운 마음이 들어.”“우리가 청아 누나를 찾아가 말을 전하면 어떨까? 오해가 풀리면 형을 용서해 줄지도 모르잖아.”머리를 긁적이며 뱉은 세윤의 말에, 제훈이 바로 그를 흘기며 대답했다.
차갑다 못해 냉기가 도는 제훈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수아가 그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저었다.“오빠 지금 너무 흥분했어. 사랑했기 때문에 상처도 주고 상처를 받는 거야. 오빠가 잠적했던 보름 동안 청아 언니는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어. 그리고 어떤 특별한 이유로 오빠에게 이별을 고했겠지. 이 관계에서 상처받은 건 오빠뿐만이 아니야.”제훈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언니 말에 동의해요.”강연도 고개를 끄덕였다.“일단 청아 언니한테 오빠와 헤어진 이유를 물어보고 싶어요. 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못된 말을 했는지 알아야겠어요. 아까 카페에서 언니도 많이 힘들어하는 걸 봤거든요.”“송이야.”제훈이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절대 먼저 나서지 마! 네가 끼어들 일 아니야.”“네?”강연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제훈을 바라보았다.수아와 세윤도 제훈의 급발진에 놀란 모습이었다.“야, 할말 있으면 똑바로 해, 괜히 애 겁주지 말고.”세윤의 말에 제훈은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타일렀다.“송이야, 오빠 말 들어. 이 일은 우리가 개입해서는 안 돼.”강연은 두 눈을 깜빡이며 얌전히 대답했다.“네.”“오늘은 많이 늦었으니까 이만 돌아가서 쉬는 거로 하자.”수아가 말하며 세윤과 강연을 방 밖으로 끌었다.제훈도 밖으로 향하려는데 수아가 그를 붙잡았다.“오빠, 아직 할말 남았지?”제훈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오빠가 보름 동안 잠적한 거 혹시 송이랑 연관 있는 거 아니야?”수아는 제훈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추측하고, 자신의 추리를 늘려 놨다.“시간을 계산해 보니, 그쯤 송이가 납치당했어. 오빠는 그놈을 처리하고, 아빠가 지시한 대로 강씨 그룹의 위협 세력도 정리하느라 바빴을 거야.”“그래서 청아 언니가 오빠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오빠가 옆에 없었던 거지, 맞지?”제훈은 수아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귀신을 속여도, 너는 못 당해내겠어.”“내 추측이 정말 맞구나.”수아도 길게 한숨을 내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