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씨, 어릴 때부터 몸이 안 좋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명훈이 차 한모금을 마시며 조용히 물었다.지수는 손가락을 덜덜 떨렸다. 벌써 그것까지 알아낼 줄은 몰랐다.그렇다면 진실을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였다.‘명훈 씨가 찾아내길 기다리는 게 나을지, 내가 직접 밝히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하지만 내가 직접 밝힌다고 해도, 죽은 지연 언니의 아이는 되돌릴 수가 없잖아.’“그리고, 4년 전 지수 씨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여씨 가문이 제때 맞는 혈액을 구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명훈이 계속 말을 이었다.지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날 뒷조사해서 뭐 하시게요?”명훈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게요, 제가 과연 뭘 하려고 그럴까요?”지수는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겨우 스무 살을 넘긴 지수는 이런 시험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머릿속으로 온갖 시뮬레이션을 한 지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대체 무슨 속셈으로 그러시는지 알 수 없으나, 명훈 오빠가 하는 행동을 제가 제지할 수는 없겠죠.”지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그녀의 뒤로 명훈이 조용히 말했다.“여지수 씨, 지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겁니다.”지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가 빠르게 방을 벗어났다.호텔 문이 쾅-하고 닫혔다.스위트 룸 방에서 다른 사람이 걸어 나왔다. 강현석이었다.“여지수 씨는 알고 있는 게 분명해.”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기사가 나오고, 여지수 씨는 분명히 눈치를 챘어요. 누나가 기억을 잃은 건 어쩌면 여씨 가문과 상관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 저렇게 두려워하는 거겠죠.”“그렇다면 정말 손을 댈 수밖에.”현석의 눈빛이 차가웠다.“이곳에 남아 할 일이 없다면 이만 성남시로 돌아가.”명훈이 세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여기에서 누나랑 있을 거예요.”비록 만나지는 못해도,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명훈은 일단 아버지에게 이 일을 알리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안다면 밤새 이
두 가문은 여씨 가문이 평생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가문이었다.여씨 가문은 성수에서도 충분히 여유로운 생활을 했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처럼, 강씨 가문은 바로 하늘을 나는 사람들이었다.“지수야, 그게 정말이야?”백소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에요. 지연 언니의 친동생이 지금 성수시에 있어요. 지금 우리 여씨 가문을 조사하고 있다고요! 내가 어릴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것과, 4년 전 수술한 것까지 알고 있어요. 얼마 뒤면 언니가 수술했다는 것도 알아낼 거고, 그러면…….”백소은의 손가락이 허공에 멈춰 섰다.그러면 여씨 가문은 그대로 끝장이 날것이다. 성수시의 꼭대기에서 개미보다도 못한 존재로 산산조각이 날것이다.그리고 그때, 여진석이 집으로 돌아왔다.“무슨 일 있어? 두 모녀가 꼭 끌어안고?”여진석의 등장에 백소은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성남시 강씨 그룹의 사모님이 바로 우리 가문 양녀, 여지연이라고 해요.”“뭐라고?”여진석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며칠 전 민우가 성남시에서 강씨 그룹과 우호적으로 지내는 모습을 보며, 여진석은 여씨 가문이 정말 강씨 그룹의 마음에 들은 줄만 알았다.하지만 알고 보니, 지연이 강씨 그룹 사람이었 다니.‘그런데 왜 강씨 가문은 여지연을 데리고 가지 않은 거지?’“아빠, 만약 우리 가문이 언니의 피를 뽑아 날 살리고, 아이를 죽인 사실이 들통이 난다면, 강씨 그룹은 절대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지수의 얼굴에 공포가 가득했다.온화하고 다정한 명훈의 얼굴이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다정했던 만큼, 방금의 대화가 더 무섭게 느껴졌다.“침착해. 두려울 게 뭐가 있어?”여진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지연의 모든 흔적은 내가 지워버렸어. 강씨 가문이 찾아낼 수 없을 거라고!”“여씨 가문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요? 성수시의 허접한 가문이 지운 걸 강씨 가문이 되돌리지 못한다는 보장이 있어요?”백소은이 천천히 말했다
점점 밤이 깊어져 갔다.그때, 누군가 호텔 스위트 룸을 두드렸다.이번에는 강현석이 직접 문을 열었고, 여진석이 안으로 들어섰다.새벽 2시를 넘긴 늦은 시간이었다.여진석은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정말 누군가 하룻밤 사이에 회사를 무너뜨린다고 하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처음에는 반항하고 싶었다. 하지만 1분 1초가 지나고, 여씨 그룹 주가 몇 백억이 공중분해가 되었다.그리고 현재, 여씨 그룹은 거의 빈껍데기만 남았다.시간이 더 지체된다면 해가 뜨기도 전에 여씨 그룹은 아예 공중 분해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여씨 가문 모든 사람이 빚더미에 내려앉게 될 수도 있었다.현석은 노트북을 꺼내 들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차갑게 말했다.“대표님, 여기 앉으시죠.”비록 공손한 태도였지만, 지금껏 현석이 벌이고 있는 일은 끔찍하기만 했다.여진석은 별말 없이 끝자리에 앉으며 말했다.“강현석 씨, 여씨 가문의 양녀에 대해 알고 싶으신 건가요?”현석이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대표님, 드디어 솔직하게 고백하실 생각인가요?”여진석은 말문이 막혔다.‘이제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건가.’지연의 진짜 신분을 알고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여씨 가문은 보복당하고 말았다.“여지연은 저희가 4년 전 입양한 아이입니다.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가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갔었죠.”여진석의 목소리가 방안에 작게 울렸다.현석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오래 공을 들였지만, 최근 3년 동안의 사건만 찾을 수 있을 뿐, 전 1년의 진실은 찾을 수가 없었다.온갖 해커를 총동원해도 찾을 수 없는 1년이었다.다크웹에서 더 많은 해커를 찾아 조사할 계획이었지만, 여진석이 솔직히 말한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네다섯 날 동안 잠겨 있었던 지연은 혼수상태에 빠졌고, 저희가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았어요. 그리고 지연이 그때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임신한 지 한 달을 넘겼다고 하는데,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
4년 전, 제훈이 현석에게 혈액 교체 치료 방법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온몸의 피를 바꾼다면, 몸속 바이오 칩을 배출할 수 있다고 했다.그때는 마냥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거절했었지만, 뜻밖에도 예나는 피를 바꾸게 되었다.‘이제 예나 씨는 정상으로 돌아온 걸까? 4년 전과 다르게 이제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게 된 걸까?’현석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출혈량이 얼마였습니까?”여진석이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3,000~4,000밀리리터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지연의 혈액형이 아주 희소한 편이라, 같은 혈액형 10명을 구해 겨우 지연의 목숨을 구했었죠.”현석이 잠시 침묵했다.인체의 혈액량은 3,000~4,000밀리리터 정도였고, 출혈이 3,000밀리리터 이상이라면, 그 정도 양은 충분히 필요했다.그렇다면, 예나는 정말 온몸의 피를 바꿨다는 말이었다.드디어 4년 전 후유증에서 정말 벗어날 수 있었다.이 사실은 수많은 고통 속 유일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수술 후, 지연은 또 2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은 모두 잃은 뒤였죠. 지연에게 아이의 일은 알려주지 않았고, 그렇게 3년이 지나갔습니다.”여진석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지연은 정말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해킹도 할 줄 알고, 그러다가 어느 날 의료 시스템에서 아이를 낳은 진단서를 찾아낼까, 모든 진단서를 폐지시켰습니다.”“저희는 지난 3년 동안 매주 지연에게 건강검진을 받게 했고, 여씨 가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여진석의 목소리는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저희 여씨 가문이 수십 년을 아득바득 만들어온 여씨 그룹입니다. 제발 대표님, 저희 여씨 그룹에게 기회를 주세요.”현석이 차가운 얼굴로 여진석을 노려보았다.“만약 이 대화 속에 거짓이 하나라도 있다면…….”“절대,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여진석은 거의 바닥에 주저앉을 것처럼 몸서리쳤다.“그러니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현석이 손가락으로 탁
현석이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고, 천천히 조심스레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그러나 낯선 환경에 선잠에 들었던 지연이 눈을 떴다.그녀는 멍하니 현석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당신이 여긴 왜?”“지연 씨 보러 왔어요.”현석이 지연의 옆자리로 앉으며 말했다.희미한 햇빛이 현석의 얼굴에도 쏟아졌다. 햇빛이 그의 얼굴 윤곽을 비췄고, 현석이 그윽한 눈빛으로 지연을 바라보았다.지연은 갑자기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고, 살짝 고개를 틀며 말했다.“많이 바쁘실 텐데 굳이 저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현석이 지연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은 여지연이 아니라, 도예나이니까요.”“네?”방금 잠에서 일어난 지연은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웠다.멍하니 현석을 바라보며 지연이 말했다.“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잘되지 않네요.”“강씨 가문의 사모님이자, 장씨 가문의 장녀이고, 내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네 아이의 엄마인 당신이 바로 도예나라고요.”현석이 낮은 목소리로 구구절절하게 말했다.“우린 당신을 4년 동안 찾아 헤맸어요. 그리고 드디어 당신을 찾았어요.”현석은 참지 못하고 지연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뜨거운 온도가 전해지자, 지연은 정신이 확 들었다.빠르게 뒤로 몸을 뺀 지연이 현석의 손길에서 벗어났다.“왜 첫 만남에 저한테 말하지 않았나요? 왜 하필 기사가 터지고 나서 말해주는 거예요?”차마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하지만 그의 진심 어린 표정이 거짓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그동안 있었던 일이 너무 복잡해 어디부터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현석이 지연을 바라보며 말했다.“피터에게 연락했어요. 아마 두 시간 뒤면 성수시에 도착할 거예요. 그러면 모든 사실을 알 수 있을 거예요.”지연이 인상을 찌푸렸다.“지금 말해주면 안 돼요?”“이해하기 힘들 거예요.”현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피터는 최면술에 능한 정신과 의사예요. 최면으로 지연 씨
강씨 그룹 사모님의 기사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4년 전 도예나에 대한 기사는 아주 많았다. 성남시 최고 미녀인 예나는 온갖 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지연은 천천히 기사를 읽어갔다.그녀의 시선은 기자가 포착한 예나의 미세한 표정과 움직임을 향했다.이어 지연은 자신이 예나와 많이 닮았음을 발견했다. 심지어 술 마시는 습관마저 똑같았다.지연은 자신이 정말 강씨 그룹 사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첫 만남부터 현석을 보고 마음이 떨렸었다. 이건 아마 뼛속까지 남은 사랑이 보낸 신호일지도 몰랐다.지연은 노트북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10 분이 채 되지 않아, 현석은 따끈한 죽을 포장해 왔다.“새벽 다섯 시를 겨우 넘긴 시간이라 문을 연 매장이 죽 매장밖에 없었어요. 일단 이거라도 먹고, 조금 있다가 맛있는 거로 다시 사 올게요.”“고마워요.”지연이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죽을 떠먹었다.갓 완성된 따끈따끈한 죽은 천천히 그녀의 마음을 녹였다.죽 한 사발을 비우고 나니, 하늘이 점점 밝아졌다. 아침노을이 보이고, 이어 오늘의 해가 떠오를 것이다.현석이 자연스레 지연이 비운 그릇을 넘겨받으며 물었다.“일출 보고 싶어요?”지연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다가, 마음보다 몸이 앞서며 말했다.“그래요, 가요.”지연은 침대에서 내려왔고, 현석이 그녀의 어깨에 외투를 걸쳐주었다.“아침은 아직 쌀쌀해요. 이거라도 걸쳐요.”“고마워요.”지연은 아침부터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몰랐다.며칠 전, 지연은 자신이 어쩌면 대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날 밤 성남시를 급하게 떠났다.그러나 자신이 강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그녀는 또 현석과 함께하고 싶어졌다.여자의 마음을 갈대라고 하지 않던가?사실 지연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몰랐다.둘은 나란히 병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병원은 12층까지 있었고, 옥상에 서면 천천히 떠오르는 해를 구경할 수 있었다.노을이 하늘 절반을 수놓고, 달걀 노른자 같은 해가 천
마주친 눈에 불꽃이 튀기 시작했지만, 지연은 빠르게 현석을 밀어냈다.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지연이 말했다.“아침에 검사가 있다고 했어요. 이만 병실로 돌아가 볼게요.”지연은 외투를 둘러싸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현석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지연이 자신에게 호감이 있으나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게 보였다.‘괜찮아, 천천히 하면 돼.’두 사람은 나란히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병원도 잠에서 깬 시간이었다. 의사와 환자들이 복도를 걸어 다니며, 새로운 하루에 활기를 불어넣었다.지연이 병실로 들어서려 는데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이상하다, 이 병실이 맞는데?”“그런데 엄마가 없잖아. 먼저 퇴원한 거 아니야?”“엄마 가방도 아직 여기 있으니까 퇴원한 건 아닐 거야.”“의사한테 물어볼까?”그때, 병실 문이 활짝 열렸다.네 아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지연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너희들이 여긴 무슨 일로?”“엄마…… 아니, 지연 이모.”세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모 보러 왔어요.”제훈이 고개를 들어 지연을 바라보았다.“괜찮아요? 아직도 아파요?”수아가 걸어가 지연의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침대에 누워 좀 더 쉬세요.”세훈은 어디에 선가 따뜻한 물을 따라와 지연에게 건넸다.“이모, 입술이 너무 창백해요. 물 마시세요.”그 순간, 지연은 부족했던 마음이 꽉 채워지는 걸 느꼈다.지연은 자연스레 침대에 누워 세훈이 건네 준 물을 한 모금 마셨다.평범한 물이지만, 지연은 애틋한 마음이 들어 자꾸 홀짝였다.네 아이가 침대 옆을 빙 둘러싸자, 빈틈이 하나도 없었다. 이에 현석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이 틈을 타 지연과 좋은 감정을 쌓으려고 했으나, 아이들이 먼저 선점하고 말았다.현석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학교는 안 가도 되는 거야?”세윤이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한 달 병가 냈어요.”현석은 할말을 잃었다.애교가 많기로 둘째라면 서러울 세윤이 이 자리에 함께 있는다면, 현석
들어온 사람은 주선희였다.주선희는 도시락을 들고 병실 안으로 들어서다가, 방 안의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주선희 씨, 오셨어요?”지연이 몸을 일으키며 인사를 했다.주선희는 병실 앞에서 쭈뼛거렸다. 키가 큰 남자는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고, 네 아이마저 다가가기 어려웠다.주선희는 이마를 긁적거리며 말했다.“새벽에 지연 씨를 위해 삼계탕을 끓였어요. 아직 따끈한데 맛 좀 보세요.”주선희가 삼계탕을 책상 위로 올렸다.아까 겨우 죽 한 사발을 먹은 지연은 벌써 허기가 졌고, 고개를 숙여 맛을 보았다.“고마워요, 주선희 씨.”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다시 열었다.“송이는 좀 어때요?”그 말에 주선희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의사가 수술 후 24시간 안에 눈을 뜰 수 있다고 해서 안심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눈을 번쩍 뜬 거예요. 아이 아빠가 지금 병실에 같이 있어요. 지연 씨, 정말 너무 고마워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지연은 삼계탕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송이가 깨어났다고요? 제가 가봐도 되나요?”주선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송이의 목숨을 살려주신 분인데, 송이의 두 번째 엄마가 되어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런데 그러면 너무 주책일까 봐 그전에는 감히 말하진 못했어요. 제가 부축해서 데려가 줄게요. 우리 같이 송이 보러 가요.”지연이 슬리퍼를 신고 아이들에게 말했다.“병실에서 잠시만 기다려줘. 금방 다녀올게.”그리고 지연은 밖으로 걸어갔다.송이가 고비를 넘겼다는 말을 들어도, 직접 보지 않은 이상 안심이 되지 않았다.병실에 남겨진 현석과 네 아이는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세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송이가 바로 엄마가 수혈해 주다가 입원하게 된 그 아이지?”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근데 엄마가 왜 다른 집 아이를 저렇게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어.”“우리도 가서 보자.”세훈이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수아도 빠르게 뒤를 따랐다.“송이는 여자아이야. 엄마가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